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와라 우시오: 헉… 헉… 야. 이거 튼 것 같지 않냐?
모리 레이코: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카이다 뒤꽁무니도 안 보이잖아. 23T 넌 뭐 본 거 있어? 없지?
23T5U130: 맞아. 아무리 색적 해보려 했지만 카이다는 보이지 않았어.
하기와라 우시오: 하아… 벌써 아침 7시야. 몇 시간을 내리 걸었냐! 탑을 중심으로 360도 뺑뺑이도 돌아 봤잖아. 이제 쉬자. 좀!
모리 레이코: 쉬고 다시 출발한 것이 바로 전이다. 양갱이라도 먹겠나?
하기와라 우시오: 또 양갱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식량을 가져올 걸 그랬어. 넌 무슨 양갱을 한 트럭씩 가지고 왔냐?!
모리 레이코: 단기간에 탄수화물과 당분을 섭취할 수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만.
그 순간. 그들의 다이얼로그에 모노로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모노로그: 시체 발견. 시체 발견.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가 있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숙소에 모이도록.
하기와라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모리는 이마를 짚었다.
모리 레이코: 무기상으로 알려진 자가 죽은 것인가…?
하기와라 우시오: 야. 모리. 우리 완전 똥 쌌어.
모리 레이코: 은어인가? 제대로 말해라.
하기와라 우시오: 우리 완전 트롤 새끼 됐다고! 카이다가 우리한테 안 왔나 봐.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모리 레이코: 첩자가 살인을 저지른 것인가?
하기와라는 탑을 향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발이 무척 피로했으나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걔 말고 누가 이러겠어! 우리가 23T를 데리고 나왔으니까 탑을 지킬 사람도 없었겠지. 총도 다 태웠으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총기를 노릴 필요가 없지. 총기를 왜 빼앗아? 사람 하나 완전범죄로 죽이면 바로 나갈 수 있는데. 23T랑 총 두 개를 상대할 필요가 없지. 들켜도 안 죽으니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고… 이렇게 보면 존나 당연한 일이잖아!
모리 레이코: 그것은 결과론이다.
모노로그: 그래. 결과론적으로 살인이 일어났지.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없어지던가?
모노로그가 바닥에서 스르르 솟아올랐다.
23T5U130: …결국 나는 막지 못했구나.
23T가 모노로그를 보며 말했다.
모노로그: 그래.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다음 순간 23T는 모노로그를 쾅 내려쳐 바닥에 떨어지게 만든 뒤. 그것이 산산조각 날 때까지 짓밟았다.
하기와라 우시오: 왓 더 뻑?! 깜짝이야!
23T5U130: …….
23T는 산산조각 난 모노로그를 가만히 내려다본 뒤. 고개를 들어 탑을 보았다.
어찌나 높은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23T는 탑을 볼 수 있었다.
모리 레이코: 보기 좋은 일이지만 급작스럽군. 왜 그러지?
23T5U130: 짜증이 치밀어서 그래.
하기와라 우시오: 너 이렇게 보니 되게 인간적이네. 여태껏 감정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었는데.
23T5U130: …이번에도 틀렸어.
하기와라와 모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23T5U130: 가자… 최대한 빨리 탑으로 달려갈게.
모리는 23T가 그녀를 한 손으로 든 덕분에 탑으로 빨리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공리를 증진시키는 23T의 능력과 행동을 칭찬했다.
반대편 손에 들린 하기와라는 모리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고, 땅에 도착할 무렵에는 양갱을 토해내고 말았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업보처럼 다가온다."
모노로그: 시체 발견. 시체 발견.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가 있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숙소에 모이도록.
다이얼로그에서 들려오는 모노로그의 음성. 살인이 일어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토키와 아유키: 으아아아아악!
토키와의 비명이 들리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사건은 시작되었다.
밧줄을 침대의 모서리에 갈아 미리 느슨하게 만들어 두었다. 힘을 주어 밧줄을 끊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 문을 열었다. 나나시는 쓰러져 있었고, 토키와는 다리가 풀린 듯이 휘청였다. 그들은 미도리카와의 숙소 앞에 있었고. 숙소 문은 열린 채였다.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최초 목격자는 나나시와 토키와. 두 명이다.
두 명. 그러나 시체 발견 방송. 한 명이 모자라다.
검정 이외의 공범이 있거나, 검정이 목격자에 포함되었다.
공범의 가능성을 기억했다.
히무로 시라베: 토키와. 떨어져 있어. 현장을 보존하자.
나는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을 들여다본 뒤 지체 없이 23T에게 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현재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그러니 당장 탑 안으로 돌아와 수사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려 했다.
통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히무로 시라베: 시체가 발견되고 난 뒤에는 통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건가…?
토키와 아유키: 안 돼… 안 돼… 히무로… 어떻게 하지? 미도리카와가…
히무로 시라베: 진정해. 토키와. 지금은 침착해야 해. 나나시는… 정신적 충격 탓에 기절한 것 같은데. 여기에 둘 게 아니라 나나시의 숙소에 데려다 놓아야겠어.
더 당황해야 할까? 살인 사건을 눈 앞에 둔 자가 이렇게 침착해서야 검정 또는 흑막으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난 왜 이다지도 침착한 것일까.
살인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두었기 때문일까?
야가미 토가: 시체가 발견되었다고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미도리카와아아?!
야가미와 마유즈미가 달려 나왔다. 이들의 숙소는 미도리카와의 숙소에 가장 가깝다. 양옆에 야가미와 마유즈미의 숙소가 있고 위층에 카이다의 숙소가 있다.
최유력 용의자는 이 세 명으로 좁힐 수 있다. 동기는 카이다가 가장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만, 이 둘도 취조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다.
세 명의 최유력 용의자를 기억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익! 안 돼…! 미도리카와…!
야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가 작고하신 것 같군요. 이런. 나나시 씨도 쓰러져 계시고요.
마유즈미는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보자마자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가미는 눈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반응만으로는 무엇도 확정 지을 수 없었다.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일어날 수 있겠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 엄마…
마유즈미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큰 충격을 받은 것임은 분명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 무서워요. 엄마… 아빠…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정신 차려 봐. 마유즈미.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마유즈미뿐만이 아니었다.
토키와 아유키: 나… 나나시를… 숙소에 데려 놓아야 해…
토키와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가미 토가: 제가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깨워 오도록 하죠.
히무로 시라베: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미 다들 오고 있어.
나이토 유즈루: 야아아아아아아!
나이토가 야인처럼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대화 내용으로 말미암아 미도리카와의 죽음을 알아챈 것으로 보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주변의 인원을 확인했다.
나이토 유즈루: 히무로 있고. 야가미 있고. 마유즈미. 토키와. 나나시… 나나시?! 얘 왜 이래?!
토키와 아유키: 기절했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야.
나이토 유즈루: 방에 데려다 놔야겠다!
나이토는 나나시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뒤 나나시의 숙소를 향해 성큼성큼 달려갔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내가 어제 미도리카와에게 찾아가지 않아서. 다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
히무로 시라베: 일단 진정해. 마유즈미.
이쯤 되니 다들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고,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칸나즈키 시노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묘하게 침착해 보이는 칸나즈키.
카나리 케이토: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렇게 마구 쏘다니니 이렇게 된 거라고.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카나리.
이바라 쿠리스: …….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이바라.
나이토 유즈루: 결국… 아. 젠장. 어떤 개새끼야.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나이토.
캐롤 브라이트: 미. 미도리카와 씨… 어째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캐롤.
캐롤 브라이트: 왜 이런 일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미도리카와 씨는 분명, 자신의 정체를 밝혔어야 했는데…
후루미나미 나몬: 그야 누군가가 선수를 쳤기 때문이죠. 브라이트 부인.
후루미나미가 서스펜스 느낌의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든 채,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여전히 손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기에 두 손으로 열심히 들고 온 것처럼 보였다. 사서 고생을 한 셈이다.
캐롤 브라이트: 선수를 쳤다뇨…?
후루미나미 나몬: 당연히. 누구보다 빨리 살인을 저지른 겁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아. 생각해보니 아직 결혼 안 했으니 부인이 아니구나. 남편 성이 브라이트가 아닌 이상 브라이트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고증 오류 미안해. 자. 방금 건 없던 셈 치고!
토키와 아유키: 이. 일단… 포박을 풀어 줄게. 미도리카와가 죽었으니까… 다들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아직 냉정을 되찾지 못한 토키와가 몸을 떨며 말했다.
나이토 유즈루: 알겠어. 어디 보자. 마유즈미. 후루미나미. 히무로… 잠깐. 넌 왜 밧줄이 없냐!
히무로 시라베: 스스로 풀었어. 살인이 벌어진 이상 묶여 있을 수는 없었어.
토키와 아유키: 단단하게 묶었을 텐데… 아니야. 괜찮아. 오히려 잘 했어.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의 밧줄도 풀어 주자.
내가 마유즈미의 밧줄을. 나이토가 후루미나미의 밧줄을 풀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고. 고마워. 히무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결코 고개를 들고 나를 보지는 않았다. 미도리카와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것일까. 무리는 아니었다. 마유즈미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다. 후루미나미같은 사람은 매우 드무니까.
후루미나미는 씨익 웃으며 손목을 돌려 이완시켰다. 눈 앞의 시체엔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그녀만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후루미나미 나몬: 수갑은 역시 영 불편하군요. 이제 누명도 풀렸으니 움직여 볼까요?
두 손이 자유로워진 후루미나미는 한 손으로 라디오를 든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곰방대를 피웠다.
후루미나미 나몬: 자. 다시… 어럽쇼. 어럽쇼? 오호통재라. 미도리아티가 죽고 말았군요. 누가 봐도 살인 사건입니다.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음악 꺼 줘. 지금은 장난을 칠 때가 아니야.
후루미나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음악의 재생을 멈추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흠흠. 다들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히무로. 이 사건은 우리 둘이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
후루미나미 나몬: 그런데 내가 말 걸어도 괜찮아? 내가 말 한마디 걸었다고 무뚝뚝하게 변하는 거 아니지?
히무로 시라베: 집중할 일이 있으니 개인적인 감정은 묻어 두자. 지금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소통이 용이해야 하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대단해! 예스! 그럼 사건에 착수한 동안에는 사적인 감정은 뒤로 하자. 알겠지?
이미 사적인 감정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이바라 쿠리스: …야. 누구야? 이거 누가 이랬어?
이바라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이바라 쿠리스: 누가 미도리카와를 죽여버린 거야.
야가미 토가: 저희 중 누군가겠죠. 분명… 이 안에 미도리카와 씨를 죽인 범인이 있습니다.
야가미 토가: 저.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이바라 쿠리스: 누가 그랬든 간에. 난 그 사람 절대로 용서 못 해.
이바라 쿠리스: 이게…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멀쩡했잖아. 그런데 왜… 미도리카와를 죽여버린 거야.
이바라 쿠리스: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됐잖아. 무슨 오해가 있든 간에. 못 풀고 이제 죽어버렸잖아.
이바라가 음울한 목소리로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을 들여다보았다. 피칠갑이 된 그곳을 보며 이바라는 폐가 찌그러지듯 한숨을 쉬었다.
이바라 쿠리스: 내가 장례를 치를 때. 유가족들이 다 뭐라는지 알아? 이렇게 사라질 줄 몰랐대. 이거로 끝일 줄은 몰랐대.
이바라 쿠리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죽으면 그 사람을 다시는 못 본다. 이 당연한 걸 다들 왜 모르는 거야. 모르고 저지른 거겠지…
이바라 쿠리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을 죽이는 일 따윌 저지를 리가 없어. 다 눈이 멀었어.
히무로 시라베: 이바라. 네 말이 맞아.
이바라 쿠리스: 아니. 그러지 마.
무엇을?
이바라 쿠리스: 너 곧 덧붙일 거잖아… '하지만 범인은 이 탑에서 나가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어. 범인을 잡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죽을 거야. 그러니 일어서서. 누가 미도리카와를 죽였는지 조사해 보자'.
이바라 쿠리스: 그렇게 말할 거잖아. 맞지? 나도 알아. 애도할 시간이 없는 거. 움직여야 하는 거.
이바라 쿠리스: 하지만 너희…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 미도리카와는 어느 정도 우리 때문에 죽은 거야. 내가 조금만 똑똑해서 기막히게 미도리카와를 지킬 방법을 생각해 냈다면.
이바라 쿠리스: 하기와라랑 모리가 이상한 짓을 벌여서 23T를 탑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면. 애초에 미도리카와가 이런 식으로 제압되고 갇힐 계기가 없었다면. 사람 한 명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나이토 유즈루: …….
사실이다.
야가미 토가: 사실이 아닙니다. 핵심적인 악행은 살인자에게 있습니다. 그 자가 미도리카와 씨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들이 디딤돌이 될 일도 없었습니다.
야가미 토가: 살인자는 한 명인데 다른 이들도 살인자의 기분을 체험하게 생겼군요.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겁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 진정해. 이바라 말도 맞는 구석이 있잖아…
야가미 토가: 스스로도 아신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애도할 시간이 없는 것. 움직여야 하는 것.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죠? 당신 혼자 착한 사람이다 이겁니까?
야가미 토가: 죽는 게 무섭다. 죽은 것이 불쌍하다. 죽인 자를 찾아서 죗값을 치르게 만들어야 한다. 감정이 있고 감정이 있어서 움직이는 자들도 영혼 없는 냉혈한이 되었군요. 이제 기분이 좀 나아지십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야가미. 이바라 좀 봐줘. 얘는 그럴 만도 하잖아.
이바라 쿠리스: …뭐가?
이바라는 불길함을 담아 후루미나미를 보았다. 실로 불길했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그녀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지근거리로 다가갔다.
후루미나미 나몬: 친구 관…
…리를 잘못했다고. 자기 친구가 못된 짓을 저지른 걸 막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잖아. 그러니까 봐 줘.
다행히도. 그녀의 말은 '관' 에서 막혔다.
후루미나미 나몬: 웁. 웁웁!
야가미 토가: 아. 이해했습니다. 그것 참 힘들겠군요.
알아들은 듯, 야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은 것이 용하다.
나이토 유즈루: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그 검정인지 범인인지. 아무튼 그 새끼를 잡아들여야 해.
이바라 쿠리스: 그래… 맞아. 다들 미안해. 너희 탓 아니야. 범인 탓이지…
이바라는 사과를 했지만. 마유즈미는 이바라의 말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내가 찾아가기만 했으면…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일어날 수 있겠어? 기절하면 안 돼.
아무튼 그녀도 유력 용의자니까. 유력한 증인이 될 수 있기도 하고. 그녀에게 개인적인 미안함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끄응…
마유즈미가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좋은 징조였다.
히무로 시라베: 굳이 너도 시체를 조사할 필요는 없어. 몸을 추슬러.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넌 아무렇지도 않아…?
마유즈미가 부들거리는 손 끝으로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을 가리켰다.
시체. 죽은 미도리카와.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 저렇게 변했잖아.
히무로 시라베: 나도 사람이야. 이런 상황을 눈 앞에 두면 당연히 동요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니야. 질타하려는 게 아니야. 대단해서 그래…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어?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난 그냥 서예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말짜인데… 다들 나보다 훨씬 유능한데 내가 왜 같은 초고교급이야…?
히무로 시라베: 그건 틀렸어. 마유즈미.
마유즈미 나데시코: 미도리카와가 죽은 게 나 때문인데도?
마유즈미의 말에 다른 이들이 반응했다.
야가미 토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제 미도리카와를 직접 찾아갔으면 미도리카와가 노려지는 걸 막을 수도 있었는데. 전화만 걸었어… 그래서 미도리카와가 죽은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마유즈미! 너무 걱정 마! 넌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구!
주황색 자켓을 입은 후루미나미가 엄지를 척 들었다.
히무로 시라베: 전화를 걸었는데 미도리카와가 받지 않았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응. 직접 찾아오라는 뜻이란 것도 눈치챘는데.
히무로 시라베: 아니야. 어쩌면… 네가 전화를 걸 때부터 미도리카와는 이미 죽어 있었을지도 몰라.
마유즈미의 전화를 기억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뭐…?
모노로그: 미안한가? 미도리카와 아쿠토에게 면목이 없나? 너희들 중. 초고교급 밀수업자에게 사죄를 하고 싶은 자들이 있나?
모노로그의 목소리가 들리며. 그것이 바닥에서 서서히 솟아올랐다.
모노로그: 하지만 너흰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 사죄할 자격이 없어. 그 자격을 얻을 기회를 주도록 하지.
왔구나. 모노쿠마 파일.
이 경우에는 모노로그 파일인가. 모노로그가 반가운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그랬지만, 모노로그와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번갈아 본 나는 한 가설을 떠올렸다.
흑막이 우리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흑막은 언제든지 우리들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가능한 일이었다. 충분히.
캐롤 브라이트: 왜 오셨죠?
모노로그: 경계하지 마. 오히려 너흰 날 반겨야 하는 입장에 있다. 미도리카와 아쿠토. 초고교급 밀수업자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지, 밝혀낼 기회를 주러 왔다.
이 가설을 제기하면 흑막에게 노려질지도 모르고, 미도리카와를 이미 죽인 이상 한 명을 더 죽이는 것도 안 될 일은 아니었다.
히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정말 우리 중 범인이 있는 거 맞아?
모노로그: 그래. 너희 중 누군가가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히무로 시라베: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텐데.
그러나 말해야 했다. 흑막과 척을 지더라도, 흑막이 우리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면 그 의혹을 쫓아야 했다.
애초에 살인 게임의 관리자는 살인 게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테니. 흰 물건에 대해 아는 자가 죽어야 한다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토키와 아유키: 히무로. 그게 무슨 뜻이야?
히무로 시라베: 나와 미도리카와, 후루미나미와 카이다가 함께 총격전을 벌였을 때. 미도리카와는 내게 흰 물건에 대해 알려 주었어.
야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가 흰 물건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히무로 시라베: 그래. 그 내용을 읽어 주기까지 했지만 모노로그 앞이니 말할 순 없어. 모노로그. 네가 입막음을 위해 미도리카와를 죽인 것. 아니야?
후루미나미 나몬: 모노로그 씨? 양? 뭐든. 대답하시죠.
모노로그: 바람직한 가설이지만 틀렸다. 살인을 저지른 것은 틀림없이. 이 탑 안의 누군가이다.
흑막이 우리 안에 있다면, 거짓말은 아니다.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순 없었다.
나이토 유즈루: 새끼. 뭔가 존나 구린데.
모노로그: 이 탑에 모인 자들 중 대부분은 살인에 대해 문외한이지. 모든 초고교급이 피로 얼룩진 삶을 사는 건 아니니.
모노로그: 그러니 너희들을 방임한다면, 피로 몸을 적신 자만이 모든 정보를 독식하겠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위한 나의 친절이다.
모노로그: 킬로그(Kill log)다. 여기 두지.
모노로그가 입에서 커다란 책처럼 생긴 전자기기를 뱉어냈다. 태블릿과 비슷했는데, 겉은 비취색이었다. 미도리카와의 머리색.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 디러…
토키와 아유키: 이 안에 뭐가 들어있다는 거야?
모노로그: 죽음의 기록. 정보다. 아는 자는 당연히 알지만 모르는 자는 절대 모를 만한 정보만을 제공하지.
야가미 토가: 수사에 유용하겠군요.
모노로그: 그렇지. 자세히 읽고 검정을 잡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해라.
모노로그: 일정 시간 이후. 너희를 다시 소집하겠다. 그때까지 모든 힘을 다해 조사하도록.
모노로그: 아.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새로운 규칙의 추가 또한 공지하겠다.
규칙 15: 캐롤 브라이트의 터치는 사건의 해결에 사용될 수 없다.
히무로 시라베: 하. 그럼 그렇지.
야가미 토가: 결국 최후의 보루가 막히는군요….
토키와 아유키: 최후의 보루라니. 캐롤 씨한테 동의도 안 얻어놓고?
야가미 토가: 동의는 차차 구할 생각이었습니다. 무례했다면 면목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야가미 토가: 그보다. 모노로그 당신도 캐롤 씨가 두려운 모양이지요?
모노로그: 치트 플레이를 사전에 막을 뿐이다.
캐롤 브라이트: 치트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을 거예요.
토키와 아유키: 애초에 그 정도로 많이 터치를 사용하시면. 캐롤 씨가 못 버티실 거야. 그리고 모두들.
토키와가 마음을 추스른 듯이 말했다.
토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가 죽었고, 그건 내 책임이야. 내가 졸지만 않았다면 미도리카와는 죽지 않았을 거야. 굳이 반박할 필요 없어. 그럴 시간도 없으니까.
토키와 아유키: 대체 왜 미도리카와를 죽였는지는 몰라도. 검정을 잡아내면… 그 목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거야.
토키와 아유키: 다들 많이 힘들겠지만. 최대한 조사해 보자. 우린 살아남아야 하니까.
야가미 토가: 맞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그대로 현장을 감시하는 인원이 꾸려졌다.
카나리. 사유는 그냥 그러고 싶어서. 실제로는 무서워서. 칸나즈키. 사유는 힘이 세며 그냥 그러고 싶어서. 나이토. 사유는 이하동문.
카나리는 단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고, 칸나즈키는 시종일관 한 눈을 팔았지만 나이토는 정말 범인을 잡아낼 거란 기세로 모든 이들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킬로그를 기반으로 한 추리가 필요했다.
킬로그의 화면을 눌러 드러나는 정보를 보았다.
피해자: 초고교급 밀수업자. 미도리카와 아쿠토.
심장의 관통상. 목의 자상. 자상의 흉기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추정되지만 관통상의 흉기는 알 수 없음.
시체가 발견된 곳은 미도리카와 본인의 숙소 안.
피해자의 발은 램프에 끈으로 묶여 있으며, 그 탓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상태이다. 대량의 출혈이 발생함.
사망 추정시간. 알 수 없음.
후루미나미 나몬: 별다른 정보는 안 주는걸?
히무로 시라베: 알아도 검정에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정보지. 그렇지만, 위협이 되는 부분을 도려낸 정보이기에 이것을 기반으로 위협을 복원할 수 있어.
후루미나미 나몬: 나몬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머리를 긁적이는 후루미나미를 무시하고. 나는 거꾸로 매달린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보았다.
나는 그녀의 죽음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 내가 침투하지 않았다면, 그 뒤의 일련의 사건들 역시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사실 너 아니었어도 죽을 목숨이었다. 감시자여. 이렇게 죽기 싫었다면 자신을 드러내지도, 흰 물건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았어야지. 총기를 초장부터 드러내고 다른 이들과 척을 지니 살 수가 있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내가 왜 이다지도 침착한지 생각해 보았다.
재판이 목전에 있기에. 살아남아야 하기에. 마유즈미의 말마따나 강하기에?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죽음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것뿐이었고, 그뿐이었다.
미도리카와의 숙소 안으로 발을 디디자 그녀의 시체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러자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는 혈액이 낭자했다.
미도리카와의 얼굴은 목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려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스크는 떨어지지 않았다. 회색의 마스크가 이젠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지만.
피부는 더할 나위 없이 창백했다. 창백하기보단 피가 완전히 빠져나가. 서늘한 기운까지 감돌 정도였다.
이것이 살인이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빠져나가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반드시…
히무로 시라베: …반드시 범인을 잡을 거야.
조사에 돌입하기 전. 우선 다이얼로그의 증거 저장 기능으로 방의 전경을 먼저 찍었다.
찰칵. 그러자 다이얼로그의 안에서 사진이 튀어나왔다. 완벽하게 인화된 사진이었다.
인화에 필요한 시간이 없다는 것은 놀라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조사를 계속했다.
그러자마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상식과 패턴형의 데이터를 얼마나 이 사건에 반영해야 할까?
프로파일링은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 범인의 상황과 영역을 예상하고 분류하는 작업이다. 보통 이런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피해자에게 큰 원한이 있거나, 과시적인 성격을 가진 연쇄살인범이다.
언론에 대서특필되길 원하는 자들. 그러나 닫힌 공동체 안에서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전자의 경우라면. 카이다? 아니.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애초에 미도리카와만이 카이다에게 원한을 가졌을 뿐, 카이다는 미도리카와의 정체를 알아보지도 못한 것 같으니.
물론 오락적인 측면을 보았을 수도 있다. 성공하면 나갈 수 있고 실패해도 죽지 않으니, 다른 이들을 기선제압하겠다는 생각에 이런 살인을 저지른 건가?
아니야. 살인 게임에서는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몇백 층 높이의 탑에 갇혀 있는데 내게 있는 것만을 무기로 고집할 순 없다. 작은 갑각류조차 말미잘을 찢어 무기로 사용하지… 꺼내는 게 아니라 찾아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그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
공적인 신분이 없으니 취조를 요구하지도 못할 테고, 열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을 전부 취조하기엔 조사 시간이 모자라다. 프로파일러로서 임할 순 없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재판에서. 지금은 최대한 많은 양의 물감을 구하는 데에 집중하자.
나는 나이토에게 부탁했다.
히무로 시라베: 나이토. 미도리카와를 땅에 내려놓을 수 있겠어? 조사를 해 보려고 하는데.
나이토 유즈루: 뭐? 굳이 그래야 하냐? 현장 보존 그런 거 없어?
나이토가 잠시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후루미나미 나몬: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무슨 조사를 해. 일단 내려놔야 뭘 보던가 말던가 하지. 아님 우리도 거꾸로 매달면 되겠네! 그럼 미도리카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잖아.
나이토 유즈루: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기다려 봐.
야가미 토가: 저도 돕죠. 그러나 그전에 미도리카와 씨의 시체를 다이얼로그로 찍어 두는 건 어떨까요?
히무로 시라베: 난 미리 찍어 뒀어. 언제 쓰일지 모르니 다 같이 한 번 찍어 두자.
후루미나미 나몬: 그 말에 찬성이야!
후루미나미가 모자를 벗자 한 줄기의 머리카락이 삐죽 튀어나왔다. 미리 왁스를 발라 세워 둔 것인가? 여전히 수고가 많다.
다른 이들이 각각 사진을 찍자. 다이얼로그들에서 사진이 출력되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이거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야가미 토가: 성능에 감탄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군요.
나이토와 야가미는 미도리카와의 다리를 묶고 있는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나이토 유즈루: 뭐로 묶인 거야? 이거 무슨 끈 같은 건가?
야가미 토가: 붕대로 묶였군요. 이 붕대는 또 어디서 나온 걸까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 있던 그 붕대와 같았다.
붕대를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미도리카와를 피가 묻지 않은 침대에 눕힌 뒤.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히무로 시라베: 이렇게 피가 많이 흘러나온 이유는…
목의 상처. 먼저 상처를 내고 매달아 놓으니 중력 탓에 피가 많이 흘러나왔다. 피부가 창백해진 것으로 보아 거의 모든 피가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예리한 무언가로 잘린 상처다.
목의 상처를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히무로 시라베: 흉기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불가능해. 당연히.
날붙이를 가진 사람은 하기와라. 모리. 그리고 카이다다.
흉기의 존재를 기억했다.
히무로 시라베: 이바라. 잠시 부탁할 게 있어.
이바라 쿠리스: 뭔데?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의 가슴팍에 난 상처. 검시해줄 수 있겠어?
이바라 쿠리스: 음… 내가 장의사라서 부탁하는 거겠지만. 장의사는 사실 그렇게 시체에 대해 잘 알진 않아.
이바라 쿠리스: 염습(殮襲)은 어디까지나 수습이 끝난 시체를 닦는 거거든. 경찰 같은 곳에서 조사가 끝난 시체들 말이야. 그래서 현장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거야.
히무로 시라베: 일단 보면 내가 왜 네게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거야.
이바라는 어깨를 으쓱한 뒤 칸나즈키를 불렀다.
이바라 쿠리스: 칸나즈키. 좀 도와줄래? 검시 좀 해 보려 하는데.
칸나즈키 시노부: 구래.
후루미나미 나몬: 날 불렀소?
후루미나미가 곰방대를 피우며 빠르게 다가왔다.
이바라 쿠리스: 너 말고 칸나즈키.
후루미나미 나몬: 후우… 내 통찰도 필요치 않는 흔한 살인사건 같군요.
후루미나미는 이바라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칸나즈키 시노부: 그냥 후루미나미 시켜 줘. 얘 되게 하고 싶나 봐.
칸나즈키는 그 말만 남기고 나이토와 함께 숙소의 벽에 몸을 기대었다. 이론상 모든 방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며, 감시역 세 명은 줄곧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임하고 싶다면 진지하게 임해. 셜록을 연기하고 싶다면.
후루미나미 나몬: 그러지요. 시라ㅂ… 히무로가 굳이 쿠리스 양께 수사를 부탁한 것은 바로 그가 아쿠토 씨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바라 쿠리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그거 아직도 모르네.
야가미 토가: 그 사안에 대해서라면 저도 듣고 싶습니다.
야가미가 창가 쪽을 둘러보다 말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야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던걸요.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는 '바다뱀' 이라는 이름의 밀수업자로 활동했어. 그리고 카이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
히무로 시라베: 그렇기에 미도리카와는 카이다를 그토록 적대했어. 야가미.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대답하시오.
야가미는 턱을 짚은 채 입을 열었다.
야가미 토가: 바다뱀이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납득도 되는군요. 바다뱀은 얼굴과 머리 색을 감추고 활동했으니까요. 제가 눈치채지 못할 법도 합니다.
야가미 토가: 그렇지만 그 점은 이상하군요. 분명 바다뱀은…
후루미나미가 사체의 옷을 벗기자 나는 미도리카와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그녀의 전용실에 침입한, 그녀를 죽게 만드는 데 원인을 제공한 자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죄를 짓는 듯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여성이죠. 전용실에 있던 붕대가 뭔가 했더니. 압박 붕대였군요? 사라시(さらし)라고도 불리죠.
이바라는 눈이 커진 채 놀라.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이바라 쿠리스: 뭐야. 그럼 목소리는…?
히무로 시라베: 마스크가 특별한 재질이야. 착용자의 목소리를 변조시키지. 그래서 우리는 줄곧 미도리카와를 남자라고 생각했어.
야가미 토가: 캐롤 씨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겠죠? 말씀하지 않으신 건 미도리카와 씨를 동료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셨겠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애석하군요.
캐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는 친구 분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어야 했어요. 그 뒤 저희에게 마음을 열었어야 했는데…
야가미 토가: 저 말고 누가 제의를 받았죠?
친구. 저 말고. 제의.
문득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서 읽었던 문서가 생각났다.
'바다뱀을 회유하려 들던 끄나풀은 어떻게 할 거지?'
'죽이면 안 돼. 끄나풀은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어. 죽으면 큰 파장이 일겠지. 바다뱀만 죽이면 돼.'
미도리카와의 끄나풀이. 친구인가?
히무로 시라베: 자세히 말해 봐.
캐롤 브라이트: 이 탑 안에… 미도리카와 씨의 친구 분이 계세요. 그분은 미도리카와 씨가 범죄에서 발을 빼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길 권유했죠. 미도리카와 씨는 초고교급 밀수업자라 불렸거든요.
캐롤 브라이트: 고등학생이 밀수업을 진행한다는 소문 하나에 관심을 가진 친구 분은, 미도리카와 씨에게 조심스럽게 접촉했어요. 무모한 분이셨죠. 자신도 범죄의 온상에 휘말릴 수 있었는데…
캐롤 브라이트: 친구 분은 미도리카와 씨가 빵을 버는 수단이 적절치 못하다고 여겼어요. 그렇기에 첫 만남부터 꾸준하게 그 일을 그만두라고 설득했죠. 미도리카와 씨는 듣지 않고 친구 분을 몰아붙이고 달래 보기도 했지만. 친구 분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후루미나미 나몬: 하아암……
후루미나미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한숨을 쉬자 캐롤의 눈썹이 찌푸러졌다.
후루미나미 나몬: 아아아아암… 함함. 실례. 어디까지 했죠?
캐롤 브라이트: 하품을 길게 하시네요.
후루미나미 나몬: 길게 말하시니 길게 나오지요. 브라이트 양.
히무로 시라베: 그만 해. 후루미나미. 얘기를 계속 듣자.
야가미 토가: 맥을 끊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보다 미도리카와 씨의 비극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게 의외입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내가 그렇게 헤퍼 보여? 이래 봬도 난 순정파야. 지금은 히무로가 원픽인데 한눈팔면 안 되지. 뭣보다…
히무로 시라베: 캐롤. 이어서 말해 주겠어?
캐롤은 고개를 끄덕였다.
캐롤 브라이트: 그리고 마침내. 미도리카와 씨는 손을 씻고 떠나기로 했죠. 그러나 카이다 씨가 두 분을 습격했어요. 동종업계에서 발을 빼면 제거당한다는 선례를 위해. 본보기로 노려진 거죠. 카이다 씨는 마피아에 고용된 첩자셨거든요.
미도리카와와 카이다 사이의 악연을 기억했다.
히무로 시라베: 이 탑 안에서, 미도리카와의 친구는 카이다를 알아보지 못한 거야?
캐롤 브라이트: 아마 그랬을 거예요. 미도리카와 씨가 카이다 씨를 알아본 것은 그녀를 향한 복수를 계획하며, 그녀의 정보를 많이 수집했기 때문이기에… 친구 분은 아직 카이다 씨의 정체를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커요.
미도리카와의 친구와 카이다 사이의 무연을 기억했다.
히무로 시라베: 반대로, 카이다는 미도리카와와 그녀의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어?
캐롤 브라이트: 네… 그런 눈치는 아니었어요. 미도리카와 씨가 추측한 바에 의하면, 카이다 씨는 그녀가 속한 조직으로부터 정기적인 개조를 받는 모양이에요. 정신적으로요.
재단의 방식과 유사하다.
캐롤 브라이트: 기억 삭제도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모양이기에. 카이다 씨는 두 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또한 재단의 방식과 유사했다. 이상적인 개체를 만들기 위한 기억의 삭제.
기억을 잃은 카이다를 기억했다.
야가미 토가: 후루미나미 씨가 카이다 씨에게 귀띔을 해주진 않았을까요? 두 분은 함께 미도리카와 씨의 전용실을 습격하지 않으셨습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아니. 난 그럼 귀띔 없이 그냥 도와주겠다고만 했어. 스포일러 하면 재미없잖아.
후루미나미 나몬: 애초에 말해줬어도 무슨 의미야? 미도리카와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으니 '바다뱀? 그게 누구야?' 같은 말만 돌아왔을 걸.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카이다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살해했으면 될 것을. 미도리카와는 왜 여기까지 온 걸까?
캐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수를 완전하게 하려는 마음이었겠죠. 굳이 해칠 필요도 없었던 친구마저 해쳐 놓았으니. 이 복수는 내 친구도 함께 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정체를 카이다 씨에게 밝힌 뒤, 친구 분과 함께 제압하길 원하신 것 같아요.
야가미 토가: 그러나 결과는 이렇게 되었군요.
캐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캐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는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그 친구 분은 믿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우선 그분에게 정체를 밝히고 서서히 저희와 합류해. 진심으로 동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캐롤 브라이트: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캐롤이 살짝 눈물을 훔쳤다. 나와 야가미는 위로에 소질이 없었기에 이바라가 캐롤의 등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이바라 쿠리스: 캐롤. 힘내. 범인 꼭 잡자. 꼭.
캐롤이 고개를 끄덕이자. 야가미는 헛기침을 두 번 하고 주제를 이어나갔다.
야가미 토가: 캐롤 씨는 미도리카와 씨를 찾아가 보라고 제게 전한 바 있었습니다. 혹시 그것은 위장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야가미 토가: 한 명에게만 말하면, 그 사람과 미도리카와에게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카이다 씨가 눈치챌지도 모르니까요. 진짜 친구 분과, 친구 분 후보자로 뽑힌 다른 분들을 함께 부르셨을 겁니다.
야가미 토가: 그러니 미도리카와 씨가 자신의 숙소에 부른 인원 중. 미도리카와 씨의 친구 분이 계실 겁니다.
히무로 시라베: 일리가 있는 말이야. 캐롤. 누가 미도리카와의 친구야?
후보 중에서 색출할 필요조차 없다. 캐롤이 미도리카와의 모든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 그녀의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알고 있을 터다.
야가미 토가: 그걸 묻는 것이 효율적이겠군요. 캐롤 씨. 대답해 주세요.
캐롤 브라이트: 지금 제가 말해도 될 사안은 아닌 것 같아요.
야가미 토가: 여전히 말씀이십니까? 제발. 지금 미도리카와 씨는 저희의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이제 그녀와의 약속은 잊어야 합니다.
캐롤 브라이트: 내가 그 이유만으로 진상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혀 아닌데.
말투가 달라졌다.
단순히 1인칭의 지칭어가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는 어느새 싸늘함이 배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그 싸늘함은 미도리카와의 것을 닮아 있었다. 그녀처럼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파장은 유사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건 무슨 소리요?
캐롤 브라이트: 생각해 둔 경우의 수가 있어요. 범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 사람을 죽였으니 생각이 있겠죠.
캐롤 브라이트: 내가 여기에 있으니 끝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할 텐데….
히무로 시라베: 그게 무슨 뜻이야?
캐롤 브라이트: 지금은 눈앞의 조사에 집중하도록 해요. 재판에서 모든 걸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조사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싸움을 하기 좋은 때는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다시 살폈다.
히무로 시라베: 먼저 난 상처는 흉부 쪽의 상처일 거야.
야가미 토가: 왜죠?
후루미나미 나몬: 왜냐하면 목을 자르는 것보다는 가슴을 찌르는 게 쉽기 때문이죠. 적어도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가슴을 찌르는 게 훨씬 쉽습니다. 치명상을 입히는 데에도 쇼크사를 유발하기에도 용이하죠.
후루미나미 나몬: 두 상처를 보아하니. 모두 망설임의 흔적이 남지 않았군요. 그만두려는 의지 없이 한 번에 찔렀습니다. 연거푸 찌를 필요도 없이 첫 관통상에 심장을 찔렀어요. 즉사했을 겁니다.
후루미나미 나몬: 검시관님. 잠시 이 부분을 보시겠습니까?
이바라 쿠리스: 못 보겠어…
이바라가 자신의 눈을 가렸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럼 본 제가 말씀드리죠. 관통상 부위가 이상하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칼날보다 두꺼운 것이 비집고 들어간 흔적으로 보이는데, 칼자루가 아니라면 애초에 칼로 찌른 게 아닐 겁니다. 상처 부위가 훼손되었으니 출혈량도 훨씬 심해졌을 테고요.
캐롤 브라이트: 으음…
히무로 시라베: 목의 상처는 목을 베려다가 생겨난 게 아니야. 참수를 시도할 수 있는 도검류. 즉 긴 검으로 이 정도 상처를 냈다면 굳이 관통상을 새로 낼 필요도 거꾸로 매달 필요도 없어.
최초의 관통상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야가미 토가: 그렇게 보면. 왜 범인은 미도리카와 씨를 거꾸로 매달았을까요?
벽 쪽에서 무언가를 디디는 소리가 들려 그쪽을 보자. 후루미나미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이렇게 거꾸로 매달린다면…
히무로 시라베: 저러게 두고. 우리는 시체 쪽을 계속 조사해 보자.
야가미 토가: 그러죠.
이바라 쿠리스: 너희 후루미나미 취급이 좀 너무한 거 아니니…?
캐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씨. 너무 오래 물구나무를 서진 마세요. 머리에 피가 쏠리니까요.
나는 퍼뜩 캐롤에게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캐롤. 뭐라고?
캐롤 브라이트: 너무 오래 물구나무를 서진 말라고 했어요. 머리에 피가 쏠리니까요.
캐롤 브라이트: …아.
야가미 토가: 그렇군요. 중력 탓에 피가 머리로 쏠리고. 상처를 통해 흘러나온 겁니다. 매단 것과 목의 상처엔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피를 빼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 텐데.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었지?
후루미나미 나몬: 피를 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해 보게.
후루미나미가 벽을 박차고 몸을 세웠다.
히무로 시라베: 체온이 급속도로 낮아지겠지. 그렇지만 고작 몸을 식히겠다고 이렇게 거꾸로 매달 필요는 없어. 죽은 채 몇 시간만 지나면 차갑게 식는 게 시체인걸.
후루미나미 나몬: 몇 시간이 없었다면 어떤가?
몇 시간이 없었다면…
야가미 토가: 두 분은 법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요, 혹시 시반을 조사하실 수는 있나요?
야가미가 물었다. 시반(屍斑)은 시체에 나타나는 얼룩으로, 형성 과정과 형태에 따라 사망 추정 시각을 알아낼 수 있다.
이론상 그렇다.
히무로 시라베: 힘들 것 같아. 시반이나 사후 경직을 조사해도 사망시각을 정확하게 알아낼 순 없어. 두 요소 모두 사망시각보다는 피해자의 신체와 주변 온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솔직히 드라마나 영화에선 시반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아. 그러니 나도 패스.
히무로 시라베: 혹시 피를 뺀 것이 몸을 급속하게 식히기 위함이었다면…
캐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가 작고하신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일 수도 있는 건가요?
히무로 시라베: 그건 아닐 거야. 이미 피가 굳어서 검붉게 변했으니까.
야가미 토가: 그럼 결국. 관통상이 먼저 있었다는 것 밖에 알아내지 못한 거군요. 흉기도 알 수 없고요.
히무로 시라베:아니. 우리는 이미 꽤 많은 걸 알아냈어.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면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자. 그럼!
후루미나미가 쪼그리던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미도리카와의 연구실에서 태연하게 걸어갔다.
야가미 토가: 잠깐. 어디 가시는 겁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따라오면 말해 줄게. 히무로 너한테 하는 말이야.
또 시작이다.
히무로 시라베: 또 왜 그래?
후루미나미 나몬: 결정적 증거까지 5, 4, 3…
야가미 토가: 한 번 가 주세요. 히무로 씨. 길어지면 시간낭비 말고 돌아오시면 됩니다.
반신반의하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미도리카와의 숙소에서 나오자 후루미나미가 몸을 휙 돌려 나를 보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현장에서 볼 것은 다 봤으니 잠시 개인적인 조사에 착수하겠네. 이 말 하려고 불렀어.
히무로 시라베: 그래? 말려도 소용없을 테니 네 마음대로 해.
후루미나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한테 별 기대를 품고 있지 않구나?
히무로 시라베: 굳이 대답하자면. 응. 네가 증거를 조작해서 우리 모두를 몰살시키진 않을까 널 경계하고 있기도 해. 너도 눈치챘겠지만.
후루미나미 나몬: 그럼 어제까지만 해도 내 꼴도 보기 싫어하던 네가 나한테 관심을 주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채리?
후루미나미 나몬: 평소 행실이 돌아온 결과겠지만 정말 서운하네… 날 믿으면 안 될 때는 믿고, 믿어야 할 땐 안 믿고. 너야 둘 중 무엇인지 구분이 안 가니 이해는 하지만. 나도 하이틴 나이다 보니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어.
히무로 시라베: 네가 비극을 원하는 이상. 네가 언제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지 알 수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 일리가 있네. 하지만 요즘 내가 원하는 건 그런 비극이 아니야. 아직은 덜 익었어.
후루미나미 나몬: 그러니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는 성공에 집중하지. 뭐랄까… 비버처럼. 비극을 연출하는 비버지. 댐이 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을 위해 댐을 짓는다고. 부지런히!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언젠가 때가 되면 난 너희 모두를 배신할 거야. 하지만 그전까지는…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게 나야. 알아?
후루미나미 나몬: 난 너희를 배신할 것이기에. 지금 시점에서는 가장 완벽한 아군이라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 아군.
반드시 모두를 배신하기에. 그전까지는 믿을 수 있다니. 궤변이다.
히무로 시라베: 아직도 그 얘기야?
후루미나미 나몬: 두고 봐. 난 아무도 내게 주목하고 있지 않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확 끌어오는 사람이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그 얘긴 거기까지. 실험실로!
후루미나미는 갔으니. 계속 조사하기로 했다.
야가미 토가: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히무로 시라베: 개인적으로 조사할 게 있대. 기대는 하지 말자. 우리가 후루미나미의 몫을 메우면 돼.
나는 창문의 창살을 살폈다.
긁힌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중앙까지도.
사용된 도구에는 차이가 있어도, 결국 카이다, 마유즈미와 야가미의 숙소 쪽에서 미도리카와의 창살에 갈고리 같은 것을 걸었다.
그러나. 금속을 창살에 가져다 대고 움직이면 이와 유사한 자국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한 위장일 가능성 역시 존재했다.
창살의 흔적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캐롤 브라이트: 마유즈미 씨의 전용실에서 미도리카와 씨의 전용실로 진입할 때. 로프와 갈고리를 사용했다고 하셨죠?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가 고안한 방식이지만. 우리가 털어놓은 뒤에 누군가가 모방했을지도 모르지. 창고에 갈고리가 있던가?
꼭 갈고리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체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면, 어떻게든 창살에 걸어 장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갈고리에 대한 조사는 무의미했다.
그리고 주변을 더 조사하려는 그때. 밖에서 마유즈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나시. 괜찮아? 쓰러져 있었잖아…!
나나시가 깨어난 것인가? 그가 미도리카와의 숙소에 발을 디디다 다시금 쓰러지자. 캐롤이 나나시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캐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괜찮으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방금 깨어나신 참이잖아요.
나나시: 감사합니다. 캐롤 씨… 아. 세상에. 미도리카와.
나나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히무로 시라베: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야.
나나시: 아니야. 괜찮아… 미도리카와가 죽었구나…
캐롤 브라이트: …네.
나나시는 부축을 받으며 미도리카와의 숙소에서 나온 뒤. 차마 다시 그 안을 들여다보진 못했다.
야가미 토가: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 못 보시겠다면 저희에게 수사를 맡겨 주세요. 어차피 이 곳에 더 들어와 봤자 숙소가 사람으로 가득 찰뿐입니다.
나나시: 대체 누가 죽인 거야…?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다고 이렇게 빨리 결정할 수가 있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히무로 시라베: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죽인 거겠지.
나나시: 그래. 그게 말이 되네. 이 탑은 그런 곳이구나. 서로 죽고 죽이는 게 법칙인 곳.
나나시의 얼굴에 무너질 듯한 공포가 엄습했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생겨났다. 죽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곧 생존본능으로 치환되었다.
그는 용기를 내었다.
나나시: 나는 수사에 참여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도움이 되고 싶어.
야가미 토가: 힘들 것 같은데요.
나나시: 숙소 혹은 전용실을 조사하는 건 안 될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다른 인원들의 숙소와 전용실을 조사하다 증거품을 발견하면 재판을 급속도로 쉽게 가져올 수 있었다.
토키와 아유키: 방의 주인들이 동의해줄지 어떨지가 문제지만. 가능할 것 같아.
히무로 시라베: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용의 선상을 좁힐 수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런 거면… 나도 할래. 모노로그의 말이 좀 신경 쓰여서…
사죄할 자격.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받아들이게 만들 만한 재간이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토키와 아유키: 그렇다면 나도 같이 갈게. 세 명이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일 거야. 안전하기도 하고.
캐롤 브라이트: 세 분 모두.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나나시: 네. 걱정 안 끼칠게요… 그럼 어느 숙소와 전용실에 먼저 찾아가야 할까?
이바라 쿠리스: 아무래도 역시… 카이다지. 미도리카와와 악연도 있고, 흉기도 가지고 있으니까.
토키와 아유키: 하지만 카이다의 방을 열 방법이 없어. 카이다는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토키와가 그렇게 말한 순간. 나는 안 좋은 직감을 느꼈다.
캐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씨가 카이다 씨의 전용실 문을 열 수 있으시지 않았던가요?
야가미 토가: 네. 히무로 씨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녀는 잠긴 문을 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토키와 아유키: 그런데 후루미나미는 어디에 있지?
이바라 쿠리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었는데. 히무로랑 몇 마디 얘기를 하더니 잠시 어디로 갔어.
어딘가로 갔고. 이제 그녀는 모습을 숨길 수 있다. 당장 찾아 나서기에는 수사할 것이 많다.
히무로 시라베: 아… 제기랄.
이럴 줄 알고 있었겠지. 주요 용의자들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자는 자신밖에 없다는 걸. 후루미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터다.
자신이 필요한 일에서 도망치는 데에는 선수구나.
그리고 이 짓거리에 또 당하는 나는, 실로 배울 줄을 몰랐다.
히무로 시라베의 기억:
공범의 가능성 - 목격자는 두 명이었으나 시체 발견 방송이 울렸다. 즉 범인이 목격자에 포함되었거나 실행범과 공범이 함께 살인을 저질렀다.
세 명의 최유력 용의자 - 카이다. 야가미. 마유즈미는 미도리카와의 숙소에 접근하기 용이한 인물이다. 이 셋이 최유력 용의자이다.
마유즈미의 전화 - 마유즈미가 미도리카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미도리카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시점에 이미 죽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붕대 - 미도리카와를 램프에 묶은 것은 그녀의 전용실에 있던 붕대이다. 이 붕대는 그녀가 남장을 위해 사용했던 사라시와 같은 물건이다.
목의 상처 - 상처를 낸 뒤 매달아 놓으니 중력 탓에 거의 모든 피가 빠져나왔다. 예리한 무언가로 잘렸다.
흉기의 존재 - 미도리카와의 외상에는 흉기가 필요하다. 날붙이를 가진 사람은 하기와라. 모리. 그리고 카이다다.
미도리카와와 카이다 사이의 악연 - 카이다는 미도리카와와 그녀의 친구의 원수이다.
미도리카와의 친구와 카이다 사이의 무연 - 미도리카와는 카이다를 향한 복수를 계획했기에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 미도리카와의 친구는 카이다를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억을 잃은 카이다 - 카이다는 기억을 삭제 당했기에 미도리카와와 그녀의 친구를 잊어버렸다.
최초의 관통상 - 관통상이 목의 자상보다 먼저 생겼다.
창살의 흔적 - 창문의 창살에 긁힌듯한 자국이 남았다. 중앙, 오른쪽, 왼쪽. 그러나 이 자국은 인위적일 가능성이 크다.
늦게 올라와 죄송합니다
정신차려보면 일주일을 훨씬 오버해서 올리게 되네요
사실 일주일도 다른 동인소설에 비하면 텀이 훨씬 긴 거긴 한데 이보다 더 길 수가 있다?! 오늘도 단크 타워는 레전드를 갱신합니다
계속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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