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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5

by 도타싫어! 2021. 3. 16.

우리는 그 여섯 명이 열린 문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리라 생각했다. 그럼 우린 그들에게 격려의 말이나 몸조심하라는 말을 몇 마디 할 것이라고, 적어도 그 정도의 틈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여섯 명은 잔상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문이 쿵 하고 닫히는 둔탁한 소리 뿐이었다.

 

롤 브라이트: 무슨…?

 

루미나미 나몬: 짜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마술사 모자를 쓴 후루미나미가 지팡이를 땅에 짚었다. 칸나즈키는 이마에 손을 짚고 중얼거렸다.

 

나즈키 시노부: 안 보여. 어디에도 안 보여. 사라져버렸어.

 

씨익 웃고 있는 모노로그를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음을 느꼈다.

 

나시: 무슨 짓을 한 거야. 모노로그.

 

모노로그: 당황하지 마라. 그들은 당분간 돌아올 수 없다. 물론 너희 쪽에서 찾아갈 수도 없지. 그들이 간 곳은 일종의 고립계다. 나는 예외지만.

 

키와 아유키: 모노로그 너… 우릴 분리시킨 거구나.

 

모노로그: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

 

바라 쿠리스: 야. 이건 반칙이잖아… 야. 모노로그! 이거 열어! 열라고!

 

이바라가 카지노의 커다란 문에 달려가 그것을 퍽퍽 두드렸다.

 

바라 쿠리스: 이런 식일 줄 알았으면 보내주지도 않았어. 모노로그! 열어! 이건 무효야!

 

23T5U130: 잠깐 비켜 줘. 이바라!

 

이바라가 뒤돌아 23T를 보았다. 23T는 두 팔을 바닥에 대고 문을 향해 섰다. 23T의 팔다리에서는 위이잉 하고 모터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것이 문으로 쇄도하기 위한 준비 자세임을 눈치챘다.

 

이바라가 후다닥 문 앞에서 달아나자마자 23T가 검정과 연보라색의 잔상으로 사라졌다. 쾅!

 

나리 케이토: 으아악! 기계 너 진짜 미쳤어!

 

내 머리카락이 충돌의 여파로 마구 휘날릴 정도로 강하고 빨랐지만. 문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모노로그: 부질없는 짓을벌어진 일은 무슨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 해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너희들 또한 볼 수 있을 테니까.

 

롤 브라이트: 해변이라고요?

 

해변.

 

그 단어를 듣자마자 내 머리에 한 장소가 스쳐지나갔다.

 

화면에는 웬 해변밖에 나오지 않았다. 32개의 모니터에 모래사장과 파도치는 바다만이 비쳤다. 영상이 드문드문 끊기며 화질도 좋지 않았기에. 32개의 화면이 각도만 다르게 한 같은 장소를 비치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시: 방송실. 모니터실!

 

키와 아유키: 맞아. 그래. 해변! 그 곳의 모니터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볼 수 있을 거야. 가자!

 

모노로그: 잠깐. 너희들이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너희 모두는 저 너머에 있는 일곱 명 중 죽지 않을 만한 사람을 정해야 한다.

 

나리 케이토: 무슨 개소리야. 죽지 않을 사람을 정한다니!

모노로그: 마음 편하게 정해라.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자를 골라 봐라.

 

모노로그: 마음을 무겁게 먹을수록 괴로워질 테니. 편하게 먹는 것이 나을 거다. 진심이야.

 

바라 쿠리스: 너 진짜 장난해?! 사람 목숨이 장난인지 알아. 망할 자식이!

 

나시: 잠깐. 모노로그. 너 방금 뭐라고 말했어?

모노로그: 마음을 무겁게 먹을수록 괴로워질 테니. 편하게 먹는 것이 나을 거다. 진심이야.

 

나시: 그거 말고! 그 전에!

 

나는 내가 모노로그의 말을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나시: 일곱 명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모노로그: 후후후후

 

나시: 일곱 명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고. 모노로그!

 

모노로그는 계속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내게 불안을 더했다. 내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웃음이 나는 두려웠다.

 

다이얼로그가 울리며. 화면에 글자가 나타났다.

 

< 지원할 대상을 선택하세요. >

 

하기와라 우시오 □                        모리 레이코 □  

 

야가미 토가 □                                카이다 쿠로하 □  

 

마유즈미 나데시코 □                    히무로 시라베 □ 

 

나이토 유즈루 □   

 

< 투표는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한 대상을 지원할 수 있는 인원은 두 명이 최대입니다. >

 

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가… 저 곳에?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모노로그는 소리쳤다.

 

모노로그: 의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8초 남았다!

 

키와 아유키: 잠깐. 모노로그. 시간을 더 줘!

 

토키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노로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모노로그: 그럴 순 없다. 투표해라. 4초 남았다!

 

나시: 무슨 소리야. 아니 잠깐!

 

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히무로 시라베' 항목이 비활성화되었다. 두 명이 이미 그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루미나미 나몬: 좋았어. 내 거다!

 

그 중 한 명이 누구인지는 명확해졌다. 내 손가락은 무엇을 눌러야 할지 선택하지 못했고. 눈이 몇 번 깜빡여지더니 마침내 나는.

 

나시: 앗. 어어?! 안 돼!

 

다이얼로그를 놓치고야 말았다

 

나리 케이토: 다 골랐어. 다 골랐다고! 이제 어쩌란 거야?

 

모노로그: 종료! 종료! 선택은 끝났다!

 

나시: 크. 큰일났다

 

눈 앞이 깜깜해진 나를 모노로그가 비웃었다.

 

모노로그: 그리 낙담 말아라. 투표하지 못한 자들은 무작위로 경주마가 배정되니까. 빠르게 판단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도록.

 

나시: 경주마?

 

모노로그: 새 시스템이 개방되었으니. 규칙 또한 늘어날 것이다.

 

또 규칙이 추가되었다며 당혹감을 느낀 나는 더욱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다.

 

규칙 19: '후원자' 는 크레딧을 사용해 '경주마' 를 다양한 형태로 후원할 수 있다.

 

규칙 20: 경주마가 사망할 경우. 그 경주마를 후원하고 있던 후원자 또한 함께 죽는다.

 

규칙 21: 물품을 후원하거나 탑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의 금액에는 변동이 생긴다.

 

규칙 22: 최초의 피해자가 발견되는 순간 후원 제도는 종료되며, 경주마들은 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키와 아유키: 이게 뭐야?!

 

모노로그: 지금부터 너희들의 경주마와 너희들은 운명을 같이하게 된다.

 

모노로그: 경주마가 살아남으면 너희도 살아남는다. 경주마가 죽으면. 경주마를 지원하는 자들 또한 죽는다.

 

나시: 그냥 우리도 죽게 된다고? 살인에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23T5U130: 제대로 걸렸어. 이런 짓을 하다니

 

나리 케이토: 말도 안 돼. 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왜 나까지 죽어야 하는데?! 저기에 있는건 저 자식들 선택이잖아. 난 선택 안 했단 말이야!

 

모노로그: 몸을 사리면 줄곧 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나? 방에 틀어박히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잘못 생각한 거다.

 

모노로그: 그 누구도 살인 게임에서 안전해서는 안 된다. 설령 내통자마저도 그렇지.

 

루미나미 나몬: 이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저 쪽에서 경주마가 죽으면 후원자도 죽을 뿐. 지금 우리끼리도 서로 죽일 수 있는 거지?

 

후루미나미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모노로그: 그렇다.

 

키와 아유키: 최악이잖아…! 이제 살인의 두 경우를 다 막아야 한다는 거야?!

 

나리 케이토: 이건… 말도 안 돼. 난 몰라. 난 모른다고!

 

카나리는 꽉 다문 턱을 부들부들 떨며 다이얼로그를 소중히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게 자신의 심장인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자신의 다이얼로그를 빼앗지는 않을까 경계했다.

 

곧 그는 우리들 사이에 갈 곳 잃은 시선을 던지다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나즈키 시노부: 카나리. 어디 가니?

 

나리 케이토: 닥쳐. 닥쳐!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카나리는 내려올때보다 더한 울상을 지으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루미나미 나몬: 흠. 누굴 선택했길래 저런 반응을 짓는 걸까? 알아볼 가치가 있을 것 같군요

 

후루미나미는 사냥모자를 쓴 채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롤 브라이트: 여. 여러분. 어떻게 하죠?

 

나즈키 시노부: 어쩌긴. 난 방으로 돌아가야지.

 

칸나즈키도 총총 사라져버렸다.

 

키와 아유키: …우선. 모니터실로 가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바라 쿠리스: 걔네들 어떻게 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잖아!

 

23T5U130: 게다가 해변의 누군가가 죽은 것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죽을지도 몰라. 다들 누굴 후원하기로 결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그 사람이 죽으면 너 또한 죽으니까.

 

나시: 이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다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크레딧 항목을 눌러 보았다. 나는 순간 다이얼로그를 놓쳤고. 빠르게 판단하지 못했기에 선택도 하지 못했다. 경주마가 무작위로 정해진다고 모노로그는 말했었지.

 

내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에 큰 반응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 글자를 보자마자 그 모든 결심은 사라져버렸다.

 

< 당신의 경주마는 모리 레이코 입니다. >

 

나시: 아아 이런 세상에!

 

 

 

 

 

 

 

야가미는 그 거구치고는 빨랐다. 하지만 카이다보다는 느렸다.

 

야가미는 달리는 동시에 내게 팔을 휘둘렀다. 추진력을 가진 채 다가오는 손아귀는 포유류의 앞발이라기에는 갈퀴 같았다. 나는 야가미의 어깨와 팔의 움직임을 끝까지 바라본 뒤 고개를 홱 뒤로 젖혀 그의 손을 피했다. 뒷걸음질로 계속 피할 수는 없겠지만 짧은 틈은 벌 수 있었다.

 

그 짧은 틈이. 나이토 유즈루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이토 유즈루: 뿌워어어!

 

이상한 괴성과 함께 나이토가 주먹을 내질렀다. 턱에 주먹이 제대로 꽂히자 야가미는 짧은 거리를 밀려나 털썩 쓰러졌다.

 

가미 토가: 으윽…!

 

이토 유즈루: 다 튀어!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나이토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야가미를 주시하며 팔을 자신의 머리 높이에 두었다. 안면을 보호할 수 있는 하이 가드 자세였다. 한쪽 무릎을 약간 세우고 손을 튀어나오게 둔 그의 모습에선 무에타이의 모습 또한 깃들어 있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으아악! 야가미! 갑자기 왜 그래?!

 

이토 유즈루: 빨리 가! 가라고!

 

기와라 우시오: 아니 갑자기 무슨

 

모리는 주저하지 않고 마유즈미와 하기와라의 팔을 잡아당긴 채로 달렸다. 야가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나 또한 발 밑의 자갈들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투석(投石)에 나이토가 휘말리지 않게 조절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했다.

 

기와라 우시오: 야! 손 놔! 너 나보다 느리잖아! 방해돼!

 

리 레이코: 알겠다!

 

유즈미 나데시코: 얘들아. 우리 나이토를 도와야 해! 이럴 때가 아니야!

 

기와라 우시오: 마유즈미 너 정신이 존나 나갔니?! 저 똑대 상대로 한 번 잡히면 우리 다 죽었다고 봐야 해!

 

리 레이코: 이 곳에서 붙잡히는 순간 우리는 짐이 된다. 방해물이 되는 것이다! 공리에 기여하고 싶다면 맞지 않는 직책을 고집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정해라!

 

유즈미 나데시코: 그렇지만…! 나이토를 이렇게 버리고 갈 순 없잖아!

 

무로 시라베: 버리고 가는 게 아니야. 온전히 싸울 수 있게 돕는 거지. 우리의 도움 없이도 나이토는 야가미를 이길 수 있어.

 

유즈미 나데시코: 정말?

 

무로 시라베: 정정할게. 나이토는 야가미를 이겨.

 

내가 관찰한 바로는. 확실하게 그랬다. 나이토는 자세를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간 것은 야가미의 쪽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서히 가까워져오는 그를 보며. 나이토가 말했다.

 

이토 유즈루: 썅… 결국 이 날이 오긴 오는구나.

 

가미 토가: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당신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토 유즈루: 그것도 내가 할 말이야. 왜 갑자기 이러는지는 알고 싸울 수 없을까?

가미 토가: 저를 쓰러트리고 나서 들으시죠. 진정한 기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토 유즈루: 그래. 넌 우리를 잡으려 들고. 난 너에게 맞서야 해. 그래야 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이토 유즈루: 그럼 들어 와. 이 새끼야.

 

쾅 소리와 함께 두 거한이 맞붙었다.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본받기 위해 관찰하고 싶을 정도의 접전이었다. 둘은 몸을 움직일 때의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폭력과 힘이 그들 사이의 언어처럼 보였다.

 

야가미는 하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복부에 팔을 두고 나이토의 공격을 막아내는 그의 모습은 뿌리를 굳게 내린 나무 같았다. 그는 얼굴과 명치. 배에 전해지는 위험한 타격들을 버텨내며 묵직하게 팔을 휘둘렀다.

 

나이토의 경우에 그는 나무를 할퀴어대는 한 마리의 표범 같았다. 야가미가 특히 거대할 뿐 그 또한 거한이었음에도 나이토는 무척 민첩하게 움직였다. 온갖 무술과 운동을 배워본 바 있었다는 초고교급 승부사의 이름에 걸맞게 그는 두 손과 팔 뿐만 아니라 팔꿈치. 무릎. 다리와 발동작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했다.

 

나이토는 고개를 홱 숙여 야가미가 휘두른 오른팔을 피했다. 공기를 가르는 훙 소리가 들렸다. 나이토의 고개가 곡선을 그리며 그의 몸 전체가 야가미의 팔이 빈 쪽으로 쏠렸다. 나이토는 왼팔을 휘둘렀고, 훅을 예상한 야가미의 몸에 팔꿈치가 한 박자 빠르게 들어와 그를 찔렀다. 그럼에도 야가미는 맞은 티조차 내지 않았다.

 

야가미의 손이 나이토의 머리를 향했다. 그러자 나이토는 그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무너져 내렸다. 다리로는 야가미의 발을 퍽 걷어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야가미는 나이토의 무게에 중심을 잃고 쏠려 쓰러졌다.

 

관절기. 나이토가 다리를 야가미의 팔에 휘감았다. 그러자 야가미는 순간 점잖던 태도와 상반되는 격렬한 외침을 토해냈다.

 

멀리까지 쩌렁쩌렁 올릴 기합을 토하며 야가미는 그의 팔을 잡은 나이토를 두 팔로 들어올려 속박을 풀어버렸다. 나이토는 재빨리 팔을 놓고 바닥에 내려앉은 뒤 거리를 벌렸다.

 

야가미의 몸은 기능에. 나이토의 몸은 작용에 더욱 특화된 것 같았다.

 

야가미와 나이토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거리를 좁히다가. 어느 순간부턴 발을 땅에 세게 구르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시 한 번 둘이 맞붙었다.

 

야가미가 나이토의 공격을 팔로 받아내며 순간 그의 머리카락을 꽉 붙잡았다. 나이토의 신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충분히 거리를 벌렸음에도 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다음 나이토의 외침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토 유즈루: 이 새끼가 진짜!!

 

나이토는 야가미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 뒤에는 맷집 싸움 비슷한 양상이 되었다. 그 뒤로부터는 본받을 만한 움직임이 없었다. 내가 따라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본받을 수 있을리가.

 

야가미는 머리카락을 붙잡지 않은 손을. 나이토는 멱살을 붙잡지 않은 손을 되는 대로 상대에게 내질렀다. 어깨의 움직임과 타격으로 서로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그들이 상대를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 그들은 발을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야가미의 단안경은 이미 해변 어딘가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싸우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들 둘 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문 채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 배. 목. 쇄골. 명치. 급소란 급소에 모든 공격을 허용하는 자기파괴적 싸움에 우리의 도망치는 발걸음마저 멈추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토해냈다. 고통을 이겨내려는 자들의 신음이었다. 전황이 서서히 기울며 야가미는 몇 번 나이토에게 주먹을 빗맞히는 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나이토는 한 번도 주먹을 빗나가게 하지 않았다. 빗나가기엔 표적이 너무 컸다.

 

결국 나이토가 강한 타격을 야가미의 턱에 먹였을 때. 야가미의 거구는 땅에 쓰러졌다. 나이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가 일어나려는 사이 한 번 더 팔을 휘둘렀다.

 

누군가에겐 비겁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나이토는 자신이 야가미의 위치에 있었다면 야가미도 그처럼 행동했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싸움에서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여유를 부리는 것일 뿐임을. '승부사' 는 이해했다.

 

나이토는 야가미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그에게 강력한 일격을 꽂아넣었다. 훅. 어퍼컷. 팔꿈치와 로우킥까지. 한 번 쓰러질 때마다 야가미가 일으키는 몸은 점점 낮아졌다.

 

마침내 야가미는 터진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모래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야가미와 나이토 모두 잔뜩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가미 토가: 허억… 허억… 하아

 

야가미는 얼굴이 멍과 핏자국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몸 또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 쪽 무릎을 세웠다. 그것을 보는 나이토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이토 유즈루: 미친 놈아… 지치지도 않냐? 

 

가미 토가: 제가 할 말입니다… 식사 대신 기름이라도 마십니까? 괴물이 따로 없군요

 

이토 유즈루: 그러니까 왜 모노로그의 거래를 받아들였냐. 이건 다 네 업보야.

 

가미 토가: 압니다… 그렇지만 해야만 했어요. 이길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음에도

 

가미 토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해야 하는 겁니다.

 

야가미는 이를 악물고 나이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이토는 야가미를 설득시킬 수 없음을 알았다.

 

나이토는 자신을 좀먹는 야가미의 기개를 존중해 주었다.

 

이토 유즈루: 한숨 자 둬. 이 새끼야!

 

야가미가 일어서기 직전 나이토가 그의 관자놀이를 세게 후려쳣다.

 

야가미의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푹 쓰러졌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토 유즈루: 후욱 후우

 

이토 유즈루: 우아아아아아아악!!

 

나이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자처럼 포효를 내질렀다.

 

 

 

 

 

 

 

 

무로 시라베:

 

다이얼을 돌려 보았으나 들려오는 것은 규칙적으로. 빠르게 울리는 전자음 뿐이었다. 탑 안의 모두에게 닿지 못하는 그 소리가 내게는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마지막으로 울리는 경고음처럼 들렸다.

 

다이얼로그에는 이런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 통화권 이탈 >

 

무로 시라베: 통화권 이탈이라니

 

리 레이코: 분명 매우 먼 거리에서도 통신이 가능하던 다이얼로그가. 전화를 연결할 수 없다고? 심상치 않다.

 

이토 유즈루: 진짜 여기 어디야. 왜 하필 바다냐고.

 

바다 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나이토가 말했다. 야가미를 꺾을 때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그는 털썩 주저앉은 채.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맥이 없었다.

 

그의 곁에는 수갑이 채워진 야가미가 있었다. 우리가 나이토의 외침을 듣고 그에게로 돌아온 뒤. 느닷없이 발 밑의 모래에서 수갑이 하나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땅한 구속구가 없었기에 우리는 야가미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토 유즈루: 여기 탑 안이긴 한 거야? 아니면 지하에 있는 거야? 어느 쪽이던 말이 안 돼. 어디서 이런 바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기와라 우시오: ㄹㅇ. 눈을 뜨고 보니 바다라니이건 너무 이세계물이잖아! 진짜 적당히 좀 해라 그래! 뻐큐 모노로그!

 

기와라 우시오: 그건 그렇다손 치고. 바다다아아아아! 와우!!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기다려! 같이 가자!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는 하기와라를 마유즈미가 뒤따랐다.

 

리 레이코: 빌어먹을 어린애가 따로 없군.

 

이토 유즈루: 그러게 말이야. 바다가 대체 뭐라고 저 난리냐

 

무로 시라베: 다들 조심해! 바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물가에 자녀들을 내놓은 부모의 심정이 이것과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기와라 우시오: 그래! 안에 뭐가 있는지 지금 찾으러 갑니다!

 

그렇게 바닷가를 향해 달려가던 하기와라가 갑자기 몸을 홱 틀어 돌아왔다.

 

기와라 우시오: 와아악! 왓더뻑. 왓더뻑. 저거 뭐야?!

유즈미 나데시코: 왜 그래. 하기와라?

 

리 레이코: 무슨 일이지.

 

하기와라의 뒤를 쫓던 마유즈미도 발을 멈추었다. 하기와라는 그녀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은폐의 효과가 탁월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보고 놀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파도 속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꿈틀거리는 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대드. 어. 챔?"

 

그것은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몸뚱이를 힘겹게 끌며 모래 위를 기어왔다. 몸길이가 1m도 더 되었다. 그것은 기다란 자루 끝에 붙은 음침한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았고, 쩍 벌린 톱니 모양 주둥이에서는 기이할만큼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모르는 외국어로 구슬프게, 심지어 절박하게 묻는 소리 같았다.

 

"데드. 어. 체크? 덤. 어. 첨?"

 

유즈미 나데시코: 우왕! 저게 뭐야. 완전 엽기스러워!

 

기와라 우시오: 아니 저거 뭐냐고 씨발! 존나 소름끼쳐! 말을 하잖아!

 

리 레이코: 바닷가재의 일종인가…? 승부사. 저것을 보아라.

 

이토 유즈루: 싫어어어어억!

 

나이토는 눈을 꽉 감은 채 자신의 귓바퀴를 찌그러뜨리려는 것처럼 귀를 짓눌렀다.

 

무로 시라베: 잠깐. 자세히 관찰해보자.

 

위로 말아올려지는 꼬리는 잠시 그것을 전갈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것은 바닷가재와 전갈의 중간종으로 보였다.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리너구리가 존재하는 세상에 안 될 일도 없었다.

 

그것에겐 날카로운 집게발이 있었으며 주둥아리에는 그보다 더 날카로워 보이는 부리가 붙어 있었다. 파도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런 것이 몇 마리는 더 있는 것으로 보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저거. 먹을 수 있을까?

 

무로 시라베: 그건 나중에 확인해보자.

 

지금 섣불리 먹으려 들다가 역으로 먹힐지도 몰랐다. 나는 파도 안에 1m 길이의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꼴을 보는 듯 얼굴을 구긴 하기와라와, 그것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마유즈미와 함께 기절한 야가미의 곁으로 돌아왔다.

 

마유즈미는 침을 흘린 것 같기도 했다. 식욕은 좋은 징조였다.

 

기와라 우시오: 진짜 너무 징그럽다. 가재가 말을 한다고! 존나 끔찍한 혼종이야!

 

리 레이코: 저런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 없나?

 

유즈미 나데시코: 새우랑 바닷가재 아니야? 먹어봤어!

 

기와라 우시오: 나도 먹어봤지만 말을 하는 새우랑 바닷가재는 난생 처음이야. 개무섭다 진짜. 아 집에 가고 싶어! 엄마!

 

리 레이코: 입 좀 닥쳐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모두 마찬가지다.

 

이토 유즈루: 맞아! 여기에 계속 있을 바에야 차라리 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리 레이코: 승부사 넌 갑자기 왜 그러지? 바다에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토 유즈루: 몰라 이 자식아. 말도 하기 싫어

 

"데드. 어. 체크? 덤. 어. 첨? 디드. 어. 치크?"

 

가재 괴물은 '안 도와주실 거예요? 제 절박한 처지가 안 보이세요?' 이렇게 외치는 듯 애달픈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날카로운 부리가 부르르 떨렸다.

 

무로 시라베: 이 곳의 동물들은 아직도 말을 하는 모양이야.

 

이토 유즈루: 그러게 말이 안 되지만 저것들한테 발성 기관이 들어있나 봐. 존나 징그럽네… 존나 듣기 싫고.

 

이토 유즈루: …그보다 '아직도' 라는 건 무슨 뜻이냐?

 

무로 시라베: 아. 그렇지. 혼잣말이니까 신경쓰지 마.

 

대몰락 이전에는 방사능에 의한 변이종이 그렇게 빈번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적어도 대몰락 이전에는 인간의 말을 하게 된 생물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중의 누구도 대몰락 이후의 개너구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가재 괴물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마유즈미라면 개너구리를 무척 좋아할텐데.

 

무로 시라베: 일단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까이 다가가지 마. 처음 보는 생물체니까 더 관찰해둘 필요가 있을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아쉽다. 맛있어 보이는데

 

가미 토가: 끄윽. 음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야가미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가미 토가: …수갑이 내려왔군요. 지금 상황에선 올바른 판단입니다.

 

기와라 우시오: 정신이 드세요. 용사님?

 

리 레이코: 농담할 때가 아니다. 내통자. 여기가 어디냐. 당장 불어라. 여기서 나갈 방법을 당장 불어!

 

가미 토가: 기다려 보세요…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말씀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미리 말해 두는데. 절대 안 고마워! 절대로! 넌 나쁜 사람이니까.

 

리 레이코: 말 한 번 잘 했다. 서예가. 이것은 내통자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자. 빨리 불엇! 얼굴 때려버리기 전에!

 

마유즈미는 꽉 쥔 양주먹을 얼굴 앞에 대고선 복싱의 위빙처럼 머리를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무로 시라베: 이미 야가미는 얼굴을 충분히 맞은 뒤인 것 같은데.

 

유즈미 나데시코: 아. 그런가?

 

이토 유즈루: 야. 너.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는지 당장 말해!

 

나이토가 야가미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야가미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가미 토가: 저희는 지금부터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무로 시라베: 북쪽? 어째서 북쪽이지?

 

가미 토가: 모노로그 씨의 말씀에 따르면 그 곳에 문이 있습니다. 총 세 개의 문이죠. 그 안에서 시련을 다 마친다면… 저흰 다시 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토 유즈루: 이런 개같은! 세 개나…?! 진짜 미치겠네! 시련이라는 건 뭔데?!

 

가미 토가: 시련의 내용은 저도 알지 못합니다. 모노로그 씨는 저에게 시련의 내용을 귀띔해주시지 않았습니다.

 

무로 시라베: 너는 내통자고. 너는 모노로그의 명령을 받아 해변에 온 것이잖아. 그 말을 우리가 믿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마.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의 말이 맞다. 네 말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걱정은 마라. 네 손가락을 분질러 놓은 뒤 나오는 말은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가미 토가: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시련의 내용보다 유용한 정보를 말씀드리죠. 그렇다면 저를 믿겠습니까?

 

리 레이코: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손가락이 남아날 수 있는 정보를 고르도록 해라.

 

기와라 우시오: 와 시발. 같은 편 먹으면 진짜 존나 든든하다! 그저 대단하다…! 모리!!!!

 

가미 토가: 이 해변엔 저희만이 온 것이 아닙니다.

 

하기와라의 감탄을 무시하고 야가미는 말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다른 사람도 있다는 뜻이야? 우리를 따라서 들어왔나 봐! 어디. 어디에?

 

가미 토가: 저희보다 먼저 온 사람이죠. 카이다 씨입니다. 그녀 또한 이 해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카이다 쿠로하.

 

역시 그랬나.

 

기와라 우시오: 아. 카이다가 어디 있나 했더니 먼저 와 있었던 거네! 그런데  왜 카이다랑 같이 안 오고 우리랑 같이 와서 이렇게 동네북 신세로 쳐 맞게 된 거냐?

 

무로 시라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 흑막과 야가미 사이에 불화가 발생했거나, 야가미를 우리 사이에 둬서 불이익을 주더라도 이뤄야 할 목적이 있거나.

 

무로 시라베: 무엇이든 간에 야가미. 네가 우리 곁에 있는 이상 너는 모노로그보다 우리를 우선하여 행동해 줘야겠어.

 

가미 토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모노로그 씨가 지시한 내용이 그것이었으니까요.

 

모노로그가 지시했다고?

 

리 레이코: 어째서지. 우릴 도와봤자 책에겐 도움이 되는 일이 없을 텐데?

 

가미 토가: 흑막 측의 내통자가 서로 합심해서 생존자들을 몰아붙이는 건 가능합니다. 오히려 쉬울 겁니다. 캐롤 씨는 이 해변에 없고 나이토 씨에겐 한계가 있습니다.

 

가미 토가: 그렇기에 문제가 됩니다. 너무 강대하기에 생존자들이 합심하지 않고서야 흑막 측을 상대론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 앞에 생존자들은 하나가 되는 겁니다.

 

가미 토가: 그러나 내통자의 힘이 분산되면, 흑막 측을 상대로도 생존자들이 맞서 싸울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여러분들은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게 되겠죠. 저는 그렇게 추측합니다.

 

기와라 우시오: 존나 웃기네! 흑막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오히려 흑막을 상대로 이길 수 없게 만든다니. 하!

 

유즈미 나데시코: 그러니까. 야가미가 우리 편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열라 헷갈려! 나쁜 놈이랑 같은 편은 불안한데

 

리 레이코: 간단히 말해 내통자. 야가미 토가는 우리를 돕는 우리의 적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뭐? 어? 어어어…?

 

무로 시라베: 일종의 공개 배신자가 된 셈이야. 이중 간첩… 우리를 돕는 것이 모노로그를 돕는 이유라면. 그는 자신의 재량에 맞춰 자신이 지지할 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된 거지.

 

가미 토가: 그렇습니다.

 

이토 유즈루: 이 새끼야.우리 편에 붙을거면 왜 주먹부터 휘두르고 난리야? 말부터 했으면 싸울 필요 없이 끝났잖아!

 

가미 토가: 저도 이 역할을 맡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제 나름대로 소박한 반항을 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당신은 꺾을 수 없더군요

 

가미 토가: 그리고 하나 더. 이 해변에서는 처신을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여러분 모두요. 저는 지금 여러분 한 명 한 명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기와라 우시오: 갑자기 왜 그래?

 

가미 토가: 여러분 개개인의 어깨 위에 다른 이들의 목숨이 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까드득. 아작. 쩝. 질겅질겅. 까득. 콰직. 우드득.

 

카이다 쿠로하는 어떻게 가재 괴물들을 사냥해야 할지를 몇십 분 만에 전부 터득했다. 카이다는 우선 땅에 내려앉은 갈매기를 한 마리 붙잡고 목을 비틀었다. 먹을 수 있는 부위를 처리하고 난 뒤 그녀는 피칠갑된 깃털과 내장. 살코기 뭉치를 얕은 해안에 내던졌다.

 

먹이 냄새를 맡은 가재 괴물들이 질문 소리와 함께 해안으로 드글드글 몰려왔다. 몰려오다 못해 한 놈이 다른 놈의 등을 타고 오는 것을 보자 카이다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먹을 생각만 하고 먹힐 생각은 없는 것들을 보는 카이다는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았다.

 

"데드. 어."

 

카이다는 자신이 포획한 가재 괴물을 크게 깨물고 뜯었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단단한 가재 괴물의 몸이 반으로 쭉 찢어졌다. 카이다는 입 안에 든 것을 몇 번 씹고 삼켰다.

 

몸이 절반 뜯긴 가재 괴물은 질문 소리를 멈춘 채 구슬픈 신음 같은 것을 내뱉었다. 날카로운 부리와 집게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갑각류는 인간과 유사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카이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고통에 가득 차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은 퍽 기분이 좋았다.

 

모노로그: 여섯 마리 째인가.

 

카이다는 한 입을 더 베어물고 질겅질겅 가재 괴물의 꼬리를 씹으며 모노로그의 쪽을 돌아보았다. 아직 근육이 살아있어 씹으면 입 안에서 살점이 꿈틀거리며 오그라들었다.

 

모노로그: 가재 괴물들에게는 독이 있다. 익혀먹지 않으면 큰일이 날 텐데?

 

이다 쿠로하: 나한텐 어떤 독도 안 통해.

 

모노로그: 역시 규격 외의 인재군. 불을 피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지?

 

이다 쿠로하: 불을 피우면 흔적이 남잖아. 다른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야가미 토가. 히무로 시라베. 그 두 자식들은 분명 눈치를 채.

 

모노로그: 시련에 참여하게 된 자가 누구인지도 몰랐음에도 그 가능성들을 고려한 것인가? 내 조언 없이도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니. 이번에는 마음가짐을 제대로 먹은 모양이지?

 

이다 쿠로하: 꺼져. 너 때문에 들킬지도 모르니까. 

 

모노로그: 기대하고 있겠다.

 

 

 

 

 

 

카지노와 모니터실의 중간에 휴게실이 있는 것은. 큰 체력 소모 없이 모니터실과 카지노를 오가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모니터를 보며 경주마의 위기를 발견했을 경우. 당장 카지노로 달려가 크레딧에 매달리게 만드는 배치가 아닌가. 모노로그라면 분명 그런 뒤틀린 생각을 가졌을 것 같았다.

 

토키와가 모니터와 다이얼로그를 몇 번 번갈아 바라보며 다이얼로그의 화면을 두드렸다.

 

키와 아유키: 쓰러진 야가미를 묶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밧줄을 보냈어. 앞으로 필요한 물품이 또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두기도 했어. 식사. 침낭. 배낭과 각종 도구 같은 것들.

 

토키와는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키와 아유키: 다들 당황스럽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너희들도 알겠지만 해변으로 간 모두는 우리만큼이나 당황에 빠져 있을거야. 느닷없이 본 적도 없는 곳으로 떨어졌으니까. 그러니 당분간 살인이 벌어지진 않아.

 

23T5U130: 카이다가 있음에도?

키와 아유키: 그래. 카이다가 있음에도. 나이토가 카이다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다가 그 곳에서 다섯 명을 다 죽이지는 않을 거야.

 

롤 브라이트: 모노로그 씨는 살인 게임 자체에 목적이 있으니까요. 게임이 순식간에 끝나지 않길 원할 거에요.

 

키와 아유키: 맞아요. 오히려 간접적으로, 내통자가 아닌 사람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 가능성이 커요.

 

바라 쿠리스: 그 놈들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야.

 

나시: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거야?

 

키와 아유키: 적어도… 패닉에 빠지는 것보단 나아. 또한 우리도 우리끼리 규칙을 정하도록 하자. 우선 자신이 어떤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지는 비밀로. 또한 너희들의 크레딧이 얼마나 있는지도 비밀로 하는 거야.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명확한 지시가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23T5U130: 그렇게 하자. 네 판단이 맞는 것 같아. 해변으로 개입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모니터실 안을 둘러보았다. 캐롤 씨. 토키와. 23T. 이바라. 그리고 나.

 

그 느낌이 허전함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시: …이것밖에 없는 거야? 다섯 명 밖에?

 

23T5U130: 카나리는 자기 방에 다시 틀어박힌 모양이고, 칸나즈키 또한 마찬가지야. 후루미나미는…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테지. 분명히.

 

바라 쿠리스: 카나리. 그 꼬맹이 놈이 진짜!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다고 해서 밥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 결국 밖으로 나와야 할 걸 알면서도… 가지가지 하고 있어.

 

23T5U130: 아니. 이바라. 식사는 나올 거야.

 

바라 쿠리스: 이잉?

 

23T5U130: 후원 제도가 시작되면서 크레딧의 새 기능이 해금되었어. 한 번 봐.

 

< 크레딧을 지불해 물품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 빵과 물

- 스테이크 정식

- 이온음료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

 

나시: 이 기능을 써서. 카나리는 밖에 나오지 않고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칸나즈키도. 후루미나미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우리도

 

바라 쿠리스: 정말이네. 이거 영 머쓱한데. 그래도 식당에서 나오는 밥은 공짜잖아. 왜 굳이 배달음식을 먹어? 식당 음식 진짜 맛있는데!

 

키와 아유키: 일단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침낭. 간단한 생활 용품들로 충분할 것 같아. 양방향 통신이 된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니 필요할 게 분명할 물품들을 우선적으로 보내도록 하자.

 

키와 아유키: 각자 필요한 물품들은 스스로의 크레딧으로 구매하고. 지금 이렇게 정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번거로워질 수 있으니 이해해 줘.

 

키와 아유키: 난 여기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지켜볼 테니까… 너희는 잠시 쉬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23T5U130: 나도 같이 할게.

 

바라 쿠리스: 좋아. 그럼 일단… 난 내 방으로 갈게.

 

바라 쿠리스: …영 허전한 느낌이 들어. 원래 탑이 이렇게 비어 있었나?

 

이 탑에 남은 사람은 여덟 명. 그뿐이었다. 원래 있었던 열 여섯명에서 반이나 줄어버린 것이다.

 

미도리카와는 죽었고, 일곱 명은 해변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언젠가 다시 모두와 만날 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발소리가 탑의 한 층 전체로 울렸다. 그 정도로 나는 모두의 빈자리를 느꼈다.

 

언젠가 살아남은 사람들이 정말 여덟 명 밖에 되지 않는 날을 미리 겪는 것 같아 꺼림칙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졌고, 내 방 자물쇠에 열쇠를 밀어넣을 때는 손이 약간 떨릴 정도였다.

 

문을 잠근 뒤에도 막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시: 모리… 하필 모리야.

 

시간 내에 후원할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기에. 나는 무작위로 모리를 후원하게 되었다. 공리를 향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십대 투사와 운명을 함께하게 된 것이다.

 

모리가 죽을 사람으로 보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고민 끝에 간신히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리는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만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안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사지를 향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 게 분명했다. 공리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다이얼로그를 들여다보았다. 크레딧 메뉴에서는 내가 어떤 물품을 구입하고 모리에게 보낼 수 있는지 나와 있었다. 식사. 유용한 도구. 침낭 따위들. 그 목록을 한 번 쭉 내려보던 내 눈에 한 물품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용 송출기'. 다이얼로그보다 약간 더 큰 화면의 휴대용 기기처럼 보였다. 가격은 100만 크레딧이었다. 그 가격과 생김새를 고려했을 때 이것은 모니터실 말고 다른 장소에서도 해변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도구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비쌀 필요가 없었다.

 

비싼 게 다가 아니었다. 휴대용 송출기 옆에는 0/2라는 빨간 색 글자가 쓰여 있었다. 재고가 전부 떨어졌다. 두 개 밖에 팔지 않는데 어떤 두 사람이 이미 사 갔다.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나에게 크레딧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현재 보유 크레딧: 20000000 크레딧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크레딧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도 포박할 수 있는 튼튼한 수갑이 500크레딧이라면, 2천만 크레딧으로 내 안전을 사는 것은 분명 가능할 터였다.

 

분명. 모리를 성심성의껏 돕는다고 해도 크레딧이 모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방 안에 틀어박힌다면 모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구할 수 없겠지만. 토키와는 좋은 사람이니까 누군가가 위기에 처하면 우리에게 알려 주겠지.

 

나는 스스로의 비열함에 놀란 다음 쓴웃음을 지었다. 이보다 비겁한 생각이 과연 있을까? 난 이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선 내 목숨만 소중히 하면서. 토키와의 부지런함에 기대겠다고? 그런 염치도 없는 발상이 과연 존재할까.

 

갑자기 토키와를 향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또한 이따금씩 비열해지는지 궁금했다. 할 수 있다면 저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다시는 나가지 않기를. 언젠가 나갈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생각을 할까?

 

그렇게 침대 안에만 머물러 있기에 나는 그녀와 약속을 했다. 이야기를 나눠 보자는 약속을.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문을 열어 주시겠어요?

 

나시: 캐롤 씨.

 

두 가지 상반되는 충동에 동시에 휘말린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 얇고 갸냘픈 막 속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이 내일도 이어진다 해도, 막연한 공포 속에서 나를 분리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문을 열고 싶었다.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 눈부신 금색 머리카락. 온화한 표정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싶었기에. 또 다시 문을 열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반골 기질이었다. 그녀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내가 그녀에게 조종받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시도.

 

… 내가 보기에도 그보다 한심한 일이 없었다. 결국 그 모든 고뇌와 존재론적 질문들이 햇님 앞의 눈사람처럼 녹아내렸다. 내가 이렇게 가벼운가? 내 모든 감정이?

 

아니. 나는 그저 알고 싶었다. 대체 터치가 무엇인지. 카텟 기관은 무슨 조직인지. 나는 어째서 탑에 오게 되었는지. 내 이름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그것을 알아내려는 갈망을 나는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칸나즈키 가로되 불은 욕망이라고 했다. 나는 불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나시: 오늘은… 그 얘기를 하러 오신 거죠?

 

결국. 그녀에게 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는. 나에게 그녀는 무엇일까?

 

그녀에게 나는 무엇일까? 내 입술 안쪽에서 나오지 못한 질문들이 옴싹였다.

 

롤 브라이트: 네. 터치에 대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롤 브라이트: 그러기 위해서는제 옛날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캐롤 씨는 내 방으로 들어온 뒤, 입을 열었다.

 

 

 

 

 

 

 

하기와라가 해변 탐색조에 포함되는 건 사실 저번 화에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결정한 사항인데 현재 시점에선 포함하길 잘 한 것 같음

 

덕분에 분위기를 풀어줌 단크 타워에는 말투가 딱딱한 친구들이 많은데(1챕 시점 히무로 모리 야가미 미도리카와 23T)하기와라 없이 딱딱이들 세 명에 마유즈미 나이토면 분위기 감당 안 됐을 것 같음

 

저번에 말했다시피 이번 챕터에는 나나시에 좀 더 초점이 쏠릴 겁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히무로가 시련을 겪는 상황에서 제 생각만큼 그게 잘 될까 싶지만 잘 되게 해야죠 제 역량이 충분하다면 2챕터의 전개는 다분히 정치극 느낌이 나올 것 같기도 하네요

 

생일 날 카이다가 한 건 가재 괴물 먹방이었습니다 바닷가재는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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