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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17

by 도타싫어! 2020. 8. 4.

 

 

 

나리 케이토: 누굴 죽여도 처형되지 않는다고…?

 

모노로그: 그렇다. 네가 발표에 오지 않았으니 굳이 알려주려 온 것이다.

 

나리 케이토: 미친. 그게 말이 돼?! 그럼 누구나 서로를 죽이고 다닐 거 아니야!

 

모노로그: 그러니 계속 방에 틀어박힌 건가.

 

나리 케이토: 당연하지. 당연히…! 당연히 그래야지!

 

모노로그: 그래. 처음부터 네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나리 케이토: 잠깐! 잠깐! 기다려! 대답하고 가!

 

나리 케이토: 대체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인다고 해서 너한테 득이 될 게 뭐 있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리 케이토: 응? 사람이 죽고 죽이는 걸 보고 싶어? 날 살려 줘. 내가 돈으로 얼마든지 고용해서 죽고 죽이게 만들어 줄게! 그럼 원 없이 볼 수 있잖아. 그렇잖아!

 

나리 케이토: 나랑 손을 잡자고. 응?! 넌 절대 손해 안 봐. 내가 장담해! 내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잖아. 안 그래?

 

나리 케이토: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돈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제발….

 

모노로그: 선택하는 주체는 너다. 이대로 방에 틀어박힐 것인가. 생존을 쟁취할 것인가.

 

나리 케이토: 야. 가지 마! 가지 마… 기다려! 가지 말아 주세요! 잠깐만요!

 

모노로그는 카나리 케이토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카나리는 바닥 밑으로 사라져가는 모노로그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것이 사라지고 바닥 밖에 남지 않자. 카나리는 모노로그가 사라진 자리를 발로 마구 짓밟았다. 그렇게 하면 분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재촉하듯이 짜증을 터뜨렸다.

 

나리 케이토: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카나리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짓누르고, 헝클어뜨리고, 뽑을 듯이 잡아당겼다.

 

나리 케이토: 지랄. 지랄. 지랄!! 왜 나한테 이런 개같은 일이 생기는 거야.

 

그 끝에, 카나리 케이토는 엉엉 울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기와라 우시오: 자. 그럼 지금부터 설명 들어가겠습니다잉.

 

도리카와 아쿠토: ….

 

하기와라 우시오.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는 대화의 무게를 덜어내려고 안달이 난 것처럼 행동했다.

 

기와라 우시오: 아까 말했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흉기는 대충 여덟 개야. 종류는 말 못하고 대충 그래.

 

기와라 우시오: 흉기가 다 타 버리기 전에 나중에 쓸 데가 있겠구나 싶어서 뽀렸어. 내 숙소에서 5층의 창고까지 왔다갔다하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다들 전용실에 한눈이 팔린 사이 잘 해냈지.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도 탑 내에서 흉기를 들고 다니면 분명 누군가에게 들켰을 텐데? 짧은 흉기만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기와라 우시오: 그건 남자의 비밀이야.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들을 만한 것이 못 되리라는 직감을 받았다.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서 흉기를 여덟 개나 챙겼다고?

 

기와라 우시오: 예압. 그 정도면 네 엄호 사격 받으면서 카이다 몰아 넣기는 충분해.

 

도리카와 아쿠토: 너. 일부러 그랬어?

기와라 우시오: 뭐를?

 

도리카와 아쿠토: 너는 흉기를 여덟 개나 챙겼어. 챙길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했어. 굳이 네 숙소와 창고를 오가면서 어떻게든 흉기를 숨기며 움직였다고.

 

기와라 우시오: ㅇㅇ.

 

도리카와 아쿠토: 왜 챙겨야 했지? 창고에 엄청난 양이 들어 있었는데. 거기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되잖아. 넌 챙길 필요가 없었어. 굳이 왜 그래야 했을까?

 

도리카와 아쿠토: 그 대답은 간단하지. 네가 머지 않아 흉기가 전부 없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창고에 흉기가 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린 건 너였지?

 

도리카와 아쿠토: 넌 흉기를 독점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했어. 이 탑에서 가장 위험한 게 있다면 흉기지. 살인을 쉽게 만드니까. 그러니 그걸 통제하거나 없애 버리자는 주장은 나올 수밖에 없어.

 

도리카와 아쿠토: 넌 그걸 알았고. 그렇기에 흉기가 통제되기 전 그것들을 네 숙소로 빼돌린 거야. 아마 내가 흉기를 소각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도, 네가 그렇게 제안했겠지.

 

그런 경우라면 하기와라 우시오가 원하는 바는 하나다. 모든 이들에게 적대적이며 흉기도 가지고 있는 카이다 쿠로하를 숙청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흉기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힘을 얻는 것.

 

하기와라 우시오의 뻔뻔한 대답이나 코웃음을 짐작하던 나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그를 더 의심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기와라 우시오: 어어어…? 쉬발. 그렇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하기와라는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연기라면 괄목할 만한 연기력이었다.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진심을 다해 말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기와라 우시오: 난… 그냥 이게 더 나은 판단 같았어. 지금 생각해 보니까 되게 좆같은 판단이었네.

 

기와라 우시오: 그래도 없는 것보단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나? 이 생각 뿐이었어. 비상시에 써먹을 수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친구한테 자기 몸 지키라고 비수라도 하나 건네줄 수 있잖아.

 

기와라 우시오: 실제로 난 카이다한테 잡혔을 때 단검을 쓸 수 있었어. 오금을 쓱 그어 버렸지. 날이 거의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도리카와 아쿠토: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게 아니라고?

 

기와라 우시오: 아니라니까! 난 그럴 만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놈이 아니야!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면 내가 옛저녁에 눈치챘을 것이다.

 

정말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흉기를 여덟 개나 챙겼단 말인가? 이것은 단순히 짧은 생각이 만들어 낸 일이 아니었다. 이기심과 이타심. 잔인함과 순수함. 멍청함과 똑똑함이 조화를 이루어야 나올 수 있는 일이었다.

 

초고교급의 절반은 괴짜라던 히무로 시라베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기와라 우시오: 아니 그보다. 너 카이다를 알고 있는 눈치였지? 대체 걔 정체가 뭐야? 어떻게 사람 몸에 칼이 안 들어가냐고. 금강불괴 뭐 그런 건가?

 

도리카와 아쿠토: 말해주기 싫어.

 

하기와라 우시오가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기와라 우시오: 좆 같 다 ! 자기만 알고 있고 킹받네 진짜. 근데 너 말고 달리 손 잡을 사람도 없으니까 너한테 매달려야 돼!

 

도리카와 아쿠토: 내가 언제 너와 손을 잡는다고 했지?

 

기와라 우시오: 억!

 

하기와라 우시오는 명치에 주먹을 맞은 듯이 외쳤다.

 

도리카와 아쿠토: 확실히 난 네게 말해 보라고 했지. 들어는 보겠다고. 하지만 난 네게 협력할 마음이 없어. 어설프게 흉기를 든 사람은 카이다 쿠로하를 위한 총알받이나 인질이 될 뿐이야.

 

도리카와 아쿠토: 네게 다른 수가 있다면 몰랐겠지만, 내가 총으로 여덟 명을 엄호하고 여덟 명이 카이다 쿠로하에게 달려드는 방법은 절대 안 통해. 그러니 거절하겠어.

 

하기와라 우시오는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기와라 우시오: 아니 씨발. 실화냐? 난 지금 내 비밀을 다 말해 줬는데 너는 그냥 아 잘 들었어요~ 하고 토껴? 상도덕이 없으시네 아주! 더럽다 더러워. 퉤!

 

기와라 우시오: 서민경제 파괴자. 불공정거래의 떠오르는 신성. 더 라스트 퉁퉁이. 빵없케먹.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과도한 빈정거림과 우스꽝스러운 별명들이었기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도 별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벼운 제안. 가벼운 포기. 그리고 진심이 아닌 욕설.

 

도리카와 아쿠토: 충고하는데. 카이다 쿠로하와 나 사이의 일은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 끼어들려 하지 마. 네 흉기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발설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말고 잊어.

 

기와라 우시오: 그럼 카이다가 뭐 하는 개뼈다귀였는지만 알려 줘. 궁금해 미치겠어! 삐슝뿌슝빠슝. 금강불괴를 익힌 고등학생이 있다? 무림인들 경악!

 

기와라 우시오: 좀 알려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다른 사람한텐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알려 줘!

 

끈질기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 이 테이블 자체가 내게 기울어져 있으니.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 하기와라 우시오의 실수다. 말 그대로. 그는 자신에게 흉기가 있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내가 거절할 가능성을 고려했다면 그것을 숨겼어야 했다. 수락할지 수락하지 않을지는 내게 달려 있는데 모든 패를 꺼내 보이니 질 수밖에.

 

그가 손해를 본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정말 아닌가?

 

묘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난 그것을 느꼈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 처지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하기와라 우시오에게 아무런 정보도 건네주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왜 하기와라 우시오의 이야기를 들었는가. 듣지 않을 수 있었는데 왜 듣고 있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카이다 쿠로하가 상대인 이상 도움은 의미가 없다. 애초에 나는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 다른 이의 손길이 닿은 이상 그것은 내 복수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왜 한 눈을 팔았지.

 

난 비겁했다. 내 복수를 완전하게 만들고 싶었기에 카이다 쿠로하와 맞닥뜨렸음에도 그것을 죽이지 않았다. 모노로그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하기와라의 말은 들었다.

 

말을 끊지 않았다. 계속 듣고 싶었다. 왜? 유혹적이어서. 끊을 수가 없어서.

 

이 복수를 더 쉽고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는 유혹. 그것은 강렬했다. 카이다 쿠로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조금씩 머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카이다 쿠로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적외선 고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본 카이다 쿠로하는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 숨기려 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카이다 쿠로하의 실루엣은 빨강과 노랑에서 파랑으로 점점 변해갔다. 온도가 전부 변하지 않은 옷과 배경과의 괴리에서 겨우 그녀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시야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었을 때는 주변 풍경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걸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가? 적외선 고글에게서 몸을 숨기기 위해 신체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그것은 분명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이가 갈렸다. 약해졌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내 복수가 정말 성공할 수는 있는지 불안했다. 고작 이게 나인가?

 

몇 년동안 복수를 기다려왔다. 잠이 줄었다. 신경이 과민해져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에도 고양이의 울음에도 잠이 깨는 나날. 그 모든 시간동안 나는 고결했다. 카이다 쿠로하를 죽이고 내 변장을. 내 얼굴을 뜯어낼 때가 올 때까지. 그 순간을 위해 버텨왔다.

 

그런데 정작 그 기회가 와서는 어떤가. 세 치 혀에 넘어갔다. 마음 속으로 수백 번 그것을 죽였으나 정작 그것을 눈앞에 두고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복수가 언제부터 그렇게 싼 값이었지. 아직 시도도 하지 않았으면서 지레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말겠다니.

 

내가 나에게 내리는 쓴소리다. 여덟 개의 흉기. 여덟 명의 도움이라고? 여덟 명이 네 복수에 침을 뱉으려는 계획을 멍하니 듣고 있다니.

 

한 손으로 여전히 다이얼로그를 든 채 나는 이마를 쓸어내렸다.

 

정신 차려. 너무 날이 선 거야. 진정하고 할 일을 정해. 그러자 그렇게 되었다.

 

할 일을 정했다. 내가 한 일에서 도망치지 않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업보를 청산하듯이.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의 정체가 뭐냐고? 알면 넌 그걸 건드리고 싶지도 않을 걸.

 

사실을 말해서 겁을 주자.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기와라 우시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진짜 안 듣고 못 배기겠네. 말해 주세요. 형님!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는 신체를 개조받은 마피아 전속 히트맨이야.

 

잠시 다이얼로그 너머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을 깬 것은 어색한 웃음소리였다.

 

기와라 우시오: 농담이지? 와하하하하! 겁나 웃기다. 아이고. 내 배꼽! 여기서 뒤통수를 빡 후려치네! 아이고 우리들 배꼽 전원 처치다. 아하하하하! 어아하하하하하!

 

억지스러운 웃음 소리가 멎은 뒤 하기와라는 여전히 조금의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근데 지랄 말고. 진짜야?

 

도리카와 아쿠토: 믿을지 안 믿을지는 네 마음이야.

 

기와라 우시오: 말하는 거 보니 진짜같네. 그게 무슨 좆같은 일이야! 그래서 칼이 안 들어가는 거라고?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의 근밀도는 보통 사람의 몇 배를 상회해. 그렇기에 괴력을 낼 수 있지. 피부 자체가 단단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마 단순한 힘으로는 야가미나 나이토 유즈루도 카이다 쿠로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는 화들짝 놀랐다.

 

기와라 우시오: NANI? 그 근육맨들이?! 카이다가 꽤 강건해 보이긴 해도 우락부락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도리카와 아쿠토: 겉으로 봤을때는 드러나지 않지. 눈에 띄는 건 첩자답지 않은 일이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첩자라기보단 암살자답지 않은 일이지. 불가능한 암살도 가능하게 만들 뿐 카이다 쿠로하는 근본적으로 암살자야. 여러 공작 임무를 맡기도 하지만 단순한 산업 스파이보다는 암살자에 훨씬 가까워.

 

기와라 우시오: 그래 맞아. 카이다는 돌무더기를 부술 정도로 셌어. 그냥 산업 스파이라면 그 정도로 괴력일 필요는 없지. 존나 당연한데 그걸 모르고 있었어.

 

도리카와 아쿠토: 몸은 어찌나 재빠른지 총알도 피할 수 있고. 맨손으로 철판에 구멍을 뚫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괴물이 지금 흉기를 가진 채 탑 안의 누군가를 죽이려 하고 있어. 십중팔구 나겠지만. 다른 사람이 휘말릴 지도 몰라.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니 빠지라고 하는 거야. 난 이 일을 당사자들끼리 해결하고 싶어.

 

기와라 우시오: 그럼… 걔한테 약점은 없어? 네가 죽으면 우리끼리 카이다를 어떻게든 해야 할 거 아니야. 존나 막막하다고….

 

마지막으로 이것까지만 알려주기로 하며. 난 말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 쿠로하의 약점은 하나 뿐이야. 물.

 

기와라 우시오: 아하. 불 타입이구만. 성격을 고려하면 불/악 타입이겠지.

 

기와라 우시오: 그래서 그냥 물대포 쏘면 된다는 거야? 물 같은 걸 끼얹나?

 

이 자식이 정말

 

도리카와 아쿠토: 아니. 물에 들어가면 가라앉기 때문이야.

 

기와라 우시오: 뭐야. 맥주병이야?! 총알도 피하는 사람이 수영 하나를 못 한다고?

 

도리카와 아쿠토: 웃기지? 극복할 수 없는 맥주병이야. 이유가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사람이 물 위에 뜰 수 있는 이유는 물의 비중보다 신체의 비중이 낮기 때문이지. 하지만 카이다 쿠로하는 근밀도가 극단적으로 높도록 개조당했기에. 물보다 비중이 무거워.

 

도리카와 아쿠토: 사람이 빠질 정도로 깊은 물에 들어가면 카이다 쿠로하는 가라앉아. 숨을 몇십 분 참을 수는 있겠지만. 수영을 하면서 누군가를 뒤쫓지는 못해.

 

기와라 우시오: 그냥 물에 가라앉는다고? 무슨… 쇳덩어리처럼?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

 

내가 봐서 알아.

 

카이다 쿠로하는 물에 빠지자마자 하염없이 가라앉았지. 부두를 잡고 기어오르다시피 해서 목숨은 건졌지만 우리를 따라올 순 없었어.

 

닭 쫓던 개처럼. 바다에 뛰어든 우리를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카이다 쿠로하. 그걸 내 눈앞에서 봤으니까.

 

기와라 우시오: 그치만 여기에는 그만큼 깊은 물이 없어. 욕조에라도 빠트려 죽일 수 있다면 모를까….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니 관여하지 말란 거야. 내가 바다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겠지.

 

하기와라 우시오는 다이얼로그 너머에서 한숨을 쉬었다.

 

기와라 우시오: 네가 관여해달라고 해도 카이다가 그렇게 세면 절대 안 도와줘. 근데 넌 왜 그렇게 여유가 넘치냐? 총이 있으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창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내 말 들려?

 

무로 시라베: 들려.

 

마유즈미에게 내 목소리가 닿지 않았으리란 것을 알기에 나는 창문으로 발을 옮겼다. 그녀가 숙소로 돌아온 것을 보아 나나시, 캐롤과의 대화는 끝난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자 창틀 밖으로 머리를 내민 마유즈미가 보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까꿍!

 

밝기도 하지.

 

무로 시라베: 왜 불렀어?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이거 받아!

 

실이 연결된 종이컵이 날아왔다. 그녀는 반대편 끝에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종이컵을 잡고 있었다. 종이컵 전화기다.

 

실을 공중에서 낚아채고 종이컵을 끌어올렸다. 줄은 충분히 길었다. 창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실을 팽팽하게 만든 뒤 나는 종이컵에 대고 말했다.

 

무로 시라베: 들려?

 

마유즈미의 대답이 돌아왔다.

 

유즈미 나데시코: 좋아. 들린다! 

 

무로 시라베: 이대로 다른 사람과 통화하려는 거구나.

 

다이얼로그는 통화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전화기와 같이 다이얼로그는 통화를 건 이가 다른 통화에 끼어들 수 없다. 세 명이 서로 소통을 하려면 두 명이 다이얼로그를 사용하고, 두 명은 다른 방법을 사용해 결과적으로 세 명의 통신망을 만들어야 한다.

 

나와 마유즈미의 숙소 배치는 한 칸 옆이었기에 종이컵이 닿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단지 재미로 종이컵 전화기를 던진 것일 수도 있지만 마유즈미는 그런 무의미한 장난은 치지 않는다.

 

유즈미 나데시코: 응. 후루미나미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게 있어서.

 

무로 시라베: 내가 통화를 걸게.

 

다이얼을 돌려 후루미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0-0-0-9.

 

후루미나미가 전화를 받았다.

 

루미나미 나몬: 하아하아…  후우… 히무로?

 

후루미나미의 목소리는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무로 시라베: 아직 전용실 안이야?

 

루미나미 나몬: 헉… 후우 응. 그게 왜?

 

무로 시라베: 전용실 안에선 그렇게 숨이 찰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네가 밖에 있는 줄 알았어.

 

루미나미 나몬: 잠깐… 하아. 춤을 췄어.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거든. 영감과 감정을 뒤섞어서 몸 가는대로 표현하고 나면 묘한 해방감과 개운함을 느낄 수 있지.

 

루미나미 나몬: 너도 언젠가 한 번 해 봐. 내가 어떻게 추는지 알려줄 수도 있는데.

 

무로 시라베: 제안은 고맙지만 내가 너에게 전화한 용건이 있어.

 

유즈미 나데시코: 나 알려 줘! 한 번 배워보고 싶어.

 

난 종이컵과 다이얼로그를 둘 다 내 귀에 가까이했다. 이렇게 되면 후루미나미의 목소리는 내 다이얼로그와 그 근처에 있는 종이컵을 통해 마유즈미에게 들릴 것이고, 마유즈미의 목소리는 종이컵과 그 근처에 있는 다이얼로그를 통해 후루미나미에게 들릴 것이다.

 

루미나미 나몬: 히무로. 마유즈미. 너희 지금 같이 있니?

 

후루미나미가 느닷없이 물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 서로 숙소에 있어. 세 명이서 통화를 할 순 없어서 나랑 히무로는 종이컵 전화기를 썼어. 이거 꽤 어렸을 때 배운 적 있는데 드디어 써먹어 보는 거 있지!

 

마유즈미의 밝은 태도에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녀는 추가된 동기로 인해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밝게 행동할 수가 없을 터였다.

 

캐롤에게서 터치를 받았을지도.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쪽에서 내게 줬어. 지금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며 세 명이 대화할 방법은 몇 없으니까.

 

루미나미 나몬: 아. 각자의 숙소에 있구나.

 

유즈미 나데시코: 응. 너도 숙소에 있다면 창문으로 종이컵을 내려줄 수도 있어. 그럼 셋이서도 대화할 수 있겠지!

 

루미나미 나몬: 놉. 난 지금 이대로도 좋아. 이대로 얘기하자. 나 지쳐서 숙소까지 가기 귀찮아.

 

루미나미 나몬: 새삼스래 묻겠는데. 우리 무슨 얘기 해?

 

지금 굳이 이 세 명이 해야 할 이야기는 단 하나 뿐이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말인데. 솔직히 난 숨겨주고 싶어. 왜냐하면 말이야. 미도리카와는 우리가 셋이서 전용실을 뒤지고 있을 때도 우리에게 해코지하지 않았잖아. 그치!

 

마유즈미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까와 같았다. 그녀는 밝게 행동하며 대화의 무게를 최대한 덜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루미나미 나몬: 마유즈미.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찾아갈게.

 

무로 시라베: 뭐?

 

유즈미 나데시코: 갑…자기?

 

느닷없이 후루미나미가 선언했다. 지쳐서 숙소까지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십여 초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루미나미 나몬: 다이얼로그 잠시 품에 집어넣을 거니까 다들 말 하지 마. 가는 김에 갈고리도 챙겨 갈게.

 

다이얼로그 저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이얼로그를 옷에 숨기는 듯한 소리였다. 그녀는 문을 열었고. 닫았고. 계단을 올랐다. 나와 마유즈미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잠깐. 히무로. 일단 끊을게.

 

마유즈미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종이컵이 느슨해졌다. 마유즈미가 반대 편에서 종이컵을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종이컵 전화기에도 '끊는다' 라는 표현이 적용될 수 있나?

 

문을 여는 끼익 소리와 함께 후루미나미와 마유즈미의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유즈미 나데시코: 갑자기 오면 어떡해…! 들키면 어쩌려고….

 

루미나미 나몬: 걱정 마.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참 다행이지. 그보다 네 연기엔 소울이 없어. 마유즈미.

 

무로 시라베: 그 말 하려고 마유즈미의 숙소까지 찾아간 거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미나미 나몬: 당연하지. 밝은 척은 저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 밝음과 자신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해. 마치… 방사선을 뿜어내는 것처럼.

 

무로 시라베: 유해할 것 같은데.

 

유즈미 나데시코: 여. 연기라니? 난 그냥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숨기려고? 어림도 없지. 너는 더 감정을 실어야 해. 날 따라해 봐. 감정을 잡을 때는 이렇게. 내가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눈을 감고 생각하는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어. 이렇게…?

 

루미나미 나몬: 그렇지. 그리고 네게 밝게 대했던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 봐.

 

이대로라면 논의가 속성 연기 강좌로 바뀔 것 같았기에 나는 숙소를 나섰다. 다행히 후루미나미의 말대로였다. 3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유즈미의 숙소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후루미나미가 있었다.

 

무로 시라베: 결국 얼굴을 보며 말하게 됐네.

 

루미나미 나몬: 난 이게 더 좋아. 무슨 파자마 파티 하는 기분이라서.

 

재빨리 문을 닫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지?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숨겨주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어. 그리고 굳이 분위기를 띄우고 싶어서 밝은 척을 하는 거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한테도 들켰네. 하아… 내가 그렇게 연기를 못했어?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이 마유즈미가 가라앉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터치는 받지 않은 모양이다. 캐롤의 말에 의하면 터치는 정신이 섞이는 작용이다. 캐롤 본인이 혼란을 느끼고 있다면 내담자 역시 혼란을 느끼게 될 테지. 탑의 모든 이들이 불안에 빠졌으니 마유즈미는 터치에도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루미나미 나몬: 괜찮아. 연기는 앞으로 늘면 되니까.

 

무로 시라베: 연기할 필요가 없어지는 게 가장 낫겠지.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숨겨주고 싶다는 건 진심이야?

 

유즈미 나데시코: 응….

 

루미나미 나몬: 이 싸움에서 미도리카와를 지지하겠다는 거구나.

 

후루미나미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무슨 싸움?

 

루미나미 나몬: 무슨 싸움이냐니. 당연히 미도리카와 그녀의 아치 에너미. 카이다 사이의 싸움이지! 넌 미도리카와를 지지하는 거고. 그렇지?

 

유즈미 나데시코: 누구를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난 그냥 미도리카와 개인을 보고 생각하는 거야. 비밀을 지켜주고 싶다고.

 

유즈미 나데시코: 그렇지만… 동시에 비밀을 공개해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어.

 

루미나미 나몬: 의외로 강경적이네. 너?

 

마유즈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유즈미 나데시코: 으으그냥 우리에게 협력하게 만들어야 한다거나 총기를 압수해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유즈미 나데시코: 정말 미도리카와가 위험하다는 이유 만으로 그녀를 죽이려는 사람이 생긴다면. 비밀을 조금 풀어서라도 그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무로 시라베: 일리가 있어. 지금 다른 이들이 미도리카와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미도리카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무로 시라베: 우리는 미도리카와의 목적이 카이다를 죽이는 것임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오해를 해도 이상하지 않아.

 

루미나미 나몬: 위험한 목적이긴 하지만, 그 위험한 목적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큰 차이가 있긴 해. 그러니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몇 개 던져서 주의를 끌자?

 

유즈미 나데시코: 그러면 당장 미도리카와를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그라들다 못해 미도리카와를 카이다에게서 지켜야 한다는 주장마저 대두될 것이다. 카이다를 가장 손쉽게 억제할 수 있는 인물은 23T와 미도리카와다.

 

모리의 말에서 인용하자면 한 호랑이가 다른 호랑이를 죽이게 두는 셈이다. 더 위험한 호랑이를 죽이기 위해 호랑이를 도와주는 이들도 생기리라.

 

무로 시라베: 그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 하지만 미도리카와가 우리를 적대하기 시작하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거야. 우리 셋 모두 큰 위험에 처해.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카이다가 우리 중 하나를 심문할지도 몰라. 당장 미도리카와의 정보를 푸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닐 거야.

 

루미나미 나몬: 이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데? 그냥 나 몰라라 하고 누가 죽는지 기다려 보자.

 

유즈미 나데시코: 죽는 걸 기다린다니. 그건 너무 무책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루미나미 나몬: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려선 안 돼.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서도 안 돼. 우린 말 그대로 빼도박도 못 하는 처지에 놓였어.

 

유즈미 나데시코: 아. 완전 깨몽이야… 캐롤 씨를 돕고 싶어서 다른 사람 방에 무단으로 침입까지 했는데. 아무것도 못 한다니….

 

유즈미 나데시코: 잘 하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야? 누가 죽을 때까지, 캐롤 씨가 미도리카와한테 강제로 터치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확실히 그랬다. 정보를 알고 있는 이상 이 딜레마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편법은 어디에나 있다.

 

무로 시라베: 모두가 미도리카와를 과하게 경계하지 않도록 그녀의 정보를 일부 풀 필요가 있지만, 정작 그 정보를 푸는 것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이게 우리를 애먹게 하는 부분이지.

 

무로 시라베: 만약 미도리카와의 비밀을 공개했는데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떨까?

 

더 설명하기보다 나는 품 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무로 시라베: 너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어. 만나지 않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거였는데 결국 이렇게 만났으니 잘 된 일이지.

 

나는 방금 전용실에서 진행했던 작업의 결과물을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에게 보여 주었다.

 

무로 시라베: 어떤 것 같아?

 

유즈미 나데시코: 글씨가 참 예뻐.

 

루미나미 나몬: 찬성이야.

 

무로 시라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용을 천천히 읽어 줘.

 

마유즈미와 후루미나미의 눈동자가 잠시 종이에 머물렀다. 마유즈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초고교급. 무기상. 무쿠치(無口)…? 이게 누구야?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야. 정확히는 미도리카와의 가짜 신분이지. 내가 급조했어.

 

루미나미 나몬: …너 조금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게 그렇게 말하는 후루미나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즐거움과 기대감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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