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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21

by 도타싫어! 2020. 9. 17.

 

하기와라 우시오는 그의 숙소에서 느릿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기와라 우시오: 어이 이바라.

 

바라 쿠리스: 하기와라 어서오고.

 

가미 토가: 수갑은 찾으셨나요? 숙소에서 찾아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토록 오래 걸리신 걸 보면 찾으셨겠죠?

 

기와라 우시오: 쏴리. 못 찾았어. 내가 착각했나 봐.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미안하게 됐다!

 

이토 유즈루: 숙소가 살만 하긴 해도 그렇게 넓진 않았는데. 여태 그걸 찾고 있었냐? 어질러 놓기라도 했어?

 

기와라 우시오: 아니. 그냥 못 찾은 거야. 근데 침대가 옆에 있고 내 몸은 피곤하니. 잠이나 한 판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 휴! 하마터면 잘 뻔했지 뭐야.

 

바라 쿠리스: 이렇게 급한 시국에 잠이 오냐?

 

기와라 우시오: 그래. 잠이 안 오더라. 걱정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없는 동안 어디까지 얘기해 줬어?

 

무로 시라베: 캐롤 브라이트와 나나시가 마유즈미 나데시코를 찾아간 경위. 그리고 나이토 유즈루가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정보를 통제하는 이유.

 

키와 아유키: 다 해 준 것과 마찬가지야.

 

무로 시라베: 그러니 다시금 날 구속할 때다.

 

바라 쿠리스: 그 구속 말인데. 안 하면 안 돼? 번거롭잖아.

 

가미 토가: 번거롭더라도 구속을 하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바라 쿠리스: 어지간히 번거로워야 말이지. 지금 당장 누가 화장실 가고 싶어 하면 우리가 가서 풀어줘야 하잖아. 뭐. 참으라고 해?

 

이토 유즈루: 어우! 상상하게 하지 마. 더러워.

 

바라 쿠리스: 참다가 터지면 어떻게 하게. 최악의 경우는 빨리 풀어달래서 허겁지겁 풀어주는데. 같이 터지면

 

이토 유즈루: 악! 썅!

 

키와 아유키: 사실 꽤 일리 있는 주장이야. 어차피 몸수색은 일전에 끝내 뒀으니 숙소에 두고 잘 감시만 하면 되겠지. 나중에 풀어주자.

 

이토 유즈루: 이제 하기와라 왔고. 나나시랑 캐롤은 마유즈미랑 얘기하고 있다손 치고 모리 얘는 어디서 뭐 해? 거기서 헛트집이나 잡고 있나.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기와라 우시오: 글쎄. 나는 전혀 짐작이 안 간다.

 

 

 

 

 

 

 

리 레이코: 흐으음.

 

모리는 창고에 있었다. 휘발유 통을 유심히 바라본 뒤 그녀는 휘발유 통을 들어 보았다.

 

리 레이코: 으윽….

 

무겁지만. 충분히 들 수 있었다. 들 것에 넣는다면 더욱 수월하겠지.

 

리 레이코: 되겠어.

 

모리는 중얼거리며 창고에 놓인 가방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유즈미가 조금 더 활기를 찾은 뒤. 나와 캐롤 씨는 그녀에게서 여러 일을 들었다. 마유즈미조차 미도리카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어떻게 카이다와 미도리카와가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는 몰라요. 저희도 추측만 할 수 있었어요.

 

롤 브라이트: 그럴 만하죠. 미도리카와 씨는 지금까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신분에 대해 말씀한 적이 없으니까요.

 

롤 브라이트: 아직까지는요….

 

유즈미 나데시코: 캐롤 씨. 미도리카와 씨의 설득… 쉽진 않겠지만. 힘내세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을게요.

 

마유즈미는 캐롤 씨와 나에게 작은 미소를 보냈다. 나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롤 브라이트: 마음의 짐을 조금 더셔서 다행이죠?

 

나시: 네. 정말 그래요. 마유즈미는 마음이 여려 보였으니까요

 

롤 브라이트: 누구나 이 나이에는 마음이 여려요. 마음의 모든 곳이 강인한 사람은 없어요. 다들 저마다의 약점을 가지고 있죠.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마저. 약점을 가지고 계세요.

 

미도리카와. 나의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캐롤 씨는 그런 내 기색을 읽은 듯 보였다.

 

롤 브라이트: 저는 괜찮아요,

 

나시: 도와드리고 싶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롤 브라이트: 네. 저 혼자선 부족할지 몰라도. 저 혼자서 해야 해요.

 

롤 브라이트: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죠. 언제나 그래요… 너무 뜬 구름만 잡는 소리인가요?

 

왜 갑자기 캐롤 씨가 그런 얘기를 하는지조차 몰랐기에. 난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우리의 발은 움직였고. 캐롤 씨와 나는 어느새 일행에게 합류한 뒤였다.

 

가미 토가: 모리 씨와 연달아 도착하셨군요.

 

연달아? 분명 모리가 용건을 끝내고 돌아간 지 좀 되었을 텐데…?

 

의아함을 느꼈지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급한 일이 있었겠지.

 

롤 브라이트: 토키와 씨. 잠시 제게 미도리카와 씨의 숙소 열쇠를 빌려주실 수 있나요?

 

리 레이코: 무기상으로 알려진 자를 설득하러 가는 것인가?

 

롤 브라이트: 네. 성공시키도록 노력할게요.

 

리 레이코: 아니. 성공해라.

 

캐롤 씨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뒤 하기와라도 토키와를 보며 손을 들었다.

 

기와라 우시오: 토키와. 나도 건의사항 있어.

 

키와 아유키: 뭔데?

 

기와라 우시오: 후루미나미 숙소 문 좀 열어 줘. 걔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기와라는 토키와에게서 후루미나미의 숙소 열쇠를 받았다. 그녀에게서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토키와와 모리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하기와라와 동행했다. 후루미나미의 숙소 문이 열렸다.

 

키와 아유키: 안녕. 후루미나미. 잠시 조사 왔어.

 

기와라 우시오: 요요요요요. 우리 왔어!

 

루미나미 나몬: 그럴 기분 아니오. 돌아가시오!

 

토키와가 보기에 후루미나미는 히스테리와 즐거움의 중간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중간 단계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지만.

 

기와라 우시오: 나는 그럴 기분이라서 조사하러 온 줄 아냐? 말투는 또 왜 이래.

 

리 레이코: 또 광대짓인가?

 

루미나미 나몬: 내 벗님을 잃었소. 내 왓슨이 내 곁을 떠났단 말이오! 

 

후루미나미의 머리칼은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손은 자유롭지 못할 텐데 어떻게? 의아함을 느끼던 토키와는 후루미나미가 베개에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으리라고 추측했다.

 

키와 아유키: 혹시… 히무로 말하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그렇소. 내 왓슨…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소.

 

기와라 우시오: 얘가 셜록 홈즈를 부녀자 에디션으로 배웠나. 왜 이래?

 

키와 아유키: 하기와라. 후루미나미에게 무언가 물어보려 온 거잖아.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진 마.

 

루미나미 나몬: 난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을 겁니다. 썩 나가시오!

 

리 레이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모리가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토키와는 그녀를 만류했다.

 

키와 아유키: 모리. 후루미나미에게 해를 입혀선 안 돼.

 

리 레이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만.

 

키와 아유키: 할 예정이잖아. 고문도 압박 수사도 허용하지 않을 거야. 일단 하기와라가 후루미나미에게 뭘 물어볼 것인지나 들어보자.

 

루미나미 나몬: 대답하지 않을 거라니까!

 

기와라 우시오: 너는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 천한 광대 같으니!

 

토키와는 화들짝 놀라 하기와라의 쪽을 바라보았다. 모리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남자의 것으로 변한 게 아니었다. 하기와라가 성대모사를 한 것이었다. 목소리는 완벽하게 따라 하지 못할지언정 그는 모리의 말투와 억양을 거의 완벽하게 따라 했다.

 

기와라 우시오: 나는 지금부터 질문을 하겠다. 너는 대답을 해야 한다.

 

리 레이코: 이건 또 무슨 모욕이지?

 

루미나미 나몬: 그렇게 내 캐릭터성을 위협한다고 해서… 내가 반응하진 않을 거요.

 

기와라 우시오: 어디까지 그러나 볼까. 너는 스스로의 개성에 집착하지. 그 이유는 너의 본질이 너 자신이 아닌. 네 행동에 있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리 레이코: 코미디언. 광대 짓은 그만둬라.

 

루미나미 나몬: 그만하라고. 난 분명 그만하라고 말했소.

 

기와라 우시오: 왜 그만둬야 하지?

 

후루미나미는 고개를 튕겨,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루미나미 나몬: 왜냐하면 나야말로 모리 레이코이기 때문이다!

 

키와 아유키: 아. 이런.

 

토키와는 자신의 이마를 탁 때렸다. 모리의 미간은 더 찌푸려지지 못해 아쉽다는 듯이 부르르 떨렸다.

 

리 레이코: 그 짓거리들을 당장 멈춰라.

 

기와라 우시오: 예. 마님! 아무튼 물꼬는 텄으니까 결론만 말할게. 히무로랑 얘기하고 싶어?

 

루미나미 나몬: 응. 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절대 흔하지 않아. 희소하다면 희소하지.

 

루미나미 나몬: 그가 그런 관계를 가졌다면. 난 그를 가져야 해. 그럼 난 그 관계마저 가져갈 수 있어.

 

토키와는 순수한 뒤틀림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다. 하기와라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그럼 편지라도 전해 줄게.

 

키와 아유키: 하기와라. 잠깐. 멋대로

 

기와라 우시오: 기다려 봐. 다 생각이 있어. 네가 편지를 쓰면 내가 그걸 히무로에게 전해 줄게. 대신 넌 내 질문에 대답해 줘. 어때?

 

루미나미 나몬: 편지라… 낭만적이네. 극적이고.

 

루미나미 나몬: 그런 장면들이 더러 나오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애타는 등장인물이 편지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하기와라는 후루미나미 몰래 '우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녀의 표현이 몹시 유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와라 우시오: 아무튼. 제안 받아들일 거야?

 

루미나미 나몬: 그러지 뭐. 좀 튕긴 거지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야.

 

기와라 우시오: 오케이. 땡큐! 편지!

 

토키와와 모리는 극적 합의에 다다른 후루미나미와 하기와라를 보며 일이 잘 풀린 것인지 못 풀린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와라 우시오: 봤어? 내가 계약을 따냈어! 예!

 

키와 아유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대체 뭘 물어보려는 거야. 하기와라?

 

기와라 우시오: 이거.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엔 대충 뭐가 있어?

 

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기와라 우시오: ㅇㅇ. 위험한 물품들은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대충 안에 뭐가 있어?

 

루미나미 나몬: 쉽지. 전부 말해 줄게.

 

후루미나미는 하기와라, 모리, 토키와에게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캐롤은 미도리카와의 숙소 문을 열었다.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미도리카와가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인지. 차리지 못한 것인지 캐롤은 좀처럼 분간할 수가 없었다.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

 

도리카와 아쿠토: 캐롤 씨. 당신이군요.

 

존댓말. 캐롤은 손끝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름을 느꼈다.

 

도리카와 아쿠토: 내가 얼마나 잔 거죠?

 

롤 브라이트: 두 시간이요. 그보단 훨씬 길 거라고 예상했는데 빨리 깨어나셨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나에 대해서 얼마나 말했죠?

 

롤 브라이트: 입을 많이 열지는 않았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제기랄. 머리가… 애초에 여긴 왜 왔어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놀리러 오신 건 아닐 텐데.

 

미도리카와는 신음하며 포박된 몸을 일으켰다.

 

롤 브라이트: 당신을 설득하려고 왔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설득? 당신이 나의 뭘 믿고요?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에겐 죄송하지만. 전부 읽었거든요. 당신은 카이다 씨와 후루미나미 씨를 제외한 분들에겐 관심이 없어요. 후루미나미 씨를 향한 복수심 역시. 카이다 씨에 비견될 바는 아니고요.

 

미도리카와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롤 브라이트: 저희는 서로 적대할 이유가 없어요. 미도리카와 씨.

 

도리카와 아쿠토: 제가 카이다 쿠로하를 적대하는 이상. 저는 카이다와 한 패일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들을 적대할 거에요.

 

캐롤은 미도리카와가 어째서 카이다에게 그 정도의 증오를 불태우는지 알고 있었다.

 

롤 브라이트: 그분 일은 안 됐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죽은 사람처럼 얘기하지 마요.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놈인데… 죽을 뻔하긴 했지만요. 카이다 쿠로하 때문에.

 

미도리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놈이 그렇게 된 건 다 내 책임이에요. 순순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녀석은 아마 내가 죽은 줄 알 겁니다. 병원에 숨겨둔 뒤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에게 복수를 하고 찾아가려 하셨군요.

 

도리카와 아쿠토: 내가 꾀어낸 위험이라면 내가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런 뒤에야 걔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을 테죠. 여기까지 왔으니 놈을 볼 낯이 없지만요.

 

캐롤은 강제적인 터치 도중. 미도리카와의 많은 것을 보았다.

 

발을 빼라는 권유. 고집. 뒤늦은 수용.

 

보복. 보복의 기록들은 보란 듯이 전용실에 있었다. 미도리카와는 그 기록을 보았을 때 약간의 호기심을 느꼈다. 모노로그는 왜 이것들을 내 전용실에 가져다 놓았을까. 이 빌어먹을 것들을 좀 보라고 조롱이라도 하는 것인가?

 

'초고교급 밀수업자라고 불리니 앞뒤 구분도 안 되는 모양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가만히 둬선 안 된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마피아 쪽에서 괴물을 푼다는 연락이 왔다. 본보기를 보일 생각이지.'

'자진해서 처리하겠다니 쌍수 들고 환영이지만, 이번에는 허튼짓 말고 제대로 죽이라고 전해. 정신 개조는 더 할 수 없는 거야?'

 

그것 앞에서는 어떤 계획도 통하지 않았다. 겨우 바다로 도망쳤지만 몸을 숨기는 데에 성공했을 때. 친구는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미도리카와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그를 병원에 숨기고 뒷돈을 지불했다. 변방의 궁해 보이는 병원이었으니 입막음은 확실했을 터다.

 

초고교급 밀수업자로 알려져 있던 바다뱀은 그렇게 사라졌다.

 

문득 캐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도리카와 아쿠토: 동정하지 마요.

 

롤 브라이트: 동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느낀 거죠.

 

인생을 엿본 자가 눈물을 흘린다면 미도리카와의 입장에서는 불쾌할 것이라는 생각에. 캐롤은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캐롤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순탄한 삶을 산 편이었고, 그렇기에 미도리카와의 이야기의 자극성은 그녀에게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해칠 필요가 없었던. 오히려 이후 본 기록에 의하면 해치지 말았어야 했던 친구를 그렇게 만든 카이다 쿠로하를 향한 증오. 그리고 카이다 쿠로하를 끌어들인 자신을 향한 증오. 업보로 표현되는 죄책감.

 

그것들은 터치가 지속되는 동안 캐롤에게는 몸 전체를 강타하는 해일이었고,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바늘이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이런 곳에서 세 명이 모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어요. 나 혼자선 감당할 수 없어서 뒤늦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 꼴사납게 되었지만….

 

롤 브라이트: 꼴사납다뇨. 그분은 절대 그런 생각 안 하실 거예요. 분명 그분께 먼저 말씀을 드린다면 미도리카와 씨를 전폭적으로 도와주실 거예요. 그러니 저희와 함께 해요.

 

롤 브라이트: 당신의 정체를 다른 이들에게 먼저 말하고. 저희와 진정으로 동료가 돼 봐요. 전 당신을 그렇게 설득하기 위해 왔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에게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는 이상. 처음부터 모든 걸 말할 순 없어요.

 

캐롤은 미도리카와를 끝까지 설득할 셈이었으나. 미도리카와는 이윽고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도 이제 마스크를 벗을 때가 됐지. 얼굴을 뜯어낼 때가 됐어

 

얼굴. 캐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마스크. 미도리카와가 신분을 숨기고 복수를 기다리며 잠적할 때.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남성의 것으로 바꾸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는 곧 또 다른 신분.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것이 이젠 벗겨질 때가 되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하겠어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카이다와 내통했을지도 모르니까.

 

롤 브라이트: 아. 친구 분 말씀이시군요.

 

미도리카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도리카와 아쿠토: 하지만 나는 이 곳을 나갈 수 없는 몸이니. 나 대신 야가미. 하기와라. 나나시. 마유즈미에게 전해 줘요. 얘기 좀 나누자고. 할 얘기가 있다고.

 

롤 브라이트: 나머지 세 분 까지요? 왜죠?

 

도리카와 아쿠토: 한 명만 부르면 의심을 살 테니까. 지금 당장 전화를 걸지 않고 굳이 제 방으로 부르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에요.

 

도리카와 아쿠토: 나와 면식이 있다는 것이 들통나면. 그도 카이다에게 노려질 테니까요. 당신이 카이다와 한 패라는 건 보지 못했으니 그나마 가장 믿을만합니다.

 

롤 브라이트: 믿으셔도 돼요. 전 카이다 씨와 내통하지 않았어요.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그 자식은 분명 모노로그와 내통했을 테죠. 한 번 물러났으니 당분간은 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그때를 노려 빠르게 제 정체를 말하는 편이 낫겠죠.

 

롤 브라이트: 잘 생각하셨어요. 미도리카와 씨.

 

캐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롤 브라이트: 그럼 네 분에게 그렇게 전할게요. 머리가 아프시겠지만 조금 있으면 더 나아지실 거예요.

 

도리카와 아쿠토: 잠깐. 가기 전에 하나만 부탁하죠.

 

롤 브라이트: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인가요?

 

도리카와 아쿠토: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부탁이에요. 내게 맹세하세요.

 

롤 브라이트: 맹세요?

 

미도리카와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완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카와 아쿠토: 네 명에게 제대로 전하겠다고. 날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업보를 달게 받겠다고.

 

롤 브라이트: 네. 그럴게요.

 

도리카와 아쿠토: 제 마스크 좀 벗겨 줘요.

 

캐롤은 전용실 밖을 의식하며 진심이냐는 표현을 몸으로 전했다. 미도리카와는 다시금 완고하게 그녀를 보았다.

 

캐롤은 천천히 미도리카와에게 다가가. 그녀의 귀에서 마스크의 걸이를 빼내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하아.

 

지금까지 남성의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캐롤의 귀에 들린 미도리카와의 목소리는 몹시 이질적으로. 그리고 그 괴리감만큼이나 아름답게 들렸다.

 

도리카와 아쿠토: 네 명에게 제대로 전하겠다고. 날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업보를 달게 받겠다고. 맹세해요.

 

캐롤은 미도리카와의 포박된 손을 잡았다. 미도리카와는 흠칫 놀랐으나 캐롤의 손에는 흰 장갑이 껴 있었다. 터치는 일어나지 않았다.

 

장갑 너머로 희미한 체온이 느껴질 때가 되어. 캐롤이 말했다.

 

롤 브라이트: 맹세할게요.

 

도리카와 아쿠토: 그럼 이제 가도 좋아요.

 

캐롤은 미도리카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지만. 미도리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캐롤은 그것을 일종의 신호라고 받아들였다. 이제 소통하지 않겠다는 신호.

 

그렇기에 캐롤은 아무 말 없이 마스크를 다시 미도리카와에게 씌우고 전용실을 나왔다.

 

대화를 엿듣지 말고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오지도 말라는 캐롤의 당부에. 다른 이들은 한 층 위에서 캐롤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루미나미에게 무언가를 물으러 갔다던 하기와라와 토키와. 모리도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검은 계단을 올라 그들의 얼굴을 보자. 호기심과 초조함이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캐롤은 그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롤 브라이트: 성공했어요. 거의 다.

 

키와 아유키: 좋아!

 

토키와가 진심을 담아 그렇게 감탄하자 다른 이들도 비로소 쾌재를 불렀다. 캐롤은 토키와에게 열쇠를 반납했다.

 

이토 유즈루: 드디어 한 시름 놓겠다. 휴….

 

리 레이코: 거의 다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롤 브라이트: 아직 저희에게 마음을 다 열진 않았지만. 적어도 무작정 저희를 적대하지는 않으실 거란 뜻이에요.

 

키와 아유키: 그 정도면 충분해요. 이제 카이다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충분하고도 넘치죠.

 

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 어떤 물품이 있는지도 체크를 끝냈으니… 이제 오늘 밤 그곳을 누가 감시할지 정하기만 하면 해산할 수 있어.

 

두 명이 먼저 손을 들었다.

 

리 레이코: 내가 하겠다.

 

기와라 우시오: 나도 할래! 전용실 앞을 꽉 틀어막아 줄게!

 

리 레이코: 한 명만 더 오면 되겠군. 리더. 어떤가? 감시역에 자원하겠나?

 

바라 쿠리스: 어림도 없지! 내가 한다!

 

하기와라의 표정에 잠깐 당황이 스쳤다.

 

기와라 우시오: 갑자기?

 

바라 쿠리스: 그래. 갑자기!

 

리 레이코: 안 될 이유도 없다. 자원했으니 굳이 만류할 이유도 없고.

 

기와라 우시오: 그치만… 어. 그치만

 

가미 토가: 왜 그러시죠?

 

하기와라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뒤 느닷없이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그치만…! 이러지 않으면 너희 내게 관심도 없

 

리 레이코: 그런 말만 할 거라면 차라리 닥쳐라.

 

모리는 하기와라의 실없는 말을 더 하지 못하도록 싹을 잘랐다.

 

나시: 그러면 하기와라. 이바라. 모리 셋으로 결정된 거야?

 

이토 유즈루: 무기고 앞을 지키는 거니까 나까지 할까?

 

키와 아유키: 아니. 어차피 열쇠는 나에게 있으니까 문이 열릴 일은 없을 거야. 창문으로 들어가는 진입은 23T가 카이다의 견제를 겸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역시 막을 수 있고.

 

가미 토가: 세 분으로 정해졌으니. 이제 해산해도 될까요? 오늘은 긴장되는 일이 많아서 빨리 잠을 청하고 싶습니다.

 

기와라 우시오: 좋아. 해산물!

그 자리에 있던 거의 모두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들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해산했다.

 

나이토는 특히 더 비참한 기분을 느꼈는데. 막상 숙소 안에 들어오고 나니 꽤 웃겼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기와라와 이바라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앞에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둘의 농담을 듣다 못한 모리가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둘이 대화를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기와라는 이상하게 웃음기와 의욕을 잃어 갔다. 이바라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저러지? 짐작 가는 일이라면 아까 캐롤에게서 전화 한 통이 온 것뿐이었는데. 그걸 받은 직후에는 달라진 게 없었고. 이상한 변화는 전화를 받기 전부터 있었으니 캐롤과 이 일은 관련이 없었다.

 

이바라는 하기와라가 피로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바라 쿠리스: 야. 피곤하냐? 왜 그렇게 텐션이 떨어졌어.

 

기와라 우시오: 피곤하냐. 안 하냐 하면 당연히 피곤하지. 이 탑에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바라 쿠리스: 네가 신경이란 걸 쓰긴 하냐? 생각도 없는 놈이 뭐래.

 

기와라 우시오: 맞아. 내 멍청한 머리론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살아남기 위해 할 일이….

 

하기와라는 말문을 잃고 한숨을 쉬었다. 이바라는 왜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항상 시끄러운 둘 답지 않게 잠시 그들은 침묵했다.

 

마침내 하기와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바라. 이 탑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라 쿠리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기와라 우시오: 궁금해져서 그래. 곧 이 탑 전체에 피바람이 불 텐데 그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바라 쿠리스: 뭐?! 야. 불길한 소리 마! 농담이 심하다!

 

이바라가 하기와라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기와라 우시오: 그래. 농담이야. 내가 하는 말은 다 농담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편하게 들어 주라. 정말 뭘 해야 할 것 같아? 탑에서 누구도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라 쿠리스: …나도 몰라. 그냥 뭐든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잖아.

 

바라 쿠리스: 죽는 건 최악이야. 죽은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잖아. 그러니까 누군가가 죽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해. 내 전력을 다해서.

 

기와라 우시오: 네 말이 맞아.

 

하기와라는 침묵 뒤에 말을 이었다.

 

기와라 우시오: 뜬금없는데. 내가 널 해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바라 쿠리스: 진짜 뜬금없네.

 

기와라 우시오: 꽁트 아니야. 참 얄궂어. 너만 아니었으면. 하필 네가 와서

 

답지 않게 진지한 하기와라의 모습에 이바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하기와라가 한숨을 쉬며 칼을 꺼낸 순간. 화들짝 놀랐다.

 

바라 쿠리스: 꺄아악!

 

기와라 우시오: 끼야아아악! 깜짝 놀랐잖아! 비명 좀 조용히 질러라!

 

하기와라는 그녀의 비명에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바라 쿠리스: 안 해친다고 했으면서! 이 나쁜놈아!

 

기와라 우시오: 안 해친다고! 그냥… 이 칼을 너한테 가져다 대는 거야. 침착해.

 

바라 쿠리스: 뭐라는 거야?!

 

기와라 우시오: 나 믿어! 너한텐 아무 짓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인질 역할 좀 해 주라.

 

하기와라가 그녀에게 천천히 칼을 가져다 대자 이바라의 몸이 굳다가 갑작스럽게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기와라 우시오: 야야야야야야야. 움직이지 마. 이바라. 위험하니까 조심해! 응?

 

바라 쿠리스: 칼 들고 있으면서 뭐래?! 사람 살려!

 

이바라의 비명에 숙소와 전용실의 문이 열렸고. 방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캐롤 브라이트와 나나시였다.

 

롤 브라이트: 이바라 씨? 하기와라 씨!

 

나시: 하기와라! 이바라를 놔줘!

그 뒤 토키와 아유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와 아유키: 하기와라. 지금 뭐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하기와라는 세 명이 자신과 이바라를 목격했음을 확인하자마자 패악스럽게 소리쳤다.

 

기와라 우시오: 다 물러서! 더 다가오면 이바라는 죽는다!

 

하기와라는 주변에 칼을 붕붕 휘둘러 다른 이들을 위협했다.

 

그러는 동시에. 하기와라는 완전히 굳어버린 이바라에게 속삭였다.

 

기와라 우시오: 움직이지 마. 나도 무섭단 말이야! 인질극은 처음이라 너무 긴장돼. 어쩌냐 이거…!

 

이바라는 하기와라가 이중인격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제 야가미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가미 토가: 하기와라 씨… 흥분하지 마세요. 이바라 씨? 침착하셔야 합니다. 하기와라 씨를 자극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세요.

 

바라 쿠리스: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진짜 멘붕 오네. 으하하항!

 

가미 토가: 제기랄. 가만히 계시란 말입니다!

 

키와 아유키: 하기와라. 진정해. 원하는 게 뭐야?

 

기와라 우시오: 그건 아직 말 못 하고. 곧 올 때가 됐는데.

 

하기와라가 벽에 등을 기대고 두리번거리자 곧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무언가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분에 못 이긴 것인지 막바지에는 계단을 따라 달리기보다 계단에서 몸을 던지다시피 한. 나이토 유즈루였다.

 

나이토는 목과 주먹을 우둑거리며 몸을 풀었다. 하기와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이 다 터지고 갈비뼈와 허리가 부러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긴장감에 저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토 유즈루: 야. 하기와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 하냐.

 

기와라 우시오: 아… 진짜 이거 심하게 수틀렸네. 그래도 다들 걱정 마. 난 이바라 절대 안 해쳐.

 

롤 브라이트: 그럼 이바라 씨를 놓아주세요!

 

기와라 우시오: 봐봐.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그게 좀 힘들단 말이지. 응? 상황이 그렇게 잘 풀리지가 않아.

 

나이토가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자 하기와라는 주저 없이 소리를 질렀다.

 

기와라 우시오: 설마 나만 이바라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이토. 더 다가오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

 

키와 아유키: 나이토. 물러서! 하기와라를 자극하면 안 돼!

 

이토 유즈루: 저 새끼 허세 부리는 거야. 저 놈은 이바라를 못 해쳐. 이바라는 저 놈 친구라고. 내가 다가가도 쟨 이바라를 해코지 못 해!

기와라 우시오: 그래. 난 이바라랑 노는 게 너무너무 즐겁다. 해칠 생각은 없어.

 

이바라는 하기와라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라 쿠리스: 너 진짜 제정신이야? 미쳤냐?

 

기와라 우시오: 미안.

 

하기와라는 이바라에게 속삭여 대답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이바라는 하기와라의 연기력이 이상한 부분에서 출중하다고 느꼈다.

 

기와라 우시오: 하지만 네가 더 다가오잖아? 그럼 난 분명 병신 짓 할 거다. 손이 미끄러질 거야. 한 번 보여 줄까?

 

키와 아유키: 나이토. 물러서라니까! 당장 물러서!

 

나시: 그래. 나이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어!

이토 유즈루: 야. 나보고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이 개짓거리를?!

 

가미 토가: 갑자기 움직여서 이바라 씨를 다치게 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조금만 진정하세요.

 

나이토는 발을 더 내딛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새빨개졌다. 그는 결국 가죽 자켓을 벗어 바닥에 집어던졌다. 아무리 가죽이라도 분명 의복인데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쾅' 소리가 났다.

 

이토 유즈루: 아오. 씨바아아아알! 하기와라. 이 새끼야. 넌 이거 끝나고 아주 뒤졌어!

 

기와라 우시오: …그 정도는 각오했지. 일 벌이고 쳐맞는 거. 그걸 광대 아니면 누가 하겠어?

 

나이토는 바닥을 밟고 벽에 주먹을 날리며 분을 삭이려 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토 유즈루: 아으! 썅! 모리 얘는 어디 갔어?! 세 명이서 경비 서는 거였잖아. 사람 목숨이 위험한데 어디서 뭐 해?!

 

바라 쿠리스: 몰라! 잠시 어디 다녀온댔어! 우리가 너무 떠들어서 그런가 봐!

 

이토 유즈루: 타이밍 한 번 끝내주네. 망할!

 

기와라 우시오: 다들 조요오오오옹! 이제 원하는 거 말할게. 토키와.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열쇠 내놔!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의 전용실…?

 

다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나시: 총기…!

 

기와라 우시오: 그래. 이대로 냅두면 누가 가져갈지 모르잖아. 그러니 내가 총대 매련다. 말 그대로! 총대를 맨다고. 총대 매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키와 아유키: 그건 용납 못 해. 하기와라. 잘 생각해 봐.

 

가미 토가: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보다 총에 맞을 확률이 4배가량 높습니다. 하기와라 씨.

 

기와라 우시오: 그건 열린 계(系)에서나 그렇지. 공급원을 차단한다면 이 탑에서 총을 멸종시킬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총을 사리사욕에 쓰려는 것도 아니잖아. 좋은 일에 쓸 테니 걱정 마셔.

 

이토 유즈루: 못 믿겠다. 이 새끼야.

 

기와라 우시오: 네가 믿냐 안 믿냐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토키와가 믿냐 안 믿냐지.

 

토키와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열쇠는 총 8개가 있었다. 4명의 숙소와 전용실. 각각에 사용되는 열쇠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열쇠를 줘선 안 돼. 저 안의 총기를 누군가가 입수하면 엄청난 파란이 일어나. 미도리카와 이상의 위협이 될 거야.

 

그렇지만 열쇠를 주지 않으면 이바라가 다칠 거야. 죽을지도 몰라. 그럼 그건 내 잘못이야.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와중. 토키와의 손과 그 안의 열쇠에 땀이 차올랐다.

 

기와라 우시오: 토키와. 열쇠 줘.

 

바라 쿠리스: 주지 마. 토키와! 이 또라이한테 주면 진짜 큰일나!

 

가미 토가: 당연합니다. 주시면 안 됩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세요. 토키와 씨.

 

롤 브라이트: 이바라 씨가… 제발. 하기와라 씨. 멈추세요!

 

토키와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절대 줘선 안 된다. 주는 순간 모든 상황은 통제할 수 없게 흘러가 버린다.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토키와는 그 생각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러나 열쇠를 하기와라에게 던지고 싶다는 충동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왜?

 

이바라가 다치거나 죽었을 때. 다른 이들이 '토키와가 열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렇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일. 토키와는 다름 아닌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는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으며 열쇠를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이토 유즈루: 개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이바라 친구냐?!

 

하기와라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기와라 우시오: 이제 아니겠지. 슬픈 일이야.

 

나시: 지금이라도 그만둬. 하기와라! 아직 안 늦었어. 돌이킬 수 있어!

 

기와라 우시오: 미안한데 그만두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아. 모든 위협을 사전에 없애려면 누군가가 일을 꾸미기 전에 해야 해.

 

기와라 우시오: 안 그러냐? 존나 당연하잖아. 또 이 탑에서 총으로 개판이 나게 둘 순 없잖아. 카이다가 우리 중 누굴 해치게 둬서도 안 돼. 우리 손으로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센 놈들 사이에서 눌려 죽고 말걸.

 

롤 브라이트: 그래서 보초를 세운 거였잖아요. 23T 씨도 밖에서 카이다 씨를 견제하고 계시니

 

하기와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여느 때와 같이 천진난만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웃음에서 섬뜩한 무언가를 느꼈다.

 

기와라 우시오: 이러니까 우리가 통수만 맞고 산 거 아니야?! 지금 당장 내 자리에 카이다가 있어 봐. 그럼 우린 다 죽은 목숨이었어!

 

가미 토가: 잠시 진정하세요. 하기와라 씨.

 

기와라 우시오: 왜. 너도 내가 미친 것 같아 보여? 근데 사실 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기와라 우시오: 이 탑에 처음 왔을 때 카이다가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 있어? 미도리카와는? 둘 다 이상한 점은 있어도 멀쩡했어. 우리랑 얘기도 했어. 후루미나미는 망할. 같이 영화도 달렸어! 근데 지금 그 자식들 꼬라지를 봐!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기와라 우시오: 이 탑은 우리의 맨얼굴을 끄집어내.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환경… 그 안에선 누구도 쉴 수 없어.

 

하기와라는 웃음기 없이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총 같은 물건이 탑 안에 있으면 누구든 또 돌아버릴 거야. 카이다는 우리 목숨을 노릴 거고. 그러니 내가 총대를 매겠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테니 열쇠 내놔.

 

나나시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는 하기와라야말로 탑의 광기에 잠식된 사람 같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정말 탑 탓일지도 모른다. 나나시는 자신이 고래의 뱃속 안에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거대한 위장 속에 갇혀서. 서서히 살이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천천히 광기에 잠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시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나시: 하기와라. 총을 가지면 뭘 어떻게 할 건데? 아무리 네가 좋은 의도로 그 일을 한다고 해도. 우리 입장에선 결국 너도 새로운 위협이 되는 거잖아. 진정해

 

기와라 우시오: 아. 그거 말해주려면 내 목적도 다 말해야 하는데 그건 나 혼자선 말 못 하고. 아무튼 토키와! 내 말 안 들려?!

 

이바라는 하기와라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이바라에게 잠시 칼을 가까이했을 뿐. 정작 피부나 옷에 스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하기와라는 정말로 그녀를 해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판단하자마자 이바라는 팔을 꼼지락거렸다.

 

기와라 우시오: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하기와라가 호기롭게 소리치며 이바라의 옷깃을 조심스래 잡았다.

 

바라 쿠리스: 뭐야.

 

기와라 우시오: 방금 패를 밑에서 뺐지. 그렇지?!

 

하기와라는 이바라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지 확인했다.

 

기와라 우시오: 따라리라라리… 뭐야. 아무것도 없는.

 

뭐지? 얘가 밑장을 빼는 거 내가 똑똑히 봤는데.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이바라의 손을 의아하게 보던 순간. 하기와라의 눈 앞에서 그녀의 손이 분리되었다.

 

마치 손이 저절로 팔에서 떨어진 듯이. 그 손은 하기와라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세상 천지 별 꼴을 다 보았으나 그런 것은 처음 보았기에. 입을 쩍 벌리고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기와라 우시오: 으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하기와라가 조금만 침착했다면 이상하게 딱딱한 손의 감촉. 그리고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피부에서 그것이 가짜 손임을 눈치 챘겠지만, 그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는 허둥지둥 가짜 손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그 동안 이바라는 숨기고 있던 진짜 손으로 하기와라의 명치를 힘껏 가격했다. 체중을 실은 깔끔한 타격이었다.

 

하기와라가 고양이처럼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이 고통에 돌돌 말렸다.

 

기와라 우시오: 뭐… 뭐야. 왜 움직여…?

 

바라 쿠리스: 안 해칠 줄 알고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을 이유도 없지. 이 멍청아!

 

이토 유즈루: 그래! 바로 저거야! 다들 방금 저거 봤냐?! 제대로 한 방!

 

키와 아유키: 봤어. 매우… 쉽게 해결됐네.

 

나이토는 환호성을 내질렀고 토키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스릴러에서 시트콤으로 한 순간에 넘어 온 기분이었기에. 누구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기와라 우시오: 내가 널 절대로 안 해칠 거라고 진짜 믿어준 거야?

 

바라 쿠리스: 네가 사람 죽일 사람은 아니잖아… 난 너보다 훨씬 똑똑하단 말이야. 알아? 그래서 너보다 널 훨씬 잘 안다고.

 

기와라 우시오: 나 지금 꽤 기쁜데 너무 아프다

 

바라 쿠리스: 입 닥치고. 칼은 또 어디서 났어. 이거로 누구 찌르기라도 하면 뒷감당 어쩌려고 그랬어? 지금 봐봐. 나이토가 네 머리에 구멍 내려고 벼르고 있잖아.

 

롤 브라이트:다행이에요. 세상에. 이바라 씨. 일단 이 쪽으로 오세요.

 

바라 쿠리스: 잠깐만. 나 아직 얘한테 할 말 남았어.

 

이토 유즈루: 하기와라 넌 나한테 일단 몇 대만 가볍게 맞자.

 

나이토는 차분하게 말하더니. 다음 순간 고개를 젓고 돌변했다.

 

이토 유즈루: 아니야. 취소. 넌 뒤졌어 아주! 내 앞에서 인질극을 벌여?! 대가리 대!

 

기와라 우시오: 파인애프으으으으을!

 

정체불명의 비명을 내지른 하기와라를 향해. 나이토가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리 레이코: 잠깐!

 

그 순간 모리가 뚜벅뚜벅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왜 그녀가 가방을 세 개 가지고 오는지 의문을 느꼈다.

 

그녀는 가방 하나를 매고, 나머지 두 개를 자신의 손에 각각 쥐고 있었다. 마치 내기에서 진 결과 친구들의 가방을 떠맡게 된 학생 같았다.

 

리 레이코: 코미디언. 지금 뭘 하는 거냐? 장의사는 어떻게 된 거지?

 

이토 유즈루: 휴. 호랑이도 제 이름 부르면 온다더니. 딱 좋을 때 왔네. 빨리 와 봐. 너 자리 비운 사이에 지랄 났어!

 

바라 쿠리스: 이렇게 보니까 모리도 반갑다. 하기와라 너에겐 아니겠지만.

 

기와라 우시오: 아닌데? 나한테도 반가운데? 안녕 내 좋(같)은 친구야!

 

몸을 웅크린 채 자신에게 인사하는 하기와라를 보며. 모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리 레이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라.

 

모리가 주머니에서 양갱을 꺼내 씹으면서 말했다.

 

가미 토가: 하기와라 씨가 이바라 씨를 인질로 삼아. 미도리카와 씨의 전용실로 진입하려 했습니다.

 

리 레이코: 흠. 리더에게서 열쇠를 요구했군.

 

키와 아유키: 응.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열쇠만 있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리 레이코: 그리고. 결국 실패했군?

 

롤 브라이트: 다행히도 그렇게 됐어요.

 

이토 유즈루: 다행히도 그렇게 됐지. 자. 이제 이 또라이한테 인디언밥 들어간다. 다시는 이딴 짓 생각도 못 하게!

 

리 레이코: 나도 함께하지.

 

모리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나이토는 옛 저녁에 몸이 다 풀렸기에. 하기와라를 두들겨 팰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미 토가: 잠깐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모리 씨?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오셨죠?

 

리 레이코: 알 것 없다.

 

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그녀는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들려 있던 가방을 왼팔에 모았다. 그 뒤 하기와라를 지나쳤다.

 

이바라가 '같이 때리자고 권유하려고 나한테 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을 즈음에, 모리는 이미 이바라의 목에 칼을 댄 뒤였다.

 

바라 쿠리스: 우왓?!

 

리 레이코: 다 물러서라. 장의사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승부사. 물러서라고 말했다!

 

모리는 이바라를 인질로 잡고 다른 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등에 칼을 쓱 그어 작은 상처를 내었다.

 

리 레이코: 보았겠지? 이 칼은 날카롭다. 장의사의 목숨을 중요시한다면 물러서라!

 

이토 유즈루: 아니…?! 이건 또 씨발 무슨… 개지랄이야아아아?! 모리. 너 미쳤냐?!

리 레이코: 지극히 이성적이다. 너희 중 누구보다도. 물러서!

 

나이토는 이제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기세로 모리와 하기와라를 노려 보았다.

 

이토 유즈루: 뭐냐고 너! 좆같은 공리주의자라며. 그럼 공리를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리 레이코: 네가 사물과 상관관계를 일차원적으로 볼뿐이다.

 

가미 토가: 이제 알겠군요. 모리 씨는 일부러 자리를 피하신 거였습니다. 두 분은 한 패입니다.

 

나시: 그래서 나타났을 때 이목을 끈 거였어…?

 

나나시는 '파인애플' 이 개입해달라는 하기와라의 신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기와라 우시오: 야! 모리! 칼은 가져다 대기만 해! 절대 해치면 안 된다. 알겠지?! 해치기만 해. 얻은 총으로 니 팔다리에  드드득 절취선 만들어 버릴라!

 

몸을 일으키며 하기와라는 모리에게 소리쳤다. 나나시는 어느 때보다 하기와라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리 레이코: 섣불리 공리를 훼손시킬 생각은 없다. 장의사. 저항 마라.

 

바라 쿠리스: 니들 제정신이야? 야. 날 인질로 잡아봤자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문은 못 열잖아!

기와라 우시오: ㅙ?

 

바라 쿠리스: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문은 잠겨 있잖아! 열쇠가 토키와한테 있고. 어차피 토키와는 열쇠 안 줄 테니까

 

이바라의 얼굴에 놀라움과 오싹함이 퍼져나가자. 하기와라는 이바라를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바라 쿠리스: 설마…!

 

기와라 우시오: 그래. 맞아.

 

바라 쿠리스: 설마 토키와까지 너희랑 한 패야?!

순간 토키와의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토키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키와 아유키: 아니야!

 

리 레이코: 아니다.

 

기와라 우시오: 야하하하! 이걸 속네! 상대가 '설마…' 이 지랄할 때 숟가락 얹으면 감쪽같이 속는다니까!

 

리 레이코: 리더를 회유할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이번 소동은 리더를 향한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것 또한 목적으로 삼았지만. 리더는 굴복하지 않았군.

 

모리는 만족감을 드러냈지만 다른 이들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었다. 캐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모리와 하기와라에게 물었다.

 

롤 브라이트: 결국. 문을 어떻게 여시려고요…?

 

기와라 우시오: 열쇠가 있거든. 이거 하나면 모든 문을 열어버릴 수 있지.

 

키와 아유키: 뭐…?!

 

바라 쿠리스: 뭔 소리야… 너한테 그런 게 왜 있어?

 

가미 토가: 이상한 일입니다. 하기와라 씨에게 그런 열쇠가 있을 리 없어요. 그런 열쇠가 개인에게 주어지면 너무 큰 힘이 됩니다.

 

가미 토가: 모노로그 씨가 그런 열쇠의 존재를 용납할 리가 없습니다. 흑막 말곤 그런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기와라 씨에게 그 열쇠가 있다는 건….

 

하기와라는 야가미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가미 토가: 설마

 

기와라 우시오: 이제 이 문을 사랑으로 바꿔 볼까.

 

리 레이코: 말장난은 그만. 지금은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하기와라는 뒷짐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뒷짐에서 꺼낸 것을 문에 가져다 대었다.

 

기와라 우시오: 열쇠(물리)!

 

하기와라가 도끼로 문을 찍자. 주변에 나무 조각과 섬유의 먼지가 튀어올랐다.

 

바라 쿠리스: 아… 저걸 열쇠라고 부르는 거였구나. 얼탱이가 없다

 

하기와라가 느닷없이 꺼내 든 도끼를 보며. 이바라는 벅스 버니를 떠올렸다. 벅스 버니가 화면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무언가 때려야 할 문제가 생기면. 화면 밖에서 100톤짜리 망치를 꺼내 오지 않는가? 이바라가 보기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는 도끼의 자루를 바지의 뒷부분에 넣고 도끼날은 바지와 벨트에 걸치게 둔 뒤, 옷을 내려서 도끼의 날을 감춘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렇게 보였다.

 

기와라 우시오: 열쇠가 뭐냐? 문을 여는 거잖아. 그러니 이거도 이제 열쇠지!

 

리 레이코: 더 빨리 움직일 순 없나?

기와라 우시오: 난 도끼로 문 부수는 거 처음이거든?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난 어디서 경력을 쌓으란 겨?

 

리 레이코:실없는 소리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기와라 우시오: 좀 기다려 봐봐. 녹서어어어어스!

 

하기와라가 몇 번 더 도끼를 문에 내려치자. 문에 생겨난 균열이 점점 더 커져 갔다.

 

바라 쿠리스: 모노로그! 이거 맞아?! 지금 기물파손이 존나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잖아! 규칙 위반 아니야?!

 

바라 쿠리스: 그러니까 처벌 해! 대신… 살살 해. 살살 처벌해!

 

기와라 우시오: 놉놉! 이건 규칙 위반에 해당 안 돼! 한 대 더!

 

하기와라는 과장된 몸짓으로 문을 내려쳤으나. 모노로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키와 아유키: 어째서…?

 

리 레이코: 규칙들은 살해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살해할 무기를 얻기 위해 문을 부수는 것은 용납된단 거지.

 

롤 브라이트: 누굴… 누굴 살해하실 생각이시죠?

 

기와라 우시오: 누구? 그건 당연하잖아.

 

리 레이코: 첩자다.

 

다른 이들은 하기와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위협을 없애야 한다는 말. 그제야 모든 일이 이해되었다. 서로 죽도록 맞지 않는 하기와라와 모리지만. 모리가 공리를 위해 행동하는 이상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을 접어둘 수 있다.

 

카이다를 죽여야 한다는 대업이 목전이라면. 기름과 물 같은 하기와라와 모리도 협력할 수 있었다.

 

가미 토가: 카이다 씨는 위험인물이니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만… 절대로 통하지 않을 겁니다. 카이다 씨는 기관총 두 개를 들고도 몸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저희 모두 들었지 않습니까? 그녀는 총을 든 미숙련자 둘을 가볍게 피할 수 있습니다.

 

가미 토가: 피하기보다. 제압하겠죠. 두 분은 죽을 겁니다. 그럼 카이다 씨는 총기를 가질 수 있게 돼요.

 

리 레이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최악의 경우에는 폭발물로 첩자와 동귀어진함과 동시에 총기도 남기지 않을 심산이니.

 

기와라 우시오: 뭐야 시발. 난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리 레이코: 그때가 되면 너 역시 나와 같은 방식으로 죽어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도록.

 

이토 유즈루: 개소리. 절대 못 보내.

 

나이토는 모리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럴수록 모리는 이바라의 목에 칼을 더 가까이 대었다.

 

리 레이코: 장의사가 죽길 원하나. 승부사?

 

나이토는 발을 멈춘 채. 이를 득득 갈며 모리와 하기와라를 노려보았다.

 

이토 유즈루: 저 둘이 총을 쥐는 건 반드시 막아야 해. 보고만 있을 순 없어.

 

키와 아유키: 움직이지 마. 나이토.

 

이토 유즈루: 그래. 이바라가 위험하니까. 이 씨발…! 막아야 하는데. 막으면 뭔 일이 날지 모르잖아. 이런 개 같은… 그냥 해 버려. 말아?

 

바라 쿠리스: 야. 그냥 와! 얘네 나 죽일 깡 절대 없어!

 

기와라 우시오: 이바라. 네가 모리를 몰라서 그래. 얜 진짜 저지를 또라이야! 그러니까 진정해. 네가 위험해져!

바라 쿠리스: 넌 도대체 누구 편이니

 

리 레이코: 갈피를 잡지 못하나. 승부사? 그렇겠지. 칸트주의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 그게 전부지. 하지만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칸트주의의 울타리마저 흔들린다. 부동심을 가진 것은 공리뿐이다.

 

리 레이코: 총기의 악용을 막아야 한다. 다른 이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첩자를 배제해야 한다. 이런 공리적 판단을 가진다면 광대마저 대업에 동참할 수 있다. 보다시피.

 

리 레이코: 이해하겠나? 공리는 항상 명확한 기준선을 부여한다. 명확한 울타리. 명확한 행동을

 

이토 유즈루: 모리. 지랄 마. 넌 그냥 스스로를 맹신하는 거야.

 

보란 듯이 연설하던 모리의 눈썹이 씰룩였다. 나이토는 자신이 내팽개쳤던 가죽 자켓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이토 유즈루: 똑똑하고 잘 배웠으니 네가 틀렸을 가능성은 절대로 생각 안 하지. 네가 공리를 섬기면 뭐 해. 잘못 섬기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똑같잖아.

 

리 레이코: 난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

 

이토 유즈루: 개소리 마. 이게 어떻게 옳은 선택이야? 삐끗했다간 다 망하는 계획이 어떻게 옳냐고. 넌 옳고 싶은 것뿐이야.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애새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기와라 우시오: 나이토 씨. 미안합니다만 최초가 최고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하기와라가 얄밉게 모리를 거들었다.

 

리 레이코: 네가 아무리 반대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리 레이코: 방법이 잘못되었을지언정. 나는 가라앉는 배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대피시킬 것이다.

 

이토 유즈루: 난 네 방법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언젠가 내가 반드시 네 앞을 가로막을 거다.

 

리 레이코: 그리고 언젠가. 너와 나는 함께 싸우게 될 거다.

 

나이토와 모리는 서로 뜨거운 눈빛과 서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기와라는 도끼를 몇 번 더 내려쳐 문에 세로로 거대한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손을 밀어 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기와라 우시오: 준비됐어. 모? 자 드가자! Here's johnny!

 

리 레이코: 장의사. 앞으로 몇십 초만 더 버티면 된다.

 

모리는 그렇게 말하며 이바라와 함께 미도리카와의 전용실로 들어갔다.

 

리 레이코: 장의사. 지금부터 가만히 있도록.

 

모리는 이바라를 창가 쪽으로 몰아붙인 뒤 그녀를 놓아주었다. 이바라는 문으로 도망치려면 하기와라와 모리를 둘 따돌려야 하고. 창문으로 도망치기엔 자신이 없는 상황에 놓였다.

 

기와라 우시오: 시간이 없어! 빨리 가방 줘봐!

 

모리는 대꾸 없이 그에게 가방을 하나 던졌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방 두 개는 비어 있었다. 하기와라와 모리는 상하지 않은 총기와 도구들을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리 레이코: 작업은 빨리 끝나겠군.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챙겨라. 우리가 첩자에게 죽으면 이 총기들은 그대로 첩자를 위한 보급품이 된다.

 

기와라 우시오: 나도 알아! 어디 보자. 적외선 투시 고글. 여기 있네! 후루미나미한테서 미리 들은 게 다 여기 있어! 이거로 카이다 찾으면 되겠다.

 

총기를 전부 쓸어가기에 가방 두 개로는 모자랐지만.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 놓인 총기들은 반 이상이 상해 있었다. 폭발에 휘말린 것도 있었고, 총알에 맞아 찌그러진 것도 있었다. 탄창을 다 소모한 총도 무수히 많았다.

 

4명 사이에 벌어진 총격전에서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기에 전용실 안은 을씨년스러운 폐허를 연상시켰다. 곳곳에는 총알구멍과 그슬린 자국들.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조각난 여러 물건들이 즐비했다.

 

이바라는 틈을 노려 총을 주워보려 했으나 모리의 감시 앞에 그 일은 번번이 저지되었다. 그녀가 몰아붙여진 구석 근처에는 총이 한 정도 없었고. 모리는 가방에 총을 담으면서도 유별나게 이바라를 지켜보았다.

 

하기와라는 총을 쥔다는 일에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총을 가진 사람은 총에 맞을 확률이 4배나 높다는 야가미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지만. 그는 계속 총을 담았고, 모리 역시 고양감을 느끼며 총을 담았다. 그녀는 폭탄 하나를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의 가방이 적당히 찼다. 그러나 전용실 안에는 아직 무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리 레이코: 폭발물은 제어하기 어려우니 두고 가도록 한다.

 

기와라 우시오: 두고 가는 거. 맞아? 여기 불태우고 갈 거잖아. 안에서 터지면 어떻게 해! 아까 내가 문 박살내서 밖으로 별 지랄이 다 튈걸?

 

리 레이코: 일리 있는 지적이다. 폭발물은 챙기되. 이후 장미 꽃밭에서 처분한다.

 

기와라 우시오: 예. 마님! 조심해서 담자!

 

하기와라와 모리가 작은 공 같은 것들을 챙겨 담는 동안. 이바라는 자신이 그들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바라 쿠리스: 뭐? 여길 태우겠다고?

 

리 레이코: 무기상으로 알려진 자에겐 유감이지만. 총기가 가득 찬 개인실이라면 없는 편이 낫다.

 

기와라 우시오: 누구 하나라도 총 주으면 개판 나니까 그 수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보다 빨리 째야 해!

 

리 레이코: 기름은 코미디언 네가 뿌려라. 퇴로를 확보하겠다.

 

모리는 자신이 매고 온 가방을 열어 휘발유 세 통과 밧줄 한 묶음을 꺼냈다. 하기와라는 휘발유의 뚜껑을 열며 뒤늦은 공황 상태에 접어들었다.

 

기와라 우시오: 으아아아…!! 모리! 나 지금 이 작전이 먹히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제 진짜 돌이킬 수 없어!

 

리 레이코: 입 다물고 준비해라!

 

모리는 밧줄을 철창에 묶고 밑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퇴로가 확보되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바라 누나는 나가!

 

이바라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라고 묻는 듯했다.

 

기와라 우시오: 나가. 뒤지기 싫으면!

 

바라 쿠리스: 야. 하기와라! 너!

전용실에서 나가기 전. 이바라는 하기와라에게 화를 냈다. 화가 났기 때문이다.

 

자신을 멋대로 인질로 삼은 것에 화가 났다. 칼을 가져다 댄 것에 화가 났다. 이런 만행을 꾸미기 전에 아무런 전조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그녀는 화가 났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일은. 하기와라 이 놈을 줘팰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기와라와 모리는 당장 카이다를 사살하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반격을 당해 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하기와라와의 마지막 만남은 인질극이다. 그는 이바라에게 인질극 같은 짓을 하다 죽은 놈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바라는 그것에 화가 났다. 살인 게임에서 실없게 노는. 이상한 친구 관계일지언정 그 끝을 이렇게 도난당하기는 절대 원하지 않았다. 도난. 그녀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바라 쿠리스: 너 살아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반드시! 죽으면 가만히 안 둬!

 

죽으면 죽여 버릴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바라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기와라 우시오: ….

 

리 레이코: 코미디언. 지금이 멈출 때인가? 인공지능은 언제든지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

 

기와라 우시오: 이바라. 미안.

 

바라 쿠리스: 나중에 미안해해! 지금이 마지막 '미안' 이면 네 무덤에 침 뱉는다. 모리 너도 알아서 잘 살아! 그럼 이만!

 

이바라가 후다닥 문 밖으로 도망치자마자 하기와라는 사방에 휘발유를 뿌렸다. 지체된 작업에 모리까지 그를 도왔다.

 

리 레이코: 밧줄은 전부 내렸다. 폭발물도 수거했다. 이제 퇴각한다!

 

기와라 우시오: 됐어! 골고루 다 뿌렸어! 존나 튀어어어!

 

모리와 하기와라가 밧줄을 탈 준비를 끝낸 순간. 23T가 거의 너덜너덜해진 문을 뚫고 난입했다. 이바라가 그들의 수중에 없는 이상 23T도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쫓을 수 있었다.

 

하기와라는 모리에게서 받았던 성냥으로 불을 지피고. 불이 붙은 성냥을 다시 갑에 넣어 기름에 던졌다.

 

기와라 우시오: 빛은 불을 만든다. 그리고 나 완전 불 붙었어! 파이어 인 더 홀!

 

불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모리와 하기와라는 밧줄을 타고 밑으로 미끄러졌다. 밧줄을 탄다기보다는 붙잡고 떨어지는 것에 가까웠기에. 둘 모두의 다리에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조금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뛰기 시작한 바로 직후. 23T가 창문을 박차고 떨어졌다. 무릎을 땅에 짚으며 떨어졌는데도 아무런 부담이 없어 보였다.

 

기와라 우시오: 와! 또 슈퍼히어로 랜딩!

 

23T5U130: 총기를 반납해 줘야겠어.

 

리 레이코: 무시하고 뛰어라. 코미디언!

기와라 우시오: 나도 알아! 미친 듯이 달려!

 

모리와 하기와라는 23T를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23T는 그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아 앞길을 가로막았다.

 

23T5U130: 다시 말할게. 총기를 반납해 줘야겠어.

 

기와라 우시오: 그래. 그래! 알았다!

 

그렇게 대답하고 몸을 틀던 하기와라가 갑자기 바닥에 쿠당탕 무너졌다. 23T가 그에게 살짝 몸을 기댔기 때문이다. 가속도는 아주 약간이었지만 23T의 힘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하기와라는 신음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모리와 그는 자신들이 난관에 봉착했음을 확실하게 느꼈다.

 

리 레이코: 어디까지 따라올 속셈이지?

 

23T5U130: 어디까지나.

 

리 레이코: 하지만 넌 단독적으로 우리를 제압할 수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적인 제압이 아니다. 잡아두는 일뿐이지.

 

23T5U130: 잡아둘 수 있어.

 

23T는 모리와 하기와라의 팔을 확 잡았다. 상처를 입히진 않을 테지만. 팔을 자르지 않고서야 도망칠 수 없는 악력이었다. 이대로 23T가 시간을 끌다가 다른 이들이 도착하면. 23T는 주저 없이 그들의 움직임을 막을 터였다.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 모리는 구속되지 않은 손으로 주저 없이 총을 뽑았다.

 

리 레이코: 놓지 않으면 자결하겠다.

 

모리는 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냥했다.

 

23T5U130: 무슨…?

 

리 레이코: 너는 탑의 인원들을 해칠 수 없다. 혹시 간접적으로도 그렇나? 만약 네가 날 계속 구속한 것이 내가 죽은 이유가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23T5U130: 그러지 마.

 

리 레이코: 네가 놓는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놓지 않는다면 말이 다르지만.

 

23T는 신음했다. 23T의 기계 손가락이 전자음을 내며 벌어졌다. 모리와 하기와라는 23T에게서 풀려났다.

 

23T5U130: 너흴 끝까지 따라갈 거야.

 

기와라 우시오: 뭐야. 탑 안 지켜?

 

23T5U130: 당장 너희가 죽어서 무기를 빼앗긴다면 탑의 모두가 위험해져. 우선 너희가 죽지 않도록 막고 또한 너희가 카이다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을 거야.

 

리 레이코: 충분히 공정하군. 계속 우리를 따라라. 우리는 계속 달리겠다.

 

모리와 하기와라는 그대로 탑에서 멀어졌다. 길이 사라지고 장미 꽃밭에 다다랐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탑에서의 추적을 피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기와라 우시오: 틈 봐서 어떻게든 죽일 수 있겠지 뭐! 애초에 총 없앤 것 만으로 1인분은 했다. 그치?

 

23T5U130: 전혀. 모노로그는 살육이 벌어지길 원하고 있어. 총이라는 도구가 사라졌다면 분명 모노로그는 다른 곳에서 균형을 맞춰.  결국 살인이 일어나게 만들 거야.

 

23T5U130: 너희 둘 입장에선 옳은 판단일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겐 전혀 그렇지 않아

 

리 레이코: 곧 그 결과를 보게 되겠지.

 

모리와 하기와라는 야간 투시경을 착용하고 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기와라 우시오: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 카이다 쪽에서 우리한테 올까? 솔직히 우린 카이다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잖아.

 

리 레이코: 사전에 말했다시피. 첩자는 무조건 우리에게 온다. 보급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지. 인공지능이 곁에 있더라도 총기가 주는 이점은 너무나도 크다.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와 사기꾼의 증언대로. 첩자가 총알을 튕겨내는 기예를 부릴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첩자를 제대로 공격할 수 없으니 할 만한 도박이다.

 

리 레이코: 이런 개활지에선 총기가 훨씬 유리하고 정보전 역시 우리가 앞서 있으니. 우리는 오는 손님을 맞아주기만 하면 된다.

 

기와라 우시오: 사냥꾼인데 동시에 미끼라 이거야? 상황 한 번 존나 웃기네.

 

리 레이코: 주변을 경계해라. 오늘은 누군가가 죽는 날이다. 그것은 너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첩자 한 명일 수도. 우리 두 명일 수도 있다.

 

기와라 우시오: 만약 여기서 우리가 죽으면. 우리 죽음을 슬퍼해줄  만한 사람이 있을까?

 

리 레이코: 잡담을 할 때인가?

 

기와라 우시오: 이바라가 안 슬펐으면 좋겠다. 걘 좋은 친구야. 괜히 나한테 얽혀서 이렇게 된 거지… 모리 넌 친구 없어? 아. 맞아. 없지. 미안.

 

리 레이코: 혼자 납득하고 혼자 사과하지 마라.

 

기와라 우시오: 사실이잖아. 내가 가짜 뉴스라도 퍼트렸냐? 네 인간관계가 없는 건 내 탓이 아니야.

 

모리는 나나시와 하기와라의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굳이 고뇌할 거리도 못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관계가 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만들어서 득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럴 자격이 있는 이조차 매우 드물었으니. 그녀는 굳이 그런 번거로운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23T는 말이 없었고. 모리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하기와라는 말할 만한 게 없었다.

 

하염없이 걷던 도중 하기와라는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기와라 우시오: 모리. 끝말잇기라도 할래?

 

리 레이코: 거절한다.

 

기와라 우시오: 공리의 증진을 위해 지금부터 너와 나는 끝말잇기를 시작해야 한다.

 

리 레이코: 이런 제기랄.

 

 

 

 

 

 

 

 

3인칭 시점 무쟈게 편하네요

 

이 소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애들 대사만 나오고 그 애들 대사로 상황을 유추하는 그런 서술이 있었음

 

관찰자 역할을 미리 정해 두고 관찰자가 그 자리에 없으면 세세한 서술 없이 대사만 나오는 느낌? 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3인칭으로 갔더니 아주 편하네요

 

어제는 후루미나미의 생일이었습니다(9월 16일)

 

이제 정말 1챕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달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