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카와 아쿠토: 당장 카이다를 죽여도 괜찮다. 이거지?
모노로그가 나타났다. 그것은 전용실 바닥을 뚫고 나와 내 앞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모노로그: 물론 그것 쪽에서도 널 죽일 수 있겠지. 너에게 선공권이 있으니 유리하긴 해도 그것 상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맹수를 사냥한다면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겠나?
모노로그: 동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 동원해야지. 네게 필요한 것을 주겠다. 내게 협럭해.
미도리카와 아쿠토: 뭘 위해서 협력하라는 건지 모르겠는걸.
모노로그: 자세한 사항은 이후 알려주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 내게 협력해.
미도리카와 아쿠토: 그전에 질문 몇 개 해도 돼?
모노로그: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해 주겠다.
미도리카와 아쿠토: 첫 번째. 왜 하필 나한테 권유를 하지?
미도리카와 아쿠토: 두 번째. 네가 굳이 누군가의 도움까지 얻어서 해야 할 일이 있어?
미도리카와 아쿠토: 세 번째. 이 제안을 다른 사람에게도 할 예정이야?
모노로그: 운이 좋구나. 셋 모두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아니면 통찰력이 좋은 것인가?
모노로그: 첫 번째. 굳이 너일 필요는 없다. 난 충분히 여건이 맞는 자에게 권유를 했을 뿐이다.
모노로그: 두 번째. 굳이 없더라도 내통자를 두면 탑을 통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내통자는 내게서 정보를 얻으며 살인 게임에서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 미리 내통해 두면 이후 지시하기도 정보를 주기도 편리해진다.
모노로그: 세 번째.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나는 말했다.
미도리카와 아쿠토: 난 거절할게.
모노로그: 그렇다면….
미도리카와 아쿠토: 넌 카이다와 협력해서 날 노리겠지. 그 흉물은 염치도 양심도 없으니 네게 영혼까지 팔아넘길 거고. 이 탑에서 나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테지.
모노로그: 카이다 쿠로하가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그렇게 될 거다. 네 말대로 그것은 이 탑의 인원들 중에서 가장 부도덕한 존재니.
모노로그: 그래서. 믿을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미도리카와 아쿠토: 있지. 그런데 그쪽에게는 없을 거야. 그러니 내 쪽에서 가야 해.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마유즈미 나데시코: 제 1회 터치파 모임을 개최하겠습니다!
마유즈미가 조그마한 환호성을 내면서 열심히 손뼉을 쳤다.
캐롤 씨와 나도 그녀를 따라 손뼉을 쳤다.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 마유즈미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박수가 멎었을 때 침묵은 그 만들어진 환호와 비교되어, 여느 때보다 질량이 늘어난 채였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사실 터치파(派)라고 하기엔 수가 좀 적지? 터치를 받아 본 사람은 토키와까지 포함해도 네 명이니까….
캐롤 브라이트: 사실 네 명도 많죠. 가능하다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터치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터치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는 뜻이니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긴 해요… 나나시. 우리를 불러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뭐야?
용건은 명확했다. 내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결정되어버린 안건.
나나시: 어떻게 강제적인 터치를 막을 것이냐. 그 얘기를 하려고 불렀어.
캐롤 브라이트: 막아야 할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막긴 해야죠!
캐롤 브라이트: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나나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냐뇨?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캐롤 씨… 다들 터치가 무슨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대하고 있어. 절대로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는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잘못하면 정신이 뒤죽박죽 섞일 수 있는 게 터치라고 했지?
나나시: 그보다 덜 심각할 수도 더 심각할수도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 중 하나야. 터치는 정신이 묶이는 일이니까. 캐롤 씨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줘.
나나시: 손이 닿자마자 누군가의 과거를 전부 캐내고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니. 너무 형편 좋은 얘기잖아.
나나시: 주장하는 건 쉽겠지. 그렇지만 책임과 위험을 전부 떠안는 건 캐롤 씨야. 이게 말이 돼?
캐롤 브라이트: 저는 이미 카이다 씨에게 터치를 악용하려 한 적이 있어요. 상대가 미도리카와 씨여도 다를 건 없어요.
그런가…? 하지만.
나나시: 그건 경우가 다르잖아요. 카이다는 네 명을 사로잡으려 했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요.
캐롤 브라이트: 지금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언제 살인이 벌어질지 몰라요.
캐롤 브라이트: 당장 제가 터치를 쓰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미도리카와에게 터치를 써도 살인을 막을 수가 있을까요? 미도리카와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캐롤 브라이트: 다른 분들에겐 흉기가 없으니. 살인을 감행할만한 사람은 카이다 씨나 미도리카와 씨뿐이에요.
나나시: 다른 사람의 전용실에도 흉기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찾아본 적이 없으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다 같이 수색해본 건 히무로의 전용실이 전부지….
나나시: 애초에 미도리카와에게 터치를 쓸 수는 있어? 지금 며칠째 안 나오고 있잖아. 잠도 안 자고 있어. 저 정도 의지력이면 저기서 평생 안 나올 생각인 것 같은데.
캐롤 브라이트: 이제 나흘째예요. 미도리카와 씨가 아무리 잠을 참아도 닷새까지는 참을 수 없을 거예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음…….
나는 마유즈미의 표정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미묘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나시: 왜 그래. 마유즈미?
마유즈미 나데시코: 앗. 아무것도 아니야!
캐롤 브라이트: 23T씨가 총을 빼앗으시면 야가미 씨가 미도리카와 씨를 제압하실 거고. 그럼 저는 미도리카와 씨에게 터치를…
캐롤 브라이트: 쓰면… 되는 거예요. 그럼 모든 게 원만하게 끝나요.
나나시: 마음에 안 들어요. 토키와도 터치를 받아 봤다면, 가위가 미용사도 해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나나시: 리더 역할을 맡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방법이 이것뿐일까요…?
캐롤 브라이트: 적어도 지금은… 이게 최선이에요.
캐롤 씨의 말에 반대하고 싶었지만 반론 거리가 전부 떨어져 버렸다.
난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 당사자인 캐롤 씨가 강제적인 터치에 찬성했으니까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데 왜 머릿속의 구름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걸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모리가 주장했던 것이 옳기 때문은 아니다. 그게 옳을 리가 없다. 공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절대 미덕으로 취급될 수 없다.
난 단지 캐롤 씨를 걱정하는 마음에 여러 이유를 덧붙였을 뿐일지도 몰랐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불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뾰족한 수가 나올 줄 알았던 거다.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옆에서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지금 가장 혼란스럽고 강제적인 터치에 반대하고 싶은 사람은 캐롤 씨일 텐데. 입을 닥치고 있진 못할 망정 옆에서 바람이나 불어넣고 있었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내 생각은 자존감이 낮다 못해 바닥을 친 결과물 같았다. 하나같이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제 멈춰야 할 텐데.
나나시: 제가 너무 과민 반응을 하는 걸지도… 몰라요.
그래. 머리를 식혀. 넌 참견할 자격이 없잖아. 난 캐롤 씨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뿐 그녀에게 왈가왈부할 처지는 못 되었다.
나나시: 제가 터치를 독점하려고 드는 걸지도 몰라요.
내 시무룩한 기색을 본 것인지 캐롤 씨가 덧붙였다.
캐롤 브라이트: 그래도 미도리카와 씨와 대화를 나눠 보고 진솔한 터치를 나누는 건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나나시: 진솔한 터치…? 아… 그 방법도 있네요.
캐롤 브라이트: 이것도 사실 말이 많지만… 굳이 지금 당장 모든 일을 정해둘 필요는 없잖아요. 미도리카와 씨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죠….
캐롤 브라이트: 다 잘 될 거예요. 그런 마음을 가져요. 저희.
마유즈미 나데시코: 잘 될 수 있어요.
마유즈미의 말은 아까부터 내게 이상한 위화감을 주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잘하느냐에 따라 잘 될 수도 있어요. 그렇죠?
나나시: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말이야? 미도리카와를 설득시켜서 터치를 쓸 필요가 없게 만든다면 무척 좋겠지. 정말 잘 된 일일 거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맞아. 나나시. 네 말이 레알이야.
마유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의미심장함을 느꼈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중에 더 듣고 싶어. 더 들려줄 수 있겠어?
후루미나미는 몰입과 황홀의 상태에서 벗어난 뒤 내게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습기가 차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텐데.
후루미나미 나몬: 난 재미로 네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야. 단지 슬프니까 좋아할 뿐이지. 내 취향이 그냥 그래. 매운맛 좋아하는 사람 있고 담백한 맛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
정중한 거절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히무로 시라베: 소설책 취급을 당하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그래.
후루미나미 나몬: 소설책…? 아. 내가 널 너무 이야기 들려주는 라디오 진행자처럼 여겼구나.
라디오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네 생애를 누군가가 단지 이야기 취급하며 듣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네 입장에서는 불쾌감밖에 느끼지 못하겠지. 그렇지만….
후루미나미 나몬: 감탄을 억누를 수 없어. 정말 아름다워. 히무로. 비극적이고… 극적이야. 이건 잘못된 일이고 넌 날 경멸하겠지만. 좋은 작품을 마주한 연기자로서 도무지… 아아. 오늘 만남은 매우 값졌어. 히무로.
의사를 제대로 표현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담화는 나누지만 소통은 부재되어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미도리카와에 대한 사안은 마유즈미와도 함께 얘기하자. 그렇게 정해진 거지?
후루미나미 나몬: 응. 다음에 만날 때는 내 얘기를 계속해 줄게. 나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
히무로 시라베: 나도 그래.
빈말 없이 난 그렇게 생각했다. 왜 내 과거를 이토록 듣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와 카텟 기관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한 술수라고 보긴 어려웠다. 후루미나미가 아무리 초고교급 연기자라지만 아무리 쓸어도 남는 것이 발자국이듯 조금의 잔향도 남기지 않을 순 없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후루미나미는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난 그녀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심리학에 기반을 둔 호기심마저 생길 정도였다.
후루미나미 나몬: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니 우리가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그렇지?
후루미나미 나몬: 어쩌면 네게 후루미나미 나몬에 대해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몰라.
히무로 시라베: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너 말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다들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후루미나미는 모자를 바꿔 써가며 그에 따라 말투를 변화시켰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는 똑똑한 사람이다.
탐정.
후루미나미 나몬: 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화가.
후루미나미 나몬: 나는 유쾌한 사람이다.
마술사.
후루미나미 나몬: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탐정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두꺼운 가면도 얇은 가면도 있지만 다들 무언가를 연기하면서 살아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자신을 연출하고 열연하지.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은 연기자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면에 반하고 가면을 사랑해. 그 안에 갇힌 사람의 얼굴을 보면 실망하거나 당황하지. 그렇지만 그 사람의 얼굴 자체를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후루미나미 나몬: 배역이 아닌 연기자를 사랑한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거야. 서로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큰 축복이겠지.
배역이 아닌 연기자를 사랑한다라.
히무로 시라베: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후루미나미 나몬: 너와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 네 가면 안을 보고 싶어. 내 가면 안을 보여주고 싶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참 멋진 일이지 않겠어?
히무로 시라베: 그렇겠지. 맞아. 참… 멋진 일이야. 그건.
"울지 마."
"안 운다."
히무로 시라베: 일단 지금은 해산하고. 탑의 모두가 긴장하고 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 말자.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려면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걱정 마! 난 안 죽어.
후루미나미는 그렇게 말하며 곰방대를 피웠다. 보통 곰방대는 탐정의 소품이다. 그녀는 탐정을 연기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다. 분명히.
히무로 시라베: 그럼 나중에 봐.
후루미나미의 전용실에서 나오자 탑 안은 조용했다. 다들 자신의 전용실 혹은 숙소에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가 봐도 탑 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는 23T가 유일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마유즈미는 나나시와 캐롤에게 합류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도 지금 전화를 거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흰 물건을 조사할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당장 후루미나미에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자고 한 참이었으니. 총이라도 있었다면 내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었겠지만 내게는 총은커녕 날붙이도 없었다.
카텟 기관에서와는 달랐다.
기관원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단으로 총기를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안건이 제기되었다. 누구에게서 몸을 지켜야 하는지는 매우 명확했다. 그들이 내부의 적이라고 여기는 자는 나 밖에 없었다.
의아했던 점은 카텟 기관이 내게도 총기의 소지를 허락했다는 점이었다. 시라유키 히메리의 노고인가 싶어 그녀에게 물었으나 그녀 역시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애초에 총기 소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넌 총을 쏠 수 없잖아. 현장 임무를 나가는 게 아니면 넌 총을 네 지근거리에 둘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랬지. 의아한 점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카텟 기관이 무기고를 열고 기관원들에게 호신용 총을 하나씩 가져가라 말하진 않을 것이다. 즉 총기를 구하는 것은 오롯이 기관원들의 재량이다. 그러나 대몰락 이후 총은 개인이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안건은 호신용 총의 소지를 허용하지만, 정작 대다수의 기관원들은 총기를 소지할 수 없다.
총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지고 우발적인 총기 난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카텟 기관이라도 대몰락 이후니까. 카텟 기관의 수뇌부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안건을 통과시켰지? 나를 견제해야 할 안건이 오히려 내게 이점을 주고 있다."
"나도 모르겠어."
전 지부장이며, 실질적으로 지부장보다 더 존경을 받는다는 시라유키 히메리가? 난 그녀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카텟 기관의 의도를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라유키 히메리가 카텟 기관에서 지지 세력을 잃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나일 터였다.
23T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앞에서 여전히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다. 후루미나미는 미도리카와가 전용실에서 나온 뒤 자신의 숙소로 들어갔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얼마나 수면을 취했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다시금 사흘을 버틸 수 있다면. 오늘과 내일까지는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전용실에서 몇 가지 물건으로 하찮은 일을 처리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미도리카와 아쿠토: 여보세요.
하기와라 우시오: Shit!
미도리카와 아쿠토: 여보세요?
하기와라 우시오: 쉿. 조용히 하라고. 약간 네이티브스럽게 혀를 굴려 봤어. 쉿. Shit. 이 정도면 외국에서도 먹힐 것 같아? 어림도 없겠지. 유남쌩?
미도리카와 아쿠토: 하기와라 우시오?
하기와라 우시오: 어. 맞아. 내가 누워서 생각을 좀 해 보니까 뭉칠 만한 사람이 몇 없더라고. 근데 그중에선 네가 그나마 나은 편 같았어.
미도리카와 아쿠토: 난 너와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 그럴 이유도 없고.
하기와라 우시오: 네가 허락 안 해도 난 네 편에 붙을 거야. 카이다 편에 붙긴 싫은데 너희 둘 중 하나가 죽을 거라서.
미도리카와 아쿠토: 왜 그렇게 생각해?
하기와라 우시오: 지금 흉기가 다 탔거든. 다들 머리가 냉정해지면 깨달을 텐데. 맨손으로 사람 죽이는 게 말이 쉽지 가능한 일이냐?
하기와라 우시오: 나이토나 칸나즈키나 야가미라면 될지도 모르지. 셋 다 힘캐니까. 근데 결국 들키면 여기서 나갈 순 없어. 맨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흔적을 안 남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기와라 우시오: 세 명! 딱 세 명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사람 못 죽여. 그 세 명 조차도 의심받을까 혹은 역공을 당할까 몸을 사릴 거고.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 살인이 난다면 카이다나 너 둘 중 하나가 죽었을 때겠지. 너희 둘은 서로를 아주 잡아먹을 기세잖아.
미도리카와 아쿠토: 다른 사람은 흉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말이야. 아마 다른 이들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겠지.
하기와라 우시오: 뭬?
미도리카와 아쿠토: 흉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나와 카이다 쿠로하뿐이라고 확신할 순 없어. 너희들이 탐사한 건 히무로의 전용실뿐이니까.
미도리카와 아쿠토: 토키와는 다른 이들의 전용실에 들어가 위험한 물건을 찾아내 관리하겠다고 말했지만. 흉기를 태운 뒤 혼란했는지 그 일은 흐지부지됐어. 지금 가장 안전한 이는 히무로 시라베. 한 명뿐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어. 썅. 그건 그렇네?
하기와라 우시오: 그렇다고 쳐도 캐롤, 나나시, 이바라 이 세 명은 안전해. 내가 장담해! 카이다가 쿼드라킬각 잴 때도 걔네는 감자칼 하나 못 꺼냈어. 그 셋한테 무기가 없는 건 확실해.
미도리카와 아쿠토: 널 제외하네?
하기와라 우시오: 왜냐면 난 안전하지 않거든. 난 매우 매우 위험한 사람이다! 우하하하!
미도리카와 아쿠토: 장난하지 말고. 얼마나 있어?
하기와라 우시오: 여덟 개 정도.
미도리카와 아쿠토: 하. 충분하네. 자세히 얘기해 봐. 들어나 보자.
숙소의 침대에 앉아 나는 후루미나미의 목적과 그녀에게 말해줄 수 있는 수위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적인 일화는 말해줄 필요가 없다. 후루미나미 연애담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그녀를 더 자극하고 싶진 않다.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수록 후루미나미는 더 들려달라며 내게 조를 테니 처음부터 충분히 들려주지 않는 편이 낫다.
메리가 나를 도운 이유에 대해서도. 당연히 말해줄 수 없다. 그 이유는 카텟 기관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로와 관련된 내용 역시 말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자체가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와의 접촉에 대해서도 절대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옥상의 계단을 올라왔다. 기관원이 옥상을 찾는 것은 매우 드물다. 나와 시라유키 히메리 말곤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어쩌면 내가 옥상을 사용하기에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맞지?"
"그렇다."
"얘기 좀 나눠보고 싶어서 왔어. 로의 일원이라지? 초고교급 재능을 다수 몸에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고. 못할 것이며.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해."
"……"
"음. 좀 신경을 긁으려고 한 말인데 아무런 반응도 없네. 아주 담백해. 아무렇지도 않아!"
대답하지 않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왜 아무렇지도 않을까. 난 그게 궁금해. 네가 태어난 목적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잖아. 로의 탄생 목적 자체가 그렇다고. 다른 이들을 멋진 신세계로 이끌 지도자 8명. 서로를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8명. 그중 한 사람이 너인데 왜 아무렇지도 않아? 네 백성들한테서 핍박을 받는 건데 억울함 느낀 적 없어?
난 왜 이렇지. 난 왜 완전하지 못하지. 난 왜 분리될 뿐이지. 내가 있을 곳은 어디지. 이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했고, 할 것이며, 하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카텟 기관원들한텐 그 생각 들려줄 순 없겠어! 네가 있을 곳은 카텟 기관이 아니라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니!"
"너는 스스로가 카텟 기관의 일원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나도 사실 이 기관이 마음에 들진 않거든. 히무로 시라베. 너도 그렇지 않아?"
"목적이 확실하지 않은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너 역시 그럴 거야. 왜냐하면 너는 로 중에서도 다른 이들을 통제하는 역할이잖아? 감시자는 다른 로가 타락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살피며, 실마리를 끄집어내 싹을 자르고. 여의치 않은 순간에는 제압하는 역할이지. 그렇기에 감시자에게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 만으로 초인마저 죽일 수 있는 특권. 총이 주어지지. 권력과 힘의 상징. 숙청의 수단 말이야. 감시자가 오히려 감시당하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아.
함께할 때가 온 것 같아서 한 번 와 봤어. 내 동생."
"너…."
무뎌졌다. 녹았다. 녹슬었다. 식었다. 줄었다. 빠졌다. 고요한 나날을 거친 나는 모든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자에게 이런 지근거리까지 접근을 허용했을 리가 없다. 왜 이 목소리를 들은 순간 행동하지 못했을까.
잊고 싶은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자. 동생들! 제대로 맞춰 봐! 난 여기에 서 있잖아!"
실험체 중 누구도 그를 맞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격의 차이라는 관념을 이해시켰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춘다. 나는 백단향 총을 빼들었다. 내가 애증 하는 이 물건. 재단이 내게 준 것을 재단의 최대 성공작에게 겨누게 되었다.
"되게 빠르네. 저번에 봤던 것보다 훨씬 빨라. 누가 총잡이 아니랄까 봐 어느 정도는 꽃을 피웠구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비웃음의 색채를 담고 있었다.
"어차피 쏴 봤자 안 맞을 거 알잖아. 굳이 쏘지 마. 옥상에서 총소리가 들리면 기관원들 전부가 너를 과잉 진압하러 달려올 걸. 명분을 만들어주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겠지?
뭐. 그럼 넌 카텟 기관을 적으로 돌리고 우리 쪽으로 올 수 밖에 없을 테니. 그렇게 되면 내가 널 도와줄 거고.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 주겠지만 네가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
"왜 카텟 기관에 침입했지? 그보다 어떻게 침입했나?"
"운이 좋았어. 경비원은 잠깐 한눈을 팔았고, 감시카메라 두 개는 고장이 났고, 옥상에는 너 말고 아무도 없었지. 덕분에 조금도 안 들키고 여기까지 왔어. 사실 행운아가 운 없이 뭘 하겠니? 내 동생을 만나러 오지도 못하는 형은 형도 아니야. 안 그래?"
"난 단 한 번도 너를 내 혈육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로 전부가 그렇다."
"그럼 네 가족이 누군데?"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내겐 혈육이 없다."
"가족의 기준은 단지 유전적 연관성이 아니야.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약점을 보완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를 돕지. 우리가 유전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더라도 우리가 가족의 요소를 가진 이상. 너는 우리 가족이야."
"나는 로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네가 올 곳은 로뿐인데도?"
"나는 카텟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하지. 설령 그들이 저급하고 네게 적대적이라도. 너 자신을 굽혀가면서까지 무언가의 일부가 되길 원해."
"듣고 싶지 않다."
"사실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기 때문이겠지. 이쯤 되면 너도 느꼈을 거야. 기이한 갈망 같은 것을. 결핍을 느끼지만 어떻게 채울지 감이 오지 않는 무언가를 말이야. 그렇지?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입고 싶고 지치면 쉬고 싶은 게 사람이니 그건 본능적 욕구야. 느낄 수 없으니. 느끼고 싶다.
당연한 일이야. 로는 위버멘쉬 집단보다는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는 괴짜 초인들의 모임이니까. 모든 로가 중요한 걸 하나씩 잃어버렸어. 자존력. 정의감. 인내심. 정직 같은 것들. 그게 결여된 사람이 어떤지 알아?
사람이 아니야.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 느낌밖에 안 들지. 중요 부품 하나만 빼면 못 움직이는 기계처럼. 무언가를 완전히 제거당한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어. 대들보가 하나라도 빠지면 무너져 버리거든.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섞일 수 없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울 수 없지. 아무리 완전성을 향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쳇바퀴만 굴릴 뿐이야."
"대부분의 로는 자신의 결핍을 채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재단 외의 세상과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지. 하지만 너는 어때? 재단 외의 세상과 접한 최초의 로. 로 없이도 완전해질 기회를 얻은 최초의 로. 그런 네 모습을 봐. 모두가 기피하고 혐오하는 실험체. 그게 너야. 심지어 완성되지 않았기에 다른 로보다 훨씬 인간적임에도 이렇게 됐어.
네 출신 때문에 다른 이들이 색안경을 낀 거라고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건 그저 이유 중 하나야.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이 아닌 것에 느끼는 이질감. 그리고 소름 끼침.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향한 형연 못 할 거부감이 네 출신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뿐이지. 네가 출신을 숨기고 있었더라도 네 처지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가 주장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로에 합류하라는 것인가?"
"우린 너를 원하고 너에겐 우리가 있어. 너도 알잖아. 로는 단지 재능을 가진 실험체 집단이 아니라는 거.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지.
서로 약점을 보완하고. 돕고. 서로 완전성을 되찾고 보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체계. 그게 로야."
"알고 있지만 응하지 않겠다."
"네가 느끼지 못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 봐. 넌 느낄 수 없으니 최소한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 밤하늘에 뜬 별들에서 사람을 볼 수 있어. 아침 햇살의 따스함에서 희망을 느끼고. 다른 이의 비극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어. 진심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 만물과 단절된 너라도 우리와 함께라면 연결될 수 있어. 그게 어떤 느낌일 것 같아?
네 기능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순간. 해갈(解渴)의 순간을 상상해 봐. 타인의 살갗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어.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욕구를 위해 모든 시도와 가능성을 포기하고 내 몸을 의탁할 순 없다. 그렇게 안주할 순 없다.
나를 믿어왔던 사람을. 신뢰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을 버려둘 순 없다.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그녀의 모든 발자취는 헛걸음이 된다. 내가 그럴 순 없다.
그 날 연구소 안에서 보지 않았는가. 날 믿겠다며 총구를 향해 걸어 들어오던 시라유키 히메리를. 결국 쏘지 못했기에 이 곳까지 온 것이 아닌가.
최후의 순간에 기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불완전한 재능도 진실도 아닌. 내 가능성을 놓지 않았던 단 한 명의 사람이었다.
"거절한다. 돌아가."
"히무로… 다시 생각해 봐."
"다시 생각해도 대답은 똑같을 것이다. 나는 로에게 합류하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나도 널 강제로 데려갈 생각은 없어. 네가 납득하지 못하면 결국 의미가 없거든."
강제로 데려갈 수는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또 올게. 히무로. 내 동생. 그때는 마음을 달리 먹길 바라겠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지원을 요청해도 행운아라면 카텟 기관이 전력을 다해도 붙잡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카텟 기관의 입구를 지나 아스팔트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그를 쫓지 않았다. 따라갈 순 있어도 잡을 순 없었다.
모든 상황이 끝났다는 확신을 가진 뒤 나는 시라유키 히메리에게 말했다.
"이제 나와도 좋다."
"내가 여기에 있는 줄 알고 있었어?"
"네가 그곳에서 자주 짧은 수면을 취하는 이유는, 옥상 문을 연 이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각도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마 그는 너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아의 맹점이 그것이지. 결과가 행운일지 불운일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좀처럼 발동하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가 확실한 내기 같은 것에는 언제나 행운이 반응한다. 그러나 시라유키 히메리가 행운아의 지각 범위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그녀를 발견하는 것이 행운일까 불운일까 확실하지 않다. 가치 판단이 불가능한 것에 행운은 제 멋대로 작용하지 않는다.
"대화는 전부 들었겠지?"
"로… 걱정 마. 널 넘기지는 않을 거야. 카텟 기관의 전력을 다해서 널 지킬게."
"내게 그럴 가치가 있나?"
"가치의 문제가 아니야. 넌 우리 기관의 일원이야. 이미 카텟의 일부라고. 그러니 절대 로 쪽으로 보내진 않아. 절대로… 그 불합리한 계획에 네가 말려들게 두진 않을 거야.
네가 우리와 같은 카를 공유하고 있는 이상. 그렇게 두진 않아."
같은 카. 같은 숙명과 운명.
나는 이 카텟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기관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도중 총격이 있었다.
"나와. 히무로 시라베!"
겁에 질린 목소리. 총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보다 총을 든 장본인이 더 겁에 질려 있다.
그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착각 중 하나는 총 한 정보다 총 두 정이 더욱 파괴적일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총의 반동을 견디며 두 정을 정확하게 겨눌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 쌍권총을 쓰려는 시도는 결국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총을 놓치는 것으로 끝난다.
차라리 내가 있는 방향에 정확하게 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가 턱도 없이 빗나간 총알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기관원들을 위협했다. 탁자를 눕히고 엄폐물을 만들어낸 나는 드디어 강경파가 나를 제거하려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분명 학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탑 안에서 몇 번 마주친 적도 없기에 날 이 정도로 증오할 구실이 없다. 음모가 분명했다.
이대로 내가 총을 쏘아 그를 제압한다면 아무리 정당방위라고 한들 나를 둘러싼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다. 강경파는 그것을 구실로 나를 카텟 기관에서 퇴출시킬 심산이다. 혹은 사살할 이유를 얻겠지.
총 한 정을 놓친 그는 내가 숨은 탁자에 나머지 한 정을 겨눈 채로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떨어진 총과 탁자를 번갈아 보며 그는 계속 공포에 떨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가? 내가 반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나와. 나와 이 자식아!"
총을 가진 기관원이 있더라도 당장 나서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장 그를 거들어 나를 없애고 싶은 이들도 몇 있으리라.
그러니 나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이는 나 밖에 없었다.
별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총을 쏘았다는 질타는 감수했다. 나는 천장에 백단향 총을 겨누고 쏘았다. 커다란 격발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공산품과 궤를 달리했다. 쌍권총을 지닌 기관원은 그 소리에 놀라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그가 혼란에 빠진 틈에 내가 탁자를 박차고 나오자 기관원은 총을 손에 걸치다시피 하며 섣불리 총을 쏘았다. 총알은 턱도 없는 방향으로 날아갔고 반동으로 인해 그는 총을 두 정 다 놓치고 말았다.
그에게 달려들었다. 엎드리게 만든 채로 뒤에서 팔을 잡았다. 다른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배후가 누구지?"
"배후…? 네 배후나 제대로 말하지 그래!"
"난 카텟 기관에 속한다."
"네가? 하! 넌 로 편이잖아! 로에서 곧 너를 데리러 온다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로에게 응하지 않았다. 그 정보를 어디서 들었지?"
"네가 거절해도 소용없어! 넌 우릴 배신할 거야. 시라유키 씨가 널 우리 도구로 만들지 못한 이상 이제 전부 틀렸다고! 그러니 네가 로 쪽에 붙기 전에 죽여 버려야 해!"
"무슨…?"
"시라유키 씨 같은 분이 너한테 자원봉사라도 해 준 줄 알았냐? 네가 카텟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주제를 알아야지! 네 패거리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써먹으려 했던 거야. 그래서 시라유키 씨가 어쩔 수 없이 독박을 쓰신 거야! 잘만 하면 로를 몇 명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제 틀렸어. 널 죽이지 않으면 우리 카텟에 미래는 없어! 사람을 꾸릴 시간도 모자라. 최대한 빨리 널 없애 버려야 해!"
나는 깨달았다. 이 자는 나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 다만 기관이 충분한 준비를 갖추기 전에 나를 습격했을 뿐이었다. 이로써 카텟 기관은 나를 암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 자가 만들어낸 소란은 카텟 기관이 나를 제거하려 했다는 단서가 된다. 카텟 기관은 로의 보복을 감수할 수 없다.
이제 카텟 기관은 날 죽이려 했다는 정황을 가지고 있다. 내 죽음이 은폐되어도 로는 진상을 찾아내 카텟 기관에게 보복할 것이다. 완전해질 기회를 박탈당한 로들은 모든 기관원을 사살할 것이다.
그렇기에 카텟 기관은 날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내 목숨을 노린 자가 성급하고 미숙했기에 나는 살아남았다.
그뿐이 아니다. 시라유키 히메리에 대한 이 자의 언급은 내게 작은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로가 카텟 기관에 찾아왔었다는 정보를 누가 알고 있었는가?
그 정보를 알고 누군가에게 특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자는 시라유키 히메리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 나를 포기하지 않았음도 실토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모든 노고도 단지 로에게서 나를 빼앗기 위해 행해졌다는 뜻이다.
노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시라유키 히메리의 목적이 드러난 이상 카텟 기관의 적대시마저 단지 시라유키 히메리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확신할 순 없다. 지부장과의 대화는 아마 나의 역도청을 또 다시 역으로 이용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을 의심해야 했다.
혹시 이것도 시라유키 히메리의 계략인가? 로가 곧 카텟 기관에 찾아올 것임을 시라유키 히메리는 미리 눈치챘다. 그녀와 수뇌부는 미리 내게 총기 소지를 허락했다. 내가 로를 총으로 쏘아 사살한다면 카텟 기관에게는 더 없이 기쁜 일이었겠지만 공교롭게도 상대 로는 총알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다. 시라유키 히메리에게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그녀는 날 진심으로 대해왔다.
장담할 수 있는가?
상대가 초고교급의 이름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이라면 어떤 복잡한 계획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섣부른 기관원 하나에 의해 깨져 버렸지만. 가능성은 남겨 둬야 한다.
카텟은 죽음과 배신으로만 깨진다지. 하지만 배신도 카텟의 일부라 하던가. 그렇다면 이것이 나의 '카' 다.
"그러니 카텟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결합인 거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큰 역경을 만나도, 심지어 죽더라도 카텟은 부서지지 않아."
멀리 떨어져도, 저지되어도, 죽음으로 도망치려 해도 부서지지 않는 배신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저주에 가깝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저주. 내 모든 노력은 무의미했고 결과만이 남았다.
위기를 겪고, 목숨을 위협당하고, 이용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진실로 나아갈 실마리를 손에 넣었고, 생존도 확보했다. 일련의 모든 일들. 이 카를 결과적으로 과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행운.
대체 어디까지 퍼져나가는가. 내 삶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카인가? 내가 당장 그것에게서 도망치더라도 그의 손바닥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주위를 보았다. 여러 개의 눈동자. 그중 무엇도 긍정적이지 않다. 경계. 공포. 적의. 거부감. 나는 다시금 보았다. 나는 이 곳의 이방인이다. 합일될 수 없는.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서 박리되는 이방인. 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는 뜻이다.
행운아
남성.
재단의 최고 성공작이다. 로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재능과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원한다면 턱 없이 먼 거리에서도 누군가를 부리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다.
행운아의 약점은 독선이다.
자유행동 투표가 진행됩니다
요즘 나 스스로가 이 동인소설에 너무 과몰입하는거같음
일일 방문자 수가 두자리 수를 찍는다거나 댓글이 네 개씩 달린다거나 그런 걸 계속 꿈으로 꿉니다
예전에도 꽤 이랬는데 잠깐 안그랬다가 요새 다시 이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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