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와 아유키: 히무로. 잠시 나와주겠어?
문 밖에서 토키와 아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전 6시였다.
문을 열지 않은 채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무슨 일이야?
토키와 아유키: 불시 검문을 나설거야. 협력해줬으면 해.
내게 찾아온 것으로 보아 용건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처럼 흉기를 숨기고 있는 이들을 덮쳐 위험물품을 압수하겠다는 거구나.
토키와 아유키: 네 전용실은 이미 모두가 조사해 봤으니까 네게 제안했어.
히무로 시라베: 타당할 발상이야. 곧 나갈게.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듯이. 숙소와 전용실을 덮치고 수사해 흉기를 찾아내는 일은 다른 이들의 반발을 살 수 있었다. 이런 대작업을 감행하기엔 미도리카와가 죽은 다음 날이 적격이겠지. 아직 죽음의 공포가 뚜렷할 테니.
밖으로 나가자 토키와의 곁에 23T가 있었다.
23T5U130: 좋은 아침은 아니지만. 잘 잤어?
히무로 시라베: 아니. 악몽을 꿔서 제대로 자지 못했어.
토키와 아유키: 힘들었겠네… 하지만 열심히 하자.
토키와의 눈가가 건조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 또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처럼 악몽이라도 꾼 거겠지.
그에 더해 미도리카와의 죽음은 캐롤에게 영향을 주었고, 캐롤이 받은 영향은 고스란히 토키와에게 전해졌다. 학급재판에서 그는 공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내색하지 않을 뿐 그도 지쳐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히무로 시라베: 그런데 나는 너희를 속인 전적이 있는데. 나를 기용해도 괜찮겠어? 나는 원래 내 숙소에 묶여 있어야 할 처지였는데.
토키와 아유키: 지금 당장에 그런 걸 따져봐야 의미가 없어. 내통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라면 서로 척을 져선 안 돼.
토키와 아유키: 규합하지 못하면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말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
토키와가 엄지와 검지의 끝을 비비며 말했다. 초조한 것으로 보였다.
모리 레이코: 그렇지. 보다 큰 목적. 생존. 공리를 위해서라면 도덕적 일탈 따위는 사사로운 것일 뿐이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모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뚜벅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타났다.
모리 레이코: 나 또한 공리를 위해서라면 문서 위조 정도야 눈감아줄 수 있지. 적의 친구의 적은 나의 친구라 할 수 있으니.
히무로 시라베: 부르지도 않았는데 일찍 일어났네.
모리 레이코: 난 항상 부지런히 움직인다. 우선 내게 칼 한 자루가 있다. 가져가도록.
모리가 품에서 칼을 꺼내자 23T가 그것을 빼앗았다. 23T는 칼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그러고도 남은 잔해는 철저하게 밟아 처리했다.
모리 레이코: 리더의 행동을 주시하던 도중 공리의 증진을 위한 발상이라 생각해 동참하기로 했다. 괜찮겠지?
23T5U130: 환영이야. 하지만 육탄전은 삼가도록 해. 또 다칠 수 있으니까.
모리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모리 레이코: 크음. 새겨듣도록 하겠다. 그보다 나는 흉기의 처리보단 위험인물의 처리가 급선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리더?
토키와 아유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내통자… 가능하다면 가장 빨리 제압하는 게 낫겠지.
야가미 토가와 카이다 쿠로하가 먼저라는 건가. 일리는 있었지만 가능할지가 문제였다.
모리 레이코: 그럼 도와줄 인원을 하나 더 뽑도록 할까.
모리는 다시 3층으로 뚜벅이며 올라갔다. 토키와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나와 23T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말릴 새도 없이 모리는 나이토의 숙소 문을 발로 마구 걷어찼다.
나이토 유즈루: 아. 뭐야…!
나이토의 짜증 섞인 신음이 들림에도 모리는 문을 차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모리 레이코: 문을 열어라. 승부사.
토키와 아유키: 모리.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나이토 유즈루: 간다. 간다고. 나간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지 몇 초 뒤 나이토가 문을 열었다. 쿵쿵 발소리를 내며 세게 열어젖힌 것 치고는 작게 열려. 그의 얼굴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이토 유즈루: 야. 너 뭔데 아침부터 봉창을 두드려?!
모리 레이코: 잠깐 실례하지.
나이토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모리는 작은 체구로 그의 숙소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작은 틈 사이에 몸을 밀어넣어 열리게 만든 것 같았다.
그녀를 따라 진입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안에서는 나이토의 고함이 들려왔다. 고함이 아니라 비명인 것 같기도 했다.
나이토 유즈루: 으아아아아악! 뭐야! 꺼져!! 빨리 나가. 안 나가?!
모리 레이코: 격하게 반응하지 마라. 의심이 가게 되니까. 그리고 옷을 입어라. 왜 나신인 것이지?
나이토 유즈루: 옷 입기 전에 쳐들어오니까 그렇지! 빨리 나가! 나가라고!
23T5U130: 아앗…
모리 레이코: 미안하게 되었다. 승부사. 나는 조금의 틈도 내어줄 수 없으니 내가 조사하는 동안 알아서 옷을 입도록.
나이토 유즈루: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모리와 나이토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숙소 밖으로 확실하게 들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23T5U130: 너희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습격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토키와 아유키: 야가미와 카이다에 대해서라면 고민해봐도 별 수가 없을 것 같아.
모리 레이코: 인공지능은 확실히 강력하지만, 내통자 두 명이 흉기를 들고 우리를 협공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 명이라도 더 그들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을 데려가야 한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전력이여야겠지.
옷을 전부 입은 나이토가 문을 벌컥 열자 그의 침대 밑을 뒤적거리는 모리가 보였다.
나이토 유즈루: 이제 장가는 다 갔어. 쟤 때문에. 너희들도 보고만 있지 말고 이제 좀 말려 봐!
히무로 시라베: 나도 실례할게.
나이토의 숙소로 들어간 채 흉기가 있을법한 장소를 조사해 보았다.
나이토 유즈루: 아니 실례하지 말고 말리라고!
히무로 시라베: 미안. 그래도 흉기를 찾아야 해서 말이야.
모리 레이코: 그래도 너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내가 너를 찾은 것은 네게 흉기가 없고 네가 내통자에 적극적으로 맞서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니.
쓰레기통의 내용물을 뒤지며 모리가 말했다.
23T5U130: 나 혼자서라도 두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정말이야.
히무로 시라베: 지금 내통자와 맞서 싸울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내통자를 추적할 수 있느냐 자체가 확실하지 않은걸.
히무로 시라베: 모노로그는 내통자와 연락할 수 있으니. 토키와가 너와 합류한 시점에서 두 명은 도망쳤을 공산이 높아.
토키와 아유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두 명을 주시하되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단정짓진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모리 레이코: 아쉽게 되었군.
토키와는 모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토의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토 유즈루: 아니 이 자식들이 진짜?!
모리 레이코: 승부사. 기대대로군. 네 방에는 흉기가 없다. 너는 믿을 수 있는 전력이다.
모리는 손을 탁탁 털고 나이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리 레이코: 우리는 지금부터 네게 한 일을 내통자와 흉기를 가지고 있을 다른 이들에게 할 생각이다. 공리를 위해 동참하겠나?
나이토 유즈루: 토키와. 동참할테니까 가자.
나이토는 목과 어깨를 풀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모리는 허공에 남겨진 손으로 주먹을 쥐곤 중얼거렸다.
모리 레이코: 그러나 여전히 동참하는군. 그것만으로 너는 공리를 섬기고 있는 셈이다. 결국 공리는 정의의 편이니.
모리 레이코: 그렇기에 정의는 곧 공리이다.
히무로 시라베: 모리. 이미 다들 떠났어.
모리 레이코: …흐으음.
모리는 작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토키와 일행을 쫓아갔다. 그들은 카이다의 숙소 앞에 있었다.
토키와 아유키: 후루미나미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내가 할게.
토키와는 주머니에서 철사를 꺼냈다.
23T5U130: 문을 딸 수 있어? 언제부터?
토키와 아유키: 오늘 새벽부터. 도서관에서 피킹에 대한 책을 읽었어. 이론은 익혔고 내 문으로 연습도 해 봤어. 오래 걸리긴 했지만…
토키와 아유키: 문을 열 수 있는게 후루미나미 뿐이여선 안 돼. 대항할 수단이 필요해.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라는 사람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니 말이야.
카이다가 가지고 있던 유서에 후루미나미가 접촉했다면 그녀 또한 흰 물건의 메시지에 대해 알고 있을 터였다.
지금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테지만 최대한의 비극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후루미나미는 가차없이 우리를 배신하겠지. 그런 사람에게 비밀을 맡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토키와는 문고리의 열쇠구멍에 철사를 넣고 그 안을 뒤적거렸다.
50초가 지났다.
나이토 유즈루: 이거 되긴 하는거야?!
토키와 아유키: 되게 할 테니까 기다려 줘.
그리고 또 다시 50초가 지났다.
모리 레이코: 나도 문을 따는 기술을 배워봐야겠군. 리더에게 전부 맡겨선 안되겠어.
토키와 아유키: 조금만 기다려 줘. 이제 거의 다 됐으니까…
나이토 유즈루: 이거 그냥 못 부숴 버리나?
토키와 아유키: 이제 다 됐어! 이제… 열렸다!
나이토가 조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우두둑 꺾을 즈음.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후루미나미 나몬: 굿모닝!
후루미나미가 문을 열고 나왔다.
토키와 아유키: 뭣?!
후루미나미 나몬: 초심자치곤 나쁘지 않았는데 좀 오래 걸려서. 못 참고 나와버렸어. 다들 좋은 아침!
나이토는 토키와만큼이나 아연실색했다.
나이토 유즈루: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히무로 시라베: 카이다 쿠로하의 숙소에 침투해 보았거나, 카이다 쿠로하와 동침한 거겠지.
여유만만한 그녀의 표정이 잠시 무너졌다.
후루미나미 나몬: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요즘은 너에게만 집중한다니까!
그렇지만 저 붕괴마저 연기지.
히무로 시라베: 신경쓰지 않아. 카이다 쿠로하는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야가미도 마찬가지겠지. 역시 내통자들은 미리 숙소를 떠났어…
모리 레이코: 처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쉽군.
토키와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키와 아유키: 내통자는 모노로그에게서 우리들의 위치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아직 숙소에 남아 있다면 모노로그가 대피 명령을 내리기 전 덮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게 맞겠지.
후루미나미 나몬: 우리 입장에선 잘 됐어! 야가미 사연이 딱하긴 하지만 솔직히 살인자랑 안심하고 놀 순 없는 노릇이잖아.
위험도로 따지자면 후루미나미도 지금 당장 묶어놓아야겠지만. 나는 그녀를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나이토 유즈루: 결국 언젠가 그 자식들이랑은 붙을 수 밖에 없겠지만… 일단 카이다 숙소 안에 있는 흉기부터 싹 치워버릴까?
후루미나미 나몬: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숙소 안에 있는 흉기는 싹 사라져 있었거든. 전용실은 몰라도 숙소 안에는 이제 흉기가 없어.
믿음이 가지 않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왜 날 그렇게 봐? 진짜야! 모리모리. 몸 수색 좀 해 줘.
모리 레이코: 원하신다면야.
모리가 일전에 내가 했던대로 몸수색을 진행했다.
나이토는 그녀의 몸수색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토키와는 굉장히 당황했다.
토키와 아유키: 뭣. 뭐야?!
후루미나미 나몬: 경관님. 이건 제 권리에 대한 침해가 아니온지요? 제가 아무리 자문 탐정이라도…
모리 레이코: 가만히 있도록. 그리고 닥쳐라.
나이토 유즈루: 너 꼼꼼한 건 알겠는데 적응이 안 돼… 좀 방에 들어가서 해 주면 안 되냐?
모리 레이코: 몇 초만 빨리 말했다면 고려해 줬겠다만 이젠 빨리 끝내는 편이 나을 것 같군. 그렇게 불쾌하시다면 나도 도리가 없지.
모리는 마지막으로 후루미나미의 모자를 벗기고 곰방대 안에 숨겨진 날붙이가 있는지조차 조사했다.
모리 레이코: 이 사기꾼에게도 흉기는 없다. 아직은.
후루미나미는 곰방대를 한 모금 피우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후우. 그럼 이제 된 거지? 이제 나도 파티에 끼워주는 거다?
토키와 아유키: 솔직히 너를 묶어두고 싶지만…
토키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히무로 시라베: 그럼 묶어두자.
모리 레이코: 그러도록 하지.
23T5U130: 다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봐.
토키와 아유키: 문을 여는 건 나보다 네가 훨씬 나아. 또 위험한 일을 한다면 그 때 묶어두던지 하고. 일단 같이 움직이자. 우리는 모노로그에게 맞서야 할 테니까.
모리 레이코: 그 선택 또한 타당하다.
후루미나미 나몬: 후루미나미가 동료가 되었다!
후루미나미가 휘파람을 불었다.
히무로 시라베: 일단 당장 흉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자.
후루미나미 나몬: 라져댓!
후루미나미는 호기롭게 경례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알로호모라.
후루미나미는 몇 초 만에 문을 따 주었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을 때 하기와라는 그의 숙소 안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히히히히…
나이토 유즈루: …이 새끼 웃는데?
웃긴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코미디언으로서는 뛰어난 소양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렇지만 그 소양이 그에게 괴력을 선사해주지는 않았다.
발소리를 죽인 채 그의 숙소 안으로 발을 디디며. 나와 나이토의 눈동자가 그에게 머물렀다. 23T 또한 머리를 하기와라 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우리는 하기와라를 덮쳐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하기와라 우시오: 뭐. 뭐야! 왓더뻑?!
하기와라 본인의 신체 능력은 나이토와 23T에 비견할 바가 되지 못했다. 무기를 손에 쥔채 잠에 들지도 않은 그를 수월하게 제압한 뒤 흉기를 수색했다.
토키와 아유키: 찾은 건 이게 전부야.
수색 끝에 우리는 도끼 두 자루. 칼 한 자루. 망치 한 개. 진압봉 두 개. 커터칼 한 개를 발견했다.
나이토 유즈루: 압수. 이 새끼야!
23T가 흉기를 한 데 모아놓은 것을 몇 번 세게 밟았다. 그러고도 형체가 남아 있는 것은 주먹으로 부쉈다. 곧 사람도 해칠 수 있을 흉기들은 몇 초 만에 쓰레기로 변해버렸다.
23T는 흉기였던 잔해들을 작은 상자 안에 넣었다. 아마 나중에 땅에 파묻기라도 해서 처리하겠지.
하기와라는 아직 흐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낄낄거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저게 내 생명줄이었는데… 아. 그래. 이런 일이 언젠가 생길 것 같긴 했지… 흉기는 모리에게 준 칼을 합쳐서 여덟 개가 다야. 진심. 더는 없어.
토키와 아유키: 섣불리 믿을 순 없어. 일단 네 전용실 열쇠를 줘. 이대로 아침식사 전까지 넌 우리와 동행하며 다른 이들의 흉기를 찾게 될 거야.
하기와라는 웃음을 입에 계속 머금고 있었다. 잠이 덜 깬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저 웃긴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에 나온 순수한 웃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토키와 너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네. 알겠어. 알겠다고. 동료가 돼라 이거지? 네 선장님! 해적왕의 자리까지 확실하게 밀어드릴게!
후루미나미 나몬: 하기와라가 동료가 되었다!
그 뒤로는 한결 수월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알로호모라.
카나리 케이토: 나. 나는 흉기같은 거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 열려라 참깨.
칸나즈키 시노부: 기다리고 있었단다. 전용실에 작두 있는뎅. 나중에 가져가던가.
후루미나미 나몬: Love is open door.
이바라 쿠리스: 흉기…? 어제 썼던 삽이 있긴 해.
3층에 숙소가 있는 이들을 전부 조사한 뒤에는 그들과 함께 2층으로 내려갔다.
후루미나미 나몬: 요정들이여.
캐롤 브라이트: 저는 흉기가 없어요.
캐롤은 섣불리 접촉했다가 터치를 당할 염려가 있기에 제압이 아니라 23T가 나서서 설득을 목표로 했다. 토키와 본인의 제안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캐롤을 위하기 위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나는 짐작이 갔다. 이것은 누군가가 부득이하게 터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이었다.
터치를 경계한 것이었다. 토키와가.
토키와 아유키: 그럼 가자. 다음은 마유즈미의 방이야.
나이토 유즈루: 아. 이제 끝이 보이네!
결과적으로 캐롤의 숙소에도 흉기는 없었으니 자연스래 그녀도 우리에게 합류하게 되었지만, 토키와는 그 와중에도 캐롤과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저번 재판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인가?
터치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으세요?
그녀와 가장 가까워보였던 나나시가 흔들렸으니 토키와도 흔들린 걸까. 그런 관점으로 보면 터치를 받은 이들이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 자체엔 모순이 없었다.
나나시…
우리가 캐롤의 숙소에서 나와 마유즈미의 방으로 향하자. 이례적으로 문을 연 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유즈미가 보였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다들 들어와…
히무로 시라베: 깨어났구나.
마유즈미 나데시코: 위층이랑 캐롤 씨 방에서 난리가 나는데 어떻게 계속 자겠어! 흉기 확인하는 줄 몰랐으면 무서워서 절대 안 열어 줬을거야!
모리 레이코: 그럼 강제로 열고 들어왔을 거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럼그럼. 강제로 열고 들어왔겠지! 알로호모라!
내가 나나시의 기억에서 보았다시피. 마유즈미의 방에는 흉기가 없었다.
나나시.
모리 레이코: 사람이 많아지니 처음보다 훨씬 빨리 끝나는군. 이것이야말로 공리지.
이바라 쿠리스: 이제 나나시만 확인하면 숙소 수색도 대충 끝나네. 끝나면 밥 먹으러 가자.
토키와 아유키: 이후 전용실도 수사할 테니 다들 양해해주길 바랄게.
카나리 케이토: 난 전용실에도 흉기 없다! 알아들었지?
모리 레이코: 굳이 식사를 끝낸 뒤에 전용실을 수사해야 하나? 지금 하면 될 텐데.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우리 좀 그만 굶겨라. 한창 먹을 애들 굶기는 건 아동학대야!
나나시의 숙소 문까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가 무던히 떠들었음에도. 그의 문 너머에선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마유즈미가 잠에서 깨어난 데에 반해 나나시는 아직 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잠에 빠져 있다고?
캐롤 브라이트: …….
캐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낯빛이 밝지 않았다.
히무로 시라베: 나나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캐롤 브라이트: 저도 잘… 모르겠어요.
후루미나미 나몬: 요정들이여.
마지막으로 후루미나미가 나나시의 숙소 문을 열었다. 우리는 창백해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나시의 모습을 보았다.
토키와 아유키: ……어.
히무로 시라베: 나나시?
캐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나나…!
23T5U130: 죽은 건 아니야. 걱정하지 마. 나나시한테 접근하지 말고.
23T가 기계음을 내며 나나시의 곁으로 다가갔다.
후루미나미 나몬: 저거 진짜 괜찮은 거야? 네가 뭘 알길래 그래.
23T5U130: 기억을 떠올리는 충격으로 쓰러진 것 뿐이야.
캐롤 브라이트: 잠깐만요. 의식을 잃으신 거라면 제가…
캐롤이 나나시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23T는 손을 뻗어 오지 말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23T5U130: 네가 깨웠다간 엉뚱한 걸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깨울게.
히무로 시라베: 엉뚱한 것?
23T는 나나시의 어깨를 잡고 몸을 일으킨 뒤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23T5U130: 일어나. 나나시. 일어나.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몽롱한 잠에서 깨어나는 그 감각에서 내 시야가 무언가와 겹쳐졌다. 셀로판지. 내가 전용실에서 전화 박스같은 그 기계를 보았을 때 겪었던 체험과 똑같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일어나."
…노바디?
"일어나. 내 친구."
"노바디!"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킨 뒤 허공에 손을 뻗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듯이.
그리고 실망감을 느낀 채 손을 멍하니 바닥에 떨구었다.
"…너구나."
23T5U130: 일어나. 나나시.
눈을 뜨자마자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이 어깨가 드러난 복장은 역시 결코 따뜻하지 않았다. 바닥에서 하루를 꼬박 지내버린 건가…? 그럼 추울만도 한데.
멍하니 내 방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나는 물었다.
나나시: 뭐야. 왜 다들 여기에 있어…?
모리 레이코: 흉기를 찾으러 왔는데 쓰러져 있길래 죽은 줄로만 알았다.
23T5U130: 어젯밤 침대에 올려주고 갈 걸 그랬어… 몸은 괜찮아?
나나시: 괜찮긴 해. 그보다…
카텟 기관. 카텟 기관. 카텟 기관.
카텟.
나나시: 카텟 기관! 나 떠올렸어. 히무로. 떠올렸다고!
히무로 시라베: 카텟 기관에 대해서?
나나시: 맞아. 난 카텟 기관의 일원이었어. 메리라는 사람이 날 알고 있었어. 나랑 그 사람은 구면이었던 것 같아!
히무로가 내 팔죽지를 잡고 물었다. 그의 동공이 조금 커진 것이 보였다.
히무로 시라베: 정말이야?
나나시: 정말이야! 그리고 23T도 나와 구면이었어. 구면이라기보다는 아는 사이에 가까웠던 것 같아. 나랑 23T랑 시라유키 히메리라는 사람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쏟아내다 멈추었다.
"미안하지만 댁 곁의 위인께서 우리에게 저지른 건 훨씬 심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시라유키 히메리. 이 살인자야."
살인자?
히무로 시라베: 계속 말해 줘. 나나시. 뭘 본 거야? 우리는 여기에 왜 갇히게 된 거지? 모노로그의 정체는 뭐야?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히무로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뇌가 멈췄다.
나나시: 히무로. 잠깐 팔 좀…
히무로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히무로 시라베: 23T가 너와 아는 사이라고 했지. 카텟 기관이 언제부터 이런 인공지능을 만들 정도로 발전했지? 나나시. 혹시 네 기억은 내 기억들보다 몇 년 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거야?
23T5U130: 히무로. 지금 그 얘기를 여기서 전부 다 할 순 없을 거야.
23T가 나에게서 히무로의 팔을 떼어내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카텟 기관엔 관심 없다. 중요한 건 밥이지. 배고파!
이바라 쿠리스: 밥 타령좀 그만 못 하냐?!
토키와 아유키: 시간도 되었으니까 지금은 일단 식당으로 가자. 나나시가 당황하고 있잖아. 잠도 덜 깬 사람을 붙잡아서 대답을 들으려고 해도 잘 안 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무로는 머뭇거리다 결국 손을 자신에게로 거두어들였다.
히무로 시라베: 그래. 알겠어… 이후 네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정리가 되면 내게 귀띔해줘.
후루미나미 나몬: 흐음. 역시 히무로는 그렇구나…
히무로는 후루미나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다른 이들을 따라나섰다. 23T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내게 마유즈미가 다가왔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나시. 많이 힘들어?
괜찮다고 대꾸하려던 내 입에서 섬뜩한 웃음이 나왔다. 남을 속이기에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나나시: 조금 그래.
그렇지만 재판 이후의 고통을 겪기 싫다고 죽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고통스러울지라도 살 수밖에 없는 팔자였다.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나시: 그래도 가야지… 마유즈미. 먼저 가. 나는 잠을 조금 더 깬 다음에 갈 테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알겠어. 그럼… 다들 천천히 오세요…?
마유즈미가 총총 내 숙소에서 나갔다.
마유즈미는 왜 존댓말을 쓴 거지? 하는 순간. 내 시야에 그녀가 들어왔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눈길이 가는 그녀. 내 눈에 들어온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그녀.
나나시: 캐롤… 씨.
캐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저희. 이야기를 나눠 보아요.
곧 도착한 나나시를 포함해 모두가 모인 뒤 우리는 식사를 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다들 식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몇몇 사람에 속했다. 식욕이 그다지 넘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처럼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일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가 얼추 마무리된 뒤 토키와는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토키와 아유키: 오늘의 수색으로 다들 마음이 상했으리라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것 말고도 미도리카와가 죽게 만든 것까지… 면목이 없었어.
토키와 아유키: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불합리하게 들리겠지만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
마유즈미 나데시코: 사과 안 해도 돼. 토키와.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도 나이스 판단이었어! 뭐 내통자들이 버젓이 흉기 받으면서 우릴 노리는데 바로 없애버린 건 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말이야.
모리 레이코: 대항 수단이 사라졌다는 것은 뼈아프지만 총조차 통하지 않는 자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비수를 손에 쥐고 있는다면 십중팔구 비수들은 우리를 향하게 될 것이다.
모리는 후식으로 양갱을 씹으며 잘도 말했다.
나이토 유즈루: 그래도 걱정은 돼. 저것들이 우리를 노리면 정말 방법이 없잖아. 내가 아무리 그걸 막으려고 해도 난 머리가 안 좋으니까 언젠간 놓치고 말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흉기를 가지고 있는 건 지금 내통자들 뿐인데 설마 그렇게 뻔하게 오겠냐?
나이토 유즈루: 너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봐. 아까까지만 해도 흉기를 7개나 가지고 있던 놈이 할 소리냐. 대가리 대!
나이토가 자신의 옆에 앉은 하기와라를 향해 주먹을 꺾어 뚜둑 소리를 내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아아악! 형님! 한번만 봐 주세요! 기사시잖아요! 기사답게 한 번만 봐 주세요!
나이토 유즈루: 아오. 혓바닥만 길어선… 알겠어. 봐줄게.
하기와라 우시오: 존나 쉽네.
토키와 아유키: 그래도 현재 내통자들만이 흉기를 소지한 건 사실이니까 곧바로 우리를 노리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좀 있다가 전용실도 한 번씩 수색할 테니 협조해주길 바랄게.
이바라 쿠리스: 알겠어. 다들 협조해줄 거지?
카나리 케이토: 으. 안 내키는데…
칸나즈키 시노부: 뭐?! 전용실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왜?! 뭔가가 있어서?!
카나리 케이토: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보여주면 될 거 아니야!
다른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나는 그것을 들었다. 하지만 내 의식의 반절 정도는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나시의 정체에 대해. 나나시가 가지고 있는 실마리에 대해. 나는 줄곧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 조금 의아한 게 있는데. 내통자는 엄연히 우리의 내부에서 여러 술수를 꾸미기 위해 있는 거잖아?
후루미나미 나몬: 내통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내통자는 쓸모가 없어져. 왜 모노로그는 굳이 내통자의 정체를 밝힌 걸까?
23T5U130: 내통자를 밝히면 우리에게서 고립시킬 수 있으니까. 자신만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한 것일 테야.
그럼 지금 카이다와 야가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모노로그는 무엇을 시키기 위해 두 사람의 정체를 밝힌 걸까?
모노로그: 알고 싶나?
모노로그가 식탁 밑에서 솟아올랐다.
카나리 케이토: 우왁! 젠장. 적응 안 되게!
마유즈미 나데시코: 응? 이 정도면 슬슬 적응이 되지 않아? 나도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조금만
카나리 케이토: 입 닥쳐!
마유즈미 나데시코: 즐! 너도 진짜 밥맛이야.
히무로 시라베: 왜 왔지. 모노로그?
모노로그: 일찍 일어나서 하는 짓이 고작 숙소 수색인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 올라왔다.
23T5U130: 그게 뭐 어때서?
나이토 유즈루: 맞아. 이 치사한 자식아. 내통자를 써? 반칙을 쓰고 자빠졌으면서 당당한 거 봐. 수치를 좀 알아라!
모노로그: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이 쓰는 법이다. 나를 부끄러움 모르는 자로 기억하고 싶다면 너희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어? 그런 면에서 너희는 오만하고 어리석다. 조사에 힘도 쓰지 않다니.
나이토 유즈루: 야. 네가 뭘 알아! 우린 여기에서 나가려고 장미밭도 존나게 걸어가봤거든!
하기와라 우시오: 잠깐 기다려 봐봐. 모노로그북. 혹시 조사할 곳이 더 생겼다고 말하는 거야?
모노로그는 피식 웃으며 몸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긍정.
토키와 아유키: 정말?!
모노로그: 오늘은 1층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건가? 5층으로 올라가 본 적 또한 없는 것 같군.
히무로 시라베: 1층에 뭐가 있다는 거지?
모노로그: 한번 조사해보지 그래.
알파걸의 살인게임에서 재판 후에 새로운 공간이 열렸듯이. 탑 또한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는 뜻인가.
토키와 아유키: 모노로그가 말한 적이 있지? 우리가 학급재판에서 검정을 제대로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층이 개방된다고 말했어.
23T5U130: 맞아. 그랬지.
모리 레이코: 그렇다면 어떤 시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를 통해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내통자들이 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전용실 조사를 그 다음으로 미룰까?
…이상한데?
히무로 시라베: 하지만 1층은 1층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당연한 얘기를 하네. 물은 축축하다!
히무로 시라베: 내 말은… 1층은 이미 개방되어 있잖아. 탑은 수직 형태니까 옆으로 공간이 더 개방되지도 않을 거야. 건물을 새로 만들어 붙이지 않는 이상…
번뜩이는 깨달음이 일었다.
히무로 시라베: 지금 당장 1층으로 가자.
모노로그: 그렇게 기쁜가? 이거 준비해놓은 보람이 있군.
후루미나미 나몬: 아! 알겠다! 뭔지 알겠다! 1층으로 가야 해. 이거 재밌어지겠어!
후루미나미가 식기를 내려놓고 입을 닦더니 문을 열고 달려갔다. 나 또한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이기 전 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가자!
마유즈미 나데시코: 응. 나?! 어. 맞아. 그래. 가자!
마유즈미도 얼떨결에 벌떡 일어섰다. 나와 마유즈미는 식당의 문을 열고 탑의 검은 계단을 따라 1층까지 뛰기 시작했다.
이바라 쿠리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하기와라 우시오: 따라가봐야 알지. 가즈아아아!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키와 아유키: 인원을 나누자. 1층을 조사할 사람들은 히무로를 따라가 줘. 5층을 조사할 사람들은 나를 따라오고.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왜 그렇게 서둘러? 말 좀 해줘!
마유즈미가 내게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1층에 무언가가 있다면.
후루미나미가 어딘가로 걸어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점점 확신이 들었다.
1층은 그저 1층일 뿐이다. 탑이 증축된 것이 아니라면 1층에는 아무것도 없다. 잠겨있는 문 따위도 없었으니 1층에는 조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1층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거구나.
히무로 시라베: 1층에 있지는 않을 거야. 우리가 찾는 건…
지하로 진입할 방법을 찾아 내.
히무로 시라베: …지하에 있을 거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에 없었던 지하와,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직선의 계단 뿐이었다. 그 계단은 기둥을 감싸지 않은 채 그저 지하로 내려갔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지하로 가는 길이 열린 거구나! 그러니 1층을 확인하라고 말한 거였어!
히무로 시라베: 지하가 열렸듯이. 5층에는 6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생겼을 거야. 일단 빨리 가 보자. 후루미나미가 먼저 무슨 일을 저지르려 한다면 막아야 해.
히무로 시라베: 만약 중요한 것. 가령 흰 물건 같은 것이 그녀에게 먼저 탈취당한다면 생존은 점차 암울해져. 비극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흰 물건을 모노로그에게 넘길 사람이 그녀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지금 다 말해줄 필요 없어! 중요하면 일단 빨리 고고씽하자!
마유즈미의 말이 옳았다. 나는 계단을 두 개씩 넘으며 내려갔다. 계단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가운데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들도 들렸다.
이건 무슨 소리지? 미지의 영역을 지레 경계하게 되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거의 다 온 것 같아!
음악 소리 같은 것이 점점 커졌다. 계단 너머로 새어나오는 빛도 점점 강렬해졌다.
바닥을 딛고. 계단의 끝에 다다른 우리는 화려한 공간을 보았다.
오감을 전부 열어둔 찰나동안 나는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주된 색깔은 검정과 빨강의 교차. 그 위를 오색 형광이 수놓았다.
빠른 템포의 음악. 무언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움직이는 소리. 굴러가는 소리와 터지는 소리. 누군가가 환호하는 소리. 시끄럽고 불편했다.
창문이 없었다. 지하니까 당연하겠지만 환기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지 공기가 무거웠다. 답답함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 지하 시설 자체가 이용자들을 긴장시키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고 느꼈다. 정보가 과도하게 많았다. 방 전체에 신경을 집중했다간 몇 분도 안 되어 지칠 것 같아. 나는 사물보다 인물을 중점적으로 풍경을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온 하기와라가 내 시야 앞에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펄쩍 뛰어올랐다.
하기와라 우시오: 카지노다아아아!
히무로 시라베: 카지노…?
도박장.
히무로 시라베: 여기가 말로만 듣던 도박장인가?
정확히는 세상이 변질되기 전의 도박장이었다.
이 곳은 내가 알던 풍경과 사뭇 달랐다. 폐쇄적인 공간인 것을 제외한다면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이 곳은 관광 시설에 가까울 만큼 화려하고 오락적이었다.
날붙이도 마취제도 없었고, 도박의 형식 또한 사람과 사람이 진행하는 도박 말고도 기계로 진행하는 도박이 더 많은 듯 보였다. 대몰락 이후 저런 기계를 섣불리 설치했다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부가 해체되어선 돈을 뱉어내고 버려질 텐데…
내가 속해본 기억이 한 번도 없는 풍경은 영 낯설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우와. 완전 뽀대작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유즈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각이 피곤해질 정도의 풍요로움과 화려함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잠시 내 목적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바라 쿠리스: 시설이 전문적인 건 좋긴 한데. 여기서 놀기라도 하란 거야?
카나리 케이토: 이건 마음에 드네. 마음에 들어.
칸나즈키 시노부: 재밌겠다! 헤헹.
점차 다른 이들도 카지노에 도착하며 저마다의 소감을 털어놓았다. 카나리는 중얼거리며 씨익 웃었다. 나 또한 이론과 책 안에 들어있지 않은 대몰락 이전의 도박들을 목전에 두고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우와아아… 잠깐! 이럴 때가 아니야! 히무로. 후루미나미를 찾아야지!
히무로 시라베: 맞아. 그랬지.
마유즈미가 내 팔 소매를 잡고 당기는 것을 계기로 나는 주변 환경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르게 걷던 마유즈미와 나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 ??: 그녀에 대해서는 마음 놓으세요.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실 테니.
미성의 저음. 떨림 없는 목소리. 무게추를 연상시키는 그 음성 쪽으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얌전하게 앉은 그가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
그는 쇠구슬을 조작하는 도박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야가미 토가: 다들 활기를 찾으셨군요. 도박장이 들어오는 것에 그렇게 좋아하시면 곤란할 텐데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
살인자와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 마유즈미와 나는 긴장한 채 그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몸을 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박이나 하고 있다니. 모노로그가 다른 이들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인가?
야가미 토가: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이라니. 그의 말대로 된 것 같군요.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이 하기와라가 후다닥 다가왔다.
하기와라 우시오: 지금 누가 야가미랬어. 어랍쇼. 진짜 야가미가 빠칭코를 하고 있네?!
야가미 토가: 귀신같이 찾아오긴. 걱정 마세요. 지금은 모노로그 씨에게서 어떤 지령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내 말은 존나 안 어울린다고. 모노로그고 뭐고 관심 없고.
야가미는 능숙한 솜씨로 도박 기계를 조작했다. 쇠구슬이 상자 밑으로 계속 쌓여갔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저거 봐. 쇠구슬이 나오는 기계인가 봐…
히무로 시라베: 재화를 쇠구슬로 교환하는 구조인가?
우리는 귓속말을 하며 야가미가 조작하는 기기의 기능을 유추하려 애썼다. 그러다 하기와라는 저 도박 기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음을 눈치챘다.
히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저 도박 기계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하기와라 우시오: 뭐?! 너희 빠칭코를 몰라? 진짜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스타워즈도 몰라. 바다거북스프도 몰라. 빠칭코도 몰라. 이게 사람 사는 거야?! 그 세 개 모르면 부모를 아동학대 죄목 물어서 감옥에 잡아넣어야 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옳소!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야가미 토가: 이 기계에 크레딧을 넣으면… 됐습니다. 적당히 이해해 주세요.
야가미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레버를 계속 당겼다.
히무로 시라베: 전문적인 도박 기계는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야가미가 실력자인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쟤 초고교급 협상가 아니야. 초고교급 빠칭코맨이야. 돈 복사가 요기잉네!
실력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야가미 토가: 바다뱀과 엮이면서 요령을 익혔을 뿐입니다. 그것만 알면 쉽죠.
모노로그가 자선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 카지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재화는 어디에서 구하지?
하기와라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하기와라 우시오: 쩐은 어디서 났냐. 크레딧이라고 했지? 그거 모노로그가 줘? 그럼 나도 내통자 할래.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진짜로. 자기 원수도 죽이게 해 주고 맵핵 써 주고 빠칭코 시켜주면 갑으로 모셔야지.
야가미 토가: 시끄럽습니다. 집중 안 되게… 여러분들의 다이얼로그를 살펴 보세요. 새 항목이 생겼을 겁니다.
다이얼로그의 새 기능? 나는 주머니에서 다이얼로그를 꺼내 조작해 보았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앗?!
히무로 시라베: 이건…
진짜였다. 다섯 번째 메뉴가 나타나 있었다. 네 번째 항목인 정보 수집 밑에 크레딧 사용 현황이라는 다섯 번째 항목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그것을 누르자 다음과 같은 글씨가 나타났다.
현재 보유 크레딧: 400000 크레딧
야가미 토가: 크레딧이 얼마나 있나요?
하기와라 우시오: 5만.
히무로 시라베: 말해주지 마.
내 말이 하기와라보다 한 발자국 늦게 나왔다. 이 크레딧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몰라도 재화인 이상. 내통자에게 알려줘 좋을 일이 없었다. 하기와라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뒤늦게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 썅. 실수했다!
야가미 토가: 표정을 보아하니 두 분도 하기와라 씨보다 사정이 못하진 않으신 것 같군요? 아마 크레딧이 할당되는 기준을 고려하면 마유즈미 씨 또한 많은 크레딧을 보유하고 계실 테니까요.
마유즈미는 그렇게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크레딧이 분배되는 기준은 뭐지? 지금 물어봐야 하나. 특정한 목적이 있는 걸까. 야가미를 상대로는 카드 패를 엿보려는 시도조차 꺼려졌다.
레버를 당기고 쇠구슬을 상자에 받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왜 저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우리에 비해 가지고 있는 이점은 명석한 두뇌도 강인한 육체도 아니었다. 내통자라는 신분이 가장 큰 이점이었다.
야가미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는 우리를 서서히 누르고 있었다.
어쩌면 총이 통하지 않던 카이다 쿠로하보다 야가미 토가 쪽이 더 위협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야가미 토가: 다들 밑전이 충분하시니 기쁘시겠어요. 카지노 곳곳의 크레딧 지급기에 다이얼로그를 접촉하시면 크레딧을 출금하실 수 있습니다. 그걸 여러 기계에 넣어 도박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빠칭코 한 판에 100크레딧이니까 도박 하기엔 충분하네! 하하! 바로 한 판 간다!
야가미 토가: 펑펑 소비하진 마세요. 쓰고 싶을 때 못 쓰실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만을 남기고 야가미는 계속 레버를 돌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인생 한 방이야! 가즈아!!
하기와라가 왔던 그대로 후다닥 사라져버리자 나와 마유즈미의 눈빛이 교차했다. 우리는 동시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히무로 시라베: …도망칠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도망치자! 36계 줄행랑!
야가미 토가: 조금만 더 얘기를 나누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히무로 시라베: 아니.
나와 마유즈미는 당장 달렸다. 다리를 계속 움직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야가미가 쫓아오는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는 후루미나미의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어디야. 어디에 있지?
야가미와 얽히며 시간을 버렸다. 흰 물건을 먼저 찾아냈다면 없애고도 남았기에 조급함이 앞섰다.
카지노는 분명 넓었지만 대단히 크지는 않았다. 밀폐된 지하 공간 안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을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바닥도 뚫는 이상현상에 휘말리지 않는 한 분명.
마유즈미 나데시코: 허억… 허억… 히무로. 이제 따돌린 것 같아…
히무로 시라베: 따돌린 게 다가 아니야. 저기를 봐.
카지노의 반 바퀴를 돌았을 때 즈음 우리는 후루미나미를 찾아냈다. 자신을 찾아달라는 듯이 깃발 같은 것을 들고 있어 찾기가 수월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저기 후루미나미다!
히무로 시라베: 드디어 찾았군…
조금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마주하자. 무표정으로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그녀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계속 보아도 놀라운 연기였다. 감정을 저렇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마유즈미 나데시코: 후루미나미. 같이 가지 왜 먼저 달려간 거야!
흰 물건을 찾아내거나 없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또 기우였나.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나나시가 메리를 떠올렸기에 과도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후루미나미가 장황한 말로 비집고 들어왔다.
후루미나미 나몬: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야가미랑은 만났어? 좀 급해서 인사도 못 하고 왔지 뭐야. 그래도 내 세컨드 픽인데 좀 너무하게 대한 것 같아.
이런 소리를 들을 바에는 천천히 올 걸 그랬나.
언짢은 표정을 숨겨가며 나는 후루미나미를 향해 다가갔다. 후루미나미가 등을 대고 있는 물체를 보자 내 표정이 굳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후루미나미. 그 커다란 네모는 뭐야? 그것도 도박 기계야?
후루미나미 나몬: 글쎄. 히무로. 이게 뭐인 것 같아?
후루미나미와 나는 냉장고 두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에는 동전의 투입구와 레버. 그리고 무언가가 나올 수 있는 크기의 배출구가 달려 있었다. 대몰락 이전에 존재했다던 그것과는 형태가 조금 상이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큰 직육면체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자판기.
나는 지하에 진입했고, 자판기를 주시했다.
흰 물건이 인도하는 대로.
느낌이 많이 죽었네요 그래도 곧 재미있어 질거임…
오랜만에 자유행동 투표가 돌아옵니다
1챕터 당시에 칸나즈키 자유행동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른 자유행동 하느라 못 챙겨준 게 걸려서 일단 다음 자유행동 중 하나는 칸나즈키로 가 보려고 합니다
2챕터부터는 투표 없이 스토리 흘러가는 형식의 자유행동 또한 적극적으로 쓸 예정입니다 대충 자유행동 투표 참여 독려한다는 뜻
2챕터? 카지노? 자판기? 어라… 어째서 나 눈물이…? 어딘가 다른 동인소설의 향기를 느끼셨다면 제대로 짚으신 겁니다 베껴온 건 아니지만 솔직히 2챕터 짜며 영향을 안 받았다고도 할 수 없어서 미리 자진신고합니다
혹시 시간이 남으신다면 여러분들의 단크 타워 최애를 단편으로 한 입 더 즐기실 수 있는 인기 투표에 참여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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