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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3

더 단크 타워 챕터 3 - 6

by 도타싫어! 2022. 8. 28.

 

나는 기억을 묶는 법에 대해 알고 있다.

 

조율자에 대적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정신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침략당할 경우 저항하기 위한 기술.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서 가져가고 싶은 게 있다면 숨기고, 그 안을 거닐겠다면 미로를 만드는 기술이다.

 

카텟 기관의 중요 인사들 또한 그것을 습득했다. 자기 암시와 의식 동작 절차의 응용으로,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잊고 싶은 기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며, 애초에 그런 의도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 기억은 풀려야만 한다. 특정한 단어를 말하거나 떠올리는 것을 계기로 기억이 돌아오게끔 해야 한다. 암호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기억을 잃은 나는 분명 이 공백을 눈치채겠지만, 어떻게 묶인 기억을 푸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암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실마저 잊어버렸다. 곧 내가 익힌 그 기술 또한 내 뇌리 속에서 잊혔다.

 

난 모든 정보를 취합할 수 없었다. 그걸 시도했다가는 그 즉시 광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따라서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가까스로 담았다. 이대로라면 살인 게임을 끝내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턱도 없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이 쥘수록 더 적게 남는 것은 없다. 당연히 더 많이 가져갈수록 더 많이 남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는 나는. 선한가? 나는 역설을 찾았다. 살인 게임을 끝내는 일에 집착하는 과정에.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모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그들을 저버리는 것. 탈출 장치의 부작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물었다.

 

옳은가?

 

그렇지 않다면 알아야 할 것은 하나 뿐이었다.

 

캐롤 브라이트는 부활해선 안 된다.

 

 

 

더 단크 타워

챕터 3: < 카타르시스 >

"나는 누구인가?"

 
 

 

 

 

"23T. 만약 캐롤 씨를 되살릴 수 있다면, 너는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나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인공지능이 들은 첫마디였다. 23T5U130은 즉시 물었다.

 

"너… 어디에 있어?"

 

"카이다의 옆구리 안에 있어. 그리고 만약 내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악한이 나를 협박하면서, 캐롤 씨를 되살리라 종용하고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다이얼로그에서 나나시의 목소리가 멀어지더니, 거들먹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럼. 목을 잡고 질질 끌어드리리? 너를 들고 가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

 

카이다 쿠로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짜증을 내기 직전이지만 묘한 즐거움을 담은 음성이었다.

 

"카이다… 너 나나시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나는 이 놈을 돕고 있는 건데? 나도 내키진 않지만 명령이니까 뭐… 해코지는 안 할 테니 걱정 마라. 만약 이 놈을 되찾고 싶다면… 오던가."

 

"걱정 마. 다치는 일은 없을 거야…"

 

나나시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끊겼다. 23T5U130은 다이얼로그를 부술 뻔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저기요. 23T? 아까 그거 뭐야. 내가 듣기로는 나나시가 드디어 정신 나가버린 것 같은데." 하기와라 우시오는 보기 드물 정도로 당황한 눈치였다.

 

"또 나나시가 카이다에게 납치당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토키와 아유키는 암울하게 말했다. "혹시 어디로 간 건지 알아?"

 

"알면. 순순히 보내줄 거야? 당장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 히무로랑 23T는 카텟 기관에 대해 털어놔야 하잖아! 토키와가 보내줄 리 없어. 애초에. 토키와가 막는다고 해서 너희가 따라줘야 할 이유도 없지만."

 

"…저건 도발일 뿐이야. 아직 나는 여기에서 할 일이 있어. 일단 히무로가 깨어난 뒤에 알려주기만 하고. 나나시를 되찾으러 가는 거야."

 

"고생이 많으시군요. 23T 씨. 그보다 캐롤 씨를 되살릴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비유법처럼 들리진 않습니다만."

 

"나나시가 정신 나간 거래도? 뭐 진짜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탑." 나는 말했다.

 

"일어났어?" 인공지능이 대답했다. 딱딱한 감촉. 얼굴과 상반신이 벽에 박힌 듯한 느낌. 그리고 다리를 무언가가 꽉 붙들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나를 업은 채. 내가 깨어나자마자 내 다리를 기계 팔로 세게 끌어안은 것이다.

 

"깨어나셨네! 우리 꼬마 사탄."

 

하기와라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탑 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높이가 올라가며 밑층의 시야가 좁아지는 사이 카나리의 전용실을 보았다. 3층보다 높이 있는 것은 도서관, 양호실, 식당, 창고, 모니터실, 휴게실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 또한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식당이나 휴게실을 향해. 정보를 취합하고 앞으로의 행동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서일 터.

 

당연히 홀스터와 총 모두 사라져 있었다. 쓰러지기 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가 떠올랐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기억의 공백이 있었다.

 

"그만 내려 줘."

 

"안 돼. 히무로. 적어도 네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해야지." 단호하고 강단 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 안의 망설임. 식별하지 않으려 애쓰더라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마유즈미."

 

"맞네요. 아까 네가 총 겨눈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직 화 안 풀렸으니까 말 걸지 마. 흥. 칫. 흐흥. 칫!"

 

나는 마유즈미에게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왜인지는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분명 그 당시에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변명을 하고 싶었다. 내가 조금만 염치가 없었더라도 그렇게 했을지도 몰랐지만, 마유즈미가 말을 걸지 말라고 했기에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을 다물 수밖에.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그건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신 겁니까?"

 

"연기하는 것 같은데? 아주 후루미나미랑 짝짜꿍 잘 맞네."

 

후루미나미 나몬. 나와 함께 탈출 장치에 노출된 이. 그녀에게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은 어디에 있지?"

 

"네 등 뒤. 네 발 밑. 네 악몽 속에도!"

 

등 뒤. 후루미나미 나몬은 야가미에 의해 양손을 붙들린 채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와 함께 탈출 장치에 노출된 그녀. 어디까지 떠올렸는지가 관건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심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이미 나는 총을 쏜 위험인물이었고, 분명 나보다 먼저 깨어나 식당으로 가자 제안했으리라 추측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심문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고생길이 훤히 열려 있었다.

 

"아직 얌전하군."

 

"나 이제 착한 아이거든. 그러니 대몰락에 대해 다 털어놓자!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변호해주겠다고! 그럴 만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이해해. 내가 알고 있었다면 바로 풀어버렸을 테니까. 세 살인의 동기로 손색없는 일이었으니까!"

 

마유즈미를 잃고 대신 후루미나미 나몬이 나를 돕기 시작했다. 그것도 분명 악한 인물인 그녀가.

 

고생길이 훤했다.

 

"다들 맥락에서 이해했지? 탈출 장치를 통해 난 대몰락의 기억을 떠올렸어. 모노로그가 지운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다! 세상에. 박수 주시죠!"

 

탈출 장치를 통해 기억해낸 것은 대몰락 당시의 기억인가? 단지 그렇다고 하기에 나는 탈출 장치를 가동할 당시 밀려들어오던 어지러움을 기억했다. 도저히 갈무리할 수 없는 무언가의 단편은 받아들인다기보다 휩쓸린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나 남은 것은 없었다. 그 점을 후루미나미 나몬에게 들키지 않은 채 그녀에게서 정보를 끄집어내야 했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냉정해져야 했다. 적어도 마유즈미에게 총을 겨누었던 나는 지독할 만큼 감시자를 닮아 있었다.

 

"드디어 대몰락에 대해 들을 수 있겠어. 히무로. 후루미나미? 지금 대몰락이 어떤 현상인지 말해 봐. 사실만을 말해."

 

토키와 아유키는 좋은 판단을 내렸다. 둘 모두의 대답을 듣고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추궁하여 진실을 알아내고, 내가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물어 후루미나미와 의견을 나누거나 입을 맞추는 일도 없게끔 하는 것. 나라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

 

저대로 성장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룰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대몰락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 및 사회전복 시도를 뜻한다."

 

"문명사회의 퇴보! 변질된 세상! 혼돈의 암흑시대! 그리고 우리가 제공받은 영상 속 사건이 벌어진 이유."

 

대몰락을 기껍게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끔찍한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후루미나미 나몬처럼 광기에 발을 담근 이들만이 그럴 수 있으리라.

 

"…대충 비슷하게 들리기는 하는군요."

 

"뭐 씹? 문명 퇴보? 변질된 세상? 암흑시대? 이것들 '세상이 끝장나는 날' 보고 왔네. 같이 좀 보지!"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에 개의치 않고 나는 말했다. 그가 입을 더 열게 두었다간 진실의 설득력이 푹 젖은 종이처럼 뚝뚝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여파가 미치지 않은 곳도 분명 있었으나 적어도 서구가 주로 되었던 문명 체계는 쇠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프리카는 어느 때보다 비참해졌고, 중국의 인구는 1/10 이하로 내려갔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거지?" 토키와 아유키는 당연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상한 바였다.

 

"내가 알려줘도 될까요. 레스트레이드?" 후루미나미 나몬은 곰방대를 피웠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흉물 좀 치우지."

 

"엄마가 피던 거라니까 왜 흉물 취급해? 내 엄마 무시하는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이 투덜댔다.

 

"뭐야. 저거 어머니 거였어?" 이바라 쿠리스는 얼떨떨한 기색을 비쳤다.

 

"어머니와 간접 키스하는 게 이상한가요? 다들 어머니와 입 맞춰 본 적은 있을 텐데요. 죽은 사람 자꾸 언급하는 게 좀 그러니 이런 얘기는 아무렴 됐고… 식당에 가서 느긋하게 이야기하지요. 계단에서 다 하자니 너무 길군요." 식당에 거의 다다르며 후루미나미 나몬은 말했다. 우리는 5층에 도착했고 식당 문 앞에 누가 있는지도 보았다.

 

칸나즈키 시노부가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베인 상처 여러 개가 그린 실선에서 눈물처럼 핏방울이 흘렀다.

 

"얘들아. 나 아퍼…"

 

"뭐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바라 쿠리스는 칸나즈키 시노부를 향해 달려갔다. 마유즈미 나데시코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탈출 장치의 소동. 그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은 이는 셋뿐이었다. 나나시. 카나리 케이토… 그리고 카이다 쿠로하.

 

"칸나즈키. 괜찮아?! 아. 어떡해. 얘 멍든 것좀 봐!" 이바라 쿠리스가 기함했다. 그 말대로였다. 희고 긴소매 끝에 칸나즈키 시노부의 얇은 손목이 드러나자. 그곳에는 시퍼렇고 거뭇한 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패했어… 미안해."

 

"누가 이랬어! 누가 이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볼기짝을 아주…!" 마유즈미가 노호했다.

 

"카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싸움을 거는데… 너무 세더라… 막 날붙이를 꺼내니까 이길 수가 없었어."

 

"카이다 쿠로하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데?"

 

"이름 없는 남자를 데려갔어…"

 

이름 없는 남자. 나나시. 그리고 카이다 쿠로하. 납치란 말인가?

 

왜?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모노로그의 공작이었다. 지켜야만 하는 명제. 캐롤 브라이트는 부활해서는 안 된다.

 

그것 하나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모노로그는 그 사실마저 알고 있었냐? 내가 막아야만 하는 그 일을 더 빨리 이루도록 호위를 붙인 건가.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었다. 당장 쫓아가야만 했다. 왜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쫓아가야 하는 당위성을 느꼈다. 그게 모노로그의 덫이었다. 상황을 가다듬고 후루미나미 나몬을 감시하는 대신 나나시를 쫓아가게 만드는 것.

 

덫임을 알기에 가선 안 되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뭐? 설마 카이다가 방금 나나시를 납치한 다음… 애초에 둘이 어딜 가? 갈 곳이 있어?" 토키와 아유키가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다친 사람이 있잖아! 구급상자 가져 올 테니까 다 식탁에 앉아 있어!" 이바라 쿠리스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식탁에 둘러앉았다. 나는 그러는 동안 후루미나미 나몬을 유심히 관찰했다. 여유와 오만함. 즐거움을 숨길 기색조차 없었다. 내가 그녀를 상대로 앞선 것은 내가 발설하지 않으면 드러날 일이 없는 정보들 때문이었다. 카텟 기관의 일. 대몰락. 나는 후루미나미 나몬의 지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산출해낼 수 없었다. 적어도 그녀는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었으며, 놀랄 만한 악의를 품을 수 있기도 했다. 만약 그녀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가 있다면 난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나는 마유즈미 나데시코의 시선을 의식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는 미간에 작위적으로 힘을 주고 날 째려보았는데, 도중 눈이 말라 눈꺼풀을 찡긋이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차마 그 눈빛을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떳떳할 것이 없고 거짓으로 첨철된 이였기 때문이다.

 

"히무로! 사람 눈을 보고 얘기해야지."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에게도 작위적인 거북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그러나 나는 연기에 소질이 없었기에 내 정신을 의지대로 조형해 다른 모습을 꾸며낼 수밖에 없었다.

 

"말해야지! 대몰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또. 할 말 또 있을 거 아니야?"

 

마유즈미 나데시코가 재촉한 대로. 곧 논의는 시작되었다.

 

"대몰락에 대해서 듣자. 사회전복 시도? 벌어질 뻔했다는 거야.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거야? 물론 그런 일은…"

 

토키와 아유키의 말을 후루미나미 나몬이 끊었다.

 

"대몰락을 지도한 사람은 우리들 또래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뭐라고 하더라…? 그래. 알파걸이라 불렸죠."

 

"후루미나미. 재미없어. 이 사안은 정말로 진지한 일이야! 그런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봤자…"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그녀는 사라예보 사건과 같은 걸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몰락이라는 사건 그 자체에 깊게 관여했다. 그녀 스스로 지휘했고 또 조율했다."

 

"구려어어! 어떤 약 하셨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알파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잘났어?"

 

"알파걸은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이였다. 나보다도 훨씬. 좁혀지지 않는 빈부격차로 인한 빈곤층과 중산층의 억가감정. 희생과 헌신의 가치가 떨어지며 이기주의가 창궐했고, 엘리트 계층을 향한 열등감. 정체되고 불합리한 삶에 모든 이들이 무력감과 회한을 느껴왔지. 알파걸은 그것을 읽었다. 잘 사용하면 세상을 불태울 만한 장작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적절한 계기와 환경이 주어지자 사람들은 폭도로 변해 버렸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망한다고? 그걸 막으려고 군대랑 경찰이 있는 거잖아. 그 사람들은?" 이바라 쿠리스가 항변했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일하지. 대부분이 그랬다. 화폐의 가치가 아주 잠깐만 사라져 버려도 그들은 대책 없이 무너졌다. 목숨을 걸고 파도 같은 폭도에 맞설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알파걸에게 최우선적으로 포섭되었다. 그녀는 힘의 역학을 이해했으며, 단 하루의 지독한 불운만으로 성실한 이를 타락시킬 수 있었다. 경찰과 군대는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지 못한 채 와해되었다. 곧 폭도가 힘을 얻었다. 사람을 죽이는 로봇이 거리를 활보해 그들을 도왔지. 조각이 빠진 탑은 무너져버렸다."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우리를 머저리 취급하는 것도 정도껏 해. 히무로! 아무리 내가 아는 것이 적다고 해도 이런 취급을 받기 위해 너희와 협력하고자 한 게 아니야!"

 

토키와 아유키는 몰릴 대로 몰려 있었다. 불안.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 막연한 열등감과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정. 안타깝게도 나는 그를 절벽 밑으로 떠밀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너희들의 영상 속 내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살인의 동기 말이다. 너희 모두 보았겠지. 너희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영상을. 흑막은 너희만을 위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 게 아니다. 그저 개인에게 일어난 비극을 찍어 제공한 것뿐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세계가 망했음을 정황 증거만으로 받아들일 순 없단 말입니다." 야가미 토가가 중재한 중동의 내전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애초에 너희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도 난 확신이 안 돼." 이바라 쿠리스의 절친이 죽었다.

 

"안 믿어… 믿지 않아." 토키와 아유키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그게 대몰락이라는 사건의 정체라구요. 레스트레이드! 이해가 갑니까?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세상은 변질되어버렸어요! 일본엔 방사능 오염 구역과 희박지대라는 기이 현상이 생겼죠. 곳곳에 무법지대가 열려 있고 전기가 돌아오지 않는 곳도 수두룩해요!"

 

후루미나미 나몬의 말이 끝나자 정적만이 남았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잖아… 그렇지? 히무로. 후루미나미. 거짓말이잖아…! 우리 가문이 얼마나 힘이 센데…"

 

"마유즈미 가문은… 정계도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 애초에 마유즈미 가문이 정계와 친하니까요. 그런데 마유즈미 씨가 지나가면서 말씀하시기로는. 가옥이 불에 탔다죠? 후루미나미 가문은 또 어떤가요? 후루미나미 씨. 당신의 영상에는 무엇이 나온 겁니까?"

 

"시체가 산처럼 쌓였던걸. 다 후루미나미."

 

"문화계의 괴물을 그렇게 죽이는 게. 가능합니까? 여러분들. 그게 조작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지 않으십니까. 느끼셨잖습니까? 제 처형 영상을 보았을 때와 똑같습니다. 영상 속 내용은 진실이고. 그 정도로 광범위한 파괴가 일어나는 계기가 '대몰락'이란 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야가미 토가는 확실히. 받아들이는 것이 빨랐다. 나는 쐐기를 박기로 하였다.

 

"내가 왜 대몰락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건지. 이제 이해할 수 있겠지? 허황되었고 충격이 클 테니 숨겨왔던 것을. 너희는 들쑤셨다. 알아서 좋을 게 없었단 말이다. 너희가 살아서 탈출해봤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후련하진 않겠지."

 

"후련한데? 비디오 2탄도 나왔으면 좋겠어!"

 

후루미나미 나몬을 경멸했다.

 

"그래서 카텟 기관이 독자적인 군대를 꾸릴 수 있었군요. 애초에 정부가 기능을 하지 못하니 치안유지. 범죄자 체포를 국가기관 대신으로 처리하는 일이 생긴 것. 아닙니까?" 야가미 토가가 물었다.

 

"또한 초고교론자가 등장한 이유도 이걸로 설명할 수 있지. 초고교급이 세상을 멸망시켰으니 초고교급이 다시 세우자. 이거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한 해결방법이야. 초고교급 이퀄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런… 이런 뒷배경이 있었다고? 이런 건… 너무 해." 토키와 아유키는 말을 더듬었다.

 

"아하. 이게 반전이다 이거지. 우리들 뒷배경에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걸 찍어서 보여준 거야. 모노로그 힘이 대단했던 게 아니라고… 좋은 걸 알았구만."

 

"세상이 망해?… 치에코랑 카스미가. 어떻게…"

 

"참고로 희망봉 학원도 망했지렁."

 

"그딴 건 덧붙일 필요 없어." 이바라 쿠리스가 무기력하게 쏘아붙였다. 토키와 아유키는 머리를 감쌌다. 칸나즈키 시노부는 멍하니 자신의 팔을 주물렀고, 하기와라 우시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꺾이는 이가 있을까 우려가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고작 대몰락에 대해 알았다고 무너질 정신이라면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보는 게 옳았다. 같이 갈 수 없는 이들은 솎아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내 시선은 자연스레 한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마유즈미 가문이… 정말로…"

 

마유즈미는 눈망울을 그렁그렁하게 깜빡이며. 입술을 옴싹거렸다.

 

"정말로… 지금까지…?"

 

순간 가슴이 조여들어왔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작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굳게 닫힌 입을 연 것은 인공지능이었다.

 

"탈출이 끝났다는 건 이런 의미야. 어차피 이 탑에서 나가봤자 돌아오는 게 없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면, 살인의 동기 또한 사라져 버려."

 

"23T가 좋은 말씀 하네. 살인 게임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살의에서의 탈출이라… 이거 의미 있는데? 이럼 누가 사람 죽여. 자기 목숨이나 부지하려 하지." 하기와라 우시오는 인공지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핵심을 이해했다. 탈출하기 위해선 사람을 죽이고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살인 게임의 리스크는, 탈출의 이점이 사라졌음에도 그대로였다. 그렇기에 탈출은 끝났다.

 

"이게 좋은 일이야…?" 이바라 쿠리스가 허탈하게 물었다.

 

"알게 되었다는 점만큼은 중요하지. 영문도 모르고 잡혀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가족이랑 친구의 소식도 다 들었고…"

 

"다 죽었다는 소식을 말이지." 토키와 아유키는 손톱을 씹었다.

 

"그래. 화가 나긴 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했나. 모노로그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찾아서 다 죽일 수 있었나 생각했는데. 전쟁보다 더 큰 게 벌어져 버렸으니 납득할 수밖에."

 

"나는 납득 못 해…"

 

"그래. 마유즈미. 그런데 사실 그건 내 알바가 아니야."

 

마유즈미 나데시코가 괴로워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내 과오를 회피하고 싶은 충동 또한 있었지만 납치된 나나시를 구할 필요가 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출발선으로 올리기 위해선, 모노로그가 와야 했다. 세 번째 동기가 무엇인지 환기하는 것은 흑막의 몫이었다. 세 번째 동기는 분명 있을 터였고 새로 개방된 탑의 공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노로그는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내통자를 보내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모노로그. 나와라."

 

내가 그렇게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모노로그가 무슨 개새끼냐? 부르면 왈왈하고 오게."

 

"개새끼이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겁니다. 적어도 믿을 수 없다는 점만은 믿을 수 있죠."

 

"네 다음 내통자. 그보다 얘 진짜 뭐 해. 물어보고 싶은 거 많은데 대놓고 머리 굴리나?"

 

"안 되겠어. 강경책을 사용하는 수밖에… 야가미. 벗어."

 

야가미 토가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는 정숙함을 가득 담아 자신의 양어깨에 손을 교차시켰다.

 

"싫습니다. 뭐 하자는 겁니까? 성희롱을 할 거면 히무로 씨에게나 하세요. 불쾌합니다."

 

"나도 좋아서 당하는 줄 아나?" 야가미 토가의 뻔뻔함에 순간 불쾌감이 치밀었다.

 

"옷을… 벗어? 무슨… 소리를. 왜…"

 

"으흑… 뭐야아…"

 

대몰락을 받아들이는 것도 벅차던 이들에게로 저열한 농담거리가 날아왔다. 당연히 누구도 웃지 않았다. 다른 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것은 대개 타박이 섞인 짜증이었다.

 

나 또한 웃지 않았다. 재미가 없을뿐더러 후루미나미 나몬이 저런 말을 하는 특정한 의미가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야가미 토가의 몸에 무엇이 있는가?" 굳이 물었다.

 

"너도 알 거 아니야. 당연히. 끝내주는 근육이 있지! 한 번 보자. 옷 벗어.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거든. 설령 근육 말고 다른 걸 보더라도 그건 불상사일 뿐이야."

 

야가미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런 편법이 정말 통합니까?"

 

"무슨 소리야. 난 네 근육을 보고 싶은 거라니까. 설령 점이나 종양을 보더라도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고! 지금 봐. 판정을 할 흑막 씨는 나오지도 않고 있잖아. 바로 벗어버려. 벗어!"

 

"하아. 이런 일이… 여러분. 조금만 참아 주시죠. 하의는 벗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야가미 토가는 거침없이 넥타이를 당기고, 자켓을 벗어던지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으악. 내 눈! 야생의 씨발 스트리퍼가 나타났다!"

 

하기와라 우시오는 비명을 질렀다. 이바라 쿠리스와 마유즈미 나데시코는 항의할 기력조차 없는 듯, 조용히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쌌다.

 

"야가미. 너 바라지 안 할래? 우리 고대 할머니 언니가 좋아하겠다."

 

칸나즈키 시노부는 박수를 쳤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야가미 토가는 드러난 자신의 상체를 가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상의 흉터가 얼핏 보였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야가미 토가의 갈비뼈 바로 밑에 있는 것을.

 

혹은 새겨진 것을.

 

"낙인이군."

 

"무슨 낙인인지는 말해줄 수 없습니다."

 

모노로그 모양의 낙인. 화상처럼 추하게 남은 상처였다. 야가미 토가는 충분히 말해 주었다.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은. 비유법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제약. 야가미 토가는 제약에 결려 있었다.

 

흑막은 저를 오래 살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저를 지켜보고 있겠죠. 왜냐하면 저는 알려져선 안 될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당신에게 이 진실을 전하려 한다면 전 그 자리에서 숙청될 테고요.

 

낙인은 그저 모노로그의 조롱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발설하려 한다면 낙인이 작용해 야가미 토가를 원격에서 입막음할 수 있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그것을 폭로하기 직전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이 툭툭 던지는 간접적인 정보만으로 다른 이들 모두가 그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깨달음은 제약에 걸리지 않고, 오직 전달하는 것만이 통제되었으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후루미나미 나몬이 단지 대몰락의 진위만을 떠올린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야가미 토가의 개인적인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수한 유추라고 하기에는 옷을 벗겨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고, 그 결론을 도출할 만한 토대도 부족했다.

 

어쩌면 후루미나미 나몬은 나를 한참 앞서고 있을지 몰랐다. 그녀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않게끔 조심해야겠노라 나는 조용히 긴장의 끈을 당겼다.

 

야가미 토가는 조용히 착의했다. 토키와 아유키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노로그는 개처럼 나타났다.

 

"적당히 좀 하지. 후루미나미 나몬."

 

"왜. 내가 무서워? 크왕. 난 여우라네."

 

후루미나미 나몬은 손을 발톱처럼 세우고 짖었다.

 

"어차피 냄새를 맡고서 득달같이 쫓아갈 거면서. 몇 분 늦었다고 닦달인가. 나도 공정한 게임을 진행해야지?"

 

"이딴 게 공정함으로 보이나? 탈출 장치로 얻은 지식은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권리다."

 

모노로그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많이 혼란스럽겠지. 탈출 장치가 너희의 눈을 가려버렸으니까 말이다."

 

"탈출 장치는 눈을 뜨이게 만들 텐데."

 

"아니. 탈출만을 바라고 살던 너희들의 눈을 가려버렸지. 히무로 시라베. 너는 이미 대몰락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마음이 요동치지 않겠지만, 여타 이들은 다르다. 너희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탈출이었다. 살아남는 것을 넘어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그리운 세계로 돌아가는 것. 보고 싶은 이들과 재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노로그는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을 돌아보았다. 여덟 명뿐이었다.

 

"무엇이 남아있지? 너는 살의와 어리석은 선택들로부터 모두를 구원했노라 여길지 몰라도, 너는 희망을 절제한 것이다. 더 괴로워지진 않겠으나, 더 나아질 일도 없다. 이대로라면 너희는 정체되겠지. 서서히 메말라가면서… 종국에는 무너져버리리라. 너희들에겐 사료처럼 새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을 긍정하는 것. 그게 모노로그의 특이한 부분이었다. 알파걸의 살인 게임에 등장하던 그 마스코트는 절망을 추종했다. 그러나 모노로그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었다.

 

분명 살인 게임의 공정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 목적은 누군가를 절망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노로그는 폭도의 탈을 쓰면서 폭도들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기억하나?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셋이나 살릴 수 있었던 문. 이 탑에서 죽음이란 의미가 없다. 삶만큼이나 가볍고, 동전의 양면처럼 뒤집힐 수 있지. 죽은 너희들을 살려내는 건 쉬운 일이다… 정말로."

 

"죽음은 가볍지 않아." 이바라 쿠리스는 세 마디를 말했으나, 모노로그의 장광설보다는 그것이 더 무거웠다.

 

"그렇게 쉬우면 죽은 사람들 다 살려내줘. 재판 100번 해서 탑 끝까지 개방해 보자고. 사람 복사 한 번 해 볼까?"

 

"아쉽게도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다. 패자부활전을 매번 열면 승자들에게 메리트가 없을 테니. 그러나… 이번만큼은 열어 주겠다."

 

모든 이들이 모노로그가 하는 말의 요지를 이해했다.

 

"죽은 사람들 중 한 명만 살려 주지."

 

"자세히 말해 봐."

 

토키와 아유키는 순간 성급해졌다.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너희들에게 소개하지. 7층. '영안로'다. 죽은 자를 어떻게 되살려내는지는 너희가 7층에 왔을 때 알려주겠다."

 

모노로그는 그 말을 남기고 바닥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내분이 시작되었다.

 

"죽은 사람들 중 한 명? 그럼 나이토도 살아날 수 있다는 거잖아?"

 

"캐롤 씨도 마찬가지야. 돌아오실 수 있어…"

 

"아니. 토키와. 캐롤 씨는 못 돌아와. 한 명만 살아날 수 있다니까?"

 

"나이토가 되살아나는 건 기정사실이야? 무슨 권리로 그걸 결정한 거지?"

 

탈출은 끝났으나 이들 앞에 새로운 희망이 떠올랐다. 그 미끼에 걸려드는 모습은 조금도 볼만하지 않았다. 위기는 끊임이 없었고, 캐롤 브라이트가 살아나선 안 된다고 말하기 좋은 때도 아니었다.

 

"여러분. 진정하시죠. 지금 누굴 되살려야 하냐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닙니다." 야가미 토가는 상황을 정리하는 듯했다.

 

"되살아나야 하는 사람은 미도리카와 씨니까요."

 

그러나 아니었다.

 

"야 이 새끼야. 적당히 해. 세 번 기회 줬는데 못 살렸으면 네 바다뱀인지 바다표범인지 좀 포기하라고."

 

"당신이나 포기하시죠. 제겐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미도리카와 씨가 되살아나는 것을 모노로그 씨는 계속 막으려 했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카이다 씨를 시련에 보내 부활을 방해했죠. 어딘가 이상하단 말입니다.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미도리카와 씨의 부활은 모노로그 씨를 압박할 수 있을 겁니다."

 

"좆까! 미도리카와 걔가 돌아오면 탑에는 총기가 돌아올 걸. 난 그 꼴은 다시는 못 봐!"

 

"아. 미도리카와 아쿠토는 이제 살아날 수 없다. 하기와라 우시오가 말했듯이. 세 번 기회를 줬으면 포기해야지? 야가미 토가."

 

모노로그는 잠시 떠올라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야가미 토가는 이를 갈았다.

 

"고오맙네요. 모노로그 쒸! 아무튼 나는 나이토 지지한다. 대가리 깨져도 나이토 살릴 거야!"

 

"아니. 하기와라. 그렇게 쉽게 정할 문제가 아니야. 살아났을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사람을 살려야 해."

 

"토키와 넌 터치단이니까 당연히 캐롤 씨를 되살리고 싶겠지! 하지만 난 알아. 나이토는 존나 신이야! 이 새끼는 그냥 기사였어! 좋은 놈이면서 강했다고. 캐롤도 그런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난 내 친구가 더 소중해!"

 

하기와라 우시오는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토키와 아유키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넌 터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몰라. 캐롤 씨가 되살아나시면 우리 사이에 이런 말싸움도 생기지 않을 테지. 또. 너만 소중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오호? 나이토는 터치가 없으니 죽게 둬라. 사람을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디서 터치를 쌓나? 그래 한 번 누가 먼저 살리나 두고 보자!"

 

"하기와라. 말조심해." 이바라 쿠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곧 하기와라 우시오의 이마에 불거져 있던 혈관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미안 안 해."

 

"자자. 친구들. 내가 조장하지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싸우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이렇게 빨리 정할 사안이 아니라네. 진정하되… 누굴 되살릴지는 신중히 정하세나. 더 의견을 말할 사람은 없는가?" 후루미나미 나몬은 식탁에 팔을 괴고 웃었다.

 

의견을 말하면서 진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몰랐으나, 그들은 논의의 끝에 다다라야만 했다. 그렇기에 지켜보았다.

 

"나는 캐롤의 부활에 반대야." 인공지능이 말했다.

 

"반대? 어어? 이건 또 뭐래. 나처럼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반대?"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캐롤의 부활은 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해."

 

"왜 그런데? 히무로도 아까 이야기했다며. 캐롤 씨가 부활해선 안 된다고. 왜 하필 캐롤 씨야?" 토키와 아유키가 캐물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정작 그 이유를 모른 채 나는 말했다.

 

"…칸나즈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바라 쿠리스는 칸나즈키 시노부에게 물었다.

 

"칸나즈키. 죽은 사람을 놓아줘야 한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아마 여기서 제일… 그런데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나는… 그 사람들이 안 돌아오니까 놓아줘야만 한 걸지도 모르겠어.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잘 이별했다고 생각했는데 걔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하니 살릴 생각밖에 안 들어… 지금. 이 살인 게임에. 지옥에 우리를 위해 쉬고 있는 사람을 끌어오는 일인데도… 어떻게 해야 하지?"

 

이바라 쿠리스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가를 떨었다. 칸나즈키 시노부는 곧 입을 열었다.

 

"난 안 쓰는 게 맞다고 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수단을 안 쓴다니. 그건 말도 안 돼. 생각해 봐! 캐롤 씨가 아니라 나이토라도 살릴 수 있다면 되살려야만 해!"

 

"내 말 들어. 토키와.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하자마자 우리 꼴을 봐. 누굴 살려야 하니 말아야 하니를 놓고 싸우잖아. 모노로그는 우릴 이간질하고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싸우게끔 하고 있는 거야.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게 만들지. 그래선 안 돼. 망자는 그저 망자야. 만약 살릴 수 있다고 해도 쉬게 두어야 해."

 

칸나즈키 시노부는 어디선가 부채를 꺼내 자신의 얼굴에 부쳤다.

 

"알잖아 이바라. 우린 죽은 이를 보내줘야 해."

 

"그렇지만… 나는 죽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다면, 절대 보내주지 않았을 거야… 가족들을 꼭 살려냈을 거라고. 그냥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극복하려 애썼을 뿐이야…"

 

"혹시 너희. 죽은 사람 집착이 얼마나 심한 줄 알아?"

 

칸나즈키 시노부의 부채에서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 식당 전체에 몰아쳤다.

 

"정말 무서워. 지독하지. 한 자리에 남아서 거길 지나는 사람들을 해코지한다던가, 죽어도 구천에 가지 않으려 발악을 하다 악귀가 되던가,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거지. 무언가를 놓고 가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을 달래 주고 그만 안식에 들라고 말이야…"

 

"칸나즈키 씨. 퇴마사였습니까? 무녀인 줄 알았습니다만."

 

"무녀 맞아. 퇴마사는 아니고. 퇴마사가 나처럼 하디?"

 

"그건 아니죠." 야가미 토가는 인정했다.

 

"무녀랑 무당이 비슷하긴 하지. 사실 거의 동일한 개념이야. 다만 나는 음양사 맛을 조금 더 치고…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한 것처럼 하는 거야. 그런 내가 보기에 죽은 사람의 산 사람을 향한 집착은 아무리 세도, 산 사람의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지.

 

우리 엄마가 무당 일을 할 때 자기 꿈에 죽은 가족이 나와 운다고, 혹은 뭘 원한다고, 먹고 싶다 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열댓 명은 됐어. 어떻게 달래줄 방법이 없느냐는 거야.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사람들한테 원혼이 붙어 있지 않다는 거지. 그럼 이 사람들은 뭘 보고 찾아왔나 하니. 아무것도 없노라.

 

그냥 꿈을 꾼 거야. 슬프고 괴로우니까. 잊을 수 없으니까 꿈에도 나오는 거야. 당신한테 붙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 발 닦고 잠이나 자라 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벌컥 화를 내더래. 자기네들도 속으론 알고 있을지 몰라. 그냥 죽은 이와 이별하지 못했을 뿐이란 걸. 내가 하는 일은 죽은 이와 이별하는 걸 돕는 거고. 우리가 이제부터 할 일은… 그냥 사는 거야. 그냥. 사는 거야."

 

"그냥 사는 거다…" 마유즈미 나데시코의 입 안에서 그 말이 맴돌았다. "그냥… 사는 거야…"

 

"누굴 되살릴지는 중요하지 않아. 뭣이 중해? 얘들아. 진짜 중요한 걸 생각해 봐. 이름 없는 남자가 카이다한테 납치당해서 캐롤을 되살리러 간 게 중요해. 무슨 일을 당할지 아는 사람?"

 

"야시시한 짓은 아니지 않겠어?" 후루미나미 나몬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 둘은 조금… 23T가 피눈물 아니 기름?을? 흘릴 것 같은 조합인데."

 

"하기와라… 적당히 해."

 

23T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할 일은 명확해. 나나시는 납치당했고 지금 카이다의 손안에 있어. 정황상 캐롤을 되살리러 간 거야. 우리끼리 논의한 끝에 되살릴 사람을 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우선 나나시를 구출하고 카이다를 막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지금 바로. 당장 가자. 7층을 향해서…"

 

토키와 아유키의 의자가 바닥에 드르륵 끌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23T가 걱정하겠는데… 칸나즈키도 다쳤고."

 

"그걸 왜 신경 쓰냐? 넌 닥치고 캐롤이나 되살리면 돼."

 

카이다의 팔에 고무 튜브처럼 매달린 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칸나즈키와 말을 나누던 와중 카이다가 난입한 탓이었다. 내겐 카이다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카이다가 날 납치하는 것에 저항할 방법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실감했다. 나는 23T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손쉽게 죽어버릴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방법이 없을까?

 

"왜 캐롤 씨의 부활에 꼭 내가 필요한 건데? 나도 알아야 도와주던지 말던지 할 거 아니야. 모노로그가 말 안 해줬어?"

 

"알 필요 없다니까."

 

카이다의 속은 훤히 들여다보였다. 카이다 본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난 허탈해져서 그만 물어보고야 말았다.

 

"너는 캐롤 씨를 왜 되살려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날 돕고 있는 거야?" 그 정도로 대책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지만… 카이다가 카이다인지라 그럴지도 몰랐다.

 

"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면 그걸로 좋아. 그러니 되살리는 거나 되살린 뒤의 뒷감당은 네가 해."

 

"뭘 원하는데?"

 

"너무 많이 알려 들면 다치는 수가 있어."

 

카이다는 그렇게 응수했다. 나는 일단 입을 다물기로 했다. 불편한 동거이지만, 또 23T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캐롤 씨를 되살리러 오게 되었으니 마음에 밟혔지만 굳이 예민하고 무식한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모노로그 말로는, 여기에 있는 금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던데. 그리고 끝까지 가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댔어."

 

"정말 그게 다라고?"

 

난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히무로가 정말 캐롤 씨의 부활을 막기 위해 온다면, 그 효과만큼은 진짜일 게 분명했다.

 

"…내려 놔. 이제 내 발로 걸을 테니까."

 

"저항하지 않는 거냐?"

 

"캐롤 씨를 되살리는 건 내 목적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빨리 가는 편이 나아."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용실과 숙소가 있는 2층, 3층을 연상시키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문은 세 개뿐이었다.

 

금색 문, 회색 문, 회갈색 문. 전용실 및 숙소와 똑같았다. 그 주인을 상징하는 색. 캐롤 씨. 나이토. 그리고 모리…

 

"…끝까지 도달하면 되는 거잖아."

 

"비장하게 말해봤자 안 놔줘. 문 안까지 너 데리고 들어가는 게 의뢰 내용이었거든. 그리고 어차피 내가 거의 다 해줄 거야. 하. 뭐든 나오라 하라지…"

 

정말 너 혼자서 돌파할 수 있는 난관이라면 미도리카와의 부활을 막았던 것처럼, 너를 혼자 보내지 않았을까? 나를 같이 데려가라 명령한 것부터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뭔가가 나오는 거 아니었을까?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결국 나는 생각 없고 대신 그걸 만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과. 마음을 가지고 떠나버린 이를 되찾기 위해 금색 문 안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여전히 붙잡힌 채였다.

 

 

 

 

 

카나리 케이토는 두 사람이 금색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몸을 드러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않은 채 기다리던 그는, 세 문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자기를 협박한 미도리카와의 문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남은 선택지는 세 개였지만 어차피 카나리에겐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나이토를 살리는 거야."

 

 누군가를 무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남자. 카나리를 도와줄 용의가 있었던 사람. 캐롤 브라이트 또한 그 부류에 속했으나 그가 나이토를 되살리기로 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야. 너… 젠장. 어디 가는 거야? 돌아와…

 

카나리 케이토는 나이토 유즈루의 죽음을 초래했다. 그것을 되돌리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이었지만, 카나리는 자신이 그런 약해빠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정작 회중시계는 끝없이 돌아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건 비겁한 일이었다고. 카나리의 양심이 찔러댔다. 설령 그게 살아남기 위해서였기에 정당하다고 해도, 항생제를 가지고 도망가는 건 결코 위대한 일이 못 되었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카나리 케이토가 쫓고 쫓기다 벼랑 끝에 놓여서 치사하게 간잽이 짓을 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전혀 간잽이 짓이 아니었는데도!

 

이것 하나만큼은 카나리도 인정할 수 있었다. 나이토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모리 레이코가 죽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럼 칸나즈키가 죽었을 테니. 누가 죽든 외통수였겠지만…

 

잠깐. 내가 왜 칸나즈키 생각을 하지? 걔는 그냥 이상하고 특이한 꼬마에 불과하잖아. 망할. 잡생각이 너무 많아!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회색 문을 열고 들어가서 끝까지 가는 거야. 그래서 나이토를 되살리는 거지!

 

그리고… 용서를 받는 거야.

 

놈은 착하고 멍청하니까. 내가 자길 죽게 만든 건 잊어버리고 날 용서해 줄 거야. 나한테 있어서는 이득인 거래잖아. 보디가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나이토 유즈루만큼은 내 편이 되어 줄 거야.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지라도, 내가 자기 생명의 은인이 되면 나는 그놈에게 큰 빚을 지울 수 있어.

 

내가 미워? 나이토를 죽였으니 날 비난하겠다고? 내가 직접 되살리면 될 거 아니야. 그럼 그 자식들도 할 말이 없겠지! 나 스스로도 아주 아주 조금의 찜찜함를 덜어버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지? 응?

 

캐롤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나는 나이토 유즈루를 부활시킨다. 모리 그 자식은 지옥에나 가라 해. 캐롤도 분명 착해빠진 녀석이었지만, 카이다가 캐롤을 되살리려 하고 있으니 난 당연히 캐롤의 부활을 막는 쪽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맛 좋은 스테이크를 내려줬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던 년. 날 협박하고 항생제를 훔치게 만든 년! 년은 좀 심한 말이긴 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자비도 없다! 나한테 찾아와서 문까지 두드렸으니 절대 용서 못해.

 

내 편이 돼줄 수 있는 놈은. 이제 나이토 유즈루뿐이니까…

 

 

 

 

"히무로. 너 나랑 같이 가."

 

눈가를 붉게 물들인 마유즈미 나데시코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말을 끝낸 입술은 꾹 닫혔고,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여전히 내게 울분이 풀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 양팔을 붙잡았는데, 으스러뜨리고 싶었지만 힘이 여의치 않은 듯. 대신 내 팔을 꼬집었다.

 

"왜지?"

 

그녀가 함께 가는 것을 꺼리는 어투라 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단지 이유를 물은 것이다."

 

"우리 얘기 좀 하자. 그러니까 같이 가. 안 그러면 총 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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