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로그: 학급재판장에 온 걸 환영하지.
조명이 켜졌다. 학급재판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알파걸이 주도했던 살인게임과는 사뭇 달랐다. 알파걸의 학급재판장이 자극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면, 탑의 학급재판장은 음울한 쪽에 가까웠다.
나무로 만들어진 지정석. 탑의 색 만큼이나 검게 깔린 바닥과 벽. 촛불처럼 은은하게 재판장의 내부를 밝히는 조명. 법관석에 놓인 중세 양식의 화려한 의자.
살인게임의 상징과도 같은 학급재판장처럼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꼈다.
알파걸의 살인게임과는 다른 요소 또한 눈에 띄었다. 바닥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과녁이었다. 16개의 과녁.
그 용도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하기와라가 외쳤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게 왜 학급재판장이야? 재판장도 아니고 학교도 아닌데. 애초에 왜 재판 앞에 학급이 붙냐고. 여기가 학교야?!
학급재판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수상했지만. 당장은 재판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살아남지 못하면 탑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을 테니.
모노로그: 시작하기에 앞서. 너희들에게 지급할 물건이 있다.
모노로그가 입에서 장갑을 토해내었다. 매끈하고도 튼튼해 보이는 가죽 장갑이 한 사람 당 한 쌍씩 배급되었다..
모노로그: 장갑을 착용하도록. 반동을 견뎌야 할 테니.
히무로 시라베: 무슨 반동?
장갑은 내 손에 맞는 크기였다. 다른 이들의 반응으로 보아 그들 또한 맞춤형의 장갑을 배급받은 모양이었다. 살인게임을 할 정도면 장갑 크기 정도는 쉽게 알 수 있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갑이라니. 알파걸의 학급재판에 이런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모노로그만의 독단인가?
모노로그: 총의 반동이지.
야가미 토가: 총이요?
야가미의 물음에 모노로그는 장황한 설명보다 한 번 보여주는 일을 택했다. 모노로그가 다시금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15개의 총이 각각 우리들의 손에 떨어졌다.
이건 뭐지.
총이잖아.
카이다 쿠로하: 뭐야. 이걸 왜 주는 건데?
모노로그: 당연히. 쏘라고 주는 것이지.
하기와라 우시오: 좆 됐 다 !
하기와라와 다른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모노로그는 그런 우리들을 보며 피식 웃고 총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모노로그: 이 언총(言銃)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야만적인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야만적인 너희들이 정연하게 논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이지.
모노로그: 재판장에 놓인 과녁이 보이나?
학급재판장에 배정된 자리 16개의 바로 앞에는 각각 과녁이 놓여 있었다. 45도 각도로 쏘면 정중앙을 맞출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모노로그: 저 과녁에 총알을 쏘아 맞춰 봐라.
후루미나미 나몬: 총알을 안 줬잖아?
모노로그: 총알은 이미 너희들의 총 안에 들어 있다.
총. 대체 왜 하필 총이지?
대체 무슨 뜻이야. 나는 언총의 실린더를 열었다. 여섯 개의 구멍에 여섯 발이 들어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뭐야! 세 발 밖에 없는데?
나이토 유즈루: 썅. 난 두 발!
후루미나미 나몬: 여섯 발. 좋아! 역시 나는 대단해!
의아함에 고개를 들었다. 왜 총알의 개수가 다르지? 이건 공평하지 않았다. 전혀.
개개인에게 이익과 불이익을 각각 나누어 주겠다고? 모노로그는 제정신인가? 이런 살인게임이 다 있다니.
분명 기준이 있을 텐데. 대체 이 총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에게 지급되는 것이지? 나는 실린더에서 총알을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그 총알에는 굵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읽기에는 작은 크기의 글씨였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런 무리 없이 읽을 수가 있었다. 이미 읽은 책의 구절을 읽듯 눈에 익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범의 가능성'
히무로 시라베: 설마.
모노로그: 언총은 사용자에게서 지식을 추출해내 언탄(言彈)으로 정제한다. 그 언탄을 과녁에 쏘면. 언탄의 내용이 나타나지.
크지는 않은 격발음이 들렸다. 방아쇠를 당긴 이는 후루미나미였다. 그녀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후루미나미 나몬: 진짜 되네!
'흉기' 라는 글자가 우리들의 눈 앞에 떠올랐다.
나나시: 홀로그램화 된 정보를 변환기에 넣어서 메시지를 띄우는 건가…?
모노로그: 다이얼로그와 연결할 수도 있지.
다이얼로그의 두 번째 줄. 증거 저장 메뉴.
그것을 누르자 다이얼로그가 철컥이며 변형되었다. 매끄럽던 화면이 반으로 갈라져 쩍 열렸고, 그 안에서 총구를 끼워 넣을 만한 홈이 나타났다.
반신반의 하며 그것에 언총을 끼워 넣자.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증거 저장 메뉴에 나타났다. 공범의 가능성부터 창살의 흔적까지. 한눈에 찾아볼 수 있도록 나타났다.
모노로그: 언탄과 언총. 그리고 장갑을 사용해 어떤 일을 할지는 너희들 스스로 알아내길 바란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너희들은 아군을 포섭할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른 이를 완전히 묵살시킬 수도 있다. 다 지고 있던 재판을 단숨에 역전하는 것도. 사용하기 나름이지.
모노로그: 그러니 너희들이 살아남고 싶다면 최대한 발버둥 치길 바란다. 말은 너희들의 무기다. 말 그대로. 지금 너희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말과 그것을 다듬을 수 있는 정신뿐이다. 강철의 육신을 가진 자라도 머리를 굴리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지.
모노로그: 검정을 맞추지 못하면 검정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선, 검정을 맞추더라도 검정이 죽지 않는다. 불공평한 것 같나? 걱정 마라. 결국 탑은 균형을 맞추게 될 것이다.
모노로그: 자. 비로소 모든 것이 시작된다. 학급재판을 개정한다!
모노로그의 외침과 함께. 운명과 명운이 달린 재판이 시작되었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업보처럼 다가온다."
후루미나미 나몬: 자. 시작! 어후. 떨려. 이거 잘못하면 우리 다 죽는 거 알지? 다들 조심해야 해!
나이토 유즈루: 너… 그렇게 말하면서 되게 신나 보인다?
칸나즈키 시노부: 이상한 짓 마!
후루미나미 나몬: 오해 마! 여기서 몰살되는 비극을 내가 바랄 것 같아? 솔직히 다 무병장수하는 것보단 여기서 다 죽는 게 낫지만. 그러기엔 비극이 덜 익었잖아. 아직 내 사랑도 얻지 못했다고!
히무로는 아무런 반응 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산만해졌다.
모리 레이코: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까지 같잖은 노름인가? 즐거움 밖에 쫓지 못하는 저열한 이 같으니.
카나리 케이토: 어휴.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토키와 아유키: 얘들아. 잠깐 조용히…
후루미나미 나몬: 즐거움이라니. 난 엄연히 비극의 추종자인걸?
하기와라 우시오: 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정신나갈거같애!
순간. 히무로가 하늘을 향해 총을 몇 발 쏘았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꺄악!
카나리 케이토: 뭐야. 저 미친놈?! 총알을 낭비하고 있잖아?!
나를 포함한 모두가 놀라서 말을 멈춘 뒤. 히무로가 총을 내렸다.
히무로 시라베: 미안해.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서 이목을 끌었어. 언탄은 어차피 우리들의 지식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마음만 먹으면 다시 채울 수 있고.
히무로는 실린더를 옆으로 열고 똑같은 언탄을 계속 꺼내며 그 사실을 증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놀라웠다. 난 아직 이 총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모르는데, 히무로는 벌써 언총에 적응하고 있었다.
저게 히무로의 재능이구나. 그의 전용실에 총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프로파일러가 아니었다. 그는 총잡이였다.
그의 과거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단지' 프로파일러라 불릴 인물이 아니었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으… 내 귀가…
히무로 시라베: 놀랐다면 미안. 말을 하고 쏠 걸 그랬어. 그래도 실탄을 쏘는 소리보단 작으니 다들 귀를 다치는 일은 없을 거야.
야가미 토가: 언탄은 무한정으로 나오는군요… 이 복제한 언탄들을 다른 이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거의 모든 지식을 처음부터 공유한 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모리 레이코: 그렇군. 그보다 바람직한 일이 없을 것이다. 당장 시험해보도록 한다.
후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이 언탄들에 뭐가 적혀 있는지 보여?
후루미나미가 히무로에게 언탄 두 발을 건넸다. 히무로는 천천히 언탄에 새겨진 문구를 읽었다.
히무로 시라베: '창살의 흔적'. 나머지 하나는 안 보여.
후루미나미 나몬: 흠. 묘한데! 이건 네가 모를 법한 정보긴 하지만서도.
히무로 시라베: 뭘 숨기고 있는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건 나중에 얘기해.
히무로와 후루미나미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오갔다.
모리 레이코: 당장 대답해라. 승부사. 시계공. 이 언탄에 적힌 글씨가 보이나?
모리는 나이토와 시계공에게 언탄을 보여 주었다. 나이토는 고개를 갸우뚱 돌렸다.
나이토 유즈루: 하나밖에 없잖아? '탑 밖에 있었던 카이다 쿠로하'. 카이다가 탑 밖에 있었던 걸 누가 몰라? 너 언탄이 이거뿐이야?
아. 모리는 수사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탄의 지급량 자체가 적었던 거구나…
카나리 케이토: 야. 내 건 보여?
모리 레이코: 미안하지만 안 보이는 군.
카나리 케이토: 뭐야. 너 진짜 아무것도 몰라? 이러면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모리 레이코: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것이 허용되진 않을 터다. 시계공.
모리의 고압적인 말에 카나리는 한풀 기세가 꺾인 듯이 보였다. 그런 그들을 나이토가 중재했다.
나이토 유즈루: 싸우지 마. 이것들아. 재판 너희들 혼자 하는 것도 아니잖아. 다 같이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좀 진정해.
분명 히무로가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다들 이렇게 한 눈을 팔아도 되는 건가…?
캐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저희도 시험해 보아요.
캐롤 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나시: 아. 네!
캐롤 씨가 내게 세 발의 언탄을 건넸으나. 난 그 중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나시: 죄송해요. 잘 안 보여요…
캐롤 브라이트: 음. 아무래도…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공유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토키와 아유키: 그렇지만 서로 알고 있다면. 애초부터 공유할 필요가 없잖아요?
히무로 시라베: 결국 의미가 없단 거지. 지식에서 추출된 게 언탄이니 다른 이에게서 양도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쓸 수 없을 테고.
야가미 토가: 그래서. 히무로 씨.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무엇이죠?
히무로는 총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들의 눈앞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무로 시라베: 공범의 가능성.
나나시: 공범…?
히무로 시라베: 규칙 기억 나?
히무로의 말에 나는 다이얼로그의 '규칙 확인' 메뉴를 눌러보았다.
규칙 2: 시체가 3인 이상의 사람에게 발견될 경우 검정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학생들은 학급재판에 참여합니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교칙 위반으로 간주해 처벌합니다.
히무로 시라베: 3인 이상의 사람에게 발견될 경우 재판이 열리지. 그렇지만 내가 시체 발견 방송을 듣고 미도리카와의 방으로 달려갔을 때. 목격자는 나나시와 토키와 둘 뿐이었어.
하기와라 우시오: 야. 저거 진짜야? 나 탑 밖에 있어서 몰라.
토키와 아유키: 히무로 말이 맞아. 우리 둘 뿐이었는데 방송이 울렸어.
야가미 토가: 확실히. 이상하군요… 나머지 한 분은 누구죠?
카나리 케이토: 범인이겠지!
카나리가 소리쳤다.
후루미나미 나몬: 범인도 목격자에 포함된다면 사실상 목격자가 둘만 있어도 방송이 열리는 거 아니야? 범인이 리 신이면 모를까… 아니면 눈을 감고 죽인다던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분명 그때 모노로그는…
나나시: 모노로그는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어. 범인이 포함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다고…
나이토 유즈루: 뭐야. 그럼 이번 범인은 어떻게 된 건데?!
모노로그: 답해줄 수 없다.
모노로그의 대답에 나는 그만 큰 소리를 내었다.
나나시: 그런 게 어디 있어?!
캐롤 브라이트: 모노로그 씨가 그때 말씀하신 것처럼. 수사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모노로그: 그렇다. 범인이 포함되었다. 포함되지 않았냐에 따라 많은 경우의 수를 쳐낼 수 있지.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노로그: 너흰 우선 모든 경우의 수를 손에 넣은 뒤, 형편에 맞지 않는 걸 버리거나 다시 주워야 한다. 그게 재판의 올바른 절차야. 시작부터 경우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너무 쉽지 않겠어?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공범이 재판에 있어서 어떻게 판정되는지 말해 줘. 만약 두 명이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면 두 명의 범인을 각각 지명해야 하나? 처형은 어떻게 되지? 전부 처형하는 건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이도?
모노로그: 진정하지 그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공범이 아무리 위증을 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를 제압해도. 실상 실행 이외의 모든 것에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나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다.
모노로그:피해자를 죽인 순간의 실행범뿐이다.
히무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모노로그 말대로면 공범이 있어도. 막상 그 공범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거잖아! 남 좋은 일 하는 거라고. 공범이 있을 수가 없어!
야가미 토가: 저희는 이 내용을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이후 벌어질 살인 사건은 몰라도 지금의 것은 공범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바라 쿠리스: 다음 살인 사건 같은 건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바라가 중얼거렸다.
후루미나미 나몬: 여기서 다 죽어서 다음 살인 사건이 없다는 거야?
이바라 쿠리스: 너 자꾸 그런 농담 하지 마.
웃음기를 조금도 담지 않은 채 이바라가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던 웃음기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본 뒤로. 이바라는 한 마디의 농담도 던지지 않았다.
가장 친했던 하기와라가 그녀를 인질로 삼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꼭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는데.
후루미나미 나몬: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왜 매사 그렇게 진지하니!
모리 레이코: 신경전은 나중에. 재판에 집중한다.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의 말이 옳아. 이 사건에는 분명히 공범의 가능성이 존재해. 그 점을 전제에 놓는다면 사건을 추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만약 공범이 존재한다면! 빨리 공범은 진범이 누군지 말해 주지 않을래?!
하기와라가 손나팔을 입에 대고 말했다. 평소만큼이나 장난스러운 어조였다. 아까 이바라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았는데 그새 또 사람이 바뀐 건가…?
나이토 유즈루: 또 지랄하네!
하기와라 우시오: 지랄이 아니라. 그럼 빨리 끝나잖아. 어차피 진범이 이겨도 공범은 죽어. 진범을 말해도 이 재판만큼은 진범이 안 죽고. 그럼 빨리 끝내고 쉬자! 재판 시작했다 재판 끝났다!
장난스럽기 짝이 없는 어조였지만, 그의 말은 진실을 분명하게 꿰뚫고 있었다.
나나시: 그렇긴 하네…?
모리 레이코: 그렇긴 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그렇다. 공범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정말 공범이 있다면 진범에게 협력할 이유가 없음은 명백하다. 그러니 곧 진범을 밝히겠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아도. 누구도 자신이 공범이며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원 사이에 그저 침묵과 의아함만이 오갔다.
카나리 케이토: 뭐야. 왜 이래? 공범이 없나?
칸나즈키 시노부: 으으음. 뭐임.
히무로 시라베: 공범에게도 생각이 있겠지. 살인에 가담했음을 숨기고 싶거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진범만이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야가미 토가: 공범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은 진범에게만 도움이 됩니다. 그게 저희들의 대전제를 흔들고 있죠. 공범에게 득이 없는 이상 공범은 진범을 밝혀도 좋다. 그러나 공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공범이 없는가?
야가미 토가: 저희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진범에게 도움이 되는 것 자체가 공범의 목적이라면요?
야가미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의논하면 할수록 사건의 본질에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건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체 뭐지? 공범? 진범? 진범에게 도움?
히무로 시라베: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한 번에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 추리가 복잡해질 뿐이야. 서서히 되짚어 보는 것이 옳아.
후루미나미 나몬: 당연하지! 사건이 어떤 경위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 읊어 버리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런 건 비현실적이고. 만약 그런 게 나온다고 해도 재미는 없겠지!
다들 몇 초간 정색한 채 후루미나미를 보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왜.
토키와 아유키: 그냥… 다들 조사한 거나 말하자. 이렇게 계속 흐름이 끊기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토키와의 반쯤 체념한 듯한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논의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범의 가능성을 첫 번째 언탄으로 제시했다. 그다음은.
히무로 시라베: 이 사건은 밤에 이루어졌기에 알리바이를 특정하기가 어려워. 다들 자신이 언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증언해줄 사람이 없을 거야.
나나시: 그렇게 빨리 살인이 일어날 줄은 몰랐으니까 당연해. 다들 미도리카와가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들떠 있었는데…
모리 레이코: 알리바이의 특정이 어렵다는 건 용의자를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뜻이겠지. 어렵게 되었군.
야가미 토가: 아뇨.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야가미의 말이 맞다. 특정할 수 있다.
야가미는 자신의 과녁에 대고 총을 쏘았다. 곧 공중에 세 명의 최유력 용의자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야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의 숙소와 근접해 있는 저. 카이다 씨. 그리고 마유즈미 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내가 했던 대로 로프를 타고 이동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나이토 유즈루: 밧줄을 구할 수가 있나…?
모리 레이코: 밧줄은 창고에 충분히 남아 있었다. 첩자를 잡으러 떠나기 전 휘발유를 찾기 위해 창고를 찾았을 때. 사기꾼, 서예가, 밀수업자, 프로파일러를 묶기 위해 사용되고도 충분한 양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밧줄은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창고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추궁할 수 있다면 검정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겠지. 창고에 드나든 이들을 모두 확인할 순 없으니 소망일 뿐이지만.
그 와중. 카이다는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째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나나시: 그렇지만… 마유즈미에게도 범행이 가능했을까?
나나시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말했다.
카나리 케이토: 가능했다잖아! 넌 지금까지 뭘 들었어?
나나시: 나도 들었어! 하지만 마유즈미의 팔은 밧줄로 묶여 있었잖아. 온몸이 묶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이 묶인 채로 사람을 죽이긴 어려워.
캐롤 브라이트: 확실하게 그렇죠.
캐롤의 첫마디. 그녀는 지금까지 재판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야가미 토가: 아뇨. 히무로 씨도 손이 묶여 있었지만 조사를 위해 방에서 나오셨을 때는 이미 밧줄을 푸신 뒤였습니다.
토키와 아유키: 맞아.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히무로 시라베: 침대의 모서리에 갈아 밧줄을 느슨하게 만든 뒤 힘으로 끊었어.
모리 레이코: 서예가에게 완력이 부족하더라도, 밧줄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나?
마유즈미에겐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논리 정연한 반박이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 없는 것에 차라리 가까워 보였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지만… 그게…
마유즈미는 반론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말이 그녀의 입 안에서 빠져나가듯. 그녀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지금 마유즈미를 도와야 하는 것인가?
그녀는 나의 억지스러운 날조에 휘말렸다. 마유즈미가 한 선택이었다고 한들 그 환경을 제공한 것은 잘못이다. 분명했다.
돕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권리로?
마유즈미가 범인일 확률은 낮다. 그렇지만 그녀가 범인이라면? 그렇게 가정하면 누굴 믿을 수 있고, 누굴 믿어서는 안 되지?
결국 제자리였다. 사람과 감시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감시자 쪽으로 몸이 쏠리지만 사람이 되고 싶기에 중도에서 방황할 뿐이었다. 내 어디가 초인이고 초고교급인가.
머리에 손을 올리고 생각했다. 이 끝도 없는 고뇌에 떠밀려갔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금은 재판에 집중하기로 했잖아.
당장은 지켜보기로 결심한 뒤. 이후에 그녀와 대면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나는 차갑게 생각했다. 양심의 통증이란 것이 그런 정당화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동안. 캐롤이 마유즈미 대신 말을 보태 주었다.
캐롤 브라이트: 불가능해요. 저희가 미도리카와 씨의 숙소 앞에 모였을 때. 마유즈미 씨는 아직 손이 묶여 있었는 걸요.
후루미나미 나몬: 참고로. 나도 그랬어!
캐롤의 말에 후루미나미가 덧붙였다.
야가미 토가: 여분의 밧줄을 스스로 묶은 것일 수도 있죠.
칸나즈키 시노부: 마유즈미가? 쟨 신발끈도 혼자 못 묶을 걸. 카나리처럼.
카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나리 케이토: 얘 말이 맞아. 마유즈미가 밧줄을 타고 미도리카와를 죽인 다음. 다시 자기 숙소로 돌아와 밧줄을 자신의 팔에 묶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기와라 우시오: 뭐야. 이건 그냥 넘어가네?
카나리 케이토: 뭐.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야! 네가 눈치 못 챘으면 그냥 넘어가자. 너 열폭하는 것도 이젠 좀 질렸어.
모리 레이코: 그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탑에 남아 있었던 이들 중 밀수업자의 비명이나 저항의 낌새를 들은 이가 있는가?
마유즈미 나데시코: 난 못 들었어…
야가미 토가: 저 또한 듣지 못했습니다.
모리 레이코: 숙소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듣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음 없이 죽인 셈이군. 너는 아무것도 못 들었나?
모리가 총을 잠시 과녁에 겨누었다.
나이토 유즈루: 야. 너 총알 없잖아…!
모리 레이코: 그것이 내가 모든 것을 구경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나이토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모리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믿음이 가진 않았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모리 레이코: 소음 없이 사람이 죽었다. 서예가와 협상가가 듣지 못했다면 다른 이들 또한 듣지 못했겠지. 하지만 밀수업자가 그렇게 쉽게 죽을 이던가?
모리 레이코: 그렇지 않다. 밀수업자를 죽인 이는 분명 무척 빨랐을 테지. 또한 강했을 거고.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었을까.
모리의 총이 과녁을 겨누다 말고 다른 곳으로 각도를 틀었다. 총구가 천천히 누군가를 향해 움직였다.
모리 레이코: 너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카이다 쿠로하.
모리가 카이다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카이다는 모리를 조용히 쏘아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다 쿠로하: 넌 총을 쥘 때만 자신감이 솟나 보지?
나이토 유즈루: 야. 말 돌리지 마! 생각해보니 그렇네. 얘 첩자잖아! 미도리카와랑 서로 죽일 듯이 싸웠고!
캐롤 브라이트: 그냥 첩자가 아니에요. 초고교급 첩자조차 아니죠. 카이다 씨는 인간을 뛰어넘은 수준의 암살자였어요.
캐롤이 이마에 손을 댄 채 말했다.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 카이다는 그저 초고교급 첩자가 아니다. 그 움직임은 초인의 것이었다.
캐롤 브라이트: 인체 실험 끝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육체를 손에 넣으셨죠… 저희에겐 불가능해 보이는 일조차 카이다 씨는 손쉽게 할 수 있어요.
카이다 쿠로하: 사실이지.
카이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진짜 존나 놀랐다니까. 땅을 파서 우릴 찾아냈다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렉사이인줄!
히무로 시라베: 땅 안에서 너희들을 찾아냈다고?
23T5U130: 응. 땅 밑에서도 우리를 볼 순 없을 텐데.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초인으로 개조를 받았다고 한들. 그 정도의 능력은 로를 위협할 수도 있기에 섣불리 부여받지 못했을 텐데.
기억해두자.
나나시: 카이다라면 범행이 가능할지도 몰라.
모리 레이코: 첩자는 또한 아침이 되어서야 나와 코미디언.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어디서 무얼 했지?
카이다 쿠로하: 대답하기 싫은데.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뒤져어어어어!
하기와라가 카이다에게 중지를 들었다.
칸나즈키 시노부: 사실 쟨 안 죽어. 이번에는 검정이 들켜도 안 죽는 거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재 얼굴을 내일도 보고 살아야 해? 오케이. 그럼 취소! 살아!
하기와라가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엄지를 들었다.
카이다와 연결할 수 있는 증거들이 참으로 많았다.
히무로 시라베: 흉기의 존재. 창살의 흔적. 미도리카와와 카이다 사이의 악연.
과녁을 향해 총을 연달아 쏘자 누군가가 원성을 토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아 3단 컴보 뭐야?! 진도 좀 따라가자. 천천히 말해 줘!
캐롤 브라이트: 그 자리에 후루미나미 씨도 계셨잖아요…?
후루미나미 나몬: 아. 맞다. 그랬지? 그럼 됐어. 떨거지들 버리고 우리끼리 실전압축재판 들어가자.
마유즈미 나데시코: 너무해…!
나이토 유즈루: 맞아! 그게 다 무슨 소린데?! 우리한테 알려 줘야 추리를 하지!
나와 함께 조사를 진행했던 이들이 설명을 보탰다.
야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의 상처는 흉기 없이 입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흉기를 가진 이는 무척 제한되어 있죠. 흉기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의 창살에 금속이 긁힌 듯한 자국이 남았어. 오른쪽. 왼쪽. 그리고 중앙. 이게 창살의 흔적.
캐롤 브라이트: 그리고 카이다 씨는 미도리카와 씨와 미도리카와 씨의 친구 분의 원수예요. 악연이 있으시죠. 그래서 미도리카와 씨는 그토록 카이다 씨를 노리셨어요.
이바라 쿠리스: 지금 보니 정말 그래. 무기를 가지고 있던 하기와라와 모리가 탑을 나갔으니 탑에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카이다뿐이야.
이바라 쿠리스: 창살의 중앙에 흔적이 남았다면 탑 밖에서 미도리카와의 숙소에 무언가를 걸어 올라왔다는 거고… 정말 많은 정황이 카이다를 가리키고 있어.
토키와 아유키: 카이다. 정말 네가 범인이야…? 네가 미도리카와를 죽였어?
토키와의 물음에 카이다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히무로 시라베: 묵비권을 행사하는 거야?
카이다 쿠로하: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애초부터 닥치고 있었겠지. 너희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미도리카와 그 또라이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토키와 아유키: 그게 무슨 뜻이야?
카이다 쿠로하: 너희들은 그 또라이의 진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 내가 한 마디 비명을 낼 시간도 주지 않고 걔를 죽일 수 있다고?
카이다는 반박이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작은 웃음마저 머금은 채 말했다.
카이다 쿠로하: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나한테 투표해. 다 여기서 죽고 싶으면!
마지막 대목에서, 카이다는 우리에게 으르렁거렸다. 실로 큰 성량에는 노기마저 등등하게 실려 있었다. 소리를 친 것보다는 포효한 것에 가깝게 들렸다.
우리가 그녀의 말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은 단지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카이다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카이다를 범인으로 지목하기에는 간과한 점이 너무 많았다.
카이다 쿠로하: 야. 헛똑똑이.
카이다가 손가락을 내게 가리키며 말했다. 당장 손가락으로 내 두개골을 뚫어 버리고 싶지만 참는다는 투였다. 그런 카이다의 지목에. 한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
카이다 쿠로하: 넌 입 닥쳐! 야. 너. 할 말 없어? 그 자식 전용실에서 비밀을 봤을 거 아니야!
캐롤 브라이트: 내가 히무로 씨 대신 말씀드리죠.
캐롤이 카이다에게 말하자. 그녀는 흠칫 놀라며 캐롤을 쏘아보았다.
카이다 쿠로하: 네가 뭘 아는데?
캐롤 브라이트: 너의…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요. 본의 아니지만 미도리카와 씨의 기억을 봤으니까요. 적어도 그녀가 아는 만큼은 저 또한 알고 있어요.
카이다 쿠로하: 아. 그러셔? 그럼 한 번 말해 보던가.
캐롤 브라이트: 네. 말씀드릴게요. 당신은 실험과 기억 소거의 끝에, 미도리카와 씨 정체를 잊어버렸죠. 그녀가 당신에게 왜 복수심을 불태우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죠?
그녀가 과녁에 총을 쏘자 기억을 잃은 카이다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캐롤 브라이트: 그 반대로. 미도리카와 씨는 당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단 한 번의 복수를 위해서. 당신에게 자신이 당한 것만큼의 고통을 돌려주기 위해서. 친구의…
야가미 토가: 본론을 말하세요.
야가미가 쏘아붙이자 캐롤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캐롤 브라이트: 그럴게요… 아무튼 오랜 시간 동안 카이다 씨를 경계해왔고 마침내 카이다 씨를 마주친 그녀가. 카이다 씨의 습격을 상정하지 못했을까요?
후루미나미 나몬: 오히려 대비를 하고 있었겠지. 무슨 수를 써서도 죽지 않던가, 적어도 카이다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게 준비해 뒀을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의 과거는 참 드라마틱하잖아. 내가 지금 히무로를 파는 게 아니었으면 미도리카와를 위해 시라도 한 수 읊었을 정도야. 카이다 때문에 그렇게 됐어! 이미 한 차례 카이다에게서 습격을 당해 봤는데 두 번 당하는 게 바보 아니겠어?
히무로 시라베: 그게 쟁점이 될 거야.
나는 과녁에 방아쇠를 당겼다. 미도리카와를 찌른 수단.
히무로 시라베: 대체 범인은 어떻게 미도리카와를 찌른 것인가.
나나시: 목에 난 상처보다 찌른 상처가 먼저 생긴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럼! 왜냐면 목에 저렇게 상처만 내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보단 그냥 심장을 찔러서 즉사시키는 게 더 쉽거든.
후루미나미가 총을 쏘았다. 최초의 관통상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후루미나미 나몬: 생각해 봐. 저런 상처가 쉽게 생길 것 같아? 사람의 목은 매우 중요한 급소라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그걸 방어하고 있어.
후루미나미 나몬: 바로 이렇게!
또 장난을 치겠거니.
후루미나미는 손바닥을 눕혀 내 목을 향해 뻗었다. 그녀의 팔을 잡아 더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뭣이?!
히무로 시라베: 모든 상황이 이렇게 종결되진 않겠지만. 베는 것보단 찌르는 것이 더 확실한 게 사실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이런 곳에 목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만 상처를 입힌다고? 그동안 미도리카와가 비명을 지르면 어쩌게?
하기와라 우시오: 질문 있어요! 심장이 찔리면 비명을 못 지르나요?
하기와라가 손을 들고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목에 제대로 상처를 낸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과 호흡을 막을 수 있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 그에 반해 찌르기는 체중을 실을 수도 있고, 살해 시도가 저지되더라도 팔꿈치 자체가 스프링처럼 작용해서…
하기와라 우시오: 와. TMI! 알겠어. 알겠다고! 전문지식 있는 사람한테 질문하지 말아야겠다!
모리 레이코: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가 밀수업자에게 접근했다면. 밀수업자는 분명 반응했을 텐데.
캐롤 브라이트: 낯선 이가 들어왔다면 그랬겠죠. 미도리카와 씨에게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건. 검정이 미도리카와 씨가 경계하지 않는 대상이란 뜻일 거예요. 그 날 미도리카와 씨가 자신의 방에 부른 네 분… 그중에…
캐롤이 얼굴을 숙였다.
나나시: 범인이 있는 거군요… 저기. 미도리카와에게서 부름을 받은 사람. 스스로 말해 줄래? 일단 나.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하기와라 우시오: 나!
야가미 토가: 마지막은 저군요. 이렇게 네 명이라…
야가미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하기와라 우시오: 난 그때 카이다 잡으러 갔으니까 자동으로 용의 선상 제외지? 우효~~!
23T5U130: 그래. 하기와라와 모리는 카이다를 쫓기 시작한 이래로. 나와 조금도 떨어진 적이 없어. 그녀에게 습격받기 전까지는 말이야.
캐롤 브라이트: 그렇다면 세 분 중…
야가미 토가: 네 분이죠. 사실. 캐롤 씨 또한 미도리카와 씨께 신뢰를 받는 입장에 계시니까요.
야가미 토가: 애초에 미도리카와 씨가 자신의 방에 부른 네 분은 캐롤 씨가 대신 연락을 드렸잖습니까? 터치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미도리카와 씨는 분명 캐롤 씨도 신뢰했을 겁니다.
캐롤 브라이트: 그 말씀이 옳아요. 저도 용의 선상에 들어가겠군요.
유력한 용의자가 네 명으로 좁혀졌다. 야가미 토가. 마유즈미 나데시코. 캐롤 브라이트. 나나시.
나나시: 그럼 살인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따져 보자. 나중에 네 명의 알리바이를 대조해 보면 범인이 나올 거 아니야?
나나시가 총을 쏘았다. 새벽 1시의 전화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마유즈미의 전화를 의미하는 거겠지?
나나시: 마유즈미는 카이다에게 새벽 한 시에 전화를 걸었어. 미도리카와는 받지 않았고. 그때 이미 미도리카와가 죽어 있었다면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는 그 이전일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문제는 그 시간대에 다른 놈들이 어디서 뭘 했는지 알 방도가 없단 거야!
토키와 아유키: 적어도 2시 전까진 2층의 그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 이것만큼은 사실이야.
칸나즈키 시노부: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토키와 아유키: 알 방도가 있어. 너희 모두에게 면목이 없지만.
토키와의 얼굴에 더없이 커다란 수치심과 죄책감이 떠올랐다. 그는 과녁에 총을 쏘았다.
새벽 2시 까지의 감시역.
나나시: 아. 이거…!
나나시는 그 글자를 보고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토 유즈루: 감시? 이게 뭔데?
토키와 아유키: 내 실책이야.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을 조금만 열고 밤을 세우려 했는데. 그만 잠에 들어 버렸어.
모리 레이코: 그게 사실인가. 리더?
모리의 표독스러운 물음에 토키와의 입이 부들부들 떨렸다.
토키와 아유키: 그래. 맞아.
하기와라 우시오: 근데 그게 왜? 새벽 2시에 잠이 들었어도 어차피 살인은 새벽 1시 전에 일어난 거잖아.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냥 쭉 깨 있었어도 어차피 미도리카와는 죽었을 거야.
토키와 아유키: 아니야. 분명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거야…
토키와의 낯빛은 시시각각으로 더욱 안 좋아졌다. 자신감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실책에 이렇게 민감하단 말인가?
카나리 케이토: 이미 죽은 뒤였을 거라니까! 왜 안 그러나 했더니 너도 저 마유즈미처럼 꼴값이야? 진짜 별난 애들이야. 대체 언제부터 이랬대?
야가미 토가: 언제부턴가 저렇게 되었죠. 분명 이유가 있고요.
카나리의 말에 야가미가 의미심장하게 대꾸했다.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야가미 토가: 여러분. 정말 2시 이전에 살인이 벌어졌을까요?
나이토 유즈루: 2시까지는 깨어 있었다고 토키와가 그랬잖아.
야가미 토가: 토키와 씨의 말씀이 거짓말이라면요?
나나시: 토키와의 말이 거짓말이고. 미도리카와가 2시 이후에 죽었다면 마유즈미의 증언이랑 맞물리지 않아.
카이다 쿠로하: 애초에. 왜 마유즈미 저 자식의 증언은 다 믿어주는 거냐?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냐? 세 명의 최유력 용의자에 저 자식도 포함되잖아. 깍두기 취급이야? 제대로 추궁 안 해?
히무로 시라베: 모든 증언을 의심하다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아. 우선 추리에 반영한 뒤 모순되는 내용을 덜어내는 게 옳아.
캐롤 브라이트: 네. 그리고 지금 두 내용은 모순되지 않아요. 토키와 씨는 단지 2시까지 깨어 계셨던 것뿐이니까요.
캐롤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야가미는 자신의 다이얼로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야가미 토가: 역시…
하기와라 우시오: 뭐가 역시야?
야가미 토가: 조금 더 관찰하려 했지만, 이 정도면 추궁을 시작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하군요.
모리 레이코: 알아낸 것이 있다면 본론을 말해라.
야가미 토가: 네. 그러나 지금부터 제가 할 주장은 언뜻 듣기에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제 논지를 확실하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재밌겠네. 진행시켜.
야가미는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어 가듯이 말했다.
야가미 토가: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겠습니다. 마유즈미 씨는 새벽 1시에 미도리카와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가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새벽 1시 이전에 죽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야가미 토가: 토키와 씨는 새벽 2시까지 누가 움직이는지 감시했습니다. 이는 새벽 2시 이전까지 2층의 그 누구도 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야가미 토가: 나나시 씨와 토키와 씨는 시체의 최초 발견자이며, 캐롤 씨는 미도리카와 씨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토키와 씨, 마유즈미 씨, 나나시 씨는 저와 마유즈미 씨의 숙소를 검사한 네 분 중 세 분이십니다. 심지어 카나리 씨가 합류하기 전에는 세 분만이 검사를 하게 되어 있었죠.
나는 야가미가 그물을 점점 좁혀가고 있다고 느꼈다.
캐롤 브라이트: 야가미 씨.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가요?
야가미 토가: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범이 함께 탈출할 수 없음을 몰랐기에 이런 살인이 벌어진 거군요. 잘 알았습니다. 공범 중 누군가를 지명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니 지체할 필요도 없겠어요.
야가미는 단안경을 닦으며 차분히 말했다. 그러나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우리들의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그의 성량 자체가 큰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내용의 무거움이 우리들을 짓눌렀다.
야가미 토가: 지금부터 여러분들께 어째서 캐롤 씨가 범인인지를. 확실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장 떡대가 큰 놈이 지능캐라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대충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이 굵은 목소리로 논리 정연하게 말한다고 생각하면 뭔가... 뭔가 갭이 느껴지네요
1챕터가 끝나면 인기투표를 한 번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직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진 않지만요
아마 상위권 캐릭터에게는 걔를 대상으로 한 외전 단편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재판 분량은 따로 안 정해놨는데 지금 대충 지금 게 상편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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