다크타워 동인소설87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7 어느 순간부터는 춥지 않았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했다. 잔디가 내 발밑에서 사그락거렸다. 이윽고 도착한 곳에는 말라비틀어진 밤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잔디와 밤나무 말고 주변에는 어떤 풍경도 없었다. 열 걸음 너머로는 전부 백색이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 안에는 마법이 가득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밤나무의 밑에는 한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벌써 온 거냐." "모리." 모리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 사사로운 것을 느끼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나는 풀썩 그녀의 곁에 주저앉았다. 더 걸을 힘도 없었다. 나는 내 몸이 앞으로 기.. 2023. 9. 10.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6 세 번째 학급재판장의 배경은 폐허였다. 정확히는 대몰락 이후의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전경. 보고서로 읽었고 파견을 나가 본 장소. 그곳은 러드였다. 나는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차의 경적. 러드 하면 떠오르는 기차가 있었다. 블레인. 웅웅 울리는 그 경적이란 곧 블레인이 울부짖는 소리였다. 카텟 기관에서 열람한 보고서에 의하면 블레인은 죽기 전 한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그리고 탈선해 자살했다. "곧 끝나요. 기다리세요. 블레인 목소리 한 번 들어봐요. 도무지 그 설계 의도 대단한 열차라고 느껴지지 않잖아요? 아. 재밌어… 예전에 들었던 절규와 소름 돋을만치 똑같네." 어떻게 패트리샤가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며, 패트리샤는 왜 이 살인 .. 2023. 9. 3.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5 욕조의 색을 살폈다. 피의 착색 정도가 미묘했다. 나는 약간 고인 피의 웅덩이에 손을 대 온도를 확인했다. 혈액은 묘하게 차가웠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살해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혈액 치고는 상당히 온도가 낮았다. 나는 사건 현장에서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이윽고 손바닥에 피를 묻히고 나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주 작은. 하지만 응고된 혈액의 덩어리들이 혈액의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지혈증 환자가 아닌 이상 그런 덩어리들은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피웅덩이의 온도를 기억했다. 그 다음으로 나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구멍에 들어갈 만한 물체를 찾고자 했다. 검정이 어떤 의도로 했든 간에 무언가가 칸나즈키 시노부의 잘린 목 안에 들어갔음은 명백했다. 그러.. 2023. 8. 27.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4 안 돼. "네가 나를 잊어도… 내가 알아볼게." 안 돼. 안 돼. 안 돼. "어떡해. 히무로. 너 정말… 어떡해… 안 됐어. 너무 안 됐어…" "이제 울어. 히무로." "울어도 돼. 정말이야. 엉엉 울어도 돼."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같이 가 줄 거야." "…다 줘." 그러지 마. 마유즈미. 제발 그러지 마. 나는 견딜 수 없어. 내가 이런 일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나는 못해. 마유즈미. 이것만큼은 그럴 수가 없어.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내가 더 걱정한다니까!" "그… 근거는… 네가 잘생겼으니까. 네 좋은 점을 잔뜩 알고 있으니까." "사심이 있어서 걱정이 된다고 하면… 그런 건 사소할 뿐이라고 할 거야?" "기다려 줘?" 네가 나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몰라. 너.. 2023. 8. 17.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3 "야가미. 야가미! 야. 너 왜 이래!" 야가미의 몸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코가 박살 나지 않았을까 싶을만치 큰 충격이었다. 엎어진 야가미를 똑바로 눕히는 데에는 나와 토키와가 무진장 애를 써여만 했다. 토키와는 자기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야가미가 갑자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이건 마치…" "커피!" 나는 바닥에 줄줄줄 흘러내리는 커피. 그리고 그걸 담고 있던 텀블러를 주워 똑바로 세워 놓았다. 안에는 커피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텀블러를 세우느라 내 손에 묻은 커피를 탈탈탈 털어냈다. 왜냐하면… "독이다. 커피에 독이 있어! 저거 마시지 마! 그리고…" 그리고 시시각각 죽어가는 야가미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독을 먹었는지는 몰라도 이미 .. 2023. 8. 11.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2 아른거리는 미녀. 정신을 빼놓는 그 형체여. 나의 아브락사스. 나는 그것을 향해 날아가는 새였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며 목줄을 단 채 그르렁대는 들개들. 나 자신이 바라보아도 저열한 생각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억누를 생각조차 별반 들지 않았다. 입을 벌렸다면 침이 흘러내렸을 것이다. 기어코는 멍하니 그런 상념들에 잠겨 추적추적 걸어가게 되었다. 나는 광인이자 긍지 모르는 자였다. 수치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저 한 없이 원했다. 썩어빠진 생각을 가졌다. 단순한 번식 본능을 뒤로하고 발전하고자 함이 사람의 성질이라면 나는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 나는 원숭이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저 본능에 충실해지는 것이 퇴화냐고 누군가가 반론한다면. 바로 그랬다. 여러 방향의 사유가 가능하.. 2023. 8. 1.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1 모든 것을 후회해. 그 무엇도 이루어졌으면 안 됐어. 다 내 잘못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아웃!" 내가 실타래를 쓴 횟수는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악연들을 만났을 때 겁먹어서 썼고, 한 번은 동굴에서 탑으로 돌아가기 위해 썼다. 나는 쓰자마자 누가 내 뒤통수를 잡아챔과 동시에 몸이 딸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녕! 하며 작별할 시간도 없이 나는 사라졌다. 제기랄. 많이도 걸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동굴과 블레인이 달린 철도. 퍼져 버린 블레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첫 번째. 내가 애미애비를 만난 그곳을 지나는 찰나의 순간에… 나는 보았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1초 남짓 되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자는 나보다 더 앞서 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형체만을 가.. 2023. 7. 16.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 일기 그 사람은 예술가였다. 진짜 예술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나는 가족인 그 사람의 그림자를 따른다. 그 사람의 행위는 내 귀감이었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 사람의 예술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정말로 정말로 드물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드러나는 송곳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이름을 썼으니. 그 사람은 언젠가 잊힐 것이다. 그녀는 내게 흡수될 것이다. 동화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언젠가 영영 잊힐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으로 나를 기억하리라. 너무 잔혹한 일이다. 그녀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나를 원망하리라. 바로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내 .. 2023. 6. 25.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1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헤르메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것은 영혼의 신비로운 광산이었다. 조용한 은광석들처럼 그들은 광맥이 되어 어둠 속을 걸어갔다. 나무 뿌리들 틈에서 인간들을 향한 피가 솟아나 어둠 속에서 반암(班岩)처럼 무거워 보였다. 그 밖의 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위들도 있었고 껍질뿐인 숲들도 있었다. 공허 위에 걸린 다리와 그 커다란 잿빛의 눈먼 연못도 있었다. 연못은 풍경 위의 비오는 하늘처럼 까마득한 땅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고 느긋하고 충만한 초원들 사이로 단 하나 길의 창백한 줄기가 기다란 표백 천이 놓인 듯 나타났다. 바로 이 길을 따라 그들은 왔다. 파란 외투를 입은 날씬한 사나이가 앞장서 걸으면서 말없이 초조한 눈빛으로 앞만 바라보았다. 그의 발걸음은 씹지도 않.. 2023. 6. 4.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