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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8

by 도타싫어! 2021. 5. 5.

 

23T5U130: 토키와. 일어나 봐.

 

키와 아유키: 으응?! 안 돼. 또 잠에 들어 버리다니

 

23T5U130: 너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 탑에 온 뒤로 잠을 충분히 잔 적이 드물잖아. 내가 계속 보고 있으니 쉬러 가는 건 어때?

 

키와 아유키: 안 돼. 내가 만회해야만 해

 

23T5U130: 이제 첫 번째 시련으로 진입하는 모양이야. 하기와라와 히무로가 안으로 들어갔어.

 

키와 아유키: 히무로, 모리, 나이토가 달려가는 장면까지는 봤는데… 왜 두 사람이 해변에 누워있는 거야?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야?

 

23T5U130: 저 문고리를 잡자마자 쓰러졌어. 처음 히무로가 쓰러졌을 때는 모두 당황했는데 이제는 당황하지 않아. 아무래도 돌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키와 아유키: 알겠어… 일단은 계속 관찰하자.

 

잠을 자지 못한 토키와의 눈은 바짝 말라. 감고 뜰 때마다 버적였다.

 

토키와는 자신이 더욱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마음이라도 놓을 수 있을 테니.

 

 

 

 

 

화장실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캐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냈다.

 

살짝 곱실거리는 금색의 머리카락을 몇 개 겹친 뒤 캐롤은 머리카락의 양쪽 끝을 손으로 잡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팔에 힘을 주고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 뒤 눈을 뜬 캐롤은 중얼거렸다.

 

롤 브라이트: 될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세면대에 놓여 있는 물건을 힐끗 쳐다보았다.

 

자판기에서 뽑아 두었던 가위의 날이 조명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없어. 없어. 없잖아. 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기록실의 3분의 1 정도를 헤집었을 때 그는 모습을 드러냈다. 기분 나쁜 무표정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치 시체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읽을 수 없는 얼굴에 나는 이유 모를 혐오감을 느꼈다.

 

"찾는 문서가 있나?"

 

"내가 했던 말 안 전해주디? 실험 데이터. '승화 실험' 데이터 내놓으라고 내가 몇 번이나 갈궈서 보냈는데."

 

"카텟 기관의 기록 문서에 있는 것이 전부다. 또한 기관원을 겁박하는 것은 네 권한이 아니다."

 

"기관에 들어온 지 몇 년도 채 안 지났으면 조용히 해. 실험한 다음에 폐기했을지 어떻게 알아? 모든 기록을 내놔. 누락도 삭제도 없는 원본 기록을 달라고."

 

"이미 폐기된 지 오래된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인명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당시에 사용되던 기구들은 더 이상 기관에 존재하지 않는다. 후속 실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 마! 그 여자가 쥐든 개든 늑대든. 망할 코끼리로 실험을 했대도 좋아. 더 발전된 승화 실험의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난 그걸로 족해."

 

"승화 실험은 물체를 분해시키는 실험인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생명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고 가정하지?"

 

"뭐? 하. 너 진짜 모르는구나?"

 

"사람이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 30cm 두께의 유리. 그리고 분해.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

 

"내 말 잘 들어. 승화 실험의 목적은…"

 

루미나미 나몬: 일어나!!

 

나시: 으아아아악!!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마구 비틀었다. 내 귀에 소리를 지른 게 누군지 깨닫는 데에는 몇 초가 걸렸고. 그 몇 초 사이 나는 온갖 혼란. 공포. 그리고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분노. 그래. 나는 분노도 느끼고 있었다. 왜 후루미나미가 날 깨웠는지는 몰라도 그녀 덕분에 내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밖으로 끄집어내 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분노가 아니라 당황뿐이었다.

 

나시: 뭐. 뭐야?! 후루미나미?!

 

난 반사적으로 이불을 끌어안았다.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햇빛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왔지만, 후루미나미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햇빛이 미처 드리우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그녀의 희미한 웃음을 보았다.

 

후루미나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그것 말고 다른것은 보지 못했다. 어떤 눈을 뜨고 있는지도, 눈썹의 움직임이 어떠한지도, 어딜 보고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연기의 대가. 연출에 능통한 그녀가 이 위치를 의도한 거라면 내가 의도대로 잘 반응해준 셈이었다. 일등 관객이겠지 아주.

 

그녀가 전용실의 문과 숙소를 열고 다닐 수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마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헐레벌떡 몸을 일으킨 다음 침대 옆에 굴러다니는 쇠파이프를 들어 그녀에게 겨누었다.

 

루미나미 나몬: 반응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요바이 하러 온 것 같잖아. 그래도 재밌는 반응이야. 8점.

 

나시: 너… 내 방에는 왜 들어온 거야?!

 

그렇게 말하는 내 손이 벌벌 떨렸다. 참도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미나미 나몬: 손에 들고 있는 건 0점. 네 전용실에서 가지고 왔어? 흉기 없애자고 토키와랑 23T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미안하진 않아?

 

루미나미 나몬: 네. 네. 내가 할 말 아닌 거 저도 압니다! 아. 난 이거 가지러 온 거니까 하악질 그만해도 돼.

 

후루미나미는 스위치를 눌러 조명을 켰다. 빛이 한 순간에 밀려들어와 눈이 부셨다. 신음하면서 후루미나미의 손에 들린 것을 보려 애쓴 끝에. 나는 단추보다 조금 큰 크기의 검은 원통을 발견했다.

 

루미나미 나몬: 미리 말하자면 도청장치야.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걸렸더라. 캐롤이 생각보다 눈치가 좋았어.

 

나시: …도청기? 그런 걸 어디서 났어?

 

내 전용실에서 기계 부품을 얻었나? 아니. 그녀는 연기자지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그녀는 등장인물의 태도와 행동을 따라 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녀 혼자서 도청기처럼 정교한 기계를 뚝딱 만들 순 없었다.

 

그럼 어디서 얻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만한 건 모노로그다. 모노로그가 그녀와 결탁했나? 내통자 두 명이 해변으로 떠났으니 탑에도 내통자를 두겠다는 건가?

 

아니야. 후루미나미는 실패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히무로와 그녀의 악연에서 우리 모두 느꼈다. 저런 물건을 입수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나시: 자판기

 

루미나미 나몬: 자문자답 잘하네! 엄한 프라이버시는 일부러 안 들었으니까 걱정 마. 그… 알지?

 

후루미나미는 이상한 손동작을 보여줬다.

 

나시: 무슨 소리야! 미쳤어?!

 

루미나미 나몬: 뭐야. 이거 반응을 보니까 정말로

 

나시: 조용히 해!

 

여기서 만담을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루미나미 나몬: 성깔이 좀 생겼나 보네. 캐롤도 그렇고… 너흰 아무리 봐도 심상치가 않단 말이야.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너희 둘이 손만 잡고 자던 키스를 갈기던 배꼽을 맞추던 말이야.

 

나시: 배꼽을 맞춘다는 건 또 무슨 뜻인데?

 

루미나미 나몬: 모르면 됐어. 그보다 네 다이얼로그를 봤는데 말이지.

 

나시: 왜 봐? 후루미나미. 너 진짜 적당히 해야 하는 거 알아?

 

루미나미 나몬: 아. 참…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쇠파이프를 잡은 손이 문득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루미나미 나몬: 그래. 그래! 알겠어. 미안해. 대신 이 누님이 좋은 정보 알려줄게. 너 보유 크레딧이 꽤 되던데 혹시 밖에서 돈 많이 벌다 왔니?

 

나시: 돈? 그게 왜?

 

루미나미 나몬: 나한테 지금 6000만 크레딧이 있거든. 꽤 많지. 다른 사람들 크레딧은 얼마나 있는지 도청기로 좀 알아봤더니. 대개 100만은 커녕 20만도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한 사람만 빼고.

 

루미나미 나몬: 카나리. 걔 크레딧은 미쳤어. 혼자 중얼중얼거리길래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얼마인지 알아? 4억이야. 4억.

 

나시: 4억…?!

 

휴대용 송출기의 100만 크레딧도 코웃음 치며 살 수 있는 양이잖아

 

루미나미 나몬: 나랑 카나리의 공통점? 사실 잘 모르겠어. 개인적으로는 없길 바라거든? 그런데 너흰 거의 다 학생 신분이지. 학생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제한당하는 게 뭔지 알아? 경제권이야.

 

루미나미 나몬: 그런데 나랑 카나리는 그게 아니지. 우리 둘 다 엄청 돈을 벌었거든. 그래서 가설은 세울 수 있어. 밖에서 소지했던 재화의 양과 지급되는 크레딧의 양이 비례한다는 거.

 

나시: 고작 너랑 카나리의 경우만으로 그렇게 판단하겠다고?

 

루미나미 나몬: 내 가설 안 믿어도 돼. 내 말을 안 믿어도 되고. 네 자유야. 그런데 만약 내 말이 맞다면. 이게 또 뭘 의미하는지 알아?

 

후루미나미는 검은 원통. 도청기를 제자리에서 던지고 받으며 싱글싱글 웃었다.

 

루미나미 나몬: 많은 크레딧을 가지고 있는 고래들이 해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지. 너. 나. 그리고

 

루미나미 나몬: 카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관건이 될걸.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거야.

 

루미나미 나몬: 그럼 다음에 보자.

 

후루미나미는 모자를 벗어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유유히 내 숙소를 떠났다.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진이 빠졌다. 나는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은 뒤 후루미나미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나한텐 2천만의 크레딧이 있다. 그걸 후루미나미가 안다. 카나리의 크레딧은 4억. 후루미나미의 크레딧은 600만. 이 세 명이 크레딧을 많이 보유한. '고래' 들이다.

 

나시: 우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될 거라고…?

 

과연. 후루미나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비단 크레딧에 관련된 말에만 향한 게 아니었다.

 

도청기… 과연 그녀가 도청기를 정말로 제거했을까?

 

 

 

 

 

 

무로 시라베: 실례합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거래를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기와라 우시오: ….

 

아니 이 새끼들 뭐야. 미친놈들인가?

 

미친놈들인가?

 

아니 미친놈들인가?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가: 어린 나이에 의욕이 넘치시네요.

 

유즈미 나데시코: 댁도 마찬가지야. 안 그래? 흐흐흐흐흐.

 

악당처럼 웃잖아 시발. 마유즈미가 악당처럼 웃고 있어. 저 말투 어디서 배운 거야. 검은 조직이 따로 없잖아. 히무로 이 새끼랑 친구가 되니까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큰일났다. 이거 웃으면 다 죽는다… 웃으면 다 죽는다! 참아! 흐으아아아악! 하아아아아앗!

 

그보다 정장이랑 저 모자는 어디서 맞춰 입고 온 거야? 내가 여기에 잡혀있을 동안 옷이나 사러 다녀? 이 개새끼들! 난 무서워 뒤지는 줄 알았다고. 다 내 탓이긴 해도!

 

가: 그렇긴 하죠.

 

다뱀: 말투가 되게 특이하네. 재밌어! 자. 아무튼 가방 좀 열어서 보여줄래?

 

유즈미 나데시코: 여기. 똑똑히 잘 봐.

 

마유즈미는 서류 가방을 여는 데 잠깐 애를 먹은 뒤 그 안에 가득 담긴 현찰을 바다뱀에게 보여주었다.

 

다뱀: …대단한데.

 

"때가 되었군요."

 

거구의 남자는 단말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돌아갈 수 없음을 거구의 남자는 알았다. 그는 낯익은 건물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경비를 맡고 있는 타케이치가 그를 보고 총을 겨누었다.

 

"이봐. 당신! 더 가까이 오지 마. 쏴 버리기 전에!"

 

거구의 남자는 타케이치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다. 알아본다는 표현은 부적절했는데, 타케이치의 입장에서는 거구의 남자와 구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케이치는 거구의 남자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 두 명은 단지 닮은 정도가 아니었다. 하기와라가 그러했듯이 타케이치는 거구의 남자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타케이치 씨."

 

거구의 남자는 반가움을 억누르려 애썼다.

 

"…뭐냐. 너? 너는 저 안에…"

 

"당신은 항상 그게 문제였죠. 당황하면 손가락과 머리가 얼어붙어 버리는 것. 그럼에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것은 어찌할 수가 없군요."

 

"너. 저 꼬맹이 놈의 형이냐…?"

"그 꼬맹이가 맞습니다. 어른이 된 것뿐."

 

거구의 남자는 타케이치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했다. 우락부락한 타케이치는 근육질의 건장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타케이치보다 더 크고 강했다.

 

거구의 남자는 타케이치의 손에서 총을 떨어뜨리고 그의 목을 졸랐다. 비명도 내지 못한 채 타케이치는 당황과 공포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타케이치는 바닥에 쓰러졌고 거구의 남자는 건물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모든 장면을 낮이 만들어낸 그림자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내 먹잇감에 먼저 손을 대려는 거야?"

 

감히 이 바닥에서 행복한 삶 따위를 찾으려던 연놈들은 그녀의 몫이었다.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히무로 시라베와 하기와라 우시오가 문 너머 항구로 진입하고 몇십 분이 지난 시점에서. 해변에 남은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이토 유즈루: 

 

유즈미 나데시코: 

 

리 레이코: 

 

가미 토가: 

 

이토 유즈루: 아. 진짜 겁나 어색하네. 하기와라가 없으니까 숨도 못 쉬겠어!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가 유쾌하긴 했지

 

리 레이코: 견뎌야 하는 침묵의 무게다.

 

가미 토가: 두 분이서 잘 헤쳐나가실지 모르겠군요. 히무로 씨는 언뜻 믿을만한 사람 같지만. 묘한 계략을 꾸밀 때가 있으니까요.

 

마유즈미는 야가미의 말에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가미 토가: 당신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데드. 어. 체크?"

 

"덤. 어. 첨?"

 

이토 유즈루: 저 가재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이야. 살면서 저런 건 본 적이 없어. 하루 종일 떠들어대는데 심지어 바다에 살아. 망할!

 

리 레이코: 갑각류 따위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이 현상에 대해 더 파헤쳐보도록 하지.

 

모리는 그렇게 말하며 눕혀둔 하기와라와 히무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두 사람의 감긴 눈을 손가락으로 열었다.

 

리 레이코: 눈동자나 동공의 움직임이 없다. 정말 의식 자체를 해리시켜 문 안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가지고 있던 담배꽁초 또한 사라졌군.

 

가미 토가: 다이얼로그도 확인해 봅시다.

 

리 레이코: 명령 마라. 가증스러운 내통자.

 

모리는 야가미를 돌아보며 표독스럽게 쏘아붙인 뒤 그들의 옷 안쪽과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유즈미 나데시코: 이… 이거 괜찮은 거야? 이 두 사람이 모리 너한테 화내진 않을까?

 

리 레이코: 나신을 보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일로 야단 마라.

 

이토 유즈루: 야. 그럼 나신을 보는 건 사소한 일 아니라는 거잖아. 왜 공리를 위한 일이라면서 어물쩡 넘기냐?

 

리 레이코: 또 그 얘긴가? 내가 네 알몸을 본 것이 그렇게 불만스럽나?

 

마유즈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유즈미 나데시코: 너희… 어… 너희. 언제부터 그렇게

 

가미 토가: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군요.

 

이토 유즈루: 아니 오해 마! 내가 자다 깨서 옷 입으려는데 이 자식이 그냥 문 살짝 열어둔 걸 비집고 들어왔다니까!

 

나이토는 억울함에 자신의 가슴팍을 쾅쾅 두드렸다.

 

리 레이코: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나. 나라면 그 육체를 과시하고 다니지 못해 안달이 났을 텐데? 이상적이고 강력한 형상이었다.

 

이토 유즈루: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엄청 뻔뻔하네. 그냥 넘겨라 이거야?!

 

가미 토가: 입꼬리가 올라가 계신데요. 나이토 씨.

 

이토 유즈루: 망할. 칭찬받으니까 기분 좋은 걸 어떻게 해!

 

유즈미 나데시코: 되게 솔직하네

 

모리는 쭈그려 앉고 있던 다리를 다시 폈다.

 

리 레이코: 다이얼로그 또한 없다. 아무래도 의복을 제외한 모든 소지품들은 시련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의식과 함께 사라지는 모양이다.

 

이토 유즈루: 정말? 되게 기묘하네. 아니 것보다 너!

 

리 레이코: 우는 소리를 자꾸 늘어놓는군. 좋다. 이 사안은 이후 단둘이서 다시 상의하도록 하지.

 

이토 유즈루: 좋아! 너 딴 소리 마라?!

 

리 레이코: 안 할 테니 언성 좀 낮춰라. 혐오스러운 가재 괴물의 울음보다 네 기차 화통이 더 크다.

 

야가미는 말싸움을 계속하는 두 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정말 신기해. 담배꽁초처럼. 시련에서 뭔갈 가져와도 그 물건은 그대로 남는 거겠지?

 

마유즈미는 눈을 감고 있는 히무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그의 볼을 쿡쿡 찔렀다.

 

이토 유즈루: 아아악!… 잠깐. 마유즈미. 뭐 해?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 그냥… 이러고 싶어서.

 

이토 유즈루: 보다 보면 쟤도 어지간히 사차원이야.

 

히무로도 이렇게 보니 사람이구나. 볼이 말랑말랑하게 쭉 늘어나고 따뜻한 사람이야. 아무리 태도가 차갑고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히무로는 내 친구야. 마유즈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서서히 웃음꽃을 피웠다.

 

유즈미 나데시코: 이렇게 눈만 감고 있으면 되게 얌전해 보이는데

 

마유즈미는 히무로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그 딱딱함과 귓불의 말랑한 촉감을 즐겼다.

 

히무로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무로 시라베: 문제가 생겼어.

 

유즈미 나데시코: 히이이익…무로!

 

해변으로 돌아와 몸을 벌떡 일으키자마자 마유즈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미 토가: 무슨 일입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아무것도 아니야! 난 아무 짓도 안했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가 모종의 사유로 인해 경찰에게 체포당했어. 내가 조사한 결과 유치장에 들어갔다고 해.

 

내 말에 해변의 모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미 토가: 진심입니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토 유즈루: 내가 그 새끼 사고 칠 줄 알았어.

 

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미간이 한없이 찌그러졌다.

 

극도로 분개한 모양이었다.

 

가미 토가: 당신은 왜 근처에 없으셨죠? 같이 조사하신 거 아니었나요.

 

무로 시라베: 따로 정보를 조사했어. 덕분에 하기와라에게 말려들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혼자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도 있었고.

 

무로 시라베: 여하튼 지금은 한시가 급해. 오늘이 카이다가 습격하는 날이라고 했지? 하기와라를 빨리 꺼내지 못하면 그가 뇌사해버릴지도 몰라.

 

리 레이코: 그런 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무로 시라베: 그러니 네 도움이 필요해. 야가미. 하기와라를 구출할 방법을 찾고. 상황이 좋다면 미도리카와까지 문을 통해 데리고 오자.

 

이토 유즈루: 잠깐. 야가미 혼자 데려가도 괜찮겠어? 차라리 내가

 

가미 토가: 아뇨. 제가 가는 것이 맞는 판단입니다. 저는 미도리카와 씨를 잘 아니까요. 그녀를 빼내고 싶다면 제 도움이 필수 불가결한 겁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난 여전히 널 못 믿겠어.

 

마유즈미의 말은 흐릴지언정 그녀의 눈은 확신이 있었다.

 

가미 토가: 그렇다면 미도리카와 씨의 구출 또한 힘들어지겠죠. 여러분들은 미도리카와 씨의 사무실조차 모르지 않습니까.

 

리 레이코: 거짓말을 하더라도 우리 쪽에서 알 도리는 없다는 것이군.

 

그 점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가자. 넌 날 도와줘야겠어. 거짓말을 한다면 응징이 뒤따를 테니까 잘 판단하고.

 

가미 토가: 응징이요? 재미있군요. 제가 문 안쪽에서 당신을 배신해도 당신은 저항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육체도 강인한 편이지만 제게는 미치지 못해요. 그러니 고압적인 태도는 그만두고. 협력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무로 시라베: 나는 협상이라는 명목으로 유한 태도를 취하는 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배웠어. 그러니 안 돼.

 

나는 허리에 찬 총띠에서 권총을 꺼내 그를 향해 겨누었다.

 

이토 유즈루: 왁! 썅. 뭐야?!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가미 토가: 총이잖아요? 어디서 구매하셨죠?

 

무로 시라베: 돈이 있었다면 구매를 할 수 있었겠지. 그 점은 애석하게 생각해.

 

가미 토가: 예?

 

"숨겨진 가게인데 잘도 찾아내셨네요. 석양 총포상에 온 걸 환영합니다. 혹시 추천인이 있으시다면 성함 말씀드리겠어요? 빨리요. 저 보던 드라마가 있어서요."

 

"뭐야! 이런 미친! 괜찮아요? 세상에. 갑자기 왜 그래요! 뭐라고요? 일단 구급차를…"

 

"으아악! 악! 뭐야?!"

 

"제발 쏘지 마세요…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요!"

 

무로 시라베: 쏠 생각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저에 대해서는 잊는 겁니다.

 

무로 시라베: 떳떳한 방법으로 얻은 건 아니야.

 

리 레이코: 개의치 마라. 무슨 일을 해도 시련 속 인물들은 허상이다. 살아있는 우리들이 총을 입수했다는 게 중요하지. 총만 있다면 첩자를 상대로도 맞설 수 있다. 큰 변화다. 정말 커.

 

무로 시라베: 나도 그 점에는 동의해. 그러니까 야가미. 순순히 오도록 해.

 

야가미는 총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다. 아마 그가 입었던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그러니 총을 겨누어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면 더욱 쉽게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야가미는 몸을 조금씩 주춤거리며 양손을 들었다.

 

누군가의 상처에 염장을 치는 일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해야만 했다.

 

가미 토가: 알겠습니다. 알겠다고요. 무슨 장난감 겨누듯이 그러지 마세요.

 

무로 시라베: 지금 바로 들어가겠어. 네가 먼저 손잡이를 잡아. 그다음에 내가 들어갈 테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잠깐. 히무로!

 

무로 시라베: 왜?

 

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같이 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리 레이코: 공리의 훼손을 야기시킬 것이므로 반대한다.

 

이토 유즈루: 그… 뭐야. 마유즈미. 너무 무리는 하지 마. 그냥 우리랑 같이 있어! 나 얘랑 단둘이 있기 어색하단 말이야.

 

유즈미 나데시코: 안 돼. 나도 갈 거야.

 

이토 유즈루: 아니 얘 완전 불붙었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너는 저 시련 안으로 들어갈 때 뇌사의 위험을 감수해야 해.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너도 감수해야 하잖아. 넌 왜 네가 울트라맨인 것처럼 굴어?

 

초인(superman)의 다음 단계에 대해 말하는 건가?

 

무로 시라베: 나는 그런 적 없어.

 

유즈미 나데시코: 그러고 있잖아! 너도 위험한데 총은 또 어디서 들고 온 거야. 훔쳤어? 잘못해서 거기에 갇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무로 시라베: 걱정시켜서 미안해.

 

유즈미 나데시코: 앗. 아니야.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냥… 넌 꼭 이럴 때 위험한 일을 감행할 것 같아서 가만히 둘 수가 없어. 그러니까 널 감시하기 위해 내가 동행할 거야.

 

무로 시라베: 그렇지만 마유즈미.

 

유즈미 나데시코: 내가 못 미더워서 그래? 절대 발목 안 잡을게.

 

아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마유즈미의 얼굴을 보았다. 눈치를 보는 듯한 얼굴. 불안한 얼굴.

 

전혀 그런 게 아니야.

 

무로 시라베: 카지노에서의 나는 네 자유의지를 존중했지만. 결과적으로 너는 나와 함께 해변에 갇히고 말았어.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우려돼.

 

"사실 두렵지."

 

닥쳐라. 행운아.

 

유즈미 나데시코: 사실 너 감시하는 것 말고도 나한텐 생각이 있어. 너희 미도리카와를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올 거잖아?

 

가미 토가: 그럴 겁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사실 말이야.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난 이번에야말로 미도리카와랑 친구가 되고 싶어. 적대적인 첫인상 없이. 잘못 맞춘 첫 단추 없이 새롭게 시작하고 싶단 말이야.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나는 미도리카와의 시체를 보고 주저앉은 마유즈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야가미는 팔짱을 꼈다.

 

유즈미 나데시코: 그러니 너희가 미도리카와를 너무 심하게 데려온다 싶으면. 내가 막을 거야. 미도리카와가 우리 모두랑 좋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리 레이코: 대놓고 방해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만?

 

이토 유즈루: 아니. 마유즈미는 쟤들을 도와주려는 거야. 난 그걸 느낄 수 있어.

 

리 레이코: 무슨 근거로?

 

이토 유즈루: 남을 도우려는 기사의 고결한 정신. 내 안에 있는 것 말이야.

 

리 레이코: 아무런 근거가 없군.

 

마유즈미의 도움을 거절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했고. 내 의지 또한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에게 겁을 주는 일뿐이었다.

 

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우린 정말 심하게 다칠지도 몰라. 심하게 아플 수도 있어.

 

그마저도 마유즈미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야무진 표정을 지으며 내 볼을 쿡쿡 찔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느라 몇 초가 소요되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네 걱정이나 잘해. 히무로! 너도 볼이 말랑말랑한 사람이란 말이야. 내 걱정은 내가 할게. 그러니까 우리 둘 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은 거다? 알겠지?

 

호언장담을 하는 듯한 마유즈미의 말을 듣자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싶을 정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가미 토가: 빨리 출발이나 합시다. 하기와라 씨가 지금 저희를 보면 저희를 원망하실 겁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아. 그래! 가자! 빨리 가야지!

 

결국 그렇게 되었다.

 

마유즈미에 의해 세 명의 손이 한 데로 모이고 처음 듣는 구호를 열창하게 되었을 때도 불안감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우린 무조건 멀쩡하게. 건강하게. 멋지게 살아 돌아온다! 아자아자 파이팅!

 

무로 시라베: 아자아자 파이팅.

 

가미 토가: 그 짓을 꼭 해야 합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빨리 해. 너도 미도리카와 꺼내는 거 도와주겠다며!

 

가미 토가: 알겠습니다. 아자아자 파이팅입니다.

 

이토 유즈루: 마유즈미! 다 해치우고 와! 너희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가 문고리를 잡으려 일렬로 섰을 때. 나이토는 우리에게 소리쳤다.

 

리 레이코: 공리를 증진시켜라. 반드시 살아남아라.

 

유즈미 나데시코: 그런 말은 해줄 필요도 없어. 그럼 좀 있다 봐!

 

시련으로 들어온 야가미는 홀린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박하고 움직이는 배와 뱃고동 소리. 매연. 담배. 골목길에 모인 잡배들. 컨테이너 박스들. 폐공장과 콘크리트가 전부 섞인 지저분한 항구를 보며 야가미는 입을 떡 벌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가미 토가: 정말 옛날의 그 풍경과 똑같군요… 그 장소를 통째로 구현한 것 같아요.

 

유즈미 나데시코: 와. 여기가 범죄도시구나. 이 기분 나쁜 냄새 너무 신기해.

 

무로 시라베: 야가미. 하기와라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겠어?

 

가미 토가: 이 근처에는 지인이 많습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교섭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죠. 곧 하기와라 씨가 어떤 경위로 어디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빼내야 하는지. 전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무로 시라베: 생각보다 훨씬 순순히 협조하네?

 

가미 토가: 총을 들이대시는데 그럼 우길 수도 없잖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저도 여러분들께 협력하고 싶습니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 너 여기 지리도 잘 알지?

 

가미 토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구하러 가기 전에, 기껏 과거로 돌아온 셈이니까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 나 한 번만 믿고 조금만 들어줘.

 

유즈미 나데시코: 잘 풀리면 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정말로!

 

무로 시라베: 말해.

 

유즈미 나데시코: 말할게. 이 근처에 혹시 은행이 있으려나?

 

가미 토가: 은행이요?

 

유즈미 나데시코: 잠깐 출금 좀 하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살인 게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돈은 전부이며, 이 세상에는 살인 게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

 

적어도 눈앞의 두 명은 아직 살인 게임에 참여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마유즈미가 인출한 돈을 카드로 내밀 수 있었다. 가방이 하나 가득 찰 정도의 돈. 그것과 이목을 끌만한 의복이 있다면 협상을 시도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과거에 있는 두 인물의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시선을 잠깐 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다뱀: 이게 무슨 소리야? 밖에서 소란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가: 내려가 볼게요.

 

다뱀: 아서. 이제 정리 시작해서 싸울 사람도 얼마 없는데. 네가 휘말릴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하필 거래가 시작된 후에 소란이 벌어지는 게 참 얄궂다?

 

야가미가 다이얼로그에서 바다뱀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전은 이러했다.

 

1: 거래를 하러 왔다는 하기와라의 거짓말에 편승해. 정말 거래를 하는 것처럼 정장을 입은 인원 두 명(정장은 마유즈미의 금전으로 구매한다) 이 돈가방을 가지고 경비를 통과한다.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나데시코)

 

2: 1의 인원들이 사무실에 진입하고 바다뱀과 접촉했다는 것을 옷 안에 숨겨둔 다이얼로그를 통해 2의 인원이 확인하고, 무력을 사용해 건물 안으로 진입한다. 정보에 의하면 경비 말고 건물 안의 인원들은 카드놀이나 하고 있을 테니 수월하다. (야가미 토가)

 

3: 바다뱀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1의 인원들이 회유를 시도한다. 회유에 성공한다면 그대로 바다뱀을 부두로 유도해 문 손잡이를 만지게 하고 해변으로 끌어들인다. (히무로 시라베, 마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우시오, 야가미 토가)

 

4: 3의 회유가 실패할 경우 더 이상의 계획은 없다.

 

나는 바다뱀의 눈과 손에 주의를 기울였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탑에서 그녀를 대면했을 때 느꼈던 섬뜩한 살기가 스멀스멀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일종의 파동 같은 위협을 느끼자 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건물 안의 인원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야가미의 기습이 통한다고 해도 맨손인 그가 모든 이들과 맞설 수는 없을 터였다. 그가 우리를 배신하는 최악의 상황도 상정했지만. 역시 야가미는 승산이 낮은 싸움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의 변수만 없다면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다뱀: 오늘 일이 좀 뒤숭숭해. 마지막 날인데 왜 이렇게 어수선할까? 무슨 거래를 제안하려는 지나 들어보고 빨리 끝내자. 말해 봐.

 

무로 시라베: 네가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다.

 

기와라 우시오: 야! 무슨 소리야?!

 

하기와라가 크게 소리친 뒤 자신의 입을 확 손으로 감쌌다.

 

다뱀: …그게 무슨 뜻이야?

 

가: 바다뱀. 심상치 않아요.

 

무로 시라베: 많은 것은 요구하지 않겠다. 단지 네가 우리를 따라온다면 이 돈을 모두 주겠다. 그게 전부다.

 

다뱀: 하하. 어디로 따라가라고?

 

무로 시라베: 부두. 배를 탈 필요는 없다. 그저 부두까지만 오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다뱀: 스카웃을 할 생각이라면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가: 어느 조직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저희는 이미 뜻을 전했습니다. 이제 은퇴하겠다고요.

 

무로 시라베: 그러지 말고 도망쳤어야지. 죽은 사람처럼 사라졌어야지. 그러지 못했기에 너희는 위험에 처한 것이다.

 

다뱀: 무슨 위험?

 

바다뱀은 턱을 괴었다.

 

무로 시라베: 암살자다. 강한 육체. 높은 근밀도. 그로 인한 익사의 위험성. 카이다 쿠로하는 매발톱과 관련이 있다. 마피아는 너를 숙청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 초고교급도 저항하기 어려운 초인에 가까운 존재를.

 

가: 당신 설마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가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죠?

 

무로 시라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바다뱀과 과거의 야가미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내가 실패했음은 눈을 감더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뱀: 좋아. 느낌이 오네.

 

바다뱀은 옷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녀가 소지한 총의 위치가 짐작되었지만 몸까지 관통할 위험은 감수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녀가 총을 꺼내고 날 겨눈 뒤에야 방아쇠를 당겼다.

 

간혹 근거리에서 발사된 총알이 다른 총에 맞을 때. 그 총에 장전되어있던 탄환이 전부 폭발해 끔찍한 부상을 입히는 경우가 있다. 그 일이 바다뱀에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총은 파손된 채 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손이 총알에 맞을 뻔한 바다뱀의 비명이 뒤따랐다.

 

다뱀: 아아악!

 

유즈미 나데시코: 야! 히무로!

 

마유즈미의 질책하는 소리가 바다뱀의 발총(抜銃)보다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아. 화내서 미안. 그래도 나빴어!

 

무로 시라베: 총을 꺼내기에 쏠 수밖에 없었다. 마유즈미.

 

유즈미 나데시코: 안 다치게 조심해. 살살 쏴야 해!

 

무로 시라베: 노력해 보겠다. 야가미 토가. 총을 꺼내지는 마라. 의미가 없는 일이다.

 

과거의 야가미 토가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위로 들었다. 바다뱀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는 분명 저게 하나가 아닐 터지만. 총을 계속 겨눈다면 괜찮을 터였다.

 

기와라 우시오: 미친놈. 총은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무로 시라베: 알 일 없다.

 

다뱀: 제기랄

 

가: 역시 들이는 게 아니었어요. 바다뱀.

 

다뱀: 걱정 마. 나만 믿어.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바다뱀의 시선은 가면 때문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 특유의 복수심은 야가미를 달래려는 어투에서도 감출 수 없는 가시를 드러내었다.

 

기와라 우시오: 그래도 역시 우리 쪽 미친놈이야! 같은 편을 짐짝처럼 내다 버리기 전까진 존나 든든하네. 멋있어요 아저씨!

 

무로 시라베: 이대로 협상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나 혼자서는 위협과 제압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 하기와라와 마유즈미가 이 둘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기에, 나는 야가미가 건물을 돌파하고 사무실에 진입하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지금 다이얼로그에서는 누구랑 싸우는 소리밖에 안 들려. 올라오고 있나 봐!

 

마유즈미의 다이얼로그를 야가미와 연결해뒀다. 야가미는 이 사무실에 대해 잘 알 테니 곧 합류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기와라는 희소식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바다뱀과 야가미 쪽으로 걸어갔다.

 

기와라 우시오: 내가 가서 얘네 총 압수할게!

 

무로 시라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하기와라 우시오.

 

명령 대신 권고를 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하기와라는 내가 너무 순진해 자빠졌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다뱀의 허리에 있는 총띠를 살폈다.

 

그러자마자 바다뱀은 하기와라의 멱살을 잡고 그를 내 방향으로 들어 올렸다. 방심하다가 인간 방패가 되진 말라는 말을 덧붙여야 했다고 나는 뒤늦게 후회했다.

 

기와라 우시오: 우와악! 뭐야!

 

다뱀: 토가! 지금이야!

 

바다뱀의 신호를 듣자 과거의 야가미가 품 속에서 총을 꺼내며 몸을 굴렸다. 총을 몸으로 감싸는 형색이었기에 그의 총을 재빨리 맞출 수가 없었다. 즉각 사살해야 할까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며. 나는 쏘야아 할 때 쏘지 못했다.

 

내가 뒷걸음질을 치자마자 과거의 야가미가 총을 쏘았다. 총성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마유즈미는 빠르게 내 뒷목을 잡고 나를 끌어당겼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위험해!

 

덕분에 나는 우리가 앉아 있던 소파 뒤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무로 시라베: 고마워. 마유즈미.

 

마유즈미의 대답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전황이 좋지 않았다. 과거의 야가미가 하기와라 쪽으로 다시 총을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와라도 그것을 알아챈 듯이. 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마구 발버둥 쳤다.

 

기와라 우시오: 우와! 우와아악! 우와하하하! 아아악!

 

가: 바다뱀. 떼어내세요! 쏠 수가 없어요!

 

얽히고설키며. 변칙적으로 움직이며. 위치가 뒤바뀌는 바다뱀과 하기와라를 과거의 야가미는 섣불리 쏠 수 없었다. 바다뱀에게 잘못 맞출 리스크를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다뱀: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이 개자식이…!

 

기와라 우시오: 이제 네가 내 고기 방패야. 이 자식아! 절대 안 놔줘!

 

하기와라는 현명하게 그녀의 무릎 안쪽으로 자신의 무릎을 밀어붙여. 급소로 향하는 공격을 미리 막고 있었다. 바다뱀이 그를 떨쳐내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과거의 야가미는 하기와라를 정확히 겨눌 수가 없었다.

 

다뱀: 놔…! 놓으라고! 꺼져!

 

기와라 우시오: 해 보자 이거지?! 너 이 새끼 탑에서부터 꼴 보기 싫었어! 서민 경제 파괴자 같은 새끼!

 

과거의 야가미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소파 뒤에 몸을 숨겼다. 상대 또한 현명했다. 그 자리에서 바다뱀을 도왔다간 둘 다 내 사선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다뱀과 하기와라를 제외한 우리들은 교착 상태에 놓였다.

 

과거의 야가미는 소파 뒤에서 소리쳤다.

 

가: 당신… 당신들 대체 뭐예요.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죠? 바다뱀은 이제야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는데 대체 왜…!

 

가: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말해보세요!

 

가상현실이지만 약간의 도덕적 가책을 느꼈다. 마유즈미를 흘끗 돌아보자 그녀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그녀를 찌른 듯이. 몸을 한 번 움찔한 뒤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로 시라베: 내가 이 탑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다뱀: 총을 쐈으니 너흰 이제 다 틀렸어! 곧 이 건물의 모두가 너흴 잡으러 모일 거야. 순순히 항복해!

 

바다뱀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나 문을 연 것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과거의 야가미와 음정이 유사한. 그러나 더 굵직하고 딱딱한 목소리.

 

숨을 몰아쉬며 거구의 남자는 말했다.

 

가미 토가: 오랜만에 보는군요. 바다뱀.

 

야가미는 살짝 웃는 동시에 눈가를 찡그렸다.

 

다뱀: …토가?

 

가: 저게 무슨

 

바다뱀과 과거의 야가미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야가미는 바다뱀에게 한달음에 달려들어 그녀를 하기와라에게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그녀를 꽉 붙잡고 과거의 야가미 쪽으로 겨누었다. 또다시 인간 방패였다. 그러나 자신이 바다뱀을 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근거가 있는 인간 방패질이었다.

 

다뱀: 너 왜 토가 같은 모습을

 

바다뱀은 어깨를 야가미에게 붙들려 강제로 밀려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야가미는 방의 전경을 돌아보았다. 하기와라. 바다뱀. 과거의 야가미. 그리고 소파 순이었다. 나와 마유즈미가 소파 뒤에 숨어 있음을 눈치챈 듯이 야가미는 곧바로 과거의 자신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교착 상태를 이해한 것으로 보였다.

 

그걸 이해하자마자 야가미는 미도리카와를 과거의 자신에게 내던졌다. 과거의 야가미는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미도리카와를 미처 받지 못한 채. 그녀 밑으로 깔리고 말았다.

 

다뱀: 아윽!

 

가: 바다뱀. 위험해요!

 

과거의 야가미는 왜소한 편이었다. 자기와 키가 비슷한 바다뱀을 순식간에 떨쳐낼 수는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소파와 테이블을 밟아. 겹쳐져있는 바다뱀과 과거의 야가미에게 뛰어들었다.

 

야가미도 동시에 움직였다. 그는 바다뱀의 머리를 주먹으로 강타했고, 나는 과거의 야가미의 권총을 발로 찼다. 총은 그의 손 안에서 벗어나 바닥을 주르륵 미끄러졌다.

 

신음 한 번도 내지 못하고 바다뱀은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머리가 바닥에 세게 부딪혀 쾅하는 소리를 냈고. 상처가 난 이마에서는 한 줄기의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 이런 빌어먹을…!

 

무로 시라베: 움직이지 마라. 야가미 토가.

 

과거의 야가미에게 총을 겨누자 야가미는 날 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무로 시라베: 너는 움직여.

 

가미 토가: 그러겠습니다. 아마 미도리카와 씨는 당분간 의식을 잃은 그대로일 겁니다. 이제 그녀를 들어 문까지 옮기기만 하면 되겠군요.

 

유즈미 나데시코: 깨어났을 때 우리에게 협조적이진 않겠지만

 

마유즈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와라 우시오: 협조적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해? 일단 여기서 나가기나 하자. 하하! 벌써 존나 신이 난다!

 

가: 이런 게 재미있나요?! 사람을 해치려고 드는 것이. 사람을 죽이고 서로 싸우려 드는 것이. 정말 재밌나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과거의 야가미는 몸을 일으키며 하기와라에게 소리쳤다.

 

기와라 우시오: 재미는 없어. 이런 바른생활 사나이가 살인자가 된다는 게 웃긴 거지.

 

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세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감히 나와 바다뱀을…!

 

야가미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과거의 자신의 뺨을 때렸다. 찰싹은 커녕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과거의 야가미의 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기울어.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유즈미 나데시코: 에엑?!

 

기와라 우시오: 급발진 뭐야 시발?

 

가: 큭…!

 

과거의 야가미는 분개심으로 가득 찬 채로 야가미를 올려다보았다. 야가미는 자신의 과거를 보고 있는 것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취조실에서 그를 보았을 때도 이 정도의 적의는 느낀 적이 없었다.

 

평소의 점잖음은 온데간데없이. 살인자의 본능 같은 게 발현되기라도 한 건지 야가미는 과거의 자신에게 몇 번 더 주먹을 날렸다. 한 번 한 번의 주먹질이 묵직했다.

 

가미 토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요? 다 당신 때문입니다. 왜 충분히 강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녀를 지킬 만큼 강인하지 못했습니까. 왜 약해 빠져서 짐짝이 된 겁니까.

 

과거의 야가미는 그 공격을 막는 것마저 벅차 보였다. 그는 신음하며 고스란히 충격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며 야가미는 주먹에 더 세게 힘을 주었다.

 

가미 토가: 전부 당신의 약함이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바다뱀이 당신을 버린 겁니다. 총질 두어 번을 더 당했다간 죽을 게 명백했기에 버려진 거란 말입니다!

 

곧 과거의 야가미는 실핏줄이 터져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고, 입술 또한 찢어져 피를 흘리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표본으로는 보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의 표출이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그만 해! 이 사람은 과거의 너잖아. 왜 그러는 거야?!

 

야가미는 마유즈미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았다. 나는 그의 눈에서 혐오를 읽었다. 차마 눈 앞에서 봐주지 못하겠다는 듯한 혐오. 그런 것을 자신에게 느끼는 경우는 나를 포함해서도 드물었다.

 

야가미는 이를 악물고 있는 입의 힘을 풀고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손을 툭툭 터는 시늉을 했다.

 

가미 토가: 확실히 추태를 보였군요. 위기는 일단락되었으니 이제 빠져나가죠.

 

무로 시라베: 야가미. 건물 안 상황은?

 

가미 토가: 좋지 않아요. 사람은 대여섯 밖에 없지만 제가 어떻게든 속아 넘기려고 해도 속질 않더군요. 셋은 눕혀 뒀지만 나머지는 전부 무장을 마쳤을 것입니다.

 

무로 시라베: 내가 길을 열 테니 미도리카와를 데리고 당장 빠져나가자. 미도리카와는 네가 들어. 네 완력이 가장 강하니까.

 

가미 토가: 그러겠습니다.

 

바다뱀은 탑에서 보았던 미도리카와보다 키가 조금 작았다. 야가미는 통나무를 들듯이 그녀의 팔과 허리를 한 팔로 들어 올렸다. 다시 봐도 가공할 만한 힘이었다.

 

만약 이 자가 우릴 다시 배신한다면

 

기와라 우시오: 들어온 곳으로 그대로 나가면 돼?

 

가미 토가: 사실 비밀 통로가 하나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려면 많이 돌아가야 해요. 차라리 입구 쪽을 향하는 게

 

탕탕탕. 파바박. 두두두두.

 

야가미의 다음 말은 총을 난사하는 소리에 먹혀 버렸다. 가까웠다. 바로 밑 층에서 난사되고 있다고 느낄 만큼 가까웠다.

 

유즈미 나데시코: 으이익또 총이야!

 

무로 시라베: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다. 침입자들 말고도 또 다른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기와라 우시오: 달리 쏠 놈이 생겼다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나는 야가미를 돌아보았다.

 

가미 토가: …서둘러야겠어요. 총성은 입구 쪽에서 들립니다. 비밀 통로로 안내할 테니 따라오세요.

 

무로 시라베: 돈가방도 챙긴다. 화폐는 다음 시련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미 토가: 참 주문도 많으시군요.

 

야가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미도리카와를 들고 남은 손으로 돈가방을 들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이제 가자. 나이토랑 모리 둘 다 우리들을 걱정하고 있을 거야.

 

기와라 우시오: 그런데 걱정의 이유가 똑같지는 않을 것 같다? 암튼 뛰자!

 

가: 멈춰

 

달리려던 찰나 누군가가 내 다리를 잡았다. 과거의 야가미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바지의 섬유가 당겨지는 힘에서 그가 얼마나 세게 손을 쥐고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강했다.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나는 짐작했다.

 

가: 그러지 마… 멈추라고

 

유즈미 나데시코: 저기… 미안해요. 우리 멋대로 이런 일을 해서.

 

마유즈미는 언제나 그렇듯이 필요 이상의 동정을 주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 친구 깡 좀 보게. 둘이 옛날에는 진짜 친했나 봐. 히무로봇.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발을 들어 그의 손을 밟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기와라 우시오: 하하. 그럴 줄 알았어. 괴물 같은 새끼.

 

무로 시라베: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대로 문까지 달린다.

 

가: 멈춰… 그만둬…!

 

가미 토가: ….

 

유즈미 나데시코: 미안해요. 미안

 

야가미는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다 말고. 먼저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로 시라베: 가자. 빨리 이 곳을 떠나야 해.

 

그들이 떠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검은 갑주로 몸을 감싼 여성이 사무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여성은 타겟인 바다뱀도, 침입자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다뱀을 꼬드겼다던 바다뱀의 친구뿐이었다. 다치고, 피를 흘리고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비틀거릴지언정. 그는 사무실 안에 남아 있었다.

 

"다 죽었습니까?"

 

"응. 다 죽여 줬지. 저항 안 하면 안 쏜다고 했더니 계속 쏘잖아. 의리가 있는 것들은 같잖아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

 

헝클어진 청록색 머리의 왜소한 남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총소리가 들리길래 들어왔더니 다 내뺐네? 그 자식들은 어디로 갔어? 내 사냥감 누가 가져갔냐고. 말해. 그럼 넌 살려줄게. 난 비겁한 것들을 좋아하거든."

 

"그리고 당신이… 그 암살자군요. 전부 사실이었어. 손을 잡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뭐라는 거야. 너 나를 알아?"

토가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총을 쏘았다.

 

토가는 피를 흘리며 사무실 안에서 죽었다.

 

기와라 우시오: 비밀통로라는 게 맨홀이야?

 

하기와라는 어이가 없다는 음성을 감추지 못했다. 야가미가 인도한 방바닥의 비밀 경첩을 열자 그 안에는 축축하고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몇 년은 방치된 듯이 먼지가 휘날렸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몇 시간을 지낸다면 호흡기 질환이 생길 정도로 지저분할지라도 방법이 없었다.

 

야가미는 거미줄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몸을 숙인 채 달렸다. 하기와라는 달리던 도중 커다란 쥐가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가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기와라 우시오: 이런 썅.

 

유즈미 나데시코: 콜록. 콜록! 여기 진짜 지독하다.

 

기와라 우시오: 이런 좆같은 통로를 누가 만든 거야?

 

가미 토가: 저희가 건물을 샀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원래 수도로 쓰일 예정이었는데 만들어지다 말았다는군요. 아무튼 어찌 돼도 좋죠.

 

우리는 맨홀 뚜껑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잠시 돈 가방을 내려놓은 야가미는 맨홀 뚜껑을 옆으로 치웠다. 위에서 햇살이 밀려들어왔다.

 

유즈미 나데시코: 끙차!

 

기와라 우시오: 읏차!

 

가미 토가: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야가미는 바다뱀을 업고도 용케 맨홀 위로 몸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온 뒤 우리는 맨홀 뚜껑을 덮고 다시 달렸다. 마유즈미와 하기와라는 숨이 차오리기 시작한 듯 숨을 헉헉 몰아쉬었지만, 휴식을 할 수는 없었다.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뱀의 조직원들은 왜 그 소동에도 사무실에 오지 않았지? 사무실에서 벌어진 총격전보다 중요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심지어는 야가미가 조직원들을 기절시키기까지 했는데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정도로 다급해야 했던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야가미의 과거에 그 정도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인물

 

폐공장이 늘어선 지대에 진입했을 때. 나는 미도리카와와 비슷한 살기의 파장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불길한 정적뿐.

 

나는 서서히 발을 느리게 하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유즈미가 나를 돌아보고 똑같이 속도를 낮추다 멈추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빨리 와! 뭐 하는 거야!

 

나는 총띠에서 총을 뽑았다.

 

무로 시라베: 다들 섣불리 움직이지 마.

 

가미 토가: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기와라 우시오: 뭐야. 갑자기 뒤통수라도 치는 건가 봐!

 

무로 시라베: 큰 소리 내지 말고. 내 쪽으로 가까이 와. 발소리 내지 말고. 귀 기울여.

 

마유즈미는 입술을 샐쭉 내밀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내 쪽으로 살살 움직였다. 하기와라는 혀까지 샐쭉 내밀었다.

 

야가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그는 

 

가미 토가: …온 겁니까?

 

무로 시라베: 내 말을 듣지 말고 소리를 들어.

 

타다다다닥.

 

어딘가를 달리는 듯한 소리지만, 잘못 들은 것 같은 인식을 주는 소리였다. 무서울 정도로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것이 우리에게 다다랐다고 생각한 순간. 햇빛이 무언가의 그림자로 가려졌다.

 

그 뒤를 눈으로 좇았을 때 그림자의 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 발소리가 잘못 들은 것 같은 인식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시야 위에서 들리는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건물 위에서.

 

사실 못 본 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좁은 골목길이라지만 그 건물 사이를 넘나들고 뛰어넘는 그림자. 그 실루엣에서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녀의 검보랏빛 머리카락을.

 

무로 시라베: 카이다 쿠로하다.

 

 

 

 

 

 

원래 이번 편에서는 캐롤이 더 나와야 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짤랐음 머리카락 가지고 뭘 하는 거야? 싶으시면 다음 편을 기다려주세요 중간고사 이후 존나게 긴 파멸적인 텀... 이게 좆크타워다!

 

수위 고민했다는 장면은 다음 편에 나옴 근데 기대하실 만큼 농밀하진 않을 테니 기대 마세요 기대 멈춰!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린이가 아니겠지만 공휴일에 잠깐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된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즐거운 공휴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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