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1

더 단크 타워 챕터 1 - 6

by 도타싫어! 2020. 4. 15.

 

롤 브라이트: 제가 강경책을 사용해야 할까요?

 

나시: 강경책이라면... 모리가 말한 그거요?

 

모리는 미도리카와나 카이다, 히무로에게 터치를 사용해서 심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롤 씨가 거부한 그 주장. 강경책의 사용.

 

이 질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폐부를 찔렀다. 단지 그들을 강제로 심문하는 것이 옳느냐. 나쁘냐로 단순하게 끝날 명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남고 싶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몇 명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도 좋은가?

 

결과는 과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 모든 이들에게 강제로 터치를 사용해 안전을 확보하더라도,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과가 과정을 선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죽더라도. 부정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과정이 그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강경책을 사용했다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시체 앞에서. 우리가 감히?

 

난 혼란을 느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사람다운 일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살아남을 방법을 물색해야 하는가. 아무리 상황이 힘들더라도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가.

 

어쩌면 이것은 토키와가 옳은가 모리가 옳은가에 대한 물음일지도 몰랐다. 난 그녀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토키와의 말대로 모리가 우리를 이끌면 우리는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지 못하니 모리가 틀렸다면. 과정이 결과를 정당화하지 못하는데 토키와가 옳을 수 있을까?

 

딜레마였다.

 

나시: 괜찮아요... 이상한 기억이 떠오르면 머리가 자꾸 아프네요. 언제 겪은지도 모르는 기억들...

 

롤 브라이트: 제가 새로운 고민거리를 당신께 드린 것 같네요.

 

나시: 아뇨. 언젠가는 정해야 하는 얘기니까요. 그렇지만...

 

나시: 전 아직 모르겠어요. 어떤 게 옳은지... 모르겠어요.

 

롤 브라이트: 저도 그래요. 언젠가는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알 수 없었다. 언제 알 수 있을까조차 알 수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혹은 답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일까?

 

 

 

 

 

 

좋지 못한 기억들이 인상적인 기억들로 변화하는 순간은 언제나 같았다.

 

"발포할 생각도 하지 마. 다 총 내려."

 

"그렇지만... 시라유키 씨!"


"명령이다. 전부 총 내려!"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사격 준비를 마친 뒤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목적으로 재단의 연구소에 침입했나?"

 

"인신매매. 불법약물 투여. 인체실험. 살인 등의 혐의로 관련자들을 체포하러 왔어. 필요하다면 사살도 가능하지."

 

"타당하다. 재단의 실험은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우리 입장을 이해했다면 총 버려줘. 네가 계속 무장한 상태라면 우리도 규칙 상 어쩔 수가 없어."

 

"......"

 

"하긴. 그렇겠지. 무기를 버리는 순간 사살당할 가능성이 있는데 우릴 무작정 믿긴 어렵겠지. 그렇다면."

 

가장 직책이 높을 것으로 추측되는 여성이 무장을 해제한 뒤 두 손을 위로 올리고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시라유키 씨! 돌아오세요! 뭐 하시는 겁니까!"

 

"자리 지켜. 내 걱정 하지 말고."

 

"그 행동은 항복을 암시하는 것인가?"


"난 카텟 기관의 간부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 시라유키 히메리라고 해."


"직함이 구체적이지 않다. 시라유키 히메리."

 

"적어도 이 재단 연구소에 투입된 행동부대의 최종 명령권과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이 정도면 충분히 구체적이야?"

 

"지휘관인가? 그렇다면 왜 무장을 해제한 것이지?"


"무력한 인질이 돼 주려고."

 

"시라유키 씨!"

 

"조용히 해! 너희가 자극하면 일이 더 틀어져!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거라 생각하나?!"

 

행동의 의도가 이해되었다.

 

"내가 사살당하지 않기 위한 인질이 되어 주겠다는 뜻인가? 그러나 너는 제압 대상자의 돌발 행동을 고려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정보는 있거든. 사실 연구소 안에 있던 보고서 몇 개를 읽은 게 다지만 핵심은 간결해. 넌 섣불리 날 쏠만한 사람이 아니야."

 

"100% 확신할 수 있나?"

 

"몰라. 어차피 전면전을 시작하면 우린 다 너한테 죽어. 서로 피를 보지 않을 방법은 이거 뿐이야."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따금씩 의문이 들어 물을 때마다 메리는 항상 똑같이 답했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당시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아닐 터였다. 오히려 반대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옳은 일이란 나를 사살하는 일이었다. 위험인물을 배제하는 것.

 

실제로 나를 사살하려 한 카텟 기관의 부대원들은 전부 일반적인 도덕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열심히 근무하는 일, 무고한 이들을 지키는 일, 위험을 감수하는 일, 지극히 도덕적인 일이란 누구보다 나를 사살하는 일이었다.

 

옳음과 옳지 않음은 불변적이라고 믿었던 최초의 나에게 있어 메리가 준 패러독스는 풀 수 없는 난제와 같았다. 그런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미 지났다. 체력을 비축하자고 판단한 뒤 숙소로 돌아가 수면을 취했다.

 

 

 

 

 

 

23T5U130: 미도리카와. 지금 새벽 4시야. 전용실에서의 취침은 금지되어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알아. 그래서 깨 있잖아.

 

23T5U130: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졸면 바로 모노로그에게 처형당할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며칠 정도는 잠 안 자고도 버틸 수 있어.

 

23T5U130: 이미 다른 인원들은 자신의 숙소에서 취침하고 있어. 왜 너만 전용실에 남으려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누군가가 내 전용실에 들어오는 걸 막아야 하거든. 내 신분을 들킬 수도 있으니까.

 

23T5U130: 그게 목적이라면 전용실을 열쇠로 잠궈 두기만 하면 될 텐데.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 무의미한 고생일지도 몰라. 그러나 누군가가 내 전용실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23T5U130: 그 사람이 누군데?

 

도리카와 아쿠토: 말 못 해.

 

23T5U130: 괜찮아. 나도 강요는 안 해. 그저 네가 우리를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믿을 수 있을 때? 뭔가 오해하고 있구나. 23T. 난 너희를 믿을 수 없다던가, 너희가 싫다던가 그런 이유 때문에 말을 아끼고 전용실에서 나오지 않는 게 아니야.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니 너희를 믿을 수 있게 되더라도 내 행동은 바뀌지 않아. 언제나 똑같겠지. 내가 탑에 오기 전부터 말을 아껴왔던 것처럼.

 

몸을 숨기는 신분을 숨기고.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섣불리 말하지 않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더 단크 타워

챕터 1: < 죽여 마땅한 사람 둘 >

"과정은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몽롱한 내 정신에 한 목소리와 진동음이 들렸다.

 

모노로그: 기상. 기상. 9시다. 넌 기상하지 않았다. 기상해라.

 

나시: 으음...

 

모노로그의 기분나쁜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몸이 뻐근했다. 모노로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다이얼로그. 화면을 만져서 알람을 해제하자 9:00 AM이라고 적힌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알람은 매일 아침 9시에 울리는 건가... 싶어 준비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니 마유즈미가 보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후아암... 나나시. 방가방가.

 

나시: 안녕. 마유즈미.

 

유즈미 나데시코: 8시랑 8시 30분에도 알람이 울렸는데 그냥 무시하고 자 버린 거 있지? 우리 집에선 늦잠을 못 자니까 여기서라도 최대한 늦게 깨려고 했는데... 배가 고프더라고.

 

알람이 울렸던가? 나 정말 정신없이 잤구나. 알람이 울린지도 모르고 잤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미 깨 있으려나? 싶어 발을 옮겼더니 초췌한 낯빛을 하고 있는 토키와가 눈에 들어왔다.

 

유즈미 나데시코: 토키와! 방가방가!

 

키와 아유키: 안녕. 마유즈미. 나나시...

 

나시: 잘 잤어. 토키와?

 

키와 아유키: ...아니.

 

난 그의 퀭한 눈을 보고 그가 잠을 설쳤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도가 넘도록 퀭한 것을 보자. 그는 잠을 설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시: 너 안 잤어?! 안 자고 밤 새워서 꼬박 23T랑 미도리카와 보고 있었던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엥? 왜?!

 

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가 자기 숙소로 돌아가면 나도 돌아가려고 했는데. 전용실에서 안 나오더라고.

 

유즈미 나데시코: 쟨 또 왜 안 나왔대?! 그렇다고 탑 로비에서 밤을 꼬박 새는 사람이 어디 있어!

 

키와 아유키: 그래... 이렇게 컨디션이 나빠질줄은 나도 예상치 못한 바야.

 

나시: 그럼 미도리카와도 아직 깨 있어?

 

키와 아유키: 그래. 전용실에서 자는 건 규칙 위반이니까 미도리카와도 잠 안 자고 꼬박 전용실 안에서만 보낸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네.

 

키와 아유키: 지금 일어난 거지? 아침 먹으러 가. 이미 다른 사람들은 식당에 가 있어.

 

나시: 토키와 너도 슬슬 자. 아... 미도리카와가 방에서 안 나오면 못 자겠구나.

 

키와 아유키: 그렇게 되겠지. 의지력이 대단해. 내가 새벽에 설득하러 갔을 때도, 23T가 설득했을 때도 눈도 깜짝 안 했어. 심지어 캐롤 씨가 아침에 들르셨을 때도 문을 안 열어 주더라고.

 

유즈미 나데시코: 캐롤 씨도 오셨어? 그럼 정말 제풀에 지쳐서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텐데.

 

나시: ...아무래도 미도리카와랑 얘기를 좀 해 봐야겠어.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서.

 

유즈미 나데시코: 뭐? 나나시. 혹시 미도리카와가 총이라도 쏘면 어떻게 하게!

 

마유즈미가 내게 속삭였다. 나도 그 점이 걱정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난 안전할 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의 이야기지만...

 

나시: 잠깐 뭐 좀 물어만 보려는 거야. 안전해. 게다가 미도리카와는 남을 쏠 생각이 없어보여.

 

키와 아유키: 조심해. 나나시.

 

유즈미 나데시코: 조심. 또 조심!

 

토키와와 마유즈미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난 미도리카와의 전용실로 향했다. 문 앞에는 23T가 있었다.

 

23T5U130: 미도리카와를 찾아왔구나.

 

나시: 응. 그보다 23T. 너는 괜찮아? 잠을 잘 필요는 없겠지만... 안 피곤해? 연료는 안 모자라? 아니. 애초에 연료가 필요한가...?

 

23T5U130: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나시: 총알도 안 통하니 든든하긴 하지만 앞 일은 모르는 거니까... 위험하면 다른 사람한테 바로 전화해.

 

도리카와 아쿠토: 용건이 뭐야?

 

문 안에서 퍼뜩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시: 악! 아. 문 앞에 있었구나.

 

도리카와 아쿠토: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아침부턴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시: 시간 낭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용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널 설득하고 궁금한 것도 물어보려고 왔어.

 

도리카와 아쿠토: 어제부터 오늘까지 날 설득하려는 사람이 많네. 일일이 돌려보내는 것도 이젠 미안해질 지경이야.

 

나시: 그래. 돌려보내겠지. 캐롤 씨가 실패했는데 내가 성공할 방법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대답해 줘. 미도리카와. 왜 전용실에서 안 나오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나와 줬으면 좋겠어? 내가 총을 가지고 탑 안을 돌아다니면 다들 공포에 떨 텐데.

 

나시: ...그거 때문에 네 행동을 이해 못 하겠어.

 

나시: 미도리카와 넌 이런다고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네가 총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누구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고. 식당을 통제할 수도 있어. 우리한텐 흉기가 없으니까.

 

나시: 넌 그걸 못 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지. 내가 궁금한 건... 왜 안 하냐는 거야. 넌 총을 써서 자유를 더 얻었으면 얻었지 뺴앗기지는 않았어.

 

나시: 그런데 너는... 단순히 네가 착해서 우리를 겁주려는 게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잖아.

 

나시:  전용실에서 꼬박 밤을 새고. 어제 저녁도 안 먹었지? 널 챙겨줬어야 했는데 다들 잊고 있었어. 왜 이렇게 굳이 손해를 보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바로 아까 캐롤이라는 사람도 너와 비슷한 말을 했지. 그러니까 그녀에게 했던 대답을 너에게도 해 줄게.

 

도리카와 아쿠토: 말 못 해. 돌아가.

 

예상한 바였지만, 난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나시: 알겠어...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다면 식당에서 뭐라도 가져다 줄게. 먹고싶은 거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전용실에 내가 선호하는 음식이 좀 있어. 배가 고프지는 않아. 몸을 씻긴 어렵지만 작은 화장실도 하나 있고... 잠만 안 자면 전용실에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그러니 그만 돌아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결국 질문의 답도 하나 못 받았다. 더 물어봤자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까.

 

일단 이 주제를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모두와 같이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난 마유즈미와 토키와를 향해 돌아갔다.

 

유즈미 나데시코: 어때?

 

나시: 큰 수확은 없었어. 아쉽게도...

 

키와 아유키: 괜찮아. 여유를 가지고 계속 시도하면 될 거야. 그만 식당으로 가 봐.

 

유즈미 나데시코: 응. 힘들면 언제나 말 해. 응원하고 있어! 캡숑 파이팅 킹왕짱!

 

나시: 마유즈미. 너 정말 나랑 동시대 사람 맞아...?

 

 

 

 

 

23T5U130: 거짓말을 했구나?

 

도리카와 아쿠토: 그래. 알아채다니 신기한데?

 

23T5U130: 보폭 소리가 들렸거든. 넌 계속 문 앞에 있었던 게 아니야. 걸음거리 수로 보아 창문 쪽에 있었어. 탐사 나간 5명을 보고있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도리카와 아쿠토: 내가 찾는 건 따로 있거든.

 

 

 

 

 

 

기와라 우시오: 요오오! 지금 어때애?! 대충 어디까지 갔어어?!

 

이토 유즈루: 잘 안 들려어어어! 더 크게 말해애애!

 

가미 토가: 다이얼로그가 있는데 왜 육성으로 대화하고 계십니까?

 

이토 유즈루: 야가미가아아! 다이얼로오그가 있는데에애! 왜 말로 하냐는데에에?!

 

잠깐의 정적 후에 돌무더기 근처에서 한 연두색 실루엣이 소리쳤다.

 

기와라 우시오: 그건 그렇네에에! 아! ㅋ! ㅋ!

 

가미 토가: 소리 치지 마시고 통화를 하시란 말입니다!

 

이토 유즈루: 그러면서 너도 소리치고 있잖아...

 

가미 토가: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무로 시라베: 참아. 하기와라와 모리에게 전화 연결할게.

 

야가미와 나이토. 나는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리며 장미 밭에 서 있었다. 그렇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기상한 후 탑을 조사하던 도중. 나는 하기와라, 모리, 나이토, 야가미가 창고에서 물통을 챙기는 것을 보았다.

 

가미 토가: 좋은 아침이군요. 히무로 씨.

 

무로 시라베: 물을 챙기네? 어디 가려고?

 

이토 유즈루: 저기 벽 보이지? 멀리 있는 저 벽.

 

나이토는 창문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돌무더기보다 더 멀리 있는 벽. 길 없는 장미꽃밭의 끝에 있는 벽이었다.

 

무로 시라베: 저기로 탈출하려는 거구나.

 

가미 토가: 설마 탈출이 그렇게 쉽진 않겠지만, 적어도 조사는 해 봐야죠. 어쩌면 로프를 이용해 등반한다면 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토 유즈루: 우선 체력 좋은 나랑 야가미가 먼저 가 보고.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다른 애들이랑 뭐라도 해 볼란다. 다들 깨어나서 밥 먹기전에 후다닥 다녀올게.

 

리 레이코: 광대나 나처럼 신체적 조건이 뛰어나지 않은 자는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용실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기와라 우시오: 결국 난 '하기와라' 에서 '팝콘이나 가져와라' 가 된 거지. 그리고 '모리' 는 '양갱이나 가져오리'.

 

이토 유즈루: 사실 이런 준비없이 그냥 가려고 했는데. 얘랑 하기와라가 워낙 자기도 돕게 해달래서.

 

리 레이코: 당연한 일이다. 공리의 증진은 도와 마땅하다.

 

무로 시라베: 그렇다면 나도 갈게. 두 명 보다는 세 명이 낫지 않겠어?

 

이토 유즈루: 올. 당연하지! 어차피 물통은 많으니까 너도 넉넉하게 같이 갈 수 있겠다!

 

리 레이코: 반대한다.

 

이토 유즈루: 왜?!

 

리 레이코: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카텟 기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기에 식사를 마치면 프로파일러의 전용실을 확인하기로 했지. 모두가 동의한 사안이었다.

 

리 레이코: 우린 아직 프로파일러의 전용실을 확인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를 신뢰할 수 없다.

 

가미 토가: 맞는 말씀입니다.

 

기와라 우시오: 아니. 이걸 거른다고? 물론 히무로맨이 조금 꺼림칙하고 수상하고 무뚝뚝하고 모리 순한맛 정도로 싸이코같긴 하지만 이걸 거른다고?

 

무로 시라베: 평가가 너무한데.

 

기와라 우시오: 쏴리. 근데 지금 당장 히무로 전용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일찍 깬 거지 다른 애들은 아직 자고 있으니까.

 

기와라 우시오: 그래서 노가리나 까고있기보다는 뭐라도 하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 짐 싸고 있는 거 아니야? 동료각이다. 동료각!

 

이토 유즈루: 모리 넌 히무로가 우릴 배신하거나 심상치 않은 짓 할까봐 그러나본데. 나랑 야가미 둘이 뭉치면 곰도 잡을 수 있어.

 

가미 토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저와 나이토 씨라면 대부분의 위기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원래 탐사를 가기로 했던 인원이 저와 나이토 씨인 거고요.

 

가미 토가: 결과적으로. 저는 히무로 씨와 저희가 동행해도 좋다고 봅니다. 아직 살인 게임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배신을 하기엔 이른 시간입니다.

 

리 레이코: 확실히. 승부사와 협상가라면 프로파일러가 배신한들 힘으로 제압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혹시 흉기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니 몸수색을 실시하겠다.

 

무로 시라베: 배신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얘기하는 것은 좀 서운하지만. 알겠어.

 

모리가 내 상반신을 검사하자 하기와라와 나이토가 크게 당황했다.

 

기와라 우시오: 오우야. 저기부터 시작했어! 오우야!  미친! 구석구석... 이. 이거 수위 괜찮은 거야?! 어어어? 야. 거기에 손가락을 넣으면...

 

이토 유즈루: 이상한 추임새 넣지 마!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이상하게 보이잖아?! 모리. 차라리 내가 할게. 미안한데 모양새가 좀 이상해.

 

리 레이코: 믿음이 가지 않지만... 네게 맡기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지. 정 그렇다면 내가 팔을 수색할테니 다른 부위는 네가 수색해라.

 

그렇게 모리가 내 팔을 집요하게 수색했고, 나이토 역시 모리만큼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내 몸을 전체적으로 뒤졌다.

 

이토 유즈루: 흉기 같은 거 없어. 진짜 바늘 하나도 없어.

 

리 레이코: 좋군. 마지막으로 프로파일러. 발목 잡지 않을 자신 있나? 조사를 떠난 네가 갑자기 졸도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만 끼칠 뿐이다.

 

가미 토가: 걷다가 쓰러질 정도로 깊이 들어가진 않을테니 괜찮습니다. 말 그대로 잠시 살펴보기만 할 거니까요.

 

기와라 우시오: 잠깐. 그러면 나랑 이 싸이코 단 둘이서 돌무더기에 남는 거야? 욱. 벌써부터 숨이 턱...

 

무로 시라베: 서로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멀어지면 다이얼로그를 사용하면 돼. 통신이 어디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이토, 야가미, 그리고 나는 벽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하기와라가 작은 연두색 실루엣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까지 도달했다.

 

무로 시라베: 평지인데도 이렇게 소리가 작게 들린다면 꽤 멀리 온 건데. 벽엔 반의 반도 채 못 온 것 같아. 대체 저 벽은 얼마나 멀리 있는거지?

 

기와라 우시오: 더 신기한게 뭔지 아냐? 통화는 잘 돼. 끊김 하나 없다고. 다이얼로그 이거 존나 쩔어. 주변에 와이파이는 터지나? 어떻게 전파가 전해지는 거야?

 

무로 시라베: 말하고 바닥을 뚫고 요리까지 하는 책 모양 기계도 있으니 뭐든 가능하겠지.

 

이토 유즈루: 아오. 장미 위로 걷는 거 불편해 죽겠다. 이렇게 많은 장미를 심으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가미 토가: 가시가 조금 불편하긴 해도 걷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다행이군요.

 

그리고 시간이 1시간 46분 지났다. 하기와라가 통화로 말을 걸어주었기에 그렇게 지루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신선한 게임을 하나 진행했는데, 최소한의 정보를 제시하면 질문을 통해 정보의 양을 넓혀 진상을 추리하는 게임이었다.

 

무로 시라베: 남자가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어?

 

리 레이코: 그래. 남자의 부모가 남자를 버린 적이 있나?

 

기와라 우시오: 아니! 둘 다 아니야! 이 간단한 문제에 그런 세세한 정보는 필요 없어! 너랑 모리는 왜 바다거북 수프를 그렇게 풀려고 하냐?

 

리 레이코: 이 놀이는 말도 안 된다. 사람의 행동에 유년기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데 그 정보가 필요 없다는 것이지?

 

가미 토가: 충분히 말이 되는 것 같은데요. 스무 고개의 변형판이나 다름이 없어요.

 

무로 시라베: 스무 고개가 뭔데?

 

가미 토가: 네? 진심이십니까? 스무 고개를 모르신다고요?

 

기와라 우시오: 다스 베이더 모르는 건 그렇다치고 어떻게 스무 고개도 모르냐? 진짜 쥰내 이상한 놈일세. 어디 갇혀서 사셨어요?

 

리 레이코: 잡담은 그만. 탐사조. 벽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토 유즈루: 아직도 많이 남았어. 이제 반 정도 온 것 같아.

 

리 레이코: 30분 전에도 그렇게 답한 걸로 기억한다만.

 

이토 유즈루: 그건 맞는데. 뭔가 이상해! 꽤 멀긴 해도 못 갈 정도까진 아니다 싶었는데 계속 걸어도 도무지 가까워지지가 않아.

 

리 레이코: 탈수증으로 인한 환각일지도 모른다. 수분은 제대로 섭취했나?

 

무로 시라베: 물이 처음 가저온 양의 반 정도 남았으니 충분히 마셨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가미 토가: 거리 감각이 이상해진 느낌입니다. 분명 나아가고 있는데 벽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이토 유즈루: 그래. 초반에는 좀 가까워진다 싶더니 지금은 무슨... 아무리 걸어도 위치가 그대로인 것 같아.

 

기와라 우시오: 이상한 일일세. 그럼 일단 돌아와. 다른 애들은 이미 밥 먹고 있어.

 

이토 유즈루: 뭐?! 그러고보니 밥 먹어야지! 빨리 가자. 다른 놈들이 아침밥을 다 먹어치우게 둘 순 없지!

 

가미 토가: 진정하세요. 애초에 식당 안에는 식재료도 구비되어 있으니 끼니를 거르실 일은 없을 겁니다.

 

무로 시라베: 더 탐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일단 돌아가자. 당장 벽에 닿는다고 해도 여기서 빠져나갈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아. 나중에 더 준비한 다음 더 멀리 와 보자.

 

리 레이코: 나쁘지 않다. 본래 이 탐사는 예비에 불과했다. 굳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돌아오도록.

 

무로 시라베: 그래도 탑이 있어서 방향은 헷갈릴 일이 없으니 다행이네.

 

난 뒤를 돌아봤다. 탑이 아직 그 곳에 서 있었다. 꽤 멀리 와서 이젠 샤프심보다 얇은 회색 선처럼 보였지만. 보인다는 것이 중요했다. 대체 얼마나 큰 탑이길래 여기에서도 볼 수 있는 거지? 난 탑이 720층보다 크다는 모노로그의 말에서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미 토가: 이렇게 광활한 평지에서 길을 잃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영락없이 조난을 당하는 거니까요.

 

이토 유즈루: 그보다 야가미. 나 양갱이랑 팝콘 좀.

 

가미 토가: 조금만 참으세요. 곧 식사도 하실 거잖습니까?

 

이토 유즈루: 내 몸은 연비가 나빠서 유지하려면 노력이 꽤 필요하다고. 안 먹고 움직이면 힘이 빠져.

 

가미 토가: 많이 드시진 마세요.

 

나이토는 야가미에게서 양갱과 팝콘을 받아들고 우물우물 씹었다. 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난 이 탑을 둘러싼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려고 했다. 탑의 크기는 둘째치고 이 장미꽃밭의 넓이는 도무지 측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장미를 심을 땅. 재배할 물. 씨앗. 들어간 모든 자원을 따져보면 절대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그러나 모노로그는 그것을 해냈다. 어떻게?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던 나는 이상한 위화감이 들어 잠시 발을 멈추었다.

 

가미 토가: 왜 그러십니까?

 

무로 시라베: 돌아가는 게 더 빠른 것 같아.

 

이토 유즈루: 그래. 여기서 벽까지 가는 것보다 탑으로 돌아가는 게 더 빠르겠지.

 

무로 시라베: 그 얘기가 아니야. 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탑으로 돌아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가미 토가: 네?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가 탈수증에 걸린 것 같다. 그에게 물을 먹여라. 그의 전용실을 확인하려면 그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무로 시라베: 착각이 아니야. 나이토. 탑 쪽으로 걸어 봐. 야가미는 이 자리에 서 있고. 난 벽 쪽으로 걸을게.

 

즉. 야가미를 중심으로 두고 나이토와 나는 같은 위치에서 정반대방향으로 이동한 셈이었다. 나이토는 내 제안에 의아한 눈치였지만. 군말없이 응해주었다.

 

이토 유즈루: 알겠어. 그럼 세 걸음 걷자. 하나. 둘. 셋.

 

무로 시라베: 하나. 둘. 셋. 어때?

 

가미 토가: ...놀랍군요.

 

기와라 우시오: 뭐야. 어떻게 됐는데? 니들끼리만 아는 얘기하지 말고 말을 해 봐.

 

야가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나와 나이토의 간격은 한 눈에 보기에도 넓었다. 보폭의 차이가 두 배는 나는 것 같았다. 분명 그와 나의 보폭은 비슷할 터였음에도.

 

무로 시라베: 불가능한데.

 

이토 유즈루: 이게 뭐야?! 야가미. 너 가만히 서 있었어? 히무로 쪽으로 살짝 움직인 거 아니야?

 

가미 토가: 아닙니다. 저도 놀라서 잠시 몸이 굳었어요. 움직이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가미 토가: 두 분은 확실하게. 똑같이 세 걸음을 걸었어요. 그런데도 거리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기와라 우시오: 거리차이 오지네. ㄱㄹㅊㅇ.

 

무로 시라베: 여기 있는 인원들이 전부 탈수증에 걸려 환각에 빠져있음에도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확률은 매우 저조해.

 

리 레이코: 동의한다. 그러나 믿기 어렵다. 그런 현상은 비현실적이다.

 

기와라 우시오: 뭐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ㄱㄹㅊㅇ가 있다고?

 

이토 유즈루: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고! 이번에는 내가 야가미 위치에 설 테니까 한 번 더...

 

나이토의 말이 멈췄다. 나도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야가미가 있던 시작점으로 돌아오려 한 나와 나이토는 서로의 이동 거리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나는 다시 세 걸음. 나이토도 다시 세 걸음을 걸었으나 우리가 마주친 곳은 시작점과 동떨어져 있었다.

 

리 레이코: 왜 말이 멈췄지?

 

무로 시라베: 말해 줄게. 내가 벽 쪽으로 세 걸음. 거리 +3. 나이토가 탑 쪽으로 세 걸음. 거리 -6이라고 칭하자. 이 때 나와 나이토 사이의 간격은 9.

 

무로 시라베: 여기서 나이토가 벽 쪽으로 세 걸음. 거리 +3. 내가 나이토 쪽으로 세 걸음. 거리 -6. 결국 나이토의 좌표는 -3. 나의 좌표도 -3으로 우리는 시작점인 0이 아닌 -3에서 마주쳤어. 서로 똑같이 움직였는데...

 

이토 유즈루: 씨발. 소름 돋아!

 

기와라 우시오: 이게 그 상대성 이론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가미 토가: 상대성 이론이 이럴 때 쓰이던 건가요?

 

기와라 우시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쓰나!

 

이 현상에 대해 우리는 혼란을 느꼈다. 낯선 탑. 모노로그의 존재. 탑을 공격한 광선. 23T의 존재. 탑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았으나 물리법칙이 통째로 변형되는 일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현상에 대해 몇 마디 더 중얼거린 뒤. 탑으로 돌아오는 우리 세 명의 귀에 그 기분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모노로그: 너희들.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모노로그가 나타났다. 그것이 바닥을 뚫고 나오는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그것의 둥실거리는 몸체와 기분나쁜 목소리. 웃음은 어제의 그것과 똑같았다.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 

 

리 레이코: 책이 나타났나? 무슨 목적으로? 설마 해코지를...

 

이토 유즈루: 우리가 탈출할 것 같으니까 싹을 자르려고 왔나 봐. 그냥 당해줄 순 없지. 확 가로세로로 쭉쭉 찢어 버릴라.

 

기와라 우시오: 스탑! 그거 찢으려다가 네 사지가 찢기는 수가 있어!

 

모노로그: 당연하지. 이 탑에서 절대 내게 대항하려 하지 마라. 나를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든 간에 전부 처형 사유다.

 

기와라 우시오: 네 다음 어제 23T한테 도넛 구멍 생기고 반갈죽당하신 책.

 

모노로그: 그리고. 싹을 자른다고 했지. 미안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어떤 싹도 자랄 수가 없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필 수 없듯 말이다. 벽을 통해 탑에서 탈출하려 하다니. 정말 순진하군. 너흰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내가 보장하지.

 

가미 토가: 그 말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모노로그: 내가 굳이 왜 그래야 하지? 난 이미 너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저 벽을 향해 의미없는 발걸음을 하지 않도록 너희를 만류했다. 뭘 더 바라는 거냐?

 

모노로그: 설마 진지하게 저 곳을 통해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 하. 그럴 수 있었다면  내가 그럴 수 없게 만들었으리라는 건 당연한 이치다. 다들 왜 그 짧은 생각을 못 하고 벽을 통해 나가려는지. 원...

 

무로 시라베: '다들' ?

 

모노로그: 내가 탈출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으니 탈출할 방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진 마라. 난 정말 너희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

 

모노로그: 서로 죽고 죽이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으니.

 

모노로그는 또 다시 자신의 말만 끝내고 사라져버렸다. 난 그것이 바닥을 통과하며 장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려고 했으나, 모노로그는 장미를 '뚫었다'. 말 그대로. 형체가 없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처럼 장미를 뚫고 지나갔다. 장미에는 어떠한 흔들림이나 손상도 없었다.

 

무로 시라베: 또 다시 사라졌어. 불가사의한 방법을 사용해서.

 

기와라 우시오: 얜 진짜 매너가 없네. 맨날 지 할 말만 하고 떠나. 킹받네 진짜!

 

가미 토가: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확실히 벽을 통해 나가긴 어려울 것 같군요.

 

리 레이코: 그러나 책을 신뢰할 수 있나? 나라면 그러지 않겠다.

 

이토 유즈루: 나도 안 믿어. 나중에 혼자라도 도전해 봐야지... 저렇게까지 말하니까 오히려 더 벽을 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기는데!

 

리 레이코: 승부사. 나와 같은 주장을 하겠다면 논거를 몇 개 준비한 뒤 말하지 않겠나? 너의 비이성적 결론이 내 주장도 비이성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토 유즈루: 이게 진짜 남 속 득득 긁을래?! 자꾸 시비를 거네!

 

무로 시라베: 그만 싸우고 돌아가자. 원래도 돌아가기로 했었잖아. 거리 왜곡이 있으니까 온 것보다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걷는 동안, 나이토와 모리가 다이얼로그로 말다툼을 몇 마디 더 나눴고 하기와라는 옆에서 그것을 부추겼다. 야가미는 아무 말 없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는 귀를 막고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나도 생각에 잠겼다.

 

왜 벽에 가까이 갈 수 없는가? 거리 왜곡은 어느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그저 착시인가? 이 정도 크기의 장미꽃밭을 만들어내는 효율적인 방식이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을 한 번에 생각하는 것은 빙하를 가스 버너로 녹이는 일과 같았다. 탑에 거의 도착하는 동안 난 어떤 의문에도 답을 내지 못했다.

 

이토 유즈루: 이제 다 왔네. 하기와라랑 모리 보인다. 어... 다른 애들도 몇 명 보이는데?

 

가미 토가: 그렇네요. 아주 작지만 분명히 다른 분들도 몇 명 보입니다.

 

리 레이코: 뒤늦게 일어난 인원 몇 명이 식사 도중 너희들의 행적을 듣고 마중을 나온 것 같다. 곧 돌무더기에도 도착하겠군.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와 모리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이네. 분명 아까 이 정도 위치에서 다이얼로그를 켰었지? 그 때부터 통화를 시작했어.

 

리 레이코: 그렇다.

 

무로 시라베: 잠깐 확실히 해 두자. 우리는 이 곳에서 벽을 향해 1시간 46분동안 움직였어. 그렇지?

 

기와라 우시오: 어. 기억 나네.

 

무로 시라베: 그런데 탑으로 돌아오는 것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토 유즈루: 거리가 왜곡된다는 거잖아.

 

무로 시라베: 그게 다가 아니야. 가설을 하나 세웠어. 향하는 방향에 따른 거리 왜곡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일정하다는, 그래서 우리가 탑으로 돌아올 때 보폭에 비해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정도에 변함이 없다는 전제 하에 성립 가능하지만.

 

기와라 우시오: 장문충 에반데. 그래서 그게 뭐야?

 

무로 시라베: 거리 왜곡이 탑에서 멀어지는 거리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벽을 향해 이동하는 거리와 탑을 향해 이동하는 거리 사이의 비율은 15:53. 30분과 1시간 46분의 비율과 같아야 해. 3배가 넘지.

 

리 레이코: 그게 어떻다는 거냐?

 

무로 시라베: 하지만 아까 우리가 실험한 바에 따르면 2배 정도는 차이가 나도. 3배까진 아니야.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진 않았어. 

 

가미 토가: 확실하십니까?

 

무로 시라베: 정확하게 거리를 재진 못했지만 3배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아. 그러나 시간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있지.

 

리 레이코: 게다가 체력 소모 때문에 돌아오는 속도가 벽을 향해 나아가는 속도보다 느릴 것을 상정하면 시간의 차이는 더 심할 거다.

 

리 레이코: 너희가 나아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돌아왔을 경우 25분이 걸린다고 가정하자. 25:106. 4배 차이가 넘는다. 2배와는 확실히 동떨어진 수치지.

 

이토 유즈루: 그렇네... 아니 대체 뭐가 이래!

 

기와라 우시오: 그냥 간단히 생각해서. 어디는 3배 어디는 2배 어디는 1배 이런 식으로 거리가 왜곡되는 거 아니여? 그런 거면 계산이고 비율이고 의미가 없어.

 

무로 시라베: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해. 그래서 이 가설이 거리 왜곡의 비율이 일정하다는 전제 내에서만 성립한다는 거야.

 

가미 토가: 그래서. 그 가설이 뭐냔 말입니다.

 

무로 시라베: 아까 네가 말했지? 벽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고. 어쩌면 그건 벽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고 주변의 환경이 똑같아서 생긴 착각이 아닐지도 몰라.

 

무로 시라베: 우린 말 그대로. 어느 시점부터는 벽에 전혀 가까워지지 못했을수도 있어.

 

 

 

 

 

 

미도리카와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 채로. 나는 마유즈미와 식당에 왔다. 새삼스래 내가 처한 상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심장이 콩콩 뛰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채로 식사를 하다보니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라 쿠리스: 마유즈미. 거기 아스파라거스 접시 좀 줄래?

 

유즈미 나데시코: 아스모데우스?

 

바라 쿠리스: 아스파라거스! 저 셀러리처럼 생긴 거 있잖아.

 

유즈미 나데시코: 샐러리맨?

 

바라 쿠리스: 아하하하하하하! 히히! 미치겠다. 걍 내가 알아서 먹을게. 대신 저기 후추통만 주라.

 

유즈미 나데시코: 후추통은 나도 알지! 자. 여기.

 

바라 쿠리스: 고마워.

 

이바라가 마유즈미가 건네는 후추통을 받자. 다음 순간 이바라의 오른손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뭐?

 

유즈미 나데시코: 어? 이게 뭐...

 

유즈미 나데시코: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시: 뭐. 뭐야?!

 

롤 브라이트: 세상에. 손이 떨어지셨어요!

 

나리 케이토: 으아아아악! 뭐야아아!

 

카나리는 그 비명만을 남기고 의자를 박차고 도망쳐버렸다. 순식간에  칸나즈키만큼은 묵묵하게 아침 식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식당에서 도망치는 카나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식당에서 나가자 그의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빼 왔다.

 

나즈키 시노부: 양보 고마워. 잘 먹을게.

 

바라 쿠리스: 미. 믿을 수 없어. 마유즈미...

 

유즈미 나데시코: 아. 아니야! 내가 한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바라 쿠리스: 크윽... 내. 내가 마유즈미에게 손절을 당하다니... 손절(絶)을 당했어. 말 그대로... 으으윽...

 

이바라의 몸이 의자째로 넘어가더니 바닥에 털썩 하고 쓰러졌다.

 

바라 쿠리스: 결국... 나 역시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었나... 윽.

 

루미나미 나몬: 안 돼... 안 돼...! 이바라아아아아아아!

 

후루미나미가 인공 눈물을 투여하고 이바라를 부여잡는 순간. 나와 캐롤 씨는 상황을 전부 이해했다.

 

나시: 지금 너희... 어휴. 정말!

 

롤 브라이트: ...일어나세요.

 

바라 쿠리스: 네입.

 

유즈미 나데시코: 사. 살아있어?! 정말 다행이다!

 

바라 쿠리스: 난 멀쩡해. 어휴. 내가 이런 순진한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시: 나쁜 짓 했지.

 

루미나미 나몬: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연기는 봐줄 만 했어. 정말 상처 입은 것처럼 움직이는 게 마음에 들었어.

 

바라 쿠리스: 오홍홍. 좋아요! 현직 종사자도 인정하는 명연기!

 

바라 쿠리스: 아. 참고로 후루미나미가 나 붙잡고 우는 건 우리가 짠 게 아니라 그냥 얘가 급발진한거다?

 

롤 브라이트: 다음부터 그런 장난을 하실 때는 좀 말씀부터 해 주세요... 마유즈미 씨는 철썩같이 믿었잖아요.

 

유즈미 나데시코: 난 정말 너한테 큰일이 난 줄 알았어! 휴. 진짜 손이 떨어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바라 쿠리스: 좋아. 자제할게. 솔직히 이렇게 잘 속을줄은 예상 못해서 나도 당황스럽거든. 마유즈미는 소리지르고. 카나리는 런하고. 난장판이었지 아주.

 

롤 브라이트: 카나리 씨. 말씀은 험하게 하셔도 속마음은 여리신 것 같았으니까요.

 

바라 쿠리스: 걔 속마음이 여리다고? 그냥 철이 덜 든 것 같던데.

 

롤 브라이트: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아니에요.

 

나시: 그렇게 보인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시네요...

 

바라 쿠리스: 누구나 인정할 거야!

 

이바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쓰러졌던 의자를 세우고, 바닥에 떨어진 가짜 손을 주웠다. 팔자 한 번 좋네... 그래도 이바라나 하기와라같은 사람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밝아지는 것 만큼은 좋은 일이었다.

 

나즈키 시노부: 냠냠. 피가 안 나오는데 다들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어?

 

나시: 마유즈미가 비명 지르길래 그런 게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그보다 이바라. 그 가짜 손은 어디서 났어?

 

바라 쿠리스: 내가 옛날에 만들었던 거야. 가짜 피부랑 플라스틱 손 세트. 근데 전용실에 있더라고? 있으면 써먹어야지. 

 

바라 쿠리스: 추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 이 장난은 언제나 재밌다니까? 이걸 찾아오느라 내 집을 샅샅히 뒤졌을 거 생각하면 좀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루미나미 나몬: 직접 만들었다고? 잠깐 보여줘 봐.

 

이바라는 가짜 손을 다시금 팔에 끼우더니. 후루미나미를 향해 팔을 붕 휘둘려 발사했다.

 

바라 쿠리스: 로켓 펀치!

 

나시: 또 장난하고 있네!

 

후루미나미는 어설픈 궤도로 날아오는 가짜 손을 잽싸게 낚아챘다. 연기자라서 운동 신경이 좋구나... 하며 순수한 감탄이 들었다.

 

루미나미 나몬: 잘 만들었는데? 소품으로 당장 쓰기에 손색이 없어. 어떻게 만든 거야?

 

바라 쿠리스: 내가 이래 봬도 화학 하나만큼은 진짜 잘 했어. 이과 지망생이었걸랑. 그냥 간단하게 고무랑 플라스틱이랑 젤라틴이랑 다른 것들 녹여서 굳힌 거야.

 

바라 쿠리스: 원래 진로도 그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뭐...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는 법이지.

 

루미나미 나몬: 그보다. 이 손은 분명 쾌락 살인마가 남긴 증거물이야. 이 절단면을 보면 무척 예리하게...

 

나시: 꽁트는 이제 그만... 밥 좀 먹자.

 

유즈미 나데시코: 옳소! 밥 먹는데 잘린 손은 보고 싶지 않아!

 

롤 브라이트: 그럼 카나리 씨를 다시 부를게요. 전화를 받으시려나 모르겠네.

 

캐롤 씨가 다이얼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식당 문을 걷어차서 열었다.

 

나리 케이토: 여기야! 걔 손이 갑자기 툭 하고 떨어졌다니까?!

 

키와 아유키: 카나리. 밀지 말고 침착해 봐. 손이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카나리가 식당 문을 걷어찬 뒤 토키와 뒤에 숨으며 나타났다. 토키와는 여전히 퀭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식당에 들어왔다.

 

키와 아유키: 봐. 아무 일도 없지?

 

나리 케이토: 뭣...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분명히 손이 떨어졌다고!

 

카나리는 토키와에게 항변하듯 그의 등에서 떨어져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리 케이토: 그 손이 어디있지? 분명 떨어졌는데...

 

루미나미 나몬: 이걸 찾나? 이 투구(投球)로 이 게임을 끝낸다.

 

후루미나미는 어느새 사냥모자가 아니라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과 지금 그녀에게 있는 가짜 손을 연관지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훤했다. 그러나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후루미나미는 그것을 저질러 버렸다.

 

루미나미 나몬: 초고교급 투수의 수준을 똑똑히 보여주지.

 

루미나미 나몬: 로켓 펀치!

 

후루미나미는 그렇게 외치며 가짜 손을 던졌다. 가짜 손은 공중에서 맹렬히 회전하며 카나리를 향해 날아갔다.

 

나리 케이토: 으아아악! 저거!

 

카나리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고, 토키와는 졸린지 재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회전이 많이 들어갔을 뿐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카나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가짜 손에 고개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러다 진짜 맞을까 싶어 그에게 조심하라고 외치려 한 순간. 칸나즈키가 높게 뛰어올라 가짜 손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바닥에 구르면서 충격을 방지하는 동작까지 완벽했다.

 

나즈키 시노부: 밥상머리에서 손 같은 걸 던지고 노는 거 아니야.

 

루미나미 나몬: 뭐... 라고...?! 내 필살기가!

 

키와 아유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 카나리가 말한 것만큼 심각하진 않은 것 같아.

 

나리 케이토: 허억... 허억... 야. 너! 미쳤어?! 뭘 던지고 앉았어!

 

루미나미 나몬: 네가 이거 찾았잖아. 가짜 손. 증거품 말이야.

 

난 후루미나미가 모자를 순식간에 바꿔쓰는 것을 보며, 가면을 재빨리 바꾸는 중국 마술을 떠올렸다. 그녀는 사냥모자를 쓴 채로 말을 끝내자마자 재빨리 야구모자를 다시 착용했다.

 

롤 브라이트: 그래도 너무 세게 던지셨어요. 카나리 씨를 놀라게 하셨잖아요. 칸나즈키 씨가 아니었다면 맞았을지도 몰라요.

 

루미나미 나몬: 난 필드 위에서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그리고 솔직히 너무 재수가 없잖아.

 

나시: 결국 그 이유였던 거야?

 

나리 케이토: 허억... 허억... 휴.

 

칸나즈키가 숨을 추스르는 카나리의 어깨를 꽉 붙들더니 휙 하고 세워 주었다.

 

나즈키 시노부: 괜찮니? 심장마비 안 걸렸어?

 

나리 케이토: 안 걸렸어. 그리고 고맙다는 말 안 할거니까 기대하지 마라?

 

나즈키 시노부: 괜찮아. 나도 미안하다는 말 안 할 거라서.

 

나리 케이토: 그래. 그럼 됐네.

 

나리 케이토: ...잠깐. 뭐가 미안한데? 야. 뭐야?

 

나즈키 시노부: 밥이랑 관련된 얘긴데. 알 필요 없으셔. 이바라. 받아!

 

칸나즈키가 이바라에게 가짜 손을 던져 주었다. 식사 중에 손이 식탁 위를 날아다니다니 상당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살풍경했다.

 

키와 아유키: 아무 탈은 없는 거지? 그럼 난 온 김에 샌드위치 한 접시 가져갈게. 식사 맛있게 해.

 

나시: 계속 23T랑 미도리카와 감시하게? 너도 자야 할텐데...

 

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가 안 나오면 나도 못 자... 별 수 없어. 한 말은 지켜야 하니까.

 

롤 브라이트: 토키와 씨. 저희들이 대신 보초를 서 드릴수도 있어요. 일단 주무시는 건 어떠세요?

 

키와 아유키: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전 이만...

 

키와 아유키: 아. 그리고 카이다의 행방에 대해 뭔가 알게 된다면 내게 전해 줄래? 카이다도 요주의 인물이거든.

 

바라 쿠리스: 오케. 근데 토키와. 하기와라랑 야가미랑 나이토랑 모리랑 히무로 얘네 어디 갔는지 알아? 왜 아직도 안 와?

 

나리 케이토: 죽었을지도 모르지.

 

유즈미 나데시코: 5명씩이나?! 큰일이야! 빨리 전화해 보자!

 

바라 쿠리스: 아. 전화가 있었네. 자꾸 까먹어. 그런데 혹시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냐... 잠깐. 이거 진짜 큰일 났나?

 

키와 아유키: 걱정 마. 어디 갔는지 알아. 지금 그 5명은 탑 밖을 탐사하러 나갔어. 그러니까 배가 많이 고프더라도 5명이 먹을 만한 분량은 남겨 둬. 

 

롤 브라이트: 탑 밖이면... 장미꽃밭 쪽이요?

 

나시: 그 회색 벽을 탐사하러 나갔구나.

 

키와 아유키: 응. 하기와라랑 모리는 물자 공급 역할이라며 돌무더기에서 셋을 기다리기로 했어.

 

나리 케이토: 뭐야. 결국 탐사하러 나가는 건 셋 뿐인 거잖아? 그 둘이 없어도 탐사에 지장이 없는데 따라나선 거야? 시간을 아주 낭비하고 앉았네.

 

롤 브라이트: 아뇨. 혹시 탐사하다가 무슨 일이 생긴다면 두 분이 도움을 줄 수도 있죠. 적어도 시간 낭비는 아닐 거에요.

 

나시: 곧 있으면 돌아오려나? 전화해 볼까?

 

루미나미 나몬: 그건 틀렸어! 우리가 저 쪽으로 찾아가자. 탐정은 언제나 사건을 찾아가야 하는 법이야.

 

나시: 이유가 좀 이상하지만... 난 좋아. 식욕이 별로 없어서 대신 뭐라도 해야겠어.

 

롤 브라이트: 저도 갈게요. 솔선수범해서 탑을 탐사해주시기도 했으니 마중은 나가 드려야겠어요.

 

바라 쿠리스: 나도 갈래! 하기와라랑 나이토가 어디 있나 했더니 거기 있었구만!

 

나리 케이토: 난 아직 덜 먹었어. 너희끼리 가.

 

나즈키 시노부: 나도 걍 여기서 기다릴래. 어차피 여기로 올텐데 굳이 나가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거든.

 

유즈미 나데시코: 난 친구들이 걱정돼서 가 볼테니까... 대충 우리 쪽도 5명이겠네.

 

나리 케이토: 시간 낭비하긴... 쯧.

 

잔뜩 투덜대는 카나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시: 우린 먼저 일어날게. 아마 좀 있다가 다시 올 거야.

 

나즈키 시노부: 대녀와!

 

가공할 속도로 손을 흔들어주는 칸나즈키를 뒤로 하고 우리는 식당의 문을 닫았다.

 

 

 

 

 

 

나리 케이토: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되면 너랑 나만 식당에 남잖아.

 

나리 케이토: 너 날 해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지금 나한테 해코지를 하면 용의는 너한테만 쏠려. 알아?

 

나리 케이토: 왜냐하면 식당에 너랑 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네가 날 해치면...

 

나즈키 시노부: 안 해치니까 밥이나 먹어. 중간에 도망치느라 밥 덜 먹었잖아.

 

나리 케이토: ...진짜?

 

나즈키 시노부: 지금 되물었어? 진짜냐고 되물었어? 어? 날 의심하지 말지어다!

 

나리 케이토: 흐아아아악?!

 

나즈키 시노부: ...뻥이야. 지금은 '헤까닥' 안 했어. 아무튼 밥이나 먹자. 가만보니 너 완전 겁쟁이구나?

 

나리 케이토: 나 가지고 노냐?! 아. 짜증나... 뭐야. 내 스테이크는 또 어디 갔어?!

 

 

 

 

 

 

하기와라와 모리가 있는 돌무더기로 발걸음을 옮기자 하기와라가 들뜬 채 우리를 반겨 주었다.

 

기와라 우시오: 왓썹! 저기 헬창 두 명이랑 헬창한테도 안 꿀리는 한 명이 오고 있어.

 

리 레이코: 이 시점에서 너희들이 지원을 온들 의미는 없다. 그저 오고가며 너희들의 체력을 소모하는 일일 뿐이다.

 

나시: 그냥 마중인데 의미가 필요해? 그래도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네. 저기 봐. 히무로랑 나이토랑 야가미 거의 다 왔어.

 

바라 쿠리스: 오. 되게 빨리 오네.

 

롤 브라이트: 정말 빠르네요. 아직도 저렇게 달릴 체력이 남아 있으신 걸까요?

 

리 레이코: 지금 프로파일러와 승부사, 협상가는 달리고 있지 않다.

 

유즈미 나데시코: 그럼 축지법이라도 쓰는 거야?

 

기와라 우시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모르겠어.

 

나시: 잘 모르겠다니? 진짜 축지법을 쓴다고?

 

기와라 우시오: 그냥 보는 게 빨라. 우리도 통화로만 들었는데 어떤 느낌인지 직접 보는게 더 낫겠지. 이제 슬슬 움직임까지 잘 보이네.

 

하기와라의 말에 갸우뚱하던 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그들은 걷고 있었다. 그다지 지친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것 같은 걸음거리였다. 그런데도 탑으로 다가오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롤 브라이트: 어떻게 걷고 계신데도 저런 속도가 나오는 걸까요?

 

나시: 내가...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건가?

 

리 레이코: 환각이 아니다. 엄연히 탑의 이상현상 중 하나이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빠르게 걸어오던 세 사람의 속도가 어느 시점부터 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들도 눈치챘는지 서로를 돌아보고 말을 몇 마디 나누는 것이 보였다.

 

롤 브라이트: 이젠 또 속도가 줄었어요. 대체 뭘까요...?

 

기와라 우시오: 어느 지점부터는 그냥 원래 속도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존나 기묘하네. 특이점 ON.

 

그리고 그들이 돌아왔다. 약간 지친 낯빛과 기색을 가진 채로.

 

가미 토가: 저희가 왔습니다. 여러분. 몇 분을 제외하곤 전부 나와 계시는군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토 유즈루: 어. 설마 니들... 마중 나와 준 거냐?

 

롤 브라이트: 발벗고 조사하려고 나서셨는데 가만히 식당에 있기는 좀 그렇더라고요.

 

리 레이코: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물자 공급 역할도 못 했으니. 이 마중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말이다.

 

이토 유즈루: 마중에는 의미같은 거 없어도 돼! 야! 감동이다. 이 자식들!

 

바라 쿠리스: 우리가 아니면 마중 나올 사람이 없잖아. 미도리카와는 방에 있고, 23T는 미도리카와 감시하고, 토키와는 23T 감시하고... 카나리랑 칸나즈키는 그냥 밥 먹고 있어.

 

이토 유즈루: 그래도 좋아! 존나 좋군?! 고맙다!

 

나시: 으악! 내려줘!

 

나이토가 날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리자 난 공중에 뜬 채 허공에 발을 버둥거렸다. 마중 나온 것 뿐인데 이렇게 좋아하다니...

 

몇 초 뒤 나이토가 껄껄껄 웃으며 날 내려놓자 하기와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나이토 너 묘하게 억지 텐션이다? 거리 왜곡 때문에 그러냐? 긴장 풀어 봐.

 

롤 브라이트: 거리 왜곡이요? 그게 뭐죠?

 

유즈미 나데시코: 거리의 곡. 거리의 노래... 아. 길거리 연주?

 

무로 시라베: 거리의 곡이 아니라 거리 왜곡. 탑의 이상현상 중 하나야.

 

나시: 이름만 들어도 뭔가 심상치 않은데...

 

무로 시라베: 사실 그렇게 심각한 내용은 아닐 거야. 단지 저 벽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것 뿐이야.

 

유즈미 나데시코: 뭐어?!

바라 쿠리스: 잠깐. 절대로 안 된다고?! 어느 정도로?

 

이토 유즈루: 야. 절대로 안 되는 건 아니야. 진정하고. 우리가 얘기를 해 줄테니까...

 

리 레이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어도 보고에 따른다면 말이지.

 

가미 토가: 사실입니다. 저흰 벽을 향해 60%도 채 가지 못했어요. 히무로 씨의 가설이 맞을 가능성이 높고. 맞으면 벽을 통한 탈출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이토 유즈루: 야. 쫌!

 

리 레이코: 진실은 알려져야 한다. 본래 거짓말의 구조란 비눗방울만큼이나 연약하기 짝이 없다.

 

나시: 저 벽이 높으니까 못 나간다는 거야? 하긴. 저렇게 높은 벽을 타고 올라갈 순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떻게든 구멍을 낸다면...

 

무로 시라베: 아니. 우린 그 벽에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어. 우선 거리 왜곡에 대해 말해 보자면. 아까 너희가 보았다시피 탑에서 멀어지는 것보다 탑을 향해 올 때 같은 보폭으로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어.

 

롤 브라이트: 아... 분명 걷고 계셨는데도 달리시는 것처럼 보인 게 그거 때문이군요.

 

바라 쿠리스: 그게 가능해? 뭐. 무빙워크라도 깔려 있대?

 

가미 토가: 아뇨. 걷는 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단지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날 뿐이죠. 보폭도 그대로고 속도도 그대로인데 이동하는 거리만 달라집니다.

 

이토 유즈루: 상상이 잘 안 가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짜야.

 

리 레이코: 기본적으로 왜곡의 비율은 2배와 3배 사이다. 즉 탑을 향해 다가온다면 한 걸음을 걸어도 두 걸음 반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축지법이다! 진짜 축지법이야!

 

무로 시라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최대한 멀리 가는데는 106분이 걸렸지만 돌아오는데는 30분이 걸렸다는 거야.

 

무로 시라베: 3배가 넘는 차이지만, 나와 나이토가 실험해 봤을 때 거리 왜곡의 비율은 2배에서 2.5배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어.

 

나시: 신기하네. 거리 왜곡도 비율이 일정하지는 않나 봐.

 

롤 브라이트: 특정 지점에 따라 왜곡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거군요.

 

기와라 우시오: 그게 내 의견이었지!

 

바라 쿠리스: 아... 그럼 틀린 거네. 쟤 의견이면 틀린 거겠다.

 

기와라 우시오: 존나 너무해.

 

무로 시라베: 그걸 바탕으로 세운 가설이 있어. 시간과 거리의 비율이 맞지 않는 이유는 이동한 거리가 시간에 비례한다는 전제 때문이야.

 

이토 유즈루: 당연한 일 같은데.

 

무로 시라베: 그러나 이 탑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 수시로 일어나지. 이동했으나 거리가 늘어나지 않았다면 시간과 거리의 비가 맞을지도 몰라.

 

무로 시라베: 우리는 106분을 이동했지만. 실상 그동안 우리가 걸은 거리는 대략 70분어치일 수도 있어.

 

잠시 아무도 히무로의 말에 질문이나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난 히무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이해 자체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106분을 걸었는데 70분에 멈춰서...

 

다른 사람 몇 명 역시 나와 비슷했는지, 얼굴을 찌푸리고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기와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얼굴을 구기더니―구긴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쳇바퀴처럼?

 

무로 시라베: 그래. 우린 계속 걸었지만 대략 70분어치의 거리에 도달한 시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던 거야. 쳇바퀴처럼. 그렇다면 시간과 거리의 비가 맞을 거야.

 

루미나미 나몬: 💡

 

후루미나미가 가방에서 전구를 꺼내더니 자신의 머리 옆에 가져다댔다. 그래. 이해했다는 뜻이구나... 그런데 저거 번거롭지도 않나?

 

기와라 우시오: 그건 좀 이상한데? 넌 그냥 걸어가면서 느낀 위화감만으로 거리 왜곡에 대해 알아냈잖아. 거기 주변은 다 장미 뿐이라서 풍경이 거기서 거긴데 넌 신내림 온 거 마냥 빡 하고 알아냈어.

 

기와라 우시오: '돌아가는 게 더 빠른 것 같아'. 이렇게. 그런 네가 같은 자리를 몇십 분씩 제자리걸음했는데 눈치를 못 깠다고?

 

무로 시라베: 네 탓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 네가 진행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 난 집중하면 시야가 조금 흐려지거든.

 

기와라 우시오: ...잠깐. 그렇게 보니까 내 탓이네?! 내가 히무로한테 바거수를 풀었어!

 

가미 토가: 제가 기억하기에 저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풍경도 분명히 변했어요. 아무리 사방이 전부 장미라지만 배치나 형태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가미 토가: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고 하긴 어려워요. 그러나 거리 왜곡의 배율이 달라진다면 그 달라지는 순간을 누군가가 눈치챘을 텐데...

 

무로 시라베: 얘기가 길어지겠네. 이 자리에 계속 서 있기보다 탑 안으로 들어갈까? 우린 아직 식사를 못 했거든.

 

이토 유즈루: ...그래! 예에쓰! 밥탐이다! 일단 밥 먹고 얘기하자!

 

기와라 우시오: 밥 아저씨! 밥 아저씨! 밥 아저씨! 밥 아저씨!

 

나이토가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자 하기와라가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었다. 지금 분위기를 띄우려는 것은 우리들의 무지함과 암울한 전망을 반증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정상적인 상황을 연출하려는 듯이 우리들은 각자 떠들석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실상은 비어 있었다. 각자 차이가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작은 공포가 자리잡았다. 탑과 모노로그. 자신이 처한 상황을 향한 공포였다.

 

그렇게 탑의 근처까지 왔을 때. 히무로가 갑자기 모두를 불러세웠다.

 

무로 시라베: 다들 저기를 봐.

 

가미 토가: ...저건?

 

이다 쿠로하: 얘들아! 나 왔어!

 

롤 브라이트: 카이다 씨?

 

카이다였다. 그녀는 손을 흔들면서, 다른 돌무더기의 길을 따라 우리들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와라 우시오: 뭐여. 야. 어디 있다가 이제 왔어!

 

리 레이코: 우리가 간 방향은 아니지만 첩자 역시 벽 쪽에서 오는군. 첩자도 우리처럼 벽을 통한 탈출을 시도해 본 모양이다.

 

무로 시라베: 그리고 아무런 소득이 없자 다시 돌아온 거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제 식사에 참여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은 이유로 충분하지 않아.

 

이토 유즈루: 그래도 몸이 성해서 다행이네. 쟤 분명 어제 저녁 안 먹지 않았냐? 완전 쌩쌩해 보이는데?

 

나시: 카이다도 돌무더기를 부술만큼 힘이 세니까 쌩쌩한 거겠지. 내가 옆에서 봐서 알아.

 

무로 시라베: 아니야. 단지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바라 쿠리스: 그게 뭔데?

 

가미 토가: 지금부터 애기해 봐야죠. 그녀의 방에 흉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겸사겸사 같이 합시다. 그럼...

 

야가미의 다이얼로그가 진동했다. 그는 다이얼로그에 떠오른 이름이 의아한 듯이. 눈썹을 씰룩 움직였다. 잠시 고민하던 야가미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고. 통화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리카와 아쿠토: 안녕. 야가미.

 

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 당신입니까?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가 전화를 걸었다고? 하필 지금?

 

도리카와 아쿠토: 난 아직 전용실에 있어. 23T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면 내 말이 사실이란 걸 알게 될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그리고. 카이다에게 좀 전해 줄래? 그 자리에 멈춰 서라고.

 

가미 토가: 카이다 씨에게요? 그러는 이유가 뭐죠?

 

도리카와 아쿠토: 3.

 

가미 토가: 대답하세요. 미도리카와 씨. 이유를 말씀하셔야 도울 수 있습니다.

 

도리카와 아쿠토: ...2.

 

무로 시라베: 카이다! 그 자리에 멈춰!

 

히무로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던 카이다는 히무로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우리와 몇십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었다.

 

가미 토가: 히무로 씨. 상대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해 주시면 안 됩니다.

 

무로 시라베: 심상치가 않아서 그래. 우리와 소통하지 않으려는 미도리카와가 우리 쪽에 먼저 소통을 하려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도리카와 아쿠토: 말이 잘 통해서 좋네.

 

이다 쿠로하: 갑자기 왜 멈추라고 한 거야! 무슨 일인데?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에게 계속 멈춰 있으라고 전해.

 

무로 시라베: 그대로 계속 멈춰 있어!

 

이다 쿠로하: 아니 왜 계속 멈추라고 하냐니까? 말을 해 줘야...

 

도리카와 아쿠토: 그리고 카이다에게 지금 네 가슴께를 보라고 말해.

 

가미 토가: 가슴께요? 가슴께가 왜...

 

그 순간 모든 이들이 보았다. 카이다의 가슴께에 있는 빨간 점. 레이저포인트로 만들어진 점을.

 

나시: 저거...

 

난 레이저포인트가 어디서 오는지 그 뿌리를 찾다가, 창문 밖에 길게 튀어나와있는 총구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의 아연실색한 표정이 어디를 향하는지 보았다. 캐롤 씨와 나이토, 이바라는 크게 소리쳤다.

 

롤 브라이트: 피하세요! 카이다 씨!

 

이토 유즈루: 썅! 카이다!

 

바라 쿠리스: 야! 조심해!

 

무로 시라베: 말해주면 안 돼! 카이다! 네 가슴께를 봐!

 

세 사람의 외침을 히무로가 가로막고, 그들의 외침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성량이 놀라울 정도로 컸다.

 

이다 쿠로하: 뭐라고? 히무로 목소리밖에 안 들려! 그리고 가슴께를 왜 ㅂ...

 

카이다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녀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지나 싶더니 당황과 공포가 곧이어 떠올랐다.

 

이다 쿠로하: 또 미도리카와 너야?! 대체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왜 날 이렇게 못 살게 구냐고!

 

도리카와 아쿠토: 연기력이 많이 늘었네.

 

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 그대로 카이다 씨를 저격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도리카와 아쿠토: 쏘면 나도 죽을텐데 내가 설마.

 

롤 브라이트: 이제 카이다 씨는 총을 피할 수 없어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미도리카와 씨가 쏴 버릴 테니... 이제 어떡하죠?

 

이토 유즈루: 더 빨리 알려줬다면 어떻게든 됐을 지도 몰랐는데. 썅! 왜 말린 거야?

 

무로 시라베: 진정해. 미도리카와가 카이다를 정말 쏠 생각이었다면 가슴께 운운하며 주의를 주지도 않았을 거야. 지금 미도리카와의 저격 시도는 위험보다 위협에 가까워.

 

이다 쿠로하: 저 미친 놈한테서 도망가려고 했는데 벽으론 가까이 갈 수도 없어. 그래서 조심조심 탑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엔 저격이야?!

 

이다 쿠로하: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냐고! 왜!

 

도리카와 아쿠토: 무슨 죄를 지었냐고? 그래. 네가 기억할 수 있을리가 없지. 나도 너에게서 그런 걸 바라지는 않았어.

 

키와 아유키: 미도리카와! 멈춰! 뭐 하는 거야?!

 

미도리카와의 목소리 너머로 토키와가 그의 전용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탑에 있는 창문을 통해 상황을 확인한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토키와가 아까 카이다의 행방에 대해 알아낸다면 전해 달라고 했는데. 막상 카이다를 만나니 까맣게 잊어버렸다...

 

도리카와 아쿠토: 너희들에게 겁 주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그래도 걱정 마. 금방 끝나.

 

가미 토가: 미도리카와 씨. 카이다 씨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도리카와 아쿠토: 귀에 주의를 집중하면 들려. 카이다는 소리치고 있고 난 창문을 열고 있으니 어렴풋이 들을 수 있어.

 

도리카와 아쿠토: 반대로 난 조용히 말하고 있으니 카이다에겐 내 말이 안 들리겠지. 그러니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네가 대신 전해줬으면 해.

 

리 레이코: 타협해선 안 된다.

 

가미 토가: 모리 씨의 말씀은 무시하세요. 좋습니다. 카이다 씨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키와 아유키: 멈춰! 23T. 이 문을 열 방법이 있을까?

 

야가미는 우리들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엄지와 약지를 핀 채 나머지 손가락을 굽히는 동작을 보여줬다. 히무로는 자신의 다이얼로그를 가리켰다.

 

나시: ...아!

 

무로 시라베: 조용히 전화 걸어.

 

난 다이얼을 돌려서 23T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 23T는 미도리카와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전용실 문을 열 수 있다면 그가 카이다를 저격하려는 것도 저지할 수 있을 터였다.

 

23T5U130: 여보세요.

 

나시: 23T. 조용히 대답해 줘. 미도리카와가 지금 카이다를 저격하려 하고 있어.

 

23T5U130: 알아.

 

나시: 안다고? 그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막아야지...!

 

23T5U130: 막을 수 없어. 난 미도리카와의 전용실 문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갈 수 없어. 규칙을 위반하는 일이니까.  미안하지만 도와주긴 어려울 것 같아.

 

롤 브라이트: 그런...

 

도리카와 아쿠토: 굳이 속삭이면서 통화할 필요 없어. 너희 입장도 이해하니까 그냥 그대로 통화해.

 

키와 아유키: 멈춰! 미도리카와! 멈추라니까! 카이다를 죽일 생각이야?!

 

도리카와 아쿠토: 아니. 전혀. 난 그저 카이다에게 요구사항이 있을 뿐이야.

 

도리카와 아쿠토: 카이다에게 전해. 뒤로 서서히 물러나라고. 이유는 묻지 마. 전해.

 

가미 토가: 카이다 씨! 뒤로 서서히 물러나랍니다!

 

이다 쿠로하: 뭐?! 왜!

 

도리카와 아쿠토: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대비하는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왜 미도리카와는 카이다한테만 저렇게 못살게 굴지? 아무 이유도 없는데!

 

무로 시라베: 이유가 있을 거야. 단지 우리가 모를 뿐.

 

가미 토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대비한답니다!

 

바라 쿠리스: 이거 어떻게 안 돼? 그냥 미도리카와가 시키는대로 다 할 순 없잖아!

 

리 레이코: 이런 경우 역시 상정해 두어야 했다. 총잡이는 자신의 전용실을 요새로 삼았다. 다른 이들은 침입할 수 없으나 자신은 창문으로 누구든 노릴 수 있는 요새 말이다.

 

리 레이코: 다시 한 번 우리는 안일했다. 아니. 내가 안일했다... 공리를 위하는 길은 절대 쉽지 않거늘 방심했다.

 

도리카와 아쿠토: 뒤로 천천히 물러나. 당장. 우리 싸음에 다른 사람들 말려들게 하진 말자고.

 

가미 토가: 당장 뒤로 천천히... 물러나시랍니다. 우리 싸움에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게 하진 말라고요.

 

나시: 이게 무슨 뜻이야? 미도리카와랑 카이다가... 싸운다고?

 

이다 쿠로하: ...씨발.

 

카이다는 험악한 표정을 한 채 홱 뒤로 돌아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토 유즈루: 야! 어디 가?!

 

대답은 없었다. 카이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걸음거리였다. 분명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둘 다 못 먹었을 텐데...?

 

도리카와 아쿠토: ...정말 지치네. 각오한 바이지만.

 

롤 브라이트: 미도리카와 씨. 카이다 씨와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도리카와 아쿠토: 내가 그걸 말하는 순간 너희 중 누군가가 말려들 거야. 난 그걸 원하지 않고.

 

도리카와 아쿠토: 이건 우리 둘 만의 이야기로 끝나야 해.

 

 

 

 

 

 

 

 

자유행동을 진행하고 싶은 캐릭터를 댓글에 남겨 주세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유행동 순서가 정해집니다

 

'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 > 챕터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단크 타워 챕터 1 - 8  (9) 2020.05.13
더 단크 타워 챕터 1 - 7  (11) 2020.04.28
더 단크 타워 챕터 1 - 5  (0) 2020.03.28
더 단크 타워 챕터 1 - 4  (2) 2020.03.14
더 단크 타워 챕터 1 - 3  (0)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