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학급재판장의 배경은 폐허였다.
정확히는 대몰락 이후의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전경. 보고서로 읽었고 파견을 나가 본 장소.
그곳은 러드였다. 나는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차의 경적. 러드 하면 떠오르는 기차가 있었다. 블레인. 웅웅 울리는 그 경적이란 곧 블레인이 울부짖는 소리였다. 카텟 기관에서 열람한 보고서에 의하면 블레인은 죽기 전 한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그리고 탈선해 자살했다.
"곧 끝나요. 기다리세요. 블레인 목소리 한 번 들어봐요. 도무지 그 설계 의도 대단한 열차라고 느껴지지 않잖아요? 아. 재밌어… 예전에 들었던 절규와 소름 돋을만치 똑같네."
어떻게 패트리샤가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며, 패트리샤는 왜 이 살인 게임에 있는지. 그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다.
"이해가 안 되네… 너 나만큼 많이 알고 있는 게 맞기는 해?"
후루미나미 나몬은 알고 있을까. 나는 의문을 가진 채 재판장에 섰다. 열여섯 개의 지정석. 그리고 열여섯 개의 과녁이 다시 나타났다.
후루미나미 나몬: 다시 만났네. 히무로. 내 지정석이 돌아왔어.
하필이면 또 이 자리라니. 후루미나미 나몬이 죽기 직전까지 떠들 걸 생각하면 벌써 현기증이 났다. 그보다 더 애석한 점이 있다면 여전히 마유즈미가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과. 정작 그녀는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이었다.
……일에 집중하자.
재판장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았다. 영정 사진 따위의 장난으로 대체된 자리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사진조차 없이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다. 마유즈미, 이름 없는 남자, 카이다 쿠로하의 자리가 그러했다.
히무로 시라베: 왜 캐롤 브라이트의 자리가 비어 있지?
모노로그: 글쎄. 나도 모르겠군. 중요한가?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중요하지 새끼야. 두 번째 학급재판에서 캐롤 자리가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
토키와 아유키: 내 기억대로라면 분명 캐롤 씨의 자리에 영정 사진이 있었는데…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제츠보: 캐롤이 부활했는데 아직 영안로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 상처를 가진 채로 캐롤 브라이트 소생에 성공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토키와 아유키: 세상에. 만약 그렇다면…!
카나리 케이토: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잖아! 캐롤이 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지금은 범인을 잡아야지!
카나리 케이토가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영안로 안의 일들은 아무리 애써봤자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기에. 고작 7명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모든 이들이 가야 할 곳에 가자 모노로그는 다시금 언총과 장갑을 입 안에서 뱉어댔다.
나는 장갑을 착용하며 언총에서 어떤 총알을 꺼내 사용할지를 미리 생각해 두었다. 내가 장갑을 던질지, 날아온 장갑을 받을지도 고려했다. 이 학급재판 내에서 결국 후루미나미 나몬과 나는 결투를 진행하게 될 터였다.
나는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다가올 대결을 준비했다. 어차피 증거와 정황들을 쌓고 쌓아 하나의 경로로 연결하면, 그 끝은 분명 후루미나미 나몬이 있다. 학급재판이라는 이 절차 자체가 그 결투 한 번을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 번째 학급재판을 앞두고. 모든 이들이 총을 잡았다. 그리고 서로를 겨누기 시작했다.
더 단크 타워
챕터 3: < 카타르시스 >
"나는 누구인가?"
제츠보: 가장 먼저 이걸 짚고 가야겠어.
제츠보가 자신의 과녁에 대고 총을 쏘는 것으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의 앞에는 카나리와 플라잉 로봇이라는 글자가 크게 떠올랐다.
카나리 케이토: 내. 내가 왜?
카나리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히무로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히무로는 어떻게 사람을 죽였느냐를 중점으로 알고 있을 테니. 탑에서의 정황이나 전체적인 상황은 내가 맡아야 할 것 같았다.
제츠보: 내가 탑으로 돌아온 날의 자정쯤에 누군가가 쪽지를 써 나를 불러냈어. 나는 방심하고 영안로로 향했지. 그런데 영안로에서 카나리는 플라잉 로봇을 써 나를 무력화시켰어.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서 제츠보가 며칠동안 실종됐던 거구만?
제츠보의 실종. 살인 게임에서 저런 행동을 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 같아도 무적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면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말이 되려나 싶었다. 총도 안 통하고 칼도 안 통하고. 통하는 건 고작 플라잉 로봇의 방해 전류뿐이니까.
제츠보: 게다가 일어나 보니까 사람이 두 명이나 죽어 있었지… 왜 그랬을까? 나는 너희들 전부를 지켜줄 수 있었어. 나는 잠도 자지 않고 사람이 얼마 없는 탑은 조용해. 누가 비명이라도 지르면 당장 달려가서 사람을 구할 수 있어.
제츠보: 그런데 나를 막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어. 카나리. 말이라도 해 보시지.
카나리 케이토: 망할. 너무 갑작스러운데…
카나리는 마른세수를 하고서 한숨을 얕게 내쉬고. 제츠보를 언총으로 여러 번 쐈다. 제츠보의 얼굴에 총알이 마구 날아들었지만, 제츠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제츠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기와라 우시오: 야야야야야. 카나리! 그거 사람 쏘라고 만든 거 아니야. 임마! 정신 차려!
카나리 케이토: 그래? 그러면 과녁에 쏴 주지!
초고교급 절망이라는 글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어? 이거 이 사건이랑 주제가 좀 엇나가는 것 같은데?
카나리 케이토: 이 자식들에 대해 아는 사람 있냐? 없겠지?
히무로 시라베: 대몰락 시대의 폭도들이다. 한 여성에 의해 규합되어 문명의 쇠퇴를 꾀한 조직이지.
카나리 케이토: 어?! 뭐야. 너는 어떻게 알아! 카텟 기관이어서 그런 건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끼리끼리 논다더니. 개자식들 같으니!
토키와 아유키: 너 말고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 그자들이 초고교급 절망이라는 호칭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절망이라는 이름 하에 세상을 전복하려 시도한 조직임은 알아.
카나리 케이토: 뭐? 어떻게
토키와 아유키: 그야 후루미나미와 히무로가 탈출 장치에 노출되자마자 자신이 아는 정보를 우리와 공유했기 때문이야. 나나시가 납치되기 직전의 일이지. 너는 우리들과 함께하지 않았으니 지레 겁먹었던 거야.
카나리 케이토: 그… 그래…?
카니리는 눈에 띄게 주눅이 들었다. 뭐야. 정말 좋은 뜻으로 했는데 그게 다 삽질이었던 거야? 저 한심한 놈 저거…
이바라 쿠리스: 카나리. 그 사람들이 뭐길래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거야?
이바라의 물음에 카나리는 자기 할 일을 다시 떠올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카나리 케이토: 히무로 저놈이 말했잖아. 그럼 느낌이 올 거 아니야! 카텟 기관에서 보냈다는 로봇의 이름이 절망이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 야! 그 사건이 터진 이후로 절망이라는 단어는 사어가 됐어. 그 자식들을 지칭할 때 말고는 쓰이지를 않는다고!
하기와라 우시오: 이 세상에 더 이상 자기 애 이름을 아돌프로 짓는 사람이 없듯이?
카나리 케이토: 바로 그거야! 오직 폭도 놈들만이 절망이라는 이름을 써. 그런데 제츠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건. 카텟 기관도 초고교급 절망에 먹힌 세력이라는 거야! 그런 자식들이 탑을 배회하게 둘 순 없었어. 내가 막은 거야!
카나리는 비장하게 소리쳤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두의 반응은 미묘했다. 초고교급 절망이라는 작자들이 무슨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순식간에 제츠보를 위험인물로 규정한 카나리의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토키와 아유키: …카나리. 너 진심이야? 고작 이름 하나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려서. 제츠보를 막았다고?
카나리 케이토: 고작 이름이 아니야. 왜 저게 그토록 큰 힘을 가지고도 살인을 막지 못했겠어? 사람이 죽기를 바랐으니까 일부러 막지 않은 거야. 이제 다 말이 되잖아!
카나리는 제츠보가 눈을 크게 뜬 것은 보지 못한 듯 열변을 토했다. 카나리 입장에서는 본인의 주장이 맞다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발언이 자신이 지키지 못한 이들에게 애석함을 느끼는 제츠보에게는 아주 눈이 까뒤집힐 정도라는 것이다.
제츠보: 네가… 네가 뭘 안다고…
카나리 케이토: 얼굴이 예뻐졌다고 속으면 안 돼! 카텟 기관은 우리가 죽도록 유도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카텟 기관이 이 살인 게임의 배후일지도 모르고!
히무로 시라베: 이건 더 이상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만하지.
후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쉿! 재밌잖아.
후루미나미가 히무로의 입술에 검지를 올리려 들자. 히무로가 팔로 후루미나미의 손을 쳐냈다.
제츠보: 원한다면 이딴 곳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어…
이바라 쿠리스: 카나리. 하지만 그건 너무 억측이야. 네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물론 걱정이 됐겠지만, 이름이 제츠보니까 우리가 죽기를 바란다는 건 말도 안 돼.
카나리 케이토: 아니. 말이 돼. 저 로봇은 무능했던 게 아니라 유능하게 우리가 죽기를 관찰해 왔어. 다들 느꼈잖아. 여기서 조금만 더 잘하면 될 부분들. 한 발자국이 모자라서 못 막은 사건들. 전부 의도적인 작업이었던 거야!
제츠보: 로봇 아니라고! 자기는 사도였던 주제에… 어디서 잘났다고 내가 무능하니 어쩌니 따져? 내가 없었으면 난관에 부닥쳤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잘 씹어왔던 주제에 이제 와서 나를 뱉으려고 들어…!
제츠보가 이제 기계 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옛날이면 보여주지 않았을 감정의 격화를 보여주며 나는 영안로 속에서 제츠보의 형태가 변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변형 또한 가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츠보의 단어 선택에 의문을 갖기도 했다.
잉? 사도? 그건 또 뭐야? 어이쿠. 이거 자기만 알고 있던 사실을 실수로 말한 것 같은데. 기억해 둬야지. 카나리=사도.
이바라 쿠리스: 저기 제츠보. 잠깐 진정하자… 카나리가 바보 같은 착각을 해서 제츠보를 멈췄다. 이걸 알았으면 충분하잖아.
이바라마저 당시의 상황을 만류했으니. 당시의 상황이 살인의 검정을 따지는 학급재판장인지 시즌99번째로 열리는 누가 어디 첩자네 누가 나쁜 놈이네 너는 개자식이네 운운하는 설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휴. 이게 탑이지 그럼 그렇지…
제츠보: …알겠어. 바보 같은 소리에 어울려 줄 이유는 없지…
히무로 시라베: 바보같은 이유로 가장 유능한 파수꾼을 무력화시켰군. 카나리 케이토. 칸나즈키 시노부의 죽음에는 네가 큰 역할을 했다. 그것 하나만은 알아둬라.
카나리 케이토: 야! 이거 봐! 카텟 기관 출신이라고 감싸주는 걸 보라고! 답은 하나 뿐이야. 카텟 기관은 우리들의 적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제츠보의 이름이 진짜 초고교급 절망이라는 곳에서 지은 거든 그냥 지은 사람 네이밍 센스가 좆구렸든 이 살인과 상관은 없잖아. 카텟 기관이 적이니 뭐니. 뭐가 중요해?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이 옳다. 어차피 재판에서 지면 검정 말고는 다 죽는다. 죽으면 의미가 없지. 그러니 음모론은 집어치우고 재판에 집중해라. 쌓인 감정을 풀고 싶다면 생사의 갈림길 말고 다른 곳을 추천하지.
나는 히무로의 말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아니 일곱 명으로 사람이 줄어드니까 이런 간단한 얘기도 단속이 안 되네? 재판에서 딴 얘기가 나와? 나는 옛날이 그리워졌다. 모리가 있었다면 지금 그런 헛소리를 나눠봤자 무슨 소용이 있지? 이 공리를 갉아먹는 바퀴 놈들아. 이랬을 거고 야가미라면 특유의 띠꺼운 점잖음을 한껏 담아 이제 한담은 마무리하고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죠. 이랬을 텐데. 아. 그립다. 죽은 녀석들아… 우리만 두고 떠난 놈들아…
너희가 잘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사람도 안 죽이고 우리 옆에서 계속 짜증 나는 새끼들이 될 순 없었던 거냐…?
카나리 케이토: 하지만 내가 쪽지에 적은 내용에 반응했다는 건. 저 자식도 어느 정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걸 텐데…
카나리의 중얼거림을 신호로 나는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나는 할 일에 착수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쯤에서 내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거.
칸나즈키에 대한 의문점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걸 적절히 세고 언탄을 쏘는 것에도 공을 들였다. 나는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글씨가 재판장 위에 둥실둥실 떴다.
칸나즈키의 은둔, 칸나즈키의 식사 배급, 칸나즈키 시노부의 수호령.
하기와라 우시오: 어 뭐야. 마지막 건 내 게 아닌데?
히무로 시라베: 내가 쐈다. 카나리 케이토와 가장 깊이 관련된 인물은 칸나즈키 시노부이지. 본인이 부정하든 아니든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토키와 아유키: 드디어 이 안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군.
토키와는 헛기침을 두 번 해 이목을 끈 뒤에. 내가 아니 언제 말해! 라고 소리치기 일보직전에 입을 열었다.
토키와 아유키: 나는 칸나즈키의 살해는 카나리의 짓이라고 생각해.
나는 카나리의 반응을 살피려 홱 고개를 돌렸다. 범인 혐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는 건 절대 손해 될 일이 아니었다.
카나리 케이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카나리는 침착했다. 또 신중했다. 그건 검정이 보일법한 반응이기도 했고 살인 혐의를 받은 평범한 사람이 보일법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얻은 수확은 없다시피 했다. 히무로는 뭔가 읽었으려나?
토키와 아유키: 간단해. 나는 제츠보를 억류시킨 카나리의 행동이 누군가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내놓는 주장은 전부 억지야. 누가 저런 바보 같은 이유로 제츠보를 멈추게 만들겠어? 게다가 지속적으로 말이야.
이바라 쿠리스: 지속적이라는 건. 플라잉 로봇의 방해 전파가 충전될 때마다 제츠보에게 사용했다는 거야? 그래서 안 보였던 거구나… 또 충전 시간이 제츠보의 활동 정지 시간보다 길다고 해도, 영안로와 탑 사이에는 시간 간극이 있으니까…
이바라 쿠리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어. 제츠보가 예전에 방해 전파에 당했을 때는 한 10분 정도만에 다시 깨어났단 말이야. 카나리의 방해 전파가 얼마나 빨리 충전되는지는 모르지만. 영안로 안에서 시간이 늦게 간다고 해도 제츠보가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할 만큼 억류시키는 게 가능할까?
하기와라 우시오: 일리 있는 지적이시군요. 이바라 씨. 저도 저런 연유로 제츠보 씨가 계속 영안로에 있었던 게 아니라. 먼저 다른 곳에 숨어있거나 상주한 뒤에 영안로에 갇힌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야가미를 따라 하자 이바라는 혀를 내둘렀다. 소름이 끼친다는 투였다.
이바라 쿠리스: 으아! 너 그러지 마! 꺼림칙하니까!
제츠보: 영안로에서 내 형태가 바뀌면서. 나는 여러 요소에 조금 더 취약해졌어. 방해 전파의 영향도 체감상 더 커졌고. 깨어난 직후에는 후유증마저 겪었어. 사람이 된 것처럼 정신이 어지럽더라…
이바라 쿠리스: 그건 그냥 오류? 아니야?
무심코 그렇게 말한 이바라는 혹시 자신이 실례되는 말을 했나 화들짝 놀라서 제츠보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제츠보는 별반 그 말을 담아두는 기색이 없었다. 제츠보의 말마따나 나는 어느 정도 제츠보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이름 자체가 변했고, 영안로에서부터 보이던 감정적인 모습들은 사람 비슷한 외형을 되찾으면서 더 강해졌다.
토키와 아유키: 이야기가 많이 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카나리는 칸나즈키에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칸나즈키를 방심하게 만든 다음에 기습하던가, 야가미에게 했던 것처럼 독을 먹일 수도 있잖아.
히무로 시라베: 그 표현은 틀렸다.
히무로가 말의 대목을 끊자 토키와의 고개가 순간 히무로 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리고서 아아주 무덤덤한 목소리로 토키와는 물었다.
토키와 아유키: 뭐 말하는 거야.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에게 했던 것처럼 이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야가미 토가는 칸나즈키 시노부 이후에 살해되었으니 야가미 토가를 칸나즈키 시노부에게 했던 것처럼 독을 먹인다고 말해야 옳다.
히무로 시라베: 사실 이 표현 또한 틀렸지.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범과 야가미 토가의 살인범이 동일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와 관련해서 모노로그가 밝혀야 하는 사실이 있지. 이처럼 피해자가 두 명일 경우. 검정도 둘을 잡아야 하나?
그래. 우리 중 누구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무작정 수사만 했다. 하지만 꼭 들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처형이 두 번이야? 지금 칸나즈키 재판을 끝낸 다음에 야가미 재판이 시작되는 건가?
모노로그: 글쎄.
하기와라 우시오: 글쎄는 무슨 글쎄야! 너도 모른다고 하면 우리더러 어쩌라고!
모노로그: 나는 어느 편이 더 흥미로울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두 개의 재판 모두 투표를 할지. 첫 번째의 살인만을 따질지 말이다.
히무로 시라베: 두 살인의 검정이 각각 다른 것인가?
모노로그: 그건 아무도 모르지. 부디 그러하다고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너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지.
토키와 아유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바라 쿠리스: 어차피 자기 멋대로 결정할 거잖아. 모노로그. 그냥 네 마음대로 해.
모노로그: 나는 진심이다. 이건 아주 만약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만약 검정이 두 명이라면 죽는 사람도 둘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검정이 둘인데 첫 번째 살인만 취급한다면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고도 살아나갈 수 있지.
나는 잠시 고민했다. 검정이 두 명이면 두 명이 죽는다고?
남은 사람은 나. 카나리. 토키와. 후루미나미. 이바라. 히무로. 그리고 제츠보밖에 없는데 두 명이 죽는다고? 저 중에 한 명이 간다면 당연히 후루미나미를 배제하고 남은 여섯 명이서 잘 살려고 노력하겠지만, 한 명이 더 가야 한다니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바라가 살인자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뭐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 명만 검정으로 세워서 처형시키는 게 낫지 않나? 혹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히무로 시라베: 가능하다면 검정을 두 명 세워야 한다. 두 명을 처형시킨다.
토키와 아유키: 너에겐 결정할 권한이 없어. 히무로. 리더는 나야.
나는 그 시점에서. 분명히 이대로 놔뒀다간 한 10분 정도를 더 이 사안에 대해 토론만 하게 될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하기와라 우시오: 모노로그. 그냥 네가 정해. 어차피 우리 의견 모아봤자 네 마음대로 될 거 아니야? 여기서 죽치면서 설전이나 하는 거 보고 있을래?
모노로그: 나는 너희들이 말싸움을 하는 꼴이 재밌다만.
이거 완전 분탕충 아니야.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욕을 삭였다.
모노로그: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해본 말이다. 처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줄 아나? 하나하나 준비하고 재판을 조율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희들은 모를 거다. 번거롭고. 귀찮아. 검정은 한 명으로 끝낸다. 첫 번째로 죽은 사람. 즉슨 칸나즈키 시노부만의 죽음을 다루지.
사실 그게 맞는 판단 같기는 했다. 본래 학급재판이란 검정을 못 맞추면 남은 하양은 전부 죽는 구조인데. 검정이 두 명 살아남을 수 있으면 서로 혼자서는 못할 엄청난 트릭을 만든 다음에. 서로 도와주고서 입을 싹 닫으면 그만 아닌가.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명백하군.
히무로는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를 죽인 자는 지금 당장 자수해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수수께끼 하나를 던 채로 재판을 시작할 수 있다.
후루미나미 나몬: 워워. 히무로. 너무 급하지 않아? 두 번째 살인자에게도 생각할 시간은 줘야지. 당장 내 접시 위에 올라오라고 소리쳐 봤자 토끼는 도망가기 마련이라고.
하기와라 우시오: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나쁜 생각은 아닌데? 진짜 두 번째 살인의 검정은 이제 상관이 없잖아. 지금 당장이라도 나타나서 내가 왜 죽였고 수법은 뭐였고 하던 도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줄줄 읊는 게 맞는 거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죽였는데 학급재판에서 승리도 불가능하면. 내가 죽였소 하고 함께 검정을 잡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히무로 시라베: 어서 자수해라. 기다려줄 시간이 아깝다.
토키와 아유키: 내가 계속 말했을 텐데. 히무로! 리더는 나야! 네가 멋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히무로 시라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재판에서의 논의도 네 허락 하에 진행해야 한다는 건가? 이전의 재판에서는 그러지도 않았다.
토키와 아유키: 그야 네가 독선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두 번째 검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더 신중하게 정해야 할 사안이었어! 우리가 반목할지 포용해야 할지 말이야!
히무로 시라베: 살인자를 포용한다고? 나는 그런 일 따위 용납할 수 없다. 사람을 죽였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처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어째 재판의 첫 단추부터가 제대로 맞지 않았다. 검정의 살해 수법을 논해야 할 때에 리더니 뭐니… 모리와 야가미가 다시금 그리워질 뿐이었다. 내가 히무로의 편을 지나치게 들고 있나 스스로를 돌아보았지만. 어느 방향에서 봐도 히무로의 말은 옳았다. 검정을 잡아야 하는 임시동맹은 둘째치고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수법을 알아야 알리바이를 찾는 절차가 훨씬 쉬워지지.
제츠보: 히무로의 말이 맞아. 살인 게임 내부에서의 처벌이 없으니 살인을 대가 없이 넘긴다는 건 말도 안 되지.
후루미나미 나몬: 마음이 바뀌었어. 찬성! 빨리 말해라. 검정아! 우우. 쓰레기 자식!
쟤가 바람을 잡으면 오히려 하기 싫어질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참가자들을 둘러보았다. 자기가 그랬노라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총을 들었으나 누굴 쏘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있었다. 콕 집어 말하자면 카나리.
카나리 케이토: 이건 털어놓는 게 맞지! 어차피 들켜도 안 죽는데. 숨겨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게다가 번거로울 뿐이지 나중에 꼭 드러날 거라고!
이바라 쿠리스: …그렇지만 말하지 않겠지.
이바라가 중얼거렸다.
이바라 쿠리스: 다들 정신 차려. 우리는 아무것도 못 들을 거야. 첫 번째 검정과 두 번째 검정의 범행을 전부 밝혀내야 한다고.
하기와라 우시오: 그건 모르지. 진심을 다해 말하면 통하지 않을까?
하기와라 우시오: 야 이 개새끼야! 살인자 쓰레기 놈아. 닥치고 잘못했습니다 하고 싹싹 빌어! 양심 없는 새끼를 다 봤나!
이바라 쿠리스: 집어치워! 하기와라. 자기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이바라 쿠리스: 내가 사람을 죽였고 어떤 방식을 사용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사이코패스겠지. 누구나 그 사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거야. 이건 야가미가 했던 말인데… 살인을 저지른 뒤의 사람은 살인을 저지른 당시와 정신 상태가 너무나도 달라서 거의 다른 사람이라 볼 수 있을 정도래. 대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안달을 낸다고 했어.
이바라 쿠리스: 그러니 검정은 어떻게든 자기 살인을 숨기고 싶을 거야. 거론되지 않고 빠져나가기를 바라겠지. 이기적이고 치졸하고 더럽지만… 그 더러움을 씻는 건 본인의 몫이야. 우리는 대신해 줄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바라가 언총을 자신의 과녁에 겨누었다. 팔각형 결정의 물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히무로 시라베: 네 죄를 스스로가 받아들일 마지막 기회는 이제 사라졌다. 너는 스스로의 위엄을 저버렸다. 두 손을 모아 빌면 어차피 밝혀질 사실이 땅에 묻힐 줄 알았나?
히무로 시라베: 너는 너 자신을 죽였다.
심지어 후루미나미 나몬조차 내게 자신의 살인을 털어놓았다. 물론 그녀가 참회하고자 고백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후루미나미 나몬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다고 말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도덕성이나 배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는 일이다.
두 번째 검정은 그 일에 실패했다. 그런 자에게 베풀 동정심 따윈 없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오케이. 두 번째 검정을 향한 매도는 여기까지. 그래서. 팔각형 물질이 뭐야? 네 비커에 들어있는 그거?
하기와라 우시오는 이바라 쿠리스에게 물었다. 이바라 쿠리스는 재판에 참여하기 이전부터 어떠한 물질이 담긴 비커를 들고 있었다.
이바라 쿠리스: 맞아. 야가미의 커피에서 걸러낸 거야. 문제는 이게 뭔지 모른다는 거야. 일단 커피보다 더 물에 안 녹는 흰 가루 비슷한 거란 건 알아냈지만. 그것보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어.
히무로 시라베: 어떤 시럽 형태가 아니라 확실하게 가루 형태의 물질이었다는 말인가?
이바라 쿠리스: 응. 맞아. 여기 카나리가 렌즈를 여러 개 겹쳐서 자세한 사물을 볼 수 있는 안경으로 관찰해 줬어. 팔각형 결정을 가지고 있어. 너무 팔각형 결정 이야기만 하는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조금 답답하네… 독일지도 모르니 맛도 못 보겠어.
토키와 아유키가 느닷없이.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서 이바라 쿠리스가 쏘아 놓은 팔각형 결정의 물질이라는 글자에 언총을 쏘았다. 견과류 알레르기라는 글자가 새로 떠올랐다.
토키와 아유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곘어? 독이 아니라고 내가 계속 말했잖아. 야가미는 견과류 알레르기 때문에 죽은 거라니까. 전문 용어로는 아나필로폰식스 초크지.
아나필락시스 쇼크다.
토키와 아유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 내가 교대를 하며 야가미에게 커피를 건네주었을 때의 일이야. 하기와라에게는 이미 말한 사실이지만. 그때 야가미는 자기한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으니 견과류 시럽이 들어갔으면 지금 말해 달라고 했어. 내가 없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마시더라.
거짓말이군. 모든 거짓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곧 알게 될 터였다.
히무로 시라베: 그 말은 틀렸다.
나는 견과류 알레르기에 언총을 겨누었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부서지고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에피펜의 부재.
제츠보: 에피펜? 알레르기 진정제 말하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으엥? 그런 것도 있어? 알레르기 치료제가 진짜 있나 보네?
하기와라 우시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제츠보: 치료제가 아니야. 아드레날린의 효과로 발작과 혈압 저하를 진정시키는 거야. 에피펜이 멸종한 이후로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들은 힘든 삶을 살았지. 그래서. 이게 어디에 없었길래 그래?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의 전용실. 야가미 토가의 숙소. 야가미 토가의 소지품. 어느 곳에도 에피펜은 없었다. 정말 극소량의 견과류에 노출되어도 생명이 위독해지는 사람에게 에피펜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히무로 시라베: 아무리 조심한들 어디에서 견과류에 닿을지 모른다. 치명적인 수준의 알레르기를 가진 이들은 독극물 사이에서 사는 것과 같지. 야가미 토가 정도의 인물이 에피펜을 가지고 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지.
후루미나미 나몬: 하지만 히무로 씨! 누군가가 에피펜을 전부 가져간 거라면 어떻게 하죠?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가 수도 없이 가지고 있었을 에피펜을 전부 훔쳐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용실에 있는 물건이 주인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재보급되는 것은 기억하고 있겠지. 그토록 치명적인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에피펜을 확보하려 들었을 것 같지 않나?
하기와라 우시오: 결론은 이거란 말이지. 야가미한테는 견과류 알레르기가 없었고. 따라서 야가미는 독에 의해 죽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물론 반발이 있겠지. 바로 정보를 제공한 장본인이었다.
토키와 아유키: 하지만… 야가미는 분명 나에게 말했어! 자신에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이바라 쿠리스: 야가미가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지. 아니면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짜 약점을 댄 다음에 누가 자신을 독살하려 들면 그걸 잡으려고 했다던가. 그런 거 아닐까?
이바라 쿠리스의 말은 야가미 토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는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토키와 아유키의 거짓말.
하지만 여전히. 토키와 아유키가 사건과 관련 없는 제삼자일 경우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볼 여지는 없었다. 그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전제 안이라면 그렇다.
토키와 아유키: 하지만 야가미가 알레르기 때문이 아닌 독 때문에 죽었다면 여기 후루미나미도 같이 죽었어야 해! 야가미에게 인공호흡을 시켰는 걸!
이바라 쿠리스: 사실 그건 상관은 없을 거야. 점막 간 접촉은 없었잖아. 게다가 닿았더라도 야가미의 입 안에 남은 독은 엄청나게 극소량일 거야.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돼.
토키와 아유키는 이바라 쿠리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납득한 것인지. 납득한 척을 하는 것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토키와 아유키: 너희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어쩌면 내가 너무 설레발을 쳤던 걸지도 몰라… 그러면. 정말 커피 안에 독이 들어 있었던 걸까? 다른 곳에는?
토키와 아유키는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다수가 지지하는 가설 쪽에 붙었다. 재빨랐다. 이래서야 아무리 수상하다고 해도 야가미 토가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며, 내가 오해했을 뿐이라며 둘러대면 더 추궁할 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그가 거짓말을 한 연유는 밝혀지게 되리라.
히무로 시라베: 겨자 탄 물에는 독이 없었다. 내가 확인해 보았으니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기와라 우시오: 맞아. 나는 이바라 전용실에서 겨자 소스 가져와서 물에 타기만 했어.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어!
이바라 쿠리스: 아. 이 하얀색 가루가 뭐인지만 알면 어떤 독이 들어가 있었는지도 알 수 있을 텐데…
히무로 시라베: 그 물질과 관련하여.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다른 이들이 충분히 볼 수 있게끔 천천히 꺼냈다.
히무로 시라베: 이 병은 양호실에서 찾은 것이다. 라벨에 적힌 철자를 읽어 주지. S-t-r-y-c-h-n-i-n-e.
다른 이들은 라벨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의 시선이 유리병에 쏠리는 것을 느꼈다. 어딘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 또한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검정의 입장에서 재판의 흐름은 별반 마음에 들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가장 큰 반응을 보인 자를. 나는 찾아냈다.
카나리 케이토: 스. 스트레치나인? 그게 뭔뎨?
후루미나미 나몬: 으응. 히무로? 으흠. 아. 아하!
이바라 쿠리스: 스트리크닌?! 그게 왜 양호실에 있어? 그거. 독이잖아!
히무로 시라베: 그것도 극독이지. 이 유리병에 해골 표시가 붙어있지 않은 이유는 스트리크닌에 대해 아는 자만이 이 독을 이용할 수 있게끔 한 것 같다. 스트리크닌은…
후루미나미 나몬: 잠깐! 여기서부터 설명은 내가 맡도록 하지!
후루미나미 나몬이 내 입을 막으려 손을 뻗자 나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거짓을 말한다면 그 말을 끊고. 입을 비명으로 막고. 내가 말을 이어나갈 심산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다들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독을 마신 사람이 으악! 크아악! 하고 괴로워 몸부림을 치다가 죽는 잠연을 봤을 거야. 많이 본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에 그런 독은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 스트리크닌을 제외하고선 말이야. 스트리크닌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영화 속 맹독이지. 체내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뭐. 야가미처럼 되거든. 발작을 하다가 죽어.
나는 과녁에 언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야가미 토가의 근육 강직.
히무로 시라베: 스트리크닌의 주된 효과 중 하나가 근육 강직이다. 야가미 토가의 등이 휘고. 발가락과 손아귀가 펴기 어려울 만치 말려들었다. 그 어떤 알레르기 반응도 그런 종류의 증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의 턱이 굳게 닫혀 근육을 잘라낸 뒤에야 열린 것 또한. 스트리크닌의 효과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후루미나미 나몬: 여기서 하나 더! 스트리크닌의 이명을 알고 있는 사람?
후루미나미 나몬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이 없던 와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바라 쿠리스: 내가 주워들은 바로는 이거야… 세상에서 가장 쓴 물질.
하기와라 우시오: 야아아아아아! 그거! 그거! 야. 그거 기억나?!
이바라 쿠리스의 말에 하기와라 우시오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는 잠시 자신의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언총을 자신의 과녁에 쏘았다.
"너무 쓴데요."
토키와 아유키: 맞아. 야가미는 커피를 마신 직후에 커피가 너무 쓰다고 했어. 그것도 스트리크닌 때문이었던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게다가 스트리크닌은 팔각형 결정체를 가지고 있지. 정황상 이 살인에 스트리크닌이 사용된 건 확실해 보이는걸.
반론은 없는 건가? 나는 다른 이들을 살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스트리크닌이 진짜 스트리크닌인지 확인하기 위해 물에 녹여 보아야 한다. 팔각형 결정을 가진 그 물질이 스트리크닌이라는 것은 중독된 사람이 없고서야 증명할 수 없다. 정말 스트리크닌에 그런 효과가 있느냐. 네가 지어낸 것 아니냐 등의 반론이었다.
충분히 할 만한 반론들을 꾀어보려 했으나. 역시 검정이 노골적인 미끼에 속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바라 쿠리스: 히무로. 그 유리병 좀 줘봐. 혹시 모르니 그 유리병에 있는 게 스트리크닌인지 확인해 볼게.
히무로 시라베: 그럴 필요는 없다.
이바라 쿠리스: 뭐? 왜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는 유리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이 유리병 안에 들은 것은 스트리크닌이 아니라 그저 베이킹 소다이기 때문이다. 라벨은 있지도 않다. 지정석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너희는 확인하지 못했겠지.
이바라 쿠리스: ……에에에에?!
나는 그저 굴을 들쑤시고 그 안에 사는 것이 토끼인지 여우인지를 보았을 뿐이다.
하기와라 우시오: 뭐야! 구라를 쳐?!
심지어는 하기와라 우시오마저도 뜻밖이라는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러는 와중에도 두드러지는 반응을 살폈다.
카나리 케이토: 이거 재판의 전개를 자기 유리하게 바꿔먹으려는 거네! 괘씸하긴!
후루미나미 나몬: 참고로 나는 알아챘는데. 그냥 모른 척해준 거다? 나 잘했지. 히무로. 나 잘했지? 역시 나야말로 네 곁에 서기 적합하대도!
토키와 아유키: 그랬던 거군…
제츠보: 그렇지만 덕분에 스트리크닌이라는 독의 주제를 우리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 아니… 애초에 야가미에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을 안 이상. 그 독이 스트리크닌인지 청산가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군가가 야가미를 독살했다. 이거면 충분하잖아?
이바라 쿠리스: 하기야 그렇긴 하지. 정황상 스트리크닌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런데 원래 스트리크닌이 담긴 병은 어디에 있을까?
히무로 시라베: 검정이 바보는 아니다. 본래 스트리크닌이 들어 있던 병은 일찌감치 처분되었을 것이다. 사건 도중에야 증거 인멸이 힘들 수 있겠지만 이번 독살은 생활과 행동 패턴을 읽은 뒤에 이루어졌으니. 살인을 준비하고 독을 어딘가에 버릴 절차는 끝난 지 오래겠지.
그리고 나는 보았다.
굴 속에 어떤 털색을 가진 짐승이 사는지를.
제츠보: 결국 중요하지는 않은 거야. 나는 오히려 히무로가 잘했다고 생각해. 우리의 사고는 이제 알레르기 이론에서 완전하게 벗어났으니까. 앞으론 누가 야가미를 독살했는지만 알아내면 돼.
토키와 아유키: 잠깐. 독살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잖아. 제츠보. 그런 식으로 수사하기에는 용의자가 너무 많아. 내 생각에는 칸나즈키의 살인 쪽에 신경을 쏟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어차피 야가미의 살인은 우리의 생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히무로 시라베: 토키와 아유키의 주장은 대부분 옳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도 물론 조명해야겠지.
나는 확실하지 않은 화법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원활한 재판을 위해서는 시험해 볼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토키와 아유키의 주장에 흠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부풀어 오른 듯한 그의 에고에 동전을 긁어대는 꼴이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덮어둬도 될 것 같아.
카나리 케이토: 서… 석연치 않은 구석?! 그게 뭔데? 뭐야. 그게!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나한테 묻지 말고 토키와의 말을 한 번 잘 생각해 봐. 그러니까… 아. 됐다.
카나리 케이토: 뭐냐고. 말하지 못해? 이 재판에는 네 목숨도 달려 있다고!
후루미나미 나몬: 이렇게 간단한 걸 간과하다니. 역시 아직 멀었다니까. 아직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나 봐? 아하하하!
토키와 아유키의 낯빛에는 달갑지 않다는 기색이 가득 찼다. 그런 취급을 감내할 사람은 드물었다. 결국 토키와 아유키는 물었다. 물을 수밖에 없었다.
토키와 아유키: 내가 뭘 간과했는데. 히무로? 말해 봐.
히무로 시라베: 나는 네가 무언가를 간과했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을 논하는 편이 낫다.
토키와 아유키: 오리발 내밀긴… 네가 그딴 식으로 사람을 긁어댈 줄은 몰랐어. 히무로. 너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너도 저열하다 이건가?
히무로 시라베: 진정하지. 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에 대해 논해야 하지 않나? 야가미 토가의 살인은 뒷전에 놓을만치 중요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를 원하는가?
토키와 아유키: 내가 빼먹은 게 있다잖아. 내 의견이 틀렸을 수도 있지. 그러니 너희 의견을 수용하려는 거야. 하기와라. 내가 뭘 알아야 하지?
굴이 조금씩 조금씩 더 허물어졌다. 나는 무언의 뜻을 그에게 전했다. 어울려 다오. 하기와라 우시오. 너는 블레인의 복장도 터뜨리지 않았는가.
하기와라 우시오: 몰라도 된다니까. 진짜야. 리더 말 따라야지. 내 말이 맞지 다들? 독살을 당했다는 게 분명해졌는데 여기서 그만 캐고 다른 걸 처음부터 시작하자잖아.
확실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토키와 아유키의 발언에서 허점을 짚지도 않았다. 그저 자존심만을 건드려댔다. 이성의 줄다리기가 결투에서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심리전은 학급재판에서도 큰 축을 담당하며 사람이 줄어 서로를 잘 관찰할 수 있게 된 세 번째 학급재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 알아내는 데에 깨끗함과 더러움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카나리 케이토: 그럼 적당히 하고 칸나즈키를 누가 죽였는지 얘기하자고!
하기와라 우시오: 하지만 역시…
하기와라 우시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바라 쿠리스: 도대체 뭐길래 그러는 거야? 점점 신경 쓰이게 만드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야. 아니야. 됐어. 자. 칸나즈키의 목은 무력화된 제츠보의 옆에서 발견되었지?
토키와 아유키: …그래. 맞아. 그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하기와라 우시오: 아.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
토키와 아유키: 사람 바보취급 하는 것도 적당히 하지 못해? 하기와라.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토키와 아유키가 이윽고 눈을 부릅떴다. 시선은 하기와라 우시오를 향했다. 그야 광대에게 비웃음을 사면 기분이 좋지는 않으리라. 하기와라 우시오는 자신을 향한 정색에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별 건 아니고.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수상하단 말이야.
토키와 아유키: 제대로 말해. 얼버부릴 생각 말고.
후루미나미 나몬: 슬슬 긴장감이 떨어지는데. 그냥 말해. 말아?
토키와 아유키: 입 닥쳐. 후루미나미!
카나리 케이토: 악! 깜짝아!
토키와 아유키는 물이 단숨에 끓듯이 소리를 질렀다.
후루미나미 나몬: 어이쿠. 알겠어. 알겠다고. 미안해. 그러면 하기와라한테 맡겨야지 별 수가 있나.
하기와라 우시오: 어흠. 어흠.
하기와라 우시오는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내가 느낀 게 틀릴 수도 있다는 거만 알아 둬. 토키와가 야가미 죽은 직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는 사람?
이바라 쿠리스: 야가미에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엄청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랬어. 내가 기억해. 분명 닿자마자 위독해진다 말했다고. 내가 토키와라면 에피펜이 없다며 어? 내가 잘못 들은갑다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끊임없이 전달하려 했을 거야.
토키와 아유키: 나는 현실적으로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고려한 거야. 내 의견을 관철했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그렇겠지. 그런데 그거 알아? 현실적으로 야가미를 독살하기에는 네가 제일이야. 너는 야가미랑 교대하며 후루미나미를 감시했잖아. 언제 뭘 하고 보통 어디에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테고. 게다가 야가미는 후루미나미를 감시하기 위해 특정 시간에는 반드시 자기 숙소를 비우는데. 토키와는 이 탑에서 남의 숙소나 전용실에 침입할 수 있는 두 명 중 하나지.
제츠보: 하기와라. 그러니까… 갑자기 칸나즈키의 살인의 배후를 찾자고 하는 것도. 자신의 살인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그건 너무 간 것 같은데.
하기와라 우시오: 사실상 토키와가 견과류 알레르기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건 확실해. 대체 왜 그랬느냐가 미지수라 그렇지.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아직 야가미가 토키와에게 거짓 증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아까 이바라가 말한 건 그냥 토키와에게 형편 좋은 이야기일 뿐이야. 말 그대로 두둔해 준 거지 정말 그렇게 여긴 게 아니라고.
토키와 아유키: 나는 야가미를 죽이지 않았어. 하기와라.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놀리지 마. 더 웃기고 없어 보이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야가미한테 인공호흡을 왜 주저했는지부터 설명해 봐.
하기와라가 언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인용문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나… 남자 입술에 하는 게… 좀…"
토키와 아유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하기와라 우시오: 너. 야가미가 독을 먹고 죽은 걸 아니까 인공호흡을 안 하려 든 거지? 혹시 그게 네 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그는 다시금 언총을 쏘았다.
"후. 후루미나미?! 무슨…"
하기와라 우시오: 분명 독을 먹여서 죽였는데 후루미나미는 거리낌 없이 입술을 겹치다니 당황할 만 하지. 만약 후루미나미가 그 자리에서 죽으면 이제 쌓아 올리기 시작한 알레르기 이론은 물거품이 되니까. 그런데 후루미나미는 입만 댔지 점막 접촉은 안 했어. 그래서 안 죽은 거고.
토키와 아유키는 작게 입술을 짓씹었다.
토키와 아유키: 내가 인공호흡을 거부한 건 정말 남자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성애자야. 나 또래의 남자 고등학생 중 남자와 입을 맞추고 싶은 사람 따위는 없어. 나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토키와 아유키: 견과류 알레르기라는 화두를 잘못 꺼냈다가 이렇게 범인 몰이를 당하는 건. 조금 억울한데? 다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지? 내가 그렇게도 신용이 없었나?
그는 일련의 학급재판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시키려 했다.
히무로 시라베: 너는 화두를 잘못 꺼낸 게 아니라 거짓말을 신빙성 있게 하지 못한 것뿐이다. 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안다. 그리고 네가 우리를 속여 무언가 목적을 이루고자 했음을 다른 이들이 아는 이상. 너에게 지워진 혐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히무로 시라베: 너는 야가미 토가를 면밀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고, 야가미 토가의 숙소에 침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가 거짓 진술로 재판을 흐트러뜨렸으니. 너보다 더한 후보가 있기는 한가?
토키와 아유키: 왜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이 있잖아.
나는 대꾸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기와라 우시오: 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
토키와 아유키: 왜 내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기와라 우시오: 그야 후루미나미는 계속 방에 갇혀 있었다고 네가 말했으니까!
토키와 아유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도 같아. 후루미나미 나몬이잖아. 별 재주를 다 가지고 있어. 나는 분명 문을 따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후루미나미보다는 숙련도가 낮아. 또 후루미나미는 그 스트리크닌이라는 독을 가지고 있을 법한 인물이기도 하잖아.
이바라 쿠리스: 토키와… 그건 말도 안 되잖아. 야가미의 숙소가 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때는 야가미가 후루미나미를 감시하러 올 때밖에 없어. 네가 후루미나미를 감시할 때나 누구도 감시하지 않을 때 야가미가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후루미나미가 자신의 포박을 풀 수 있었다고 해도 야가미의 숙소에 침입하는 도박은 감행할 수 없어.
이바라 쿠리스의 정연한 추리에 토키와 아유키는 다시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토키와 아유키: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겠지… 나는 아니야! 나는 살인자 따위가 아니라고.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 왔는데!
그가 변명을 하면 할수록 그를 향한 의심은 커져만 갔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칸나즈키 시노부를 죽인 것을 아는 이상. 학급재판은 사실상 끝나 있었다. 토키와 아유키가 야가미 토가를 독살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살인에 꼭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은 법이었다.
그대로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말고 범인이 될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일곱 명이니 살인자 후보가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였다. 카이다 쿠로하가 재판에 참여해서 덤터기를 뒤집어써 주면 모를까. 거짓말을 했고 야가미 토가와 가까웠으니 그것으로 추리는 끝나 버렸다.
토키와 아유키: 나는 아니야… 이건 누군가가 정교하게 씌운 누명일 뿐이야. 다들 정신 차려! 후루미나미 나몬. 저 여자가 눈 똑바로 뜨고 있어! 나는 아니야…!
하지만 나는 왜인지 만족할 수가 없었다. 토키와 아유키의 말마따나 후루미나미 나몬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그녀가 상정한 그대로인 양. 아무것도 걱정할 거리가 없다는 양 그녀는 웃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한가운데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화가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너무 쉬웠다. 내가 간과한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했다. 살인을 푸는 게 이렇게 쉬울 수는 없으니까.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가. 좋든 싫든 나는 그것을 파헤쳐야만 했다. 악연을 끊기 위하여.
히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이번 재판에서 취조와 결투는 몇 번이나 가능하지?
하기와라 우시오의 기억:
제츠보의 실종 - 제츠보는 며칠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칸나즈키의 은둔 - 수호령을 회복한 이후에도 칸나즈키는 카나리의 식사 배급을 타 먹었다고 한다.
칸나즈키의 식사 배급 - 칸나즈키의 식사 배급은 카나리와의 조율을 통해. 서로만 아는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푹 퍼진 제츠보 - 캐롤의 영안로 속에서 제츠보는 뻗어 있었다.
목이 잘린 칸나즈키 - 칸나즈키의 머리는 잘린 채로 캐롤의 영안로 속에서 발견되었다.
야가미의 증언 - 야가미는 칸나즈키의 몸의 행방을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공백의 2시간 - 야가미와 토키와는 서로 번갈아가며 후루미나미를 감시했으나, 두 사람도 감시하지 않은 2시간이 존재한다.
이바라의 참여를 막은 토키와 - 토키와는 이바라가 감시역을 하겠다는데도 말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겠지만…
후루미나미와 야가미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 -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었다.
후루미나미의 증언 - 야가미가 자신을 줄곧 감시했다고 한다.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다.
탑의 표준시와 다이얼로그 - 영안로에 들어갔다 나오면 다이얼로그의 시간 표시 부분에 오류가 생긴다. 이걸 통해 누가 영안로에 들어갔고 안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후루미나미의 방에 접근할 수 있었던 두 명 - 야가미와 토키와만이 서로 열쇠를 공유하며 후루미나미의 방에 드나들 수 있었다.
시체 발견 후 다른 사람과 접촉하기까지의 시간 - 야가미는 오후 11시 20분에 시체를 발견해 놓고 질질 끌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제츠보를 억류한 플라잉 로봇 - 제츠보는 힘만으로는 억누를 수 없는 존재인 만큼. 플라잉 로봇을 이용했을 정황이 크다.
피로 흠뻑 젖은 옷 - 칸나즈키의 옷은 전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야가미의 발작 - 야가미는 커피를 마시더니 느닷없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죽었다.
굳어버린 야가미의 등과 다리 - 야가미의 목이 뒤로 꺾이고 등이 굽고 다리는 쭉 펴졌다.
야가미의 주장 - 야가미는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토키와의 증언 - 토키와는 야가미의 죽음이 견과류 알레르기 때문이라 말했다.
칸나즈키의 척추 옆 자상 - 척추 옆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왜 목을 안 찌르고 그렇게 밑을 찔렀을까?
히무로 시라베의 기억: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의 삽입 흔적 - 몸 부분보다 머리 부분의 목구멍 지름이 더 넓었다. 머리 쪽에 무언가가 삽입되었고, 목까지 전부 도려낸 것을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야가미 토가의 근육 강직 - 야가미의 몸은 기이하게 보일만치 굳었다.
독 없는 겨자 물 - 독이든 견과류든, 그것이 들어가 있었던 건 커피 쪽이다.
신장의 자상 - 검정은 칸나즈키 시노부의 신장을 노려 찔렀다. 누가 그럴 수 있었을까?
피웅덩이의 온도 - 칸나즈키 시노부의 시체 밑에 고인 피는 이상하리만치 온도가 낮았고 기이한 혈액 덩어리가 떠 있었다.
피가 묻은 캐리어 - 야가미 토가의 침대 밑에 놓여 있었다. 그것으로 칸나즈키 시노부를 옮겼는가?
에피펜의 부재 - 야가미 토가가 정말 견과류 알레르기라면 에피펜 없이 살 수 없었을 텐데.
고무호스 -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 내에 있었다. 목구멍에 삽입된 물건이 그것이겠지.
방치된 도시락 통 - 칸나즈키 시노부는 식당에 가는 대신 카나리 케이토에게서 식사를 제공받았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수호령 - 후루미나미 나몬은 칸나즈키 시노부의 신통력 발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수혈팩 - 누군가가 양호실에서 수혈팩을 가져갔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자백 - 후루미나미 나몬은 본인이 검정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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