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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30+1

by 도타싫어! 2022. 1. 17.

 

모노로그시체 발견. 시체 발견.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가 있는 해변. 두 번째 시련의 문이 있던 곳으로 모이도록.

 

무로 시라베: 시체 발견이라고?

 

나와 야가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모닥불로 향하던 와중 다이얼로그에서 들려오는 모노로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미 토가: 결국 살인이 벌어졌군요. 어쩌면 모리 씨가 죽은 것일까요?

 

무로 시라베: 적어도 우리가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틸 거라 생각했는데

 

막지 못했다. 너무나 무력하게 막지 못했다. 아직 모닥불로 가기까지는 몇 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는데 피해자의 발견이라니. 턱도 없었다.

 

또한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내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났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막지 못할 운명인가? 결국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대몰락의 진실마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흑막의 게임 안에서 놀아나다가 죽을 운명인가?

 

프로젝트를 완성하지도 못한 채?

 

무로 시라베: …계속 걷자. 야가미.

 

가미 토가: 그러죠.

 

나는 무력감에 덜덜 떠는 대신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해변을 걸었다.

 

그러나 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와 야가미가 모닥불까지 나아가기에는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수사 시간에 맞추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았지만 단지 아는 것만으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에. 나는 먼저 불편한 진실을 환기했다. 

 

무로 시라베: 빨리 사건 현장으로 가야 할 텐데.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우린 수사를 할 권한조차 얻을 수 없을 거야.

 

가미 토가: 더 나쁜 경우의 수도 있죠. 두 번째 규칙 때문에 저희가 처형당하는 것 말입니다.

 

야가미 또한 불편한 진실을 들췄다. 다이얼로그를 열지 않더라도 그 규칙은 나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규칙 2: 시체가 3인 이상의 사람에게 발견될 경우 검정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학생들은 학급 재판에 참여합니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교칙 위반으로 간주해 처벌합니다.

 

가미 토가: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지금 한계에 다다라 있습니다… 지금의 속도를 유지한 채 걷는 것조차 힘들어요.

 

무로 시라베: 그래도 갈 수밖에 없어. 애초에 살인 사건이 벌어진 이상 우리는 탑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규칙 22: 최초의 피해자가 발견되는 순간 후원 제도는 종료되며, 경주마들은 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무로 시라베: 그러니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 이렇게 무의미한 죽음 따위는 모노로그마저도 원하지 않을 거야.

 

가미 토가: 그렇지만 탑으로 돌아올 방법이 보이지 않는군요 만약 모노로그 씨가 규칙으로 말장난을 쳐서 저희를 제거하려 한다면, 저희에겐 저항할 도리가 없습니다.

 

무로 시라베: 살인 게임의 관리자는 절대 규칙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아. 살인 게임을 지켜보는 이들을 납득시켜야 하니까.

 

가미 토가: 그건 당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기반으로 하는 주장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미 토가: 그렇다면 흑막에게 있어 지금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가진 두 명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군요.

 

야가미도 흑막에게 불리한 비밀을 알고 있단 말인가? 내통자이기 때문에?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내 등 뒤에서 무언가가 풀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야가미는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가미 토가: 여기부터는 혼자 가셔야겠습니다. 히무로 씨.

 

무로 시라베: 뭐 하자는 거지?

 

가미 토가: 말 그대로입니다. 거리 왜곡을 이용하는 거예요당신 혼자 가는 것이 둘이서 가는 것보다 빠릅니다. 저는 지쳐서 나아갈 수 없으니 당신이 가야 하는 것이죠.

 

무로 시라베: 개인적으로 너를 살려야 하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검정을 잡는 데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당장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어.

 

가미 토가: 죄송하지만 지금 저를 끌고 가실 수는 없을 겁니다. 제 말 들으세요. 제가 희생하려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가미 토가: 그러니 제가 재판에 참여하지 못하고 규칙 위반으로 처형당하더라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겠습니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마세요. 그건

 

야가미는 말을 멈추고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가미 토가: 안 나오십니까. 모노로그 씨?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모노로그: 이제 나를 상대로 장난도 칠 줄 아는군?

 

모노로그가 입술을 씰룩이며 모래 밑에서 솟아올랐다.

 

가미 토가: 꼭 대화의 중요한 국면마다 등장하시길래 좋은 국면을 만들어 드린 것뿐입니다. 당신도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모노로그: 네 장난 때문은 아니다. 살인이 벌어졌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것뿐이지. 후후후

 

무로 시라베: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나 알려 줘.

 

모노로그: 그리 급할 필요 없다. 수사 시간은 충분히 제공해줄 것이다. 탑에서 해변으로의 통로를 만드느라 너희에게 잠시 늦게 도착했을 뿐이다.

 

모노로그는 나와 야가미가 있는 방향의 반대로 몸을 돌리더니, 입을 쩌억 벌렸다. 그러자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람이 한 번 세차게 불었다.

 

무로 시라베: 뭘 한 거지?

 

입 안에서 모노로그가 빛을 내는 젤 같은 것을 토하자 찢어진 듯한 허공이 서서히 메워졌다.

 

모노로그: 두 번째 시련이 있던 곳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이다. 이미 너희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그곳에 모여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모노로그: 물론, 죽은 사람은 오지 못하지만.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우리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요. 아쉬움에 쓴 맛을 곱씹을 뿐…"

 

 

 

 

모노로그는 허공을 찢어 놓았다. 그런 표현으로밖에 그 통로는 묘사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천으로 이루어진 해변이라는 세계에 칼을 휘둘러 천을 찢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 구멍을 만든 것처럼. 찢어진 듯한 틈새 너머로는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틈새 사이로는 발광형 유동 물질 같은 것이 꿀렁였다. 젤리와 유리. 둘 다이며 둘 모두 다 아닌 물질. 정황상 그것 안으로 몸을 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불쾌감이 무엇보다 먼저 들었다.

 

균열 너머로는 분홍색. 검은색. 상아색 등 친숙한 머리색을 가진 이들이 보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시련이 있던 문 앞에 모인 모두의 모습이 분명했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확실해지고 목소리 또한 잘 들리게 되자. 모노로그는 말했다.

 

모노로그: 이제 건너도 좋다.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행운을 빌지.

 

허공에 열린 균열 사이로 몸을 넣자 나는 먼저 차갑고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불쾌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숨을 참고 발을 디디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두 번째 시련이 있던 곳. 모닥불을 만들어 두었던 곳에 서 있게 되었다. 몇 시간은 더 걸어야 할 거리를 한 걸음만에 뛰어넘은 것이다.

 

모노로그의 말대로 균열 너머에는 이미 나와 야가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여 있었다. 또 균열은 하나가 아니었다. 내가 건넌 균열 말고도 유동형 액체에 발광물질을 섞어 굳힌 것 같은 통로가 맞은편에 하나 더 있었다. 통로 너머로는 검은 기둥과 계단, 돌로 이루어진 듯한 건물의 내부가 보였다.

 

탑과 두 번째 시련이 있던 곳 사이의 통로였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모닥불이 있던 곳의 바로 옆이었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모래사장에 누워 있었다. 나나시가 그 피해자의 바로 옆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고, 23T와 칸나즈키 및 토키와가 수사 현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유즈미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와 야가미가 세 번째 시련 밖으로 나왔을 때. 카이다의 모습은 없었다. 그녀는 우리보다 한 발자국 앞서 시련에서 나갔기 때문에 그녀가 원한다면 나와 야가미의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이다 쿠로하에게 있어 남을 해칠 수 '있다'는, '한다'로 귀결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카이다가 그럴 수 '없었다'라고 해석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카이다는 모종의 수단을 통해 시련의 문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시련에 침입했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라질 때도 모노로그에게 자신을 꺼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던가.

 

시련의 문을 통하지 않더라도 시련에 침입할 수 있다면 마유즈미와 다른 이들이 있는 모닥불 근처에서 침입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했다. 만약 그녀가 시련의 돌입에 실패한 뒤. 누군가를 인질로 잡기 위해 해변에 있는 자들에게 접근했다면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왔구나

 

내 걱정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금 누그러졌다. 어두운 표정의 마유즈미가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자 나는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내 사안은 자연스레 피해자와 검정의 살해 수법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피해자의 시체에 한 발자국씩 더 가까워졌고, 그런 와중에 살아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후루미나미는 나나시의 옆에서 수사를 돕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생존. 하기와라는 바다를 가리키며 이바라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생존. 생존. 카나리는 남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생존.

 

모리는 우리가 떠나기 전보다 혈색이 조금 더 나아 보였고, 누가 조달했는지 알 수 없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생존. 카이다는 아무 말 없이 사건 현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수사인가? 생존.

 

그러나 나이토와 캐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로 시라베: …두 명이 죽었군.

 

첫 번째 살인의 검정이 살아있는 대신. 두 번째 살인에서 두 명이 죽었다.

 

내가 본 것은 모래를 피로 적신 채 죽어 있는 나이토 유즈루의 시체뿐이었다. 그의 하체가 침낭 안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자는 도중 살해당한 것처럼 보였다.

 

가미 토가: 나이토 씨가…?

 

나를 따라 균열을 넘은 듯한 야가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의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모리가 감염으로 인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몸이 버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나이토가 감염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해 살해당했다고?

 

아무리 감염으로 인해 약해졌다고 해도 그는 하기와라와 마유즈미를 상대로도 크게 저항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무로 시라베: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나이토의 시체에 다가가 묻자 후루미나미는 반갑다는 듯이 모자를 벗어 내게 인사했다.

 

루미나미 나몬: 보고도 모르나. 왓슨? 이건 분명한 살인 사건일세. 의심의 여지도 없어!

나시: 장난 그만 하고 조사나 계속해. 후루미나미.

 

얼굴에 반창고를 여러 개 붙인 나나시는 후루미나미에게 쏘아붙였다.

 

루미나미 나몬: 알겠소. 음… 그보다 말인데. 자네는 뭐라고 불러야 하지? 메리 허드슨? 아이린 애들러? 그렇지만 자네는 두 등장인물 모두와 동떨어졌는데.

 

나시: 넌 이게 재미있어?

 

나나시가 조금 더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후루미나미에게 말했다. 나는 후루미나미가 왜 매사에 그리 부정적이냐며 혀를 내두를 것이라 생각했으나, 후루미나미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입을 다물고 작게 말할 뿐이었다.

 

루미나미 나몬: 그럼 코드네임은 나중에 정하지.

 

나나시는 후루미나미의 혼잣말에 대꾸하지 않고 내게 회색 빛의 킬로그를 건넸다. 나이토의 머리 색과 같았다.

 

나시: 읽어. 너한테 필요하잖아.

 

무로 시라베: 고마워.

 

나시: 다 읽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어느 정도 얻으면, 우리 쪽에서 벌어진 일들을 말해 줄게. 시체 발견 시간과 나이토가 죽은 시간에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라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킬로그의 화면을 눌렀다.

 

피해자: 초고교급 승부사. 나이토 유즈루.

 

시체가 발견된 곳은 두 번째 시련의 문이 있던 곳. 모닥불의 근처.

 

가슴팍에 관통상에 있으며 흉기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추정됨. 몸의 절반은 소실되어 있음.

 

피해자의 몸은 살짝 젖어 있음. 가재 괴물의 독이 몸에 퍼지고 있었으며 대량의 출혈이 발생함.

 

사망 추정시각은 오전 2시경.

 

무로 시라베: 몸이 소실되어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

 

나시: 곧 보여줄게.

 

날카로운 무언가로 관통상. 감염. 젖은 몸. 대량의 출혈. 몸의 소실? 나이토의 사망 원인과 살해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나는 나나시의 '벌어진 일들'이라는 단어가 의아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지?

 

나는 그렇게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규칙 20: 경주마가 사망할 경우. 그 경주마를 후원하고 있던 후원자 또한 함께 죽는다.

 

무로 시라베: 외람된 말이지만 나나시. 나이토가 살해당했다는 건

 

나시: 캐롤 씨가 함께 죽었어.

 

나는 입 밖으로 낼 말을 사전에 잘 선택했다.

 

무로 시라베: 유감이야. 나나시. 괜찮아?

 

나시: 그 질문 이미 마유즈미한테서 들었어. 심지어는 후루미나미까지 나한테 괜찮냐고 묻던데. 내가 그렇게 위태로워 보여?

 

나나시는 나이토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위협적인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유순함과 사람 좋은 모습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단편적으로 그의 모습을 볼 때 꼭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부담 없이 말하고 있었고, 위축되어 있지도 않았다. 잠을 자지 않은 것인지 눈 밑이 퀭하고 낯빛이 어두웠지만 심리적으로 내몰린 사람의 몰골은 아니었다.

 

그런 나나시의 모습이 내게는 더욱 위험하고 불안해 보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로 친다면 그는 부정 자체를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부정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는 애초에 캐롤의 죽음이라는 의제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저 다른 무언가에 눈을 돌리고 있을 뿐.

 

또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이상하게 나나시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내가 본 적이 있는어딘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루미나미 나몬: 실제로 위태로웠잖아. 울다가 정신을 잃다가 난리도 아니었어. 사진도 찍어 놨는데

 

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좀 조용히 해.

 

나시: 굳이 일일이 입단속할 필요 없어. 사실이니까. 몇 시간 전까지는 추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이제 우선순위를 볼 수 있을 만큼은 정신이 들었어.

 

나시: 그러니 지금은 검정을 잡는 일에 집중해. 난 반드시 나이토를 죽게 만든 범인을 잡아야겠으니까

 

사실 살인 사건을 함께 수사하는 입장에서 그런 태도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나는 섣불리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수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게 내게 있어서 더 편했고,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나나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유즈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시체 발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겠어?

 

유즈미 나데시코: 어. 새벽에 묘하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깼는데 카이다를 만났거든. 총 겨누면서 말싸움 조금 했다가 도망쳐서 모두를 깨우려 했는데. 나이토가

 

무로 시라베: 죽어 있었던 거야? 시체 발견 시간은?

 

유즈미 나데시코: 새벽 5시 정도… 인데.

 

무로 시라베: 3시간 정도 뒷정리를 할 시간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겠어. 다친 곳은 없고?

 

유즈미 나데시코: 머리를 한 대 맞긴 했는데. 괜찮아! 결국 내가 기싸움에서 이겼거든.

 

그 정도로 끝난 게 천운이었다. 나는 마유즈미에게 해야 할 말이 많았으나, 나나시 쪽에서 내게 한 말에 막혀 잠시 그 사안은 보류되었다.

 

나시: 사건 당시의 상황이 모니터실에 나타났다면 좋겠지만, 모니터실에는 영상이 무작위로 돌아가는 것 같더라고. 모니터실에 있던 인원이 모닥불 근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의아함을 느낄지라도. 설마 살인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야.

 

나시: 모노로그가 살인이 일어나는 현장을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아무튼 기억해 두자.

 

사건 당시의 모니터실 화면을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나이토의 몸이 젖어 있었던 건 정황상 바다 때문이겠지?

 

나시: 맞아. 누가 물을 끼얹었을 수도 있지만 바다일 확률이 높겠지.

 

나이토의 젖은 몸을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그렇지만 바닷물에 젖으려면 그가 바다 안에 들어가야 해. 그가 바다에서 죽었다고 가정해도 어떻게 그 거구를 끌어서 침낭 안에 다시 넣을 수가 있지?

 

루미나미 나몬: 거기서 킬로그의 정보가 활약하는 거죠. 자. 침낭을 벗겨 볼까요?

 

후루미나미가 양손을 비비며 입맛을 다시자 나나시는 대꾸하지 않고 나이토의 어깨에 손을 넣고 그를 침낭에서 힘껏 당겼다.

 

나는 그를 도우려고 했다. 나이토의 체중은 꽤 무겁고 나나시의 완력은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이토의 몸을 침낭에서 빼내기 위해서는 내가 도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나시 한 명의 힘만으로 그는 나이토의 몸을 침낭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나이토의 몸에는 다리가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로 시라베: 이건

 

루미나미 나몬: 밥맛 떨어지는 광경이야. 처음 시체를 조사하려 나와 나나시가 달라붙었을 때. 킬로그의 내용도 있고 다리가 안 만져지길래 꺼내 봤거든? 마유즈미가 그 자리에서 졸도할 뻔했어.

 

유즈미 나데시코: 지금도 못 봐

 

마유즈미는 나이토의 쪽에서 눈길을 돌린 채 말했다.

 

루미나미 나몬: 그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튼 나이토의 몸은 이렇게 반만 들어있었어.

 

나는 모래가 피에 젖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이토가 쓰던 침낭의 내부에는 피가 연못처럼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님을. 나는 나이토의 침낭과 연결된 핏자국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끌린 듯한 핏자국이었다.

 

 

무로 시라베: 핏자국이 바다로 향하는 방향과 연결되어 있어.

 

나시: 그렇지만 중간에 핏자국이 끊겨 있지.

 

달갑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이얼로그를 들고 시체의 사진을 찍었다.

 

피해자의 사라진 하반신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바다로 향하는, 끊긴 핏자국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나이토의 몸을 침낭에서 꺼내는 일은 그의 사라진 다리 말고도 또 다른 질문 거리를 우리에게 던졌다.

 

나시: 나이토의 팔에 이상하게 모래가 많이 묻어 있어. 소매 안까지 모래가 들어있고

 

무로 시라베: 혹시 침낭 안에도 모래가 묻어 있어?

 

나시: 응. 해변에서 취침했으니 어느 정도는 모래가 묻을 만도 하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아. 누가 일부러 침낭 안에 모래를 넣은 것만 같아.

 

무로 시라베: 아무리 봐도 팔에 모래가 묻어 있던 나이토를, 억지로 다시 침낭에 넣어놓은 것 같은데

 

팔에 묻은 모래와 침낭의 모래를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잠깐 나이토의 몸이 어떤 방식으로 잘렸는지 볼게.

 

어쩔 수 없이 확인했지만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대몰락 속 세상에서는 더한 사건들을 보았을지라도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나시: 너도 보면 알겠지만 상처를 마구 헤집어놓은 것 같아. 누군가가 커다란 칼로 나이토의 몸을 썩둑 잘랐다기보다는 너덜너덜하게 무언가가 물어뜯은 행색이야.

 

나나시의 말이 맞았다. 시체의 절단면은 사실 절단면이라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았다. 상처는 마구잡이로 벌어져 있었고 그것이 시체의 출혈을 더욱 크게 만든 원인 같았다.

 

무로 시라베: 잘렸다기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깎여나간 것 같은데.

 

루미나미 나몬: 아마 실제로도 그럴 거야!

 

절단면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그리고… 감염은?

 

루미나미 나몬: 나이토의 감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는 확인했지만, 미관상 덮어 뒀어.

 

무로 시라베: 나이토의 감염은 발목에서부터만 시작되었잖아. 하체가 없는데 감염이 남아 있다고?

 

나시: 직접 보면 알 수 있겠지.

 

나나시는 피로 끈적하게 젖은 나이토의 러닝 셔츠를 그의 몸에서 걷어냈다. 검붉은 선이 상처의 단면을 따라 그의 피부에 퍼지고 있었다.

 

내게는 그의 몸이 감염의 형태를 띤 문신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모리의 손을 파고들던 감염의 선. 검붉은 죽음의 징조마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이토의 몸에 남은 감염은 마치 그의 몸에 있는 모든 혈관을 따라 감염이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사이에 그의 다리에 머물고 있던 감염이 상체에 퍼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 식으로 감염이 빨리 퍼질 수는 없었다. 또 그렇게 넓게 퍼질 수도 없었다.

 

무로 시라베: …이 감염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것 같아.

 

루미나미 나몬:이곳에서 청사진을 다 완성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고려해 봐야겠지?

 

무로 시라베: 네 말이 맞아.

 

나이토의 감염을 다이얼로그로 찍어 기억했다.

 

나시: 일단 우리 쪽에서 조사한 건 이 정도가 다야. 관통상 쪽은 지금부터 조사해보려 하고 있었어.

 

나시: 나와 후루미나미가 나이토를 더 조사하고 있을 테니까 히무로 넌 잠시 모두의 증언을 모아 줄래? 뭣하다면 나와 역할을 바꿔도 돼.

 

무로 시라베: 그럴 필요 없어. 다만 네 증언부터 들어도 될까?

 

나나시는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나시: 알겠어.

 

무로 시라베: 일단. 얼굴의 부상은 어디에서 입은 거야?

 

나시: 어쩌다 보니까 유리조각이 널려 있는 곳에 쓰러졌어. 눈은 안 찔려서 다행이지.

 

무로 시라베: 유리조각?

 

나시: 캐롤 씨는 유리조각으로 변해서 갈라졌어. 모노로그의 이상한 마법이겠지. 아무튼… 그 뒤로 내가 잠깐 필름이 끊겼거든. 정신을 차려 보니까 얼굴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어.

 

루미나미 나몬: 마지막으로 그녀가 상처를 남기고 떠난 거야! 아흑. 얼마나 시적인가!

 

나시: 나는 새벽 2시경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중간에 자잘한 일을 겪었고. 3시쯤에 후루미나미에게 가서 휴대용 송출기와 도청 수신기를 넘겨받았어. 그렇지만 모니터실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것처럼, 휴대용 송출기나 도청기에서도 화면이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나시: 우린 줄곧 모니터실에서 해변의 상황을 지켜봤거든. 후루미나미는 크레딧을 써서 모니터실 말고 어느 곳에서나 해변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고, 도청기를 플라잉 로봇이라는 것에 접착시켜서 너희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음과 동시에 보급되는 항생제도 격추할 수 있었어.

 

무로 시라베: 항생제를 보급했다고?

 

루미나미 나몬: 네가 세 번째 시련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 내가 사보타주를 눌렀지.

 

후루미나미의 뻔뻔함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지만, 그녀의 유쾌한 언행이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로 시라베: 네가 이 살인을 일으킨 거나 마찬가지다. 그 항생제가 보급되었다면, 나와 야가미 토가가 세 번째 시련으로 향할 필요는 없었다.

 

후루미나미는 입을 샐쭉 내밀었다.

 

나시: 그 얘기는 내가 탑에서 한 번 했으니까 더 말하지 않아도 돼. 후루미나미가 반성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중에 매듭을 지어도 되는 문제잖아.

 

나시: 그 뒤로 카나리의 행방을 찾느라 잠시 탑을 헤맬 동안에도 모니터실의 화면이 돌아오지 않다가, 피해자 발견 방송이 울리고 나서야 모니터실이나 휴대용 송출기의 영상이 돌아왔지. 재판을 시시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모노로그의 수작 덕분에 우리는 언제부터 살인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어. 너무 노골적으로 은폐했는걸.

 

무로 시라베: 새벽 1시에서 새벽 2시 사이라카나리의 행방은 무슨 뜻이야?

 

루미나미 나몬: 그게 말이야. 나나시가 조용히 화내면서 카나리가 살인을 부추긴 게 아니냐고 쥐 잡듯이 탑을 뒤지는데 어디에도 안 보이더라고? 다이얼로그 통화는 연결도 안 되고 말이야.

 

무로 시라베: 통화가 안 됐다는 건 의아한데. 완전히 다른 장소에 있는 게 아니면 통화가 이루어져야 해.

 

나시: 언제 오나 싶어서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느샌가 스르륵 나타나서 저렇게 구석에 서 있기만 하고 있어. 뻔뻔하게… 이야기를 좀 해 볼까 봐.

 

나나시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카나리 쪽을 가리키자 카나리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자신의 회중시계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바라보는 일에 열중했다.

 

나시: 또 나와 캐롤 씨는 오후 12시쯤에 이미 항생제를 모리와 나이토에게 보낸 뒤였어. 그런데도 살인이 벌어진 거야.

 

무로 시라베: 항생제를 보낸 뒤임에도 살인이 벌어졌다… 알겠어.

 

사라진 카나리의 행방을 기억했다.

 

오후 12시의 항생제 보급을 기억했다.

 

무로 시라베: 후루미나미. 너는 사건 당시에 뭘 하고 있었지?

 

후루미나미는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우다가 나와 나나시의 시선을 느끼자 언제 피웠냐는 듯이 그것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루미나미 나몬: 커흠. 나는 그냥 잡혀 있었어. 캐롤이 죽은 것도 나는 영문을 몰랐다니까. 이건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살인이야.

 

나시: 간접적인 역할은 수행했지만.

 

루미나미 나몬: 아무튼! 탑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게 다야. 우린 나이토가 죽었다는 건 캐롤의 죽음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해변으로의 통로가 열려 있지도 않았고 수사도 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냥 대화나 나누고 있었어. 누가 뭘 했네. 정황상 뭐뭐네…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고 개인적인 사항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고. 굳이 다 듣고 싶어?

 

무로 시라베: 아니. 나는 잠시 다른 이들의 증언을 듣고 올 테니까 계속 수사해 줘.

 

나나시는 내게 손을 흔들고 다시 시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미나미 나몬: 맡겨주게. 왓스… 으음… 히무로.

 

노골적인 아쉬움을 드러내는 후루미나미를 뒤로 하고 나는 우선 사건 현장을 감시하고 있는 세 명. 23T와 칸나즈키, 토키와를 찾아갔다.

 

무로 시라베: 누가 현장을 훼손하지는 않았어?

 

키와 아유키: 우리가 잘 확인했어. 카이다마저도 지금은 검정을 찾으려는 것 같아.

 

키와 아유키: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 검정을 못 찾으면 죽는 건 카이다도 마찬가지인걸.

 

나즈키 시노부: 사실 이 살인은 살인 그 자체보다, 그 뒤의 파급력이 조금 심각한 것 같아. 아마 해결은 쉬울 거야.

 

23T5U130: 칸나즈키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무로 시라베: 살인의 파급력에 대한 말? 혹은 해결이 쉬울 거라는 말?

 

23T5U130: 둘 다.

 

나는 두 사안 모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용의자가 해변에 있는 이들로 한정되는 이상 검정을 잡는 일의 난이도 또한 내려갔다. 그러나 사건에 있어서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은 존재했다.

 

무로 시라베: 카나리가 탑에서 모습을 감추고 통화도 연결되지 않았다고 하던데.

 

키와 아유키: 아. 그거. 맞아. 이상했지. 후루미나미는 당장 카나리를 데려올 테니 화내지 말라고 일단 전화를 걸고 봤는데. 전화가 연결되지 않더라고. 바로 옆에서 확인했으니 속임수는 아닐 거야.

 

무로 시라베: 다이얼로그의 통화를 피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은 없었을 텐데

 

키와 아유키: 이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우리가 보급 특권을 쓸 수 있는 휴게실의 지하에서 나오고. 모니터실로 향하려고 휴게실 밖으로 나오는데 왜인지 카나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휴게실에서 나갈 때 카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나리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해변으로 통하는 균열이 생기기 전까지 탑에서는 수사가 불가능한 입장이었기에.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정보를 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해변에 줄곧 있었던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기와라 우시오: 오셨어? 미안하게 됐다. 나이토를 못 지켰어. 늘 얘가 우릴 지켜주는 입장이었는데 나는 못 지켰다고. 어이가 없지.

 

기와라 우시오: 나이토는 절대 이득 보면서 못 사는 종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아. 이제 와서 나이토한테 잘해 주고 싶어도 무슨 의미가 있어? 이미 갔는데. 미련하지만 멋진 새끼… 그냥 벌써부터 존나 그리운 새끼

 

하기와라는 말을 쏟아냈다. 그 또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징조였다.

 

바라 쿠리스: 히무로 넌 무사하네. 그나마 다행이야. 마유즈미 걔가 카이다한테 한 대 얻어맞았다더라. 그 착한 애를

 

무로 시라베: 내가 마유즈미의 등을 떠밀었어. 그러니 내 책임이지.

 

바라 쿠리스: …뭐?

 

이바라의 얼굴이 문득 차가워졌다.

 

바라 쿠리스: 설마 마유즈미를 카이다랑 맞서게 시킨 거야? 네가?!

 

기와라 우시오: 둘 다 싸우지 말아 봐. 나이토가 여기 있었으면 너희 말렸을 테니까.

 

맞는 말이었기에. 나와 이바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와라 우시오: 너희 그거 기억 나? 내가 이바라 목에 칼 댔을 때. 나이토가 자켓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그런 건 친구가 아니라고 나한테 욕 박은 거? 무서웠지 그거.

 

무로 시라베: 그런 일이 있었지. 나는 당시에 내 숙소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바라 쿠리스: …나도 기억 나.

 

기와라 우시오: 나이토는 그런 놈이었어. 일단 남을 돕는 게 옳은 일이었다고. 카이다랑 맞서다가 발목 하나가 작살나더라도 개의치 않았어. 바다 무서워하는 데 수영까지 하고 장난 아니지.

 

나는 그가 나이토를 고평가 하는 게 정말 그를 좋은 친구로 여겼던 것인지 혹은 자신이 나이토를 좋아했다는 점을 내게 강조해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잠깐의 고려 끝에 나는 그의 말을 둘 모두로 여기기로 했다.

 

기와라 우시오: 왜 하필 나이토랑 캐롤이었는지 모르겠다.

 

하기와라는 나이토의 시체에 잠시 눈길을 주며 중얼거렸다.

 

기와라 우시오: 대체 왜 그 두 사람이야? 나이토는 늘 다른 사람들 도와주려고 했고, 캐롤도 멘탈 약한 친구들의 버팀목이 되어 줬잖아. 그런데 왜 좋은 사람들이 나쁜 자식들보다 먼저 죽는 거야?

 

기와라 우시오: 살인범. 공범. 살인이 나면 좋아하는 사람. 살인은 신경도 안 쓰는 사람. 그리고 친구 목에 칼 들이대 놓고 내뺀 사람이 안 죽고. 왜 죽으면 안 될 사람들이 먼저 죽는 거냐고. 난… 이해가 안 가.

 

기와라 우시오: 농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 또한 답을 알 수 없었기에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이바라 또한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하기와라의 입에서 조금씩 조소가 비어져 나왔다.

 

기와라 우시오: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이게 다른 게 아니고 농담이잖아. 신이 농담을 하는 거라고. 우리가 곧 농담거리고

 

바라 쿠리스: 좋은 사람들이 먼저 가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더라. 내가 경험하기에도 그랬어

 

기와라 우시오: 맞아. 꼭 먼저 가야 할 법한 사람들이 늦게 가요. 내가 경험하기에도 그래.

 

하기와라는 웃는 것도 정색을 하는 것도 아닌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와라 우시오: 너 증언 들으려고 온 거지? 알리바이 같은 거.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냐. 나는 할 증언이 없어. 그냥 자다가 깼는데 나이토가 죽어 있었어. 그게 다야.

 

하기와라는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며 짜증을 내듯이 웃었다.

 

기와라 우시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봐도 내가 검정 같아. 나이토의 몸을 자를 만한 최소한의 신체조건. 나이토의 몸을 옮길 만한 최소한의 신체조건. 다들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 알아. 모를 수가 없지.

 

기와라 우시오: 그렇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게. 난 검정이 아니야. 두고 봐. 나이토 죽인 새끼는 반드시 내 손으로 잡아 죽인다. 용서가 안 돼.

 

하기와라는 이바라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고는 말을 정정했다.

 

기와라 우시오: 아니면 검정이 합당한 응보를 받을 수 있도록 추론의 길을 열어 놓던가.

 

바라 쿠리스: 그래야지.

 

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조금씩 길을 터 보자. 이바라. 수사 전에 다들 모여서 이야기 한 번 나눴잖아? 누가 누구 경주마고 누가 누구 후원자 인지도 거기서 명확해졌고.

 

기와라 우시오: 난 솔직히 네가 내 후원자인 거 알고 감동 먹었어. 얘가 아직도 친구랍시고 나를 도와주는구나 싶었다고. 내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았지.

 

바라 쿠리스: …그래. 좀 고맙게 여겨 봐. 내 쪽에서는 진짜 노심초사했으니까.

 

기와라 우시오: 내가 쓰지는 않았지만 정말 고맙게 느끼는 선물도 하나 있었지.

 

기와라 우시오: 미안하지만 이걸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으니까. 그냥 지금 이 얘기를 화두에 올릴게.

 

하기와라는 그의 바지 뒷주머니로 보이는 곳에 손을 넣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 칼. 네가 보낸 거 맞아?

 

그는 그 안에서 단검을 꺼내 나와 이바라에게 보여 주었다.

 

 

 

 

 

 

 

히무로 시라베의 기억:

 

사건 당시의 모니터실 화면 - 모니터실 화면 뿐만이 아니라 휴대용 송출기, 도청기의 모든 정보가 차단되었다. 그것들이 차단된 사이에 사건이 벌여졌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이토의 젖은 몸 - 나이토의 젖은 몸은 바다로 인한 것이 분명하다.

피해자의 사라진 하반신 - 나이토의 다리는 사라져 있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바다로 향하는, 끊긴 핏자국 - 바다 쪽으로 핏자국이 이어져 있으나 어느 기점부터 끊겨 있다.

 

팔에 묻은 모래와 침낭의 모래 - 나이토의 팔에 이상할 정도로 모래가 많이 묻어 있다. 침낭 안도 마찬가지다.

절단면 - 절단면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훼손되어 있다.

나이토의 감염 - 몸에 감염이 넓고 깊게 퍼져있다. 다리에서 비롯된 감염이라기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사라진 카나리의 행방 - 카나리는 탑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이얼로그조차 연결되지 않았다.

오후 12시의 항생제 보급 - 나나시와 캐롤은 오후 12시에 나이토와 모리에게 항생제를 보급했다. 그러나 살인은 벌어졌다.

카나리의 목소리 - 토키와는 휴게실에서 나갈 때 카나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영차영차타워 기적의 3일 텀

 

간단하고 열심히 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