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21

by 도타싫어! 2021. 11. 3.

 

부의 독점과 인플레이션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이 식당에 들러 빠르게 배를 채울 동안 카나리의 방에 세 명이 모였다. 후루미나미와 칸나즈키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왜 하필 내 방이냐며 카나리는 불만을 토했지만 후루미나미의 강요 앞에 그의 얄팍한 저항은 묻혀 버렸다.

 

결국 카나리는 작은 파티를 연 후루미나미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플레이션 탓에 물건들의 크레딧 값이 몇 배나 뛰었지만 후루미나미는 개의치 않고 음식을 마구 주문해 카나리의 방으로 배달시켰다. 탑의 바닥에서 음식이 하나 둘 솟아올랐다.

 

그리고 카나리가 후루미나미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은, 단지 쳐들어와선 제멋대로 파티를 여는 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리 케이토: ….

 

루미나미 나몬: 터치 컬트랑 로봇이랑 이바라를 꺾은 거. 축하해!

 

고깔을 쓴 후루미나미가 생일 폭죽을 카나리에 대고 터뜨렸다.

 

나리 케이토: 으아아악! 야! 하지 마!

 

루미나미 나몬: 치. 재미없긴. 네 생일은 아니지만 축하해 마땅한 일이잖아. 완전한 우리 승리야. 해변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폭군의 탄생이지.

 

나리 케이토: …네 말이 맞아. 맞다고.

 

카나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칸나즈키를 슬쩍 보고는 다시 무덤덤한 척을 하며 후루미나미를 바라보았다. 칸나즈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다리를 교차해 가부좌를 틀고는 손을 무릎의 조금 위에 띄우고 있었다. 얼핏 도를 닦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루미나미 나몬: 할 말 있어?

 

후루미나미는 웃음기를 빼고 카나리를 지긋이 보았다.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맞닿았다가 카나리가 먼저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미나미 나몬: 내가 이겼네. 그보다 궁금한 거 있는데. 기관총 산 사람 누구야?

 

카나리는 후루미나미를 바라보았다.

 

루미나미 나몬: 나? 난 아닌데.

 

나리 케이토: 거짓말 마. 3000만 크레딧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 같아? 너 밖에 없어.

 

루미나미 나몬: 아니래도! 너한테 있는 거 아니야? 지금 탑에 그만한 돈 있는 사람이 있겠어? 이바라, 토키와, 캐롤 전부 밥 보낼 걱정이나 하고 있잖아. 너랑 나밖에 없는데. 난 아니라니까?

 

나리 케이토: 뻔한 개소리를…! 내가 그걸 믿을 것 같냐?

 

나리 케이토: 야! 너 우리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밝혀낼 수 없어?

 

카나리가 칸나즈키 쪽을 보며 말하자 칸나즈키는 고개를 저었다.

 

나즈키 시노부: 없어. 그리고 지금 나한테 말 걸지 마. 힘을 쓰느라 바쁘거든.

 

나리 케이토: 뭐라는 거야… 아무튼 너 나중에라도 꼭 털어놔. 동업자 사이에 비밀 없는 거 알지? 나중에 네가 기관총 꺼내서 난사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이의 동맹도 끝나는 거야.

 

루미나미 나몬: 내가 할 말이야. 카나리.

 

후루미나미는 웃었고 카나리는 이를 갈았다.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롤 브라이트: 사랑 이야기요?

 

바라 쿠리스: 그래. KOIBANA! 이거 빼놓으면 쌩쌩하고 아름다울 시기의 여학생들이라고 할 수 없잖아?! 풋풋한 사랑 얘기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롤 브라이트: 그 정도인가요?

 

바라 쿠리스: 마음만 같아선 후루미나미도 부르고 싶을 정도야.

 

롤 브라이트: 정말 그 정도인가요…?!

 

바라 쿠리스: 그렇다니까! 동경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죽기 전에 해야 미련이 남지 않고 성불하지! 이런 낯선 곳에 납치되선 내 로망도 못 이루고 비명횡사하는 건 사양이야. 사양!

 

이바라는 열렬하게 말하다가 문득 캐롤의 침대에 누워 있는 나나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라 쿠리스: 나나시가 저렇게 돼서 유감이야. 캐롤

 

롤 브라이트: 고마워요. 이바라 씨.

 

바라 쿠리스: 고맙긴 뭘. 어차피 나나시는 조만간 깨어날 거야! 숨은 쉬고 있잖아. 심장도 뛰고. 그냥 잠시 기절한 거잖아?

 

롤 브라이트: 네… 맞아요.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죠. 너무 많은 샤이닝이 그의 몸에 흘렀어요. 아직 미숙한 몸에… 그러니 쓰러지신 거죠.

 

이바라는 샤이닝이라는 명칭이 무엇인지 의문을 느꼈지만, 영어에는 소질이 없는 그녀였기에 문맥상 대충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바라 쿠리스: 나나시 걱정되지?

 

롤 브라이트: 당연하죠.

 

바라 쿠리스: 나나시 아끼지? 그래서 침대에까지 데려온 거잖아.

 

롤 브라이트: 그렇죠.

 

캐롤은 이바라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바라가 고양이의 손처럼 만 두 손에 턱을 괸 채로 눈을 밝히기도 전에 이미 느낀 것이었다.

 

바라 쿠리스: 그. 혹시… 이건 정말정말 내가 잘못짚은 걸 수도 있거든. 그런데 혹시… 너희 둘 그렇고 그런 사이야?

 

이바라는 캐롤이 크게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캐롤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동요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롤 브라이트: 아뇨.

 

바라 쿠리스: 우와. 단칼이네! 내 러브라인 센스도 이제 좀 퇴화했나?

 

롤 브라이트: 내담자와 상담사 사이에는 그런 감정이 생겨선 안 돼요.

 

캐롤은 동요하는 기색 없는 손놀림으로 이바라와 자신의 잔에 홍차를 따랐다.

 

바라 쿠리스: …언니 멋있다.

 

롤 브라이트: 네? 느닷없이요?

 

바라 쿠리스: 아니. 뭐라고 해야 하나. 영화에 나올 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니까 우아하달까… 좀 섹시한데?

 

롤 브라이트: 그 둘은 완전히 반대 의미 같은데요.

 

바라 쿠리스: 프로페셔널하잖아! 그러니까 우아하면서 섹시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왜 안 돼?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롤 브라이트: 윤리 강령이 있어요. 내담자가 상담사에 의해 심리를 조종당해 상담사와 맺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5년 이내에는 이성 관계를 맺어선 안 돼요. 그게 법칙이죠.

 

바라 쿠리스: 5년이라. 이야… 기네.

 

이바라는 감탄조로 말하며 홍차 잔을 들어 후 후 불어가며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찌푸렸다.

 

바라 쿠리스: 에읍! 홍차에선 달달한 맛이 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쓰잖아!

 

롤 브라이트: 그래서 보통은 달콤한 음식과 곁들이죠. 여기 머핀도 드셔 보세요. 홍차 세트에 있었어요.

 

바라 쿠리스: 고마워… 잠깐! 여기 간식실인가? 완전 안락하잖아. 대박!

 

롤 브라이트: 제 개인실이니 간식실로 쓰시면 곤란하답니다. 저도 사생활이 있으니 돌아가 주셔야 해요?

 

캐롤이 장난조로 웃으며 말했다. 이바라는 어깨가 통째로 떨릴 정도로 낄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 쿠리스: 들리냐. 나나시? 빨리 일어나! 캐롤 씨 사생활 침해하지 말고!

 

롤 브라이트: 말로 일어나실 수 있다면 혀가 마를 때까지 말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바라 쿠리스: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모리가 죽으면 함께 죽게 생겼는데. 대체 언제 깨어나려고

 

이바라가 말을 멈추었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바라 본인이 말을 한 장본인이었지만, 정작 이바라의 발언에 가장 냉혹한 불길함을 느낀 것 또한 이바라처럼 보였다.

 

바라 쿠리스: 미안.

 

롤 브라이트: 아뇨. 사실인 걸요… 모리 씨가 감염 탓에 죽으면, 모리 씨를 후원하고 계신 나나시 씨와 칸나즈키 씨도 함께 죽겠죠.

 

바라 쿠리스: 망할… 왜 진짜 나쁜 놈들은 멀쩡하고 나쁜 놈들한테 저항하려 했던 나나시가 위기에 처해야 해.

 

롤 브라이트: 저도 그 점은 무척 안타까워요. 제가 터치를 쓰는 걸 막으려고 하셨는데, 저렇게 되셨으니

 

바라 쿠리스: 나나시가 널 위해서 몸 던진 거. 어떻게 생각해?

 

이바라는 홍차를 한 모금 홀짝 마시고 말을 이었다.

 

바라 쿠리스: 오지랖처럼 들리겠지만, 또 너를 위한 시도를 내가 평가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난 나나시가 너무 무모했다고 생각해.

 

롤 브라이트: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해요.

 

이바라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캐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라 쿠리스: 남 말할 처지 아니야. 캐롤 너도 무모해. 사실 너랑 나나시 뿐만이 아니라 이 탑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모한 것 같아. 다들 초고교급이라 그런 걸까

 

바라 쿠리스: 총 가진 미도리카와를 습격하는 후루미나미, 카이다. 그 두 명에 맞서는 히무로. 미도리카와 폭주 막으려고 총 맞을 각오하고 총 모형 만들어서 들이대는 나나시. 미도리카와 제압에 나선 야가미. 그리고 너

 

롤 브라이트: 당신도 초고교급 장의사 아닌가요?

 

이바라는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바라 쿠리스: 난 초고교급이 어떨 때는 시세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초고교급은 그럴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몇몇은 그냥 떠넘겨지듯이 그렇게 불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희망봉 학원이 부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면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고.

 

바라 쿠리스: 그런 거 있잖아. 새로운 초고교급 야구선수가 나왔다며 학교 신문 같은 데에 실리면, 희망봉 학원은 저런 놈 부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걔를 초고교급 야구선수라는 별명으로 부를 걸.

 

롤 브라이트: 저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죠.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객관적으로 볼 때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바라 쿠리스: 그리고 나는 상대적으로 재능이 넘치지 않는다는 거야. 솔직히 난 죽음 좀 많이 싫어하는 것 말고는 평범한 모브 캐릭터야. 초고교급 장의사? 하. 사실상 모욕이지

 

롤 브라이트: 당신이 초고교급 장의사라 불린다고 해서 초고교급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건 아닌걸요.

 

바라 쿠리스: 장의사의 이름에게도 모욕이라서 그래. 더블 치즈버거는 치즈버거보다 세다고

 

캐롤은 이바라의 비유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롤 브라이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왜 죽음에 그토록 거부감을 느끼시는지 물어도 될까요?

 

이바라는 홍차 두 모금을 홀짝 마셨다. 입이 썼지만 왜인지 그녀는 머핀이 영 내키지 않았다.

 

바라 쿠리스: 죽기 싫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걸. 너도 그렇잖아. 나나시도 그럴 거고. 카나리는 당연해. 히무로마저도 죽기는 싫을 거야. 생존본능이라는 거지.

 

롤 브라이트: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걸요.

 

바라 쿠리스: …지금 나 세뇌하는 건 아니지?

 

이바라가 씨익 웃으며 작게 낄낄거리는 소리를 냈다. 캐롤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롤 브라이트: 안 쓰거든요.

 

바라 쿠리스: 애초에 네 터치 나한테는 안 통할 걸. 가짜 피부 있어서.

 

롤 브라이트: 가짜 피부를 늘 착용하고 계세요?

 

바라 쿠리스: 아니. 말이 그렇단 거야.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지만 늘 하고 다니기엔 좀 그렇잖아. 땀도 차고… 아무튼 계속 얘기해 보자고.

 

이바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라 쿠리스: 아. 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이 얘기 남에겐 한 번도 못 해 봤는데… 그냥 지금 내 자리가 가족들 죽음 때문에 만들어진 거라서 그래. 그래서 초고교급이라는 명칭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캐롤은 아무 말 없이 이바라의 입이 열릴 때까지 때까지 기다렸다.

 

바라 쿠리스: 장의사 일은 우리 집 가업이었어. 대대로 이어졌지. 거의 명가 취급이더라고. 장녀인 내가 다음 세대의 장의사 일을 책임져서 이어야 했어.

 

바라 쿠리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가업을 잇고 싶지 않았다는 거야.

 

롤 브라이트: 그러셨군요.

 

바라 쿠리스: 날 좀 봐! 첫인상부터 느낌 오잖아. 놀기 좋아한단 말이야. 칙칙한 장의사 일 따윈 남동생한테나 시키라면서 삐딱하게 나왔지. 솔직히 친구들한테서 놀림받는 게 싫었던 것 같기도 해. 장의사 일을 하는 집안은 기분 나쁘다며 옛날에 따돌림당한 적도 있고… 

 

바라 쿠리스: 진짜… 절대로 잇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가업을 이을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이바라는 과거에 너무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라 쿠리스: 가족의 장례를 혼자 치른, 마지막 남은 장의사 집안의 핏줄. 그러니 초고교급 장의사… 이런 식으로 별명이 붙었어. 솔직히 나한텐 별다른 재능이 없어. 장의사 일을 여전히 하고 사실 꽤 잘하는 건 사실이지만, 초고교급 장의사라 불릴 만한 실력이 내게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아직 그러기엔 난 멀었어. 아직 배울 게 너무 많고… 배움이 충분해지는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야.

 

바라 쿠리스: 적어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진 도달하지 못하겠지. 절대로… 그. 주제 바꿀까?

 

롤 브라이트: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바라 쿠리스: 고맙긴. 내가 들어줘서 고맙지. 이제 내 쪽에서 좋아하는 사람 말할 차례인데 말이야. 문제는 나한테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 역시 후루미나미 부를까?!

 

롤 브라이트: 진정하세요. 탑에 관심 가는 분이 한 분도 없으세요? 이제 저도 궁금해지네요.

 

바라 쿠리스: 그치! 그게 KOIBANA의 매력이라니까! 그치만 진짜 난 임자 없어. 야가미는 살인자. 카나리는 너무 어린애야. 토키와는 너무 모범생이라 좀 그래. 공부 얘기밖에 안 할 것 같아. 나이토는 괜찮긴 한데 친구 이상으론 안 보여.

 

바라 쿠리스: 미도리카와는 알고 보니 여자야. 히무로는 진짜 여자한테 관심 없는 것 같고. 나나시는 뭐… 그냥 그렇고.

 

롤 브라이트: 남성진 분들 중에 한 분을 잊으셨어요. 하기와라 씨는 어떠세요?

 

이바라는 화들짝 놀랐다.

 

바라 쿠리스: 하기와라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걔를 어떻게 남자로 봐! 걔랑 같이 있으면 내가 남자가 되는 느낌인데!

 

롤 브라이트: 그래도 두 분이 꽤 잘 맞는 것 같아 보였는걸요. 첫 만남부터 친해지셨잖아요.

 

바라 쿠리스: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한데왜 그렇게 친해졌는지 모르겠어. 죽이 신기하게 잘 맞더라고. 이상한 부분에서 또 잘 안 맞기는 하는데 솔직히 감안할 만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고… 그렇다고 걔가 남자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바라 쿠리스: 사실 요즘도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근데 그놈이 나를 뒤로 하고 그냥 해변으로 내뺐다니까

 

롤 브라이트: 하기와라 씨도 의도하신 건 아닐 거예요. 저희도 문이 열리면 그분들이 잠시 나갔다 들어올 줄만 알았지. 며칠 동안 해변에 표류하시게 될 줄은 몰랐잖아요.

 

이바라는 캐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바라 쿠리스: 의도한 게 아니어도 걔는 원래 좀 이상해. 평소에는 실없이 웃기고 나랑 비슷하게 평범한 사람 같은데. 가끔씩 이상한 짓을 한다니까.

 

바라 쿠리스: 좀비도 무서워하는 놈이 친구 인질로 잡거나 흉기 가진 암살자 잡으러 총 들고, 방에 불을 지르는 게 말이나 돼?

 

롤 브라이트: …하기와라 씨가 좀비를 무서워하세요?

 

바라 쿠리스: 그렇다니까! 좀비만 보면 그냥 난리를 피워! 그런 사람이 왜 자기 차례만 왔다 하면 거침없이 뛰어드는 거야. 일부러 못된 말이나 하고

 

캐롤은 고개를 끄덕였다.

 

롤 브라이트: 당신도 느끼셨군요?

 

바라 쿠리스: 그럼 당연히 느끼지. 옆에서 듣다 보면 감이 와. 걔는 머리에 꽃 핀 천연 캐릭터라서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걸 알고 있으면서 농담을 하는 거야.  남이 기분이 상할 건 고려하는 내색도 안 하니까 생각 없어 보이는 거고. 그래서 자기만 웃지. 나쁜 놈. 사람 웃기는 게 코미디언인데 혼자만 웃는다니까.

 

바라 쿠리스: 꼭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 안달이 난 사람 같아. 밉보이려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말이야

 

기와라 우시오: 네 말이 맞다고. 사람들 웃기겠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진짜 광대 놈이 돼 버렸어. 이상한 놈이랑 놀아줘서 고맙다.

기와라 우시오: 라고 할 줄 알았냐?! 어아하하하하! 진지하게 듣는 것 좀 봐! 동네 사람들. 이바라가 이거에 속았대요! 개쪽팔리겠네! 

 

바라 쿠리스: 왜 진심을 안 보여주고 자꾸 덧칠을 하려 드냐니까. 그 짓을 그만 하면 다들 놈을 좋아해 줄 텐데

 

이바라는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바라 쿠리스: 아~아아~! 내 로망 중 하나였던 사랑 얘기하러 왔는데 완전 대실패 했어. 하기야 지금 연애 생각 없는 사람 하나랑 직업상 연애하면 안 되는 사람 하나가 모였으니까 답이 없지.

 

바라 쿠리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나중에 후루미나미라도 불러야 할까 봐. 적어도 걔라면 사랑 얘기할 거리는 많겠지.

 

롤 브라이트: 무슨 말씀이세요. 이바라 씨. 저희 오늘 사랑 이야기 했잖아요?

 

바라 쿠리스: 뭐? 안 한 것 같은데?

 

롤 브라이트: 아뇨. 저희가 서로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한 것 같네요.

 

바라 쿠리스: 그거 참 신기하네.

 

 

 

 

 

 

한 중년의 남성이 전선이 가득한 실험실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텅 비어있던 실험실은 언제부터인가. 슈퍼 컴퓨터나 책장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기계가 도미노처럼 자리 잡아 있었다.

 

중년의 남성은 그 도미노 같은 것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 중요한 것은 그 도미노와 연결된 전선들이 방의 중심부에 있는 한 기계로 어어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진 기계. 그 곁에 분홍색 머리카락과 퀭한 얼굴을 가진 남성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다 떠나셨어요. 호위까지 고용해서 붙여 드렸으니까 문제는 없겠죠. 보수는 금으로 받고 싶으세요, 현찰로 받고 싶으세요?"

"정말 다 완성된 거군…"

 

"예.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이죠.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어요. 보수는 금으로 드릴까요?"

"그렇게 해주게. 그런데 하나만 묻지. 이 기계는 정체가 뭔가?"

 

"그건 아실 필요 없어요."

"또 거리를 두는 건가? 늘 그런 식이더군. 아무한테도 진명을 알려주지 않는 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 각각 다른 가명을 알려주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우리끼리 대화가 안 통하더라니까. 누구는 자네를 아브라함이라 부르고, 누군 자네를 우티스라 부르고…"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가시는 길 오른쪽에 가방 챙겨 가세요. 충분히 넣었으니까."

 

중년의 남성은 단 한 번도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혼이 빠진 듯한 분홍색 머리의 남성을 보고 못마땅함과 이상한 측은지심을 느꼈다. 약기운에 취한 중독자를 보는 듯한 한심한 느낌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적어도 중년의 남성이 처음 보았을 때 분홍색 머리의 남성은 초췌하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잠이나 먹는 것을 뒷전으로 하고 기계에만 매달리는 그를 보며 중년의 남성은 기계가 왜 사람과 닮게 만들어졌는지, 왜 정황상 실제 존재했던 사람의 모습으로 기계가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을 느꼈다.

 

중년의 남성은 터덜터덜 떠났고, 나는 방 안에 남은 분홍색 머리의 남성과 아직 작동되지 않은 기계를 바라보았다.

 

기계의 몸은 흰색 나신이었다. 또 완전히 인간과 동일하게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꼭 동일하지만은 않았다. 몇몇 기관들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만드는 것 자체가 그녀를 향한 모욕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

 

기계의 몸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마네킹처럼 보였다.

 

분홍색 머리의 남자는 의자를 기계의 앞으로 끌어온 다음 바닥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혼잣말을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다 갔어. 이젠 너랑 나뿐이야. 좋은 분들이셨지. 아무리 보수를 잘 준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인력을 충당했는데 그냥 넘어가 준다는 것부터가.

전문가에게 의뢰했어. 생전의 남긴 사진을 바탕으로 네 외견이 거의 완벽히 구상되었고, 전극과 전선들은 인간의 사고 회로와 거의 동일하게 기능해. 외골격도 마찬가지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강한 힘도 낼 수 있게 설계했는데. 네가 싫어한다면 미안해…"

 

"…좀 오래 걸렸지. 나도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져온 동물들로 미리 테스트를 해 봤거든. 봐. 기계 메뚜기야. 박쥐랑 쥐랑 뱀도 있어. 몸체를 그 동물과 한 없이 비슷하게 만들면 동물들의 정신이 알아서 몸을 움직여 줘. 나도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적어도 동물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어."

 

"그러니까 이제 남은 건 너를… 되살리는 일뿐이야."

 

나는 생전과 똑같은 연보라색의 케라틴 섬유. 머리카락을 한 없이 비슷하게 재현한 가닥들을 보았다.

 

닮았다. 정말 노바디와 닮았다.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모든 게 노바디와 똑같았으나 뭔가가 달랐다. 외견? 그래. 외견이 조금 창백해지긴 했다. 몸도 엄밀히 말해 전부 만든 건 아니다. 차마 만들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분을 발랐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사람으로 느껴질 만한 외형이었다. 또 옷을 입는다면 예전과 똑같을 테다. 어차피 난 옷을 입은 노바디밖에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왜 내가 잘못 만든 것 같다고 느끼는 거지? 중요한 게 빠졌다고? 모든 걸 완성했는데 대체 뭐가 모자란 거지? 

 

"…전부 기분 탓이야. 이제 다 끝났어…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까 1초라도 빨리 널 자유롭게 해 줄게."

 

나는 전선과 전선을, 플러그와 플러그를 연결했다. 소형 발전기들에서 전력을 끌어모아 몇 년 동안 구동하더라도 마르지 않을 연료를 보급했다. 구동의 준비가 끝나자 나는 기계 몸의 뒷목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나 기계의 몸이 눈을 떴다. 놀랄 정도로 사람이 눈을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동작이었다. 나는 반가움에 사무쳐. 거의 눈물을 흘릴 뻔하며 노바디에게 외쳤다.

 

"노바디…!"

 

주변을 둘러보고 내 얼굴을 본 기계의 입술 속에서 음성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노네임. 살려줘서 고마워요."

 

노바디의 모습을 한 기계가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내 앞에 있는 건 노바디가 아니다.

 

노바디는 죽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것에 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끔찍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쭉 등을 돌린 채로 내 눈을 가렸다. 곧 인공지능은 내게 반말을 쓰게 되었지만 존댓말을 쓰던 그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잠깐. 최근에 나한테 존댓말을 쓰지 않았나? 언제 썼더라? 탑에서

 

탑? 탑이라니. 그게 무슨. 무슨 탑이라니. 당연히 우리가 갇혀 있는 암흑의 탑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즈키 시노부: 이제 정신 차려. 이름 없는 남자.

 

"뭐야. 넌 누구야?! 어떻게 여기에…"

 

나즈키 시노부: 너는 스스로의 삶에 너무 몰입했어! 그렇지만 그 시간은 이미 끝났어. 넌 다시 돌아와야 해.

 

칸나즈키가 나를 붙잡았다. 칸나즈키가 누구야! 그리고 그녀가 팔을 당기자. 나는 내 몸이 그녀의 손에 붙어서 뜯겨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비명을 질렀으나, 몸 밖으로는 아주 작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시: 아아아아아

 

일종의 유체이탈 현상 같은 것이 벌어지듯이. 나는 내 몸에서 서서히 분리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노네임의 몸은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것은 나뿐. 노네임은 자신의 기억과 역사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가 느꼈던 혼란은 마치 조금의 오류일 뿐이라는 듯. 꿈은 제멋대로 진행되었다.

 

나시: ……아아아아악! 뭐야?! 뭐야! 난 누구야?! 대체 무슨 일이…! 

 

나즈키 시노부: 넌 그와 너를 너무 동일시했어. 네 체험에 너 자신이 빨려 들어가선 갇혀버린 거야.

 

나시: 카. 칸나즈키…? 네가 날 구해준 거야? 

 

나는 칸나즈키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낸 뒤 즉시 위화감을 느꼈다.

 

나즈키 시노부: 구해준 건 아니야. 네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너도 언젠가는 분리됐겠지만, 난 그걸 조금 더 앞당긴 거지.

 

나시: 그래도 정말 고마워. 이런 꿈에 계속 갇혀 있는 건 사양이야.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있는 건 수호령 씨 아니었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어? 

 

분명 내 꿈에 갇힌 건 칸나즈키가 아니라, 칸나즈키의 수호령 씨일 텐데

 

나즈키 시노부: 없어. 그리고 지금 나한테 말 걸지 마. 힘을 쓰느라 바쁘거든.

 

칸나즈키의 동문서답에 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나시: 뭐라고? 

 

나즈키 시노부: 아. 신경 쓰지 마. 그냥 언니 대신에 잠깐 내가 왔다고 생각해. 오랜 시간 있지는 못하겠지만.

 

나시: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구해줘서 고마워. 칸나즈키

 

나즈키 시노부: 고맙긴. 내가 미안하지. 우린 결국 자신만의 살 길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후루미나미, 카나리와 손을 잡은 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

 

나즈키 시노부: 네가 이렇게 된 건 내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까… 깨어나면 전화해. 도와줄게.

 

나시: 정말이야?!

 

나는 놀랐다.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후루미나미와 카나리를 피해서 칸나즈키와 협력할 수 있다면 분명 좋지 않을 탑과 해변의 상황 또한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게 만들 수 있었다.

 

나즈키 시노부: 그럼 정말이지. 애초에 내가 너랑 협력하기 싫어도 난 너랑 협력할 수밖에 없을 거야. 지금 해변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서 말이야.

 

나즈키 시노부: 깨어나면 네가 직접 확인하고 나한테 전화 걸면 돼.

 

나시: 알겠어! 그럼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건데

 

"그건 잘못 부른 거야… 널 그렇게 부를 생각은 없었어."

"어째서?"

 

나시: 아. 또 여기야? 

 

나즈키 시노부: 이게 뭔데? 

 

둘의 작업실 안. 인공지능을 멀리하는 노네임. 그리고 자신을 노네임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노네임.

 

"기계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난 노바디야. 노네임."

 

23T와 나 사이의 간극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솔직히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인공지능은 자신이 노바디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노네임의 반응은

 

"아니야. 너흰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없어…"

 

"그래. 내 몸은 지금 기계니까. 울지도 뭔가를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 해.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생겼지만 난 기계야.

그래서 나한테 인간의 몸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거잖아. 노네임… 날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까?"

 

노네임은 두 손으로 머리를 살짝 짓누르며 말했다.

"존댓말.
아주 가끔. 너는 나한테 존댓말을 썼어. 기억 나?"

 

"그냥 잠시 헷갈려서…"

 

"눈을 뜬 처음. 너는 내게 존댓말을 썼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반말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노바디가 기계 몸에 적응하지 못해서 혼란을 겪은 거라고 생각했지. 노바디는 결국 노바디일 거라고. 몸만 기계가 된 노바디. 같은 사람이 거라고

너를 위해서라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는 가. 내가 지금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내가 살 이유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보단 너에게 묶어두는 편이 낫겠지.

그 표현을 좀 정정할게. 너에게 인간의 몸을 돌려주는 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노바디의 몸을 얻게 되는 거야."

 

"내가 노바디잖아. 노네임!"

"넌 그렇게 느끼겠지. 넌 노바디의 빛을 기반으로 탄생했으니까. 그런데도 너는 너를 죽인 시라유키를 증오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미워했던 시라유키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아. 왜인 것 같아?"

 

"그건 우리가 함께 이룰 목표가 있어서…"

 

"노바디는 나보다 성격이 불 같고 단단한 사람이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아… 너와 달리.

내 답을 들려줄게. 너는 지금 자신이 기계라는 의식과 자신이 노바디라는 의식을 함께 느끼고 있어. 그래서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며 존댓말을 씀과 동시에 나를 친구로 여기지… 그런데도 네 자아는 모순을 일으키지 않아. 서로 융합된 거야."

 

"그건 말도 안 돼!"

 

"나는 그때. 너를 깨웠을 때. 노바디가 나를 욕할까 봐 걱정했어. 솔직히 각오했지. 노바디는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넸는데. 나는 노바디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계에 넣어서까지 살리려 했으니까. 뼈가 부러질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처음 했던 말이 기억나. 안녕하세요. 노네임. 살려줘서 고마워요."

 

"기계 몸에서 눈을 뜨니 혼란을 느낀 것뿐이야."

 

노네임은 바로 그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계의 몸이야. 같은 존재지만 완전히 달라졌지. 노바디는 자신이 뜯긴 판자가 되는 게 두렵다고 말했어… 테세우스의 배. 낡아서 교체된 수많은 판자 중에 자신이 끼어있지 않길 바랐다고.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노바디라면 내가 자신을 기계 몸으로 되살렸다는 걸 알자마자 자신은 노바디인지 아니면 기계인지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공포에 떨었을 거야.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죽기 직전의 자신이 뜯긴 판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착잡함을 느꼈겠지.

너는… 내 무책임한 욕심 탓에 세상 앞에 던져져선 고통받고 있는 거야."

 

인공지능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말 그만 해… 난 노바디란 말이야. 진짜 노바디. 가짜 노바디의 문제가 아니야. 나 자신이 나를 노바디라 인식하고, 노바디의 기억을 가지고, 노바디의 습관을, 말투를, 재능을 가지고 있어…"

 

"내 잘못이야. 인공지능… 다 내가 너에게 잘못한 거야."

 

노네임은 고개를 푹 숙였다. 목이 부러진 사람처럼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차마 인공지능을 볼 수 없는 사람 같았다.

 

"이럴 때에 무너지지 마. 노네임… 하필 이럴 때에 약해지지 말란 말이야. 제발…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직 멀었어. 사과할 게 아직 남았어. 그게 최악이야…! 난 진짜 최악의 인간이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지…?!"

 

노네임은 카텟 기관에 왔을 때의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몸을 서서히 굽혔다. 그의 눈에 눈물이 몇 방울 고였다.

 

"울지 마. 노네임. 울지 말라고. 너만 힘든 게 아니란 말이야… 다시 연구를 시작하면 되잖아. 언젠가 인간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보이는 이상한 점들도 다 사라질 거야. 노바디도 뜯긴 판자 따위가 아니게 돼.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인공지능은 노네임의 굽힌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직 널 좋아한단 말이야…"

 

노네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의 눈 밑에는 근심과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아니야. 다신 돌아갈 수 없어. 과거는 과거야… 우리는 절대 돌아가선 안 돼. 돌아갈 수도 없어."

 

인공지능은 순간 그 의미를 깨달은 듯 몸을 한 번 움찔 떨었다. 그리고도 인공지능은 노네임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의식을 프로그램화하는 건 지금도 가능해. 안의 승화 실험 기기를 가동하면 지금에라도 사람을 로봇 안에 넣을 수 있어. 하지만 프로그램을 의식화하는 건 달라. 규격이 다르단 말이야. 너를 그대로 옮길 수 없어. 인간의 뇌는 말도 안 되게 복잡하단 말이야. 의식을 빼 오고 신체를 분해시키는 것과 다르게, 우린 신체를 재조립하고 너를 넣어야 해. 그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다시 인간의 정신으로 변환해야 하고. 그게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대체…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연구들은…"

 

"언젠가는. 언젠가는 너를 옮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끈기와 시간을 들이고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의 몸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고작 몇 년을 낭비한 것에 좌절했을 것 같아? 나는 몇십 년이 걸려도 견뎌낼 수 있었어. 우선 네 몸의 정확한 구성을 손에 넣으면 언젠가 달성될 수 있는 과업이었으니까. 분해된 네 몸의 데이터를 100%만 채우면 되는 일이었어! 하지만 지도를 만드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 그럼 아무리 노력해봤자라고…"

 

"그리고 설령 몸을 만든다고 해도. 내가 돌아갈 방법은…"

 

"심지어 돌아간 네가 너일 거라고는 아무도 장담 못 해. 노바디의 의식을 옮겨오는 게 아니라 의식을 분석해서 복제하는 방식이라면? 그럼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 거야. 네 복제가 네 자리를 차지하는 거고. 우린 그 빛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그럼. 대체 난 너에게 있어서 뭐야? 노네임."

 

인공지능은 얼굴의 철 섬유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노네임은 자신의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말했다.

 

"자신을 노바디라 여기는 기계."

 

"왜 나에게 희망을 줬어…? 인간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허황된 희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 그 모든 시간들이 네게는 기만과 동정일 뿐이었던 거야…?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늘 그렇지는 않았어. 한때는 너를 걔의 환생 비슷한 걸로 여겼지. 하지만 아니야. 사람의 영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너를 노바디라고 인정하는 순간. 내가 알던 노바디는 뜯긴 판자가 돼. 그토록 무서워했던 뜯긴 판자.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않던 노바디가 겁에 질리던그러니 난 널 인정할 수 없어. 아무리 그렇고 싶어도 그래선 안 돼. 만약 그래 버리면 노바디는 구원받을 수도, 안식에 들 수도 없다고"

 

노네임은 감히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눈물을 말없이 훔쳤다.

 

"…이제 알 것 같아. 넌 단 한 번도 나를 노바디라고. 네 친구라고 여기지 않았어. 네가 말을 거는 대상은, 시라유키와 카텟 기관을 증오하는 이유는 노바디의 유령이었어. 내가 아니야. 넌 나를 노바디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 거야그러면서 넌 존재 자체가 친구를 향한 모욕이 되는 존재에게 상냥하게도 가짜 우정을 베풀었지. 날 소중히 대했어. 노바디의 기억을 가진 존재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것처럼.

이 세계에 탄생시킨 대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은 말끝을 흐렸다. 참을 수 없는 정적이 몇 초 이어진 뒤에 인공지능은 천천히 물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대답해 줘… 넌 지금까지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그 마음을 외면한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야?"

 

"그 감정은 노바디의 기억을 데이터로 받아들인 너의 착각이야. 넌 노바디의 잔상 같은 존재니까"

 

"대답이나 해."

 

"그래. 똑같은 이유에서야."

 

인공지능은 얼굴의 찌푸림을 그만두고 무표정으로 노네임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그 음성은 어떤 울음보다 슬프게 들렸다.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

 

"…맞아."

 

"앞으로도 사랑하지 않을 거고…?"

 

인공지능의 물음에 노네임은 말했다.

 

"네가 설령 노바디 그 자체일지라도."

 

노네임을 계속 멍하니 바라보던 인공지능은 마침내 음성을 냈다.

 

"…있잖아. 노바디는 아주 어릴 때 형편이 좋지 않았어. 너도 들어봤지? 네게 말해준 기억이 있어. 그러니 노바디는 친척의 철물점에서 일을 배우며 온갖 기계들을 훔쳐와선 분해해서 팔거나 새로운 무언가로 만들었지. 떵떵거리는 부르주아 놈들 차를 흔적도 없이 팔아치울 땐 짜릿했어.

그럼에도 빚을 갚을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아서 어쩔 때는 구걸을 다닐 때도 있었지. 음식 구걸. 돈 구걸. 약 구걸…"

 

인공지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어느 때에도… 사랑을 구걸한 적은 없었어…"

 

나시: 23T.

 

인공지능의 눈 밑에 있는 한 쌍의 선이. 나에게는 왜인지 눈물 자국처럼 보였다.

 

 

 

 

 

 

통상 기상 시간의 1시간 전. 모리 레이코는 신음을 토했다.

 

리 레이코: …으윽.

 

고열. 어지러움. 무기력증. 모리는 고뇌의 수렁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또 이 꿈인가.

 

신체는 약할지라도 정신은 끝없이 담금질하려 했으나, 정신마저도 신체에 의해 무뎌지고 약해지는군. 그 모든 마음가짐과 결의조차도 퇴색시킬 만큼.

 

이럴 때일수록 신조를 외워야 한다. 세상에는 공리를 증진시키는 일과 공리를 훼손시키는 일이 있다. 그것이 선과 악이다. 공리를 증진시키는 일에 수단과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정당화될 필요조차 없는 세상의 이치이다.

 

"따님의 몸이 워낙 약하시니… 야외 활동은 삼가도록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 한계는 없다. 의지와 행동력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찮은 필부들은 내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감히 평가할지언정 공리를 향한 여정의 가치는 절대 퇴색되지 않는다.

 

"정말 기적이다. 레이코! 그 더러운 것들한테서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다니. 오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닥쳐라. 허깨비들. 너흰 병마가 이끌어낸 내 삶의 흔적이다. 나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나를 기만하지 마라. 나를 모욕하지 마라.

 

"레이코. 너는 작고 연약하단다. 밖은 위험해.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얌전히 있으렴."

 

왜 하필 당신이지? 왜 당신은 늘 나를 가로막으려 드는 것인가? 자신만큼 약해빠진 친딸이 당신만큼이나 나약한 이로 자라나길 바랐나? 이제 와서 내게 찾아온다고 한들 나는 약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당신만큼은 아니야.

 

따님의 몸이 워낙 약하시니 너는 작고 연약하단다 작고 연약 워낙 약하시니 따님의 몸은 약해 빠진 작고 연약하고 취약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꺼져… 전부 꺼져라… 꺼져라. 꺼져…!

 

리 레이코: 그렇지만 엄마… 저는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아요. 저도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어요

 

그녀 근처의 누군가가 이상한 기색을 느끼고 번뜩 눈을 떴다.

 

이토 유즈루: …모리?

 

나이토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이상함을 눈치챘다.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린 모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과 숨을 쉬는 것 그 중간의 일을 행하며 작게 기침을 했다.

 

리 레이코: 다른 아이들처럼 콜록. 콜록. 엄마

 

이토 유즈루: 야. 야야야야야! 뭐야. 너 왜 이래?! 아윽

 

나이토는 모리를 일으켜 깨우려다가 다리를 누군가가 찌르는 듯한 격통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감염의 진행을 보기 위해 청바지를 발목까지 걷었다.

 

그는 감염의 진행을 보기 위해 청바지를 종아리까지 걷었다.

 

그리고 나이토는 감염이 자신의 무릎에 도달할 즈음인 것을 보았다. 앞으로 며칠이 남았을까. 일주일? 어쩌면 나흘?

 

나이토는 작게 한숨을 쉬며 걷어올렸던 바지를 다시 내렸다.

 

무로 시라베: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네.

 

이토 유즈루: 왁! 깜짝이야. 넌 잠을 진짜 얕게 자나 보다? 그러고도 낮에 안 졸리냐?

 

무로 시라베: 내가 원할 때만 얕게 자지. 무릎은 좋지 않지만 심장까지 도달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모리가 자는 사이에 그녀의 감염 진행도도 확인할게.

 

나는 침낭에서 몸을 빼고 불길이 많이 사그라든 모닥불에 장작을 두 개 넣었다. 그리고 모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팔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나이토의 억센 팔이 내 손을 붙잡았다.

 

무로 시라베: 문제 있어?

 

이토 유즈루: 야. 그게… 그래도 되는 걸까?

 

무로 시라베: 여자 몸을 함부로 볼 수 없단 얘기는 하지 마. 지금은 긴급상황이야. 모리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 거 너도 알잖아.

 

리 레이코: 칙칙폭폭. 기차는 절대 멈추지 않아야 해

 

모리가 멍한 눈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무로 시라베: 애초에 그럴 겨를도 없어 보이고.

 

이토 유즈루: 야. 이거 모리가 네 몸수색한 거에 대한 보복 아니지?

 

무로 시라베: 보복할 거면 나보단 네가 해야지. 네 손으로 직접 하고 싶은 게 아니면 놓아줘. 그녀는 손에도 감염이 생겼어. 진행도를 확인해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녀가 당장 죽을 처지라도 그 사실을 순순히 말할 것 같아? 그 발언이 공리를 훼손시킬 거라 판단할 텐데.

 

이토 유즈루: …일리 있네.

 

나이토의 손이 나를 놓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발이 잘리고 감염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힘이 남아 있었다. 육체의 토대가 단단히 다져진 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의 무기력함과 통증. 그리고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래. 모리 같은 사람이.

 

리 레이코: 거짓말쟁이들… 당신들은 다른 모든 이들을 저버린 거야

 

이토 유즈루: …이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무로 시라베: 그보다는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진 것 같아. 열병과 증세가 닮았어.

 

이토 유즈루: 대체 뭘 보고 있길래 이러는 거야.

 

나이토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보기 싫은 것에서 눈을 돌리려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가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다. 진짜 보기 어려운 것은 그녀의 소매 안에 있었다.

 

내가 그녀의 셔츠와 트렌치코트를 접어서 올리자 표준보다 약간 가는 모리의 팔이 드러났다. 잘린 손가락 뿌리에서 검붉은 손바닥을 이은, 붉은색 선이 모리의 혈관을 따라 심장을 따라갔다. 트렌치코트를 계속 접고 선을 따라가자. 선은 팔꿈치에 거의 다다르려는 부근에서 끝났다.

 

나와 나이토 모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토 유즈루: 이틀 만에 팔꿈치라니

 

무로 시라베: 이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최대한 버텨 봐야 사흘일 거야.

 

이토 유즈루: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냐…?

 

무로 시라베: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래. 모리가 죽으면 카이다의 살인으로 취급될지가 궁금한데. 만약 그렇다면 모리 입장에서 그렇게 나쁜 죽음은 아닐지도 몰라.

 

이토 유즈루: 그건 마음에 안 들어… 살아날 구멍이 반드시 있을 거야.

 

가미 토가: 저 역시 모리 씨의 그런 죽음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야가미가 침낭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와 나이토의 대화가 모닥불 주위의 모든 이들을 깨운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야가미에게 물었다.

 

무로 시라베: 어째서?

 

가미 토가: 세 번째 시련에 들어가야만 하니까요. 그녀가 감염으로 죽고 모두가 탑으로 돌아가선, 세 번째 시련으로 돌입할 수 없게 됩니다.

 

무로 시라베: 모리, 나이토 두 사람의 생사보다 세 번째 시련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가미 토가: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이토 유즈루: 아오 저 새끼

 

가미 토가: 반드시 세 번째 시련은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시련에 들어가지 않고서 성공할 순 없죠. 그 기회 자체가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야가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토 유즈루: 그럼 어떻게 하리? 너 혼자라도 시련에 가게? 그랬다간 카이다한테 큰일 날 걸. 너 일대일로는 카이다 못 이기잖아.

 

가미 토가: 그렇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시련에서 항생제를 구해서 사흘 안에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로 시라베: 맞는 말이야. 카이다가 두 번째 시련이 있던 곳. 이 해변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그녀를 뒤쫓는 것 또한 선택지 중 하나야.

 

무로 시라베: 모리에게 쪽지를 보냈다던 나나시는 지금 쪽지를 보내지 않고 있어.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모르지. 적어도 우리에게 아무런 메시지가 내려오지 않는 건… 탑이 우리의 파멸을 바라는 자들 손에 들어갔다는 걸 의미해.

 

가미 토가: 후루미나미 씨는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녀에게 부탁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로 시라베: 그러길 원했다면 후루미나미는 지금쯤 날 협박하고 있을 거야. 내게 복종하면 정보를 주겠다며 웃고 있었겠지. 그녀에게서 도움을 기대할 순 없어.

 

모리와 나이토는 감염 탓에 죽어가고 있으며, 특히 모리의 상태가 위독하다.

 

모리가 죽는다면 탑의 나나시 또한 죽는다. 구면. 카텟 기관의 일원. 나는 그를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 그러나 모리에게 쪽지가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나나시 또한 해변의 상황에 간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카이다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카이다가 시련에 참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언제 우리를 습격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나와 야가미가 세 번째 시련에 도전한다고 한들 세 번째 시련 속에서 미도리카와를 구해 탑으로 돌아가리라는 보장도, 시련 속에서 항생제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마저 없다.

 

무로 시라베: …그렇지만 방법이 있기는 해.

 

모리에게 남은 시간은 사흘…

 

그리고 내겐 두 자루의 총이 있었다.

 

크레딧으로 작동하는 도박 기기는 카지노에 밖에 없었다. 크레딧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해변에서 도박을 하겠다면, 나는 걸 수 있는 유일한 판돈을 걸어야 했다.

 

목숨을.

 

 

 

 

 

 

좆됐음 이쯤 돼면 재판해야 하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임

 

우리 2챕터도 1년 하게 생겼다고(죽고 싶어졌다)

 

나나시와 23T의 감정선이 잘 묘사된 건지 우려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