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13

by 도타싫어! 2020. 7. 9.

기와라 우시오: 아. 영화 보러 가야겠다!

 

바라 쿠리스: 어딜 가 임마. 기다려.

 

기와라 우시오: 언제까지 여기에 죽치고 있을 거야?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걍 난 영화나 보러 갈래.

 

가미 토가: 괜찮습니다. 가셔도 상관 없어요. 핵심 인원만 남으면 누구든지 가셔도 좋습니다.

 

가미 토가: 총을 빼앗아 주실 23T 씨, 미도리카와 씨를 제압할 저, 그리고 터치를 사용하실 캐롤 씨만 계시면 됩니다.

 

롤 브라이트: 네. 그렇죠.

 

기와라 우시오: 그렇다니까. 우리가 여기 있어봤자 할 게 없잖아. 꽁트?

 

바라 쿠리스: 우린 총 없는 카이다한테도 털린 처지니까 별 쓸모는 없겠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게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는 느낌인데.

 

리 레이코: 그 기여가 잡담을 의미한다면 필요 없다. 돌아가라.

 

이토 유즈루: 너도 조용히 해. 새꺄. 남한테 시비 털지 말고.

 

가미 토가: 토키와 씨는 그렇다 쳐도 왜 두 분은 여기 남아 계신 거죠?

 

리 레이코: 나는 비상시 도덕에 흔들리지 않고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토 유즈루: 난 이 또라이가 이상한 짓 할 때 막아야 돼. 너는 미도리카와를 잡아야 하니까 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까.

 

가미 토가: 하. 알겠습니다. 방해만 되지 마세요.

 

키와 아유키: ….

 

기와라 우시오: 토키와 얜 왜 말이 없대. 혈당 수치가 올라가버린 벙어리 같은 표정 하고.

 

이토 유즈루: 그게 대체 뭔 표정이야?

 

기와라 우시오: 꿀을 먹고 싶은데 더 먹을 수가 없는 벙어리의 표정이지.

 

가미 토가: 그렇게 떠들기만 하실 거면 그만 가 주시죠. 저흰 할 일이 있으니까요.

 

바라 쿠리스: 에이 씨. 장의사로 진로 틀은 이과생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거지. 그래 간다. 가!

 

바라 쿠리스: 진짜 간다? 진짜 갈 거야. 잡아도 갈 거다? 저 외로운 길을 향해 살랑살랑 날아갈 거다?

 

바라 쿠리스: 좀 잡아라. 이것들아! 매정하긴!

 

키와 아유키: 모리. 입 열지 마.

 

리 레이코: 아직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키와 아유키: 할 거잖아.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모든 사람이 알아. 이바라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한 것뿐이니 그냥 공리를 위한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여.

 

리 레이코: 알았다.

 

가미 토가: 웬 일로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시는군요?

 

리 레이코: 좋지 못한 상황에서 발현된 미덕일지언정 부정하지는 않을 뿐이다. 리더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구성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 결단력을 가지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다.

 

롤 브라이트: 토키와 씨. 괜찮으세요? 말에 날이 서 계세요.

 

키와 아유키: 괜찮아요. 제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 사단까지 오게 된 책임은 다 저한테 있는데 침울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죠.

 

바라 쿠리스: = 나 안 괜찮다.

 

기와라 우시오: 저러다가 언젠가 사람 훼까닥 돌지.

 

가미 토가: 하기와라 씨. 왜 안 가십니까? 영화 보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기와라 우시오: 아. 엄마. 나 지금 친구들이랑 꽁트 중이야. 이 판만 끝나고 갈게.

 

롤 브라이트: 토키와 씨. 괴로울 정도로 책임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전 미도리카와 씨와 강제적인 터치가 아닌, 상담법으로서의 터치를 해 볼 생각이니까요.

 

키와 아유키: 네?

 

롤 브라이트: 단지 미도리카와 씨를 묶고 터치를 쓰는 건 정보의 목적으로 그를 대하는 것일 뿐이겠죠. 그건 피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대로 터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제 고집일 뿐이겠죠.

 

롤 브라이트: 그렇지만 처음에는 강제로 하는 터치더라도, 터치를 오래 유지하면 저와 미도리카와 씨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 상태에서 그를 설득한다면… 그와 진정으로 동료가 될 수 있겠죠.

 

바라 쿠리스: 이거 좋다! 완전 묘수풀이!

 

가미 토가: 터치를 오래 지속할 때의 부작용은 없습니까?

 

기와라 우시오: 있겠지. 정신과 정신이 연결되는 거라며. 칼라가 오염되기라도 하면 다 좆되는 거 아니여?

 

키와 아유키: 전 반대예요. 캐롤 씨. 그렇게 잘 풀리지가 않을 거예요.

 

바라 쿠리스: 앗.

 

리 레이코: 어째서지?

 

키와 아유키: 캐롤 씨가 꼭 필요하거나 간절한 순간에만 터치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어. 정신과 정신이 연결되는 거니까 캐롤 씨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거든.

 

기와라 우시오: 그걸 어떻게 암?

 

키와 아유키: 터치를 하면 알게 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어느새 이해하게 돼.

 

기와라 우시오: 터치가 무슨 예수님의 손길이냐. 존나 만능일세.

 

리 레이코: 정숙해라. 그래서 리더의 말은 사실인가?

 

롤 브라이트: 네… 조금은요. 그렇지만 아무리 부담이 되더라도 많이 괴롭지는 않아요. 대화를 하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잖아요. 터치도 그것과 같을 뿐이에요.

 

롤 브라이트: 공리의 증진을 위해 저 자신의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옳은 일 아니던가요. 모리 씨?

 

바라 쿠리스: 공리하살법 받아치기 오오오오오오오졌고요!

 

가미 토가: 저는 반대합니다. 그렇게 쉽게 결정하실 사안이 아니에요.

 

리 레이코: 터치를 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낙관적인 생각이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해가 될 정도로 서로의 정신을 들여다본다는 것 아닌가?

 

리 레이코: 총잡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해할 때까지 그의 정신을 헤집겠다는 것인가?

 

롤 브라이트: 그건 아니지만….

 

기와라 우시오: 이해(물리)를 시키는 거구만.

 

리 레이코: 터치는 대화여야 하기에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너는 말했지만, 결국 너는 네 터치가 강제가 아니라고 총잡이가 받아들일 때까지 그에게 터치를 강제할 생각이다.

 

리 레이코: 총잡이의 비밀을 캐는 것, 총잡이가 저항할 마음도 가지지 않을 때까지 터치를 강제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잔인할까.

 

롤 브라이트: ….

 

이토 유즈루: 하. 쓰발 이거 참 얄궂네… 결국 여기에 죽치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어?

 

바라 쿠리스: 다른 게 있긴 하겠지! 문을 두드려 본다거나. 문 앞에 닭다리를 걸어 놓는다거나

 

기와라 우시오: 뭐든 상관없어. 이제 할 만한 꽁트 다 떨어졌으니 난 간다잉.

 

바라 쿠리스: "앉아!"

 

기와라 우시오: 아니 여기서 더 하겠다고 가영아?! 내가 여기 더 있어봤자 뭘 하겠어!

 

이토 유즈루: 투덜거리면서 잘 받아주네.

 

바라 쿠리스: 피곤하다던가 몸이 아프다던가 그런 이유였다면 나도 그냥 보내줬을 거야. 근데 할 일이 없다고 가는 건 말이 안 돼! 앉아!

 

기와라 우시오: 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데 왜 내가 나무에 올라가야 돼?

 

가미 토가: 무슨 뜻입니까?

 

기와라 우시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란 말도 있잖아. 어차피 해결 못할 일인데 굳이 내가 마음을 써 봐야 의미가 없다고. 내 머리만 아프지.

 

기와라 우시오: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야. 난 웃기는 게 역할이었고. 여기에선 재미 다 봤어. 그게 다라고. 사실 난 캐롤이 미도리카와를 왜 그렇게 신경 쓰는지도 모르겠다.

 

롤 브라이트: 전 상담사니까요. 하기와라 씨의 역할이 웃기는 것이라면 제 역할은 돕는 거예요.

 

가미 토가: 오히려 그렇기에, 저희는 미도리카와 씨에게 마음을 써선 안 됩니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모노로그: 거기까지 해라.

 

도리카와 아쿠토: 뭐?

 

이다 쿠로하: 넌 또 뭐야. 꺼져.

 

모노로그: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카이다 쿠로하를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 카이다 쿠로하는 미도리카와를 생포한 뒤 고문해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다. 서로 죽일 생각이 없이 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도리카와 아쿠토: 참견하지 마. 

 

모노로그: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것은 참견이 아니라 명령이다. 멈춰라.

 

이다 쿠로하: 책 새끼가 짜증 나게. 계속 나타나네… 할 말이 뭐야.

 

모노로그: 너희 둘 다 언질을 받지 못했겠지만, 내일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다. 

 

도리카와 아쿠토: 동기? 그 영상 말고도 또 뭘 보여줄 생각이야?

 

모노로그: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식일 거다. 장담하지. 너희가 서로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죽는 것이 무섭기 때문 아닌가?

 

모노로그: 그렇다면 내일부터 이 탑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너희 둘 역시 이렇게 어정쩡한 싸움 말고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고 싶지 않나?

 

이다 쿠로하: 좆까. 이 또라이 새끼나 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난 이 새끼 죽일 생각 없거든? 누구 좋으라고 얘를 죽이고 처형당하라는 거야.

 

이다 쿠로하: 야. 모노로그 너 이 새끼야. 내 기억 얼마나 지웠어? 이 개새끼는 날 아는데 나는 이 새끼를 모르잖아. 불공평하다고!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 모노로그. 네가 말 좀 해봐. 네가 지웠어? 굳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너 덕분에 이 자식은 자기가 한 짓을 기억도 못 해. 왜 그랬어?

 

모노로그: 미안하지만 난 인위적으로 카이다 쿠로하의 기억을 더 지우지 않았다.

 

도리카와 아쿠토: 거짓말 마.

 

모노로그: 거짓말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가 몇 명을 죽였는지 절대 알 수 없는 처지니까.

 

이다 쿠로하: 잘 아네. 중간부턴 몇 명을 죽었는지 세는 것도 관뒀지.

 

모노로그: 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칼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무뎌진 칼을 다시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새 칼을 사는 것보다 칼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모노로그: 그러나 무뎌질 때마다 스스로 원래 상태를 복원하는 칼이 있다면. 칼갈이마저 필요가 없겠지. 도신(刀身)이 상하지도 않을 테니. 그런 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유용한 비수라 불리기 손색이 없을 거다.

 

 

 

 

 

 

 

 

창살까지 도달한 다음은 쉬워졌다. 내 몸의 로프와 연결된 두 번째 갈고리를 창살에 건 뒤 벽에 발을 걸쳐 추락을 방지했다. 후루미나미가 건넸던 유리칼로 창문에 구멍을 냈다. 팔을 넣기에 충분한 크기의 원이었다. 그 구멍에 팔을 넣어 창문의 잠금 장치를 해제한 나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안으로 진입했다.

 

루미나미 나몬: 상황 어때?

 

무로 시라베: 들어왔어.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는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민 뒤 대답했다. 곧 후루미나미도 밧줄을 타고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을 향해 다가왔다.

 

루미나미 나몬: 윽… 허억… 하아.

 

다만 세 번째라 확실히 힘이 부치는지 그녀의 속도는 불안할 정도로 느렸다. 걱정이 되어 몸을 기울였다. 한 손을 나에게 내미는 동안 나머지 한 손으로 밧줄을 잡을 만한 힘이 없어 보였기에, 내 쪽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 끌어당겼다.

 

루미나미 나몬: 고맙네. 왓슨… 이 짓거리를 세 번 하니 힘에 부치는 군. 역시 자네는 둘도 없는 파트너야.

 

무로 시라베: 아니. 아직.

 

루미나미 나몬: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후우….

 

후루미나미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마유즈미를 보았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올 수 있겠어?

 

유즈미 나데시코: 할 수 있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유즈미가 밧줄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팔을 움직여 서서히 미도리카와의 창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창문 유리를 자르기 위해 몸에 밧줄을 달았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그런 장치가 필요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유즈미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전진했고 마침내 창살 쪽에 도달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조금만 도와줄래…? 몸을 끌어올리기가….

 

무로 시라베: 알겠어.

 

그녀를 끌어올렸다. 마유즈미는 새빨개진, 식은땀이 밴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 파닥파닥 손부채를 부쳤다.

 

유즈미 나데시코: 살았다… 으. 더워그보다 이제부턴 조용히. 알지?

 

무로 시라베: 알아.

 

루미나미 나몬: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후루미나미는 아마 그런 말을 하려 입을 열었겠지만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은 깨끗하지 않았다.

 

더럽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은 다만 살벌했다. 온갖 무기와 총기가 가득 차 있는 방은 깨끗함과 더러움의 X축보다는 안전함과 위험함의 Z축에 있는 것 같았다.

 

미도리카와는 전용실을 떠나며 전등을 꺼둔 것 같았다. 전용실 내부에는 한 점도 빛이 없었지만 밖에서 내려오는 달빛이 충분히 내부를 살필 수 있게 해 주었다.

 

루미나미 나몬: 무서워.

 

무로 시라베: 하긴 이렇게 많은 총기들이 있다니… 내 전용실에 있는 총기조차 화약이 없었는데.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헤아릴 수가 없어. 이거 전부 실탄이 들어 있는 건가?

 

권총 한 정을 반쯤 분해해 확인했다. 실탄과 화약이 들어 있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무기 가지고 나오지 마! 위험해!

 

마유즈미는 목소리를 낮춘 채 내게 경고했다.

 

무로 시라베: 나도 아직 이걸 챙길 생각은 없어. 조사를 시작해 보자.

 

벽에는 빼곡히 총기가 걸려 있었다. 기관총, 권총, 샷건, 수류탄, 연막탄. 무기상 일이라도 했던 것인가. 그러나 꼭 전용실 안에 무기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씩은 정상적인 물건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살벌함이라는 도화지에 찍힌 몇 개의 점과 같이 두드러졌다.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볼법한 물건이었기에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총기 모델들보다 그것들에 집중했다.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 역시 자신이 잘 모르는 총기들보단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물건들을 살폈다.

 

무로 시라베: 빵. 버블티.

 

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도 사람이었네? 이런 걸 다 먹고.

 

유즈미 나데시코: 커피도 있어. 믹스커피가 아니라 원두를 써서 내린 것 같아.

 

전용실의 물건은 주인이 요청만 하면 끝없이 보급된다. 전용실에는 화장실도 있으니 잠을 참는다면 이렇게 오래 버티는 일도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은 불가능하겠지만.

 

전용실은 삶의 요소를 모아 놓은 박물관이었다. 곳곳에 놓인 사각기둥들. 진열대처럼 보이는 기둥들이 더욱 그런 인상을 주었다. 

 

마유즈미가 검 테이프 묶음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이건 붕대네?

 

루미나미 나몬: 마유즈미. 붕대도 알아?

 

유즈미 나데시코: 붕대 정도는 알지!

 

붕대의 묶음을 조금 풀면서 감촉을 확인했다.

 

무로 시라베: 한쪽 면만 약간의 접착력을 가지고 있어. 붕대보다는 면적이 넓은 반창고 같지만… 반창고라고 하기엔 접착력이 너무 떨어져.

 

루미나미 나몬: 총상을 치료해 주는 마법 붕대 뭐 그런 건가? 완전 총게임 같네. 구급상자는 없어?

 

유즈미 나데시코: 구급상자는 안 보여.

 

루미나미 나몬: 아니. 구상이 없다고? 이거 치킨은 물 건너갔군….

 

후루미나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는 회색 마스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의 마스크야.

 

유즈미 나데시코: 왜 이런 걸 쓰고 다니는 걸까? 목이 아픈가…?

 

루미나미 나몬: 그냥 멋으로 쓰고 다니는 걸 수도 있지.

 

회색 마스크를 들어 올렸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마스크 같았지만, 이상하게 무게감이 있었다. 단지 천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듯한 이물감. 그리고 부피감이 느껴졌다.

 

자세한 조사를 위해 안을 해체해보고 싶었지만, 미도리카와에게 우리가 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에 그만두었다. 마스크를 있던 곳에 내려놓고 다른 것을 조사하려던 찰나.

 

루미나미 나몬: 아. 아. 아.

 

유즈미 나데시코: 왓!

 

느닷없이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회색 마스크를 착용한 후루미나미가 있었다.

 

무로 시라베: 뭐지?

 

유즈미 나데시코: 남자 목소리가

 

루미나미 나몬: 이거 그냥 마스크가 아니야. 변조기야.

 

후루미나미가 마스크를 입에 가까이하고 멀리하기를 반복하자 비로소 체감이 되었다. 저것은 변조기였다. 낭랑한 편인 후루미나미의 목소리를 남성의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음성 변조기였다. 

 

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는 왜 이런 걸 쓰고 다녔을까?

 

무로 시라베: 변조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지.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히무로. 잠깐 너도 그 마스크를 써서 말해줄 수 있어?

 

무로 시라베: 해 볼게.

 

후루미나미에게서 마스크를 건네받고 목소리를 내 보았다.

 

무로 시라베: 이렇게?

 

유즈미 나데시코: 이상하게 들려. 그렇지?

 

루미나미 나몬: 적어도 사람 목소리로 들리진 않아.

 

유즈미 나데시코: 남자가 쓸 땐 저런 목소리가 나와… 미도리카와의 목소리는 절대 저렇지 않았잖아. 그냥 평범한 남자 목소리였어.

 

우리 셋 모두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아니 여기서 남장여자 속성을 가져가 버린다고…? 이것들 정말 좋은 건 자기들끼리 다 하네. 이제 나보고 뭘 하라고….

 

무로 시라베: 전용실은 과거와 선호품을 나타내지. 미도리카와가 이 탑에 오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말이 돼.

 

유즈미 나데시코: 이 탑에 오기 전부터 자기 성별을 감추고 있었다는 거야? 굳이 왜….

 

루미나미 나몬: 카이다가 미도리카와를 알아보지 못할 법도 하네. 변조기와 압박 붕대를 써서 자기 신변을 숨겼으니까. 그보다 이제야 의문점이 풀렸어.

 

무로 시라베: 무슨 의문점?

 

루미나미 나몬: 이 탑에 남자는 9명인데 여자는 7명뿐이었잖아. 그런데 16명을 데려올 거면 왜 굳이 8대 8을 맞추지 않았지? 라는 생각을 했거든.

 

루미나미 나몬: 그런데 미도리카와가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성비가 8대 8이 됐어. 좌우대칭!

 

유즈미 나데시코: 의문점이라고 해야 할까 꼭 성비를 8대 8로 맞춰야 할 이유는 없잖아?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의 반대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 23T는 인공지능이니 엄밀히 말해 성별이 없고. 중요한 얘긴 아니니 다른 걸 찾자.

 

유즈미 나데시코: 이건

 

마유즈미가 종이 묶음 같은 것을 찾았다. 셋이 모여 그 안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무로 시라베: 누군가의 통신 내용이 인쇄된 것 같아.

 

루미나미 나몬: 무슨 통신인지 살펴보자.

 

우리 셋은 곧장 통신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바다뱀이 손 씻고 판을 떠난다.'

'그렇게 될 줄 알았지.'

 

 

바다뱀?

 

루미나미 나몬: 깊은 저 바닷속 파인애플.

 

무로 시라베: 노래 부르지 말고 잠시 집중해 보자.

 

유즈미 나데시코: 보글보ㄱ… 앗. 알겠어.

 

 

'초고교급 밀수업자라고 불리니 앞뒤 구분도 안 되는 모양이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가만히 둬선 안 된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마피아 쪽에서 괴물을 푼다는 연락이 왔다. 본보기를 보일 생각이지.'

'자진해서 처리하겠다니 쌍수 들고 환영이지만, 이번에는 허튼짓 말고 제대로 죽이라고 전해. 정신 개조는 더 할 수 없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초고교급 밀수업자. 그게 미도리카와의 재능이었구나. 왜 이렇게 무기들이 많은지 이제야 이해가 돼. 이게 미도리카와의 삶이다 이거지.

 

무로 시라베: 이건 아마 정식으로 희망봉 학원에 스카우트됐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은 아닐 거야.

 

루미나미 나몬: 충분히 스카우트될 만하지 않아? 요즘엔 별의별 초고교급들도 많잖아.

 

무로 시라베: 아니야. 바다뱀은 희망봉 학원에 스카우트된 적이 없어.

 

유즈미 나데시코: 응? 히무로. 뭔가 알고 있다는 눈치네?

 

무로 시라베: 당연하지. 기관에서 추적하던 범죄자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미도리카와에 대한 의문을 느꼈다. 미도리카와는 키가 큰 편이었지만, 그에게서 어른이라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다. 야가미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풍채가 좋고 키가 크더라도, 혹은 카나리처럼 키가 작더라도 나는 이 탑의 모두에게서 청소년 이외에 다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인상은 바다뱀에 대한 내 정보와 상충했다.

 

분명 바다뱀은 이미 20대를 넘겼을 텐데?

 

무로 시라베: 밀수업자라면 불법적인 일을 하다 첩자와 모종의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미도리카와는 카이다를 알고 있었어.

 

유즈미 나데시코: 그래서 미도리카와가 카이다를 계속 견제한 거고…?

 

루미나미 나몬: 이제 전부 알겠구만.

 

 

'바다뱀을 회유하려 들던 끄나풀은 어떻게 할 거지?'

'죽이면 안 돼. 끄나풀은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어. 죽으면 큰 파장이 일겠지. 바다뱀만 죽이면 돼.'

 

 

무로 시라베: 끄나풀?

 

창살 쪽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뭘 흘렸는지 그쪽을 내려다보았으나 후루미나미와 마유즈미는 그 방향과 동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금속음을 내며 떨어진 그것은 갈고리였다. 갈고리의 끝에는 로프가 걸려 있었고, 로프는 점점 짧아졌다. 점점 짧아져 갈고리가 창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 마침내 걸리는 구조 이리라고 나는 직감했다.

 

빠르게 갈고리를 잡아 창 밖으로 던졌다.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과 같지만 지금은 대안이 없었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후루미나미. 빨리 나가. 로프를… 아니. 시간 내에 해낼 수 없겠어. 게다가 사선(射線) 안이야.

 

루미나미 나몬: 에? 지금 뭐라고?

 

후루미나미가 귀에 손나팔을 만들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로 시라베: 나가란 말이다. 지금 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이런 상황에서 '셋이서 몰래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알아낸다' 는 작전은 실패했고 남은 퇴로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문뿐이기 때문이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갑자기 왜 그래?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가 돌아왔다. 창 밖을 통해선 나갈 수 없다. 전용실 문을 통해 나가.

 

두 번째 갈고리. 이번엔 창살에 바로 걸렸다. 안에 있는 사람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근처에 있는 권총을 집어 들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으리라.

 

루미나미 나몬: 뭐?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고?

 

유즈미 나데시코: 어. 어떡하지? 어떡해?

 

창살에 가까이 다가가 이미 걸린 갈고리를 풀어 버리려고 했으나, 순간 불길한 직감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도리카와가 어디에 총을 쏘았는지는 몰라도 권총에 소음기를 착용한 듯했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훨씬 강한 화력을 낼 수 있었기에 응사하지 못했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소음기를 착용한다고 해서 총성이 스테이플러의 찰칵 소리처럼 변하지는 않는다. 총성은 총성이다. 그러나 정황상 미도리카와는 1층. 게다가 창 밖에서 총을 쏘았을 터. 2층의 미도리카와 전용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소음기를 사용한 총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들렸더라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겠지.

 

무로 시라베: 차라리 숨자.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는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밖으로 뛰쳐나간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을 알아낸다는 최초의 목적에 너무 집착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차라리 숨어야 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오…! 너는?! 빨리 숨어어…!

 

무로 시라베: 어차피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 숨길 수 없어. 나도 같이 숨으면 전부 들켜.

 

그렇게 우려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갈고리 총을 이용해 창살까지 올라온 미도리카와는 창문을 통해 그녀의 전용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후루미나미가 묘사한 대로 미도리카와는 총기가 열린 나무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히무로 시라베. 맞지? 내 전용실에서 뭘 하는 거야.

 

무로 시라베: 총 내려놔.

 

혹시 그녀가 방아쇠를 당길 위험에 대비해 나도 총을 겨누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길 확률은 무척 낮겠지만, 혹시 모르니 그렇게 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야말로 내려놓지 그래. 도둑이 너무 기고만장하네.

 

도리카와 아쿠토: 아니. 도둑들이라고 해야 하나. 마유즈미 나데시코의 전용실에서 로프가 연결된 것을 봤어. 마유즈미 나데시코의 동의 없이 그러긴 힘드니 그녀와 넌 결탁했을 테고. 그녀도 이 안에 있겠지?

 

미도리카와가 내게 총구를 겨눈 채 이상한 고글 같은 것을 착용했다. 그 뒤 그녀는 자신의 전용실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그 행동을 보며 나는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의 존재가 들켜 버렸음을 직감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하나는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머지 하나는… 후루미나미 나몬이구나. 이제 숨어도 의미 없으니 나와. 손 들어.

 

미도리카와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감히 등 뒤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약간의 부스럭거림과 신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둘 다 엄폐물에서 나온 모양이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희 셋. 이제 똑바로 대답해. 카이다 쿠로하가 보냈어?

 

무로 시라베: 아니.

 

루미나미 나몬: 아니. Jinx.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면 왜 너희들이 내 전용실을 뒤지고 있는 거지? 카이다 쿠로하의 침입을 막기 위해 며칠 동안 이 전용실 안에만 있었는데. 하필 내가 자리를 비운 새에 너희들이 왔어.

 

도리카와 아쿠토: 아무리 봐도 그게 너희들에게 내 부재를 알려 줬고, 너희들이 그 틈을 타 내 신원을 확인하려 한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린가?

 

유즈미 나데시코: 그건 아니야. 오해야….

 

도리카와 아쿠토: 오해? 그럼 아귀에 맞는 해명을 내놓아 봐. 도망칠 생각 말고.

 

도리카와 아쿠토: 도망치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여 봐.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만들어 줄 거야.

 

미도리카와는 진심이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이다가 날 보냈다는 착각에 빠진 거라면. 그녀는 카이다를 무척이나 증오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미도리카와가 이렇게 섬찟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했다.

 

줄곧 비밀스러움과 침묵으로 일관하며 이렇다 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던 미도리카와는, 지금 그녀는 온몸에서 위기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살기(殺氣)라는 명칭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주변을 장악했다.

 

그녀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총을 겨누었지만 쏘지 않았다. 자기 전용실의 침입자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일련의 행동들은 당장 우리를 쏘아 죽이고 싶지만 규칙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나는 그녀의 사소한 모든 움직임에 집중했다. 떠오르려는 과거를 최대한 외면하며.

 

유즈미 나데시코: 카이다가 보냈다니. 너도 카이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잖아?… 혹시 모르나?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가 누굴 인질로 잡거나 상해를 입혔을 거야. 23T가 자리를 비울 만한 사태는 그 정도뿐이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하긴 짐승만도 못한 게 궁지에 몰렸으니 어떻게 했겠어.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것 말곤 없지.

 

유즈미 나데시코: 네 명이 다쳤어. 23T가 재빨리 도와주러 가지 않았다면 더 큰일이 났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왜 카이다를 도와주겠어?

 

도리카와 아쿠토: 협박을 당했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모든 이를 시기하니까 너희를 자신만큼이나 불행하게 만들려 했을 거야. 역병 같은 것….

 

루미나미 나몬: 협박을 당한 건 아니야. 다만 카이다를 가만히 놔두기엔 너무 위험하고 23T가 카이다를 신경 쓰기엔 네가 있으니까. 네 비밀을 알아내고자 한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너희 셋이 선발대야? 왜 건장한 놈들과 23T가 안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알 일 아니지.

 

무로 시라베: 우리는 선발대가 아니다. 우린 널 제압하려는 이들과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

 

외부에 대한 방어 기제처럼 최초의 내가 조금씩 스며 나왔다.

 

도리카와 아쿠토: 근거를 말해.

 

무로 시라베: 셋만 올 이유가 없었고 굳이 이 구성원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네 말대로 충분히 무력을 가진 인원이나 23T를 동원했다면 작업이 훨씬 수월했겠지.

 

무로 시라베: 그러나 이 침입은 그들에게도 비밀로 이루어졌기에 그들을 동원할 수 없었다.

 

도리카와 아쿠토: 거짓말 마. 그럼 그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데?

 

유즈미 나데시코: ….

 

마유즈미가 조심스럽게 전용실 문을 가리켰다. 미도리카와는 마유즈미의 손짓을 이해한 듯 고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약간의 조정을 가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흴 보내 두고 다른 녀석들은 뭘 하나 했더니… 앞에서 대기? 그게 전부야? 고작 해봐야 23T를 총알받이로 세우고 총을 빼앗은 다음 제압하려는 거겠지.

 

도리카와 아쿠토: 게다가 내가 나온 것도 모른 채 저러고 있어. 카나리가 입을 닫고 있었다는 건 확실해졌네. 저렇게 시간 낭비나 하고 있다면 너희들의 약간 신빙성이 생기지만, 아직 부족해. 왜 굳이 별개로 움직여야

 

루미나미 나몬: 그게 더 재미있을 테니까.

 

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나몬. 미쳤나?

 

나는 조금의 가식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후루미나미는 마스크를 쓴 채 말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생각이 없거나.

 

도리카와 아쿠토: ….

 

고글. 숨어있던 사람을 찾아내고 문 밖의 사람도 볼 수 있다. 탑 밖으로 저것을 준비했다는 것은 조명이 없는 곳에서도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적외선 안경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 때문에 미도리카와의 눈 움직임을 살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방아쇠를 걸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것은 움직였지만,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지 마. 카이다 쿠로하와 같은 수준이 되고 싶지 않아서 참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그보다. 말해. 왜 굳이 별개로 움직였지?

 

루미나미 나몬: 네가 오길 기다리는 방식으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 걸어볼 만한 도박이었지. 그래서 한 거야. 너랑 카나리 대화를 엿들었거든.

 

루미나미 나몬: 꼭 재미로 한 건 아니지만 꼭 효율만을 추구한 건 아니다. 이 말씀.

 

무로 시라베: 이게 더 나은 방법이었기에 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아마 저 여자가 너희 둘을 끌여들였겠지?

 

미도리카와가 총구를 여전히 내게 겨눈 채 고개를 까딱 돌려 후루미나미를 가리켰다.

 

무로 시라베: 사실을 말하자면 네 예상이 맞다. 난 응했고 마유즈미 나데시코는 반대하다 마지막에 찬동했다. 그것은 진실이다.

 

도리카와 아쿠토: 엿들었다니… 하. 저 여자 자리에 카이다 쿠로하가 있었다면 난 지금 쯤 죽은 목숨이었겠지.

 

도리카와 아쿠토: 살다 살다 저런 여자한테 접근과 도청을 허용하다니. 감도 집중력도 다 퇴화했나 봐. 잠에 그 정도로 휘둘리다니

 

루미나미 나몬: 고개를 들어. 미도리카와. 강자한테 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유즈미 나데시코: 후루미나미…!! 미쳤어?!

 

마유즈미가 당황한 채 후루미나미에게 속삭였다.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 아쿠토. 후루미나미 나몬이 네 총격으로 과다출혈사할 경우 너 역시 처형당한다. 섣불리 방아쇠를 당긴다면 나 역시 응사할 것이다.

 

도리카와 아쿠토: 아까부터 총 맞아도 싸게 행동했단 건 다들 아는 모양이네. 그래서 마유즈미 나데시코. 넌 왜 저 이상한 여자에게 동조한 거지?

 

유즈미 나데시코: 나?

 

도리카와 아쿠토: 너는 두 사람을 따를 이유가 없었을 텐데? 물을 필요도 없이 네가 저 두 명에게 협박당한 거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네 동기는 정말 불분명해.

 

도리카와 아쿠토: 기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을 따랐다는 건 네게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걸 의미해.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나데시코가 카이다 쿠로하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건가?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라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그럼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카이다 쿠로하의 사주나 두 명으로부터의 협박이 아니라면, 넌 왜 이런 상황에 놓일 위험을 감수했지?

 

유즈미 나데시코: 캐롤 씨를 돕고 싶었으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갑자기 왜 캐롤 브라이트의 이름이 나와?

 

유즈미 나데시코: 원래 우린 널 제압하는 게 다가 아니라, 캐롤 씨로 하여금 네게 강제로 터치를 하게 만들어서 모든 비밀과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어.

 

루미나미 나몬: 마유즈미. 그런 거 전부 말해도 되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전부 말해.

 

유즈미 나데시코: 모리가 널 죽이겠다고 벼르고 나섰거든. 그렇지만 아무리 네가 우리에게 비밀을 숨기더라도 네가 완전히 악인이라곤 볼 수 없잖아. 완전히 악인이라도 죽게 둬선 안 되고.

 

유즈미 나데시코: 캐롤 씨는 자신이 너한테 터치를 사용해 정보를 알아낼 거고, 그러면 미도리카와를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어. 모리도 받아들였고.

 

유즈미 나데시코: 그런데 난 그걸 원하지 않아… 터치는 그렇게 쓰여선 안 돼. 캐롤 씨에게도 정신적인 부담이 심할 거야. 그건 막고 싶었어. 날 도와주셨으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최소한의 보답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지만 네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어. 너도 과거를 들키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숨기고 있었던 걸 텐데… 미안해. 미도리카와.

 

나는 그제서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총을 겨누고, 그녀가 생존한 방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 헤아리지 못하는 것."

 

무로 시라베: .

 

도리카와 아쿠토: 하아… 너 다 진심이구나?

 

미도리카와가 한숨을 쉬었다. 마유즈미는 반대로 마음을 읽힌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전부 말해놓고서.

 

유즈미 나데시코: 어떻게 알았어?

 

도리카와 아쿠토: 알 수 있으니까. 무슨 이유인가 했더니 결국 날 죽이라는 주장에 반대한 캐롤 브라이트. 그리고 강제로 날 터치하겠다는 주장에 반대한 너라는 거잖아?

 

유즈미 나데시코: 응… 잘못했어.

 

도리카와 아쿠토: 질책하는 게 아니야. 결국 내가 전용실을 너희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란 말이지.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았기에. 혼자서 복수를 이루려 했기에.

 

도리카와 아쿠토: 그럼 이건 내 업보의 한 형태겠어.

 

무로 시라베: 무슨 뜻이지?

 

도리카와 아쿠토: 총 내려. 안 쏠 테니까.

 

총을 내리지 않자 미도리카와 쪽에서 먼저 총을 내렸다. 나도 그것을 확인하고 총을 내려놓았다. 미도리카와에게서 파도처럼 흘러나오던 불길함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희들의 동기가 뭐든 상관 안 해. 카이다 쿠로하와 손을 잡지만 마. 그럼 됐어.

 

루미나미 나몬: 그게 다야? 굉장히 쉽게 보내주네.

 

무로 시라베: 고마워.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와 결탁한 것만 아니면 상관없어. 원래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게 하는 건 싫거든. 그건 그 개자식이나 할 법한 방식이지.

 

도리카와 아쿠토: 너희들이 조사한 것들은 재량껏 잘 보고하던가, 혹은 꽁꽁 감추던가 마음대로 해. 다만 서로 입막음은 알아서 잘하고. 카이다에게 내 정보가 흘러 들어간다면… 굳이 말을 길게 하진 않겠어.

 

유즈미 나데시코: 응. 알겠어….

 

도리카와 아쿠토: 밧줄 타고 나가. 몰래 왔으면 몰래 나가야 할 거 아니야.

 

미도리카와는 우리가 증거품을 가지고 나가는지 소지품을 간단히 검사했다. 후루미나미가 무언가 챙겼을까 염려가 되었지만 그녀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내 몸에 묶여 있던 갈고리 밧줄을 풀었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의 전용실 창문은 열려 있으니 유리를 자르기 위해 추락 방지 갈고리를 쓸 필요는 없어. 그러니 이건 네가 사용해.

 

루미나미 나몬: 내가?

 

무로 시라베: 세 번이나 건넜으니 힘이 부치잖아. 우선 밧줄에 갈고리를 건 다음 거의 도착했을 때 창살로 바꿔 걸어. 내가 끌어올려 줄 테니까.

 

루미나미 나몬: 알겠어.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넌 괜찮겠어?

 

유즈미 나데시코: 걱정 마. 할 수 있어. 마지막에 끌어올려주기만 하면 말이지만… 아하하.

 

루미나미 나몬: 나 매듭 지을 줄 모르는데 아무나 대신 해 줄래?

 

유즈미 나데시코: 내가 할 줄 알아. 하카마 입는 순서 같은 거 배울 때 이런 것도 같이 배웠거든.

 

마유즈미는 능숙한 솜씨로 후루미나미의 몸에 밧줄을 묶었다.

 

혹시 미도리카와가 등 뒤에서 총을 쏘진 않을까 경계했으나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갈고리를 창살에서 풀어서 로프를 회수하기 쉽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입이 가려져 있었기에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나는 마유즈미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무모하게 가서 무모하게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이 계획이 성과를 얻으며 성공한 것도, 성과를 얻었는데 모두의 사지가 멀쩡한 것도 전부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로 시라베: 다들 괜찮아?

 

유즈미 나데시코: 큰일 날 뻔했지만… 그래도 돌아오니까 마음이 놓이네. 후루미나미 너는?

 

루미나미 나몬: 나야 갈고리로 내 무게를 지탱했으니까 쉽게 왔어. 솔직히 팔 힘이 좀 한계였는데 히무로 덕분에 살았지.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너는…?

 

무로 시라베: 나는 몸의 상태에 대해 물은 게 아니야

 

루미나미 나몬: 뭐야. 왜 그래?

 

미도리카와를 마주했을 때. 최초의 내가 조금씩 스며 나왔을 때. 난 과거에 휩싸였다.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끌어모았던 집중력이 사라지자 긴장이 몰려왔다. 손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무로 시라베: 무척이나 위험했어.

 

유즈미 나데시코: 그랬지. 다들 상처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무로 시라베: 단지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야. 우린 총기를 마주했어. 전부 죽을 수 있었다고.

 

나 하나라면 승부수를 걸었을 수도 있다. 내게 익숙한 총이 아니더라도 미도리카와를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미도리카와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난 온전히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위기에 처했던 다른 때가 떠올랐다. 과거가 날 압도했다.

 

"이제 마음 놓으렴. 감시자. 나의 동생아. 가족이란 게 뭐겠니? 서로 돕는 거잖니. 그러니 널 구하지 않을쏘냐! 어떤 철옹성이라도 너를 위해서라면 뚫고 올 수 있다. 너와 우리를 위해서라면."

아군에게 의심을 사고, 포위되고, 간발의 차로 폭발을 피할 때도. 포기해본 적은 없었다. 골몰할지언정 손에 있던 것을 놓고 하느님을 향해 기도를 올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세 명을 마주치자. 나는 순간 나 자신을 포기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이것마저 읽었단 말이지.

 

옛 동업자들이 나눴던 통신의 인쇄물. 이 탑에 오기 전까진 이런 통신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바다뱀을 회유하려 들던 끄나풀은 어떻게 할 거지?'

'죽이면 안 돼. 끄나풀은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어. 죽으면 큰 파장이 일겠지. 바다뱀만 죽이면 돼.'

 

 

도리카와 아쿠토: 결국 혼자 해서는 복수가 완전해질 수 없어.

 

도리카와 아쿠토: 이렇게 된 거. 승부수를 던져 봐야겠어….

 

업보는 뒤에서 앞으로 흐른다. 그것만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