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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28

by 도타싫어! 2022. 1. 6.

 

23T5U130: Am I blue? Am I blue?

 

23T5U130: Ain't these tears in my eyes tellin' you.

 

23T5U130: Am I blue? You would be too.


23T5U130: If each plan with your man. Done fell through.

 

23T5U130: Was a time. I was his only one. But now I'm the sad and lonely one

 

23T5U130: Was I gay? Till today. Now he's gone and we're through. Am I blue?

 

바라 쿠리스: 에? 게이? 웬 게이? 내가 아는 그 게이?

 

이바라는 23T의 블루스를 듣다 말고 깜짝 놀라 물었다. 23T는 다음 구절을 이어 부르려다가 그만두고 이바라의 질문에 대답했다.

 

23T5U130: 게이는 원래 동성애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행복하다는 의미였어. 그러니까 마지막 구절은 "나는 오늘까지는 행복했을까요?"가 되는 거지.

 

바라 쿠리스: 아. 게이가 행복하다는 뜻이었구나…! 그럼 나는 게이야. 나는 게이다!

 

23T5U130: 그만 해. 누가 들었다간 네가 동성애자를 놀리는 줄 알겠어.

 

바라 쿠리스: 에에에. 농담도 못 해. 23T 완전 노잼이야. 그런데 그거랑은 별개로 노래는 끝내준다! 뭐랄까. 노래에서 혼이 느껴진달까! 어떻게 그렇게 잘 불러?

 

23T5U130: 모종의 사유 때문에 1년 넘게 지하에서 산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 레코드 판 10개 정도가 전부였지. 그걸 계속 돌려서 들었어.

 

23T5U130: 가사도 전부 외울 수밖에. 잊어버릴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도무지 잊히지가 않더라. 인간의 기억이 암기라면 기계의 기억은 접속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늘 내 곁에 생생하게 남아있지. 이미 과거인데도 말이야.

 

바라 쿠리스: 기계 안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했지…? 어쩌다 그렇게 됐어?

 

이바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23T5U130: 인간으로서의 내 정신이 프로그램화되어서 기계 안에 들어간 거야.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가능했어. 그래서 여기서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거지. 나이토와 모리는 아직 깨어날 기미가 없어 보이네

 

23T는 모니터 너머에 보이는 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바라 쿠리스: 이거는 진짜 답 안 해도 되는데… 23T. 그럼 사람인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인간 23T와 네가 공존해?

 

23T5U130: 그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어. 인간 23T는 죽었으니까.

 

이바라는 표정으로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물었을까?'라고 말했다.

 

바라 쿠리스: …물어봐서 미안해. 23T.

 

23T5U130: 괜찮아. 원본 없는 복제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기계 몸 안에 들어있다고 해도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답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23T5U130: 이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것 같아. 나나시가 기억을 잃기 전의 사람과 서서히 동떨어질 수 있다면 나 또한 누군가의 대체품이 아니라 오직 나라는 존재로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 친구와 함께.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나는 스스로가 당황하지 않았다는 것에 오히려 더 놀랐다. 캐롤 씨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것임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내 어깨로 뚝뚝 떨어지던 순간에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과 닿지 못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생각해보았지만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늘 그 자리를 비워야만 그 소중함을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시각. 촉각. 미각.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나는 크게 당황하겠지만 당장은 매일매일 그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지는 않듯이.

 

그러니 다른 사람의 결핍에 공감하는 일은 어려웠다. 캐롤 씨를 향한 공감은 더더욱 어려웠는데, 그녀의 결핍은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터치를 가지고 있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닿기 어렵다. 분명 이것이 결핍의 조건이 될 수 있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뿌리는 바로 터치에 있었다.

 

터치는 강력하고 또 파괴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손을 잡기만 하면 이론상 누구나 캐롤 씨의 명령을 받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런 파괴적인 방법으로 터치를 쓰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터치란 저주였다. 아무리 축복으로 바꾸려 해도 그것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손에 달린 가위로 정원을 관리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도 서슬 퍼런 날은 태양빛과 달에 반사된 태양빛 밑에서 눈빛을 번뜩이며 언제 여린 살코기와 피의 맛을 볼 수 있을지 고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신생아처럼 내버릴 수 있는가? 적어도 이 탑에서만큼은 버릴 수 없었다. 터치는 그녀를 상담사와 사람 중간의 존재로 놓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의 감정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것만큼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를 달래기보다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는 캐롤 씨에게 주는 위로에 가까웠다. 적어도 이럴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롤 브라이트: 흑… 흐으.

 

캐롤 씨의 눈물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쳤다. 내가 울음을 터뜨린 순간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눈물샘이 메마르기까진 앞으로 절반 남았을까. 하는 순간에 캐롤 씨는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롤 브라이트: …터치는 하지 말아요.

 

캐롤 씨가 그렇게 말하기 전부터 나와 그녀는 이미 서로의 피부가 접촉하지 않도록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터치로 나를 조종하는 일이 두려웠고, 나 또한 그런 마음의 짐이 부산물처럼 생기게 된다면 터치를 나누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점은 서로를 껴안되 손이나 얼굴이 서로의 목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캐롤 씨의 경우에는 목까지 감싸는 터틀넥 스웨터와 흰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신체의 접촉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으나, 내 드러난 어깨만큼은 문제가 있었다. 눈물이 내 어깨로 떨어질 정도로 그녀의 얼굴이 내게 가까워졌지만 결코 닿지는 않는 거리가 유지되었다.

 

그래. 터치만 안 이어지면 된 것 아닌가? 이게 칸나즈키와 수호령 씨가 일컫던 불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일 아닐까? 이것으로 충분하다

 

…눈 가리고 아웅 이었다. 결국 캐롤 씨의 결핍이 남과 진정으로 가까워지지 못하고 겉돌게 될 것이라는 공포에서 나왔다면 터치는 언젠가 시간문제가 될 터였다. 만약 터치 없이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확신을 언젠가 서로가 가지게 된다면. 그때가 온다면 어느 쪽도 터치를 거절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라지. 아직도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갈팡질팡 거리는, 내 이성의 탈을 쓴 나약함에게 그렇게 쏘아붙이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롤 브라이트: 껴안는 건 참 묘하고 재미있네요.

 

나시: 어떤 면에서요?

 

롤 브라이트: 다른 사람의 신체를 느끼는 것. 체향을 맡는 것. 체온을 나누는 것… 다 재미있지만 체온이 무엇보다 신기해요. 스웨터 너머에서도 따뜻하다는 게 느껴져요.

 

나시: 맞아요. 따뜻해요.

 

롤 브라이트: 정말 묘하다니까요. 온도는 분명 상대적인 개념일 텐데 우리 모두 서로가 따뜻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캐롤 씨가 키득이며 말했다. 재미있는 생각이었다. 하기야 서로의 옷이 맞닿아서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제외한다면, 우리 둘의 체온은 한쪽이 높고 한쪽이 낮을 터였다. 그러나 둘 다 상대적인 개념인 온도의 상승을 느끼는 것은. 가능할까? 설령 체온이 같더라도 서로가 따뜻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미지근하다고 느끼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아니. 온도는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다만 상대적인 개념이 적용되는 경계선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나에 있었다.

 

외로움만큼 차가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로움에 대해 알았다.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는데 의지할 이 없이 파도에 휩쓸리는 기분. 기억을 잃고 살인 게임에 휘말리는 듯한 기분을 알았다. 차갑고 외로운 돌바닥.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마음속 깊게 좌절했을 때 가슴께를 에는 듯했던 서늘함. 체념의 독소.

 

그렇기에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카텟 속의 안정감이자 평화였다. 또 내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묘한 책임감 또한 그 온기에 자신의 무게를 보탰을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모닥불을 쬐고 있을 때 나는 예전보다 따뜻할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몸을 덥히고 온기를 쬘 수 있어. 그렇지만 이 모닥불에서 벗어난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외로운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그 차가운 비바람 속으로.

 

그 생각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고 캐롤 씨를 끌어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캐롤 씨의 팔 또한 힘이 들어갔다. 캐롤 씨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나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 그저 감정 탓에 팔이 힘이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몰랐다.

 

셋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던 포옹에도 결국 끝이 있었다. 캐롤 씨가 내 어깨에 감은 팔을 풀고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이마를 살짝 닦았다.

 

롤 브라이트: …덥네요.

 

나시: …그러게요.

 

어색함은 느닷없이 찾아왔지만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마 이대로라면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캐롤 씨가 깨달았기 때문 같았다.

 

캐롤 씨는 내 손을 꽈악 붙잡은 채로 말했다.

 

롤 브라이트: 미리 말해두지만, 다른 사람이 이 관계를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제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비윤리적이라 말하라죠. 강령을 어겼다고 말해요. 너무 성급하고 감정적이라고 말해도 좋아요.

 

롤 브라이트: 하지만 그럴지라도.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이토록 오래 맞닿은 적은 없었어요. 욕하라면 욕하라죠.

 

나시: 욕해봤자에요. 어차피 빠르나 늦으나의 문제였으니까요.

 

카텟.

 

캐롤 씨는 주머니에서 카의 문양이 그려진 뱃지를 꺼내고 공중으로 팅 튕기고 그것을 손으로 다시 받았다.

 

롤 브라이트: 그 말이 맞아요. 카. 우리는 서로의 가지 않으면 안될 곳이었어요.

 

나시: …카텟은 오직 죽음과 배신으로만 부서진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캐롤 씨는 고개를 저었다.

 

나시: 제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전 캐롤 씨가 죽는 걸 원치 않아요.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전까지 하지 않았던 일들조차 할 수 있어요.

 

롤 브라이트: 저도 그래요. 다만 터치만 제외하고요.

 

나시: 네. 터치는 제외해야겠죠. 그것만큼은 저희들의 마지막 선으로 남겨 둬요. 신체와 신체가 접촉하는 강력한 터치만큼은… 절대 하지 않기로.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이라도. 나와 캐롤 씨는 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일으키려 한다면 이쪽 또한 그렇게 응수할 뿐이었다. 눈에는 눈.

 

다만 터치만 제외하고.

 

나와 캐롤 씨는 손을 잡은 채로 내 숙소 밖으로 나왔다. 터치는 나누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명확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이 한 방에 들어가 하나가 되어 나왔다.

 

 

 

 

 

 

나즈키 시노부: 아이고. 아이고… 팔 아파. 응. 히무로와 야가미는 아직 멀은 것 같다고? 그럴 만도 하지.

 

나즈키 시노부: 나는 그냥 열심히 하려 하고 있지. 무슨 변화가 생길까 해서. 아무튼 너도 몸조심해. 아. 몸조심하라는 표현은 너한테 조금 어긋나나?

 

나즈키 시노부: 아무튼 너도 말의 골자는 이해가 되잖아? 후회가 없게끔 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잖아. 잘해야 해

 

나리 케이토: 대체 아까부터 왜 혼잣말을 하는 거냐? 기분 나쁘게.

 

나즈키 시노부: 너는 왜 계속 내 옆에 있어? 네 방으로 안 가? 쉬는데 방해돼.

 

나리 케이토: 난 널 고용한 입장이고 넌 내 보디가드인데. 내가 내 방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지. 네가 날 지켜야 하잖아.

 

나즈키 시노부: 내 팔 상태가 걱정된다던가 그런 이유가 아니고?

 

나리 케이토: 네 팔은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내가 뭘 해줄 수가 없잖아. 애초에 날 조금이라도 배신했던 너에게 더 해줄 일은 없어.

 

나즈키 시노부: 후루미나미가 너한테 이상한 바람 불어넣은 것 같더라니. 애가 맛이 갔네. 너 지금 후루미나미 말을 믿었다간 어떻게 되는지

 

칸나즈키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리 케이토: 악. 뭐야! 놀랐잖아!

 

나즈키 시노부: 뭐지? 지금 이거 뭐야. 어우. 잠깐. 이거 느낌이 너무 안 좋은데? 너무 안 좋아. 잠깐. 우와. 큰일이야!

 

나즈키 시노부: 너도 느꼈니. 시노부?

 

나즈키 시노부: 이걸 어떻게 안 느껴요. 할머니 언니 신령님! 이거 좀 큰일 났다. 나 지금 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와앙! 지금 이거 큰일 났어.

 

나리 케이토: 야 너 또 어디 가? 잘 쉬어서 날 지켜야지. 지금 그 후들거리는 몸으로 뭘 하게!

 

나즈키 시노부: 나도 이번만큼은 금을 좋아하는 아이 편이다. 위험할 수도 있어.

 

나즈키 시노부: 그렇다고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나리 케이토: 어디 가냐고. 왜 대답을 안 해?

 

나즈키 시노부: 카나리. 겨울 산불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겨울에는 모든 게 다 말라비틀어지거든. 추워서 불이 안 날 것 같다면 천만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잔뜩 움츠러들고 마른나무에는 불이 놀라울 정도로 잘 붙어.

 

나즈키 시노부: 그 불은 모든 걸 다 집어삼키지.

 

나리 케이토: 어디 가냐니까!

 

나즈키 시노부: 몰라! 그냥 느낌이 오니까 일단 돌아다녀 봐야지!

 

 

 

 

 

 

나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남자로 위장했다, 카이다 쿠로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 야가미 토가와 친구 사이였다, 야가미 토가와 화해하고자 했으나 그에게 살해당했다, 목소리 변조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정황상 좋아하는 음료는 버블티, 바다뱀이라는 이명을 쓰는 밀수업자였다.

 

프로파일링은 평면적인 정보를 겹치고 보완하며 입체의 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 가족 관계, 범죄에 빠져들게 된 계기. 여러 사실들을 늘어놓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형체를 이루게 된다. 그 뒤부터 행동의 패턴을 예측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프로파일링이라고 한들 완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금 물었다. 나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상황이 급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야가미 토가에게도 물었을 것 같았다. 미도리카와 아쿠토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느냐고.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초고교론자들과 얽히는 것은 몰랐을 거라고.

 

이 아이도 못 버틴 것인가? 하아…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안타깝군. 안타깝게 됐어…

 

저도 이 아이와 보낸 추억이 많은데. 애석하네요…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안에서 재능을 추출해야지. 영혼이 꺼지기 전에 빠르게 시작하도록 해.

 

얼굴은 모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안다. 그들은 언제나 실험관 속의 아이들을 귀중하게 여겼지만, 실험체 중에서 귀중하게 여겼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초인이 될 자들이었다. 그런 우리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 초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들의 사고방식에 내포되어있음을 의미했다.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포기한다.

 

가미 토가: 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야가미 토가에게서 등을 돌렸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은 내가 있던 연구소와 닮지 않았지만 실험실을 수색한다면 항생제를 찾을 수 있을 성싶었다.

 

무로 시라베: 항생제의 수색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해변으로 데려가는 것은 포기한다.

 

가미 토가: 아니 대체 무슨…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초고교론자는 뭡니까?

 

무로 시라베: 설명할 시간이 없다. 발각당하면 우리 모두 죽거나 죽음보다 못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럼 해변에 있는 우리의 몸은 뇌사를 당하고 말겠지. 이 방에서 더 조사할 내용 또한 없다.

 

야가미 토가는 벽에 붙어있는 초고교론자의 표식을 한 번 더 돌아보더니 성큼성큼 내 뒤를 쫓았다.

 

가미 토가: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바다뱀을 시련 속에서 꺼내야 합니다.

무로 시라베: 미안하지만 약속을 파기해야겠다.

 

침대와 책이 있는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나는 권총을 두 손으로 잡았다. 실내에서의 발포는 큰 이목을 끌 수 있기에 주의해야 했으나, 총으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가미 토가: 좋아요. 좋습니다. 항생제가 우선순위란 말씀이지요?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다. 운명처럼 우리와 그녀가 마주친다고 해도 그녀를 데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

 

건물 안은 불쾌할 정도로 조용했다. 모종의 일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연구소가 버려졌나? 여러 가능성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가미 토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당신에겐 총이 있습니다. 제게는 육체가 있고요.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위협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가상현실 안이니 인명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무로 시라베: 어느 정도의 위협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너는 이 장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가미 토가: 당신은 알고 있고요. 그러니 제게 말하면 되는 겁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고 왜 이곳이 위험한 거냐고요.

 

야가미 토가에게 초고교론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항생제를 얻고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기에 재단의 목적이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가미 토가는 그것을 납득하지 않을 터였다. 만약 그가 초고교론자들의 재능 탈취 계획에 대해 듣는다면 더욱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구하기 위해 날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선택지란 그에게 초고교론자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며 항생제를 찾느냐, 아니면 반감을 살 지라도 총을 사용해 그를 겁박하느냐 두 개뿐이었다.

 

무로 시라베: 미안하지만 시간이 아깝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야가미 토가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뜬 뒤로는 별다른 불평 없이 나를 뒤따랐다.

 

경계를 위해서는 언제나 야가미 토가에게 총을 겨눌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다시금 권총을 두 손으로 잡고 발포를 준비했다. 어쩔 수 없이 등 뒤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야가미 토가가 초고교론자에 대해 추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간과했다.

 

가미 토가: 그 자들이 당신을 개조한 장본인입니까? 초고교급 재능을 다수 가진 8명을 만든 조직. 초고교급의 영향력을 신봉했기 때문에 초고교론자군요.

 

이전에도 그랬듯이, 입이 방정이었다.

 

무로 시라베: 그걸 알았다면 목소리를 낮춰.

 

가미 토가: 아까부터 너무 과민하신 것 아닙니까? 전 충분히 목소리를 낮추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정말이었다. 야가미 토가는 입에 손나팔을 가져다 댄 채 작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크다고 느끼는 것은 나 때문이었다. 나 자신의 감각이 과민해진 것이다.

 

그걸 의식하자 공기에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아주 잠시 나에게 머무른 뒤 사라졌다.

 

가미 토가: 당신이 경계하는 것 또한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흑막의 노림수를 생각해 보세요.

 

무로 시라베: 이들은 초고교급 재능을 빼앗을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네가 특히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야가미 토가는 다리를 계속 움직였지만, 입은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가미 토가: 재능을 빼앗다뇨?

 

무로 시라베: 말 그대로다. 이들은 신체의 영역을 넘어선 의식의 정수에 접촉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사람에게서부터 그 정수를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재능을 빼앗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능을 빼앗긴 자들은 대개 폐인이 되거나 사망한다.

 

그가 알아야 할 정보는 그게 다였다.

 

가미 토가: 재능을 빼앗을 수 있다고요? 그게 가능하리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군요. 그런 게 존재했다면 제가 분명 알았을 겁니다.

 

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네가 잊어버린 것이겠지.

 

야가미 토가는 항변하려는 듯이 입을 열다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가미 토가: 그러나 당신은 잊어버리지 않았군요? 재능을 빼앗는 기술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가미 토가: 우리에게서 줄곧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던 거고요. 이것 말고도 더 숨기고 있을 테죠.

 

무로 시라베: 모든 이들이 비밀을 가진 채 살지. 앞으로도 숨길 것이다.

 

가미 토가: 어디까지 아시는 겁니까? 설마 당신은 탑과 해변이 가상현실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질문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로 시라베: 말해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정황상 이 초고교론자들에게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초고교론자들에게 붙잡혀 재능을 빼앗기기 직전이겠지.

 

가미 토가: 당신은 다른 초인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총까지 지니고 계시니 분명 당신이 제압할 수 있을 터인데요.

 

무로 시라베: 상성상 상대하기 어려운 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무로 시라베: 기억의 부재. 부자연스럽다. 흑막에 의해 소거당한 기억이다. 이제야 깨닫다니. 기억 소거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야. 기억에 공백이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

 

가미 토가: 이해는 안 되지만, 그 자와만 마주치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무로 시라베: 지금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살인 게임에 끌려와서 덧없이 죽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

 

가미 토가: 그러시겠죠. 프로젝트였던가요? 그 중요하다는 일 말입니다. 범죄자를 분석하는 일. 카텟 기관의 일 말이죠.

 

가미 토가: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당신이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초고교급 재능을 주입받았다고 하셨죠.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가 모르는 걸 알고 있어요.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가 그렇게 말하던가?

 

가미 토가: 하기와라 씨가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태도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당신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무로 시라베: 그는 기이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그러나 날 믿어야 할 것이다. 나는 숨겨야 하는 정보를 숨겼을 뿐이다.

 

가미 토가: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바로 당신의 정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무로 시라베: 그래. 나도 지금 당장 네 정보가 필요하다. 미도리카와 아쿠토에 대한 정보 말이다.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무로 시라베: 너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어째서 그녀가 초인들의 허황된 세계를 만드는 일에 가담한 거냐?

 

야가미 토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가미 토가: 뭔가 착오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그녀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무로 시라베: 그녀가 고결하다는 말인가? 신빙성 없는 소리를 하는군. 바로 그녀에게 배신당한 네가.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야가미 토가는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의 본심이 흘러나온 것일지도 모르기에 기억해둘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다시금 몸을 원래의 방향으로 돌리고 앞에서 누군가가 접근하지 않는지 주목했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나와 야가미 토가가 몇 미터를 앞에 둔 모퉁이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발소리로 말미암아 모퉁이 너머에서 접근하는 자는 한 명이었기에, 나는 그가 모퉁이를 넘자마자 입을 막고 벽에 몰아세웠다.

 

무로 시라베: 큰 소리를 낸다면 발포하겠다.

 

나는 내게 붙잡힌 모퉁이의 남자에게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남자는 나보다 키가 조금 작았고 허름한 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20세 중반으로 보였고, 무장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총기를 소지하고 우리에게 쏘려 하지 않는 이상 나 또한 그에게 총을 쏠 생각이 없었다. 실내의 총소리는 크게 울리기 때문이다.

 

남자는 영문을 모른 채 목소리를 크게 내려 애쓰며 몸부림을 치더니 문득 눈을 크게 뜨고 저항을 멈추었다. 한순간이었다. 그는 내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다가 느닷없이 인형처럼 뻣뻣이 섰다.

 

무로 시라베: 이 건물 안에서 항생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말해라.

 

나는 총을 계속 그에게 겨눈 채로 그의 입술 위에서 내 손을 떼었다. 그러나 남자는 내 요구에 대답하기는커녕 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심문을 지켜보고 있는 야가미 토가에게만 시선을 주었다. 그 또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 의문의 기색을 표하자. 남자가 물었다.

 

"야가미 님? 어째서 단안경을 쓰고 계신 건가요?"

 

야가미 토가는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가미 토가: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저는 이쪽 눈의 시력이 반대편 눈보다 낮다는 것을요. 옛날 물건을 우연히 찾아서 착용했습니다.

 

좋은 대답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야가미 또한 초고교론자와 면식이 있다면 오히려 뻔뻔하게 연기를 하는 쪽의 승산이 높았다. 또한 남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만들 수 있기도 했다.

 

"아. 그랬군요. 그럼 이 분은? 설마 협박당하고 계신 건가요?"

 

가미 토가: 아닙니다. 이 분은 제 친구인데 지금 사정이 급해서 제가 몰래 데려왔습니다. 항생제만 얻으면 곧바로 돌아갈 테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질이 급하시긴 하지만 좋은 분이에요.

 

능숙한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위기는 넘겼다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안심하며 남자에게 겨눈 총을 내리고 안주머니에 다시 총을 넣었다. 적어도 세 번째 시련에서만큼은 그의 덕을 보게 된 것이었다.

 

정확히는 초고교론자와 협력하고 있는 세 번째 시련 속 야가미 토가의 덕이었다. 고맙다. 미래의 야가미 토가. 지금 내 곁에 있는 그가 가지고 있는 썩어빠진 생각을 너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도한 것들 사이를 문제없이 누빌 수 있군.

 

"다행이군요! 사실 친구분이 오시기 전에 시설에 웬 침입자가 나타났거든요. 얼굴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는데 저희와 잠시 교전하다가 제멋대로 사라져 버렸어요.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빨리 떠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실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실험실.

 

"몸이 재능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빛에 반발하고 있어요! 손가락 조직이 괴사 합니다! 의식을 잃고 있어요!"

 

"신진대사 활성화시켜! 널 여기서 잃을 순 없다. 제발. 형사와 사격수까지는 버텼잖니. 제발 더 힘내야 한다! 아. 차라리 손가락을 지금 절제해! 나중에 봉합하면 될 테니!"

 

아직도 그 짓을. 그렇게 덧없이 죽어간 수많은 생명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도 행하고 있단 말인가?

 

야가미 토가가 살인을 저지른 이래 나는 그를 우호적으로 평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세 번째 시련에서 그가 초고교론자와 결탁하고 있다는 정황 증거를 얻자 그에게 더더욱 나쁜 감정이 생겼다.

 

나는 야가미 토가와 함께 남자의 뒤를 따랐다. 재단의 구성원의 도움을 받으니 어쩌다 다른 이들과 마주치더라도 우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남자가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야가미 토가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안녕하세요. 야가미 씨."

 

"야가미 씨! 늘 감사합니다! 몸조심하세요. 침입자가 또 어디에 숨어있을지 몰라요!"

 

야가미 토가와 맞닥뜨린 이들이 종종 이런 식으로 반갑게 그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커지는 적개심을 억누르며 나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는 듣지 못하되 야가미 토가가 들을 수 있게끔 목소리를 세밀하게 조정했다.

 

무로 시라베: 카이다 쿠로하가 다녀간 것 같군. 그러나 실패했다. 그녀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로 이곳의 환경이 적대적이었던 것이다. 빠르게 도망쳐야 한다.

 

무로 시라베: 네가 이들에게 가담하고 있었기에 일이 순조롭게 되었다. 그러나 물어보긴 해야겠군.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야가미 토가?

 

가미 토가: 저도 모르죠. 기억이 지워졌으니 제 입장에선 이곳이 미래란 말입니다. 그런데 초고교론자니. 바다뱀이 이런 조직에 가담하고 있니

 

야가미 토가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내게는 여러모로 탐탁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자가 항생제를 향해 우리를 안내하는 동안 주위를 관찰했다. 초고교론자들의 연구소라고 한들 이렇다 한 관리나 연구시설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 민간인처럼 보이는 자들이 연구소에 주둔하고 있었다.

 

나와 야가미 토가를 안내한 남자부터가 사무직이나 연구직보다는 민간인에 가까운 인상착의를 하고 있었다. 낡은 신발과 티셔츠. 잘 감지 않는 듯 하지만 그렇게 더러워 보이지는 않는 머리.

 

이곳이 연구소가 맞긴 한가? 아직 실험을 진행할 만한 설비가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무로 시라베: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가 협상을 꽤나 잘 한 모양이군. 재능을 뽑히고 죽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앞잡이로 일하고 있다니 대단해.

 

가미 토가: 그러지 마세요. 제가 이런 일에 진심으로 가담했을 것 같습니까? 아무리 살인자라도 저를 죽일 수도 있는 자들과는 겸상하지 않습니다.

 

가미 토가: 저는 이런 곳에서 감금당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요. 이런 장소에 어떻게 계속 머물 수 있겠습니까? 외출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도망쳤을 것입니다. 할 일도 있고요.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찾는 일 말이겠지.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네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네가 이미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가미 토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로 시라베: 화해라도 한 모양이군. 아무튼 그녀가 널 알고 있는 한 당분간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너는 이들로부터 안전할지 몰라도 나는 이들이 찾고 있는 귀중한 전력이니까.

 

"이 쪽이에요. 야가미 님!"

 

남자는 우리를 커다란 방으로 인도했다. 그 안의 풍경만큼은 내게 조금 더 익숙했다. 의학적 설비. 진통제. 항생제. 마취제와 진정제가 있는 방. 의료실은 실험체들이 언젠가 한 번은 가게 되는 곳이지만, 어떤 실험체들에게는 들어간 뒤에 나올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챙겨갈 만한 의학 용품이 더 있는지 주변을 살피던 나는 실험실 안의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쪽에서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나요?"

"웬 침입자가 시설에 들어왔거든요. 재단 사람이 죽고 다쳐서 저도 도우려고 가고 있어요. 구급상자 사용법은 잘 알거든요."

 

"네. 침입자 조심하세요! 자. 친구분. 여기 항생제 있네요. 마음껏 가져가셔도 좋아요. 사정이 급하신 것 같으니까."

나는 남자가 가리킨 방향에서 항생제를 몇 묶음씩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최대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시간문제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나 관심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들, 내 옆의 누군가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필 이 순간에. 하필 여기에서.

 

하필 이 여자를.

 

"토가?"

 

도리카와 아쿠토: 옆의 그 사람은 누구야? 본 적 없는 사람인 걸.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미래의 미도리카와 아쿠토였다. 정황상 그랬다. 그러나 나는 눈앞의 사람과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닮은 점이라고는 머리카락의 색에서밖에 찾지 못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본 적 없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면식이 없어. 한 번이라도 봤다면 내가 잊어버렸을 리는 없는데…?

 

눈앞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녀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똑같은 비취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나운 눈매나 늘 날이 선 듯한 기백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평범한 회사원이 된 것처럼 눈매가 순해졌고 말투 또한 그러했다.

 

묘하게 친근했고 말을 할 때 적극적으로 제스처를 사용했다. 머리카락은 길었다. 기를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잔뜩 곱슬거리던 특유의 머리카락은 앞머리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다. 가시덤불에서 한 송이의 장미로 변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많이 만난 적이 없는 내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니 야가미 토가에게는 더욱이나 꺼림칙함을 느낄 게 틀림없었다. 야가미 토가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의 입은 조금 벌려졌고 눈은 커졌으며, 얼굴의 근육은 잔뜩 긴장되어 하나의 표현으로 수렴되었다. '인정하지 못하겠음'.

 

가미 토가: 당신. 누구입니까?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뭐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이 아랫입술을 삐죽 뒤집으며 대답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미도리카와 아쿠토잖아! 네 친구 몰라봤다고 나한테 되갚아 주기야?

 

가미 토가: 아니야. 바다뱀은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흠칫 놀라 몸을 한 번 떨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바다뱀. 그 이름도 오랜만에 듣는단 말이지. 그래. 이제 와서 보니 바다뱀이랍시고 그런 탈 뒤집어쓰고 다닌 건 이상하긴 해. 진짜 부끄럽다니까

 

그녀는 자신의 팔과 어깨에 닭살이 돋아 오른 것처럼 그 부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마치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 이곳에서의 용건은 이제 끝났다. 정신 차려.

 

나는 발목을 잡히기 전에 실험실을 나가자며 야가미 토가에게 손짓했다. 그러나 야가미 토가와 내가 몸을 반 바퀴 돌리기도 전에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말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어디 가? 지금 시설 안에 침입자가 있어. 타케루 씨와 마사토 씨를 죽이고는 자취를 감췄어. 지금은 우리끼리 뭉치는 게 생존확률이 높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사실 살인 게임의 참가자로 이 환상 속에 들어온 건데, 이 장소에 계속 남았다간 언젠가 시련이 붕괴하며 뇌사하게 되리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즉시 두 번째 작전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서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기절시키고 도망치는 일이었다. 야가미 토가가 그녀를 둘러업고 시련의 문까지 달려갈 수도 있겠으나 그럼 이목을 끌게 되니. 기절이 최우선이었다.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고 손잡이로 그녀를 때리려는 찰나. 실험실 너머에서 한 명의 목소리가 더 들리자 나는 행동을 잠시 보류하게 되었다.

 

또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그래. 그 말대로야!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었어. 힘이나 뛰는 폼을 보면 아무리 봐도 매발톱 출신인데 왜 우리를 습격한 건지는 모르겠어."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등 뒤에서 나타난 그녀를 보고. 나와 야가미 토가는 소리를 내지 않은 채로 크게 놀랐다.

 

이 여자까지 이곳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째서?

 

어떻게?

 

왜?

 

이다 쿠로하: 또 그 침입자가 나타나면 나밖에 막을 사람이 없어. 사실 막기도 내가 막았지.

 

도리카와 아쿠토: 내 엄호사격도 큰 역할 했으니까 생색내지 마.

 

현재의 카이다 쿠로하와 머리카락은 비슷했지만 금색 넥타이와 함께 정장을 입고 있는 카이다 쿠로하가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나와 야가미 토가는 조금 뒤로 물러나며 그녀를 경계했다. 야가미 토가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미 토가: 카이다 쿠로하…!

 

카이다 쿠로하의 반응 또한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다 쿠로하: 느닷없이 날 다른 사람인 것처럼 부른다. 토가?

 

야가미 토가는 끓는 물에 손을 넣은 사람이 손을 빼고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가미 토가: 날 토가라 부르지 마세요!

 

반사적인 반응. 그리고 상대도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이다 쿠로하: 본인이 허락했으면서 왜 그러는 거야?

 

카이다 쿠로하가 난처한 기색을 내며 묻자 야가미의 목소리가 더더욱 커졌다.

 

가미 토가: 제가요? 제가 허락했단 말입니까? 카이다 쿠로하가 나를 토가라 불러도 좋다고?!

 

이다 쿠로하: 아. 알겠어! 앞으로는 야가미라고 부를 테니까 진정해 봐. 토가 아니. 야가미.

 

가미 토가: 정말 끔찍해… 내 눈을 이렇게 만든 여자가. 날 토가라고 부른다니

 

결국 야가미 토가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기고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나 또한 카이다 쿠로하가. 모리 레이코와 나이토 유즈루의 부상을 초래하고 흑막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내통자가 눈앞에서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뒤이은 말은 야가미 토가의 화를 더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건 끔찍한 게 아니야. 토가. 환상적인 거지. 마침내 평화를 찾았잖아.

 

가미 토가: 평화요? 평화 좋죠. 저도 협상가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만들어 봤습니다. 만들긴 어렵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죠.

 

도리카와 아쿠토: 지당하신 말씀!

 

가미 토가: 그렇지만 당신의 복수는요. 당신의 앙갚음은요? 그게 당신의 사명 아니었습니까?

 

가미 토가: 이 꼴을 좀 보세요. 당신 눈에서 독기가 다 빠졌군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게 된 모양이죠!

 

야가미 토가가 삿대질을 하자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어색한 상황에 놓였다. 그녀는 '대체 왜 이러는 거지?'라는 조금의 공포까지 보이며 말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눈에는 눈으로 나가다간 결국 모두 장님이 될 뿐이라는 말도 있잖아.

 

가미 토가: 당신은 처음부터 복수에 눈이 멀어 있었잖아요! 그 정도 각오였다면 응당 성공하고도 남아야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도우면 되니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들 당신을 책망하려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가미 토가: 그러나 이런 건 참을 수가 없군요. 그렇게 중요한 복수 아니었습니까? 나를 제쳐두고 카이다 쿠로하를 죽이러 갈 정도로. 날 버리고 대신 쫓을 정도로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걸 놓았다고요? 포기한 것도 아니라 용서라고요?

 

야가미 토가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소나무가 태풍 때문에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가미 토가: 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바다뱀. 아니. 미도리카와. 말하세요. 말해. 그럴 거면 대체 왜 날 떠난 겁니까? 당신의 복수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만 했단 말입니다!

 

야가미 토가의 외침을 들은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카이다 쿠로하는 당황한 채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다 쿠로하: 오늘 토가가 좀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야. 왜인지는 몰라도 네가 좀 이해해 줘. 아쿠토.

 

가미 토가: 아쿠토라니! 망할! 나조차도 그녀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는데!

 

야가미 토가가 이전에 들은 적 없는 큰 소리를 내자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고개를 저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는 내가 이름을 부르도록 허락한 최초의 사람이야. 토가.

 

가미 토가: 뭐라고요?

 

야가미 토가는 분노가 곧 혼란으로 치환된 듯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도리카와 아쿠토: 당연히 내 가족들은 예외지만. 아무튼 내 가족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정말 네가 처음이야. 너는 이미 오래전에 내게 이름을 주었지만 나는 네게 주지 못했잖아. 그래서 처음으로 너에게 이름을 준 거였어. 난 아직도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도리카와 아쿠토: 오늘따라 무슨 과거에서 날아온 사람처럼 행동하네. 토가.

 

미도리카와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잡고는 야가미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처럼 그를 주위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과거 사람 같잖아? 올백 머리. 저거 늘 멋있었지. 단안경. 저것도 오랜만에 보네? 또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 건가 봐.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어.

 

도리카와 아쿠토: 그. 침침한 것들. 복수나… 뭐냐. 업보 같은 건 허상일 뿐이야. 너도 알잖아?

 

야가미 토가가 안다고?

 

도리카와 아쿠토: 그건 미련이고. 내게 억지로 부여한 사명이었어. 내게 휘말린 너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세상에 시위한다고 해야 하나. 내가 복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미 토가: …그리고 나는 그딴 것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그런 말입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아니! 아니야. 왜 그래. 네가 그런 것들보다 소중하니까 그렇게 한 거야. 네가 더는 내게서 상처받지 않길 원했으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나는 그저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네게 필요했던 일은 그저 너의 앞에 나타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일뿐이었는데. 나는 다른 길로 새려 했어.

 

도리카와 아쿠토: 내 잘못과 마주하는 게 어려웠어. 그래서 복수라는 무의미한 것에 매달리려 했어. 그렇지만 우리 결국 화해했잖아

 

가미 토가: 말도 안 돼.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야가미 토가의 몸이 조금 휘청거렸다. 카이다 쿠로하는 야가미 토가를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보다가, 그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썰미와 야생적인 감각은 미래에서도 퇴화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다 쿠로하: …너 자세히 보니까 시설의 사람이 아니잖아. 재단의 사람이 아니야. 외부인이다. 어쩌면 침입자일지도 몰라.

 

도리카와 아쿠토: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위험하다. 위험하다. 카이다 쿠로하와 미도리카와 아쿠토에게서 익숙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그것은 육감이라기보다는 촉각에 가까웠다. 피부에 시선이 꽂혀 간지럽고도 따끔거리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자신의 정장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무로 시라베: 우린 이대로 돌아가겠다. 서로 피를 볼 필요는 없다.

 

도리카와 아쿠토: 우리? 너희가 우리라고? 틀렸어. 토가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야! 너는 토가를 못 가져가. 못 가져가고 말고.

 

대체 이 연구소는 정체가 뭐냐. 어째서 미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 야가미 토가. 복수로 얽힌 세 명이 화해한 것이지. 애초에 이곳은 뭘 연구하고 있었던 거냐.

 

떠오르는 의문을 잠재우며 나는 나와 적대하는 이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곧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나의 총성은 아니었다. 실험실 밖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사람들의 비명은 들렸지만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위협사격인가?

 

카이다 쿠로하는 내게 다가오려다 말고 몸을 낮추었다.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카이다 쿠로하에게 물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지금 총 쏘는 거. 누구야?

 

이다 쿠로하: 모르겠어. 무기고는 굳게 닫혀있을 텐데

 

대체 뭐지? 재단이 통제하는 연구소에서 누군가가 총기로 난동을 부린다니? 점점 더 세 번째 시련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의 나보다 미래 시점일 내가 기관총을 들고 시설에 나타난 것도 아닐 텐데. 대체 누구인가? 누가 총을 얻어서 초고교론자의 시설 안에서 발포하고 있단 말인가?

 

이다 쿠로하: 발소리. 이쪽이야. 점점 가까워진다. 아쿠토. 긴장해. 뭔가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나도 알아. 문을 열면 내가 쏠게.

 

나는 미도리카와의 권총을 노렸다.

 

가미 토가: 안 돼! 조심하세요!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총이 찌그러진 채로 그녀의 손 안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초고교론자에게 총을 쏘며 그들을 적대하는 이는 시련 속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나와 야가미 토가의 입장에서 있는 편이 나은 존재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을 엄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만약 문을 연 사람의 정체를 내가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나는 미도리카와 아쿠토의 권총을 노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를 눈앞에서 봤다면 당황한 나머지. 쏘지 못했을 테니까.

 

야가미 토가는 할 말을 잃고 귀신을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짧은 비취색 머리카락이 발포로 인해 발생한 실내 미풍에 작게 흔들렸다.

 

도리카와 아쿠토: 토가한테서 떨어져. 정신 나간 자식들아.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똑같은 목소리. 그러나 다른 사람이었다.

 

기관총을 들고 있는 미도리카와 아쿠토. 탑에서 죽은 그녀와 똑같이 닮은 사람이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2챕터는 1챕터와 연계되는 내용이 많은데 이 부분이 제 구상만큼 뽕이 차지는 않네요

 

2-0에서부터 시작된 스물몇 편간의 빌드업이었는데 으이그… 암튼 계속 열심히 써 보려고 합니다

 

나는 파멸적 텀의 타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