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와는 모리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모리 레이코: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너 자신을 재단하는 일 뿐이다. 이상적인 지도자에 최대한 가깝도록. 스스로를 깎고 또 깎아야 한다. 설령 그 과정에서 너 자신이 사라진다고 해도. 너는 매사에 옳은 결정을 해야 하고, 어떤 일에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더없이 완벽에 가까우나 누군가가 네 존재에 반감을 느끼지 않도록 인간미를 가져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내색하지 않아야 하고, 재빠른 판단을 해야 하고, 추진력과 결단력을, 온화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리고 어느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응당 그래야 한다. 감투에는 그만큼의 의무가 따라온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너의 삶을 온전히 네 것으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네게 그럴 각오가 있나?
토키와는 자신에게 그럴 각오가 없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살인 게임의 초반이었기 때문인지 토키와는 다른 이들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모리의 말에 긴장하면서도, 모리에게 리더의 자리를 주지 않았다. 초고교급 리더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모리는 그의 무능함을 비난한 적이 없지만, 그녀는 단지 비난하지 않았을 뿐 누구보다 토키와의 무능함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적어도 토키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좋은 리더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색은 오롯이 토키와의 몫이 되고야 말았다.
토키와 아유키: 무기. 카이다만이 독식하고 있었지. 그렇지만 아무리 통제해 봐도 살인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토키와는 리더 자리를 히무로 시라베에게 넘기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리더를 맡을 재목이 아님을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그걸 알고 있다면 이제 어떻게 그에게 리더를 양도시킬지의 문제였다.
하기와라? 글쎄. 이상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칸나즈키도 마찬가지. 나나시는 최근 오락가락하니 그조차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유즈미는 유약했다. 23T는 가능성이 있었고, 야가미는 살인자니 안 된다. 이바라는 노는 데에 적합한 리더 일지는 몰라도 생존 활동에 적합한 리더는 아닐 것이다. 후루미나미와 카나리 그리고 카이다는 논외로 친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히무로가 되었다. 그는 그에게 리더를 양도하려 할 때 히무로의 대답을 상상하며 그와 가상의 대화를 진행시켜 보았다.
토키와 아유키: 히무로. 난 리더 역할을 못 해. 언제나 모자라지. 하는 거라곤 밤을 새우며 누굴 감시하는 것 밖에 없었어. 그러니 계속 사람이 죽는 거고. 난 리더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야.
히무로는 답하리라.
히무로 시라베: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상관 없어. 말의 요지가 뭐야?
토키와 아유키: 네가 나 대신에 리더 역할을 맡아 주었으면 해.
히무로 시라베: 왜 나에게 그 역할을 권유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리더의 재목이 아니야.
토키와 아유키: 그럼. 나는 재목이라서 리더를 떠맡은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라고!
아니야. 애꿎은 사람한테 화를 내면 안 돼. 다시…
토키와 아유키: 네가 완벽한 리더에 걸맞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나는 리더가 되어선 안 되는 거야. 나는 너무 모자란 사람이야. 너희 모두 알겠지만… 난 머리가 좋지 않고, 통솔력도 모자라. 결단력도 부족하지… 작은 오각형이야. 특출난 점 없고 모든 면에 하자가 있어. 그래서 지금까지 무턱대고 밤을 새워왔던 거야.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토키와 아유키: 그렇지만 그것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제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 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다른 모두를 이끌어 줘…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마 다른 이들 또한 내 부족함은 알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자신이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히무로는 납득할지도 모르지. 모두를 통솔할 자격이 생기면 생존에도 유리하잖아. 그러니까 아마 받지 않을까?
토키와는 그렇게 납득한 다음 당장 히무로에게 찾아가고 싶었으나, 개운치 않은 느낌에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히무로는 그런 식으로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토키와는 그가 가장 할법한 말을 또 떠올려 보았다.
히무로 시라베: 왜 내가 리더를 맡는 게 옳다고 생각해?
이걸 왜 다 듣고싶어 하지? 그냥 그렇구나. 그럼 내가 하지 뭐.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주면 안 돼?
토키와 아유키: 그야 너는 똑똑하고 결단력이 있으니까. 또 유능해.
토키와는 상상 속에서 소리치고 싶었다. 너도 알잖아. 너 똑똑하고 나 모자른 거. 너 행동 빠르고 나 느린 거. 너 유능하고 나 무능한 거! 그럼 되는 거잖아! 왜 내가 이런 역할을 계속 이어나가야 해. 미움만 받을 게 뻔한 역할을!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애원하더라도, 논리로 설득하거나 화를 내더라도 히무로 시라베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토키와는 속으로 깨달았다.
히무로 시라베: 그럼 나 대신 야가미를 세우면 되겠어.
토키와 아유키: …뭐라고?
토키와는 자신이 한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는 사람을 죽이는 계획을 짤 만큼 지능이 높아. 또 흉기로 피해자의 심장을 찌를 만한 결단력이 있지. 마지막으로 그 모든 공작을 숨기려 애쓰고 재판을 혼선에 빠트릴 만큼 유능하지. 능력으로 따지면 충분히 리더를 맡을 수 있지 않나?
리더는 능력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논박. 토키와는 할 만한 말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다 가까스로 몇 마디를 더 떠올렸다.
토키와 아유키: …네 말뜻은 알겠어. 하지만 너와 야가미는 확실하게 달라. 그걸 너도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면 안 돼.
히무로 시라베: 내가 느끼기에 나와 야가미의 차이점은 하나뿐이야. 나가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그것 말고 나는 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점이 없어.
히무로에 대한 정보의 폭이 좁기 때문에 토키와는 히무로가 할법한 말을 점점 확신하기 어려워졌지만, 그는 최대한 연극을 지속했다.
토키와 아유키: 너는 충분히…
히무로 시라베: 또 야가미만큼이나 거북한 이를 리더의 자리에 세우면 안 되겠지.
토키와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상상 속의 히무로는 말을 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느닷없이 화가 치미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급작스럽고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의 내면에서는 인식과 생각이 끓는 물 넘치듯 들끓었다.
히무로 시라베: 넌 알잖아. 네가 날 꺼림칙하게 여긴다는 것. 미친 과학자들한테서 몸을 개조당한 사람을 서슴없이 대할 만한 담력은 없어. 적어도 범죄자가 체포되는 장면도 눈 앞에서 본 적 없는 너에게. 인체 개조와 세뇌 그리고 실험으로 빚어진 사람은 환상에나 나올법한 존재지. 그런데 그게 총을 찬 채로 눈앞을 걸어다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자가.
토키와 아유키: 맞아… 맞아. 다 맞는 말이야…
토키와는 자신에게 히무로의 탈을 씌운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토키와는 조금씩 탈을 벗기 시작했다.
토키와 아유키: 야가미랑 똑같아. 히무로는 꺼림칙해.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실히 너는 리더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지. 사실이야. 아마 가장 리더에 걸맞은 사람은 캐롤 씨. 또 모리라면 과격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주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전부 죽었어. 너밖에 안 남았어. 그러니 네가 해.
토키와 아유키: 그렇지만 나는… 리더가 아니야. 초고교급이 아니야.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토키와 아유키: 그럼 리더가 돼.
토키와는 토키와에게 그렇게 한 마디를 던졌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토키와는 단지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토키와 아유키 말고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토키와는 칼을 손으로 붙잡았다. 섬뜩하게 빛나는 칼날은 왜인지 새로운 날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 같았다.
더 단크 타워
챕터 3: < 카타르시스 >
"나는 누구인가?"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또한 카텟 기관의 사람이었어…
단편적인 정보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살인 게임의 참가자들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납치되었다고 파악된 카텟 기관 인원은 나, 마유즈미, 나나시로 세 명이었다. 또 파악된 초고교론자의 인원은 야가미, 미도리카와, 카이다로 세 명. 납치된 나머지 인원들 또한 카텟 기관과 초고교론자로 이루어져있는 것또한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인 게임의 배후는 두 조직을 모두 적대하는 제3의 조직이 되는 것인가? 모노로그의 생김새에서는 폭도가 연상되었으나, 아무리 부활했다고 해도 쇠퇴한 폭도들에게 가상현실을 만들어낼 만한 설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매는 처지였으나 적어도 마유즈미라는 분명한 아군을 한 명 떠올렸다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총잡이로 성장하고 있는 그녀와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텐데. 카텟 기관의 동료이니 거리낌 없이 그녀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한 방에서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는 믿을 수 있었다.
내가 침낭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의 시간은 아직 새벽이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우윽… 으으으…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는 마유즈미를 내려보았다. 새벽에 끝난 학급 재판은 탑 안의 거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긴 잠을 자게 만들었다.
잠을 자는 사람을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낼 때는 어떻게 할지 쉽게 답을 낼 수 없었다. 이전에도 그녀는 악몽을 꾼 적이 있었다. 해변에서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러나 내가 굳이 깨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꿈은 꿈일 뿐이다. 대부분의 꿈은 장기기억으로 보존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가 몇 시간씩 괴로워하고 땀을 흘릴지라도 마유즈미의 잠을 깨우지 않았다.
나는 다시 침낭 안으로 들어간 뒤 귀를 열어둔 채 짧은 잠을 취했다. 뇌가 무의식의 영역을 표류하는 동안 귀를 열어두면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맞게 꿈의 내용이 변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면 꿈은 즉각적으로, 내가 판단할 시간도 없이 자신의 형태를 바꾼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남자들의 싸움이 눈 앞에 나타나는 식이다. 이 현상에 내 의지는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내 무의식만이 제멋대로 물감을 던져 캔버스를 색칠한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윽. 아아…
마유즈미의 앓는 소리를 듣는 내 꿈은 한 없이 불길한 형상을 내놓았다. 그녀는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내 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게 환상이며 청각 신호에 대한 반사라는 것임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꺼림칙함을 제외하면 꿈속의 그녀와 마주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다.
필요한 만큼의 수면을 마치고 나는 깨어났다. 그리곤 해야 할 일과 살인 게임의 목적에 대해 곱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 동안 마유즈미와 나를 습격하려는 이는 없었다. 카이다마저도 후루미나미를 쫓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곧 정오를 지나 오후가 되었다. 즉 그녀를 깨워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마유즈미가 머리를 뉘고 있는 배게를 살짝 흔들어 그녀를 깨웠다.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일어나. 이제 기상할 시간이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 누구세… 아. 히무로구나…
마유즈미는 비몽사몽하는 와중에 얼굴을 배게에 묻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나 쪼오금만 더 잘래… 이제 귀신도 물러갔을 것 같은데…
히무로 시라베: 다른 모두가 일어나면 식사를 겸한 회의가 시작될 거야. 탑과 해변이 단절되고 난 뒤에 처음 열리는 회의니까 꼭 참석해야 해. 그리고 넌 날 감시해야 하잖아. 기억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회의… 감시… 으으. 알겠어. 히무로… 곧 준비할 테니까 먼저…?
게슴츠레하게 뜨여 있던 마유즈미의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나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거나, 혹은 오해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왜… 내 방에 있어.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우리 어제 합의하지 않았던가?
내 대답은 마유즈미의 더 큰 혼란을 부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내게 큰 소리로 물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뭐를?!
히무로 시라베: 어제 합의했잖아. 총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인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수면을 취하는 사이 누가 총을 멋대로 사용할지 모른다고. 그러니 적어도 같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어. 나는 침낭을 크레딧 상점을 통해 주문했고. 네 총 그리고 홀스터는 저 책상 위에 놓여 있지.
나는 마유즈미의 숙소 안에 놓인 책상을 가리켰다.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정신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마유즈미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매번 이렇게 자야 하는 거야?
히무로 시라베: 그게 가장 안전하겠지만 사생활을 극도로 침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만족스럽지 않아.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어. 만약 그게 있다면 말이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 나 준비만 빠르게 하고 올게. 문 밖에서 기다려!
히무로 시라베: 그렇게 하지.
만전을 기하자면 욕실 앞에서도 발포를 준비해야겠지만, 나는 침해하지 않는 편이 나은 사생활의 경계를 인식하고 그녀의 방에서 나갔다. 침낭은 의도적으로 치우지 않았다. 불합리한 침범을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을 줄 테니.
하룻밤 사이에 세 명이 죽었다. 살인 게임의 참가자들에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다른 이들을 멀리하고 홀로 살아남으려 할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카나리의 경우가 있으니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협력에 찬성할 터였다. 카나리 본인은 스스로가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매번 나쁜 수를 두고 있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는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리 만무했고, 최후의 2인이 되더라도 그에겐 남을 살해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당연히. 협력하여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은 식당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마유즈미의 숙소 문 앞에서 묵묵히 서 있던 나는 하기와라 그리고 이바라와 마주쳤다.
하기와라 우시오: 뭐야 히무로이드. 마유즈미 방을 지키고 있어? 스토킹하고 있네?
하기와라가 조소를 입에 담은 채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해선 안 되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하하. 농담이었는데 얘는 진짜 스토킹 중이었네. 미친 놈…
이바라 쿠리스: 너 마유즈미한테 이상한 물 들이지 마. 카이다를 막으라고 걔한테 총을 준다는 것부터 미친 소리였는데. 앞으로도 계속 주겠다고?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본인이 동의했어.
이바라 쿠리스: 본인이 동의하면 9살짜리랑 24살짜리가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히무로 시라베: 본인의 동의가 모든 일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요지는 이해하지만, 마유즈미 앞에서는 그런 비유 들지 마. 그녀를 어린아이 취급하면 분명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말꼬리 잡지 마쇼. 요지 하나는 이해하면서 요지 둘은 이해를 못 하나본데. 이바라는 네가 마유즈미를 구워삶아서 협력하게 만든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캐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프로파일러가 24시간동안 심문하고 가스라이팅 했으면 뭐든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 얘기 하는 거지. 이바라?
이바라 쿠리스: …아니. 그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기와라 우시오: 아 ㅋㅋ 머쓱타드~
히무로 시라베: 너흰 그녀를 걱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무능함을 가정하고 있어. 어쩌면 무능함을 가정하기에 걱정하는 걸지도 모르지. 나는 그러지 않아. 친구이기에 걱정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믿고 있어.
이바라 쿠리스: 친구…? 흠.
이바라는 팔짱을 끼고선 나를 쏘아보았다. 그래봤자 나오는 답은 없을 텐데. 달갑지 않았다.
이바라 쿠리스: 네가 처음에 미도리카와 관련해서 거짓말했던 거 말이야. 되게 잘하더라. 무쿠치? 난 깜빡 속았어. 처음 거짓말은 하는 사람 잘못이라지만 그 다음 거짓말은 속는 사람 잘못이라 하거든? 난 잘못 안 할 거야.
히무로 시라베: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 애초에 너희들에게 내 진의를 설득해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
이바라 쿠리스: 마냥 의심해서 나도 미안하지만, 마유즈미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겠어. 이것만큼은 아무리 네가 좋은 모습을 보여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총을 가지고 있는 이상.
히무로 시라베: 총을 소지했기에 감당해야 할 의심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하기와라 우시오: 이바라랑 달리. 나는 그런 생각 안 해.
나는 하기와라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상대를 경계하는 태도, 본질을 보는 통찰력. 그는 광대이자 편협한 이의 탈을 쓰고 장난을 하는 듯 했으나 어느 정도는 옳은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욕이라 느끼겠지만, 나는 그에게서 어느 장도 총잡이의 가능성을 보았다. 다만 그는 내게 적대적이며 자신에게서 조금의 위대함도 보려 하지 않았기에. 자질을 발전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잘 가다듬는다면 야가미의 아성조차 위협할 수 있는 자가 바보의 형상을 띠고 있으니. 큰 억압을 당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기와라가 왜 날 그렇게 보냐며 불쾌함을 표현하려는 때. 나는 불쾌한 만남을 지속하지 않는 편을 택해5다.
히무로 시라베: 너희 먼저 식당에 가 있어. 나는 마유즈미와 함께 합류할 테니.
이바라 쿠리스: 이왕 기다리는 거면 제대로 기다려! 혼자 뒀다간 카이다가 물어갈라.
이바라는 당부와 장난스러운 미소를 담은 채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하기와라는 이바라의 뒤를 따라가면서 내가 있는 방향을 줄곧 힐끗거렸다. 그것은 당장 내가 이바라와 그를 향해 총을 뽑고 쏘리라고 믿는 사람의 눈치였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쏠 필요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곧 퀭한 눈을 한 토키와가 자신의 숙소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히무로 시라베: 좋은 아침이야. 토키와.
토키와는 내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토키와 아유키: 살인 게임에 좋은 아침 같은 건 없어. 곧 회의를 열 테니 식당으로 와서 참여해 줘. 넌 세 번의 시련에 전부 참여한 인물이니 네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아. 나 먼저 갈게.
토키와는 용건만 말하고 계단을 올랐다.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 그런 종류의 소통이 내게는 더 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적어도 이제 그를 보며 마음에도 없는 좋은 아침 따위의 인사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리고 좋은 아침은 없다는 그의 의견에 나도 동의하는 바. 나는 그의 바뀐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야가미 토가: 저희는 미도리카와 씨를 되살리기 위해 시련에 참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버리자고요? 그럼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일들은 다 뭐가 됩니까?
야가미 토가: 바다뱀… 바다뱀. 정신 차리세요. 바다뱀.
야가미 토가: 이건 아니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절대로. 어떻게… 어째서 또?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는 미도리카와를 증오하지 않았어.
이바라 쿠리스: 뭐? 그렇지만 야가미는 미도리카와를 죽였잖아!
히무로 시라베: 야가미는 시련 속에서 늘 그녀를 구하려고 했어. 야가미는 탑에 나가 바다뱀을 찾고자 했기에 내통자 역할을 맡고 미도리카와를 죽였지만, 정작 자기가 죽인 사람이 자신의 목표인 줄은 몰랐어. 모노로그와 야가미가 협력하지 않게 된 계기도 그것일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이건 나도 인정할게. 야가미는 미도리카와 묘 앞에서 중얼거린 적도 있어. 조용히 애도 같은 걸 표하더라고. 내가 잘못 본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납득이 가.
이바라 쿠리스: 그러는 걸 봤다고?
마유즈미 나데시코: 으엥? 진짜 이상한데!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내가 봤다니까! 야가미. 이제 발설해도 돼지?
야가미는 잠깐의 침묵 끝에 말했다.
야가미 토가: …이 시점까지 와서는 상관없을 것 같군요.
하기와라 우시오: 좋아. 됐어. 시련 안에서도 야가미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미도리카와한테 집착하던데. 세 번째 시련에서도 그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바라 쿠리스: 그래서. 이제 야가미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야?
이바라는 꺼림칙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적어도 모노로그를 적대한다는 점에서는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이바라 쿠리스: 난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야가미가 모노로그랑 척을 지게 된 건 그냥 미도리카와의 정체를 숨겼기 때문이잖아. 야가미가 살인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아!
히무로 시라베: 동의해. 이미 그는 사람을 죽일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신뢰는 끊겨 버렸지만, 이용할만한 정보가 있을 거야.
토키와 아유키: 야가미는 외딴섬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 우릴 돕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지. 그렇지만 야가미. 우린 계속 너를 주시할 거야.
야가미 토가: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럼. 다음 안건을 이야기할까요? 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군요.
야가미의 말에 나나시는 작게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나나시: 탑에서 일어난 일은 많지 않아, 우리는 후루미나미와 카나리, 칸나즈키가 살인을 유도하는 것을 막지 못했어. 막바지에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살인을 막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지. 캐롤 씨가 나이토 씨에게 휘말려서… 죽었고.
이바라 쿠리스: 나나시.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버리는 건 좀 그렇다…
나나시: 아직 말이 안 끝났으니까 그렇지. 하나가 더 있어. 우린 카지노의 지하에서 크레딧을 모아주는 튜브를 발견했어. 카지노의 모든 장치와 다이얼로그를 통한 크레딧 상점은 그 튜브와 연결되어 있어서. 분명 크레딧이 쌓이지 않았을 장치도 크레딧을 뱉어내지. 이상한 점은… 크레딧 튜브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거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여러 개? 몇 개였는데?
나나시: 다 세지도 못 했어. 아니. 셀 수도 없었어. 튜브가 있는 방을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통하는 4개의 문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튜브가 있고, 또 통하는 문이 있었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얼마나 많은지 몰라도 우리가 다 쌓을 만한 양이 아니야.
나나시: 우리는 이 탑에 온 최초의 사람들이 아닐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이 탑에서 크레딧을 소모하고… 또 죽은 거지.
하기와라 우시오: 그건 짐작하고 있었어. 모노로그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살인 게임을 몇 번이고 진행했다고 했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러니까 그 장소가 바로 여기라는 거야?
칸나즈키 시노부: 높은 탑이니 계속 쓰고 싶겠지…
하기와라 우시오: 여기서 하나 더 짚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23T. 너는 이 가상현실에 항상 투입되는 존재인 거야? 모노로그가 그랬잖아.
모노로그: 난 이것과 유사한 게임을 몇 개나 진행했다. 그 때마다 23T5U130은 내게 개입했지. 난입한 자를 별 수 없이 게임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룰은 도무지 바꿀 수가 없어서 항상 저것을 종양처럼 단 채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당황스러웠지. 그러나 난 저 인공지능의 패턴을 파악했고, 완벽하게 꿰뚫었다. 이젠 그저 지겨울 뿐이야. 저 흉물이 나타나고. 게임의 참가자들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허무하게 쓰러지는 모습. 저것에게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와 달리 저것에게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네가 쓰러진다는 건 결국 너조차도 살인 게임에서 탈락한다는 거야? 어떻게 그래? 너 무력으로는 최강이잖아. 카이다도 너한테 못 비빌 텐데?
23T5U130: 무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모노로그가 날 견제하기 위해 탑에 추가한 게 많으니까. 넌 모르겠지만, 후루미나미와 카나리는 플라잉 로봇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그것에서부터 방해 전파가 나오면 나는 여지없이 잠시 작동을 멈추게 돼.
나나시: 23T 너는 매번 살인 게임에 투입되는데. 플라잉 로봇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어?
23T5U130: …살인 게임 안이니 게임의 비유를 쓰자면, 내가 살인 게임에 들어오는 건 이어하기가 아니라 다시 하기야. 이전의 게임에 대한 기억은 없이 백지상태로 투입되지.
23T5U130: 살인 게임의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흰 물건이 새로 등장하고 모노로그가 날 어떻게 압박할지는 나도 몰라. 그 점이 모노로그와 나의 차이점이야… 내 행동양식은 이미 모노로그에게 읽혔는데 나는 모노로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 그토록 여유만만한 거고.
토키와 아유키: 모노로그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 흰 물건은 또 후루미나미의 손에 있으니… 암울한걸.
사실이었지만, 상황이 최악은 아닐지도 몰랐다.
히무로 시라베: 그래도 후루미나미가 흰 물건을 쉽게 빼앗기지는 않을 거야. 후루미나미는 흑막을 포함한 모두가 패배하길 원할 테고, 지능은 뛰어나니 잘 도망 다닐 수 있겠지.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놓고 뭔 일을 할지 너무 불안하지만, 그건 차치하자고. 이번 흰 물건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나중에 빼앗을 수 있을 텐데.
히무로 시라베: 흰색 버튼이야. 탈출 장치라고 적혀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거 누르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한데. 그건 후루미나미만 아는 거겠지…?
나나시: 후루미나미도 모를 걸. 아직 사용을 안 했을 테니까. 후루미나미는 기름을 가져와서 계단을 태우고, 플라잉 로봇에 탄 채로 날아다니고, 사람한테도 불을 붙인 다음 소화기로 끄고 기절시키는 사람이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어. 그건 너무한데…
나나시: 너무 거창하지. 번거롭고. 후루미나미에겐 연출자의 본능이 있어. 늘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는 것처럼 행동해. 그러니 혼자 숨어있다가 눌러버리기보다는 반드시 히무로를 찾아올 거야. 돌아와선 도발하겠지.
연출자의 본능. 나는 나나시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황에 곧잘 나타났고, 설령 흔들리더라도 자신의 우위를 되찾을 수 있을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손 안에서 굴리고 달그락거리며 뻔뻔하게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너무 오래 참았다. 또다시 그녀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알량한 도발을 계속한다면…
나는 홀스터에 채워진 총을 내려다보고선 내 생각이 식게 두었다. 생각은 충분히 식은 뒤에도 그 형태를 바꾸지는 않았다. 비정한 결의만을 느꼈다. 그래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치명적이지 않은 선에서 사격을 해야 할 것이라고.
토키와 아유키: 지금까지의 정보를 정리해보자. 우선 흑막은 미도리카와의 부활을 막아 왔다. 야가미는 미도리카와를 미워한 적이 없었기에 시련에서 그녀를 꺼내려했으나 실패. 흑막과 적대한다는 점에 있어선 우리와 목적이 같다. 야가미, 미도리카와, 카이다는 초고교론자라는 괴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왜인지는 알 수 없다.
토키와 아유키: 이 탑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며, 23T는 모노로그에게 예측당하고 있다. 이 탑에서 죽은 초고교급이 몇 명일 지는 모른다. 후루미나미는 흰 물건을 가지고 있지만 본인이 쓰기보다는 우리 앞에서 미끼를 살랑살랑 흔들 것이니 기다려 보자. 그리고… 히무로. 마유즈미.
토키와는 나를 바라보았다.
토키와 아유키: 총은 계속 가지고 있을 생각이야?
히무로 시라베: 나와 마유즈미 말고 줄 사람을 생각하기 어려워서.
이바라 쿠리스: 그래도 총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기와라 우시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언제 돌변할지 모르잖아. 넌 단 한 번도 수상하지 않은 적이 없어.
히무로 시라베: 그럼 카이다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질 뿐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네가 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가 억제된다고. 이해가 안 돼? 카이다를 막겠답시고 나 총 가지고 있소 하는 무법자를 뻔히 걸어다니게 둔다? 이게 더 멍청한 일이잖아.
이바라 쿠리스: 네가 좀 별나긴 해도 살인을 막으려고 노력해온 건 알지만… 방아쇠만 당겨서 사람 죽이는 게 총이잖아.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나와 마유즈미는 서로가 우발적인 격발을 하지 않게끔 서로를 감시할 거야. 총을 경계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내 의견을 꺾을 생각이 없으니. 총을 든 이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보단 나를 믿는 게 더 낫지 않겠어?
하기와라 우시오: 이제 총 들었다고 협박하는 거 봐. 이런데 너를 믿으라고?
히무로 시라베: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도 받아들여야 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히무로가 이상해지면 내가 꼭 막을게. 그러니 다들 걱정 마.
마유즈미는 이바라를 타이르듯이 말했으나 그 어조에 이바라는 더욱 분개한 것처럼 보였다.
이바라 쿠리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야…! 우리 마유즈미가 총을 들고 히무로를 막는다고? 이 탑의 마지막 양심이? 어라라. 이렇게 말하고 보니 좀 어울리긴 하지만, 나 진짜 상상이 안 가!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고, 총은 살해에 쓰이지 않을 거야. 총을 쓴 순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되니까. 적어도 후루미나미를 잡기 전까지는 내가 총을 휴대할 수 있게 해 줘.
토키와 아유키: 네가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 히무로.
토키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인 반응이었다. 온건하고 순한 그의 성정을 고려하면 안전을 이유로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허락이 떨어졌다. 그의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이리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이걸 허락한다고?
토키와 아유키: 지금 히무로와 마유즈미가 총을 휴대하는 게 그나마 우리의 생존에 나은 일이야. 카이다와 후루미나미만으로 벅차. 그들에게 맞설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해. 그렇지 않아?
나나시: 네 말이 맞아. 토키와. 우릴 도울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보다 히무로.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히무로 시라베: 뭘 묻고 싶은데?
나나시: 대몰락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는 것 있어?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히무로 시라베: 대몰락…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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