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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3

더 단크 타워 챕터 3 - 22+10

by 도타싫어! 2023. 10. 2.

눈먼 여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중략)

눈먼 여인 :

   아침은 이미 오래 전에 나의 두 손아귀에 들어 있었지요.

   어두운 얼굴에서 잠이 나를 향해 무겁게 떨어질 때면,

   나는 어머니를 깨웠어요.

   어머니에게 이렇게 외쳤어요 : "어머니, 이리 오세요!

   불 좀 켜주세요!"

   그리고 귀기울였어요.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어요.

   나의 베개가 돌처럼 굳어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 나는 무언가 희부옇게 빛나는 것을 보는 듯했어요.

   그것은 어머니의 고통스런 울음이었어요.

   이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울음이지요.

   불 좀 켜주세요! 불 좀! 나는 꿈속에서 외치곤 했어요 :

   공간이 무너졌어요. 내 얼굴과 가슴에서

   이 공간 좀 치워주세요.

   어머니. 공간을 들어올리세요, 높이 들어올리세요.

   공간을 다시 별들에게 돌려주세요.

   머리 위에 하늘을 이고서는 나는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머니, 내가 당신께 말하고 있는가요?

   아니면 도대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저 뒤에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지요?

   장막 뒤에 도대체 누가 있지요? ― 겨울인가요?

   어머니, 폭풍인가요? 어머니, 밤인가요? 말 좀 해주세요!

   아니면, 낮인가요? … 낮!

   내가 없는데! 내가 없는데 도대체 낮이 있을 수 있나요?

   나는 어디서나 없어도 괜찮은 존재인가요?

   도대체 누구도 나에 대해서 묻지 않나요?

   도대체 우리는 완전히 잊혀진 것인가요?

   우리가 말이에요? … 하지만 당신은 거기 계시잖아요.

   당신은 아직도 모든 것을 갖고 계시죠, 그렇지 않은가요?

   당신의 시선을 위해 모든 것이 노력하였지요,

   당신의 시선을 기쁘게 해주려고요.

   당신의 두 눈은 잠시 쉬고 나거나

   아니면 너무나 피곤하다 해도,

   다시 솟아오를 수 있지요.

   …… 나의 두 눈은 아무 말이 없어요.

   나의 꽃들은 색깔을 잃게 될 거예요.

   나의 거울들은 얼어붙을 거구요.

   나의 책들 속에는 글귀들이 제멋대로 우거지겠지요.

   나의 새들은 골목들 사이로 파닥이며 날다가

   낯선 창문에 가서 부딪쳐 상처를 입겠지요.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졌어요. ―

   나는 하나의 섬이에요.

낯선 남자 :

   그런데 나는 바다를 건너서 왔습니다.

 

 

 

 

 

더 단크 타워

챕터 3: < 카타르시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나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요?"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의 목적은 후루미나미 나몬을 처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칸나즈키 시노부의 살해에 가담했다.

 

내 말이 끝나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닥에 무언가가 달그락 떨어졌다. 카나리 케이토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총을 놓친 채. 눈을 멍하니 깜빡이며.

 

나리 케이토: 내가… 지금 잘못 이해했나? 가담했다고? 후루미나미 나몬을 죽이려고?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는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수면제가 아닌 독약을 제공했다. 그리고 후루미나미 나몬이 수면제인 줄 알고 도시락을 보내면, 그걸 먹어 칸나즈키 시노부가 죽은 이상 후루미나미 나몬이 검정이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의 목적은 살인 게임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하기야 이상한 일이다. 야가미 토가는 이미 자신이 당할 처형을 두 눈으로 보았다. 굴욕적이고 악취미적인 죽음. 그리고 멋대로 패를 까 버리는 흑막. 살인 게임에서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믿기야 힘들겠지.

 

나리 케이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칸나즈키 말고 다른 사람이어도 됐잖아. 그리고 그놈은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잖아! 왜 안 막은 거야! 그냥 도시락을 자기가 까 먹지 그랬어. 후루미나미 나몬이 검정이 되는 건 똑같잖아!

 

기와라 우시오: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거지. 만약 후루미나미가 야가미에게 독 넣은 커피를 줘서 야가미가 먹었으면 그건 후루미나미가 검정이야. 야가미는 거기에 독이 들은 줄 몰랐고 후루미나미가 행위의 주체자니까.

 

기와라 우시오: 하지만 남에게 갈 도시락에 독이 든 걸 알면서 먹었으면. 그 행위의 주체자는 야가미야. 물론 모노로그가 판정하기 나름이겠지만, 모노로그는 한 번 팽한 내통자에게 유리하게끔 판정을 내리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야가미는

 

하기와라 우시오는 말을 아꼈다. 야가미 토가를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었다.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바쳐하는 순교 따위는 없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상정하지 않았다. 토키와 아유키가 스트리크닌을 커피에 타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두 명을 죽여놓고 뻔뻔히 사는 것보단 나을지라도 그는 사람이 죽게 두었다. 그렇다면 그 또한 죽어도 할 말이 없어야 했다.

 

츠보: 하나 의문점이 있는데. 칸나즈키가 도시락을 먹은 시각은 정황상 오후 6시 30분 이전이야. 카나리 케이토가 도시락을 배달하기 전. 그런데 칸나즈키가 독을 먹어서 죽었다면. 왜 오후 7시가 사망시각인 거지?

 

기와라 우시오: 아. 맞다. 그게 모순이네. 독약이 지효성이었나? 이건 너무 억지 아니야?

 

모노로그: 내가 왜 늦게 도착했을 것 같나?

 

모노로그가 툭 던진 말은 여러 의미를 가졌다.

 

무로 시라베: 실험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실험체가 죽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인가?

 

모노로그: 그건 말할 수 없다.

 

무로 시라베: 게다가 너는 그 약품이 독극물이라고 명시한 적이 없다. 구토 유발제와 수면제를 함께 투여하기만 해도 사람은 토사물에 의해 질식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정보는 하나. 저 물질이 체내에 들어간 칸나즈키 시노부가 죽었으리라는 것이다.

 

루미나미 나몬: 워. 워. 워. 다들 진정해! 진정하자고. 야가미가 나에게 준 수면제가 사실 지효성 독약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애초에 저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야가미가 내게 주었다는 말이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그래? 사실 야가미가 준 건 따로 있고 내가 사기를 치는 거라면?

 

무로 시라베: 그런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너는 허를 찔렸으니까. 아직도 뻔뻔하게 대처하여 혐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나? 너도 느꼈을 텐데. 이미 끝이라는 것을.

 

토키와 아유키는 뒤늦게 결론을 내렸다.

 

키와 아유키: 즉 야가미는 칸나즈키를 제물로 바쳐서 후루미나미를 몰아세웠다는 말이지? 그건 예상 못 했는데. 야가미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서로 엇갈려서 내가 그를 죽이게 되긴 했지만 그 의지만큼은

 

나리 케이토: 그만!

 

카나리 케이토가 토키와 아유키의 말을 끊었다. 토키와 아유키는 기분이 상한 채 반론을 하려 했으나, 카나리 케이토의 이어진 말을 그는 저지할 수 없었다.

 

나리 케이토: 제물로 바쳐? 누구 마음대로 제물로 바쳐! 걔가 무슨 가축이야? 그리고 바친다면. 누구에게 바치는 건데?!

 

키와 아유키: 표현이 그렇다는 거지. 카나리.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 지금 벌어진 일을 이만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있어? 후루미나미를 잡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했어. 그게 칸나즈키였을 뿐이야. 본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야 잘 됐지.

 

바라 쿠리스: 야. 토키와. 너 되게 뻔뻔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후루미나미를 감싸고돌았으면서. 후루미나미한테 버려지니까 이제 '우리'라고?

 

키와 아유키: 아.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진짜. 상황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어? 꼬투리 그만 잡고 인정할 건 인정해! 야가미 덕택에 우리 모두 이득을 봤어. 후루미나미를 더는 볼 일이 없다고. 나중에 속으로 쾌재를 부를 거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면서 나만 나쁜 놈 취급하긴. 이 위선자들!

 

나리 케이토: 칸나즈키는 이제 신통력을 잃어서 나랑 다를 바 없는 꼬맹이니까. 차라리 죽어서 후루미나미 나몬을 처형대로 보내기 위한 발판이라도 되라는 거야?

 

카나리 케이토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눈가에는 눈물이 돌았다. 그것은 슬픔보다 억누를 수 없는 화에 의한 것 같았다. 토키와 아유키는 혀를 쯧 찼다.

 

나리 케이토:… 예전의 네가 아니야. 변했어. 정말 변해버렸어. 이 살인 게임에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네가 진심을 말한다고 생각했어.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토키와 아유키는 입을 열다가 카나리 케이토의 말에 잠시 몸을 굳혔다. 그의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나리 케이토: 대체 왜 그런 거야. 후루미나미는 다른 사람을 이용할 뿐이라고 네가 분명 그랬잖아. 너도 나도. 살인 게임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강해질 수 있다고 했으면서 왜…?

 

몇 초 뒤. 토키와 아유키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경직 상태에서 벗어났다.

 

키와 아유키: 이러지 말자. 카나리. 이건 그저 살인 게임일 뿐이야. 그리고 살인 게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사람이 죽어. 그래. 매번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그게 너와 친한 사람이었을 뿐이야. 나는 네가 왜 결백한 척 남을 비난하는지 모르겠는데?

 

토키와 아유키의 목소리가 스스로의 기세를 타고 점점 커져갔다.

 

키와 아유키: 너와 칸나즈키 모두 자신의 경주마가 죽지 않게끔 우리와 맞섰잖아. 후루미나미와 한 편이 되어서 말이야! 그래서 죽게 된 나이토와 캐롤 씨는 누가 살려 주는데? 캐롤 씨가 죽었을 때 나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어! 터치를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다 같은 것을 느꼈을 거라고! 그런 네가 이제 와서 너와 친한 사람이 죽으니 사람 못할 짓을 한 것처럼 날뛰어? 그럼 나는 뭐야. 나이토의 친구였던 이바라와 하기와라는 뭐고!

 

카나리 케이토는 토키와 아유키의 말이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고개를 숙였다. 카나리 케이토는 말했다.

 

나리 케이토: 내가 잘못했어.

 

카나리 케이토의 사죄에 토키와 아유키는 의외라는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토키와 아유키는 사죄를 받았다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카나리 케이토보다 우위에 놓았음을 깨달았다. 그의 어조는 더욱 당당해졌다.

 

나리 케이토: 다 내 잘못이야

 

키와 아유키: 그래. 카나리. 네 말이 맞아. 전부 다 네 잘못이야. 영안로에 들어가면 뭐 해? 어차피 되살리지도 못했으면서. 나이토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어! 나이토도 저승에서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바라 쿠리스: 어이. 이 이야기에 나이토를 끌고 오지 마. 은근슬쩍 너랑 나를 같은 카테고리에 묶지도 말고.

 

토키와 아유키는 이바라 쿠리스의 말을 듣고 그녀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콧방귀를 뀌었다.

 

키와 아유키: 봐. 나한테만 엄격하다니까 다들?

 

토키와 아유키는 냉소를 지었다. 하기와라 우시오가 곧잘 하던 남을 천치 취급하는 냉소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또한 내 얼굴을 보더니 내가 한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했다.

 

기와라 우시오: 다 나를 저렇게 봤다니 기분이 별로네 토키와. 아무리 누군가 죽는 게 힘들었더라도 네가 제정신 가진 놈이었으면 네가 그토록 아팠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겪지 않게끔 막아야 했던 거야.

 

키와 아유키: 집어치워. 하기와라. 카나리와 칸나즈키는 자기들이 한 일을 똑같이 돌려받은 거야. 피해자인 척 해도 사실이 그렇다고. 동정의 여지는 없어. 오히려 후루미나미를 처형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서 다행이야. 죽은 보람이 있는 편이 칸나즈키에게도 좋은 일 아니겠어? 다수에게 이득이 되잖아.

 

기와라 우시오: …어딘가 모리가 할법한 말인데. 토키와. 모리를 본받으려 하냐?

 

키와 아유키: 어느 정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철학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의지. 그리고 일관성 있는 추구는 존중해 마땅한 일이야. 야가미도 그래. 큰일을 하려면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야.

 

기와라 우시오: 정 걔를 본받겠다니까 말해준다. 네가 그 희생당해 죽는 소수에 올라간다고 해도 너는 할 말이 없어. 너도 언젠가 네가 한 일을 똑같이 돌려받을 거다. 그때가 와도 징징거리지는 마.

 

그 말을 듣자 토키와 아유키는 차분히 하기와라 우시오에게 할 말을 생각했다. 그는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몇 초의 숙고가 끝난 뒤에. 그는 미간을 구겼다.

 

키와 아유키: 엿이나 먹어. 하기와라.

 

기와라 우시오: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그거야? 너도 어지간하다.

 

정도 없이 어수선해지는 재판장 안을 정리한 것은 제츠보였다.

 

츠보: 정말 후루미나미를 막기 위해 칸나즈키를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포박을 강화하던가 감시를 늘리는 등 후루미나미를 억제할 방법은 충분했어. 야가미가 후루미나미를 죽이려고 한 것은 그게 최선의 수단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일 거야.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지.

 

루미나미 나몬: 야가미는 나를 많이 경계하고 있었어. 무엇보다 야가미는 내가 아는 내용 자체를 경계했을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히무로. 야가미는 우리 같은 편법 없이 답을 찾아냈어.

 

루프. 반복.

 

무로 시라베: 그것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너를 죽이려 했다는 거냐?

 

루미나미 나몬: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너도 알잖아. 히무로. 좌절이 얼마나 쉽게 퍼져 나가는지를. 토키와가 저렇게 된 건 토키와가 못나서가 아니야. 모자랐을 뿐이지. 여기 있는 너희들. 너희들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오. 못 하지. 절대 못 해.

 

무로 시라베: 상관없다. 너는 아까 네 입으로 말했다. 야가미 토가는 너와 협력하지 않았다고. 도시락에 수면제를 탄 것은 너라고 말이다. 저 모르핀 염산염이 독이었다면, 너는 칸나즈키 시노부를 독으로 살해한 것이 된다. 더 할 반론이 남아있나?

 

후루미나미 나몬은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루미나미 나몬: 흠… 으음… 솔직히 말해서. 없어. 아까 해둔 말도 있으니까 말이야. 여기서 아까 토키와가 했던 것처럼. 내가 한 일이 아니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네. 증거를 가져와!

후루미나미 나몬은 일갈했다. 느닷없는 큰소리의 성량은 몇몇 이들의 몸을 움찔 떨게 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후루미나미 나몬은 말을 이었다. 그녀는 웃었다.

 

루미나미 나몬: 그렇게 갈 필요는 없어. 아. 아니다. 취조 한 번 하자. 나 취조 좀 받게 해 줘. 그건 내 검정으로써의 당연한 권리잖아.

 

무로 시라베: 네가 받을 취조는 없다. 10분이나 너와 부대끼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루미나미 나몬: 10분도 못 버틸 거면 앞으로 어떻게 사시려 그러나?

 

후루미나미 나몬은 웃었다. 웃는 이유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주눅이 들어 있는 카나리 케이토를 다시금 분노케 할 만치 뻔뻔했다.

 

나리 케이토: 적당히 하지 못해?! 너 같은 인간은… 너 같은 인간은 죽어야 해!

 

카나리 케이토는 바닥에서 권총을 주워 들고 후루미나미 나몬을 향해 쏘았다. 하지만 그저 쏘기 위해 쏘는 언총은 아무런 화력도 가지지 못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얼굴에 아주 작은 얼음조각이 부딪치는 것처럼 번거롭다는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입을 벌리고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루미나미 나몬: 바로 이 안이야. 카나리. 잘 노려서 쏘라고. 내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겠지만 지금이 마지막 기회니까.

 

나리 케이토: 너는… 너희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몰라. 너희들이 그걸 알았다면 웃던가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 수 없어.

 

토키와 아유키는 카나리 케이토의 얼굴 말고 다른 곳을 보았다. 카나리 케이토의 손가락은 점점 느려졌다. 방아쇠에서 날아가는 언탄 또한 점점 약해졌다. 원체 약했던 위력은 눈송이처럼 변했다.

 

나리 케이토: 너는 사람을 죽인 거란 말이야. 왜 그게 재미있다는 거냐고. 왜 그렇게 떳떳한 거야?

 

루미나미 나몬: 카나리. 재미없게 굴지 말고 방아쇠 당겨. 고작 그게 네 전력이야? 약해빠진 놈.

 

나리 케이토: 집어치워. 이 괴물아! 대답이나 해!

 

루미나미 나몬: 안타깝지만 너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거야. 카나리. 너는 자격미달이거든. 히무로! 빨리 이 촌극의 막을 내려!

 

후루미나미 나몬이 내게 소리치자. 카나리 케이토는 자리를 박차고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달려가려 했다.

 

나리 케이토: 으아아아! 너 이리 와! 이리 오지 못해?!

 

후루미나미 나몬은 긴 다리로 겅중 재판석을 넘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판석과는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카나리 케이토는 재판석을 넘을 만한 신체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는 지붕 위로 날아간 새를 보는 네발짐승의 꼴이 되었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재판장의 반 바퀴를 돌아 다시금 후루미나미 나몬을 쫓았다. 그러자 후루미나미 나몬은 또 다시 반대 방향을 향했다.

 

기와라 우시오: 야 이 새끼들아. 여기가 재판장이지 똥개훈련 술래잡기하는 곳이냐?

 

루미나미 나몬: 나를 말릴 게 아니라 카나리는 말려야지! 나는 쫓기는 입장인걸!

 

나리 케이토: 혼쭐을 내줄 거야.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카나리 케이토의 회중시계는 귀에 거슬릴만치 빠르게 돌아갔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카나리 케이토의 윽박질에도 개의치 않고 재판석 안을 종횡무진 누볐다. 몇십 초 더 그런 추격전이 이어진 끝에 이윽고는. 이바라 쿠리스가 카나리 케이토의 팔을 붙잡았다.

 

나리 케이토: 이거 놔! 도와주지 않을 거면 놓으라고!

 

바라 쿠리스: 그러지 마. 카나리! 네 기력 쏟을 필요 없어. 얘는… 후루미나미 나몬이라는 사람은.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대지 않을 거야.

 

나리 케이토: 그런 식으로 납득할 순 없어!

 

바라 쿠리스: 네 마음 알아!

 

카나리 케이토는 이바라 쿠리스의 말에 콧물을 훌쩍였다.

 

바라 쿠리스: 알아 죽음을 납득할 수 없는 건 다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가 알아. 하지만 지금 후루미나미를 잡아서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도 쟤는 깔깔 웃고 있을 거야.

 

기와라 우시오: 사실 후루미나미에게는 제대로 된 이유가 없을지도 몰라. 그냥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 그냥 죽게 둬.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할 테니까.

 

카나리 케이토는 이바라 쿠리스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후루미나미 나몬을 노려보았다.

 

루미나미 나몬: 이해해줘서 고마워. 이바라. 하기와라. 나는 저렇게 자기 감정 믿고 달려드는 사람이 별로더라.

 

바라 쿠리스: 꺼져. 다시는 그 낯짝을 보이지 마. 빗치년아.

 

루미나미 나몬: 어차피 곧 죽을 거라니까 그러네? 히무로! 빨리 사건 풀이나 해 줘. 아니면. 결투에 가기 전에 할까? 어떻게 할까? 응? 네 마음대로 해!

 

기와라 우시오: 히무로. 충고 하나 할게. 내가 봤을 때 저 년이랑 결투를 할 필요는 없어 보여.

 

무로 시라베: 왜 그렇게 생각했지?

 

기와라 우시오: 그야 후루미나미가 개썅년이니까.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저런 애들은 하라고 떼를 쓰는 거의 정반대로 하는 게 답이야. 애초에 지금까지 결투를 왜 했냐? 처음에는 결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몰라서. 두 번째는 모리가 나나시를 도발해서잖아. 세 번째까지 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두 번째 살인보다 훨씬 검정이 명확하니까.

 

츠보: 사실 야가미 토가가 도시락에 저 약물을 탔을 가능성이 존재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여기서 논의할 사항이지 결투까지 갈 필요는 없어. 애초에 결투에서 지면 히무로 너만 음소거될 뿐이고, 결투에서 이기더라도 후루미나미 나몬이 핵심 증언을 하려면 음소거를 풀어야 해. 너에게 리스크밖에 없는 일이니 할 필요가 없어.

 

둘은 옳은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옳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로 시라베: 비단 그녀만이 원하고 있는 일은 아니다.

 

기와라 우시오: 무슨 개소리야. 이건? 후루미나미 나몬 좆같다고 하소연한 건 너잖아. 그런데 쟤랑 결투까지 하겠다고?

 

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나몬을 확실히 끊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받아 마땅한 죽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투에서 그녀의 정신을 꺾고, 오랫동안 이어진 악연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어차피 그녀는 곧 죽을 터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있어 최악의 결말을 주고 싶었다. 그녀의 어떤 것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증명을 준 채. 그녀를 공허 속에 파묻을 것이다.

 

츠보: 후루미나미가 결투를 원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히무로. 그렇게 성급하게 정하지 말고. 심사숙고한 후에

 

그것은 이미 끝냈다.

 

무로 시라베: 성급하기는커녕 너무 늦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두 명을 죽이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러지 않은 것이 전부 나의 부덕이다.

 

나는 장갑의 가운뎃손가락 부분을 이빨로 물어 당겼다. 반쯤 벗은 와중 후루미나미 나몬이 나를 만류했다.

 

루미나미 나몬: 그만! 그만두지 못해. 히무로! 관두라고!

 

후루미나미 나몬은 다급하게 장갑을 벗어 자신의 손에 쥐었다.

 

무로 시라베: 무슨 문제라도 있나?

 

루미나미 나몬: 네 머릿속에는 관심 없어. 그런 재미없는 곳에 들어가서 뭘 하라고? 너에게 내 머릿속을 보여줘야 이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거야. 착각하지 마!

 

무로 시라베: 나야 상관없다. 준비는 끝났나?

 

기와라 우시오: 이건 못 말리겠네. 망할. 지고 오진 마. 히무로. 총알 보내줄 테니까 그거 꼬박꼬박 읽고.

 

무로 시라베: 고맙다.

 

기와라 우시오: 고맙긴 뭘. 대신 본때를 보여 줘.

 

나는 이미 그럴 생각이었다.

 

츠보: 이걸 보내줄 생각이야. 하기와라? 가지 못하게 막아야지!

 

하기와라 우시오는 고개를 저었다.

 

기와라 우시오: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저놈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똘추란 말이야. 내가 어떻게 말릴 도리가 없어. 히무로가 무슨 보살지장이야? 저 악연에 마침표를 짓고 싶다 생각할 수도 있잖아.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이 옳았다. 나는 머저리였다. 그리고 누구도 나와 후루미나미 사이의 결투를 만류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어느 정도 견디기 어렵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라는 존재를 나의 기억 속에서 방출하고 싶다는 마음. 완전한 종연을 나는 바랐다.

 

다시는 너를 만나고 싶지 않다. 내 길에서 이만 꺼져라. 나는 네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으니까. 그러니 나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모든 것을 마주한 뒤에 그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내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괴로움이었다.

 

나의 결정에 제츠보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고 하기와라 우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츠보: 정말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할 생각이라면. 응원할게. 히무로. 저 여자에게 휘둘리지만 않으면 분명 네가 이길 수 있을 거야.

 

기와라 우시오: 그래. 이 새끼야. 쟤한테 지면 얼마나 쪽팔리겠어? 제대로 해! 후루미나미가 개같이 패배한 다음에 처형까지 당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야. 알지?

 

무로 시라베: 그래. 이겨서 돌아오겠다.

 

나는 하기와라 우시오와 제츠보에게 짧게 목례한 뒤 후루미나미 나몬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다. 도발하는 듯한. 도전적인 얼굴을 한 채 그녀는 장갑을 들어 내게 건넸다.

 

루미나미 나몬: 시작하자. 히무로! 

 

나는 장갑을 붙잡았다.

 

 

 

 

<희곡>

 

 

후루미나미 나몬과 히무로 시라베 사이에 벌어진 엄청나고 장대한 최후의 결투

 

 

 

등장인물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시라베와 하나가 되어 동반자살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비극을 사랑한다.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다.

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나몬이 죗값을 치르게 만들고자 한다. 최근 정을 주던 여인이 죽었다. 매우 매력적인 남성이다.

 

무로 시라베: 집어치워라. 후루미나미 나몬.

 

루미나미 나몬: 잠깐! 아직 소개 안 끝났어!

 

<1막>

미친 티파티

 

장면

히무로 시라베와 후루미나미 나몬 바닥을 뚫고 아래로 떨어진다. 바닥에 닿자마자 히무로 시라베 총을 쏘기 시작한다. 후루미나미 나몬 결투장을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 채운다.

 

배경

파스텔톤의 쨍한 색감으로 뒤덮인다. 발랄하고 경쾌한 음악 삽입 후루미나미 나몬 배경에 숨은 것을 관객은 볼 수 있으나 히무로 시라베는 모른다.

 

히무로 시라베 총을 든 채 후루미나미 나몬을 찾는다.

 

루미나미 나몬: 어후. 무서워라! 무대를 다 펼치기도 전에 구멍부터 날 뻔했네! 그렇게도 내가 미워?

 

무로 시라베: (분개한 목소리로)모습을 보여라.

 

루미나미 나몬: (웃으며)내가 밉냐니까? 내가 죽이고 싶을만치 미워?

 

무로 시라베: 네가 죽어야 하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한다.

 

히무로 시라베 앞 커다란 테이블 떨어진다. 테이블의 위에는 컵, 주전자, 버터, 잼, 설탕, 겨자, 숟가락 두 개, 모자, 더 많은 모자, 망치, 안 생일 케이크가 있다. 미친 모자장수 나타난다. 단안경과 토끼 머리띠를 한 후루미나미 나몬 늦었다며 호들갑을 떤다.

 

루미나미 나몬: 오. 늦었다. 늦었어! 늦었다. 늦었어! 늦었어! 늦었어!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나몬을 뒤쫓지 않고 다른 곳을 두리번거린다. 미친 모자장수 떠든다. 미친 모자장수 후루미나미 나몬의 모습이다.

 

친 모자장수: 생일이 아닌 거 축하해. 차 한 잔 하고 가!

 

미친 모자장수 홍차 잔을 히무로 시라베에게 가져간다. 히무로 시라베 응하지 않는다.

 

친 모자장수: (탐탁지 않은 투로)이봐. 차를 주면 받는 게 예의야. 어디로 가는 거지?

 

무로 시라베: 이딴 장난질을 하려 나를 불렀나?

 

미친 모자장수 표정을 구긴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버리고서 어디선가 커다란 망치를 높게 치켜든다.

 

히무로 시라베 등 뒤로 총을 쏜다. 미친 모자장수 쓰러지지만 입에서 총알을 뱉는다.

 

친 모자장수: (안도의 한숨)휴. 큰일 날 뻔했네!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뱉는 게 상책이지! (당황한다)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 멈춰!

 

히무로 시라베 무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경계선에 손을 담그고 빼자 무대가 쫙 소리와 함께 찢겨나간다. 무대 다시금 검은색으로 돌아온다.

 

무로 시라베: 이런 바보 같은 눈속임에 속아줄 생각은 없다. 후루미나미 나몬. 모습을 보여라. 말도 안 되는 장단에 결투장까지 온 게 아니다.

 

루미나미 나몬: 사실 이건 루이스 캐럴의 걸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야. 너 정말 교양 부족이다. 히무로.

 

후루미나미 나몬이 느리게 박수를 치며 나타났다. 내 예상대로 연극에 나오는 어떤 등장인물도 실제의 그녀는 아니었다. 눈속임. 내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분신들에 불과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 그것은 탈출 장치를 통해 얻은 여러 루프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여러 색의 언탄들을 꺼내 읽으며. 언총으로는 줄곧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야가미 토가가 살해당할 때의 정황을 나는 하나씩 흡수해 갔다. 곧 나는 사건을 모든 하양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언탄의 위력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한 발 한 발이 검정을 몰아붙일 수 있는 언탄. 후루미나미 나몬이 모습만 보인다면 중상을 입혀 끝낼 수 있었다.

 

무로 시라베: 나를 원했나? 내가 이곳에 있다. 네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테니 똑똑히 봐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언탄이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적중하기 직전. 바닥에서  그녀의 몸은 풍선처럼 바람이 빠져 납작해진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또 가짜였다.

 

사방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미나미 나몬: 언탄 좀 그만 읽어. 히무로. 마음에 안 드니까.

 

무로 시라베: 이 결투에서는 너의 편이 없다. 누구도 네게 언탄을 지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공평하지 않다는 거냐?

 

루미나미 나몬: 도움? 내 역량만으로 너를 몰아세울 수 있는데 그게 왜 필요하지? 너야 마음껏 써도 돼. 오히려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그러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네가 다른 사람의 샤이닝에 물드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네 영혼은 온전히 네 것이어야 해. 기억과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아주 소량의 샤이닝일지라도 너를 물들이게 둘 순 없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대꾸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어디에서 적이 오는지를 살피느라 바빴다.

 

루미나미 나몬: 이곳에 들어온 건 실수야. 히무로. 이 결투장이 그저 결투를 하는 장소로만 보여? 신청자는 마구 날뛰지만 반론 앞에 약하고. 접수자는 위협에 놓이지만 침착하게 증거를 모아 쏘면 이길 수 있지. 고작 그게 전부인 것 같아? 이 결투장이 타인에게서 정제된 샤이닝을 양도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너의 패착이야. 히무로.

 

배경이 일그러진다. 꾸물거린다. 그 성질 자체가 변하기 시작한다. 악의를 품은 인간의 완전히 구현된 정신.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협적인 것일지 몰랐다.

 

<2막>

오즈의 마법사

 

배경

녹색으로 뒤덮인 궁전. 후루미나미 나몬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떠오른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음성 변조(굵고 크게)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연기와 화염이 무대에서 치솟아 오른다.

 

연두색 머리를 단 허수아비. 검은색 몸체와 연보라색 겉 칠을 가진 양철 나무꾼 등장. 대사 없음.

 

즈의 마법사: 나는 위대하고 강력한 마법사 오즈다. 허수아비야. 뻔뻔하게 뇌를 얻으러 왔나? 양철 나무꾼! 이 달그락 땡그랑거리는 깡통 주제에. 심장을 얻으려 왔고! 겁쟁이 사자!

 

히무로 시라베 얼굴 줌인.

 

즈의 마법사: 음. 마음에 안 드나? 사실 좀 끼워 맞추긴 했지. 너는 겁 없는 짐승이니까. 그렇다면 용기 있는 사자! 어. 잠깐. 용기가 이미 있다면 내가 줄 게 없잖아?

 

무로 시라베: 여전히 모른다. 바보 같은 연극이 다 있군. 허수아비와 로봇과 사자? 대체 이들을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즈의 마법사: 너 오즈의 마법사도 몰라? 아. 그래서 화를 안 내는 거구나? 너 지금 네 일행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는 거야. (자신의 이마를 때린다)이런. 내 실수! 네 화를 돋울 생각이었는데 선행지식이 없다면 눈치챌 것도 없지!

 

즈의 마법사: 결핍을 가진 네 명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것이 줄거리야. 허수아비는 뇌가 없기 때문에 지혜를 바라고, 양철 나무꾼은 다른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심장을 바라고, 겁쟁이 사자는 자신에게 용기가 생기기를 바라지.

 

즈의 마법사: 나머지 한 명이 누구냐고? 도로시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야. 착하고. 당차고. 귀여운 소녀지. 도로시가 바라는 건 집으로 돌아가는 일 하나뿐이야. 사실 영화에서 도로시를 연기한 배우는 4시간 동안 자고 각성제를 먹은 채 72시간 동안 일을 하는 생활을 반복해 왔지만 그건 차치하고. 지금 그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오즈의 마법사 주변을 둘러본다. 히무로 시라베 주변을 둘러본다. 히무로 시라베 녹색 궁전의 구석에 있는 커튼을 3초 본다.

 

즈의 마법사: 없잖아? 어디에도 없네? 이거 어떻게 된 거니. 히무로? 도로시가 원하는 건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어. 집보다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런데 왜 도로시가 여기까지 당도하지 못한 거지? 히무로. 도로시를 어디에 두고 온 거야?

 

무로 시라베: 너를 죽이겠다.

 

히무로 시라베 총을 쥔 채 녹색 궁전의 구석으로 달려간다. 커튼을 젖히고 안에 총을 겨누자. 그 안에는 양손에 기관총을 든 후루미나미 나몬이 있다.

 

즈의 마법사: 기억나지. 히무로?! 우리가 나누었던 그 즐거운 추억 말이야! 아하하하하!

 

(독백 처리)

무로 시라베: 이 정신 나간 짓의 원본 연극에도 이런 장면이 있을까?

 

(여러 발의 총성 삽입)

 

 

 

 

 

 

"일어나요. 어서!"

 

나는 아팠다. 잊고 있던 고통이 나를 찔러댔다. 나는 신음했다.

 

"아윽… 헉…"

 

찌릿한 아픔과 함께 나는 폐를 찔러대는 뼛조각을 느낄만치 공기를 들이마셨다. 눈이 빠질 것 같았다.

 

그 뒤에야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됐어?"

 

나는 그녀가 내 얼굴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 흰 장갑 너머에는 살이 있었다. 유리가 아니구나. 죽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에 애절함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구나…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다시 한 사람을 부활시켰다. 이번에는 완전한 부활이라는 점이 달랐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를 책임져줄 수 없었다.

 

이제 부활한 그녀는 다시금 살인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터치를 가진 이들을 막으려 하는 히무로 시라베가 총을 든 곳으로. 홀로 갈 테지… 내가 도와줄 수 있었다면

 

"미안해요… 캐롤 씨…"

 

"미안해하지 말고 말해요! 왜 이렇게 됐어요? 내가 내가 뭘 해야 해? 어서 말해. 어서!"

 

"실타래에… 내 이름을…"

 

그녀는 내가 입은 백색 랩코트의 주머니에서 분홍색 실타래를 꺼냈다.

 

"이름을 대고 아웃이라고 말하면 돼요"

 

나는 간신히 말했다. 그게 영안로 속에서 내가 입으로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나를 살리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내 기력은 바닥을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육성을 쓸 수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힘이 부쳤다.

 

캐롤 씨는 장갑을 입으로 물어 벗어던지고는 나의 얼굴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나는 정신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어. 말해 주세요."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그저 당신을 살리고 싶었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뿐이었다. 누군가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일은 바라지 않았다. 히무로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서 죽겠지만 괜찮다고. 인공지능을 챙기지 못하는 점을 빼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교대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저희 교대해요… 그래도 돼요. 어차피 내세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테니까

 

여기 말고 다른 세계도 있으니까

 

"안 돼요."

 

괜찮아요… 다 괜찮아질 거야

 

"안 돼요. 괜찮지 않아요. 아직도 모르겠나요? 당신이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반절도 떠올리지 못했다. 우리가 가까웠던가. 멀었던가? 모르겠다. 나는 전부 잊어버렸다. 애초에 나는 내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몰랐다. 내게 그녀는 아브락사스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은 나의 파괴되지 않는 것이에요."

 

이마에 닿는 입술을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내게 저주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나를 토닥였다. 나는 캐롤 씨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저주를 내렸다니. 언제?

 

"당신이 나를 구했어. 내게서 편안한 죽음을 빼앗고 그 자리에 생을 준 거야. 그렇지만 결코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 그때 저를 끄집어내 준 사람이 당신인 걸요."

 

끄집어내다니?

 

"기억나지 않으시겠죠? 우리가 다리 위에 서 있었다는 걸."

 

"가진 게 없어. 나는 거지야. 그래서 하나만 잃는 게 다 잃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다 잃었어. 이제 영영 가망이 없다고."

 

"운명이 그때부터 우리 둘을 묶어두었다는 것을. 지금의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죠. 지금 당신은 우리가 탑에 오기 전의 일을 떠올릴 수 없을 테니까요."

 

"삶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어. 정말이야. 아무리 네가 암울하고 지독한 불운 안에 있더라도 그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외로워도 살아남아. 악착같이 살아남아…"

 

"그날 이래 당신은 언제나 내 마음 한 켠에 재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고. 내 생에 마지막 미련 중 하나가 당신이었음을. 모르겠죠."

 

무슨

 

"내 앞에 놓인 건 이제 외로움이야. 누군가가 내 곁에 있더라도. 나는 결국 물 위에 뜬 기름이야. 어디서든 그래. 나는 언제나 외로워… 그런데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저는 그날 죽어야 했어요. 그게 모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일이었을 거예요. 그날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고 세상에 더 기대할 것도 없었어요. 죽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는데. 그걸 당신이 망쳐버린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캐롤 씨는 웃었다.

 

"아. 나의 영웅. 내가 위험에 처하면 언제나 구하러 와주는군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나은 걸 주고 싶어요. 우리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두렵고도 고된 멸시의 길에서 내려오는 것이 당신에게는 나을지 모르죠. 쉬는 거예요. 차갑고 무서운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휴식이니까. 하지만 나는 욕심쟁이라서… 그렇게 둘 수가 없네요."

 

캐롤 씨는 실타래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당신을 놓아주고 싶지 않아요. 저 참 못됐죠? 하지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걸로 저희 비긴 걸로 해요. 이 말을 되돌려 드릴게요. 죽지 마."

 

그녀의 입이 열렸다.

 

"사랑해요. 아마츠마라 카라쿠리누시 메이(天津麻羅 絡繰主 命). 아웃."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생각해보니까 그 이름 수수께끼. 영락없는 엉터리잖아. 대장장이니 뭐니 그 힌트로 어떻게 풀란 말이야?"

 

 

 

 

 

 

(독백 처리)

무로 시라베: 그녀와 내가 나누었다는 추억은 곧 그녀가 할 행동에 대한 복선이었다.

 

(플래시백)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너도 맞기 싫으면 고개 숙여! 음하하하하! 간다아아아!

 

(독백 처리)

무로 시라베: 그녀는 분명 몸을 오른쪽으로 돌릴 것이다. 그녀 딴에는 추억이라는 것 속에서 그녀는 경이로운 병신 짓을 하였다. 그러니 또 할 것이다.

 

히무로 시라베 오즈의 마법사에게 사격한다. 오즈의 마법사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비명을 지르다 총에 맞는다.

 

즈의 마법사: 우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악!

 

히무로 시라베 배경을 찢어낸다. 오즈의 마법사 사라진다.

 

주변은 다시 검게 변했다. 나는 총을 겨누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으나. 후루미나미 나몬은 오직 목소리만을 보내왔다.

 

무로 시라베: 이런 소꿉장난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에는 뭐지? 줄넘기와 머리 땋아주기인가? 나는 대몰락 이후에도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봤다. 들어본 적도 없는 삼류 연극들의 표절보다는 그게 낫겠지.

 

루미나미 나몬: 그거 재밌겠다. 히무로. 네가 불평만 늘어놓는 것도 이해가 가. 하지만 데이트 플랜은 다 내가 짜잖아! 한 번이라도 네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어?

 

나와 그녀의 장기적 관계를 암시하는 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후루미나미 나몬과 결투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한 것은 이 모든 일에 맺음을 짓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루미나미 나몬: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겠지 뭐. 흑. 그렇지만 네가 내가 꾸며놓은 놀이공원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 당연한 수순이야. 빌어먹을 대사 몇 줄도 뱉을 틈을 안 주는데 내용이 어디에 있어? 너는 묶어 놓고 강제 상영을 시켜야 해.

 

무로 시라베: 그래봤자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네 연극을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못할 것이다. 후자는 내 공감의 결여 때문이 아니라 그저 연극 자체의 저열함 때문이다. 네가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 자체가 예상 안이다. 예술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금지된 것. 신성하고도 잔인한 것. 어린아이의 배를 가르고 있는 종교인 따위가 나오겠지. 내가 이미 말했을 텐데. 너라는 사람 자체는 새롭지 않다고 말이다.

 

무로 시라베: 광기에 몸을 던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이 살인 게임 안에서도 누군가는 광기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광증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 가치란 광증을 이겨냈을 때에 나온다. 그 점에서 오직 더 많은 비극만을 주창하는 너는, 영원한 알파걸의 하위호환이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루미나미 나몬: 하지만 나의 이 모든 여정에 의미가 있다고 하면. 너는 그것을 믿을 수 있겠어?

 

무로 시라베: 전혀.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너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닮았어. 내가 계속 이야기하잖아. 너는 마유즈미보다 나를 닮았고, 마유즈미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양친이 자살한 뒤에 불안정해진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지.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배신당하고 고난에 휘둘려도 결국 먼저 웃음과 함께 손을 내미는 사람들은… 킥.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야.

 

무로 시라베: 너와 나를 동일선상에 놓지 마라.

 

루미나미 나몬: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도 조금만 투덜거릴게.

 

3막

<고도를 기다리며>

 

배경

삭막한 회색 무대. 얇고 비틀어지고 시든 나무 한 그루만을 세운다.

 

루미나미 나몬: 사뮤엘

 

나는 총을 쏘았다.

 

무로 시라베: 듣기 싫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출혈은 없었다. 또 가짜였고, 뚜벅이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후루미나미 나몬이 무대 뒷편에서 걸어왔다. 나는 또 다시 그녀에게 총을 겨누었다.

 

루미나미 나몬: 사뮤엘 베케트

 

총성과 함께 다시금 그녀가 쓰러졌다. 또 가짜였다.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역시 그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네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좀 약화시켜서 준비했는데 이러기야? 봐. (괄호 열고 괄호 닫기)가 더 이상 안 나오잖아!

 

무로 시라베: 꺼져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세 명의 후루미나미 나몬은 아무것도 없는 배경 속에 가만히 쓰러져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이곳은 대화를 하려고 만들었어. 히무로. 그렇게까지 발작

 

그 이후로 당분간 나는 내가 할 일을 했다.

 

루미나미 나몬: 발작할 필요까지는 없

 

루미나미 나몬: 없잖아. 네가

 

루미나미 나몬: 아무리 그렇게

 

루미나미 나몬: 해도 나는 문제 없

 

루미나미 나몬: 이 이렇게 나를 보낼 수 있

 

루미나미 나몬: 어. 아직도 이해가 안 가? 고도를

 

루미나미 나몬: 기다리며에 대해 모르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권태에 대한 연극이야. 오지 않는 고도라는 사람을 두 인물이 기다리지만 여전히 고도는 찾아오지 않아. 어라. 말을 오래 하게 뒀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무로 시라베: 이것이 너를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유도하는 너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루미나미 나몬: 너는 이미 나를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 어차피 네가 죽이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걸 너도 아니까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지. 보기에는… 별로 안 좋지만.

 

나무 주변에는 후루미나미 나몬 열 명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사람이 아니었고, 설령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주더라도 후루미나미 나몬은 죽지 않을 터였다.

 

루미나미 나몬: 그러니까 나는 너의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지. 죽지도 망가지지도 않는 내 모습을 한 인형들. 그걸 죽이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나한테 감사해. 히무로. 나만한 사람 어디에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은 기이하게 비틀어진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기 옆에 앉으라는 듯이 그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마유즈미도 내게 저런 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선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로 시라베: 왜냐.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루미나미 나몬: 사랑한다니까. 너와 나는 닮았고. 나는 너를 타락시키고 싶어. 더 이유가 필요할까?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 질문을 되돌려주고 싶네.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후루미나미 나몬은 웃어댔다.

 

루미나미 나몬:  스스로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이 나올 거야. 너는 나를 미워하고 있어. 그리고 그건 말이야 히무로. 정말로 드문 일이야. 업적에 가까우리만치. 그래. 너도 누군가에게는 증오를 보내야 했겠지.

 

루미나미 나몬: 아무리 너라도 그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어. 내가 사람을 죽였기에 내 죽음을 바라 건 아니잖아. 재판장에서야 그랬겠지. 하지만 결투장에 왔다는 건 나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이야. 고작 시라유키 히메리를 모욕하고 마유즈미의 죽음에 웃었다고 해서 여기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어. 히무로. 칸나즈키와 야가미의 죽음은 내 소행이니 내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나나시와 마유즈미의 죽음의 책임은 대체 누가 물어야 하지?

 

그녀는 영안로 안에서 벌어진 일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루미나미 나몬: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엄밀히 말하면 네 잘못이지. 그리고 너는 누구라도 좋으니 탓할 사람이 필요한 거야. 지금 네 모습을 좀 봐. 유래 없이 흐트러지고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 정말 그게 악연을 끊고 싶다는 이유 하나뿐인가? 거짓말 마. 히무로.

 

후루미나미 나몬은 몸을 일으켜 두 다리로 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루미나미 나몬: 내가 마유즈미를 죽였어? 말 좀 해봐. 나는 잘못 없어. 너를 굳이 막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내 혐의가 되지는 않아. 그건 불공평한 일이야. 그러나 네가 원한다면 기꺼이 뒤집어써 주지. 그러지 않고서야 너는 버틸 수 없을 테니까.

 

나는 후루미나미 나몬에게로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선심 쓴다는 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녀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불쾌하게 느껴지는가. 나는 그녀가 뱉는 말들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날 때마다 그녀를 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루미나미 나몬: 얼마나 스스로가 미울까. 히무로. 얼마나 너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인간 같다고. 마유즈미를 지키지 못한 병신 머저리에. 절대로 나아질 수 없는 기형아라고 느낄까? 아아. 히무로. 이 죄 많은 남자야. 대체 어쩌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생애를 이어나가게 된 거야? 불행할 거면 혼자 할 것이지 왜 마유즈미까지 죽어야 해?

 

무로 시라베: 닥쳐라. 후루미나미 나몬. 더 그녀를 입에 담았다간

 

루미나미 나몬: 죽이겠다고? 그럼 죽여 봐. 화풀이를 하고 싶다고 인정하면 분신 서른 개는 더 만들어 주겠어. 내 본체마저 내어주지. 날 경멸해도 좋아. 히무로. 입과 눈에 침을 뱉고 무릎에 총을 쏴서 걷지 못하게 만들어. 내 눈이 뒤집히도록 목을 졸라 봐. 엉덩이를 손뼉으로 때려 주라고. 하지만 지금 너에게 사적인 감정이 없다고는 하지 마. 스스로를 속이는 짓은 비열한 자들이나 하는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은 서서히 다가와 내가 겨누고 있는 총구 앞에 섰다. 이마를 가져다 대기까지 했다. 나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려 애썼다. 잘도 이런 자가 인두겁을 쓴 채 돌아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결투장에 온 것이 실수라고 생각했다. 제츠보의 말이 옳았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말마저 옳았다.

 

나는 증오를 줄 허수아비가 필요했다. 다 네년의 탓이라고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죽어 마땅한 후루미나미 나몬이었다. 이미 두 명을 죽였고 수많은 갈등을 야기한 그녀. 나와 소중한 이들에게 모욕을 던진 그녀. 간편한 공적에 돌을 던지는 일이 나의 과오를 곱씹는 것보다 쾌적하기 마련이었다.

 

루미나미 나몬: 너는 나를 미워해. 그러니 모든 독을 토해내 봐. 내가 전에도 말했지? 쌓인 걸 전부 내보내라고. 히무로. 내가 전부 받아낼 테니까. 하지만 너에게는 욕망이 없으니. 대신 증오를 받아내 줄게.

 

대답할 필요는 없다. 내 욕받이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대신 총을 쏘는 것으로 대답할 수도 있었다. 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잘못이다.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훨씬 편할 것이다.

 

내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속아 넘어가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전용실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 후루미나미 나몬의 잘못이다.

 

나이토 유즈루가 모리 레이코에게 살해당하고 캐롤 브라이트가 따라 죽은 것. 후루미나미 나몬의 잘못이다.

 

내가 마유즈미의 요청을 따라 함께 영안로로 간 것. 함께 불가능해 보이는 블레인에게 맞선 것. 내가 이름 없는 남자의 추적과 정신조작의 억제에 정신이 팔려 이름 없는 남자가 총에 맞은 것. 마유즈미가 낙하한 것. 전부 후루미나미 나몬의 잘못이다. 그녀가 귀띔해 주었다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 이 모든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후루미나미 나몬은 내 과오를 안고 함께 죽을 것이다. 나는 마유즈미가 떠오르는 날이면 후루미나미 나몬을 저주하겠지. 그녀만 없었어도 마유즈미는 나와 함께했을 거라고.

 

그러나 나는 외면하게끔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총에 맞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총구를 쫓아 내 허리춤까지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이빨을 내보인 채 부릅뜬 두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루미나미 나몬: 뭐 하자는 거야?

 

무로 시라베: 분명 나는 사적 제재를 위해 네 결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울분을 내던지는 일이야말로 비열한 이들이 하는 짓이다.

 

나는 언젠가 마유즈미가 말했던 한 단어를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Mea Culpa.

 

루미나미 나몬: 안 돼!

 

후루미나미 나몬은 주먹을 휘둘러 내 턱을 때리려고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남은 팔로 그녀를 밀어냈다. 언총은 나의 홀스터에 끼워 두었다. 내 어느 손에도 총이 없다는 것을 보자 후루미나미 나몬은 절박해졌다.

 

루미나미 나몬: 총 뽑아. 총 뽑아! 뽑으라고!

 

나는 허상의 공격을 붙잡고 밀어내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나는. 몇 번 그녀의 손을 놓쳐 주기도 했다. 내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지만 후루미나미 나몬 본인의 주먹도 아니었기에. 내게 그 충격은 종이 뭉치만도 못 했다.

 

이윽고 그녀는 주먹질로는 나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음을 알았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총을 뽑아 내게 겨누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총구는 그녀 자신의 관자뼈로 향했다.

 

루미나미 나몬: 내게 총을 쏘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

 

그런 종류의 협박은 처음 들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협박일 뿐더러 그녀는 후루미나미 나몬 본인도 아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본체가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후루미나미 나몬의 이미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바닥에 내던졌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모욕을 당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무로 시라베: 그만해라. 후루미나미 나몬. 어차피 너는 곧 죽는다.

 

루미나미 나몬: 내가 밉잖아. 히무로! 더 미워해 봐! 어서! 너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잖아. 그걸 증명해 보라고!

 

무로 시라베: 싫다. 너는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만 치러라. 나는 나의 것을 안고 가겠다. 이 결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루미나미 나몬: 우리는 세상에 의해 빚어진 괴물이야. 히무로. 너 같은 사람도 나처럼 변할 수 있어. 그렇잖아! 그렇다고 말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하체에 몸을 붙인 채 내 상체를 긁어대며 애원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무로 시라베: 전부 끝났다. 후루미나미 나몬.

 

루미나미 나몬: 너는 규율을 버려야만 해. 모든 고결함을 내버리고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야만 해! 나를 죽여. 히무로! 나를 훼손해! 부탁이야. 나를 무사히 재판장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줘. 그런 일은 견딜 수가 없어!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노골적으로 신체를 접촉시키는 후루미나미 나몬이 가증스러웠다. 그 감정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최대한 억누를 수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비원은 내가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는 것. 나와 그녀가 실은 닮아 있었고 나 같은 인간도 언제든지 그녀가 될 수 있음의 증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앙갚음이었다. 나는 막을 내리지도 않고 그녀를 잊을 것이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연극은 영원한 미완성작으로 남게 되리라.

 

나는 그녀를 조금도 용서할 수 없었다. 증오를 품었다. 나 자신이 허락한다면 분이 풀릴 때까지 그녀를 난자할 수도 있었다. 나에게는 그녀에게 치명적인 언탄이 수도 없이 많고 나는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마유즈미라면.

 

그리고 메리라면 내가 이곳에서 시간을 썩이는 것을 보고. 분명 한 마디 쓴소리를 던졌을 테니까.

 

루미나미 나몬: 분명 즐거울 거야. 히무로. 내가 장담할게! 폭력을 통한 폭력성의 해소야말로 건전한 일이야!

 

무로 시라베: 증오를 해소하는 일은 간단하겠지. 복수의 과실은 달콤할 것이다. 하지만 뱀 같은 너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것을 베어문다면. 나는 영영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것이다.

 

나는 말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 위한 다짐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떼를 써댔다. 현실을 부정하는 듯했다.

 

루미나미 나몬: 싫어. 싫어. 싫어싫어싫어싫어. 히무로. 이러지 마. 제발. 제발. 나를 너에게서 끊어내지 마! 싫어어어어어어! 싫단 말이야!

 

무로 시라베: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울음을 터뜨리려는 듯이 잔뜩 울상이던 그녀의 얼굴은. 내 말을 듣자마자 무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루미나미 나몬: 어째서 네 괴로운 여정에 어린애를 끌어들인 거야. 히무로?

 

후루미나미 나몬은 목을 젖혀 나를 일직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비난하는 듯했다. 대답이 하나 떠올랐다. 그녀의 뜻을 존중하고자 했다. 그녀는 나의 여정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일부분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부분은 변명이었다.

 

무로 시라베: 그녀가 함께 오기를 바랐으니까.

 

나는 한 번도 적극적으로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의 실타래를 빼앗고 그녀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존중 같은 사탕발림은 집어치우고 한 번이라도 그녀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적어도 영안로 속에서 탈출이 불가능한 추락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로 시라베: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카의 힘을 맹신한 것이다. 결국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나와 그녀 사이의 연이 그토록 빨리 끊어질 리가 없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루미나미 나몬: …카마이네. 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의 바보란 뜻. 그녀가 카에 대한 용어를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전의 루프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을까.

 

무로 시라베: 나는 마유즈미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날이 없겠지. 하지만 그것은 나의 죄다. 그것을 너에게 빼앗길 생각은 없으니. 이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후루미나미 나몬. 이제 끝을 내자.

 

루미나미 나몬: 내가 너에게 이러는 이유를 알아내기 전엔 안 돼.

 

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세 번째 걸음을 제공해라.

 

루미나미 나몬: 첫 번째와 두 번째 걸음은 기억하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무정자증. 어머니의 혐오.

 

루미나미 나몬: 세 번째 걸음은 이거야. 나의 언니는 나를 사랑했다는 것.

 

나는 그 정보를 기존의 것과 취합하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불합리한 수수께끼였다.

 

무로 시라베: 너에게 손윗누이가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

 

루미나미 나몬: 그렇지만 나에게는 언니가 있어. 특이하게도 이 탑에는 언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진 이들의 수가 넷을 넘어가거든. 내 기억에 따르면 일단 그래. 모든 걸음은 연결되어 있어. 히무로.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대체 왜 하필 너만 미워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소중했는데 너는 그걸 내던져 버렸어. 네 기억 한편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것을!"

 

무로 시라베: 네 가장 은밀한 곳을 관측했기 때문이라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이냐? 음담패설인가?

 

루미나미 나몬: 너는 답을 유추할 수 있어. 히무로. 나는 이미 충분한 증거를 남겼거든. 차고 넘칠 정도로 말이야. 히무로. 생각해 봐. 잘 풀어 봐. 네가 단초를 제공한 거니까.

 

무로 시라베: 나중에 스스로 풀겠다. 후루미나미 나몬. 모습을 보여라.

 

내 앞에 무릎을 꿇은 후루미나미 나몬은 내 말을 듣고 쿡쿡 웃어댔다.

 

루미나미 나몬: 흐흐흐… 후후후

 

내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죽이던 그 웃음은 결국 그녀의 입을 천천히 벌렸다. 그녀의 이빨이 보였다. 본 적이 있는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 같은 불길한 웃음.

 

무로 시라베: 뭐가 그렇게 웃기지?

 

루미나미 나몬: 이미 보여 줬는데 그걸 모르고 있는 모습이 웃겨서.

 

설마 이게 본체인가? 아니다. 분명 타격에는 힘이 없었을 텐데? 나는 생각하는 것보다도 빨리 총을 뽑아 무릎을 꿇은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겨누었다. 조준은 여느 때의 속도와 같았다. 하지만 내가 총을 그녀에게 겨누었을 때. 후루미나미 나몬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직후. 나는 내 목에 꽂히는 단단하고 뾰족한 무언가를 느꼈다. 바늘이 내 목에 꽂혀 깊숙하게 들어왔다. 나는 신음조차도 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내 뒤에 있었다. 내 어깨를 부서지도록 끌어안고 저항을 최소한 막기 위해 몸을 붙이며. 내 목덜미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나를 찾았어. 히무로?

 

등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자리에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직감했다. 숨을 똑같이 쉰 것이다. 표범의 수법과 똑같았다. 표범은 잠을 자고 있는 동물을 기습할 때 혹은 발소리를 내지 않고 지근거리까지 추적해야 할 때. 사냥감과 똑같은 호흡을 취한다. 조금의 기척도 내지 않는다. 그리고 한 척의 길이에도 몇십 분을 들인다. 그 인내 끝에. 사냥감은 아무런 징조도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

 

바늘이 꽂히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나의 몸이 얼어붙었다. 여전히 목에는 따끔한 통증이 돌고 있었다. 마취를 당한 것인가? 나는 전신에 힘을 줘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몸은 조금씩밖에 움직이지 않았고 그마저도 더더욱 근육이 뻐근해져. 나는 곧 미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루미나미 나몬: 야가미 토가는 질서를 숭상하는 사람이야. 히무로.

 

후루미나미 나몬은 그렇게 운을 떼었다.

 

루미나미 나몬: 그놈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다시 찾으러 별 짓을 다 했어.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은 죽여야 후환이 없다는 일을 알고 있었지. 탑에서 죽는 사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나와 손을 잡고 칸나즈키를 죽이겠다고? 자기가 검정이 되면서?

 

후루미나미 나몬은 코웃음을 쳤다.

 

루미나미 나몬: 나와 토키와의 결탁을 안 뒤 계획에 훼방을 놓으려 한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내가 정말 야가미에게 속아 넘어갔을 거라 생각했어? 그놈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렇기에 처음부터 알 수 있었지. 야가미는 나를 검정으로 세울 생각임을 말이야.

 

나는 묻고 싶었다. 처음부터 알았다는 말인가? 야가미 토가의 속셈을 눈치챘다고?

 

루미나미 나몬: 그게 모르핀 염산염이라는 걸 내가 믿었을 것 같아? 그리고 너희는 그딴 걸 정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응?

 

후루미나미 나몬은 물었다. 곧 나는 내 목을 찌른 것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목은 움직이지 못했지만. 나는 주변 시야를 통해 보았다. 결투 신청자들은 결투장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언총 또한 포함된다. 앞선 결투에서 야가미 토가는 양손의 기관총을. 모리 레이코는 저격총을 선택했다.

 

루미나미 나몬: 그야 믿고 싶었겠지. 사람 죽이고 멀쩡하게 살 년은 야가미의 반격에 의해 저세상으로 갈 거다. 사필귀정이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 그렇게 생각했겠지. 야가미의 합류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너희들은 자만에 빠졌어. 이렇게 미끼를 덥석 물 줄이야.

 

나의 목을 꿰뚫은 것은 주사기였다. 후루미나미 나몬의 언총은 주사기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모양을 하고 있었다기보다 그것은 그저 방아쇠가 부착된 주사기였다.

 

그리고 언총은 샤이닝을 정제해 쏠 수 있게 하는 도구였다.

 

이 결투장이 타인에게서 정제된 샤이닝을 양도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너의 패착이야. 히무로.

 

또한 결투장은 그 정제된 샤이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장소였다. 두 번째 결투에서 이름 없는 남자가 모리 레이코의 언탄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언탄을 받아들이는 일은 비단 결투장 안에 있는 이와 밖에 있는 이들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루미나미 나몬: 다행히도 너희는 모두 납득했지. 후루미나미 나몬은 야가미 토가를 검정으로 세워 우리를 몰살하려 했다고. 너희는 항상 이중의 반전에만 신경을 써. 그래서 누구도 진정 이 살인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한 거야.

 

루미나미 나몬: 이제 이해가 되나? 내가 이 일을 위해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나는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것이 진실이라고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와의 결투를 위해 사람을 죽였다는 거냐? 내가 분개한 채 너와 결투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두 명이나 죽였단 말이냐?

 

나는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이미 내 사지는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목에 주삿바늘이 꽂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제대로 꽂는다면 사람의 목숨도 끊을 수 있을 장침이었다. 그리고 바늘이 충분히 안에 들어가자 후루미나미 나몬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언탄은, 후루미나미 나몬의 것이었다.

 

언탄은 샤이닝이다.

 

샤이닝은 사람의 기억이자 영혼의 총체였다.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내 안에 흘려 넣고 있었다. 오직 그럴 수 있는 장소와 그럴 수 있는 상황을 위해. 그녀는 두 사람을 죽였다.

 

루미나미 나몬: 내 눈을 빌려주지. 히무로. 오직 너만을 위해 준비한 전기영화야.

 

"너도 언젠가는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거야. 진심으로. 너는 내 영혼 안을 들여다보게 될걸."

 

그것은 결투의 승패 자체와도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나는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이 일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대체 왜?

 

주사기의 한 칸을 가득 채울 양을 억지로 주입하자 내 고개가 홱 뒤로 꺾였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내 뇌리에. 내 것이 아닌 기억들이 밀려들어왔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서 각각의 손을 잡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