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미 토가: 끊어졌습니다.
캐롤 브라이트: 앗. 카이다 씨... 저대로 탑에서 멀어지실 건가 봐요.
히무로 시라베: 지금은 사선(射線) 안에 있으니 멀어질 수 밖에 없지.
나나시: 저대로 한 바퀴를 돌면 카이다도 탑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야. 미도리카와의 저격도 창문이 뚫린 방향으로만 통하는 거니까...
모리 레이코: 일단 우리 역시 총잡이의 사선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표적이 될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건 맞지. 빨리 뛰어! 가즈아아아!
미도리카와의 총구는 계속 카이다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우릴 쏠 확률은 현저히 낮았으나 대비를 해도 나쁠 일은 없었다.
탑 안으로 급히 피신한 우리는 의견이 양분되었다.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는 확실히 위험해. 빠른 시일 내에 제압해야 해.
모리 레이코: 동의한다. 다음에는 그의 총구가 누구를 향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이토 유즈루: 제압이라니. 야... 문이라도 부수고 들어가게? 일단 대화로 풀어 보자.
야가미 토가: 대화할 방법이 없어요. 저 쪽에서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 역시 불가능합니다.
캐롤 브라이트: 그렇기에 포기해서는 안 돼요. 저흰 아무리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그것을 붙잡아야 해요.
이바라 쿠리스: 맞는 말이지만...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희박한 가능성에만 매달릴 순 없어.
하기와라 우시오: ㄹㅇ. 까딱하면 우리들의 몸 구조가 통풍에 용이하게 바뀔 걸?
나나시: 미도리카와는 우리를 적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진해서 우리한테서 멀어지려 하고 있어. 지금 전용실에 자진해서 갇혀 있잖아.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긴. 미도리카와가 우릴 해치려고 한다기엔 너무 얌전해. 그치?
모리 레이코: 총구가 네 쪽으로 향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다.
야가미 토가: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것을 우리가 알 순 없으며 그렇기에 언제 총상의 위협이 저흴 향할지 모른단 겁니다.
캐롤 브라이트: 의도와 생각도 모른 채로 무작정 그를 적대하면, 그의 총구가 정말 우리 쪽으로 향하게 될지도 몰라요.
하기와라 우시오: 이것도 맞긴 해! 진짜로 미도리카와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 같다면. 정교하게 다뤄야지.
하기와라 우시오: 흉기도 없는데 대놓고 척지다간 우리도 저기 카이다 꼴 나! 그렇지만 카이다를 총알받이. 말 그대로. 총알받이로 삼기에는 좀 그런데. 흠...
나이토 유즈루: 그래. 남 일이라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 안 된다고!
히무로 시라베: 그러니까 미도리카와를 제압하자는 거야. 총기를 가지고 있는 그가 폭주했다간 아무리 23T가 저지한다고 한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나나시: 아니야. 미도리카와는 폭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어!
히무로 시라베: 그렇게 보인다고 한들 속으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저것을 믿을 순 없습니다!"
문득 위화감이 들어 말을 멈췄다.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나에게 벌어진 일. 내가 감내해야 했던 일이었다.
난제에 봉착했다. 내 경험에서 비롯된 난제였다. 미도리카와에게 총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폭주했을 경우 즉 최악의 경우를 전체의 경우로 확대시켜 일반화하는 것이 옳은가?
"몰라. 어차피 전면전을 시작하면 우린 다 너한테 죽어. 서로 피를 보지 않을 방법은 이거 뿐이야."
시라유키 히메리의 말을 듣고 내가 엿들은 내용을 떠올렸다.
"시라유키 씨로부터의 신호다. 대상이 풀려났다고 한다. 이 재단도 끝자락까지 밀린 모양이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다니... 그것이 이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풀려났다고요?! 위치는 어디입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진정해라. 아무리 규격 외라고 한들 그것 역시 인간이며, 아직 미완성품이다. 부대원들과 합류해 노린다면 설령 그것이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우선 퇴로를 봉쇄한 뒤 사살한다."
"알겠습니다... 포획이 아니라 사살을 최우선으로 할까요?"
"당연하지.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민간인 지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몇십 명이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사살해야 해. 반드시 이 곳에서 사살해야 한다! 따라와. 이 건물을 전부 샅샅히 뒤진다!"
"얕은 계략이다. 너희들의 목적은 날 반드시 이 곳에서 사살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들었다. 작전을 전달한다면 사살 대상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했어야지."
시라유키 히메리의 얼굴에 거짓 없는 당황이 떠오른다. 그 다음은 분노다.
"이봐. 이건 또 뭐하자는 거야?!"
"시라유키 씨. 그건..."
"내가 강경파든 온건파든 상관 없이 내 지시에 따르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내 지시보다 너희들의 사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것을 살려두면 분명 모든 이들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
내분인가? 그들 안에서 의견이 양분되었다. 그들의 조직 내엔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 나와 협상을 시도하는 시라유키 히메리가 온건파, 나를 사살하려는 자들이 강경파일 것이다. 조직 내 파벌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자리에 온건파는 시라유키 히메리 한 명 뿐이다.
그녀가 가장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온건파의 수가 훨씬 적다. 그녀의 제안을 신뢰한들 누군가가 '실수' 로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격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미안해. 우리 기관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그러나 날 인질로 잡으면 아무리 이 부대가 강경파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널 섣불리 쏴죽이진 않을 거야."
"보장할 수 있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난 간부급이야. 이 친구들도 내 명령에 못마땅함을 느낄지언정 불복종하진 않잖아. 보이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
"그렇다고 해도 보이는 것만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들도 여기까지다. 의견의 차이가 생긴 순간 갈등은 예정되어 있다. 압박을 통해 갈등을 억누르려고 한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앞에 있는 이들도 본질은 같다. 같은 조직의 소속감도, 더 높은 지위의 권력도 이 차이를 메꿀 수 없다.
그렇기에 대몰락은 빠르게 퍼졌다. 대몰락 이후의 간절함과 위기감조차도, 자신의 생명이 달린 문제 앞에서도 합일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대몰락 이전에 가능했을리가.
차이의 발생은 재앙의 시초였다. 이들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변질된 세상조차 차이를 받아들일만큼 성숙하지 않다. 아무리 배워도 인류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벌을 받아도 반성하지 않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대몰락이 몇 번이나 걸쳐서 일어난들 이들은 절대 굳게 단결하지 못한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회의적인 시선은 확신으로 바뀐다. 재단은 옳았다. 강경책은 필수불가결하다. 백신은 병든 사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히무로 시라베: ...적어도 미도리카와가 대화를 거부하는 이상. 그를 향한 의심은 거둘 수 없어.
그렇게 강경파는 나, 야가미, 모리, 이바라.
온건파는 나나시, 캐를, 마유즈미, 나이토.
그리고 중립은 하기와라였다.
히무로 시라베: 여기에는 열 명이 있어야 해.
나나시: 그렇지. 탐사 나온 다섯 명에 마중 나온 다섯 명이니까 열 명이야.
히무로 시라베: 사람 수가 비는데.
나이토 유즈루: 뭐? 하기와라. 야가미. 모리. 히무로. 마유즈미. 이바라. 캐롤. 나나시. 후루미나미... 그렇네? 한 명이 비네?
모리 레이코: 너를 제외했고 연기자를 포함했다. 숫자를 제대로 세라.
나이토 유즈루: 썅! 멍청하게 실수했네... 그럼 후루미나미는 어디 갔어?
나이토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몇 명이 의아함을 느꼈다.
나나시: 분명 중간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캐롤 브라이트: 네. 카이다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저희와 함께 있었어요. 머리에 전구를 가져다대신 게 인상 깊었죠.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도 안 보이네. 후루미나미가 어디 가는 거 본 사람 있어?
야가미 토가: 없을 겁니다. 다들 미도리카와 씨와 카이다 씨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바라 쿠리스: 근데 후루미나미가 갑자기 어디 갈 이유가 있어?
모리 레이코: 어쩌면 누군가가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모리의 말 뒤에 몇 초의 정적이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열명의 인디언이 식사를 하러 갔다가 한 명이 목이 막혀 아홉 명이 되었네♪...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불길한 노래 부르지 마! 무섭잖아!
하기와라 우시오: 이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엔딩 루트 아니야? 끝났네!
야가미 토가: 진정하세요. 전화를 걸어봅시다.
나나시: 다이얼로그 통신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이런 대사 나왔는데 후루미나미가 전화 안 받으면 사망 플래그 씨게 박히는 거 알지?
응답이 없었다.
이바라 쿠리스: 야! 말이 씨가 됐잖아! 이거 어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내가 알고 이런 건 아닌데...
캐롤 브라이트: 누군가가 데려갔을리는 없어요. 적어도 다른 분들이 아까 계시던 곳에 계속 남으셨다면 후루미나미 씨를 데리고 갈 순 없어요.
캐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씨와 카이다 씨를 포함한 열 명이 여기에 있었고, 토키와 씨, 미도리카와 씨, 23T 씨는 2층에. 칸나즈키 씨와 카나리 씨는 식당에 게셨으니 도합 열여섯 명이잖아요? 남는 인원이 없어요.
나이토 유즈루: 그럼 누가 데려간 건 아니고 자기 발로 갔단 얘기네?
히무로 시라베: 그건 모르는 일이지. 열한 명을 제외한 다섯 명 중 본래 있던 자리를 벗어난 사람이 있던가, 혹은 우리 말고 누군가가 후루미나미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누군가? 그게 무슨 뜻이야? 이 탑엔 우리 16명밖에 없잖아. 모노로그 빼면.
하기와라 우시오: '누구' 란 '무엇' 의 작용 중 하나이고 그 무언가란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라네.
모리 레이코: 이 탑에 생존자들의 적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정황상 모노로그를 조종하고 있을 흑막.
모리의 말에 나는 생존자들 모르게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한, 알파걸을 떠올렸다. 흑막이 우리에게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흑막은 언제든지 우리들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만약 후루미나미가 흑막의 표적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납치된 것이라면? 이 저격 시도 자체가 그 납치를 위한 커다란 눈속임의 판이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과도한가? 과도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야가미 토가: 그렇지만 흑막이 후루미나미 씨를 데려갈 이유가 있을까요?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가 흑막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보를 발견했을지도 몰라. 확률은 낮지만.
이바라 쿠리스: 아...! 그거 설마!
나나시: 흰 물건 말하는 거야? 후루미나미가 그걸 찾아내서 흑막한테 납치당한 거라면... 큰일이야!
히무로 시라베: 맞는 말이야. 카텟 기관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탑으로 보낸 게 흰 물건인데. 그걸 빼앗기다니...
흰 물건을 찾아냈기에 후루미나미가 납치되고 흰 물건까지 흑막에게 빼앗긴다면, 앞으로도 대몰락에 대한 것은 발설하지 않아야 했다. 만약 흑막이 계속 이런 적극적 스탠드를 취한다면, 앞으로도 말하지 않는 편이 보다 큰 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리라.
캐롤 브라이트: 흰 물건이 후루미나미 씨보다 우선돼서는 안 돼요. 그녀가 납치됐는지도 확실하지 않기도 하고요...
모리 레이코: 정말 흑막이 누군가를 납치할 정도로 흰 물건이 중요하다면. 개인보다 흰 물건의 손실이 더욱 크다. 당연한 일이다.
나이토 유즈루: 둘 다 중요하지! 빨리 찾으러 가자. 진정한 기사라면 이거 찾으러 가야 해! 아빠라면 그랬을 거야.
야가미 토가: 아뇨. 무작정 움직이면 혼란만 더 커질 뿐입니다. 이럴수록 침착하게 행동하셔야 해요.
나이토 유즈루: 윽.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얘기만 나누고 있자고?!
나나시: 맞아. 후루미나미가 탐정 연기를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흰 물건을 찾아냈겠어. 우리가 구해야 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빨리 가자! 빨리 가야 하는데... 어디로!
캐롤 브라이트: 진정하세요. 아직 후루미나미 씨가 납치됐다는 증거는 없어요.
하기와라 우시오: 그리고 흑막이 납치한 게 맞더라도 흰 물건때문에 납치한 건 아닐걸? 흑막이 흰 물건을 추적할 수 있었다면 설정 붕괴가 생겨.
다른 이들이 하기와라의 말에 집중하자,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기와라 우시오: 딴죽 좀 걸어! 츳코미 개그 몰라? 뜬금없는 소리를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네.
이바라 쿠리스: 츳코미나 걸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그렇지!
하기와라 우시오: 나이스. 바로 그거야. 이 타이밍에 후루미나미가 제 4의 벽 드립 치면서 받아줘야 하는데. 확실히 빈자리가 느껴지긴 한다. 음.
하기와라 우시오: 암튼. 그 설정 붕괴가 뭐냐면. 23T는 분명 모노로그가 흰 물건을 찾아낼 수 없다고 말했단 말이지. 기억 나?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랬던가...?
분명 그랬다.
23T5U130: 아니. 모노로그는 흰 물건을 찾아낼 수 없어. 아무튼 카텟 기관이 모노로그와 같은 편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진 거지?
캐롤 브라이트: 즉 모노로그 씨는 후루미나미 씨가 흰 물건을 찾아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거죠?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못 찾는데 어떻게 찾아?
나이토 유즈루: 간단히 생각해서. 모노로그는 흰 물건을 찾아내진 못하지만 후루미나미가 흰 물건을 대신 찾아줬으니 후루미나미를 납치하고 흰 물건을 낼름...?
모리 레이코: 흰 물건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흰 물건을 찾았는지 감시할 수 없고, 흰 물건의 위치를 안다면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답이다.
야가미 토가: 그보다 쉬운 경우의 수가 있죠. 어떻게 흑막은 흰 물건의 위치를 알 수 없음에도 후루미나미 씨가 흰 물건을 찾아냈음을 알 수 있었을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냥 답 알면 빨리빨리 말해주면 안 돼?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봤자 난 몰라.
야가미 토가: 내통자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존나 훅 들어오네.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야가미 토가: 우리 중에 내통자가 있다면, 흰 물건의 행방에 대해 흑막에게 말해줄 수 있었겠죠.
히무로 시라베: 그러나 내통자가 존재한들, 어떻게 후루미나미의 발견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나이토 유즈루: 내통자가 있든 없든 그 얘긴 나중에 해! 지금 후루미나미한테 무슨 일이 날지 어떻게 알아?
모리 레이코: 확실히. 연기자가 납치되었다면 그녀를 구출하고 흰 물건 역시 수거해야 한다.
나이토 유즈루: 납치든 아니든 걔를 찾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야. 뛰어! 난 탑 밖에서 찾을 테니까 너흰 탑 안을 찾아 봐!
그 말을 남기고 나이토가 탑 밖으로 달려갔다.
하기와라 우시오: 야이. 하필 이 타이밍에!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 게 진짜 사망 플래그라고!
이바라 쿠리스: 정 그게 신경쓰이면 같이 가면 되지. 따라와 인마!
이바라와 하기와라가 떠들면서 나이토의 뒤를 따라갔다.
모리 레이코: 저들이 순순히 협조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겠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야가미 토가: 세 분이나 계시니 어디서 비명횡사하시진 않겠죠. 그것만큼은 다행이네요.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니까 단순히 즉흥적으로 어딘가 떠나버린 걸지도 모르지만. 찾아서 나쁠 일은 없겠지. 우리도 탑 내부를 조사하자.
캐롤 브라이트: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나나시: 그럼 일단 2층으로. 23T와 토키와가 후루미나미를 발견했을지도 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미도리카와의 문을 두드리는 토키와가 보였다.
토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 문 열어 봐! 얘기 좀 하자!
23T5U130: 토키와. 굳이 힘 빼지 마. 저 쪽에 의사가 없다면 아무리 애써봤자 무의미해.
히무로 시라베: 23T와 토키와가 계속 미도리카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면 목격 증언은 기대할 수 없겠는데.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나시는 둘에게 물었다.
나나시: 23T. 토키와. 혹시 후루미나미 봤어?
나나시가 묻자 토키와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키와 아유키: 후루미나미? 분명 식당에서 너희 쪽으로 갔을텐데.
23T5U130: 나도 그 뒤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어. 그녀를 놓친 거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중간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 전화도 안 받아!
토키와 아유키: 뭐?! 언제?
나나시: 미도리카와가 전화를 끊자마자 탑 안으로 달려왔는데. 후루미나미가 없었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는 몰라!
야가미 토가: 그녀의 성격 상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어쩌면 그녀가 흰 물건을 발견했기에 흑막에게 납치당했을지도 모릅니다.
토키와 아유키: 그럴지도 몰라... 어느 쪽이든 좋으니 흩어져서 찾아보자. 나도 갈게.
모리 레이코: 아니. 리더 너는 여기에 남아서 총잡이와 인공지능을 계속 감시해야 한다. 연기자를 찾는 일은 우리가 하겠다.
캐롤 브라이트: 맞아요. 안 그래도 많이 피곤하실텐데 체력을 아껴 두세요.
토키와 아유키: ...그렇다면 후루미나미 수색은 너희에게 맡길게.
23T5U130: 나도 여기서 미도리카와를 계속 감시하겠어.
나나시: 알겠어!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대책없이 돌아다닐 수도 없는데...
히무로 시라베: 우선 우리가 조사해본 적 없는 양호실과 도서관을 찾아본 뒤, 그 곳에 없다면 다른 곳도 수색하자. 난 양호실로 가겠어.
모리 레이코: 기다려라. 프로파일러.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인원은 최소 3인 1조로 나눠야 한다.
모리 레이코: 게다가 넌 요주의 인물이기에 보다 삼엄한 경비가 필요하다. 승부사가 없는 건 아쉽지만 널 제압할 수 있는 자와 동행해야 한다.
야가미 토가: 굳이 그러셔야겠다면 제가 히무로 씨와 함꼐 조사하겠습니다.
모리 레이코: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내가 하겠다.
야가미 토가: 나이토 씨가 없으니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모리 레이코: 유사시 그를 불구로 만들 각오가 되어 있는 자는 몇 없으니까. 나는 턱없이 부족한 인물이지만 대안이 없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왜 굳이 히무로를 불구로 만드려고 해?!
히무로 시라베: 불구로 만들 각오로 제압해야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모리라도 다짜고짜 누굴 불구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야가미 토가: 이렇게 당신을 경계하는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 씨의 사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어요.
히무로 시라베: 나도 이해해. 빨리 양호실로 가 보기나 하자. 후루미나미를 찾아야지.
캐롤 브라이트: 그럼 저와 나나시 씨. 마유즈미 씨는 먼저 도서관을 찾아 볼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토키와.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찾아낼게!
마유즈미, 캐롤, 나나시가 5층의 도서관으로 향했고 나와 야가미, 모리가 4층의 양호실로 향했다.
수혈팩. 붕대. 침대. 각종 약품. 독극물 없음. 후루미나미의 행방을 알려줄 단서 없음. 양호실은 그저 평범한 양호실에 불과했다. 도중 대화가 몇 번 오갔으나 앞서 내가 열거한 정보들에 관련된 내용 뿐이기에 서술할 필요가 없다.
후루미나미의 행방을 찾기 어렵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나와 야가미, 모리는 다른 곳을 조사하기로 했다. 후루미나미가 식당으로 향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식당으로 향했다. 두 방은 같은 층에 있어 오가기가 수월했다.
칸나즈키 시노부: 안뇽.
카나리 케이토: 뭐야. 나머지 놈들은 어디에 버려두고 너희 셋만 왔어? 애초에. 왜 이렇게 늦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네!
칸나즈키가 밝게, 카나리가 퉁명스럽게 우리를 반겼다.
히무로 시라베: 여기에 후루미나미가 방문하진 않았어?
칸나즈키 시노부: 걔는 아까 이바라랑 손을 주거니 받거니 한 뒤로 너흴 찾아갔어.
야가미 토가: 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고요?
모리 레이코: 장의사 광대에게 얽힌 이상 생산적인 일화는 아닐 것이다. 혹시 모르니 식당도 조사한다.
카나리 케이토: 그 이상한 여자는 너희 쪽으로 갔다니까? 그보다. 왜 걔를 여기서 찾는데?
모리 레이코: 연기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너희 둘이 연기자를 살해한 뒤 은폐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모리는 식탁보를 젖히더니 그 안으로 몸을 넣었다.
칸나즈키 시노부: 거기엔 없어.
카나리 케이토: 악! 깜짝이야! 또 이상한 목소리 내고 자빠졌네! 작작 안 해?!
야가미 토가: 이 살인 게임의 구조상 공범이 존재할 순 없습니다. 범행을 들키는 순간 본인이 죽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모리 레이코: 실행범이 지능적이고 공범이 우둔하다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식탁 밑엔 시체를 숨기지 않은 모양이군.
카나리 케이토: 그럼 식탁 위에 숨겼겠냐? 정신 차려!
모리가 식탁 안에서 나오더니 이번엔 식당 구석의 주방과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히무로 시라베: 칸나즈키와 카나리는 서로의 알리바이의 증인이야. 그리고 토키와, 23T, 미도리카와 세 명은 2층에 그대로. 칸나즈키와 카나리 두 명은 식당에 그대로 있었으니 우리 중 누군가가 후루미나미에게 해코지를 했다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겠어.
모리 레이코: 음. 냉장고 안에도 없다.
카나리 케이토: 발상 한 번 싸이코스럽네! 뭐하러 냉장고에 사람을 넣어?!
야가미 토가: 다른 분들에게 전화해 볼까요? 저희 쪽은 못 찾았지만 그 쪽에선 발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히무로 시라베: 그 쪽도 아무것도 못 찾았을 거야. 내 생각대로라면.
난 나나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나시: 뭔가 후루미나미라면 이런 곳에 있을 것 같았는데...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러게. 와! 여기 셜록 홈즈 시리즈가 다 있어. 이름만 들어봤지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도서관에는 빼곡히 책이 쌓여 있었다. 넓은 분야와 장르에 걸친 수많은 책들. 분명 여러 분야에 능통한 후루미나미라면 이런 곳에 틀어박힐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후루미나미가 이 곳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캐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씨는 이 곳에 오신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나시: 지금 개방된 탑의 장소는 식당. 양호실. 창고. 도서관... 그리고 우리 숙소와 전용실. 이게 전부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지. 와. 괴도 뤼팽 시리즈도 다 있네. 이것도 읽어본 적 없었는데!
나나시: 왜 하필 탑의 구조가 이런 구성일까?
캐롤 브라이트: 그러게요. 숙소와 전용실을 제외하면 마치 학교의 시설 같아요. 식당. 양호실. 창고. 도서관.
마유즈미 나데시코: 학교에도 양호실이랑 도서관이 있어요?!
마유즈미는 캐롤 씨의 말에 화들짝 놀란 것 같았다.
나나시: 당연하지... 보통 학교에는 저 네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나야 학교를 다닌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캐롤 브라이트: 앞으로 서서히 찾으시면 돼요. 그보다 왜 모노로그 씨는 탑을 학교처럼 구성했을까요?
나나시: 학교처럼 구성했다기보단 그냥 시설이 학교랑 겹친 걸수도 있지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이 탑이 원래 학교로 쓰일 예정이었다던가?
캐롤 브라이트: 설마 그렇지는 않겠죠. 누굴 가르칠만한 시설이 없으니까요, 설령 학교로 쓰인다해도 이렇게 높게 만들지는 않죠.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긴. 저도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이렇게 큰 학교가 없을 거란 사실은 알아요.
마유즈미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구나...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진 않기로 했다. 그녀도 심상치 않은 사정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나나시: 700층이 넘는 학교라니. 말도 안 되지. 도서관에선 후루미나미의 흔적을 못 찾았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볼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래.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빨리 가 보자. 나 후루미나미의 바이올린 연주를 또 듣고 싶어!
캐롤 브라이트: 좋아요. 그럼 빨리...
내 다이얼로그가 울렸다. 화면에는 히무로의 이름이 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나?
나나시: 여보세요.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못 찾았지?
나나시: 응. 도서관에도 흔적이 없어. 그런데 묘하게 확신조네? 무슨 일 있었어?
히무로 시라베: 짐작가는 곳이 있거든. 3층으로 와 줘.
마유즈미 나데시코: 3층? 3층은 왜?
야가미 토가: 그곳엔 여덟 분의 숙소와 전용실이 있을 텐데요.
히무로 시라베: 그 여덟 명에는 후루미나미도 포함되지.
캐롤 브라이트: 네. 그렇죠.
캐롤 브라이트: ...아니. 설마요.
나나시: 응. 설마... 정말 그렇겠어?
아무리 후루미나미가 좀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더라도, 설마 정말 그러지는 않겠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왜 다들 설마 설마 하면서 뜬구름만 잡아? 자꾸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고 치사해!
모리 레이코: ...가지.
모리가 그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속으로 설마... 를 되뇌이며 마유즈미와 캐롤 씨와 함께 3층으로 향했다.
아니. 아무리 후루미나미가 제멋대로라고 한들 모종의 이유로 자기 전용실이나 숙소에 틀어박혀서. 연락도 안 받을리는 없지 않나?
설마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후루미나미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3층으로 달렸고...
...후루미나미의 전용실 문을 걷어차고 있는 모리를 볼 수 있었다.
야가미 토가: 모리 씨. 진정하세요.
모리 레이코: 타인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이 푼수가 문을 연다면 그렇게 될 거다.
히무로 시라베: 진정은 커녕 네 분노만 더 커질 것 같아.
나나시: 무슨 일이 났는지 대충 알겠네...
캐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씨가 정말 여기에 계실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에이. 후루미나미가 갑자기 자기 전용실로 갈 이유가 어디 있겠어!
마유즈미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전용실의 문이 열렸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를 찾나? 오늘은 무슨 사건이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있었나 보네?!
야가미가 재빨리 모리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표정을 누그러뜨리려는 모리의 시도는 그녀의 표정을 철가면과 유사한 것으로 만들었다.
야가미 토가: 모리 씨. 진정하세요.
모리 레이코: 진정하고 있다. 연기자. 변명은 준비해 뒀나?
히무로 시라베: 모두 널 찾고 있었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다들 걱정했다고.
후루미나미 나몬: 살인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러 온 게 아니었어? 나야 내 전용실에 잠시 들렀지.
나나시: 그냥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게 어디있어! 다들 놀랐단 말이야.
캐롤 브라이트: 뭔가 후루미나미 씨 답긴 하지만요...
후루미나미 나몬: 맞아. 쥐도새도 모르게 행동해야 탐정인 거지. 오히려 탐정은 쥐랑 새가 말하는 것도 숨어서 듣는 사람이라고.
모리 레이코: 통신은 왜 받지 않았지?
후루미나미 나몬: 잠깐 뭘 찾느라고 다이얼로그는 선반 위에 두고 있었어. 무음 모드로 해 놔서 전화가 온 줄도 몰랐네.
모리 레이코: 이 현실감각 없는 푼수 때문에 몇 명이 손해를 본 건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야가미 토가: 어깨에서 힘 푸세요.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지금 분노를 표출하셔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히무로 시라베: 어떻게 23T에게 안 들킨 거야? 토키와는 미도리카와에게 집중한다고 해도 23T에게서 몸을 숨기긴 어려웠을 텐데.
후루미나미 나몬: 계단에 엎드려서 기어올라갔지. 은폐 보행은 탐정의 기본 소양이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대박...! 우린 네가 흰 물건을 찾아서 흑막한테 납치된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한테도 안 들킨 거였구나!
후루미나미 나몬: 흰 물건? 미안하지만 난 그런 거 못 찾았어.
히무로 시라베: 좋은 소식이야. 아무튼 후루미나미가 여기에 있다면 위기 상황은 끝났어.
모리 레이코: 처음부터 위기상황이 아니었다. 승부사와 광대 둘을 부르겠다. 불필요하게 소모된 노동력을 식사를 통해 보충한다.
모리가 나이토에게 전화를 걸자 나이토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나이토 유즈루: 뭔 일이야? 나 바빠! 후루미나미 찾아야 된다고. 너흰 어떻게 되가고 있냐? 우린 못 찾았어!
모리 레이코: 발견했다. 광대 둘을 불러라. 식당으로 합류한다. 그리고 다이얼로그에 대고 소리치지 마라. 시끄럽다.
나이토 유즈루: 뭐? 찾았다고? 사지 멀쩡하냐?
후루미나미 나몬: 승리의 V.
후루미나미가 태연하게 양손에 V를 만들자 모리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멀쩡한 목소리를 듣자 나이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이토 유즈루: 그래. 멀쩡하게 들리네. 대체 어디 있었대?
히무로 시라베: 자기 전용실.
모리 레이코: 너흰 헛걸음을 했다. 더 체력을 낭비하지 마라.
나이토 유즈루: 별 일이 없다니 다행이네! 이제 진짜 밥탐이다!
하기와라 우시오: 악! 못찾겠다 씨발 꾀꼬리! 네가 이겼으니까 당장 튀어나와!
이바라 쿠리스: 제대로 찾아! 사람 목숨이 우리 손에 달렸어!
나이토 유즈루: 야! 후루미나미 찾았단다! 자기 전용실에 있었대!
이바라 쿠리스: 자기 전용실?! 그럼 우리는 왜 여기서 뺑뺑이 돈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썅. 괜히 오바떨었네! 모여! 다들 모여!
모리 레이코: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식당으로 오라고 전해라. 식당이다. 4층의 식당.
나이토 유즈루: 그래. 간다고 가!
전화를 끊자 모리가 앞장서서 식당으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모리 레이코: 가자. 이제부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 때문에 너희들이 왔다갔다하네. 미안하게 됐어.
캐롤 브라이트: 미안하시다면 이번 기회로 행동을 고치시면 돼요. 그럼. 식당으로 가죠.
모두가 하나 둘 식당으로 발을 옮기는 동안, 후루미나미가 왜인지 멀뚱멀뚱 서서 곰방대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캐롤 씨를 뒤따라가다 말고 그녀의 행동을 의식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후루미나미. 거기 서서 뭐 해? 식당으로 가자. 거기서 밥 못 먹은 사람들은 밥 먹고. 조사한 내용은 서로 나눠야지.
후루미나미는 허공을 우수가 넘치는 눈빛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갈 땐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나나시: 고칠 생각이 전혀 없잖아. 후루미나미!
히무로 시라베: 궐련과 달리 곰방대를 통한 흡연에는 '한 대' 라는 단위가 성립할 수 없어. 그러니 흡연은 나중에 하고 일단 따라와.
후루미나미 나몬: 아. 피드백 고마워. 히무로.
나나시: 저렇게 오류를 고쳐주면 순순히 따라오는 거야...?
토키와에게 전화를 걸어 회의 내용을 그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식사를 하지 못한 인원들은 거의 다 식은 음식들을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야가미 토가: 토키와 씨는 저희가 조사한 내용을 듣지 못하셨으니, 거리 왜곡에 대한 얘기부터 해 볼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보다 토키와도 이 쪽으로 불러오면 안 돼?
토키와 아유키: 이런 때일수록 미도리카와를 향한 감시를 더 철저히 해야 해.
모리 레이코: 게다가 어차피 회의 내용은 통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리더를 이 쪽으로 불러올 필요는 없다.
토키와 아유키: 그래서. 거리 왜곡이 뭐야?
히무로 시라베: 말 그대로 거리가 왜곡되는 현상이야.
카나리 케이토: 좀 이해가 되게 설명해 봐.
칸나즈키 시노부: 난 이해 잘 되는데? 거리가 왜곡되면 거리 왜곡. 신이 내려오면 신내림. 아기가 귀신이면 아기 귀신.
카나리 케이토: 꼭 자기 같은 예시만 들고 앉았어요 아주...
하기와라 우시오: 간단히 말해서. 탑에서 멀어지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보다 탑으로 돌아오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가 더 짧다 이거야.
토키와 아유키: 거리가 짧아진다고? 같은 거리가?
모리 레이코: 겉으로 보기엔 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폭 수는 같지. 그저 한 보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증폭될 뿐이다.
히무로 시라베: 사실 표본이 부족해서 정확한 경위나 기준에 대해서는 전부 알아낼 수 없었어. 실제로 탑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부턴 거리 왜곡 현상이 사라졌거든.
히무로 시라베: 왜곡 비율 역시 아직 정확하게 측정해지 못했어, 하기와라와 캐롤의 말대로 그저 특정 지점에 따라 거리 왜곡의 비율이 가까워 지는 걸수도 있고.
야가미 토가: 하지만 거리 왜곡이 항상 일정한 비율로 이루어진다면, 히무로 씨의 말대로 어느 지점부턴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난 그 부분이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나아갈 순 있는데 나아갈 수 없다는 거.
토키와 아유키: 어느 지점부턴 나아갈 수 없다고?
야가미 토가: 히무로 씨의 가설입니다. 오고가는데 소요된 시간과 거리 왜곡의 비율이 맞지 않는 이유는 저희가 어떤 시점부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죠.
모리 레이코: 우리는 106의 거리를 나아갔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 실제로 우리가 간 거리는 75에서 전혀 늘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나이토 유즈루: 말은 쉽지. 사실 걸어본 입장에선 거리가 늘어나는지 안 늘어나는지 알 방법이 없어.
나이토 유즈루: 밥 먹고 회의 끝나면 다시 벽 쪽으로 가볼란다. 대충 그 현상이 어떤 느낌인지 다시 살펴 봐야겠어.
나나시: 벽 쪽으로? 맞아. 어쩌면...
나나시가 다이얼로그를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나시: 안 받네...? 카이다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아. 무슨 일이 있나 봐.
히무로 시라베: 아쉬운 일이야. 카이다와 통화할 수 있었다면 거리 왜곡 현상의 정확한 기준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하기와라 우시오: 카이다 걱정은 안 하쇼?
히무로 시라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카이다는 믿기 어려워. 미도리카와 이상으로 경계해야 할지도 몰라.
즉각적으로 반응이 돌아왔다.
나이토 유즈루: 갑자기 왜? 걘 그냥 미도리카와한테 괴롭힘받고 있잖아.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가 카이다만을 적대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어. 미도리카와는 이렇게 말했지.
미도리카와 아쿠토: 이건 우리 둘 만의 이야기로 끝나야 해.
히무로 시라베: 행동으로 말미암아. 미도리카와의 표적은 우리가 아니라 카이다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야가미 토가: 게다가 카이다 씨는 미도리카와 씨를 모르는데, 미도리카와 씨는 카이다 씨를 아는 눈치였습니다.
모리 레이코: 총잡이가 첩자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낸 것을 보면 분명 과거에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을 거다.
나나시: 심상치 않은 일?
히무로 시라베: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순 없겠지. 그러나 내 전용실에도 제대로 작동하는 총은 없었는데,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는 있는 걸 보면 분명 그는 총기와 큰 관련이 있는 사람일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그거 마치 너도 총과 적잖은 관련이 있다는 걸로 들린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전용실에도 화약은 안 들었지만 총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겠지.
캐롤 브라이트: 곧 히무로 씨의 전용실에서 두 눈으로 조사할 수 있겠죠. 누군가의 비밀을 포함해서 과거를 캐는 것은 좋아하는 일이 아니지만...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그렇게 넘어갈 게 아냐. 히무로의 말은 다른 느낌이었어. 몬가. 몬가 느낌이 달랐어.
야가미 토가: 맞습니다. 히무로 씨의 어조에는 그가 스스로를 총과 연관이 많은 인물로 여긴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모리 레이코: 그러나 프로파일러는 우리에게 협조하고 있고 총잡이와 첩자는 아니다. 보다 시급한 사안에 대해 논해야 한다.
모리 레이코: 그 둘은 스스로의 전용실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 그들의 전용실에 흉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토키와 아유키: 모리의 말대로 카이다는 심상치 않은 점이 있어. 난 어제 새벽 거의 모든 시간을 여기에서 23T와 미도리카와를 감시하며 보냈거든?
칸나즈키 시노부: 고마워. 토키와.
토키와 아유키: 갑자기 별 말을 다... 하지만 그 동안 카이다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카나리 케이토: 어쩌라고?
후루미나미 나몬: 토키와에게 발각되지 않았으니 카이다는 자기 방 안에 계속 있었거나, 탑 밖에 있었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런데 어라라? 이상하네? 카이다는 아까 벽 쪽에서 우리에게 다가왔잖아? 중간에 토키와에게 들킨 적이 없으니까 카이다는 계속 탑 밖에 있었다는 소리야. 어제 저녁부터 계속.
마유즈미 나데시코: 헉. 잠도 안 자고...?
후루미나미 나몬: 야외 취침을 했을 수도 있지만, 밥은 확실히 못 먹었을 거야. 식당이나 전용실에 가려면 탑 안에 있어야 할 테니.
나이토 유즈루: 미친. 다시 봤다. 카이다 걔 진짜 대단하네... 힘든 기색 없이 완전 쌩쌩하던데?
나이토 유즈루: 여기서 나가면 꼭 운동 쪽으로 나가 보라고 권유해야겠어. 장래가 미친듯이 밝아!
카나리 케이토: 그런데 가능한 일이긴 해? 그냥 토키와 쟤가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탑에 들어온 것 같은데.
23T5U130: 아니야. 후루미나미가 저격 소동을 틈타 내 눈을 피한 것과 달리, 새벽에 나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주변을 감시했어.
23T5U130: 그런 내 눈을 피하고 탑을 오갈 방법은 없어. 카이다가 자기 방으로 가려 한다면 내게 발각됐을 거야.
카나리 케이토: 쯧. 귀도 눈도 없으면서...
23T5U130: ...비유적인 표현이거든?
나나시: 그럼 카이다는 정말 탑 밖에만 있었단 거구나?
히무로 시라베: 밖에서 야외 취침을 했다고 가정한들, 식사를 하지 못했는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걸 보면 상당한 정신력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여기서 내 가설을 제시하자면. 카이다는 개조인간 같아.
하기와라 우시오: 오 쒸엣! 윈터 솔져처럼? 윈터 솔져 아시는구나! 와!
카나리 케이토: 개소리들을 한다 아주...
캐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가 전화를 받던가, 탑으로 와야 대화를 할 수 있을 텐데요...
히무로 시라베: 카이다에겐 대화가 아니라...
"당연하지.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옳은가?
하기와라 우시오: 왜 말을 하다 말어?
히무로 시라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해하다.
토키와 아유키: 난해하지... 대화로 풀자니 둘 다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끝난다. 캐롤 브라이트를 지속적으로 설득해 카이다 쿠로하 혹은 미도리카와 아쿠토와 접촉시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면 쉽게 끝난다.
허나 그녀에겐 그럴 의지가 없으니 차선책으로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전용실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리 그가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한들 한계가 있다. 그가 취침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때 23T를 이용해 제압하고 심문하면 카이다 쿠로하에 대한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다.
그들의 전용실 안에 흉기가 있다는 게 기정사실이 된 이상. 대화라는 선택지는 의미가 없다. 총기 보유가 궁지에 물리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몰라. 어차피 전면전을 시작하면 우린 다 너한테 죽어. 서로 피를 보지 않을 방법은 이거 뿐이야."
그녀마저도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총기 보유자가 궁지에 몰려 자제력을 잃어버릴 경우를.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그런데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단절되고 고립되지 못하는가? 어째서 자비를 가지는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가? 어째서 망설이는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양심의 가책인가? 적절하지 않다. 살인 게임 내에서라면 어떤 강경책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 탑의 인원들이 현재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 이유는 알파걸의 살인 게임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은 변질되었고, 초고교급의 의미는 상실되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기에 이들은 공포에 압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살인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감시와 통제가 필수불가결하다.
첫 번째 살인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첫 번째 살인을 기점으로 살인 게임의 분위기는 살풍경하게 변해간다. 인원들의 심리와 위기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전부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러지 않는가?
강경책은 필수불가결하다. 백신은 병든 사회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때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 분명 강경책을 사용한다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 살인 게임도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모든 다툼과 갈등을 승화시키고 모든 이들을 더 높을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르다. 그들과 난 닮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점이?
"그렇지만 그것을 살려두면 분명 모든 이들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전체의 경우로 확대시켜 일반화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도 내가?
적절하지 못한 순간의 적절하지 못한 감정이다. 하필 지금 그들에게 과거를 투영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모습. 그렇다고 한들 공감해선 안 된다.
양심의 가책. 공감. 부적절하다. 나는 그런 것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왜?
아무런 관용도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마지막 감시자가 되어라.
결국 그 역할에 얽매여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시자. 사람이 아닌 감시자. 최초의 내 역할.
형상기억합금처럼. 난 일정한 온도에선 최초의 나로 회귀한다. 아무리 그것에서 멀어지려고 해도, 그 역할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윤회하듯 난 감시자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분명 그 둘에게 내 사례를 적용하여 공감하는 일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행동이며, 부적절하다.
그러나 부도덕한 일은 아니다.
히무로 시라베: 믿어 보자. 미도리카와와 카이다를.
하기와라 우시오: 또잉?!
모리 레이코: 뭐...?
반응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다들 방향은 유사하다. 방금 전까지 빠른 시일내로 제압 운운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계기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들은 어련할까.
하기와라 우시오: 존나 의외인데?! 얘라면 분명 다 조져야 한다 주의로 갈 줄 알았어!
모리 레이코: 이상한 일이다. 너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인물일 줄 알았거늘.
캐롤 브라이트: 히무로 씨.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히무로 시라베: 다시 생각해봤을 뿐이야. 이제 막 하루가 지난 참이잖아.
히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와 카이다에 대한 사안은 분명 중요해. 그렇기에 섣불리 결정해선 안 돼. 좀 더 지켜보자.
허나 난 이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자유를 빼앗으면 위험도 사라지지만 나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협이었고,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감시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 과거를 누군가가 답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던가, 메리라면 이렇게 했을 터라던가 그런 것이 아니다. 맞긴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단지 내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이 심경의 변화를 긍정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수도 있다. 허나 부정만큼은 확실히 할 수 없다.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
나이토 유즈루: 나이쓰! 역시 좀 묘해도 괜찮은 놈일 줄 알았어.
야가미 토가: 저는 이대로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이다 씨는 탑에 없고, 미도리카와 씨는 막 누군가를 협박한 참이죠.
야가미 토가: 굳이 지금 결정하거나 그들을 압박하는 일은 벌집을 쑤시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보류합시다.
모리 레이코: 벌집이라. 확실히 그럴지도... 나도 보류에 찬성하겠다. 섣불리 행동한 결과 누군가가 상해를 입는 일은 최악의 결과다.
토키와 아유키: 그럼 미도리카와와 카이다의 건은 보류. 지금은 다른 일에 대해 논의할까?
나나시: 다른 일이라면... 그거?
마유즈미 나데시코: 설마. 설마. 그거. 그거! 그만! 그만해! 왜 자기들끼리만 아냐고!
모리 레이코: 프로파일러의 전용실을 말하는 거다. 식사도 끝났으니 어제 했던 약속대로. 지금부터 프로파일러의 전용실로 간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 히무로 전용실 말이구나...? 거기 진짜 가는거야?
나이토 유즈루: 거참. 오늘 하루 바쁘게 돌아다니네.
이바라 쿠리스: 하긴. 넌 진짜 어지간히 돌아다녔다. 벽 쪽으로 갔다 돌아오고 탑 근처 수색하다 돌아오고...
나이토 유즈루: 그래서 좀 피곤해. 전용실 둘러보자마자 자러 갈란다.
하기와라 우시오: 걍 지금 자. 왜 굳이 전용실 둘러보고 자야 되냐?
모리 레이코: 내 말 안 들렸나? 나는 분명 지금부터 프로파일러의 전용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나는 지금 히무로 전용실 가기 싫은데.
모리 레이코: 너는 어린 아이인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한들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하기와라 우시오: 어린애같은 건 카나리지. 태도 얘기라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카나리 케이토: 이 자식이?! 지금 나 보고 어린애같다고? 그럼 이 돌팔이는 왜 제외하는데?
칸나즈키 시노부: 미세하지만 내가 너보다 키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근데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 나 지금 엄청 뺀질거리고 싶거든?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 아니야?
하기와라 우시오: 나 지금 피곤해. 지금 밥도 먹으니까 잠이 솔솔 와. 아! 지금 눕는 자리가 친정이야. 나도 이 정도인데. 나이토. 히무로. 야가미는 어떨 것 같냐?
캐롤 브라이트: 맞아요. 세 분은 저희를 위해 많이 애쓰겼어요.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걍 잠깐 쉬었다가 히무로 전용실 가자. 이게 내 제안.
나이토 유즈루: 오오!! 솔직히 너무 구미가 당기는데...?
이바라 쿠리스: 나도 찬성! 낮잠 좀 자고 싶어. 고생만 했다간 피부가 퍼석퍼석해진단 말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 말에 찬성이야! 나도 할 일이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데...
모리 레이코: 기각한다. 우린 이미 연기자와의 건으로 시간을 낭비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 그렇지? 그렇겠지...?
이바라 쿠리스: 사실 상대가 모리니 별 기대는 안 했지만. 단칼이네!
하기와라 우시오: 지금 잠시 휴식을 취해서 능률을 끌어올린다면 공리 증진에 걸맞는 일이 아닐까? 응? 어때?
모리 레이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지 마라.
하기와라 우시오: 쳇. 안 통하네... 사실 그냥 내가 쉬고 싶은거에 이유 갖다붙이는 거지만. 일단 토키와. 너 거기서 계속 23T랑 미도리카와 감시할 거지?
토키와 아유키: 응. 그렇지.
하기와라 우시오: 근데 그럼 히무로 전용실에 같이 들어오진 못하겠네? 명색이 리더인데 얘를 언제까지 무슨 누렁이마냥 집만 지키게 할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이 친구도 앞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려면 히무로의 전용실을 자기 눈으로 봐야 해. 그렇잖아!
모리 레이코: 잠시 다른 이를 총잡이와 인공지능의 감시역으로 세울 수도 있고, 그를 제외한 이들의 조사가 끝나면 그를 진입시켜도 좋다.
하기와라 우시오: 근데 결국 둘 다 토키와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잖아. 그 사이에 일이 터지면 어쩔 셈이야?
모리 레이코: 언젠가 리더의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면 언제 하든 나쁠 것이 없다.
하기와라 우시오: 언젠가 히무로 전용실에 갈거면 언제 가든 나쁠 게 없잖아? 그럼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자.
모리 레이코: 이미 우린 충분한 시간을 낭비했다고 말했을 터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나?
나이토 유즈루: 싸우지 마. 싸우지 마! 오케. 안 쉬면 되잖아. 안 쉬면!
하기와라 우시오: 넌 안 쉬게? 알겠어. 근데 난 쉬어야겠다. 난 지금 존나 잠을 자고 싶거든.
야가미 토가: 하기와라 씨. 지금은 전용실 조사가 우선사항입니다. 개인적인 휴식보다는 정보가 우선합니다.
나이토 유즈루: 그래. 하기와라. 쉬는 것도 좋지만 이번만큼은 굽혀 주자. 조사만 끝나고 쉬면 돼.
하기와라 우시오: 언제까지 굽힐 거냐고. 아니아니. 너희 무슨 노예니? 토키와가 고개 숙여서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싸이코가 옆에서 득득 긁는데 잘도 할 마음이 생기나 봐?
모리 레이코: 집단과 공리를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포기하는 일은 고결하다. 그것을 노예의 행동이라고 폄하하지 마라.
모리 레이코: 네 제안에 내 대답은 기각이다. 고려할 가치도 없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씨발. 니가 그걸 왜 기각해? 좆같네.
하기와라의 입에서 물 흐르듯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욕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몇몇 이들은 그것이 욕설이라고 눈치채는 것도 늦었다. 이바라는 잔뜩 놀란 얼굴을 한 채 하기와라에게로 몸을 날렸고, 그의 머리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하기와라 우시오: 끄으아아악! 내 대가리에 바람구멍이!
이바라 쿠리스: 무슨 싸움닭처럼 싸움만 걸어대긴. 그거 진짜 안 좋은 버릇이야. 모리. 미안해!
모리 레이코: ...상관 없다. 나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나이토 유즈루: 속은 시원했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시원했지만 쌍욕은 좀 그렇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오오! 개아프네! 근데 어이가 없잖아! 왜 모리가 무슨 귀족처럼 구는데 우리가 맞춰줘야 해?
모리 레이코: 귀족...?
하기와라 우시오: 그렇잖아! 네가 나나시한테 째트킥 날릴 때도. 나랑 이바라 광대라고 부를 때도 다 넘겨주니까 당연한 줄 알잖아?! 우리를 봉으로 본다고!
하기와라 우시오: 그냥 그러려니 하니까 내 대가리를 밟고 굴복시키려 드네! 아이고. 귀족주의자 납셨어요. 낫이랑 망치에 대가리 깨지길 진심으로 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주장에 이바라의 주먹이 한 번 더 날아들었다. 하기와라는 머리를 감싸안고 잔뜩 신음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으으윽... 언동 보니까 무슨 토키와의 리더 자리라도 먹고싶나본데. 너 그따위로 하면 우리 폭삭 망해. 알아?
하기와라 우시오: 지금 네가 뺨싸다구 한 대라도 제대로 맞지 않은 이유는 단지 다들 널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야. 쟤는 원래 저런 애니까 내가 참아야지. 하고 넘겨주고 있는 거라고. 근데 넌 끝도 없이 지랄을 토해내고 있어!
항상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하기와라의 난폭한 말들은 다른 이들을 적잖이 당황시켰다.
나나시: 저. 저렇게까지 계속 말해도 괜찮은 거야...? 저러다가 진짜 싸우겠어.
히무로 시라베: 맞는 말인데 말릴 필요가 없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뭐어?! 히무로. 저렇게 과격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야가미 토가: 언젠가 나올 말이긴 했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하기와라 씨일줄은 몰랐군요.
하기와라의 말은 모리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는지, 지금까지 거의 동요하지 않았던 그녀조차도 눈을 약간 크게 뜬 채 입을 열지 못하는 채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집단을 통제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들 만난지 첫 날에 흉기도 없애고 태우고, 난리도 아니었지?
하기와라 우시오: 뭐 찾겠다고 벽 쪽으로도 가 보고. 후루미나미 찾겠다고 뺑뺑이도 돌고. 다들 군말없이 잘 했어. 심지어 저 징징대는 카나리조차 회의는 꼬박꼬박 참여하잖아.
히무로 시라베: 카나리는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 사실 우리한테서 멀어질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지.
카나리 케이토: 개소리 마! 미쳤어?! 죽을래?!
카나리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일그러졌다.
후루미나미 나몬: 얘 캐릭터성 하나는 진짜 뚜렷하네.
칸나즈키 시노부: 그래서 좀 재밌지 않니? 놀리는 재미가 쏠쏠해.
카나리 케이토: 닥쳐!
카나리의 노성에 후루미나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미나미 나몬: 그럴지도 몰라.
하기와라 우시오: 아무도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줬어. 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다 함께 힘을 모으면 순식간에 할 테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그런데 앞으로도 그렇게 될까? 그렇게 잘 풀릴 것 같아?
모리 레이코: ...무슨 말을 하고 싶나?
하기와라 우시오: 까짓거. 손해보는 것도 아니니까 해 주자. 이런 마음으로 언제까지 임할 수는 없다는 거야. 내가 지금 얻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한테는 오지 않을거란 법이 있나. '어? 이걸 내가 왜 해야 하지?' 말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언젠간 다들 지치던가 짜증을 내던가. 난리가 날 거야. 불만점이 튀어나오고, 불평이 커지고, 그러다간 펑. 살인이 나겠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갑자기 살인으로?!
이바라 쿠리스: 야. 그건 너무 나갔어.
하기와라 우시오: 이건 비약이 아니라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야. 난 그냥 물꼬를 터 주는 거고. 언제든지 나 같은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하기와라 우시오: 그리고. 누구든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낼 수 있다는 걸 말이지. 앞사람이 이렇게 맵게 나오면 어지간한 불평 정도는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잖아?
칸나즈키 시노부: 으흠?
하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이 쯤에서 쉬어가자고. 진심으로 건의하는 거야. 한 시간 정도 쉰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달라져?
모리 레이코: 음...
모리가 잠깐의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확인하자마자 하기와라는 식당을 박차고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잠을 자러 가는 거겠지.
하기와라 우시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그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토키와 아유키: 아. 하기와라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늦었네.
이바라 쿠리스: 고맙다고? 저게? 그냥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은데.
히무로 시라베: 결과적으로, 하기와라의 말마따나 그는 물꼬를 터 줬어. 잠시 흘러나올 수 있는 불만을 대놓고 언급하며 환기시켰지.
토키와 아유키: 말하자면 스팀을 빼 준 거야. 더 큰 불만이 터지지 않도록. 하기와라는 꽤 생각이 깊은 사람 같아.
나이토 유즈루: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아무튼 잠을 잘 수 있으니 잘됐네!
토키와 아유키: 정말 다행이지... 모두들 앞으로 1시간 뒤에 너희들은 히무로의 전용실 앞으로 모여 줘. 하기와라에게도 전해주고.
나나시: 그래서 토키와 넌 어쩔거야...? 중간부터 논의가 바뀌어서 그 얘기는 못 했네.
캐롤 브라이트: 먼저 조사를 끝낸 분들이 토키와 씨를 대신해서 23T 씨와 미도리카와 씨를 감시하기로 할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보다 토키와는 휴식 1시간동안 잠도 못 자?!
토키와 아유키: 아직은 여유로워. 걱정하지 마.
토키와 아유키: 그러니까. 이만 해산.
토키와와의 통화가 끊기고 다들 식당에서 발을 옮기는 동안, 모리만큼은 식당에 계속 앉아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토 유즈루: 거참... 욕 먹어서 기분이 심란하냐? 답지않게 시무룩해있네. 꽁해있지 말고 힘내. 임마.
히무로 시라베: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자.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꽤 무례하게 대해 왔잖아.
마유즈미 나데시코: 갑자기 돌직구!... 그치만 사실일지도.
모리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모리 레이코: 아니. 이것은 내 철학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코미디언이 계몽의 계기가 될줄은 몰랐으나 계몽을 거부하진 않겠다.
나이토 유즈루: 진짜 답지않네. 왜 갑자기 반성 모드야?
모리 레이코: 내 행실. 내 철학... 구성원의 동의 없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리 레이코: 휴식 시간. 내 전용실로 돌아가 계속 사색하겠다. 너희들도 효율적인 시간을 보내길 바라겠다.
모리는 그렇게 뚜벅뚜벅 식당에서 나갔다.
칸나즈키 시노부: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야. 알지? 모리가 많이 변하진 않길 바라자.
마유즈미 나데시코: 몰라! 뭐야 그개! 처음 들어! 무셔!
히무로 시라베: 그럼 후루미나미는 항상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있겠어?
내가 말하자마자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히무로 시라베: 농담이야.
나이토 유즈루: 너도 농담을 하니...?
칸나즈키 시노부: 네가 하니까 농담으로 안 들려.
칸나즈키 시노부: 그리고 농담으로 들어도 별 재미가 없어. 넌 천부적으로 농담에 소질이 없어.
칸나즈키 시노부: 재미 없어. 썰렁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렇게 말할 것 까지야... 그래도 진지하게 들려서 무섭긴 했어! 안 그래도 후루미나미 아까 사라졌을 때 걱정 많이 했단 말이야.
히무로 시라베: 역시 농담은 무척 어려워... 아무리 배워도 말이야.
나이토 유즈루: 농담을 연습하려는 거 보니까 너도 하루만에 꽤 변했나보다?
나이토 유즈루: ...헉. 히무로 너 혹시?!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악! 빨리 다시 돌아와! 농담 없는 히무로로 돌아와!
그래. 저것이야말로 농담이라 할 수 있겠다.
히무로 시라베: 너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난 돌아오게 되어 있어. 농담을 모르는 나로.
잡담이 끝나자 다른 이들과 나도 식당 밖으로 나왔다. 1시간의 휴식 시간. 허나 난 그다지 지치지 않았고 잠을 잘 필요성 역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막연하게 전용실로 향하거나 기약 없이 조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1시간동안 뭘 하며 보내야 할까?
후루미나미 나몬: 왓슨.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
후루미나미의 질문에 난 적합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자유행동이 시작됩니다
후루미나미 2표
23T 1표
마유즈미 1표
투표 결과 후루미나미 자유행동이 먼저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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