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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22+5

by 도타싫어! 2020. 12. 27.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업보처럼 다가온다."

 

 

 

 

 

 

무저갱에 빠진다면 이와 비슷한 감각일 것이다.

 

나는 밑으로 떨어졌다. 별개의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게 이런 거였나. 내가 발을 어디에 디디게 되는지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허공은 깜깜했다. 심연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설마 학급취조 중 내가 죽을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만약 죽는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라면 진상에 도달할 수 있을 테지. 후루미나미라면 십중팔구 이미 도달했을 테고, 카텟 기관 소속인 나나시와 23T도 아직 살아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의아한 점은 분명 야가미 또한 나와 같이 떨어졌을 텐데. 어떤 비명이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떨어질 때의 부상을 염려하던 나는 회색의 무언가를 보았다.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지는 그 물체는, 회색 상자였다.

 

회색 상자는 가까워지고 있다기보다 내 발 밑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회색 상자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장이 뚫려 있는 회색 상자 속으로.

 

멀리 있기에 작아 보이던 상자는 내가 그 안으로 떨어지며 무서운 속도로 커졌다. 그 끝에 상자는 사람을 족히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상자는 방이 되었다.

 

추락을 시작한지 13초 정도가 지났을 때  나와 야가미는 사뿐히 발을 디뎠다. 취조실이었다.

 

책상. 의자 두 개. 흐릿한 전등. 회색 벽과 천장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문조차 없었다.

 

충격을 흡수할만한 물체가 바닥에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와 야가미는 무사히 취조실에 내려앉았다. 마치 제자리 뛰기를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우리가 뚫고 온 듯한 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견고하게 채워져 있었다.

 

가미 토가: 이건 무슨 마법이죠?

 

역시 야가미도 나와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모노로그: 마술의 트릭을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가미 토가: 트릭이고 자시고. 이게 눈속임 같은 것으로 가능할까요? 정말이지 이 탑은 종잡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돌무더기. 거리 왜곡. 탈출할 수 없는 꽃밭… 분명 이 탑은 이치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히무로 씨.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우리는 이 안에서 얼마나 있어야 하지?

 

모노로그: 10분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가미 토가: 10분이라

 

무로 시라베: 어떻게 생각해?

 

가미 토가: 어떻게 생각하냐니요.

 

모노로그: 그럼 이야기 나누도록.

 

모노로그가 사라졌다. 나와 야가미만이 한 방에 남았다.

 

무로 시라베: 말 그대로야. 10분이라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단안경을 고쳐 씀.

 

가미 토가: 10분이라는 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데려오신 사람부터가 틀렸는데 몇십 분이 주어진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절 데려오신 건 실수입니다. 캐롤 씨를 데려오셨어야 해요.

 

무로 시라베: 캐롤.

 

가미 토가: 그래요. 캐롤 브라이트 씨 말입니다. 단 하나뿐인 심문 기회를 고작 저에게 쓰시다뇨. 이제 검정을 몰아세우기가 정말이지 어려워졌군요.

 

가미 토가: 하. 흘려들으세요.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탓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당신이 살인자도 아니니 탓해서는 안 되겠죠.

 

무로 시라베: 야가미. 지금부터 말을 할 테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내가 의자에 앉자 야가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반대편에 앉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대치하게 되었다.

 

가미 토가: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팔꿈치를 책상에 얹음. 눈썹을 듬.

 

무로 시라베: 여러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모아 봤어. 왜 미도리카와는 야가미, 하기와라, 나나시, 마유즈미를 자신의 숙소로 불렀을까.

 

가미 토가: 그건 저도 궁금합니다. 왜 미도리카와 씨는 저를 그녀의 숙소로 부른 걸까요. 혹시 당신은 아십니까?

 

무로 시라베: 나나시는 미도리카와와 대화를 나눠 봤댔어. 미도리카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눈치였다더라.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의 경우에는 나, 후루미나미와 함께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사과를 했지. 대단한 업적은 아닐지 몰라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둘 보단 나아.

 

두 손을 깍지 낌. 경청.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는 미도리카와와 어떤 접점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카이다에게서 목숨을 위협받았음을 생각하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상을 해 봤을지도 모르지.

 

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와 접점이 있는 인원들이 그녀에게 불려 갔다. 이런 말씀인가요?

 

턱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조금 아래로 숙임. 은근한 시선 회피.

 

무로 시라베: 그래. 목적은 자신의 친구를 부르는 것이었지만, 눈속임을 위해 최소한의 접점이 있었던 이들을 함께 부른 거야. 누가 자신의 친구인지 들키지 않도록. 그런데 묘하게도 미도리카와와 눈에 띄는 접점이 없었는데도 그녀에게 불려 간 인물이 있어.

 

무로 시라베: 야가미. 너야.

 

가미 토가: 제가 그녀의 친구란 말씀이신가요?

 

눈썹을 위로 듬. 깍지를 품.

 

무로 시라베: 적어도 너와 그녀가 접점이 있었다는 말은 못 들었어. 우리가 그녀와 통화했을 때 네가 협상을 시도한 건 기억이 나지만 그뿐이지. 무엇보다 너를 미도리카와의 친구로 상정하면 의문이 몇 개 풀리거든.

 

무로 시라베: 왜 총 모형이 네 전용실에 있었을까?

 

가미 토가: 일전에 총기 관련으로 협상을 진행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전용실에 총이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 협상은 실패했지만요.

가미 토가: 상관은 없습니다. 오히려 가져가 주셨으면 하네요. 전 총이 싫습니다.

 

무로 시라베: 그 총기 협상은 뭘까?

 

가미 토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일전에 총기 거래 관련 분야에 깊게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핵심 인력들을 알고 있어요. 몇은 만나본 적도 있고 협상도 진행해 봤습니다.

 

무로 시라베: 너는 바다뱀이 누구인지 들어봤다고 말했지. 코미디언. 서예가. 카텟 기관 소속의 인물 중에서 밀수업자의 친구를 찾기보다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걸로도 충분할 것 같아.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

 

가미 토가: 당신답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녀의 인간관계를 수사에 포함하시려는 건가요?

 

무로 시라베: 포함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지. 설령 이 살인 게임 안에서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탑에서 나갈 권한이 살해 동기의 상당수를 차지하겠지만. 미도리카와와 카이다의 원한을 무시해서도 안 돼.

 

가미 토가: 모리 씨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살의를 가질 이유는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다. 단지 그 사람을 죽이겠다는 심리적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면 죽일 이유를 몇 개나 만들 수 있다.'

 

가미 토가: 현실에서의 살인이라면 대부분 피해자의 주변 인물이 가해자죠. 살인을 할 만한 이유가 필요하니까요.

 

가미 토가: 하지만 탑에서는 다릅니다. 그 이유를 나가야 한다는 절박감이 대신합니다. 수사 방법을 다르게 적용하시지 않으면 오답을 고르시게 될 겁니다. 히무로 씨.

 

무로 시라베: 현실?

 

가미 토가: 예. 현실 말입니다.

 

무로 시라베: 왜 현실과 탑을 구분하지? 이 곳도 우리 입장에서는 현실일 텐데.

 

눈을 약간 크게 뜸.

 

가미 토가: 바깥 세계라는 표현을 써야 했을까요. 이 탑이 워낙 비현실적이다 보니 표현이 잘못 나온 것 같습니다. 적당히 이해해 주세요.

 

무로 시라베: 그래… 일단 알겠어.

 

가미 토가: 히무로 씨.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잘 들으세요. 여러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고 하셨지만, 사실 대부분의 정보는 캐롤 씨에게서 얻으셨죠?

 

무로 시라베: 너는 그렇게 생각해?

 

가미 토가: 말장난 마세요. 취조하시는 입장에서 기싸움이 중요하단 것은 알지만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터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았지 않습니까.

 

무로 시라베: 넌 캐롤을 계속 검정으로 지목하고 있어. 오직 터치의 악용론만을 내세우면서.

 

가미 토가: 하지만 캐롤 씨라면 범행이 가능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다들 캐롤 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가미 토가: 손이 닿는 순간 사람을 마비시킬 수도, 기절시킬 수도, 모든 비밀을 캐낼 수도 있습니다. 인상도 나쁘지 않으니 의심도 사지 않죠. 그녀가 지금까지 먹잇감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무로 시라베: 터치는 만능이 아니야. 그것 하나로 모든 일이 가능하지는 않아.

 

가미 토가: 무엇을 근거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캐롤 씨의 평소 행실입니까? 미도리카와 씨를 기절시킨 뒤 휘청이던 그녀의 한계입니까? 그것들이 꾸며낸 것이라면, 저희의 신뢰 밑에서 줄곧 암약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가미 토가: 저흰 전부 죽게 됩니다.

 

무로 시라베: 비약이 너무 심해. 터치로 마유즈미와 토키와에게 거짓 기억을 심었다고?

 

가미 토가: 저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겁니다. 물론 그들에게 벌어진 일들이 캐롤 씨와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죠. 문제는, 그들이 캐롤 씨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숭배하고 있기에 거짓 증언을 하고 있을지라도 저흰 알 방도가 없다는 겁니다.

 

무로 시라베: 그렇다고 한들 캐롤은 무기를 조달할 방법이 없어.

 

가미 토가: 어떻게든 있었을 겁니다.

 

무로 시라베: 나나시의 전용실이라던가?

 

가미 토가: 그래요. 거깁니다. 그는 쇠파이프를 용접해 총의 모형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죠. 철판을 가공해서 칼을 만들지 않았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습니까?

 

무로 시라베: 하필 나나시도 터치를 받은 사람이고 말이지.

 

고개를 끄덕임.

 

가미 토가: 맞습니다. 당장 캐롤 씨의 터치로 세 분이 캐롤 씨의 노예가 되었다면, 저희들이 그것을 알 방도는 없습니다.

 

가미 토가: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캐롤 씨를 몰아붙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참 이유도 많더군요.

 

가미 토가: 나나시 씨를 너무 얕봤어요. 그는 캐롤 씨가 그를 지배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가 보인 반응은 분명 깨달음이었어요. 진실을 안 자의 눈빛이었죠. 그런데도 그는 캐롤 씨를 감쌌습니다.

 

가미 토가: 덕분에 다른 분들이 흔들리신 겁니다. 나나시 씨가 캐롤 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행동은 결국 캐롤 씨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지배당했음을 눈치챘음에도, 마음 속 깊은 곳 까지 캐롤 씨에게 빼앗겼기에 그는 그녀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미 토가: 히무로 씨. 저희가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를 얕봐서는 안 됩니다. 세 분의 행동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이 개입할 수 없는, 학급취조가 그토록 중요했던 것입니다.

 

무로 시라베: 그리고 이제 내가 널 취조했으니. 내가 뒤늦게 캐롤을 압박하려 해도 내가 네게 설득을 받은 것처럼 보일 터다. 그게 너의 주장이지?

 

가미 토가: 맞습니다.

 

눈에 띄는 움직임 없음.

 

무로 시라베: 그래서. 네가 미도리카와의 친구가 아니라는 근거는 어째서 꺼내지 않는 거야?

 

가미 토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납득하시기 어려울 텐데요. 친구가 아니라는 증거를 여기서 어떻게 보여드립니까? 하지 않은 일의 근거 따윈 없습니다.

 

무로 시라베: 네가 하지 않았다기엔 내게 근거가 많아.

 

가미 토가: 캐롤 씨에게서 받은 증언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제가 거듭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캐롤 씨는

 

무로 시라베: 진범이다. 캐롤이 보인 모든 행동은 거짓이다. 캐롤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 캐롤. 캐롤.

 

무로 시라베: 반론을 막고, 여론을 조성하고, 하지 않은 일의 근거를 요구해가며 거듭해 말했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가미 토가: 가장 유력한 검정 후보를 몰아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문가인 당신이 하지 않았기에 제가 대신했죠. 서툴렀던 것은 죄송합니다만

 

무로 시라베: 네가 대신할 필요는 없었어. 나도 가만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야.

 

가미 토가: 네? 당신이 언제 그렇게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무로 시라베: 지금 하고 있잖아.

 

이를 꽉 다뭄.

 

가미 토가: 진심으로 제가 캐롤 씨보다 수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로 시라베: 네가 캐롤의 입을 막으려고 애썼기에 그녀의 말보다는 너의 말을 더 많이 듣게 됐거든. 들은 게 많으니 생각할 거리도 많지.

 

무로 시라베: 반론도 못 하게 막는다. 왜냐하면 다른 세 명이 반발해서 그녀를 몰아붙일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언뜻 타당하게 들리지만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야.

 

가미 토가: 제가 드린 말씀을 떠올리세요. 네 분이 결탁했는데 증거가 있는 것이

 

무로 시라베: 그래. 네가 한 말을 떠올려 보자. '바다뱀이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무로 시라베: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알아챘을 거야. 그러니 적어도 네 입으로 말해 줘. 네가 미도리카와의 친구야?

 

침묵 끝에 나온 대답.

 

가미 토가: …제가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혐의자의 입장에 놓여 있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합니다. 제가 침묵한다고 한들 당신은 제게 발언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무로 시라베: 당연하지. 오히려 네가 나에게서 취조를 진행할 수도 있어. 그러고 싶어?

 

대답 없음. 미끼를 쉽게 물진 않는가.

 

무로 시라베:그럼 적적하더라도 나 혼자 떠들 테니. 이해해 주길 바라.

 

무로 시라베: 이 사건은 미도리카와가 누구를 불렀는지. 그리고 누구를 믿을 수 있었는지에 따라 양상이 갈리지. 미도리카와의 친구인 너는 자신에게 쏟아질 의심을 차단하기 위해 수를 썼어.

 

무로 시라베: 캐롤의 증언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녀는 미도리카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아는 듯 보였으니 마음이 급했겠지. 재판이 시작되고 모든 정보를 읊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으니까.

 

무로 시라베: 일련의 범행이 미도리카와의 친구. 친분. 그리고 원한과 연관되어 있는 이상 미도리카와의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나올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 미리 낙인을 새겨 그녀의 모든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무로 시라베: 설령 그녀가 네 정체를 바로 고백하더라도 그것이 상대편을 향한 날조와 거짓말로 보이도록. 단순하지만 효과적이야.

 

무로 시라베: 캐롤이라는 사람 자체에 불가사의한 점이 있다는 것과 어울려. 모든 이들이 재판의 흐름에 휩쓸렸으니까 말이야. 충분히 의심할만한 내용이긴 했어. 나도 눈여겨봤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터치와 관련이 없어.

 

가미 토가: 제가 검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남.

 

가미 토가: 그렇다면 저를 취조실로 부르지 않으시는 게 옳은 판단 아니었을까요. 히무로 씨. 제가 어떻게 나올지 당신은 모르시잖습니까.

 

무로 시라베: 야가미. 자리에 앉아.

 

가미 토가: 만약 제가 살인자였다면. 그리고 궁지에 몰렸다고 느껴 해선 안 되는 일을 감행한다면.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내 쪽으로 향함. 허리를 숙여 내려다봄.

 

눈이 마주침.

 

야가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그의 시선은 위협과도 같았다. 그의 딴에도 위협이랍시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리라.

 

충분한 위협이긴 했다. 192cm의 신장을 앉은 상태에서 올려다보니 바오밥나무가 연상될 정도였다. 검은 정장. 넓은 풍채. 무시할 수 없는 강인한 신체.

 

조사관은 곧잘 신체적 가해의 위협에 놓이곤 한다.

 

가미 토가: 감당하실 수 없으시다면, 선량한 사람을 섣불리 범인으로 모셔선 안 될 텐데요. 절 살인자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로 시라베: 여기서 나까지 죽이겠다면 목뼈를 부러뜨려. 네 아귀힘이라면 순식간에 끝낼 수 있겠지.

 

가미 토가: 당신 까지라뇨. 저를 살인자 취급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무로 시라베: 그럼 네가 어쩔 테야? 날 괴롭히지 말라고 몇 대 때리기라도 하게? 그래 봤자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으리란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무로 시라베: 그러니 내게 해선 안 될 짓을 하겠다면. 죽여 봐. 두 명이 취조실로 들어가 한 명이 살아 나온다면 모두가 투표해야 할 대상은 명확히 네가 되겠지만, 설마 한 명을 죽였는데 두 명을 못 죽일까.

 

가미 토가: 절 도발하시는 겁니까?

 

무로 시라베: 도발보다는 충고하는 거야. 네가 살인자던가 최소 들켜선 안 되는 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서 있지만 말고 뭐라도 해. 여기에 영원히 있을 순 없으니까.

 

무로 시라베: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야가미. 병신 같은 짓 말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지 않은 채 한 번 더 말했다.

 

무로 시라베: 어서.

 

야가미는 몇 초간 더 나를 바라본 뒤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무로 시라베: 할 말 있어?

 

가미 토가: …당신 정말 무신경하시군요. 조금 겁만 주려고 한 건데 그렇게 나오시깁니까. 당신에게 무서운 게 있기는 한가요? 당신이라면 전기톱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군요.

 

무로 시라베: 모든 사람이 전기톱을 두려워해.

 

가미 토가: 저도 알고 하는 말입니다.

 

야가미는 한 번 숨을 크게 쉬었다.

 

무로 시라베: 이젠 어딜 보아도 네가 선량한 제삼자로 보이진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

 

대답 없음.

 

무로 시라베: 하지 않은 일의 근거를 요구하기에 대답이 없는 거라면 이것만 말해 줄게. 캐롤은 내게 한 마디도 안 했어.

 

가미 토가: 뭐라고요?

 

무로 시라베: 내가 재판에 참여하기 전 얻은 정보들은 캐롤에게서 얻은 게 아니야.

 

가미 토가: 거짓말 마세요. 캐롤 씨의 협력 없이 어떻게 그 정도의 정보를 모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자기 자신의 추리만 믿는다고요? 당신 같은 사람이요?

 

무로 시라베: 네가 내 무엇을 아는지는 몰라도. 넌 결국 내 말의 진위를 알 수 없어. 내가 누구와 손을 잡은 것인지조차 너는 알 수 없지.

 

무로 시라베: 하지만 나는 많은 걸 알았어. 네가 맹렬하게 캐롤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 그녀가 증언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것의 진위성을 흔들리게 한 것. 그것은 캐롤이 내게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무로 시라베: 넌 줄곧 네가 미도리카와의 친구라는 것을 숨겨 왔고. 그것을 알고 있는 캐롤을 최대한 배제하려 들었어. 이 취조를 통해 확신한 건 그것뿐이지만. 충분해.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모노로그: 1분 남았다.

 

모노로그의 눈이 살짝 보일 만큼 그것이 바닥에서 솟아오른 뒤. 다시 사라졌다.

 

무로 시라베: 충고하건대 재판장에서 나와 캐롤의 유착관계를 주장하진 마. 그랬다간 더 의심스럽게 보일 걸. 어쩌면 멍청하게도 보이겠지.

 

무로 시라베: 그보다 재판장으로는 어떻게 가는 걸까. 왔던 것처럼 다시 솟아오르는 건가?

 

가미 토가: 히무로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됐나?

 

무로 시라베: 해 봐.

 

가미 토가: 이렇게 꿰뚫어 보시니 할 말이 없군요.

 

됐다.

 

가미 토가: 예.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화두에 오르던 '미도리카와의 친구' 입니다.

 

무로 시라베: 좀 늦게 말한 감이 있는걸.

 

가미 토가: 그렇지요

 

 

 

 

 

 

 

 

 

모노로그: 이 문으로 나가면 된다.

 

주어진 시간이 만료되었을 때 모노로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의 색이 조금 변하더니 검은색의 문이 나타났다.

 

이젠 이상현상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아. 대놓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긴 범상치 않은 장소라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깜깜한 공간 속으로 우리는 발을 디뎠다. 서로의 모습조차 볼 수 없는 칠흑이었다. 나와 야가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멀지 않은 곳 너머의 빛뿐이었다. 우리는 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무로 시라베: 꽤 오래 떨어졌는데, 재판장으로 다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미 토가: 모노로그 씨가 어떻게든 하겠죠. 저희를 지하에서 썩게 두시진 않으실 겁니다.

 

무로 시라베: 그렇겠지. 게임의 참가자를 쓰지 않고 버리는 건 흑막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까.

 

가미 토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무로 시라베: 살인 게임 자체가 모노로그의 목적인 이상 모노로그는 살인이 일어나길 원할 거야. 그것을 위해 동기를 제공하고 우리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지.

 

무로 시라베: 그러기 위해서 모노로그는 어떤 수단이라도 쓸 거야. 우리가 모노로그의 의도대로가 아닌 사고로 살인 게임과 멀어진다면, 모노로그는 자신의 힘을 다해 우리를 구하려 들 거야. 서로 죽이게 만들기 위해서.

 

가미 토가: 살인 게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인가요.

 

무로 시라베: 그래.

 

가미 토가: 히무로 씨. 당신은 큰 그림을 볼 줄 아시는 것 같군요. 믿음이 갑니다.

 

느닷없는 야가미의 말에 의의를 두진 않았다.

 

그대로 어둠 속을 걸어간 끝에 목소리가 빛 저편에서 들려왔다.

 

…다. …해? …야.

 

들어본 적이 있는 음성이었다.

 

가미 토가: 히무로 씨. 혹시

 

무로 시라베: 그런 것 같아.

 

우리가 조명에 가까워지자. 목소리의 주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급재판장이 그 곳에 있었다.

 

학급재판장에는 각자에게 배정된 자리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학급재판장의 벽에는 여러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터널 같은 것들이 뚫려 있었다. 알파걸의 살인게임에서 처형을 위해 사용되는 그것과 생긴 것이 비슷했다.

 

어쩌면 용도 또한 비슷하겠지만, 나와 야가미만큼은 학급재판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학급재판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이 길을 사용했다.

 

학급재판장에서 밑으로 떨어진 뒤 그대로 걸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또 그곳이라. 탑의 기현상도 이젠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어. 히무로야! 저기!

 

기와라 우시오: 뭐야. 너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어? 왜 형이 거기서 나와?

 

무로 시라베: 나도 몰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야가미가 너희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

 

가미 토가: …지금 말하라고요?

 

무로 시라베: 늦게 말할 이유가 있다면야 들어 줄게.

 

가미 토가: 됐습니다. 말하도록 하죠.

 

롤 브라이트: 두 분. 취조실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셨나요?

나리 케이토: 나눌 얘기가 뭐 있어. 이상한 사람을 데려갔는데… 쟤도 캐롤 광신도여서 야가미를 데려간 거 아니야?!

 

무로 시라베: 너라면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어. 카나리

 

카나리가 겁에 질린듯한 표정을 지은 뒤. 최대한 침착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나리 케이토: 역시 날 경계하고 있었단 얘기냐?

 

가미 토가: 전혀 아닙니다.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니 잘 들어두세요.

 

 

 

 

 

 

 

 

 

너무 긴 분량을 고집하는 것 같아서 더 질질 끌기보다 써 놓은 곳만 올리기로 했음 계속 갑시다

 

능지캐들 두 명이서 얘기하려니까 루즈해지네요 2챕터는 이것보단 재밌을 거임

 

1챕터가 끝나면 인기투표 함 하고 상위권한테 단편이나 써줄까 생각중인데 이거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가 않아서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한 표가 등장인물의 순위를 몇 위나 땡겨줄 수 있으니까 특정 인물 시점의 단편이 보고 싶으시다면 독자가 적은 게 오히려 좋지 않을까요?

 

농담이고 그냥 더 많은 사람이 읽어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