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와라 우시오: 귀신이다… 이딴 헛소리를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오후 7시 40분이 맞아?
카나리 케이토: 내가 똑똑히 기억해. 그 시간이 맞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해 뒀어.
토키와 아유키: 거짓말이야.
토키와 아유키는 카나리 케이토에게 언탄을 쏘았다. 카나리 케이토는 아주 작은 조약돌은 맞은 듯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카나리 케이토: 거짓말 아니야.
토키와 아유키: 네 다이얼로그의 시간 표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그 당시의 시간을 알았다는 거야? 하기와라가 보여줬어. 영안로에 다녀온 사람은 안과 밖의 시차 탓에 다이얼로그의 기능이 고장 나는 것 같더군.
토키와 아유키는 또 자신의 과녁에 또한 언탄을 쏘았다. 탑의 표준시.
토키와 아유키: 킬로그에 표시되는 시간은 탑을 기준으로 해. 그런데 카나리의 다이얼로그는 시간을 보여주지 못하고. 손목시계는 카나리 본인 기준인지라 탑의 오후 7시 40분인지 알 수 없으며. 회중시계는 자기 멋대로 돌아가지. 어떻게 시간을 그렇게 정확히 알 수 있겠어?
카나리 케이토는 여전히 손을 조금씩 떨며 토키와 아유키가 쏜 글자에 언탄을 쏘았다.
카나리 케이토: 아…
언탄이 빗나가자. 카나리 케이토는 숨을 몇 번 골랐다. 입으로 후 하고 한숨을 한 번 길게 뱉어낸 뒤에 카나리 케이토는 언탄을 쏘았다. 토키와 아유키의 글자가 부서졌다. 여분의 시계가 새로 떠올랐다.
카나리 케이토: 내 숙소에도 시계를 뒀으니까… 썩어도 시계공이라서 시계 하나에 의존하지는 않아. 그리고 영안로에 들어간 동안 어긋난 손목시계의 간극은 메트로놈과 다른 시계의 교차 비교로 몇 번씩 수정해 왔어. 안 믿긴다면 내 손목시계를 보여줄게. 너희 다이얼로그에 나오는 시간과 똑같을 걸.
카나리 케이토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토키와 아유키: 믿음이 가지 않아. 그 손목 시계의 시각이 탑의 표준시와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네가 시계를 조율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해. 탑에 줄곧 있던 시계를 영안로를 오고 가며 쓴 시계와 교체한 지 누가 알아?
히무로 시라베: 재판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쟁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 알아내야 하는 것은 누가 카나리 케이토와 오후 7시 40분에 통화를 나누었냐이다.
토키와 아유키: 나는 그 증언 자체가 거짓된 것임을 밝혀내려 하고 있는 거야! 칸나즈키는 오후 7시에 죽었는데 어떻게 칸나즈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거야? 잘못 들은 게 분명해!
카나리 케이토: 분명히 걔 목소리였어!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나나 다른 사람들 목소리와는 달랐어.
토키와 아유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토키와 아유키: 그럼 킬로그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당연히 카나리 쪽의 증언을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들 재판의 흐름을 너무 히무로에게 의지하고 있어. 나중에 히무로가 검정이 되기라도 하면 우리 모두 끝장날 정도로.
하기와라 우시오: 말뽄새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한데… 꼭 틀리기만 한 말은 아니야. 히무로도 물론 자기주장에 상응하는 증거를 내놓아야겠지. 이건 조별과제야. 그것도 프로젝트 엎으려는 한 명을 달고 하는 조별과제.
하기와라 우시오: 조장한테 무임승차 하다가는 조장이 최종 결과물 엎었을 때 다 같이 죽는다고. 그러니까 잠깐. 잠깐만 주제를 돌려도 돼? 어떻게 검정은 오후 7시에 칸나즈키를 죽일 수 있었을지.
하기와라 우시오는 언탄의 방아쇠를 당겼다. 칸나즈키의 척추 옆 자상.
후루미나미 나몬: 이건 이미 신장을 찔렀다고 결론이 나왔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내 말은 어떻게 찔렀냐는 거야. 사망시각은 십중팔구 오후 7시가 맞을 거야. 킬로그가 그렇다 하니까. 하지만 그전에 살해 방법 자체를 알아내자 이거지.
나는 하기와라 우시오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둘 생각이었다. 나만 너무 떠들어댈 순 없을 뿐더러 실제로 살해 수법을 아는 것은 재판의 흐름에 도움이 될 여지가 컸다.
카나리 케이토: 그런데 우리. 모노로그를 믿을 수 있기는 한 거야? 교칙은 살해를 존중한다고 하잖아. 오후 8시나 9시에 죽였는데 킬로그에 다르게 적은 건 아닐까?
제츠보: 살해를 존중한다고 했지 뒤를 다 봐줄 테니 마음 놓고 죽이라는 뜻은 아니야. 모노로그가 살해를 존중하고자 한다면 칸나즈키가 죽은 시간을 일부러 표시하지 않는 식으로 하지,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아.
신장을 뒤에서 찔렀으니 언뜻 기습처럼 보이지만, 칸나즈키가 줄곧 자신의 숙소 안에 있었던 이상 완벽한 기습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다른 이들이 이 사실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토키와 아유키: 내 말이 맞지. 카나리의 주장은 거짓말이야.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카나리는…
하기와라 우시오: 그게 중요해? 중요한 건 왜 검정이 신장을 찔렀느냐야. 어차피 불가능했을 기습을 왜 연출했느냐라고.
토키와 아유키: 그냥 기습이라는 생각은 못 해? 칸나즈키가 아주 잠깐이라도 숙소를 비운 사이에 숨어 들어가는 거야. 그 뒤 칸나즈키가 무방비할 때를 노려서…
카나리 케이토: 걔는 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
토키와 아유키: 그걸 확신할 수 있나? 수호령이 돌아왔는지도 몰랐으면서 칸나즈키에 대해 안다고 할 셈이야?
카나리 케이토는 토키와 아유키의 말을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섣불리 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뱃속에서 살아있는 생선들이 날뛰듯 턱을 덜덜 떨어댔다.
이바라 쿠리스: 카나리 괴롭히지 마! 야가미를 죽인 주제에 아까부터 기세가 등등하긴…
토키와 아유키: 내가 안 죽였다고!
토키와 아유키는 버럭 소리쳤지만 이바라 쿠리스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토키와 아유키를 노려보았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히무로 시라베: 카나리 케이토. 혹시 칸나즈키 시노부와 종종 통화를 나누었나?
카나리 케이토: 뭐. 뭐?
히무로 시라베: 너와 칸나즈키 시노부가 다이얼로그로 통화를 나누었냐고 묻는 것이다. 항상 대면을 한 채로 도시락을 전해 주었는지. 아니면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 앞에 도시락만을 두고 너는 돌아갔는지도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
카나리 케이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카나리 케이토: 안부 전화나 잡담 같은 거 나눴지. 가끔씩. 그리고 도시락은 내가 후다닥 가서 주고 돌아오는 거 반복이었어. 얼굴이 마주친 적은 있지만 매번 그러지는 않았어. 문만 똑똑 두드린 적도 있고…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너 말고 다른 이가 먼저 도시락을 배달하고 문을 똑똑 두드린다면. 이론상 칸나즈키 시노부는 속아서 그 도시락을 먹었을 수 있지 않나?
카나리 케이토: 도시락을 써서 독을 먹였다는 거야? 아니야! 내가 도시락을 전달했을 때는 오후 6시 30분 쯤이었어! 저녁밥은 언제나 그쯤 배달한다고. 10분 뒤에 가져갔으려나 싶어서 칸나즈키의 숙소 앞을 봤더니. 도시락이 사라져 있었단 말이야!
히무로 시라베: 수면제라면 가능하다.
카나리 케이토: 뭐…?
카나리 케이토는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히무로 시라베: 칸나즈키 시노부가 잠든 사이에 검정이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에 침입했고. 카나리 케이토의 뒤늦은 도시락을 검정이 대신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토키와 아유키: 억측도 정도가 있지. 히무로. 이제 우리가 찾아낸 적도 없는 수면제가 범행에 사용되었다고 우길 순 없어. 해명을 위해 그딴 장치가 필요하다면 애초에 그 가설은 틀린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말이 옳았다. 애초에 나는 스트리크닌이 범행에 사용되었을 줄을 알고 있었지만 스트리크닌이 들어있던 병 자체는 찾지 못했다. 정황상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한 수면제는 그 종류도. 어떤 음식에 어떻게 넣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단서를 차례대로 밟아야 하는데 몇몇 증거는 인멸되었다. 징검다리의 중간이 빠졌다. 그럼에도 그곳을 건너기 위해서는 한쪽 발을 적시거나 급류에 떠밀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도와줄게. 히무로! 혹시 다들 이걸 찾나?!
토키와 아유키는 무언가를 번쩍 든 후루미나미 나몬을 쏘아보았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손에는 길쭉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주사액이 들려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Morphine HCL! 모르핀 염산염이라고 합니다! 양호실에서 가져왔지롱!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이 여자가 지금 자신이 칸나즈키 시노부에게 쓴 약물을 자랑하는구나. 그리고 만약 그녀가 6시 30분 전에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에 침입할 수 있었다면. 그 말은 곧 다른 하나의 사실과도 이어졌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게 뭔데.
후루미나미 나몬: 나야 모르지? 하지만 모르핀이라는 이름으로 봤을 때 마취제 역할을 할 것 같아.
토키와 아유키: 결국 후루미나미도 모르는 거잖아. 다들 속지 마! 느닷없이 뭔지 모를 약물을 가져와서는…
후루미나미 나몬: 거짓말이야. 사실 알아. 모르핀 염산염은 이른바… 술에 타서 누구 뻗게 만들 때 쓰는 약물이지. 특이한 점은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이걸 마신 사람은 자기가 필름이 끊긴 줄 안다는 거야. 왜 아냐고는 묻지 마.
검정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존심을 세울 곳으로 학급재판장은 적절하지 않았다.
토키와 아유키: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니까!
제츠보: 저 물건의 진위 여부를 우리가 알 수는 있나?
후루미나미 나몬: 주사기를 꺼내 와서 확인하고 싶은데… 혹시 아무나 마셔 볼 사람? 뭐. 없겠지만.
모노로그: 아무래도 이것은 재판장이 나서야 할 문제 같군.
줄곧 모든 이들을 관망하던 모노로그가 그렇게 말하며 후루미나미 나몬의 앞으로 떠올랐다. 모노로그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손에 있던 모르핀 염산염을 낼름 자신의 입 안으로 삼켰다.
후루미나미 나몬: 아! 안 돼! 나중에 쓰려고 했는데!
이바라 쿠리스: 누… 누구한테? 이거 미친 거 아니야?
모노로그: 생명체에게 사용하고 반응을 보여 주겠다. 그런다면 너희들도 납득할 수 있겠지? 자. 논의를 계속해라.
토키와 아유키: 잠깐! 누구에게 사용하려는 거지? 대답해!
모노로그는 대답하지 않고 사라졌다. 우리는 모노로그가 사라져 버린 부분의 바닥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흠… 나야 상관없어. 저거 정말 모르핀 염산염이거든. 누구한테 쓸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통할 거야. 검정은 저걸 써서 칸나즈키를 잠재운 다음에 침입했겠지.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그냥 네가 검정 아니야? 히무로가 너 벼르고 있는 거 알지? 이거 이거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데… 이 탑에서 다른 사람 문 딸 수 있는 건 너랑 토키와뿐이잖아.
후루미나미 나몬: 그건 아무도 몰라! 카나리에게 칸나즈키 숙소의 여분 열쇠가 있었을지 누가 알아? 게다가 하나 더. 모르핀 도시락을 먹였을 때는 분명 오후 6시 30분 이전일 텐데. 나는 그 시간 동안 토키와에게 감시받고 있었어. 아. 이렇게 튼튼한 알리바이라니!
하지만 오후 6시 30분 이전에 후루미나미 나몬은 칸나즈키 시노부를 마취시키고. 오후 7시에 살해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토키와 아유키는 후루미나미 나몬을 감시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이바라 쿠리스: 저… 정말이네. 분명 후루미나미가 혼자 남는 시간은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야. 포박을 혼자 풀 수 있었는지의 문제가 아니게 됐어. 토키와가 감시하는 이상 후루미나미는 범행을 할 수 없잖아.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검정이며. 토키와 아유키는 그걸 알고도 모종의 이유 탓에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이 가능해지는 어떤 논리적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그래봤자 얻는 이득이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제츠보: 하… 그런데 왜 이렇게 수상하지? 왜 어떻게든 해냈을 것 같을까?
후루미나미 나몬: 제츠보. 아무래도 영안로 속에서 너무 약해진 채 돌아온 것 같은데? 이건 알.리.바.이. 라고요.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야.
히무로 시라베: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토키와 아유키. 정말 너는 후루미나미 나몬을 줄곧 감시하고 있었나?
토키와 아유키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당시의 상황을 복기하고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는 주저했고, 나는 부자연스러운 공백을 느꼈다.
토키와 아유키: …줄곧 감시해 왔지. 물론.
이바라 쿠리스: 거짓말 같은데.
토키와 아유키: 거짓말 아니라고.
하기와라 우시오: 아무리 봐도 구라잖아. 다들 이걸 또 속냐?
토키와 아유키: 입 조심해. 하기와라.
토키와 아유키가 윽박을 지르자 하기와라 우시오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이바라 쿠리스: 입 조심해야 하는 건 토키와 너야. 이미 견과류 알레르기 같은 소리로 우리를 속였잖아. 왜 그렇게 뻔뻔해?
토키와 아유키는 이바라 쿠리스를 노려보았다. 결국 그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떤 의도를 담고 있든 간에 그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의도대로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히무로 시라베: 이것으로 검정이 신장을 찌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언뜻 기습처럼 보이게 만들어 모르핀 염산염을 통해 아무런 방해 없이 숙소에 진입했을 가능성에서부터 눈을 돌리려 했던 것이다.
이바라 쿠리스: 그것까진 이해가 가… 하지만 왜 칸나즈키의 목을 자를 필요까지 있었을까? 그것도 그걸 제츠보의 옆에 가져다 놓기까지 했잖아. 대체 왜?
하기와라 우시오: 일단 카나리의 동선이나 언제 제츠보를 무력화시키려 올지 알아 둔다면, 카나리에게 혐의를 덮어씌울 수 있어. 카나리가 패닉에 빠져서 막 도망치는 모습을 누가 발견했어 봐. 재판에서 수상하다며 추궁당하기 딱 좋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또 우리 사기를 좀 꺾어놓을 수도 있지. 미친. 이걸 왜 한 거지? 어떻게 한 거지? 내가 느꼈던 그대로야. 어떻게 저딴 짓을 하나 싶고. 막 두려워진다고.
히무로 시라베: 검정에게 과시적인 성향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참수에도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특히 검정이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을 전부 잘라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일은 또한 카나리 케이토의 증언이 진짜일 것이라는 근거와도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의 삽입 흔적, 고무호스.
제츠보: 고무호스? 삽입 흔적이라니?
히무로 시라베: 너희들이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잘린 목의 식도와 몸 쪽의 식도의 지름에는 차이가 있었다. 잘린 목 쪽이 더 넓었고 충혈된 흔적도 보였다. 이것 또한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너희들에게도…
토키와 아유키: 잠깐. 히무로. 그. 그걸 찍어 뒀다고?
토키와 아유키가 경악하는 것을 듣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느냐는 물음을 대신한 것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대부분의 이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하고 있었다. 납득한 얼굴의 제츠보마저 최초에는 놀랐다는 듯이 눈의 크기를 키웠고, 후루미나미 나몬은 만족했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바라 쿠리스: 그걸 왜 찍어 뒀어?! 끔찍하잖아. 너 제정신이야?!
히무로 시라베: 중요한 증거인데 기록을 남기지 말란 말인가? 보기 편하게끔 목과 몸을 나란히 두고 찍었다. 카나리 케이토. 사진을 잘 살펴봐라.
내가 카나리 케이토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하기와라 우시오는 비명을 질러댔다.
하기와라 우시오: 크아아악! 크아아아악! 파딱! 빨리 일해! 고어짤 테러 올라오잖아!
토키와 아유키: 그. 그게 뭐길래 나를 보면서 말하는 거야?!
카나리 케이토: 미… 미친놈! 그걸 왜 나한테 보여줘!
후루미나미 나몬: 맞아. 왜 나는 스킵해? 왜 너희들만 좋은 거 봐!
이바라 쿠리스: 히무로. 잠깐! 지금 카나리에게 그걸 보여주지 마! 안 그래도 지금…
나는 사진을 그의 얼굴로 가져다 대었다. 그는 사진의 윤곽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입에서는 여리디 여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히무로 시라베: 왜 그러지?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한 건가?
이바라 쿠리스: 카나리는 학급재판 직전까지 나랑 커피 용액을 조사했어. 야가미의 시체는 봤지만… 칸나즈키의 시체까지는 보지 못한 것 같아.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봐야 한다.
이바라 쿠리스: 하지만 지금 그러기에는 카나리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어!
히무로 시라베: 왜 감당할 수 없다는 거지?
카나리 케이토와 그나마 가까웠던 인원이 칸나즈키 시노부뿐이었다. 그리고 제츠보를 무력화시킴으로써 그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죽음에 한 축을 담당했다. 그 둘은 별개의 사실이었다. 그가 칸나즈키 시노부의 시신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의 유약함 때문이지 별개의 이유는 없었다.
카나리 케이토: 사… 사진 치워. 치우라고!
히무로 시라베: 치울 수는 없다. 네가 직접 보아야 한다.
언제까지 그가 학급재판에서 배제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반응이 놀라웠다. 이 정도의 일이란 말인가? 칸나즈키 시노부의 시체를 보지 못할만치 그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칸나즈키 시노부와 카나리 케이토가 그나마 협력 관계를 갖춘 것은 고작 삼일 뿐이었다. 그런데 카나리 케이토는 마치 자신의 오랜 친구가 죽은 것처럼 굴고 있었다. 감수성이 과다한 것인지 영안로에서 내가 모르는 체험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카나리 케이토의 얼굴에서 사진을 치우지 않자. 이윽고 하기와라 우시오가 나섰다.
하기와라 우시오: 거기까지. 히무로. 이건 내가 가져가야겠어.
어느새 나의 곁으로 다가온 하기와라 우시오가 내 손에서 사진을 낚아채갔다. 그는 드물게도 웃지 않고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네 아이디어에는 찬성해. 그런데 상황이 좀 그렇네. 나 같은 경우에는… 카나리에게 시간을 주는 쪽을 더 지지하겠어. 받아들이라고 들이댔다간 카나리가 엇나가버리고 말걸. 내가 알아.
나는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목구멍의 지름에 대한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카나리 케이토가 아닌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그는 트라우마에 다루는 데에 있어 나보다 옳은 답을 낼 확률이 높았다.
히무로 시라베: 모든 사람들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는다고 정신을 차리진 않겠지.
카나리 케이토: 뭣?
하기와라 우시오와 나는 그 점에 있어 동의했다. 그는 내가 건넨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자신의 지정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기와라 우시오: 윽… 진짜 목 쪽이 더 넓잖아… 왜 이러는 거지?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히무로 시라베: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을 자른다면 목의 중간을 자르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르다. 어깨에 가까운 이 부위를 자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더 힘들지. 검정은 의도적으로 목을 온전히 남겨야 했다. 그리고 이 사진을 함께 봐라.
나는 피가 묻은 고무호스의 사진을 그들에게 제시했다.
히무로 시라베: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에 떨어져 있었다. 길이는 대략 7cm이다.
제츠보: 고무호스가 칸나즈키의 목에 들어갔다고…?
히무로 시라베: 호스의 내부에 있는 흰 고무는 혈액으로 인해 오렌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정황 전부가 칸나즈키 시노부의 잘린 목에 고무호스가 삽입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츠보: 검정이 칸나즈키의 목에 고무호스를 넣었다… 게다가 목의 전부가 필요했다면… 호스가 목에 들어간다…
이바라 쿠리스: 그렇게 생각하며 이 호스를 보니 기도관이 떠오르는데?
토키와 아유키: 무슨 관?
이바라 쿠리스: 기도관 말이야. 환자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때 목구멍에 넣어서 숨을 쉴 수 있게 도와주는 거.
이바라 쿠리스가 좋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히무로 시라베: 나는 이 고무호스가 말 그대로 기도관처럼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바라 쿠리스: 칸나즈키에게 호흡곤란이 왔다… 는 아니겠지?
히무로 시라베: 물론 아니다. 우선 칸나즈키 시노부는 오후 7시에 죽은 것이 확실하다. 카나리 케이토. 네가 7시 40분에 받은 전화는 검정의 것이다.
카나리 케이토: 내가 말했잖아. 의심의 여지가 없이 그건 칸나즈키 목소리였다니까?
히무로 시라베: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소리로 검정이 말한 것이다.
고무호스와 목을 완전히 남긴 참수. 기도관.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소리. 죽은 사람으로부터 걸려온 통화. 이 단어들을 전부 연결한다면 한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바라 쿠리스. 제츠보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지금. 검정이 칸나즈키 머리를 피리 불듯이 썼다는 거야?
히무로 시라베: 악기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검정에게는 음을 조절할 수단이 없었을 테니.
그들의 표정에 역겨움이 떠올랐다.
이바라 쿠리스: 저기… 아. 아니지?
제츠보: 검정의 입장에서도 절단면에 입을 대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히무로 시라베: 생리적 거부감이나 위생상의 문제를 차치하고도, 피가 흐르는 절단면에 공기를 불어넣을 경우 카나리 케이토가 수상한 정황을 느낄 수도 있다. 피가 몸에 튀어 위장이 어려워지기도 하겠지. 또 기도는 돌출된 부분이 없이 목 안에 들어 있으니. 호흡이 밖으로 샐 수밖에 없다.
이바라 쿠리스: 그. 그만! 그만 묘사해!
카나리 케이토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즈음에는 토키와 아유키마저 욕지기를 냈다.
토키와 아유키: 욱… 더러워…
카나리 케이토: 무… 무슨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목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뭘 할 수 있는데. 애초에… 왜 검정이 그딴 일을 했다고 정해 놓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카나리. 칸나즈키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 칸나즈키가 뭐라 했다고?
카나리 케이토: …그냥 소리만 냈어. 웅얼거리는 소리.
하기와라 우시오: 재현해 봐.
토키와 아유키: 뭐?
하기와라 우시오: 아 미친. 진짜 미친 소리 같기는 한데 카나리. 재현해 봐. 어떤 소리였는지 내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카나리 케이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왜 그 정보가 필요한지도 몰랐다. 검정이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을 써서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몰랐다. 하기와라 우시오의 비유. 피리는 곧 공기를 불어넣어 음을 연주한다. 기도관은 공기를 불어넣어 호흡을 돕는다. 그리고 고무호스가.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 안에 들어갔다.
무엇을 위해서?
공기를 효과적으로 불어넣기 위해서다.
왜 온전한 목이 필요했지?
온전한 목이 아니면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는 소리라니?
카나리 케이토에게 통화를 거는 것은 전화를 받은 시점까지 칸나즈키 시노부가 살아 있었다고 그를 기만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특정한 문장일 필요는 없다. 의미가 없는 말일수록 좋다. 듣는 사람이 의미를 부여할 테니까.
그러나 목소리를 내게 만들기 위해서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성대를 진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성대를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지?
검정이 죽은 사람의 폐 역할을 대신해 준다면 가능하다.
카나리 케이토: 칸나즈키는 이런 소리를 냈어.
카나리 케이토: 어어어어어어…… 이런 소리를.
그 음성은 아무런 입술과 혀의 움직임 없이 성대만을 진동시킬 때 내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히무로 시라베: 잘 들어라. 카나리 케이토.
잔혹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카나리 케이토: 뭐. 뭔데?
히무로 시라베: 검정은 칸나즈키 시노부의 목을 성대까지 온전히 잘라낸 뒤에, 고무호스를 목에 끼운 뒤 숨을 불어넣어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발생시켰다. 네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지만, 칸나즈키 시노부는 분명 오후 7시에 죽었다. 단지 검정이 너를 혼동시키려 한 것이다.
카나리 케이토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작은 목소리를 냈다. 그의 입은 자신이 열려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고, 목은 자신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그는 아무런 입술과 혀의 움직임 없이 멍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카나리 케이토: 아… 아…?
하기와라 우시오: 어후. 썅…
카나리 케이토: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잠깐… 목소리를 발생시켰다는 게…
히무로 시라베: 칸나즈키 시노부의 성대에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냈다는 뜻이다. 그런다면 칸나즈키 시노부가 죽은 뒤에도 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카나리 케이토: ……으으으.
대부분의 이들은 불쾌함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불쾌함을 넘어선 이해 불가의 영역. 그런 일이 가능하느냐는 듯이 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고무호스와 목의 지름 차이를 보고 이 가능성을 떠올렸을 때 후루미나미 나몬이 검정이라 생각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장난 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생각의 스펙트럼 자체에서 차이가 난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에서는 과시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었다. '나만이 사람의 목을 잘라서 트롬본처럼 불어댈 수 있다. 이게 내가 한 짓이다. 생각도 못 했지? 보아라'. 나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도 있었다.
제츠보: …그러니까. 검정은 호스에 입을 댄 다음에 칸나즈키의 목을 들고 다이얼로그를 향해서 공기를 불어넣었다는 거지. 고작 교란을 위해서.
이바라 쿠리스: 도무지 용서가 안 돼… 어떻게 그런 짓을…
후루미나미 나몬: 미… 미쳤어. 미쳤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짓을!
후루미나미 나몬은 호들갑을 피웠다. 하기와라 우시오는 그런 그녀를 쏘아보았다. 재판장 안에서 그녀가 가증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히무로 말이 맞는 것 같다. 검정은 아무리 봐도 후루미나미야. 후루미나미 나몬 말고 누가 이딴 생각을 할 수 있었겠어? 이건 태생 싸이코의 짓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나한테는 알리바이가 있다니까? 왜 이렇게 나를 억지로 괴롭히는 거야. 다들!
이바라 쿠리스: 그건 토키와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거잖아. 너희. 공범 아니야?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토키와가 감시했다는 시간에 후루미나미는 사실 칸나즈키의 숙소에 침입해 있었고.
이바라 쿠리스의 지적에 토키와 아유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토키와 아유키: 이 살인 게임에 공범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는 거 너희도 알 텐데. 나는 분명 말했어. 후루미나미 나몬은 분명히 자신의 숙소에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어? 검정이 승리한다고 해서 내가 같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토키와 아유키는 다시금 말실수를 했다. 그는 '내가 같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 하였다. '공범이 같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가 아닌. 자신을 공범의 위치에 대입했다. 사소했지만 그것은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진술의 차이였다.
토키와 아유키: 카나리가 검정이야. 그 마취용 약물. 몰폰 염소염은 카나리도 넣을 수 있었잖아. 그냥 본인이 칸나즈키를 죽인 다음 도시락을 하나 더 시키면 감쪽같아지지. 안 그래?
모르핀 염산염이다.
히무로 시라베: 여기에 모인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미 본인의 살인을 숨기려 몇 번씩이나 위증을 했으면서. 후루미나미 나몬의 알리바이가 입증될 거라고 생각하나?
토키와 아유키: 그건 별개의 일이야.
그 말을 통해 토키와 아유키는 자신이 살인을 했음을 은연중에 입증했다.
토키와 아유키: 내가 후루미나미를 감싸서 얻을 것이 없는데 다들 왜 그토록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아무리 나라도 이제는 불쾌해지는 걸. 내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카나리가 검정인 거야. 다들 알아들어?
토키와 아유키는 웃었다. 그의 증언을 무시하고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투표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이들을 납득시키고 아주 작은 변수마저 차단하기 위해서는 결국 추론의 과정이 필요했다.
토키와 아유키도 아무런 생각 없이 후루미나미 나몬을 비호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분명 둘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뜻이고, 일부분이나마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카나리 케이토: …나는 검정이 아니야. 나는 칸나즈키를 죽이지 않았어.
토키와 아유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카나리 케이토: 장난치지 마… 이건 사람 목숨이야. 장난칠 거리가 아니라고. 뭐가 웃기길래 웃는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글쎄. 누구의 목숨이냐에 따라 장난칠 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보다. 결국 검정은 고작 카나리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 거야?
제츠보: 분명 이상해. 신장을 찌른 것은 모르핀 염산염을 써서 피해자를 무력화시켰음을 숨기기 위해서잖아. 목을 자른 이유는 카나리가 그것을 발견하게 해서 혐의를 씌우기 위해… 그리고 바람을 불어넣어서 사망 시각을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서?
제츠보: 야가미의 욕조에 시체를 둔 것도 야가미에게 혐의를 씌우기 위함이었잖아. 한 살인의 화살을 두 명에게 넘기겠다고? 허술해. 너무 허술해… 무언가를 꾸몄다기에는 너무 쉽게 풀려.
결국 목을 자른 끝에 검정이 얻은 것은 카나리 케이토의 증언과 다른 이들의 것이 맞아떨어지지 않음, 그 정도뿐이었다. 그 점이 이 잔인한 살인이 그저 잔인함을 위해 잔인했을 가능성을 더 키웠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살인. 그리고 뻔히 보이는 결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과정 정도였다. 나는 더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 죄수의 딜레마를 써야겠다.
하기와라 우시오는 그 말을 듣고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쿵쿵 두드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알겠어. 맡겨만 둬… 그런데 그게 뭔데?
히무로 시라베: 압박이다. 모노로그! 돌아와라. 취조권을 사용해야겠다!
내가 외치자 탑의 천장에서 '감옥으로 가시오' 카드가 두 장 팔랑이며 떨어졌다. 성의 없는 놈.
한 장은 카나리 케이토가, 그리고 한 장은 이바라 쿠리스가 낚아챘다. 두 사람은 그것을 머뭇거리며 손에 쥐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이바라 쿠리스: 또 히무로를 보내게. 우리? 왜인지 재판을 할 때마다 히무로가 이 역할을 맡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한데…
히무로 시라베: 그럴 필요 없다. 이것은 그저 효율의 문제이다. 다른 이들보다 내가 취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히무로 얘는 나쁜 놈 잡아서 밥 먹는 사람이란 말이야. 우리한텐 어려운 일도 히무로에겐 케이크나 다름없어. 그래서. 누구누구 취조할 거야? 토키와랑 후루미나미 둘이겠지?
토키와 아유키: 하. 이제 내 의견을 듣지도 않나?
후루미나미 나몬: 맞아! 우리 의견도 좀 들어 달라고! 안 들어줄 거면 나랑 히무로가 먼저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를…
히무로 시라베: 아니. 후루미나미 나몬의 취조는 하기와라 우시오가 한다.
나는 하기와라 우시오를 보며 말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뭐라굽쇼?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나몬의 취조는 네가 한다. 하기와라 우시오. 내가 토키와 아유키를 취조하고 나온 다음에 네 것을 시작한다.
나는 고개를 돌려 후루미나미 나몬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를 세었는데도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이게 무슨 짓이야.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말 그대로다. 먼저 내가 토키와 아유키를 취조하고, 그 뒤 하기와라 우시오가 너를 취조한다.
후루미나미 나몬: 네가 이렇게 비열한 수를 쓸 줄은 정말 몰랐어. 히무로. 저열하기까지 해. 무슨 수작인지 다 보인다고.
다른 이들은 나와 후루미나미 나몬 사이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여전히 불쾌하다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저열하게 굴고 있었다. 하지만 눈높이에 맞춰 대응할 뿐이었기에 내게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을 텐데.
후루미나미 나몬: 큭… 이런 짓을 하다니… 당신. 정말 최저의 남자야.
후루미나미 나몬은 수치스럽다는 듯이 이를 갈기까지 했다. 웃기는 짓이었다.
카나리 케이토: 잠깐. 누가 그렇게 정했어? 내가 하게 해 줘. 칸나즈키의 죽음은 내가 밝혀낼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쟤 시켜! 나 솔직히 후루미나미 얘 껄끄럽단 말이야. 10분 동안 같이 있으라고? 벌써 두렵다 야!
이바라 쿠리스: 히무로 본인이 하기 싫다면 다른 사람한테 시키는 편이 낫지 않아…? 카나리나, 여의치 않으면 나라도 할게.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가 아닌 다른 이가 나서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니다. 다들 이해가 된 건가?
후루미나미 나몬은 헛웃음을 지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래. 히무로. 이해가 됐어. 잘 다녀와. 네 뜻대로 해줄 테니.
사랑에 빠진 여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것은 나의 창문. 나는 방금
잠에서 살포시 깨어났어요.
두둥실 떠도는 듯했어요.
나의 인생은 어디까지 미치고,
밤은 어디서 시작되는지요?
나는 생각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아직 나 자신 같다고 ;
수정의 심연처럼 투명하기도
또 어둡기도 하고 말이 없어요.
나는 내 가슴에 별들을
담을 수도 있어요 ; 내 가슴은
그렇게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
내가 사랑하기 시작하여
붙잡아둘지도 모를 그 사람을
나의 가슴은 기꺼이 놓아줍니다.
아무것도 씌어진 적이 없어 낯선 듯
나의 운명은 나를 바라봅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듯 끝없음
아래 놓여 있는 건가요,
초원처럼 향기를 풍기며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소리치며, 또 누군가 그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하는가요,
나는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서
몰락하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말해 봐. 히무로. 탑의 실세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후루미나미 나몬이 네게 무엇을 약속했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자 토키와 아유키는 한껏 적의를 드러냈다.
"이젠 질문에 대답도 안 해? 기만도 정도가 있지… 내가 되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을 너는 거저먹었어. 역시 불공평해. 내 앞길 막으려고 온갖 방해를 하던 사람들이 너의 말은 따르고 있잖아."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토키와 아유키의 넋두리나 들어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내가 할 말을 했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인범이 후루미나미 나몬임은 이미 알고 있다. 네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협력한 것 또한 알고 있지. 충고컨대 그녀는 절대 믿을 만한 인간이 아니다."
"너도 믿을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야. 히무로.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거든. 네 정체를 안다고. 다른 이들 앞에서 말해봤자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야 너는 알겠지. 후루미나미 나몬이 네게 귀띔을 해 주었을 테니."
토키와 아유키는 혀를 쯧 하고 찼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에게는 그런 버릇이 없었다. 혀를 차는 버릇은 모리 레이코에게 있었다. 어쩌면 그가 심리적으로 모리 레이코를 지향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편집증적인 저 태도 또한 모리 레이코에게서 기인했을 공산이 높았다. 다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일정한 가치가 아니라 그 자신이라는 점이 달랐다.
"웃기는 소리. 정말 후루미나미 나몬이 사람을 죽인 줄 알면 왜 나를 취조하는데?"
"그녀가 사람을 왜 죽였는지는 알기 때문이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업적을 세우는 것. 살인을 들키면 죽는다는 족쇄에서 벗어나 그저 죽이는 것.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그녀가 할법한 일이다. 놀랍지도 않지. 하지만 네가 왜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협력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반복에 대해 들었나?"
토키와 아유키의 눈빛이 흔들렸다.
"들었군. 그녀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겠지. 어차피 살인 게임에서 빠져나갈 방도는 없다고. 때문에 가족과의 재회도 없다고 말이다."
"너는… 그걸 알고 있는 거야?"
모든 질문에 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스트리크닌이 양호실에 있다는 사실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서 들었겠지. 양호실에 없던 품목이 추가된다는 것을 깨달은 너는 다른 시설에도 찾아가 보았을 터다. 도서관에 가 보았나? 그곳에서 네가 알지 못하던 사실을 봤나. 혹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서 들은 건가?"
"왜 그걸 알고서도 검정을 잡으려고 하는 거야. 대체 왜…?"
자포자기로 벌인 일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도 구원의 여지가 있었다. 체념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위험인물 취급당하고 멸시받겠지. 야가미 토가보다 못한 대접을 받게 되리라. 하지만 그가 그 모든 과정을 견디고자 한다면, 그에게는 가망이 있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후루미나미 나몬은 곧 죽는다. 진작 다수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탑에 남은 이들이 아주 조금의 변수도 남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상 난관에 봉착할 경우. 우리는 결국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투표하게 된다. 뒷배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지."
토키와 아유키가 칸나즈키 시노부를 살해했을 가능성 또한 있지만, 그에겐 자신의 목숨을 걸 용기가 없다. 진범은 후루미나미 나몬이 분명했다.
검정이 아니고서야 죽을 수 없으니까.
그녀의 끝은 자살이었다.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본인부터 동반자살을 염원한다 말했고, 그녀는 알파걸과 같은 결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재판에서 다른 이들은 패배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이가 유력 용의자가 된다면 후루미나미 나몬은 스스로 범행을 실토할 자였다. 그리고 토키와 아유키는 그런 후루미나미 나몬을 돕고 있었다.
"야가미 토가의 숙소에 있던 피 묻은 캐리어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몸을 옮기기 위해 쓰였겠지? 누구도 바퀴가 끌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보면 탑의 내부에서 이동한 것은 아니다. 즉 창문을 통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칸나즈키 시노부의 숙소의 한 층 아래에는 내 숙소가 있지. 너는 먼저 내 숙소의 문을 따고 들어갔고, 후루미나미 나몬은 내 숙소로 밧줄을 묶은 캐리어를 내려 보냈을 것이다. 공범인 너는 내 숙소에서 캐리어를 수령하고, 자신의 숙소로 가져갔다. 이후에 야가미 토가가 후루미나미 나몬을 감시하러 떠났을 때 그의 숙소에 침입해 욕조에 몸을 던져두었을 것이다. 하는 김에 커피에 스트리크닌을 언제 탈지 생각해 둘 수도 있겠지. 혹시 원두에 미리 타 놓기라도 했나?"
토키와 아유키는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 그런 적이 없어."
"그리고 야가미 토가가 후루미나미 나몬을 감시하기 시작하면, 너는 후루미나미 나몬 대신 칸나즈키 시노부의 머리를 옮길 수도 있다. 1층으로 내려간 뒤 카지노를 경유해 계단을 오른다면 들킬 가능성도 적지. 카나리 케이토가 언제 제츠보를 억류하러 나오는지 예측하고 있다면 대략 오후 11시 이전에만 시행하면 될 일이다. 시간은 초조하지 않고 카나리 케이토를 제외한 누구도 영안로 근처에 오지 않는다. 더 필요한가? 애초에 이 살인은 들키지 않고 넘어갈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더 극적이고 충격적이게끔 설계한 살인이다.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장치이니 허술할 수밖에. 공범이 있는 이상 더 풀 가치조차 없다."
"공범은 있을 수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그것은 보통의 검정이 보통의 생각을 했을 때 한정이다. 사람을 죽여서 밖으로 나가는 게 목적인 이들에게는 공범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나갈 수 없다는 걸 아는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살인은 살인 자체가 목적이다. 승리할 생각이 없으니 공범도 있을 수 있지. 서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거래는 끝난다."
칸나즈키 시노부와 야가미 토가. 둘 중 한 명은 토키와 아유키가 지목한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그는 칸나즈키 시노부에게 괴력이 있는 줄 알았으니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칸나즈키 시노부의 죽음을 바랐을 수 있으며, 재능에 대한 열등감과 살인자를 향한 거부감을 고려하면 야가미 토가 또한 그의 살의를 살 수 있었다. 살인자를 경멸하면서 살인자가 되는 것은 모순이다만.
"윽…"
취조실 안에서는 변명이 없다. 재판장이라면 후루미나미 나몬에게서 지시를 받거나 협력이 필요함을 재확인할 수 있지만, 나와 단둘인 취조실 안에서야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아주 작은 반응 하나가 나에게는 단서가 되었다. 내 예상대로 토키와 아유키는 취조를 견뎌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만치 그가 심리적으로 내몰려있기도 했다.
"후루미나미 나몬과 손을 잡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지 않았나? 그녀는 보다 위에서 떨어지려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다. 함께 걷던 이 또한 끌어내려 들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토키와 아유키. 진실을 말해라."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들며. 내게 눈을 똑바로 떴다.
"너에게 명령받을 생각은 없어. 히무로."
"이건 명령 같은 것이 아니다. 제안이며 설득이다. 내가 그럴 수 있었다면 내게 호소라도 했을 것이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탑을 유린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다. 너까지 그 광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아니. 네가 하는 건 명령이야. 내가 하지 않는 것. 남이 내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명령이야. 나는 따르지 않을 거야. 명령하는 사람은 나니까."
"여전히 리더가 되고 싶은 건가?"
"리더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이미 리더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알잖아."
초고교급 리더. 하지만 그것이 독재자를 의미한 적은 없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옷을 입으려 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고작 그 정도의 권위와 허영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심할 뿐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네게 정보를 제공했으니 아군처럼 보일 지라도 그녀는 아군이 아니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너 따위는 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아마 너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범행 방식. 그러니 목숨 자체를 인질로 잡았으며, 후루미나미 나몬은 네가 얼마나 깊게 살인에 관려했는지. 그러니 네 평판과 정치가의 길을 인질로 잡았겠지. 하지만 그녀는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럴 수 없었다면 애초에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후루미나미에게 있어서 진정한 아군은 없지. 하지만 나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들었어. 내가 이 살인 게임 속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그녀는 내 약점을 잡고 있어. 이 정도면 협력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살인 게임. 가상현실. 반복. 이런 단어들은 현실 감각을 흐리게 만들었다. 못할 짓을 해도 유희의 일부분처럼 여기게 된다. 그것은 모노로그의 의도 중 하나였다. 그것은 포탄 충격이 전투 피로, 작전 수행 도중의 탈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순서로 명칭이 바뀐 것과 유사한 의도를 가졌다.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를 바꾸어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우리가 벌이는 것은 분명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완곡한 살인 따위는 없었다. 그저 누가 탈락하느냐 따위의 순위 놀음이 아닌 상실. 이별. 그리고 죽음을 우리는 다루고 있었다. 토키와 아유키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다고 보았다. 그런 사람은 이미 외도이다.
정녕 이게 그 소년인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능력껏 최선을 다하던. 그 긍지 있던 소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은 그토록 달라질 수가 있었다. 물론 그에게 베푼 것이 없는 내가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었지만, 지금 그가 에고로 가득 찬 풍선과 같음은 사실이었다.
"권력에는 영혼을 팔 가치가 없다."
"나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어. 히무로. 그렇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 만약 값을 내야 했더라도 나는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어. 너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가지고 싶었으니까."
"무엇 말이지?"
"재능. 샤이닝. 모든 것. 다른 사람들이 캐롤 씨와의 터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무언가에 압도되었어. 순간 정신이 연결되며 나는 말이야. 히무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그 힘이 있다면야 무엇이든 할 수 있겠지…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게 샤이닝이지. 재능의 정수.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 말이야."
토키와 아유키는 주먹이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너 같은 사람은 내 심정 따위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당연하다는 듯이 힘을 휘두르는 너희들에게 나는 무슨 사람이었지?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었잖아. 다들 나를 깔보고만 있었잖아."
"그렇다면 지금까지 다른 이들이 네 말에 따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너희들은 내 말에 따른 적이 없어. 모리. 카이다. 후루미나미. 카나리. 전부 제멋대로 굴었어. 너도 마찬가지야. 분명 내가 총을 반납하라고 했는데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았잖아."
"네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지 마라. 다른 이들은 네 조언을 구했다. 너를 믿었다. 네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이 와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사람. 그 사람이 너였다."
"나는 선의를 가졌던 건 가지지 않고서야 내가 있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야. 진작 나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나는 얕보이고 싶지 않았어. 재능이 없는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싫었어. 물론 살인을 막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지,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착하든 나쁘든 살인 게임이 다시 시작되잖아."
이런 자들은 대몰락 시대에 많았다. 꺾여버린 인간들. 지독한 세상이 돌아오지 않을거라 여긴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광기에 동참했다.
"지금까지 마음 썩인 것도,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괴로워했던 것도, 내가 언제 죽을까 떨었던 것도 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잖아. 노력은 바위를 뚫지 못하는 곳이 이 탑이잖아. 어차피 못 나갈 거라면… 내 염원이라도 이루는 편이 낫지 않겠어?"
"리더가 되는 것이 염원인가?"
"그냥 리더가 아니야. 초고교급 리더야.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했기에 붙여진 칭호는 수치나 다름이 없어. 분명 나는 언제나 반푼이었고. 모두 그런 나를 멸시해 왔지. 나는 달라졌어. 누구도 나를 비웃지 못해. 누구도 나를 재능도 역량도 없고 리더긴커녕 쓸모없이 밤이나 새우다가 졸면서 사람 죽게 내버려 두는 반푼이라고 욕할 수 없어!"
토키와 아유키는 테이블을 손으로 쾅 내리쳤다. 그 직후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감쌌다. 아픈가 보지?
누구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는 선한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던 것이다. 좋은 의도만을 가질 뿐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끝에 그는 악해질지언정 진정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화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와의 그와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의 원형은 곧 반면교사가 되었다. 겸손했던 모습은 오만하게. 사려 깊었던 모습은 경솔하게. 그의 내면은 조용히 곪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털어놓을 이 없이 비틀림을 키워가던 토키와 아유키를. 후루미나미 나몬이 놓쳤을 리 만무했다.
"나는 지금이 나아. 히무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는데 정작 내가 할 건 아무것도 없었던. 도우려고 애쓴 보답이 산 채로 몸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던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 내가 타락했다고 말하지 마. 나는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어. 히무로. 살인 게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하는 거야. 나는 누구보다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라고. 아직까지 고상한 체 하는 너희들이야말로 기인이지."
물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법률적인 가치를 차치하고서도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똑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도 할 말이 없음을. 정말 한 마디 불평도 할 자격이 없음을 그가 이해하고 있을까?
후루미나미 나몬은 절망이 으레 하듯이 그것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알고 있던 토키와 아유키는, 살해당했다. 초고교급 리더라는 관념 자체에 매달리고 루프가 만들어내는 무의미성을 이해하자. 그는 콤플렉스를 채우고 싶어 안달이 난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권력을 향한 강박과 열망은 사람을 망쳐 놓는다. 그런 자들은 권력을 위해 다른 것들을 내다 버리다가 권력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에게도 강력해질 권리가 있어. 살아남고 당당하게 살기 충분하리만치의 힘을 휘두르고 싶을 뿐이야. 너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잘못됐어? 지금껏 겪은 수모들. 참아야 했던 열등성과 수치를 만회하고 말 거야.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하지. 내가 너처럼 될 수 있었다면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 로라는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거야. 내가 말했잖아.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남들이 부러워할 재능을 몇 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주제에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하는 너는. 그것마저 가지지 못한 나에 대해서 몰라."
"나는 알 필요가 없다. 네가 그와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경위는 들을 가치가 있었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결국 후루미나미 나몬은 네가 얼마나 살해에 가담했느냐. 언제부터 내통했느냐 따위의 일을 담보로 잡고 있다. 그러니 너는 범행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다. 내가 더 들을 만한 것도 없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선택과 남은 이들의 역량에 달려 있었다. 내 의도대로라면 토키와 아유키가 숨기는 진실은 곧 후루미나미 나몬의 손에 의해 허무하리만치 쉽게 공개될 것이다. 토키와 아유키의 장광설은 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뇌를 겪고 있었음을 내게 시사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살인자의 어떤 비명도 나의 경종을 울리지는 않는다.
그와는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 그가 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그는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정말 그것 말고는 전혀 돌아갈 곳이 없다. 그가 죄를 뉘우치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는 살인자를 향한 비난과 멸시를 견뎌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협상 결렬이다.
"네가 사람을 죽인 이유가 너에게는 중요하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너의 살인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넋두리는 다 했나? 그럼 이제 나가지."
토키와 아유키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렇게 몰인정할 수가 있어. 히무로…?"
카나리 케이토: 이봐. 수확은 있었어?
재판장에 돌아온 내게 카나리 케이토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서 하기와라 우시오의 쪽을 보았다.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 후루미나미 나몬을 취조할 준비가 되었나? 미안하지만 고생해주었으면 한다.
하기와라 우시오: 있잖아. 히무로… 별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나는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을 듣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내 계산만큼이나 후루미나미 나몬이 내게 집착하고 있을까? 그것은 역설적인 기대였다. 내 계산이 맞다면 재판의 흐름은 이루 말할 데 없이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내가 얼마나 소름 끼치는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중의 감정이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후루미나미가 그러는데. 토키와 말은 하나도 믿지 말라던데…? 토키와는 야가미를 독살했고, 자기를 감시한 적이 없대.
토키와 아유키: …뭐?
토키와 아유키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턱이 빠진 사람처럼 그는 눈을 깜빡이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바라 쿠리스: 대체 왜 갑자기 털어놓은 것인지 모르겠어. 아무리 행동이 종잡을 수 없어도 이건 너무 제멋대로 아니야? 대체 왜 저랬대?
내가 기대한 대로였다.
히무로 시라베: …왜냐하면 취조의 기회는 두 번뿐이고, 취조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거부권이 없으며, 내가 토키와 아유키와의 취조에서 눈에 띄는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면 하기와라 우시오가 그녀를 취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차마 내가 할 수 있는 취조를 다른 이가 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쓰이지 않은 취조권은 내가 그녀에게 쓰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소비되어 버리면 그 취조권은 끝장이다. 그녀에게 거부권은 없으니 만약 그녀가 토키와 아유키와의 내통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내가 아닌 누군가와 10분을 부대끼고 있어야 한다.
어차피 죽을 것이 확정된 그녀에게 그 10분은 긴장감을 흐트려뜨리는 일이며 그 자체로 견딜 수 없는 권태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림을 보기에 예쁘게 죽고 싶었다. 재판은 하나의 공연이 되어야 했다. 바보 같은 찰나의 쉬는 시간 따위는 편성표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내놓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내게 이딴 식의 장난을 친 죄는 나중에 톡톡히 받아내겠어. 히무로.
나는 그녀가 정말 그 값을 받아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느꼈지만. 별반 상관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이었다. 결투에서나 갚으라지. 결국 음소거로 끝나는,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결투에서.
토키와 아유키: 너… 너… 이…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라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토키와 아유키는 후루미나미 나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실실 웃을 뿐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리고 토키와.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너도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배신감 느끼는 듯이 그러지 말자고. 나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거든.
토키와 아유키: 이게… 이게 감히 나에게…
후루미나미 나몬: 나를 믿다니. 토키와. 정말 실망이야. 나는 언제 네가 나를 배신할지 기대하고 있었어. 언제 나를 팔아 넘기고 범행을 자백할지 기다렸어. 네가 돌아갈 방법은 그거 하나니까. 그때가 오면 네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했는지를 폭로하려 했지만… 네가 정말 나에게 매달릴 줄 누가 알았겠어. 역시 아직 스스로를 충분히 벗어던지지 못한 모양이지?"
후루미나미 나몬은 일부러 말을 끊었다. 자신이 뒤에 말할 내용을 더 깊게 각인시키기 위한 뜸들임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남들보다 모자란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
후루미나미 나몬이 토키와 아유키의 역린을 건드리자. 이윽고 토키와 아유키의 입에서는 모욕이 터져 나왔다.
토키와 아유키: 이… 이… 뻔뻔스러운 화냥년이…!
더 단크 타워
챕터 3: < 카타르시스 >
"나는 누구인가?"
"이… 뻔뻔스러운 화냥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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