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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22+6

by 도타싫어! 2021. 1. 7.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업보처럼 다가온다."

 

 

나리 케이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카나리는 놀란 눈치였다.

 

가미 토가: 말 그대로입니다. 더 숨겨선 진범을 찾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지금 밝히는 것입니다.

 

이토 유즈루: 아니… 무슨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어!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가 안에서 일을 꽤 잘했나 봐? 히무로가 알아채버렸으니 그냥 네 입으로 말해버리자 한 거잖아.

 

가미 토가: 그렇게 보셔도 무리는 없습니다. 재판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신 것은 캐롤 씨이므로 그녀가 재판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캐롤 씨를 몰아붙여야만 했습니다.

 

롤 브라이트: …안 믿기는 걸요.

 

가미 토가: 원한이 쌓인 입장에서는 그러실 수도 있겠지요.

 

기와라 우시오: 바로 정치를 거네. 히무로맨. 취조실 안에서 별다른 일 없었어? 나 같은 빡대가리가 봐도 겁나게 수상해.

 

무로 시라베: 그가 충분히 털어놓는다면 내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거야.

 

기와라 우시오: 그럼 질문을 잘 해야겠구만. 첫 번째 퀘스천! 똑대맨! 왜 네가 미도리카와 친구인 거 말 안 했어?

 

가미 토가: 자칫 잘못했다간 유력 용의자로 몰릴 수 있는데. 누가 직접 정체를 밝히겠습니까? 다른 이들의 행동을 살피는 것을 우선순위에 놓았을 뿐입니다.

 

가미 토가: 캐롤 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그 시점에서는 가장 높았고. 그녀를 잘 따르시는 분도 세 분이나 계시니 여론전에서 선수를 점하려 했죠.

 

나시: 그럼… 캐롤 씨가 우릴 지배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거야?

 

나나시가 물었다.

 

무로 시라베: '확정되지 않음' 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가깝지.

 

롤 브라이트: 그거면 충분해요. 이 재판이 끝나면 천천히 얘기할 수 있을 테죠. 그보다 어째서 야가미 씨는 미도리카와 씨가 죽기 전에 그 사실을 밝히시지 않았나요?

 

캐롤이 야가미에게 물었다.

 

가미 토가: 그녀가 바다뱀 인지도 몰랐으니까요. 사실 '그녀' 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나리 케이토: 말이 돼?!

 

가미 토가: 그녀는 항상 가발과 가면을 착용했죠. 저와 함께 있던 어떤 때에도 그것을 벗으신 적이 없어요. 아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뿐인데 가발과 가면 없이 목소리 변조 마스크를 쓰시니. 제가 알아볼 방도가 있습니까?

 

거침없는 반박이었다.

 

루미나미 나몬: 그것 참 지독하다. 미도리카와 입장에선 너 하나만이 믿을 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야가미 너는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잖아? 아! 신이시어! 저주를 내리게 하소서! 암을 내리게 하소서!

 

비극을 즐기는 후루미나미는 감탄사를 참지 못했다.

 

가미 토가: 함부로 말씀하지 말아 주시죠.

 

루미나미 나몬: 안 미안해.

 

리 레이코: 이유가 어떻든 넌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을 능멸했다. 협상가.

 

모리가 적개심을 담아 말했다.

 

가미 토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판 시작부터 캐롤 씨가 저를 몰아붙인다면 저항할 겨를도 없이 재판이 끝날 것이라 여겼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리 레이코: 정당화될 수 없다.

 

가미 토가: 절 범인으로 모시려는 겁니까? 한 가지 오해가 있군요. 이 재판은 미도리카와 씨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재판이지. 미도리카와 씨의 친구를 찾는 재판이 아닙니다. 저와 그녀가 한 때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이 사건 자체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기와라 우시오: 그치만 유력 용의자로 몰리는 걸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건. 범인 밖에 하지 않을 행동인데?

 

리 레이코: 코미디언의 말이 맞다. 상담가가 범인인지 아닌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정도로 몰아붙였다면, 일부러 오답을 고르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오답으로 이득을 보는 이는 범인뿐이다.

 

이토 유즈루: 야. 너 진짜 줏대 없다. 아까는 캐롤이 제일 수상하다며?

 

리 레이코: 난 언제나 범인을 찾기 위해 움직인다.

 

롤 브라이트: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야가미 씨. 그래서 결국 그 날 미도리카와 씨를 찾아가신 건가요?

 

야가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롤 브라이트: 무슨 말이라도 해 보세요. 미도리카와 씨를 찾아가셨나요?

 

가미 토가: 예. 그녀를 찾아가 보긴 했죠.

 

무로 시라베: 좋아. 그럼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이토 유즈루: 왜?! 지금 추궁하면 범인이 나와!

 

루미나미 나몬: 그러게. 히무로. 왜?

 

무로 시라베: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거든. 사건 현장에 야가미가 찾아왔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면 돼. 지금 야가미를 범인으로 정해 뒀다간 다른 용의자가 나왔을 때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나리 케이토: 그냥 지금 투표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 싸이코의 친구다. 밤에 찾아갔다. 범인이 아닌 걸 알면서도 범인으로 몰았다. 누가 봐도 범인이잖아!

 

무로 시라베: 넌 아까도 그렇게 말했지. 그때 투표했다면 지금쯤 너를 포함해 모두는 죽었을 거야. 재판에는 시간제한이 없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어.

 

롤 브라이트: …그럴까요.

 

가미 토가: 그럼 여러분. 논의를 다시 진행합시다.

 

야가미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가미 토가: 옆사람에게로 한 바퀴 돌리세요. 다이얼로그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미도리카와 씨 숙소의 창문 창살에 이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건 듯한 자국. 나도 이것을 보았다.

 

기와라 우시오: 뭐야. 세 방향에 다 있잖아?

 

루미나미 나몬: 위에는 카이다의 숙소가. 왼쪽에는 야가미 숙소가. 오른쪽에는 마유즈미의 숙소가 있어. 그런데 세 방향에 다 남아있었지.

 

롤 브라이트: 세 분이 전부 미도리카와 씨를 창문을 통해 방문했다기보다는, 누가 침입했는지 알아볼 수 없도록 공작을 친 것에 가까워 보이네요.

 

루미나미 나몬: 내가 날조했소! 이거야?

 

가미 토가: 아뇨. 이 세 자국 중 무엇이 날조고 무엇이 진짜일지를 가려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말고 나머지 두 분 또한 논의에 참여하셔야 하고요.

 

이다 쿠로하: 그럴 필요는 없어. 미도리카와 방에 네가 들어갔다고 네 입으로 실토했잖아. 그럼 네가 범인이지.

 

카이다의 팔을 조준하고 언탄을 쏘아 보았다.

 

언탄이 날아가 카이다의 팔에 맞았다. 야구공이 맞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다 쿠로하: 악! 이 새끼가?!

 

허공에 공범의 가능성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무로 시라베: 언탄을 사람에게 쏘아도 통하는구나. 그보다, 그건 틀렸어.

 

이다 쿠로하: 남을 실험대로 쓰고. 뭐 하자는 거야?!

 

카이다도 나를 조준하고 언탄을 쏘았다. 언탄은 내 머리에 날아왔다.

 

언탄을 맞았으나 아무런 충격도 입지 않았다.

 

가미 토가: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반론을 했을 때만 충격이 전해지고, 글자가 떠오르는 모양입니다.

 

이다 쿠로하: 개자식. 너 건수 하나라도 걸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무로 시라베: 미안하게 됐어. 그렇지만 언탄이 통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말은 틀렸어. 공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상 너도 충분히 용의선상에 들어올 수 있어.

 

루미나미 나몬: 충분하고도 넘치지 않아? 미도리카와의 죽음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카이다잖아. 카이다가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는 게 문제지만!

 

리 레이코:

 

리 레이코: 있을지도 모른다.

 

모리가 입을 열었다.

 

23T5U130: 카이다가 너흴 습격한 일 말이야?

 

리 레이코: 그 전의 일부터 그렇다. 너와 나. 그리고 코미디언이 첩자를 수색했으나 첩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 밝은 뒤에야 첩자는 우리들을 습격했다.

 

이다 쿠로하: 하. 어이없어! 내가 모습을 안 보인 게 아니라 너희가 날 못 찾은 거야. 바보들아! 내가 너희를 습격한 사실 자체가 나와 탑 사이의 무연고를 증명해준다고!

 

기와라 우시오: 땅 속에 들어가 있어서 못 찾은 걸까?

하기와라가 웃음기 없이 말했다.

 

이다 쿠로하: 뭐라는 거야.

 

기와라 우시오: 네가 그 자리에 계속 숨어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우리가 어디에 있을 줄 알고 거기에만 숨어 있겠어? 우리가 저어엉말 우연히 네가 땅 파고 숨어있던 근처로 간 것도 아닐 거 아냐.

 

기와라 우시오: 우리가 향할 방향을 예측하고 그 근처에 숨어 기다렸단 거야. 넌 우리 위치를 알아낼 수단을 가지고 있었어. 그치?

 

리 레이코: 그런 수단이 있는지가 문제지만 말이다.

 

이다 쿠로하: 아까부터 이것들이 지랄들을 하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남을 검정으로 몰아가지 마!

 

저 소동은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탑에 이 정도의 손상이 생겼다면 살인 게임의 관리자는 그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은 나, 마유즈미 나데시코, 후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 아쿠토, 칸나즈키 시노부, 카나리 케이토, 그리고 카이다 쿠로하다.

일곱 명 중 누군가에게. 모노로그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득 캐롤이 말했다.

 

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 한 가지 여쭤볼게요. 사건이 벌어진 날 새벽에 어디서 뭘 하셨나요?

 

이다 쿠로하: 탑 밖에 있었지. 망할 깡통이 탑 안에서 버티고 있었으니까.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넌 뭘 했어?

 

유즈미 나데시코: 나는 미도리카와가 전화를 안 받으니 고민하다가 그냥 잤어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현장에 찾아갔다.

 

루미나미 나몬: 관통상은 몰라도 목에 자상을 남긴 건 분명 날 있는 흉기야. 그렇게 생각해보면 카이다가 가장 유력한 범인이지. 첩자니까!

 

기와라 우시오: 그래도 모든 사람의 숙소를 확인해본 건 아니잖아? 히무로 숙소랑 전용실을 확인해본 뒤론 별의별 일이 다 있어서 흐지부지됐어. 그러니 가장 위험해 보였던 히무로맨이 오히려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기와라 우시오: 카이다우먼이 수상한 건 둘째치고 흉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어. 실제로 내가 도끼를 가지고 있는 줄도 너희는 몰랐잖아. 그래서 뒤통수를 쳐맞았고.

 

하기와라가 등 뒤를 주섬거리더니 도끼를 꺼냈다.

 

키와 아유키: 그럴지도 몰라

 

리 레이코: 그렇다면 협상가가 날붙이를 들고 밀수업자를 찾아. 밀수업자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실 모두에게 있다고들 하지만 협상가 혼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가미 토가: 제 방에는 흉기가 없었을 텐데요. 네 분이 확인하지 않으셨나요?

 

나리 케이토: 없었어. 내가 확실하게 장담해!

 

정말 야가미 혼자 일을 저지른 것이라면 공범의 가능성은 어떻게 되지?

 

공범이 있다면, 왜 진범과 공범은 서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어차피 진범이 승리하면 공범은 죽는다. 공범은 자신의 도움을 밝혀도 처형되지 않는다. 진범의 승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범은 진범을 드러내야 한다.

 

공범이 자신의 죽음을 감수할리가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분명히

 

일곱 명 중 누군가에게. 모노로그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시.

 

무로 시라베: 너희 중 모노로그에게서 모종의 제안을 받은 사람이 있어?

 

대부분이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키와 아유키: 무슨 제안 말이야?

 

무로 시라베: 내통자의 제안 같은 것. 내통자의 존재가 이 사건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가 제안을 받은 적이 있으세요.

 

이 사실은 의외였다.

 

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줄 테니. 자신에게 협력하라고 모노로그 씨는 제안하셨죠. 받아들이시진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카이다에게도 제안이 갔겠지.

 

가미 토가: 저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자신에게 협력한다면 생존을 위한 여러 혜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거절했지만요.

 

가미 토가: 언급해도 상관은 없겠죠. 모노로그 씨? 그 제안 자체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모노로그: 상관은 없다. 언젠가 알려질 내용이었으니.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는 무력을 가진 이들에게 내통자의 역할을 제안했던 건가.

 

이토 유즈루: 그러면서 나한텐 안 왔네. 이거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데?

 

리 레이코: 네가 제안에 응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찾아가지 않았겠지. 자부심을 가지도록.

 

무력을 가진 이들에게.

 

무력.

 

이 탑에서 제일가는 무력을 가진 카이다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의식했다.

 

이다 쿠로하: 너희 다들 개 짓거리 마. 날 범인으로 몰겠다고 별 수를 다 쓰네?

 

기와라 우시오: 맞아. 많이 수상하긴 하지만 내통자설은 좀 그렇다. 아무리 정황이 그렇다고 쳐도 물타기가 심해! 게다가 카이다가 내통자라서 얻는 게 뭐 있냐?

 

기와라 우시오: 카이다가 내통자라고 해 봤자 모노로그와 협력을 할 수 있을 뿐이야. 모노로그는 탑 안의 일을 전부 꿰뚫고 있으니 아마 우리 위치를 카이다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을 테고

 

기와라 우시오: …그러면 우리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옆에 23T가 있는지 없는지도 얘기해줄 수 있겠지. 그러면 카이다가 아침에야 나타난 것도 말이 되네. 실시간 23T 브리핑을 받고 있다면 우리가 방심한 틈을 노려 습격할 수도 있고

 

기와라 우시오: …땅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위치를 찾아 움직일 수도 있어. 뭣보다 카이다가 23T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탑에 23T가 없다는 사실을 모노로그에게 들었을 수도 있어.

 

기와라 우시오: 뭐야. 저 새끼 내통자 아니야?!

 

자신의 말에 설득된 하기와라가 소리쳤다.

 

루미나미 나몬: 설득력이 있어.

 

롤 브라이트: 설득력뿐이 아니에요. 미도리카와 씨는 흰 물건에 접촉하셨어요… 그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더 전해지지 않도록 입막음을 당하신 거라면.

 

이다 쿠로하: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걸로 치면 히무로와 캐롤도 죽었어야지. 흰 물건의 내용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카이다가 소리쳤다.

 

무로 시라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겠지. 미도리카와가 죽은 건 그녀가 내게 흰 물건의 내용에 대해 전해주고, 캐롤이 그녀의 기억을 본 당일 밤이야.

 

무로 시라베: 세 명을 전부 죽이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으니 미도리카와만이 죽었을 거야.

 

내 안면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어왔다.

 

고개가 살짝 뒤로 넘어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상당히 아팠다. 화면에는 미도리카와의 경계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이다 쿠로하: 웃기시네. 내가 말했잖아. 23T가 탑에 없다고 해서 저 또라이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습격하면 죽어줄 만큼 호락호락할 것 같냐고.

 

이다 쿠로하: 아니지. 못 죽여. 그러니 못 찾아갔단 말이야. 너희들의 추리는 다 틀려먹었어!

 

얼얼한 고통을 참으며 나는 생각을 거듭했다.

 

확실히 그렇다. 카이다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을 엄두를 못 냈으리란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리 케이토: 그 자식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모노로그가 술수를 부렸다면

 

이다 쿠로하: 하.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싹 재워두는 게 편하겠네!

 

나리 케이토: 마. 말이 그렇다는 거야.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한 것도 아니잖아

 

카나리는 주눅 들었다.

 

기와라 우시오: 그럼 너 말고 누가 범인이야. 마유즈미 범인 설을 주장하진 말자. 그건 너무 추해.

 

이다 쿠로하: 네가 하라고 해도 안 해. 이 새끼야. 더 확실한 후보가 있으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누구…?

 

카이다가 후루미나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다 쿠로하: 저 자식은 미도리카와의 숙소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그 자식의 전용실로 밧줄을 통해 이동한 적도 있잖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거다.

 

루미나미 나몬: 누구. 저요? 야레야레. 카이다 양.

 

후루미나미가 까르르 웃으며 카이다에게 언탄을 쏘았다. 묶여 있던 손.

 

이다 쿠로하: 아악! 이 새끼가?!

 

루미나미 나몬: 이 손으로 밧줄을 던지고. 밧줄을 타고. 미도리카와를 찾아가서. 죽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니오?

 

카이다도 후루미나미에게 언탄을 돌려 주었다. 밧줄의 사용.

 

루미나미 나몬: 아얏! 아니. 아야 취소. 생각보다 맞을만하네?

 

이다 쿠로하: 너는 밧줄을 가지고 있었어. 그 덕분에 다른 놈들 방에 침투하고 다닐 수 있었다고. 밧줄을 튼튼하게 묶을 수 있었던 걸 보면 매듭 분야에도 조예가 있고.

 

이다 쿠로하: 밧줄을 스스로 푼 다음 범행을 저지르고 새로 묶은 거잖아. 내 말이 틀려?!

 

루미나미 나몬: 재밌네! 진행시켜! 그런데 카이다. 그 말 자신 있어? 생각 없는 반론에 언탄 쏘려다가 참는 거야. 내가 가봤자 미도리카와의 경계를 못 뚫는 건 똑같잖아!

 

또 막혔다.

 

진상이 잡힐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키와 아유키: 그래서 카이다가 모노로그의 내통자인 건 확실한 걸까?

 

무로 시라베: 가능성은 높아. 미도리카와는 흰 물건에 접촉한 사람임과 동시에 카이다를 적대하고 있었으니, 둘의 이해관계가 맞았겠지.

 

이다 쿠로하: 지랄 마. 억측이야!

무로 시라베: 그래. 카이다 네 말대로 억측이라 하고. 다음은 어떤 사안을 추궁할까?

 

키와 아유키: 우선 야가미가 미도리카와의 숙소에 향했다는 건 확실하니까. 야가미에게 더 물어보자.

 

나시: 그게 나을지도 몰라. 야가미. 미도리카와의 숙소는 어떻게 간 거야? 역시 창문을 통해서?

 

가미 토가: 예. 밧줄을 미리 챙겨둔 바 있었습니다. 제 무게를 지탱해야 했기에 튼튼하게 묶어야 했어요.

 

나시: 왜 평범하게 문을 통해 가지 않은 거야. 토키와가 밖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가미 토가: 토키와 씨가 감시를 하고 계신지를 제가 어떻게 압니까.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녀를 살해하게 된다면, 제가 검정으로 몰리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리 레이코: 죄를 고백해도 처형은 당하지 않을 텐데. 왜지.

 

가미 토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든 재판에서 승리해.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모리가 야가미의 얼굴을 겨누고 언탄을 마구 쏘았다.

 

언탄은 강한 바람이 부는 정도의 충격조차 주지 못했지만. 모리는 연사를 멈추지 않았다.

 

가미 토가: 그만하시죠.

 

리 레이코: 그만할 것 같나?

 

이토 유즈루: 작작해! 아무튼.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에서 뭔 일이 있었는데?

 

야가미가 발언을 주저했다.

 

가미 토가: 더 이상은 말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고심 끝에 그의 입 안에서 나온 말은 그게 전부였다.

 

리 레이코: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나. 이래도 내가 작작해야 하나. 승부사?

 

이토 유즈루: 인정할게. 이건 작작하면 안 되겠다. 왜 거기서 멈춰?! 계속 말해!

 

가미 토가: 이것만큼은 양해해 주시죠. 이건 제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죠.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다면 그저 추궁을 피하려는 핑계일 뿐이었다.

 

리 레이코: 네가 범인이 아닌 이상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야 한다. 네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진범은 너인 셈이다.

 

공범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야가미의 단독 소행이라?

 

기와라 우시오: 뭐야. 그럼… 야가미는 미도리카와가 자기 친구인 줄을 모르고 죽인 거야? 와 세상천지 나보다 더 친구한테 막대하는 놈은 처음 보네.

 

바라 쿠리스: 조용.

 

기와라 우시오: ….

 

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에는 흉기로 쓰일만한 것이 없었어. 그녀를 묶고 감금하는 과정에서 확인했어.

 

키와 아유키: 그러니 쓰인 흉기가 있다면 범인이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밖에 없을 거야. 야가미 너는 처음부터 미도리카와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그녀의 숙소로 들어간 거야.

 

가미 토가: 틀렸습니다. 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을 뿐입니다. 네 분이 확인하셨다시피 제 방에는 흉기도 없었고요.

 

롤 브라이트: 아까는 그녀를 살해하게 되는 경우를 상정하셨다며요?

 

가미 토가: 전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무로 시라베: 그럴지라도 맨손으로 관통상을 입힐 순 없어.

 

야가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미나미 나몬: 카이다는 정황 상 모노로그와의 내통자였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야가미가 굳이 미도리카와를 죽이려 들었을까?

 

나리 케이토: 어쩌다 보니 자기 친구인 줄 모르고 죽인 거라니까.

 

루미나미 나몬: 자기 친구인 줄 몰라도. 야가미가 왜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죽이려 드냔 말이야. 대체 둘이서 무슨 대화를 했길래 그런 결과가 나와?

 

루미나미 나몬: 나만 이 사실이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상대적으로 뇌가 작더라도 생각은 충분히 가능할 텐데요.

 

이다 쿠로하: 지랄을 해라 아주.

 

무로 시라베: 어쩌면 그저 탑에서 나가려고 했을지도 몰라. 살인을 해도 처형당하지 않는다는 건 큰 메리트니까 살인을 시도할 만도 해.

 

무로 시라베: 애초에 살인의 동기를 알지 못하겠다면 굳이 골몰할 필요는 없어. 야가미가 그 자리에 갔다는 것만 확실하니 지금은 카이다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확실히 하자.

 

기와라 우시오: 단순하게 생각해서. 야가미랑 카이다가 미도리카와의 숙소에서 마주쳤고 그래서 입막음을 당한 거 아니야?

 

루미나미 나몬: 둘이 마주쳤다라

 

무로 시라베: 아마 사고였겠지. 미도리카와를 죽이려고 했던 카이다. 그리고 미도리카와를 죽일 각오를 하고 있던 야가미가 한 장소에서 마주쳤던 거야.

 

공범이 있는데 진범과 공범 모두 입을 닫고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모노로그가 내통자를 보호하기 위해 야가미의 입막음을 했다면 퍼즐이 상당 부분 맞춰졌다.

 

이제 계속 야가미와 카이다를 추궁하다 보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미 학급재판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카이다가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더라도 명확한 정황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야가미도 그것을 알았는지 여러 생각에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카이다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순서를 잘 따지기만 하면 평탄하게 검정을 고를 수 있으리라. 나는 조금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너무 일렀다. 안도감을 느끼기에도, 긴장을 풀기에도 너무 일렀다.

 

모노로그: 야가미 토가. 도무지 방법이 없다면 장갑을 던져라.

 

모노로그는 야가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아니다 이 책아. 내 앞에서 사라지지! 언총의 반동을 막아 주는 게 장갑이라며? 그걸 벗으라는 건 뭐야?

 

루미나미 나몬: 단순히 말해 포기하라는 거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할복해! 할복 보여 줘! 할복! 할복! 더블 할복!

 

나즈키 시노부: 아마 그런 건 아닐 것 같아.

 

가미 토가: 장갑을 던지라는 게 정말 저런 뜻입니까?

 

모노로그: 시험해 보도록.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재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모노로그: 이미 늦은 걸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발악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야가미 토가.

 

이다 쿠로하: 뭐라는 거야. 이해가 안 되게

 

가미 토가: …그 말이 맞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겠죠.

 

무슨 뜻이지. 그걸 채 묻기도 전에 야가미는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가미 토가: 히무로 씨?

 

그리고 내게로 던졌다. 장갑이 내 발치에 떨어졌다.

 

…뭐 하자는 거지? 내가 생각하기로 야가미 토가는 이럴 사람이 아니었다. 끝까지 저항하던가 자백을 할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갑을 던졌다.

 

이토 유즈루: 왜 저래. 진짜 던졌잖아?

 

기와라 우시오: 수건 날아가고요! 아. 야가미 선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죠! 저 헤비급 선수가 이렇게 무너지나요?!

 

무로 시라베: 야가미. 아직 너에게 물을 게 남아 있어. 장갑을 다시 착용해.

 

나는 허리를 숙여 그의 장갑을 주웠다. 그에게 그것을 다시 던져 주려는 찰나. 모노로그의 눈이 빛남과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점멸하는 빨간 섬광이 우리들의 눈을 찔렀다. 또 뭐야? 모노로그는 어떤 전조도 주지 않았는데

 

모노로그: 도전이 받아들여졌다. 결투가 성립되었다.

 

이런.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명 좋지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으아아…! 대관절 이게 무슨 쑈킹이야?!

 

모노로그: 초고교급 협상가. 야가미 토가는 프로파일러. 히무로 시라베를 결투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토 유즈루: 결투?!

 

가미 토가: 결투라뇨. 이건 의외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전투 말씀이신가요?

 

그런 건가.

 

중세 시대에 장갑은 손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것을 상대의 발치에 던지는 것은, 상대의 명예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장갑을 상대의 발치에 던지는 것은 결투의 신청. 그 장갑을 줍는 것은 결투의 수락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야가미의 도전을 받아들인 셈이었다.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난 이런 학급재판의 시스템에 대해 전해들은 바가 없어. 이 결투는

 

한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가는 또 재판장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았기에. 나는 모노로그를 향해 발을 디뎠다.

 

그렇지만 몇 걸음도 걷지 못한 채 내가 디디고 있던 바닥은 사라졌다. 팔을 뻗어 바닥을 잡아 보려고 해도, 내 몸은 바닥을 뚫고 지나갈 뿐이었다. 모노로그가 그렇듯이.

 

무로 시라베: 아… 또 이건가?

 

이건 좀 아닌데.

 

살인 게임의 관리자가 빌어먹을 학급재판의 시스템 하나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니.

 

나는 그 암흑 속으로 또다시 떨어졌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몇 초 뒤에야 땅을 밟았다. 불합리함에 대한 반발이 솟구쳤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당장 나와!

 

모노로그: 불렀나?

 

무로 시라베: 이건 또 뭐야. 결투라니. 이런 게 있다고는 언질이 없었잖아.

 

모노로그: 꼭 학급재판에선 언질이 있어야만 한다는 투로군.

 

무로 시라베: 야가미도 결투 따위는 원하지 않았을 거야. 네가 그렇게 유도했을 뿐… 이 결투는 무효로 처리돼야 돼.

 

모노로그: 그가 원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아. 담소를 나눌 시간은 없는 것 같군. 동기화가 되었어. 저길 봐.

 

가미 토가: …여긴 어디지. 그보다.

 

야가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공간이 서서히 색채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야가미가 있었다.

 

가미 토가: 세상에 모노로그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야가미를 중심으로 색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철근이 세워지고, 시멘트가 채워지고, 벽이 만들어졌다. 위를 보니 해와 달이 몇 번씩이나 바뀌었다. 거리 왜곡과 창문에서 초자연적인 탑의 작용을 보았으나 이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로 시라베: 이게 뭐지. 모노로그?

 

모노로그: 이 공간은 결투 신청자의 무의식에 기반한다. 이 곳은

 

공간이 확장되었다. 들불이 번지는 것처럼 칠흑은 바뀌고 자라나고 이루어져. 한 장소로 변해갔다.

 

몇 초만에 주변은 달빛 아래의 항구로 변했다. 바다는 사람을 집어삼킬 것처럼 검은색이었다. 부두에 작은 요트가 떠 있었다. 야가미는 등을 돌려 그 요트를 잠시 보았다.

 

모노로그: 아. 그녀가 계획했던 최후의 도피가 가로막혔던 바로 그곳인가? 딱하기도 하지. 이 곳이 그렇게 인상 깊었던 건가.

 

무로 시라베: 내 물음에 대답해.

 

모노로그: 너라면 이미 눈치챘을 텐데? 이 곳은 결투장이다. 결투 신청자와 결투 대상은 이 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언총을 겨누게 된다. 

 

모노로그: 결투 신청자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감정에 먹혀버리면 그 말은 턱 없이 비어 있게 되지.

 

가미 토가: 어떻게 이런 일이… 마술입니까? 환상입니까? 무엇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군요. 이건

 

야가미가 단안경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가미 토가: 눈이 이렇게 잘 보이다니… 하하…!

 

단안경을 벗은 채 야가미는 웃고 있었다. 두 눈은 멀쩡하게 돌아온 듯 보였으나 건강한 웃음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흥분과 허탈감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듯한 그 웃음은. 광기로 나아가기까지 한 발자국만 남은 이의 웃음이었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진정해. 이건 전부 환각이야. 모노로그가 네게 헛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야.

 

가미 토가: 영혼까지 팔아넘긴 대가로는 확실히 조금 모자라지만. 싫지만은 않군요. 나쁘지만은 않아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건.

 

무로 시라베: 내 말을 들어!

 

모노로그: 이미 그에게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자를 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그 자가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특히 그렇다.

 

모노로그: 이제 저것은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너를 몰아세울 것이다.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감조차 야가미의 표정 앞에서 사그라들었다. 단안경을 끼지 않은 야가미는 분노를 온전한 두 눈에 담았다. 미도리카와와 비슷한 살기가 퍼져 나왔다.

 

가미 토가: 당신…!

 

무로 시라베: 나더러 뭘 하라는 거야.

 

모노로그: 결투의 신청자는 한 없이 강대한 자가 되지만, 그 강대함에 취해 버린다면 사리분별을 할 수 없게 되지. 그는 이제 총으로 널 쏘려는 무뢰배가 되었을 뿐이다.

 

모노로그: 아버지의 낯을 잊은 자라 할 수 있다.

 

무로 시라베: 뭐?

 

'아버지의 낯을 잊다'

재단에서 들은 말이다. 우리들의 선조가 우리들과 함께하고, 항상 우리를 지켜본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표현이다.

아버지의 낯을 잊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우리를 지켜본다는 것을 잊었다는 뜻이다. 회한과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혹은 명예롭던 과거와 동떨어지게 될 때. 아버지의 낯을 잊게 된다.

 

무로 시라베: 네가 그 말을 어떻게 알지?

 

모노로그: 지금 그 사안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해야 하는 말을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노로그: 그를 설득해라. 이성을 잃고 논점을 잃은 자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라.

 

가미 토가: 당신은 나를 멈출 수 없습니다… 나는 모든 값을 받아낼 겁니다.

 

모노로그: 이런. 나에게 덤비게 생겼어. 그럼 총잡이의 자질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히무로 시라베.

 

무로 시라베: 기다려!

 

물어볼 것이 많았으나 모노로그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혀를 쯧 차며 야가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양손에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가미 토가: 당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무로 시라베: 아. 또 기관총들이야

 

내가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린 순간. 내가 있던 곳은 벌집이 되었다.

 

가미 토가: 어딜 가는 겁니까?! 모습을 보여요! 당장!

 

힘 께나 쓰는 초고교급들은 다 기관총을 양손에 들고 쏘아 보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재판장 위에서 커다란 모니터가 내려왔다. 그곳에서 상영되는 것은 3인칭 시점으로 나오는 야가미와 히무로의 모습이었다.

 

야가미는 기관총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히무로는 도망쳤고 야가미는 그를 쫓았다. 나는 히무로가 쓰러져가는 공장 건물들 사이로 몸을 숨기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롤 브라이트: 저긴… 바로 그 장소

 

캐롤 씨가 멍하니 중얼거리셨다.

 

기와라 우시오: 뭐야. 씨발?! 람보다!

 

유즈미 나데시코: 안 돼. 히무로가

 

이토 유즈루: 야. 이거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거야?! 나도 저기로 보내 줘!

 

모노로그: 결투에 끼어들 수는 없다. 저 싸움은 오롯이 히무로 시라베의 몫이다. 응원해 주도록.

 

키와 아유키: 어떻게 방법이 없나? 어떻게

 

루미나미 나몬: 안 돼…! 안 돼…! 야가미. 절대 용서 못 해

 

다들 난색을 표하며 히무로를 걱정했지만 그 중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후루미나미였다.

 

루미나미 나몬: 저 재밌는 걸 혼자서 다 하다니…! 너무해! 난 저거 안 됐단 말이야! 저 재밌는 걸 나만 못 해!

 

…꼭 걱정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나시: 야가미가 저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봐. 왜 저렇게까지

 

모노로그: 스스로의 감정에 먹혀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의 누구도 스스로의 터져 나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억누를 수 없어. 그것이 진실이다. 저 히무로 시라베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이다 쿠로하: 저긴 또 어디야? 저기가 고릴라에게 있어서 유리한 장소라고?

 

모노로그: 인상이 깊은 장소지. 잊을 수 없는 장소. 저곳에 너도 있었다. 카이다 쿠로하.

 

이다 쿠로하: 알 게 뭐야. 난 알지도 못하는 일이야. 나랑은 상관없어.

 

롤 브라이트: 당신.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모노로그: 지금이 서로 싸울 때인가? 굳이 그러겠다면야 회포를 풀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이다 쿠로하: 꺼져. 모노로그.

 

바라 쿠리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저기서 총을 맞으면 진짜 죽는 거잖아?!

 

기와라 우시오: 아니야. 아마 안 죽을 거야. 살인 게임의 참가자가 그렇게 쉽게 소모될 리 없어. 나빠봤자 심한 정신적 충격이나 트라우마 정도?

 

키와 아유키: 그것도 안 돼!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의 마지막은 그래도 꽤 처절한 걸… 지금 기억해두면 영원히 나와 함께할 수 있겠지.

 

후루미나미는 화면에 나오는 히무로의 모습을 다이얼로그로 찍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기억할 생각 말고. 나중에 만날 생각을 해!

 

마유즈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이 외쳤다.

 

유즈미 나데시코: 얘들아. 이거! 과녁! 과녁!

 

토키와도 마유즈미가 가리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키와 아유키: 과녁이 전부 닫혔어. 히무로의 것을 제외하면 전부 닫혔어.

 

토키와의 말대로였다. 전부 열려 있던 16개의 과녁은 히무로의 것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그 뜻을 이해하진 못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도 히무로는 총격의 위험에 놓여 있었다.

 

 

 

 

 

사람이 기관총 두 개를 양손에 들면 어떤 화력이 나오는지. 두 번 다시 알고 싶지 않았다.

 

카이다의 화력과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더 강했을지도 몰랐다. 야가미의 기관총은 장전이 필요 없는 것처럼. 사방에 마구 총알을 쏘아 댔음에도 끊임없이 총성을 내뿜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었다.

 

주변에는 폐공장이 잔뜩 있었다. 콘크리트와 녹이 슨 철판. 방치된 환경. 범죄자들의 점거지로 활용될 만한 환경이었다. 야가미는 이 세계에 발을 디뎠던 것인가. 한쪽 눈을 거의 잃었고?

 

야가미에겐 익숙한 환경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처음 보는 장소였기에. 어디로 숨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숨어봤자 야가미의 손바닥 안일 터였다. 이 장소가 야가미에게 유리하다면 결국 도망치는 것 말고 다른 것이 필요했다.

 

전차에 다리가 달린 것처럼 야가미는 움직였다. 나보다는 느렸지만 파괴적이었고 지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강인했다. 아무런 충격도 줄 수 없을 만큼.

 

실린더에 언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한 뒤. 그의 사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았다. 틈을 발견했을 때 나는 고개를 내밀고 그를 향해 방아쇠를 네 번 당겼다. 

 

내 의도대로라면 양팔과 양다리에 맞았어야 했다. 그리고 맞췄다. 맞췄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총성에 비해 언탄이 야가미에게 주는 충격은 무척 미미했다. 재판장에서도 언탄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여기선 더했다.

 

무로 시라베: 맞은 척도 안 하잖아

 

가미 토가: 거기 있었군요!

 

무로 시라베: 난 여기에 없어.

 

이런 거짓말에 속진 않겠지. 아무리 눈이 멀었다고 해도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총알을 피할 곳을 찾아 달렸다.

 

야가미에게 아무런 부상도 입힐 수가 없었다. 언총은 그저 논쟁을 돕는 도구이기 때문인가? 그렇기에 아무런 충격도 줄 수 없는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와 기억들은 그의 행방을 몰아붙이는 데에 사용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의 그를 상대로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낭패감을 느꼈다. 양손에 기관총을 들고 날 벌집으로 만들려는 자에게 확성기를 들고 맞서는 꼴이었다.

 

무로 시라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노로그는 말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그것은 이해가 되었다. 재판장에서 보여준 언탄의 효력으로 보아, 효과가 클 수록 그리고 타당할수록 언탄의 충격량은 커지는 것으로 보였다.

 

증거를 언탄으로 쏘아 야가미에게 충격을 입혀라. 모노로그가 내게 요구한 일은 그것일 터였다.

 

야가미가 그걸 순순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폐공장의 너덜너덜한 문이 바닥에 쓰러졌다.

 

가미 토가: 날 버리고 갈 순 없을 겁니다. 이번만큼은! 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야가미가 몸을 부딪쳐 부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응사를 포기한 채 다른 공장 뒤로 몸을 날렸다. 흙먼지 속을 한 바퀴 구르는 동안, 콘크리트 벽에 총알이 파바박 박히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직감했다. 그를 따돌릴 수 있을지라도 그에게서 숨을 수는 없었다.

 

그래. 증거로 야가미에게 충격을 줘서 맞서면 된다. 문제는 내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부족한 증거를 논쟁과 논의를 통해 메꿔야 하는 것을 결투장에 소환되다니.

 

저 상태에서 내 말을 듣길 바라야 하나? 쓴웃음이 나왔다. 숨은 점점 차올랐다.

 

 

 

 

 

 

이토 유즈루: 왜 야가미는 총을 맞고도 멀쩡한 거야?!

리 레이코: 총이 아니라 언총이기 때문일 거다. 총알이 아니라 언탄이고. 언총은 논쟁을 돕는 도구일 뿐 사람을 해칠 수는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적절한 반론이 아니라면 충격을 줄 수 없다.

 

모노로그: 잘 보았어. 히무로 시라베의 언탄이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상. 그는 아무런 해도 입힐 수 없다.

 

모노로그: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루미나미 나몬: 사건에 대한 결정적 증거? 그거 참 큰일이네. 히무로한테는 그런 게 없을 텐데

 

그럼 히무로는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거냐고 물으려다가.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나시: 설마 모노로그가 그냥 히무로를 지게 둘까?

 

키와 아유키: 나나시. 뭐라고?

 

나시: 결투 신청자가 전부 야가미와 비슷해진다면, 결투의 대상이 위기에 몰리리라는 것은 당연하잖아. 모노로그가 그걸 알고서도 이런 불합리한 게임을 진행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분명 히무로의 과녁만이 열려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나는 히무로의 자리로 달려가. 그의 과녁을 들여다보았다.

 

나시: 과녁은 애초에 뭘 하는 물건이었지? 뭘 위한 조형물이었지?

 

기와라 우시오: 총 쏘는 곳 아녀?

 

그래. 언탄… 언탄을 쏘면 글자가 떠오르는 물건이었다.

 

히무로는 이 자리에 없는데 왜 히무로의 과녁은 열려 있을까.

 

여러 정보를 종합해 생각하는 와중. 시도해보고 싶은 발상이 떠올랐다.

 

나시: 히무로의 과녁만 열려 있다는 건… 히무로의 과녁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나리 케이토: 그걸 누가 몰라?! 어쩌라고!

 

나시: 히무로의 과녁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히무로의 과녁을 사용하라는 거야. 과녁에 언탄을 쏘라고

 

히무로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나는 내 직감이 맞길 바라며 과녁에 언탄을 쏘았다.

 

언탄이 과녁 안으로 흡수되었다.

 

루미나미 나몬: 잠깐…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야?!

 

후루미나미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 총을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키와 아유키: 후루미나미. 뭔진 몰라도 히무로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마.

 

루미나미 나몬: 내가 미쳤니. 여기서 초를 치게? 여기서 클러치를 맡을 수 있다니. 최고야. 정말 환상적이야! 안타고니스트도 좋지만 히로인도 근본이 넘치지! 아. 좋아라. 난 이 살인 게임이 너무나도 좋아!

 

후루미나미가 웃으며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 트리거 해피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후루미나미는 그 모습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그녀는 순수한 웃음을 지었으므로.

 

 

 

다른 곳으로 몸을 숨기려던 찰나 주머니 속에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물감이 내 허벅지를 스쳤다.

 

주머니 속에서 그것을 꺼내 보았다.

 

무로 시라베: 이게 뭐지.

 

핫핑크색의 언탄과 아이보리색의 언탄이 들어 있었다.

 

무로 시라베: 언탄은 평범한 총알처럼 황색 계열을 띄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쉼 없이 다리를 움직이며 두 언탄을 살피던 도중. 나는 아이보리색 언탄에 새겨져 있는 글자를 읽었다.

 

무로 시라베: 자상의 흉기…?

 

순간. 난 언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어도 그런 감각을 느꼈다.

 

"흠. 칼. 칼. 칼… 많기도 하군. 다 압수하면 장사를 차려도 되겠어."

 

누군가가 말했다. 이상하게 웅웅 거리는 울림이 목소리에 섞여 있었기에 누구의 것인지는 몰랐다. 나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았다.

 

나는 깨달았다. 기억을 보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기억이다. 그것을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숙소에도 이렇게 널렸는데 전용실에는 얼마나… 아. 여기 있군! 역시 그녀라면 이런 곳에 흉기를 둘 줄 알았지. 누군가가 자신의 숙소에 침입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일 테야."

 

목소리의 주인이 피 묻은 단도를 발견했다. 피는 거의 말라붙기 직전이었고, 날은 여전히 날카로워 보였다.

 

저게 흉기였다. 저게 자상을 만들어낸 흉기. 미도리카와의 목을 벤 흉기는 날카로운 단도였다. 저렇게 날이 잘 들었다면 여러 번 찌를 필요도 없이 미도리카와에게 관통상을 남길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훼손된 관통상을 만들만한 흉기는 아니었다. 자상의 흉기와 관통상의 흉기는 역시 별개의 물건이었다.

 

"탐정. 좀 조용히 못 해? 이러다가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알겠네. 미안하게 되었어. 자제하도록 하지."

 

목소리의 주인은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대답했다.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누구의 목소리지.

 

그것에 집중하던 도중. 시야가 트이듯이 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자. 다음 쓸 만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 볼까."

 

후루미나미.

 

기억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찰나의 시간조차 흐르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무로 시라베: …그래. 좋아.

 

언제 그녀가 저런 증거를 손에 넣었는지는 둘째 치고. 이 지식과 기억은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건가. 이렇게 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발상이었다.

 

나는 아이보리색 언탄을 실린더에 넣고 장전했다. 텅 비어있던 내 사격은 비로소 무게를 갖추었다.

 

야가미의 총성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를 거꾸러뜨릴 수 있으리라는 직감이 들자마자 땀이 식었다.

 

무로 시라베: 원래대로 돌아와. 야가미. 지금보다 그 편이 더 상대하기 어려웠어.

 

야가미에게 닿지 않을 터인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쓰면서 와 나 추리물 진짜 답이 없구나... 를 느꼈습니다 아니 왤캐 쓰기가 어렵냐고

 

어쩌다 보니까 언탄 다 쓰지도 못하고 그냥 끝까지 왔음 트릭이 너무 별 게 없어서 너무 쉽게 끝난덧... 사실 전개를 더 끌어봤자 더 재밌는 게 나오진 않을 것 같아서 급마무리짓는 느낌도 없잖아 있네요

 

1챕터의 끝이 다가옵니다 봐주신 만큼의 가치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