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시: 아까 그거 나이토 목소리였지…?
모리 레이코: 그렇다. 구급상자를 챙겨서 갈 테니 너는 먼저 가 있어라. 이름 없는 남자! 지혈과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나나시: 갑자기 이게 무슨…
모리 레이코: 혼란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가야 한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나이토가 떨어진 것은 명백했다. 아무리 체격이 좋은 그라도 저렇게 큰 소리를 낼 정도로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모리에게 대꾸 없이 달려가려던 나는…
나이토 유즈루: 아니 창문이…! 창문이 날 때렸어! 창문이 날 때렸다니까! 개 같네 진짜!!
난 우뚝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나이토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짜증을 내는 것에 가까운 그 목소리엔 고통이 서려 있었지만 심각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나시: 살아 있어. 나이토는….
모리 레이코: 그렇다고 발을 멈추어선 안 된다. 달려라!
나나시: 네가 말 안 해도 갈 생각이었어!
대꾸도 하지 않고 위층으로 뛰어올라간 모리에게 짜증을 느끼며, 나도 탑 밖을 향해 달렸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후루미나미 나몬: 뭐야. 뭐지. 뭐임? 이걸 어떻게 살았어?
히무로 시라베: 초고교급 응급처치사는 어디 갔지?
나이토 유즈루: 아악. 존나 아프네…!! 이런 썅!
히무로 시라베: 나이토.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나이토 유즈루: 기다려 봐. 씁. 어깨가 존나 아픈데… 빠졌나? 씨팔….
장미 꽃밭에 쓰러져있던 나이토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돌바닥이 아닌 장미 꽃밭의 흙바닥에 떨어졌기에 충격이 덜한 모양이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목을 우두둑 꺾거나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이상이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나이토 유즈루: 다리는 괜찮고… 팔은 좀 욱신거리는데. 손이랑 얼굴에서 조금 피가 나와. 장미 가시에 긁혔나 봐.
나이토 유즈루: 으으으윽…! 짜증 나 미치겠네. 대체 뭐야?!
후루미나미 나몬: 6층에서 떨어져 놓고 어떻게 저렇게 쌩쌩하지…?
나이토 유즈루: 옛날에 고수한테서 낙법을 배운 적이 있거든. 그 땐 이런 거 왜 배우나 싶었는데 드디어 써먹는 날이 오네.
나이토 유즈루: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창문 대체 뭐야? 이거 안 막았으면 엄청나게 아팠을 것 같은데.
히무로 시라베: 뭘 막는다는 거야?
나이토는 창문이 그를 때렸다고 말했다. 그 말에 집중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상당히 묘한 표현이었다. 창문이 어떻게 사람을 때린단 말인가?
나이토 유즈루: 씁… 기다려 봐. 거기 올라가서 제대로 말해 줄게.
히무로 시라베: 아니. 우리가 내려갈게. 무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후루미나미 나몬: 초고교급 응급처치사가 드디어 활약할 시간이다!
어느새 주황색 자켓을 입은 후루미나미와 나는 보건실에서 구급상자를 꺼내오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다이얼로그에서 나나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나시: 나이토! 괜찮아?!
나이토 유즈루: 엇. 뭐야. 나나시잖아? 웬일이냐?
나나시: 웬 일이냐니!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갑자기 떨어지다니.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나이토 유즈루: 아. 그것 참… 여기에서 말하기는 뭐한데.
히무로 시라베: 나나시. 나이토를 잠시 부축해줄래? 후루미나미와 내가 곧 갈게.
모리 레이코: 프로파일러와 연기자인가. 지금부터 구급상자를 이용해 승부사를 치료해야 한다.
막 보건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모리가 계단을 오르며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후루미나미 나몬: 세 명이 오리라. 오늘은 구상 싸움 이길 수 있겠는데?
히무로 시라베: 갑자기 영문 모를 이야기 하지 마.
구급상자. 그녀가 '구상' 이라고 줄여 부르는 그것이 무슨 싸움의 촉매제가 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후루미나미는 어제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서 그것을 언급한 바 있었다.
모리처럼 집요한 사람에게 그 침입에 대해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후루미나미를 입막음했다.
나이토 유즈루: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 솔직히 지금 좀 아프긴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거든.
나나시: 그냥 쉽게 넘어가선 안 돼! 내상을 입었을 수도 있잖아.
나이토 유즈루: 내상 입으면 뭐… 뒤져야지 별 수가 있나? 알 방법도 없는 데다가 여기엔 수술 장비도 없잖아.
나이토 유즈루: 그리고 충격은 꽤 많이 흡수했어. 괜히 격투기 고수들한테서 매일매일 수련받은 게 아니라고.
모리 레이코: 부상은 치료해야 한다. 바로 가도록 한다.
나나시: 나이토. 걷지 마!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해.
나이토 유즈루: 걱정 마 임마. 다리는 안 아파. 걷는 데에는 문제없어.
투두둑. 그 뒤에 금속이 돌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나시의 감탄과 놀라움이 그 소리의 근원을 말해 주었다.
나나시: 맨 손으로 밧줄을 끊어…?
모리 레이코: 부상을 악화시키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라. 객기는 공리를 훼손시킬 수 있다.
나이토 유즈루: 객기?! 객기라고! 오냐. 오늘 객기 한 번 제대로 부려 볼까!
나나시: 그러지 말라니까! 그만 싸워!
히무로 시라베: 빨리 가야겠어.
양호실에서 구급상자를 한 사람당 한 개씩 챙긴 뒤. 우리는 서둘러서 계단을 내려갔다. 3층에 다다르자 나이토가 땅에 떨어진 충돌음이 꽤 컸는지 몇몇 사람들이 깨어나 있었다. 그들은 숙소에서 나오며 비몽사몽함과 약간의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고, 서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바라 쿠리스: 아까 그건 대체 뭐야? 존나 놀랐네 진짜.
칸나즈키 시노부: 동료.
하기와라 우시오: 어 뭐야. 후-히-모가 구상을 세 개 들고 간다. 구상 싸움하나 봐! 야! 신난다!
모리 레이코: 할 일이 마땅치 않다면 우리를 도와라. 빨리!
칸나즈키 시노부: 그러지.
세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우리 뒤를 따랐다. 2층에 가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야가미 토가: 나이토 씨가 떨어지셨어요. 지금은 나나시 씨가 옆에서 부축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캐롤 브라이트: 세상에 대체 어쩌다가… 실족을 하신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설마. 그럴 리가….
23T5U130: 창문을 부수려 했구나. 하지만 난 얘기해줄 수 없었어.
토키와 아유키: 일단 도와주러 가 보자. 빨리!
나이토 유즈루: 그럴 필요 없다. 내가 이 쪽으로 왔거든.
나나시가 나이토를 부축했다고 했지만. 근거리에서 보니 나나시가 나이토의 어깨를 받치고 나란히 걸어온 것에 가까워 보였다. 나이토는 다리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말했고, 또 겉으로도 그렇게 보였다. 그가 6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모리 레이코: 걷는 동안 부상이 악화됐으리라는 생각은 못 했나. 승부사?
나이토 유즈루: 거 참 빡빡하네. 왜 아침부터 옘병이야. 굳이 오르내리는 수고 안 시키려고 이 쪽에서 와 줬는데.
나나시: 괜히 고집을 부린다고 했더니. 그런 이유였어…?
나이토 유즈루: 그래. 그럭저럭 괜찮은데 왜 이렇게 꼴값을 떠냐. 어깨 좀 빠지고. 손이랑 얼굴에 생채기 나고. 팔 아픈 게 다인데.
모리 레이코: 부상은 그게 전부인가?
나이토 유즈루: 어. 그게 다야. 팔에 멍이 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히무로 시라베: 일단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앉아 봐. 얼마나 다쳤는지 보자.
나이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탑 중앙에 있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모리는 구급상자를 열었다.
모리 레이코: 그럼 치료를 시작한다. 연기자. 초고교급 응급처치사를 연기해라. 내가 돕겠다.
후루미나미 나몬: 하하! 연기자가 누군데?
모리 레이코: 그래. 좋다. 더 지원할 사람은 없나?
히무로 시라베: 나.
후루미나미 나몬: 그럼 히무로랑 모리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 줘. 손의 상처가 약간 크니까 거즈 붙이고 붕대 감자. 얼굴은 생채기가 난 게 전부니까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일 거야.
히무로 시라베: 나이토. 자켓 벗어. 팔의 상태를 봐야겠어.
나이토가 가죽 자켓을 벗고 팔의 셔츠를 걷어 보였다. 그의 팔에 커다랗고 시퍼런 멍이 나 있었다.
나이토 유즈루: 와. 이거 좀 심하네. 씨게 맞았어.
하기와라 우시오: 터치는 예수님의 손길이잖아. 캐롤이 손으로 스윽 쓸면 흔적도 없이 낫는 거 아니야? 한 번 해 보자! 말 그대로 약손이네.
나나시와 토키와가 하기와라를 약하게 째려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하기와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왜. 안 돼? 왜 안 돼?
캐롤 브라이트: 불가능해요. 터치는 오직 정신에만 간섭할 수 있어요.
후루미나미 나몬: 손 이리 줘. 나이토.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씻기고 소독약 바를게.
히무로 시라베: 대체 뭐에 타격당했길래 멍이 생긴 거야? 넌 아까 창문이 널 때렸다고 말했어. 말 그대로야?
나는 식염수를 그의 팔에 부으며 물었다.
나이토 유즈루: 씁… 그래. 말 그대로야.
모리 레이코: 창문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다.
나이토 유즈루: 누가 그걸 모르냐? 그런데 그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냥 창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는데 꿈적도 안 하던 그게 부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퍽!
나이토는 마지막 대목에서 주먹을 허공에 내질렀다.
나이토 유즈루: 보이지 않는 주먹이 꽂히는 느낌이었어. 맞기 직전에 뭔가 살기 같은 게 느껴져서 막긴 했는데. 제대로 맞았으면 이거 뼈 몇 대는 나갔을지도 몰라.
모리 레이코: 섣불리 팔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너는 부상자다. 그 사실을 명심해라.
후루미나미 나몬: 소독약 바를게.
모리와 내 도움과 함께 후루미나미는 수월하고 빠르게 응급 처치를 끝냈다. 붕대가 튼튼하게 상처를 감싸고 얼굴에도 밴드가 몇 개 붙자 나이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이토 유즈루: 됐으! 도와줘서 고맙다 얘들아.
히무로 시라베: 우리 때문에 이 꼴을 당한 건데 당연히 도와야 하지.
토키와 아유키: 그러고 보니 그걸 아직 안 물어봤네. 히무로. 대체 뭘 하다가 나이토가 떨어진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창문을 통해 열리지 않은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 했어.
야가미 토가: 그리고 실패하셨군요.
히무로 시라베: 그래. 나이토는 유리칼을 사용하고 몇 번씩 주먹으로 때려도 창문이 깨지지 않았다고 했어.
후루미나미 나몬: 오히려 창문이 나이토를 날려 보냈지. Fus Ro Dah!
캐롤 브라이트: 그럼 일부러 떨어지신 건 아니란 뜻이군요….
캐롤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들의 억양에 신경을 써 보는 사람이라면 캐롤의 한숨에 담겨 있는 약간의 안도감을 감지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있었고, 나나시도 그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나시는 태연함을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나시: 왜 저렇게 된 건지 짚이는 게 있어. 23T?
하기와라 우시오: 어차피 대답 못 할 것 같은디.
23T5U130: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게 알려졌으니 이제 말해줄 수 있어.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하기와라를 뒤로한 채 나는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왜 나이토가 탑에서 떨어진 거야?
23T5U130: 탑에 6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없는 이유는 6층까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6층이 개방되면 자동으로 계단이 생겨.
칸나즈키 시노부: 계단이 그냥 생긴다니.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야. 그치?
23T5U130: 그렇긴 하지.
무당과 인공지능이 현실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자 몇 명이 기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3T는 말을 이었다.
23T5U130: 만약 열리지 않은 공간에 억지로 들어가려 한다면 탑은 절대 응답하지 않아. 그리고 받은 만큼의 충격을 상대에게 돌려주지.
나이토 유즈루: 아. 그럼 내가 튕겨져 나간 게…
23T5U130: 충격이 그대로 너에게 돌아온 거야. 장미 꽃밭에 떨어져서 다행이지. 돌바닥에 떨어졌다면 아무리 너라도 몇 군데 부러졌을 거야.
나나시: 저 높이에서 떨어져도 부러지는 거로 끝나다니. 그것도 엄청나게 대단한데….
나이토 유즈루: 잠깐. 그럼 이 멍은 그냥 내 주먹 내가 쳐맞았단 거 아니야?! 아오 썅! 쪽팔려!
나이토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는 그의 팔에 남은 멍을 을 주목했다. 비스듬하게 난 그 흔적은 나이토가 충격을 받는 순간 몸을 비틀었음을 알려 주었다. 상당한 순발력이다.
야가미 토가: 그렇다면 결국 창문을 통해 개방되지 않은 층으로 들어갈 순 없겠군요.
히무로 시라베: 탑을 더 탐사하기 위해선 살인이 발생해야 한다는 거겠지. 우선 우리에게 개방된 곳을 중점으로 흰 물건을 찾자.
하기와라 우시오: 근데 이 좁은 탑 안을 샅샅이 뒤져도 안 나오는 거 보면 장미 꽃밭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저 넓을 곳을 다 뒤져야 하나?
나이토 유즈루: 정 안되면 거기라도 찾아봐야지. 일단 그 책 새끼가 한다던 중대 발표가 뭔지 들으러 가기나 하자. 밥도 먹어야 해.
모리 레이코: 승부사. 다시 앉아라. 아직 치료하지 못한 부상이 남아 있다.
나이토 유즈루: 치료 못 한 부상? 멍 말이야?
모리의 말에 나이토는 다시금 털썩 바닥에 앉고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모리는 뚜벅뚜벅 나이토의 지근거리로 이동했다.
모리 레이코: 아니. 어깨 말이다.
나이토 유즈루: 그래. 좀 나갔지. 아프긴 한데 이건 어쩔 수가 없어.
모리 레이코: 응급처치사를 연기하는 연기자. 승부사의 어깨를 다시 맞출 수 있겠나?
후루미나미 나몬: 할 수 있는데 손이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감안해 줘.
히무로 시라베: 하지 마.
나이토 유즈루: 절대 하지 마! 큰일 날 소리!
모리 레이코: 나는 할 수 있다. 실수도 하지 않을 것이다.
후루미나미의 말보다 모리의 말에 나이토는 더욱 크게 놀랐다.
나이토 유즈루: 전혀 믿음이 안 가! 걍 냅둬.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모리 레이코: 스스로를 한계 짓는 일은 기피되어야 할 악덕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세울 수 있는 장벽은 생물종으로서의 한계뿐이다.
나이토 유즈루: 뭔 말 하고싶은진 대충 알겠는데…
모리 레이코: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 승부사요 기사가 아니던가? 어깨가 빠져버린 네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할 생각인가?
나이토 유즈루: 고작 그런 말로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내가 응할 것 같냐?
응하겠지.
나이토 유즈루: 열 받네 진짜! 한 번 해 보자 그래! 대신 제대로 해! 살살 제대로 하라고!
모리 레이코: 노력하겠다.
꽤 커다란 우두둑 소리와 함께 모리가 그의 어깨를 끼워 맞췄다.
자존심 때문인지 부상에 익숙한 것인지 6층에서 떨어졌음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던 나이토였지만, 그는 잠시 주변의 모두가 놀랄 정도의 성량으로 고통의 절규를 내질렀다.
길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마유즈미가 나이토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것으로 우리는 모두 식당에 모였다. 모노로그가 준비했다는 중대 발표를 듣기 위해서였다.
토키와도 모노로그가 직접 발표하는 것이라면 중대한 사안일 것이라며, 잠시 23T의 감시를 뒤로 하고 식당에 왔다. 모리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키와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리라.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직도 심장이 콩닥콩닥거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본 건 처음이야. 애초에 침대에서 자 본 것도 이 탑에 온 뒤부터지만….
나이토 유즈루: 놀래켜서 미안하게 됐다. 그런데 진짜 아팠다고!
나이토는 다친 만큼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막대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했다. 그와 야가미만이 손을 대던 양념 없이 익힌 닭가슴살이 전부 그에게 돌아갔다.
우리는 적당히 배를 채우고 모노로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리 레이코: 그러나 어깨는 맞춰졌다. 기약 없이 고통이 이어질 바에야 한 번의 큰 고통으로 끝내는 편이 낫다. 그 높이에서도 떨어져도 죽지 않는 육체는 분명 공리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토 유즈루: 저거 말 끝마다 공리. 공리… 모노로그는 대체 언제 와?!
모노로그: 그래. 기다렸나?
모노로그가 탁자를 뚫고 나타났다.
모노로그: 어제 모두에게 예고했다시피 중대 발표를 하겠다.
야가미 토가: 아마 추가적인 동기겠죠.
히무로 시라베: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묻자 야가미는 답했다.
야가미 토가: 모노로그 씨는 저희가 죽고 죽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살인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들의 소중한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 줘 저희가 죽이기를 유도하고 있죠.
야가미 토가: 그러나 저희들은 좀처럼 살인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흘 째인가요? 그동안 저희는 질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카이다 씨나 미도리카와 씨의 존재도 불구하고요.
히무로 시라베: 내버려 두면 그 둘이 알아서 서로를 죽일 것 같지만. 자신도 죽는다는 패널티를 가진 이상 섣불리 서로를 죽이진 않겠지.
후루미나미 나몬: 그래서 새로운 동기를 가져왔다는 거야?
모노로그: 헤쳐나갈 수 없는 역경이어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3T5U130: 불합리한 역경이죠.
다이얼로그를 통해 23T의 매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모노로그: 닥쳐라. 예상한 바지만 언제나 실망스럽다. 소중한 사람을 잃자 그렇게 괴로워하고 당황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내는 자들.
모노로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며 우리 전부를 훑어보았다. 몇 명이 찔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노로그: 무슨 일이 일어났지? 과거를 전부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왜 소중한 것을 잃었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거냐?
히무로 시라베: 다들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거야. 살인을 저지르지 않도록. 넌 우리들을 폄하할 자격이 없어.
모노로그: 그렇다면 나는 적기에 찾아온 셈이군. 그것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지금부터 추가적인 동기를 발표하겠다.
모노로그의 종이 입술이 웃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움직였다.
모노로그: 단 한 번의 살해에 한해서. 검정의 처형은 집행되지 않는다.
나나시: 뭐?
모노로그: 말 그대로다.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학급재판은 열리지만, 검정의 처형은 집행되지 않는다. 살인을 들키더라도 살인자는 죽지 않는다. 이른바 처형 면제권이라고 부르면 편할까.
하기와라 우시오: 아. 이거 좆됐구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다음에는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그저 눈을 멀뚱 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반쯤 그렇긴 했지만 난 이 선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히무로가 모노로그에게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즉 살인자가 학급재판에서 패배하더라도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야?
모노로그: 바로 그렇다. 혹하는 이야기 아닌가? 유혹적이겠지.
야가미 토가: …그런 방법을 쓰시는군요. 확실히 이 동기는 치명적입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시발. 이거 개좆됐다 진짜로.
이바라 쿠리스: 욕 좀 그만 해 븅신아. 그래서 뭐가 그렇게 좆됐는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자기도 욕 하고 있으면서!
하기와라 우시오: 지금 모리 눈 뒤집어깐 거 보이잖아!
하기와라가 호들갑을 떤 것관 달리, 모리의 눈은 평소와 같이 메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모노로그의 선언이 그녀의 행동에 어떤 파란을 불러일으킬지.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나시: 모리. 너…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구나.
모리 레이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나시: 네가 누군가를 죽이면 너도 처형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누굴 죽이더라도 넌 처형되지 않아. 그러니 넌 지금이 위험인물을 제거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할 거야.
토키와 아유키: 그런 방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
토키와는 말을 이었다.
토키와 아유키: 살인 게임. 위기 상황. 동기. 어떤 말로도 살인은 포장될 수 없어.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는 동물이 아니야. 사람이야.
야가미 토가: 그렇지만 카이다 씨는 저희를 죽일 수 있을 겁니다. 미련 없이요.
야가미가 착잡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야가미 토가: 학급재판과 검정 시스템은 살인에 어드밴티지를 더하지 않습니다. 패널티를 더합니다. 살인을 들키면 죽는다. 그 패널티는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야가미 토가: 당장 미도리카와 씨와 카이다 씨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 이유도 그것에 있습니다. 미도리카와 씨는 일전에 카이다 씨에게 저격 총을 겨누었을 때 그녀를 사살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히무로 시라베: 쏘면 자기도 죽으니까. 그걸 알고 있었으니 쏘지 않았던 거야.
캐롤 브라이트: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거군요….
하기와라 우시오: 이제 카이다는 수틀리면 우릴 죽일 수 있어.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죽이겠지 아마?
토키와 아유키: 그렇다고 우리 쪽에서 카이다를 죽일 순 없어.
하기와라 우시오: 꼭 그러자는 건 아니고. 그냥 등만 떠밀어주잔 거지. 미도리카와가 카이다를 죽일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잖아! 그럼 꼭 우리가 죽이는 건 아니야.
이바라 쿠리스: 우리가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지! 결국 똑같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네 말이 맞아. 똑같지.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어. 우리 쪽에서 먼저 카이다를 잡아 죽여야 한다고.
하기와라 우시오: 왜냐하면 카이다 쪽에서 우릴 죽일 테니까. 아니면 미도리카와를 죽이던가 그럴 거야. 그쪽에서 우리 중 하나를 죽여놓고 다시 탑 밖에 숨는 걸 지켜볼 바에야 선수를 치는 게 나아.
히무로 시라베: 아니. 카이다 쪽에서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거야. 처형될 걱정 없이 살인을 저지를 기회는 한 번뿐이니 낭비하고 싶지 않겠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사람을 죽이는 게 기회라니. 어쩌다 이렇게…
마유즈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가 느끼는 공포를 가늠하던 나는 어느새 내가 그것과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상황이 잘못되어 가는 공포.
토키와 아유키: 카이다와 미도리카와는 서로 적대했으니 이제 서로를 죽이려고 하겠지. 막아야 할 텐데…
모리 레이코: 막을 필요가 없다.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며 자멸하는 것이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의 이상적인 형태다. 물론 두 호랑이 중 하나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야가미 토가: 그렇죠. 그렇기에 다른 이들도 살인을 하려 들 겁니다. 사람을 죽여도 처형되지 않을 기회를 두 사람에게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요.
야가미 토가: 가까운 시일 내에 살인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살인을 저지를 거예요. 이제 누구도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신뢰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캐롤 브라이트: 설마… 그렇게 되겠어요? 절박하죠. 누구나 살고 싶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말만큼 쉽지 않아요. 누굴 죽이겠다는 생각도 어렵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더더욱 어려워요. 마음가짐도 필요할 텐데….
하기와라 우시오: 니은니은. 살인은 꼭 발생해. 사람들이 살인을 안 하는 이유는 인류애나 도덕성이나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살인하다 걸리면 인생이 좆되니까지. 이 탑에서도 그랬어.
나이토 유즈루: 야. 그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법 때문에 죽일 수 없는 경우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뭐가 달라?
나이토 유즈루: 당연히 다르지! 만난 지 며칠 됐는데 벌써 누굴 죽일 만큼 미워하겠냐? 미도리카와랑 카이다는 그러는 것 같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잘 지냈잖아!
나이토 유즈루: 아무리 처형당할 위험이 없어져도 너라면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냐? 난 못 해!
나이토의 말을 듣고 나는 나흘 동안 내가 가졌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모리처럼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솔직히 많은 인연들이 나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 친구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내게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일까? 과거를 잊었기에 현재에만 집중한 결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탑에 오게 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서로를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 이라는 범주에 넣었을 것이라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모리 레이코: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죽일 수 있다. 위기감은 개인의 등을 떠민다.
나이토 유즈루: 죽일 수 있겠지! 그런데 '살인을 해도 안 죽을 수 있다고? 그럼 죽여야지.' 이렇게 나오진 않을 거 아니야. 죽이기 어려울 거라고.
모리 레이코: 살의를 가질 이유는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다. 단지 그 사람을 죽이겠다는 심리적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면 죽일 이유를 몇 개나 만들 수 있다.
후루미나미 나몬: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입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지금 뭉쳐야 한다는 거야! 미도리카와를 도와서 카이다를 담가버리면 결속이 깨질 일도 없잖아. 오히려 단단해질 거라고!
하기와라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웃음기를 싹 빼기보다는 이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다른 이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웃음기를 빼고 말하는 것보다 위험하게 들렸다.
나나시: 카이다가 저 장미 꽃밭에 숨어 버리면 23T라도 찾기 힘들 거야. 무작정 찾아 나서면 안 돼.
23T5U130: 나나시 말대로야. 난 카이다와 만났을 때 그녀를 제압할 수 있지만 그녀를 만나는 건 별개의 문제야.
23T5U130: 탑 주변을 정찰하며 그녀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지만, 탑 밖으로 나가서 그녀를 찾아오긴 어려워.
히무로 시라베: 카이다가 장미를 섭취해서 영양을 보충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 그녀가 지쳐서 탑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야가미 토가: 그동안 탑 안에서 살인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우리 쪽에서 가야 한다니까. 이바라. 나나시. 캐롤. 너흰 알잖아. 맞아 봤잖아?
나나시: 엄청나게 강했지. 카이다는….
내 몸이 왜소한 편에 속하는 것과는 별개로. 카이다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타격 한 번 만에 바닥에 고꾸라질 정도였다. 이바라는 카이다가 약간 떠민 것만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캐롤 씨는 손가락 한 개도 카이다에게 스치지 못했다. 하기와라는 제압되었다.
만약 그녀를 억제하는 미도리카와. 그리고 그의 총이 탑에서 사라진다면 그녀를 막기는 매우 어려워질 터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걘 너무 위험해. 이 기회에 죽여야 해! 난 걔랑 같은 지붕 아래에서 못 살아. 말 그대로 같은 지붕!
칸나즈키 시노부: 탑이니까 같은 지붕이긴 하네.
칸나즈키의 무심한 중얼거림 다음으로 하기와라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이어졌다.
캐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는 위험하죠.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예요. 누가 죽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요.
모리 레이코: 무기가 없는 채로 첩자에게 맞서는 것은 불필요한 희생만을 낳을 뿐이다.
하기와라 우시오: 무기가 없으니까 안 된다고? 아 그러셔? 그럼 무기가 있으면 당장 일어날 수 있겠네?
모리 레이코: 확률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이바라 쿠리스: 무기가 있어도 그렇게 맞서선 안 된다니까!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덤비는 건…
토키와 아유키: (휘리릭!)
모두의 시선이 토키와의 쪽으로 쏠렸다. 그가 호루라기를 사용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다들 말을 멈추고 토키와가 무슨 말을 꺼낼지 집중했다.
나는 그 눈빛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을까. 이런 답 없는 상황에서 기발한 묘수를 누군가가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담겨 있는 눈빛. 대부분이 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토키와마저 그랬다. 그도 누군가에게서 조언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에 와서는 그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다.
토키와 아유키: 일단… 해산하자.
토키와 아유키: 방도를 생각해 볼 테니까. 일단 해산해. 지금 더 이야기해 봤자 서로 간극만 넓어질 뿐이야.
토키와 아유키: 되도록이면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마. 위험하니까.
위험하다. 어째서 위험한가? 카이다는 탑 밖에 있고 미도리카와는 방에 갇혀 있도록 23T가 감시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숙소 밖으로 나와선 안 될까?
토키와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고도 치명적이었다. 살인의 패널티가 없어지는 것 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노리리라는 것.
미묘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우리들은 말없이 식당에서 나왔다. 난 그 눈빛 속에서 불신을 보았다.
나나시: 캐롤 씨. 마유즈미. 토키와. 저희 얘기 좀 하자.
마유즈미 나데시코: 저희 얘기 좀 하자고?
나나시: 존댓말이 섞였네… 아무튼. 얘기 좀 해 보자.
캐롤 브라이트: 저는 좋아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니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나는 히무로랑 후루미나미도 같이 얘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캐롤 브라이트: 히무로 씨와 후루미나미 씨요? 같이 이야기한다면 좋겠죠.
나나시: 아니. 우선 이 네 명만. 왜인지는 나중에 말해 줄게.
캐롤 브라이트: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키와 아유키: 나는 거절할게.
솔직히 그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나시: 왜?
토키와 아유키: 터치를 받았던 사람들만 모았다는 건. 터치와 관련된 이야기겠지?
나나시: 응. 내가 자는 동안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들었어.
캐롤 브라이트: 아… 그것 말이군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지만. 우리가 강제적인 터치를 금지할 권한이 있을까?
나나시: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우리는 알잖아. 터치를 경험해 본 우리는 알잖아. 그건 터치를 하는 사람에게나 당하는 사람에게나 너무 괴로운 일일 거야. 잘못하면 두 사람의 정신이 뒤죽박죽 뒤섞일 수도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정말 그래? 난 그런 건 못 느꼈는데….
캐롤 브라이트: 저도 강제적인 터치를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어떤 부작용이 닥칠지는 저도 확실하게 알진 못해요. 나나시 씨의 말처럼 정신이 뒤섞일 수도 있지만 더 가볍게 끝날 수도 있어요. 더 끔찍하게 끝날 수도 있지만요.
나나시: 가볍지는 않을 거예요. 터치를 두 번 받아 봤으니까 저는 알 수 있어요. 아무튼 강제적인 터치는….
나나시: 하아… 나도 모르겠어… 미도리카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상 터치를 악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해서 나올 텐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겠지?
토키와 아유키: 터치에 대한 논의라면 난 참여할 수 없어. 난 캐롤 씨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리더이기도 해.
토키와의 목소리는 매우 사무적이었고, 공적이었다. 여느 회사의 상반기 업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듯한 말투였다.
캐롤 브라이트: 이해해요. 토키와 씨.
토키와 아유키: 터치가 이 탑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쓰일 수 있는 한. 나는 사적인 입장에만 머무를 순 없어. 내가 아무리 그러고 싶다고 해도… 나에게 리더라는 역할이 있는 이상. 난 캐롤 씨의 의사를 존중해줄 수 없어.
토키와 아유키: 다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싶을 거야. 그럴수록 내가 모두를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해. 귀감이 되기 위해선 나는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해. 이해해 줘.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터치가 악용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지만 감히 그의 앞에선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아무도 추궁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듯한 그에게. 우리 중 누가 섣불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제일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적어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아까 나온 얘기. 어떻게 생각해?
나와 후루미나미는 그녀의 전용실을 향했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보기 위함이었다.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세 명이 이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어떤 정보를 풀고 어떤 정보를 통제해야 하는가?
마유즈미와도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랐으나. 후루미나미는 우선 단 두 명이서 이야기해 보자며 나를 끌어들였다. 그녀의 고집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니 우선 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응했다.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를 도와서 카이다를 죽여야 하는지 말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미도리카와가 원한을 가진 상대가 카이다뿐이라면 우리 쪽에서 손을 쓸 수도 있지 않아?
히무로 시라베: 하지만 살인은 안 돼.
후루미나미 나몬: 그 입장만큼은 강경하네?
히무로 시라베: 사람의 목숨은 가볍지 않으니까. 단 두 명이서 결정할 순 없어. 우선 마유즈미와도 얘기를 해 보자. 이 안건에 대해 논하겠다면 우리 둘 만으론 안 돼.
후루미나미의 전용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잠깐 기다려 봐.
히무로 시라베: 왜?
후루미나미 나몬: 네 얘기해 줘. 저번에 해 준다고 약속했지?
히무로 시라베: 그랬지. 굳이 지금 듣고 싶다면 난 말리지 않겠지만…
후루미나미 나몬: 지금 당장 듣고 싶어. 어차피 지금 다른 사람과 이 사안에 대해 얘기해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일어나진 않을 거야. 마유즈미에게도 우리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자고.
단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임을 알지만 명분은 충분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난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미나미 나몬: 좋아! 편히 앉아. 어디 보자. 마실 게 있을 텐데.
잠시 여러 물건이 즐비한 전용실을 샅샅이 뒤진 결과 후루미나미가 이온음료 두 통을 가지고 왔다.
후루미나미 나몬: 한 잔 해.
히무로 시라베: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음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후루미나미는 아무 말 없이 이온음료의 뚜껑을 열더니 몇 모금을 꼴깍꼴깍 마시고 내게 건넸다.
후루미나미 나몬: 독은 안 들어있어. 봤지?
나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이온음료를 가지고 가려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게 되었다.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후루미나미 나몬: 왜… 불러…? 이이익….
히무로 시라베: 나는 네가 입을 대지 않은 이온음료를 마시고 싶어. 양해해줄 수 있겠어?
후루미나미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이온음료를 두 손으로 잡고 놔주지 않았다.
후루미나미 나몬: 음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그럼 내가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한 걸 가져가야지!
히무로 시라베: 독이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대접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거절하려 했는데 타당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핑계를 댈 걸 그랬나. 나는 후루미나미가 이온음료를 마시고 내게 건넸을 때 외통수에 걸린 기분을 느꼈다. 그녀에게 무례한 말을 해서 살인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당분간은 서로 거리를 벌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잘 풀리지는 않았다.
히무로 시라베: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너도 이 탑에 갇힌 동료인데 널 그렇게 대하겠다고 생각한 건 너에 대한 모독이었겠지.
이온음료가 내 손과 후루미나미의 두 손 사이에서 부들부들 떨렸다.
후루미나미 나몬: 왜 사과하는지… 끙. 이유를… 모. 모르겠는데.
히무로 시라베: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거절하지 않을게.
후루미나미는 끝까지 이온음료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분명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데 억지로 빼앗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이었다. 나는 결국 그녀가 입을 댄 이온음료를 들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후후후….
본래라면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후루미나미의 의도가 너무 다분했기에. 나는 이온음료 통을 기울여 입을 대지 않고 내용물을 마셨다.
후루미나미 나몬: 앗!
히무로 시라베: 잘 마셨어. 고마워.
후루미나미 나몬: 진짜 철벽을 치네… 뭐. 그러라고 대포가 있는 거지만. 후후.
히무로 시라베: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보다 네가 기억하는 줄거리가 어디까지였지?
후루미나미 나몬: 너는 다수의 재능을 가지는 연구의 실험체였고. 불완전하게나마 너는 완성되었어. 카텟 기관이 널 구조했고 넌 카텟 기관에 합류했지. 거기까지였을거야. 아마.
거기부터구나. 내 가장 암울하고 그랬기에 점점 밝아지는 시대부터.
히무로 시라베: 기관에 합류하고 시간이 지났어. 나는 공적을 쌓았지. 카텟 기관은 끝까지 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난 계속했어.
후루미나미 나몬: 뭘 위해서? 넌 불완전하다곤 해도 재능을 가지고 있었잖아. 카텟 기관이 너한테 그렇게 모질게 대했다면 그냥 나오지 그랬어?
히무로 시라베: 그럴 수 없었어.
후루미나미 나몬: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히무로 시라베: 가장 큰 이유는 카텟 기관에서 나갈 경우 내 입지가 더더욱 불리해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히무로 시라베: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설령 재능이 불완전하다고 해도 말이야. 카텟 기관은 그런 무리들로부터 날 보호해줄 수 있었지.
후루미나미 나몬: 넌 총이랑 관련 있는 삶을 산 것 같은데 그냥 다 쏴 죽일 순 없었어? 양손에 권총을 들고 건 카타로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다 그냥….
히무로 시라베: 난 남들보다 사격 솜씨가 조금 뛰어날 뿐이야. 한량 무리라면 모를까 대규모의 인원이 나를 목표로 잡고 습격한다면 저항할 수 없어. 개인이 장비할 수 있는 탄창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히무로 시라베: 물론 카텟 기관이 아니라 다른 단체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카텟 기관을 떠난다는 것은 내가 카텟 기관과 합일될 수 없었다는 걸 의미해. 다른 단체에서 날 품어도 좋을 일이 없다고 소문이 퍼질 테고. 날 받아주는 곳은 매우 소수가 되겠지.
히무로 시라베: 난 굳이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진 않았어. 가능한 만큼 최대한 버텨 보려 한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다음 이유는?
히무로 시라베: 나를 카텟 기관으로 데려온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겠지.
후루미나미 나몬: 그 사람이 네 연인이야?
아무 말 없이 후루미나미를 바라보자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미안. 그냥 궁금해서.
히무로 시라베: 말해줄게. 사실 카텟 기관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후루미나미 나몬: 그 정도로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대답하지 않은 채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히무로 시라베: 그녀는 내가 카텟 기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 금수라고 불린 나였음에도 그녀는 날 포기하지 않았어.
후루미나미 나몬: 금수…?
히무로 시라베: 기관원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야.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는, 저 밖에 모르는 금수.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무뚝뚝했거든.
후루미나미 나몬: 응. 그건 알아. 가끔씩 말 끝에 다. 다. 붙일 때처럼 말이지? 딱딱하게 말하고. 표정도 딱딱해지고.
히무로 시라베: 나는 독재 체계를 만들어내려던 재단의 산물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카텟 기관을 배신하리라 여겼지. 만들어진 목적을 완수하리라 여겼어.
히무로 시라베: 카텟 기관의 기밀을 캐낸 뒤 기관을 배신하고 동료들에게 합류하리라고. 거의 모든 기관원이 날 적대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차마 목소리를 낼 수 없었어.
히무로 시라베: 그렇지만 그녀는 날 포기하지 않았어.
시라유키 히메리가 나의 요직 투입을 건의했다. 익명 투표 결과 막대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익명의 건의로 시라유키 히메리의 징계 조치가 안건에 올랐다. 익명 투표 결과 근소한 차로 가결되었다.
"으윽… 이 꼰대들이 진짜! 사람 짜증 나게 만드네!"
"결국 이렇게 되었다. 시라유키 히메리. 카텟 기관의 대부분은 아직 널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젠 카텟 기관의 수뇌부들은 나 뿐만 아니라 너 역시 적대하게 되었다."
"……"
"개인의 힘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정치적 암투에선 구성원의 수가 가장 중요하다. 명분과 뜻 만으론 승리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지금이라도 포기하자고? 그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야?"
"본질적으로 그렇다."
"어째서? 단지 카텟 기관이 널 적대하기 때문에?"
"내가 변화할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라유키 히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회귀한다. 배워도 그것이 될 수 없다. 이해할 뿐 변화할 순 없다. 그것은 내게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는 것과 같다. 어떨지 이해할 순 있지만 내겐 여섯 번째 손가락이 없다."
"넌 너 자신보다 나를 더 아끼려 들고 있어."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그녀 자신에게도 그 말이 적용된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걸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더 얽혀서 손해 보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라는 얘기지? 그런데 내가 그만두면 너 혼자 뭘 어떻게 하려고."
"……"
"내가 널 이 곳에 데려와 놓고 방치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난 어렸을 때 강아지를 주워 와도 책임감 있게 잘 키웠거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농담. 적절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던 거 그대로 해야지. 잘못한 게 없는데."
"이 무의미한 일을 계속하겠다는 건가?"
"무의미하지 않아. 중요한 건 희망을 잃지 않는 거야.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그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분명 달라지고 있어.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그리고 보려 들지 않았을 뿐. 사실 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어. 히무로. 만물이 굳은 채로 있을 순 없어. 그러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단 얘기는 하지 말아 줘."
시라유키 히메리의 눈빛에 우수가 어렸다. 그녀의 눈이 약간 습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해. 뭐든 척척 해내는 똑똑한 미인 연구자. 성격도 좋고 모자란 게 없는 만능 초인. 그게 내 평가야. 대부분은 맞는 말이지."
"세간의 네 평가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알아. 그냥 과장 좀 해 봤어.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런 사람에서 많이 동떨어졌으니까. 난 아직 많이 미숙하고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히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때면 혼자 머리를 싸매지. 너도 알잖아. 꽤 추태를 보여 줬으니까."
"넌 추하지 않았다. 추하다는 말은 끊임없이 노력한 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봐. 이렇게 말해 주잖아. 그리고 그 말은 너한테도 적용된다는 거. 눈치채지 못한 거야?"
"무엇 말인가?"
"말로는 포기해라. 체념해라. 무의미하다 하면서. 넌 계속 노력했잖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넌 계속 연구해 왔어. 요즘은 잠을 이틀에 한 번 자지 아마?"
"단순 업무에는 누구도 내게 간섭하지 않기에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을 이유 중 하나야. 네게 가능성이 있다는 걸 외면할 수 없고, 난 널 책임져야 하고, 그리고…"
시라유키 히메리는 내 동공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넌 아름다우니까."
그녀의 표현은 추하다는 말이 끊임없이 노력한 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내 발언을 따온 것 같았다. '추하다' 의 반의어는 '아름답다' 였다.
그렇다면 너 또한 그러하다.
히무로 시라베: 그녀는 날 도왔고. 난 그녀를 도왔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녀는 나를 도왔어. 내 은인이야. 그녀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절대 여기까지 해낼 수 없었을 거야.
히무로 시라베: 나중에 그녀의 목적에 대해서도 알게 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이 정도면 충분히 말해 줬지?
후루미나미 나몬: 그래… 응… 충분했어. 흐윽….
나는 후루미나미의 얼굴을 보고 조금의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후루미나미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조용한 경의의 박수를 치고 있었다.
히무로 시라베: 갑자기 왜 그래?
후루미나미 나몬: 너무 멋진 이야기라서… 나도 모르게 울어 버렸어. 흑. 훌쩍…
후루미나미 나몬: 아아.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남자와 그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나눠 준 여자.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두 사람… 흑…
후루미나미 나몬: 세상 어디에 이런 관계가 또 있을까? 정말 너무 멋져. 히무로… 두 명이서 하나가 되고 두 명이서 둘 이상이 되다니. 으흑…
히무로 시라베: 그렇게까지 울 이야기였어?
갑자기 울음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감정을 엿본 느낌이 들었다. 금수에서 사람이 되고 많은 것을 배운 나였지만 이것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기자이기에 어떤 이야기에도 깊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더더욱 그녀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무엇보다 날 의아하게 만든 점이 있었다.
그녀의 눈물에선 연기를 하는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울고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초고교급 연기자다. 그녀의 특기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녀는 메소드 연기를 통해 배역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기행을 저지른다. 맞춰주다 보면 끌려다니게 되어 있다.
그녀는 날 속이는 행위에서 상당한 만족감을 얻는 듯하다. 적당히 받아주되 선을 넘게 두지 말자.
후루미나미 가문은 시장 독점적인 성향을 띄고 있으며 내부에는 친자와 양자 사이의 차별이 존재한다. 그들은 후루미나미의 유전적 순수성이 이어진 자들만이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후루미나미 나몬 본인의 반응으로 보아 근친혼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후루미나미는 연기자로서 특정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어쩌면 그녀 나름대로의 완전성을 향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기행은 이따금씩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덮어놓고 부정할 순 없다. 우선 대화를 해 보자.
내 행적을 알고 싶어 하는 눈치가 있지만 그녀가 카텟 기관의 정보를 캐내려는 것은 아니다.
나와 손을 잡고 그녀가 입을 댄 음료수를 건네는 등 신체적인 접촉을 유도하는 것은 그녀의 장난이 발전된 형태이다. 선을 넘는다면 불쾌감을 표시하자.
처형당할 위험이 사라지고 살인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녀와 거리를 두려는 것은 옳지 않다. 다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후루미나미는 메리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연기자이기에 어떤 이야기에도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단지 그렇게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후루미나미는 비극을 고평가 한다. 이 점을 기억해둬야 한다.
호감도 측정
후루미나미의 호감도: 43
-50=원수 / -30=앙숙 / -15=상극 / 0=무관계 / +15=친구 / +30=연인 / +50=배필
템포 올린다고 해놓고 일주일씩이나 걸려서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단크 타워를 쓰기 시작한 지 8개월이 다 돼가는데 1챕터도 못 끝내다니 제 게으름에 탄식만 절로 나올 뿐입니다
요즘 현자타임이 격렬하네요
부족한 소설을 봐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시는 분들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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