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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9

by 도타싫어! 2021. 5. 15.

 

나즈키 시노부:

 

나즈키 시노부: 

 

나즈키 시노부: 

 

나즈키 시노부: 버리고 도망치라고? 무슨 뜻이야?

 

나즈키 시노부: 응. 들려. 고민이 많이 되나 봐?

 

나즈키 시노부: 나도 몰라. 그냥 옛날부터 들리더라고. 보살 언니 말로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더라. 그냥 천기가 흘러들어온다는 느낌. 응. 의미 부여하지 마. 그냥 난 이런 체질 사람인 거야. 그게 다야.

 

나즈키 시노부: 미안하지만 나도 지금은 그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전해줄 방법도 없어. 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어. 결국 미래는 안 바뀌거든

 

나즈키 시노부: 우리 모두 고충이 많지. 안 그래?

 

 

 

 

 

 

 

이토 유즈루: 읏…차!

 

나이토 유즈루와 모리 레이코는 쓰러진 사람들을 문과 멀리 떨어트려 놓았다. 해안의 가재 괴물들은 몇 명이 쓰러지자 서서히 바다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대머리 독수리가 시체를 치운다면, 해변에서 시체를 치우는 것은 가재 괴물 같았다.

 

두 명이 깨어있다고 해도 언제 가재 괴물들이 난폭하게 돌변할지는 몰랐기에. 그들은 잠에 빠진 모두를 바다에서 멀어지게 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리어카를 보내주었기에. 두 명인 데도 그들은 수월하게 모두를 옮길 수 있었다.

 

리 레이코: 후우 체력을 추슬러라. 언제 내통자가 들이닥칠지 모른다.

 

이토 유즈루: 식량을 많이도 보내 줬네. 굶어 죽을 걱정은 아예 없을 것 같아.

 

리 레이코: 그보다 이제 단 둘이 남았으니 회포를 마저 풀도록 할까?

 

이토 유즈루: 그래 좋아! 너 도대체 왜 그러냐? 공리를 위해서면 내 기분 정도야 잡쳐도 상관이 없다는 거야? 내 수치심은!

 

리 레이코: 난 입장을 계속 확실히 했는데 너는 받아들이질 못하는군. 그렇다.

 

리 레이코: 그리고 왜 수치심을 느끼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군.

 

이토 유즈루: 아니 망할 알몸을 보여줬는데 너 같으면 안 부끄럽겠냐? 원래 다 벗고 자는데 요즘 못 그러니까 안 그래도 짜증 나 미쳐. 덥다고!

 

리 레이코: 그런 문제라면 내가 공리를 훼손한 게 명백하다. 미안하게 되었다.

 

이토 유즈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평범한 삶을 좀 살아 봐.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하면 넌 공리를 위해 행동할 수도 없잖아.

 

이토 유즈루: 지금 우리와 좀 잘해보면 안 돼? 보는 입장에서 얼마나 위태위태한지 아냐고. 누구 인질로 삼은 다음 방에 불 지르고, 카이다한테 맞고. 그러다 진짜 위험해진단 말이야.

 

리 레이코: 나는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토 유즈루: 아니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

 

리 레이코: 듣고 싶나? 그렇다면 알려 주겠다.

 

모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 레이코: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건강하지 않았다. 연약했지.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 연약하지만 나는 특히 그랬다. 곧잘 병마에 시달리고 뼈는 약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밖은 거의 나가지도 못하고 과보호되며, 가정부와 나의 모친이 교육을 전담해 주었지.

 

이토 유즈루: 뭐? 가정부? 너 부잣집 딸이야? 빈민가 어르신들이 너 돌봐주셨다며.

 

리 레이코: 들어라. 아무튼 그 교육은 특권과 힘에 대해 강조했다. 너는 큰 일을 하게 될 사람이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교육했다. 부자와 빈자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빈자를 경멸했다. 모친은 특히 그랬다. 딸에게 약한 몸을 물려준 그녀는 대신 강자의 사고방식을 심어 주려고 했지.

 

리 레이코: 여러 사단으로 나의 모친이 죽고 부친은 경황을 잡지 못하는 사이. 내가 타고 있던 차가 한 괴한들에게서 습격을 당했다.

 

이토 유즈루: 잠깐. 갑자기 그렇게 넘어간다고…? 어머니께서

 

리 레이코: 어떻게 된 일인지도 듣고 싶나?

 

이토 유즈루: …아니. 말해주지 마. 괴한들 얘기나 계속해줘.

 

리 레이코: 경찰 조사로 인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상당히 조적적인 움직임이었다. 열댓 명 정도가 도로에 뾰족한 사슬을 던져 타이어에 펑크를 냈고, 차의 유리창을 깨 나를 납치하려 했다.

 

이토 유즈루: 못된 새끼들 같으니

 

리 레이코: 운전기사는 날 지킬 수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도망쳤지만 곧 붙잡혔지. 그때의 나이가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으니 멀리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 레이코: 나는 곧 근처의 빈민가로 납치되었다. 범인들의 주거지였다. 그들은 성공에 축하하며 몸값 협상을 할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지. 그런데 그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빈민가의 다른 주민들이, 납치된 나를 구출하기 위해 납치범들과 싸움을 벌인 것이지. 즉 자기 이웃들과 말이다.

 

이토 유즈루: 와

 

리 레이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그 빈민가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특수한 상황에 있었다. 몇십 년 전 법에 허점이 있었을 때. 한 철도건설 회사에게서 사기에 가까운 계약을 받고 가지고 있던 땅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회사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달래기 위해 한 인적 드문 땅에 허름한 집을 세웠고, 그들에게 그곳에서 살 권리를 부여했지.

 

리 레이코: 그리고 나는 그 회장의 딸. 후계자였다.

 

이토 유즈루: …뭐?!

 

리 레이코: 그들의 도움으로 난 구조될 수 있었다. 나는 가난이 사람을 망친다고 교육받았다. 돈을 가진 사람은 잘 교육받았기에 선하고 도덕적이지만,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열등감에 빠져 있으며 절박하기에 악한 짓을 자행하게 된다고 배웠지. 어느 정도는 맞았다. 그날 나를 노린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으니.

 

리 레이코: 하지만 그게 과연 그들의 잘못인가? 일차적인 원인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땅을 빼앗고 몇십 년 동안 번창한 건설 회사에게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의식조차 없었지. 정당한 재산이 있다면 정당하지 않은 재산도 있는 법이지만 나의 교육자들은 재산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리 레이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자들이 악하다면. 그 빈민가의 사람들은 왜 나를 해치지 않은 것이지? 원수의 자식이었어. 후에 저택으로 돌아가서도 상처 하나 없는 게 기적이라고 다들 떠들어댔다. 그런데도 그들은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신에게 고마워했다.

 

리 레이코: 모든 자본가를 혐오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그곳을 보았다면 외면할 수 없었다. 우리가 누구의 고혈과 기름을 마시는지 안 이상. 내가 몸담은 곳이 누구를 쥐와 벌레가 들끓는 판잣집으로 내몰았는지를 안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세상 그 어느 누가 그곳에서 눈을 돌리라고 해도.

 

리 레이코: 결국 나는 빈민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들과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먹으며 살았다. 내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난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발을 뻗고 자지 못했고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못했다.

 

리 레이코: 그러나 빈민가에서도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위선 부리지 말라고 꺼지라는 말을 들었다. 보복을 두려워해 내게 해코지를 하는 자는 없었지만 그들은 나를 경멸했다. 나를 남처럼 보겠다고 당부했던 부친은 빈민가에 지원을 해주더군. 언제부터 내게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리 레이코: 의료진들은 호들갑을 떨어대었지. 천식. 결핵. 감기. 장티푸스. 온갖 질병이 내게 엄습할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빈민가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한 병의 잔병치레조차 겪지 않았다. 여전히 난 나약하지만, 이것도 예전보다는 강인해진 결과물이다.

 

리 레이코: 자신을 아끼는 것은 인정한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렇지만 조금의 자원으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무궁무진한데도, 아무도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감히 불쾌한 진실을 거부하고 없는 체 하겠다면. 나는 기꺼이 등에가 되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리라고 맹세했다.

 

리 레이코: 그게 내가 공리주의자가 된 이유 중 하나다.

 

이토 유즈루: 뭐야. 또 있어?!

 

리 레이코: 다른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내 얘기는 끝났다. 이제 논해야 할 것은 내가 본 환상에 대해서다. 잘 들어라.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는 이 곳이 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기억하는가?

 

이토 유즈루: 맞아. 그랬지. 저 바다도 가상현실이라니 사실 좀 안 믿겨.

 

이토 유즈루: 이 정도로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단 말이야. 야가미랑 싸웠을 때 내 몸에서 위화감을 느낀 적도 없어.

 

리 레이코: 일전에 첩자를 처단하기 위해 장미 꽃밭을 수색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첩자에 의한 측두부의 충격을 받았지.

 

이토 유즈루: 아… 그때?

 

리 레이코: 충격을 받고 쓰러지는 순간. 나는 이런 대화를 떠올렸다.

 

"세상은 변질되었다. 동료들은 우릴 떠났다. 그럼에도 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외면할 수 없다. 너도 그렇지 않나. 승부사."

 

이토 유즈루: 승부사? 네가 날 부르는 말이잖아.

 

리 레이코: 내 목소리였다. 내가 널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리 레이코: 그래서 내게 물은 바 있었다. 우리가 구면이느냐고. 만약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 만난 뒤이며, 이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다면 어떤가?

 

이토 유즈루: …그건 말도 안 돼. 내가 너랑 아는 사이였다고? 너같은 또라이랑?

 

리 레이코: 나 또한 동감이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함께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 칸트주의에 머무르는 자와의 인연은 사양이다.

 

이토 유즈루: 난 칸트고 뭐고 그 사람 모른다니까. 이름은 들어봤는데 관심도 없어!

 

리 레이코: 대체 어쩌다가 그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이토 유즈루: 집어치워. 난 너한테 얘기 안 해.

 

리 레이코: 얘기하는 것이 두려운가?

 

리 레이코: 승부사. 네가 대적해야 할 가장 강한 적은 첩자가 아니다. 심지어는 책조차 아니다. 네가 누구보다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은 너의 두려움이다. 네가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지.

 

리 레이코: 너는 스스로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한다.

 

이토 유즈루: 너는 네 그림자에 먹힌 것 같은데. 네가 네 그림자 그 자체로 변한 것 같아.

 

리 레이코: 너 또한 그러기를 바라지.

 

 

 

 

 

 

 

모노로그: 지금이 적기 같지 않나?

 

이다 쿠로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두 명이 저기서 떡하니 지키고 있는데. 시련 안으로 들어가라고?

 

이다 쿠로하: 들어가면 내 육체는? 나이토는 몰라도 모리 그 년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들어가란 거냐고!

 

모노로그: 그들이 널 죽일 순 없다. 이렇다 한 흉기도 없으니 네게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도 없지. 포박마저 네 완력이라면 풀 수 있다.

 

모노로그: 그런데도 두렵나?

 

이다 쿠로하: 굳이 문 손잡이를 잡고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특별한 방법이 있다며! 문 손잡이를 만지지 않고도 시련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나한테 그랬으면서!

 

모노로그: 한 번 밖에 안 된다. 그 한 번의 기회로 과거의 미도리카와가 합류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가정하지. 그러면 나머지 두 번은 어떻게 할 텐가? 미도리카와 두 명은 살려주는 건가?

 

이다 쿠로하: 내가 지금 들어가서 다 뇌사시키면 될 거 아니야. 그럼 나머지 둘은 시련에 못 참가해. 하나가 참가하면 내가 바로 습격해서 나머지를 잡을 테니까!

 

모노로그: 아니. 그럴 각오로 달려들었다간 네가 뇌사한다. 시련 안에 들어간 이들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너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라면. 당장 집어치워.

 

모노로그: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인하다. 빛을 가진 자들을 필사의 상황에 몰아넣고 나서도 네가 언제나 우위를 점할 순 없다.

 

이다 쿠로하: 빛?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모노로그: 이번에 진입하지 않겠다면. 그렇게 해라. 상황을 보니 네가 꼭 투입될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군. 하지만 나머지 두 번의 시련에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다.

 

모노로그: 너도 알고 있겠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는 네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네가 원하는 정보는 더더욱 지급할 수 없고.

 

이다 쿠로하: ….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과거의 카이다는 가벼워 보이면서도 견고한 갑옷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미도리카와의 전용실에서 그녀가 착용했던 것과 유사하게 칼날 같은 돌기가 박혀 있었다.

 

이론상 그녀의 약점은 알고 있었다. 관절 부위. 그러나 그녀는 몸을 살짝 틀기만 해도 갑옷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었으며, 관절을 맞춘다고 해도 치명적인 타격은 입힐 수 없었다. 백단향 총을 가지고 있었다면 얘기는 달랐겠지만탑에서와 달리 그녀는 나를 죽일 수 있고 나는 그녀를 죽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권총 하나만을 소지한 것은 오판이었다. 지붕 위를 뛰어넘는 카이다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맹금류가 토끼 떼를 쫓는 듯한 움직임을 보며 나는 그것을 시선으로 뒤쫓을 수 있을 뿐이었다.

 

무로 시라베: 포위망을 조이고 있어.

 

기와라 우시오: 우하하하하! 우린 이제 다 죽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조용히 해!

 

하기와라가 자포자기한 듯 조소를 내뱉었다. 성격이 뒤틀린 그녀라면 야가미나 나보다도 약한 편인 마유즈미와 하기와라를 먼저 노릴 게 분명했다. 나는 야가미에게 말했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 두 명을 보호해라.

 

가미 토가: 말이 되는 명령을 하세요. 저도 칼을 맞으면 다칩니다. 한쪽 팔로는 바다뱀을 들어야 하고요!

 

역시 죽일 각오로 우리를 몰아세우는 그녀와 죽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는 차원이 달랐다.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내 곁의 모든 이들은 죽어. 해변에 있는 육체가 전부 뇌사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탄환이 충분하지 않았다. 해변에서도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총이다. 다음 시련에도, 탑에 돌아가더라도 총은 필요했다. 환영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전부 사용할 수는 없었다.

 

목숨 값을 아꼈다간 살아남을 수 없지만

 

기와라 우시오: 그럼 미도리카와를 버리자.

 

하기와라가 차갑게 내뱉었다. 야가미는 카이다의 움직임을 쫓다가 하기와라의 쪽으로 쓱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잘못 들었냐고 묻는 듯했다.

 

가미 토가: 진심입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그건 안 돼!

 

기와라 우시오: 그래. 나 혼자만 나쁜 놈이다 이거지? 그럼 마음껏 욕해. 일단 여기서 살아나간 다음에.

 

가미 토가: 저희는 미도리카와 씨를 되살리기 위해 시련에 참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를 버리자고요? 그럼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일들은 다 뭐가 됩니까?

 

무로 시라베: 단검!

 

마유즈미의 팔을 꽉 잡고 끌어당기자마자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단검이 파바박 박혔다. 투척 무기. 총으로 궤도를 꺾을 수는 있어도 이런 식의 소모전은 좋지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으아아! 고… 고마워!

 

무로 시라베: 이 자리에서는 이길 수 없다. 선택을 해야 한다.

 

가미 토가: 지금까지 일들이 전부 헛수고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기와라 우시오: 그래. 헛수고가 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미도리카와를 안 버리잖아? 우린 다 개죽음이 되는 거야. 시련이 세 개 남았어. 두 번의 기회가 더 있는데 첫 번째에 올인하다가 다 뇌사할 순 없다고.

 

기와라 우시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이야.

 

가미 토가: 가치가 없다고요?

 

기와라 우시오: 그럼 당연하지. 저 자식이 우리랑 무슨 연관이 있어? 카이다는 자기 조직에게서 명령을 받았잖아. 그러니까 카이다가 미도리카와를 따라오는 거라고. 우린 쫓아올 필요도 없어. 

 

가미 토가: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건 안 됩니다. 미도리카와 씨를 해변으로 데려오기 위해 당신도 수모를 겪은 게 아닙니까?

 

기와라 우시오: 지랄 마. 난 살기 위해 수모를 겪은 거야. 살아남는 데에 유용할 테니 데려오는 거에 찬성한 거라고.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와라 우시오: 걔한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없다고! 어떻게든 데려온다고 해도 복수를 뭣보다 중요시하는 게 미도리카와야. 우리 사정을 들을 것 같아?

 

무로 시라베: 바다뱀은 자신과 탑의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다른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우리를 대상으로 복수를 꿈꾸겠지.

 

가미 토가: 제가 토가인 이상. 저는 그녀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저희 편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야가미는 강경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기와라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머리 옆에 댄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기와라 우시오: 너 진짜 돌았냐? 걔를 죽인 게 너잖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죽일 때는 언제고 이젠 네 멋대로 살리려 들어?!

 

가미 토가: 히무로 씨.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나는 야가미의 표정에서 희미한 절박감을 보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그래.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을까?

 

무로 시라베: 총알은 낭비할 수 없다.

 

가미 토가: 재보충하면 됩니다. 이 근처에는 총포상이 많습니다.

 

무로 시라베: 지금 당장 보급할 수 없다면 헛일이다. 권총 한 자루로 맞설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바다뱀은 포기한다.

 

나는 희미한 발소리에서 단도가 날아올 방향을 재었다. 마유즈미에게 날아온 것 이후로 단도는 날아오지 않았다. 섣불리 자원을 쓰지 않고 탐색전을 시작한 듯했다.

 

그 틈이 탈출의 기회였다. 야가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여전히 바다뱀을 한 팔에 끼고 놓지 않았다.

 

가미 토가: 그러지 마세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가 두려워하는 총. 유용하지만 악독한 일이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 바다뱀을 내려놔라. 다음 시련에 집중한다. 총과 재화를 확보한 것으로 충분하다.

 

가미 토가: 그 시련에서도 실패하면. 또 다음 시련이고. 또 다음 시련에서 실패하면. 뭐가 남죠?

 

무로 시라베: 지금 가정해봤자 달라지는 일은 없다. 바다뱀을 내려놔.

 

가미 토가: 마유즈미 씨. 그녀를 구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가미는 이제 마유즈미에게도 물었다. 가면 갈수록 그는 바닥을 드러냈다.

 

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금 카이다가

 

가미 토가: 저희는 카이다 씨에게 맞설 수 있습니다. 힘을 빌려 주세요.

 

무로 시라베: 야가미 토가. 너는 요구할 입장에 있지 않다. 마음이 급해 보이지만 지금은 그녀를 내려놔라. 당장!

 

나는 하기와라의 팔을 붙잡고 그를 확 끌어당겼다. 그가 있던 자리에도 단도가 꽂혔다. 간발의 차였다. 그 사실을 하기와라도 눈치챈 듯. 화들짝 놀라던 하기와라는 야가미에게 악이 받혀 소리를 질렀다.

 

기와라 우시오: 야. 작작 해 진짜. 넌 이제 와서 걔 살려주려 노력할 자격 없어. 알아들어?!

 

가미 토가: 이해했습니다.

 

다행히도 야가미는 한 손에 안고 있던 바다뱀을 땅에 내려놓았다.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돈가방도 내팽개쳤다. 그 뒤에는 그녀의 허벅지를 왼팔로 껴안고 어깨는 오른팔로 껴안았다. 

 

유감스럽게도 야가미는 바다뱀을 다시 들어 올렸다.

 

기와라 우시오: 이건 또 뭐 하자는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 너 설마…

 

가미 토가: 암살자가 노리는 것은 바다뱀입니다. 과거의 저 또한 해치려 들지만 그는 지금쯤 이미 죽었겠죠. 도망칠 수 없었을 테니. 즉 여러분 모두 암살자와는 연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가미 토가: 이젠 타겟을 쫓을 뿐이죠.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야가미는 팔에 힘을 꽉 주고 부두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여겼으나 그보다 의외인 일이 벌어졌다.

 

유즈미 나데시코: 앗…!

 

그가 달리는 것을 보자 카이다의 발소리 또한 야가미를 쫓아갔다.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 안으로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았다.

 

기와라 우시오: …진짜 뭐 하는 거냐 저거.

 

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무로 시라베: 야가미와 미도리카와는 닮았어. 둘 다 복수에 목을 메지. 그러나 그는 미도리카와에게 복수를 끝냈고

 

무로 시라베: 그러니 이제 과거의 그녀와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걸지도 몰라. 과거의 향수가 그를 자극했을 수도 있어.

 

나는 결투에서 그가 보였던 감정의 폭주를 떠올렸다. 평소의 야가미라면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침착할 법도 했지만. 그조차도 결투에서는 이성을 잃고 내게 갈 곳 잃은 총격을 퍼부었다. 속이 빈 절규를.

 

호르몬은 강력한 물질이었다. 사람을 금수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그와 같은 일이 야가미에게도 일어난 모양이었다.

 

기와라 우시오: 그것 참… 개조또 얼탱이 터지는 일이 다 있네.

 

하기와라는 툴툴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돈가방을 주웠다.

 

무로 시라베: 일단 너희 둘은 문을 통해 해변으로 나가. 다른 길로 돌아가면 카이다에게 발각되지 않을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너는 어쩌게?

 

나는 권총을 총집에 넣었다.

 

무로 시라베: 야가미를 데리러 갈 방법을 찾아야지.

 

유즈미 나데시코: 우리도 같이 갈게!

 

무로 시라베: 그래 주면 고맙고.

 

기와라 우시오: 왜 멋대로 이야기 진행시켜? 난 가기 싫은데.

 

유즈미 나데시코: 좀! 잔말 말고 따라와 줘!

 

기와라 우시오: 말해두겠는데. 난 카이다 만나자마자 도망칠 거야.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강인한 몸이라고 해도 살과 뼈에 불과해. 날붙이 앞에선 스치고 베였다. 고통은 있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야가미는 자신이 더한 것도 버텨냈음을 되새기며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찌르지 않고 베거나 긁기만 하는 것은 고양이가 쥐를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과 닮았다. 이미 잡아 놓은 먹잇감임을 알기에 굳이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고 가지고 노는 것은 상위 포식자의 특권이었다.

 

그것은 야가미의 뒤에서 그를 바짝 쫓았고, 그를 따라잡았으며, 그와 나란히 달렸고, 그의 위에 있기도 했다. 그를 담고 있는 어둠은 사방에서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것은 희생 없이 심연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행위의 대가 같았다. 어쩌면 세상은 가시덩굴의 화원과도 같아서. 어딘가에서 빠져나오려 발걸음을 재촉할수록 온몸이 긁히게 되는지도 몰랐다.

 

발은 본래 섣불리 딛는 게 아니었다. 용암에 발을 담그면 발이 사라진다. 얼음에 발을 담그면 잘라야 할 수도 있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빠져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인가? 아무리 선의로 포장되었다고 한들 개인적 감정. 결국 그녀와 연결된 모든 업보와 대가를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한가?

 

도망칠 수는 있다. 그러나 숨을 수는 없다. 그 점에 있어 업보는 카이다와 닮아 있다고 야가미는 느꼈다.

 

어두운 골목에서 나오자 야가미는 자신의 몸 곳곳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상처 하나하나가 조금만 깊었다면 출혈 탓에 어지러움을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 부두를 앞에 두고 야가미는 바다를 마주했다. 옥색 물결이 노파의 주름처럼 출렁이며 빛을 반사했다.

 

카이다는 어두운 골목에서 서서히 태양 밑의 영역으로 발을 디뎠다. 그녀는 말했다.

 

"막다른 길이다. 이제 그 새끼 내놔."

 

대답 없음.

 

"어떤 조직에서 데려가려는지는 몰라도 돼. 그 년만 내놓으면 무사히 보내주지. 안 내놓겠다면"

 

가미 토가: 다 죽었습니까?

 

"누구. 네 엄마?"

 

가미 토가: 건물 안의 모두들 말입니다.

 

"아까 그놈이랑 비슷한 얘기를 하네. 많이 닮기도 했어 둘이 형제야? 미안하지만 네 동생은 내가 죽였다. 죽기 직전까지 개새끼처럼 칭얼대고 신음하면서 죽었어."

 

카이다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죽어가는 개와 소름 끼치도록 비슷한 음성을 냈다.

 

"끼잉… 끄응… 우우… 이렇게 말이야."

 

가미 토가: 그때와 지금의 저는 다를 겁니다.

 

"똑같을 거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안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자식 안 내놓으면 너 바닷속에 수장시킬 거야. 아무도 네 시체를 못 찾을 거라고."

 

가미 토가: 협상이나 대화의 재미있는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쓰는 표현과 언어에 사용자의 내면적 유약함과 공포가 투영된다는 것입니다.

 

"뭐라는 거야?"

 

바다 속에 수장시키겠다.

 

익사시키겠다.

 

기와라 우시오: 카이다는 수영을 못 해. 근섬유가 다른 사람의 몇 배라서 물보다 비중이 높대. 그래서 바다에 빠뜨려 놓으면 어쩔 수도 없이 가라앉는댔어.

 

충분히 숨을 고른 야가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소리 직후에 수면으로 얼굴을 든 그는 바다뱀의 몸이 위를 보게 하고 그녀를 팔로 껴안은 뒤. 한쪽 팔과 두 다리로 헤엄을 쳤다.

 

수영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았기에 카이다는 심히 당황했다. 근처에 정박되어있는 배로 그를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절박함 때문인지 야가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헤엄쳤다. 겉으로는 그랬다.

 

야가미의 육체는 잘 단련되어 있었지만, 옷이 물을 먹고 한 사람을 팔에 끼자니 그의 체력도 점점 떨어져 갔다. 전력질주를 하고 난 참이었고 몸에 상처도 있는 데다가. 그는 구조 수영을 배운 적도 없었다. 반복적인 움직임에 놀랄 만큼 빨리 체력이 소진되었지만 야가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그가 개미처럼 열심히 나아가는 동안 카이다는 후웅 하는 바람소리를 만들어내며 부두에서 멀어졌다. 그녀는 어두운 골목 안으로 충분히 달린 뒤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부두 쪽.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변한 야가미를 포착하고 카이다는 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야가미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발걸음 소리가 빠르고 크게 가까워져 왔다.

 

타닷!

 

카이다는 부두의 끝까지 달려와 높게 뛰어올랐다. 낮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밤의 바다였다면 카이다는 어디로 도움닫기를 하고 어디로 뛰어야 할지 몰라. 그들을 놓쳤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녀가 모르는 한 때에. 카이다는 두 사람을 놓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카이다는 위에서 야가미와 바다뱀을 덮쳤다. 그녀가 수면에 닿는 순간 대포알이 떨어진 듯 바닷물이 사방으로 철썩 퍼져나갔다.

 

그가 그녀와 육탄전을 할 필요도 없이. 카이다는 물에 떨어지자마자 훅 가라앉았다. 그러나 야가미는 바다뱀이 괜찮은지. 카이다는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새도 없이 자신의 팔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그가 잡고 있는 바다뱀이 당겨지고 있었다.

 

카이다는 수면에 닿자마자 바다뱀의 다리를 붙잡은 것이었다. 그녀의 무게에 딸려 바다뱀이 가라앉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야가미도 수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끝없이 가라앉을 카이다가 바다뱀을 놓아주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그녀는 몸의 비중만큼이나 큰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야가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바다뱀을 끌어올렸음에도, 세 명은 함께 서서히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

 

힘을 쓰던 도중 야가미는 호흡을 전부 소모했다. 공기의 희박함이 느껴지자 야가미는 이를 악물었다. 눈이 따가운 것을 참으며 카이다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카이다의 입모양을 읽었다. 저런 짓을 할 정도로 여유롭단 건가?

 

"놔."

 

야가미는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야가미를 배신했다. 한 번 힘이 풀리자 카이다와 바다뱀은 무서운 속도로 가라앉았다. 야가미는 때가 늦었음을 알고 죽을힘을 다해 수면 위로 헤엄친 뒤 먹은 물을 토해냈다.

 

가미 토가: 콜록. 우우욱. 콜록! 크억! 컥… 헉

 

그리고는 숨도 다 추스르지 않고 다시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수면 위에서 다시 돌아오는 야가미를 보며 카이다는 남몰래 그를 비웃었다. 마치 납으로 된 족쇄라도 채워진 듯이. 야가미는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공기방울을 보자마자 야가미는 다시금 온 힘을 다했다. 다리는 혹사에 지쳐 이미 뻣뻣하게 아파왔고 힘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그는 계속 헤엄쳤다.

 

그녀에겐 호흡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바다뱀이 익사해버린다. 야가미는 바다뱀을 붙잡자마자 그녀의 입 안에 자신의 모든 숨을 불어넣었다. 차가운 입술이 맞닿았다.

 

그러나 그 공기방울들은 결국. 그녀의 입에서 빠져나와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야가미는 깨달았다. 아까보다도 가라앉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바다뱀의 폐에 물이 차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카이다는 끝까지 미소를 버리지 않으며 계속 가라앉았다. 야가미는 바다뱀이 이미 죽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바다뱀만큼 기묘한 파충류는 없다.

 

바다에 살지만 부레가 없다. 해수를 통한 수분 공급도 불가능하다.

 

원래 육지에 살던 족속이 바다로 떠밀려 난 듯이. 막상 바다의 깊은 곳에 잠겨버리면 바다뱀은 익사한다.

 

그러나 이미 바다에서 살도록 진화되었기에. 바다뱀은 육지에서도 살 수 없다. 배에 마찰력을 만들 만한 충분한 비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바다뱀을 육지로 끌어내려했지만. 바다뱀을 위한 환경은 정작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람은 그저 존재하지도 않는 낙원을 꿈꾸었다.

 

실낙원.

 

가미 토가: 콜록! 크흠! 크억허억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온 야가미는 아까 미처 고르지 못한 숨을 다시 고르려 애썼다. 물에 계속 떠 있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동안 숨을 고르는 것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야가미는 입 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뱉어내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가미 토가: 허억… 허억… 하아

 

야가미의 얼굴은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소금기가 가득한 자신의 손으로 얼굴에 묻은 소금물을 걷어냈다. 공기가 희박한 상황에서 벗어났으나 그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 뒤에는 카이다의 미소. 거들먹거리는 미소. 자기가 이겼음을 확실시하는 미소가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미소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바다뱀과 함께했을 시절. 그가 기절당하기 직전 본 미소와 똑같았다. 당연했다. 동일인물이었으니.

 

그리고 똑같은 상황이었으니.

 

"똑같을 거다."

 

야가미는 얼굴을 구긴 채 형체 없는 수면을 두 팔로 내리쳤다. 바닷물이 튀어올라 그의 몸에 끼얹어졌다. 바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 입은 자신을 메꾸고 현상은 유지되었다. 그가 아무리 날뛰어봤자 바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정물은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법이었다.

 

무언가를 뱉어내지도 위로나 비난의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잔혹했지만 잔혹하기 위해 설계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뼈를 깎는 노력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만큼 외부 세계가 거칠고 복잡했을 뿐이었다.

 

언제 누가 그녀를 노리는 지도 알았다. 몸은 가능한 최대치로 키웠고 지금도 키우려 하고 있다. 이번에는 혼자도 아니었다. 그것의 약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가미 토가: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거지…?

 

마구 분비되던 아드레날린이 떨어지자 뒤늦게 야가미는 쓰라린 고통을 느꼈다. 온몸에 난 베인 상처에 소금물이 들어가 삼투압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저릿저릿한 따가움이 온몸을 찔러왔음에도 야가미의 분은 삭혀지지 않았다.

 

가미 토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야가미는 멍하니 손으로 바다를 붙잡아 보려고 했다. 바닷물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따라갈 순 있어도 붙잡을 순 없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 때문도 있지만 체온이 떨어진 영향도 있었다. 체력이 바닥났는데 차가워진 옷을 전신에 걸치고 있자니 체온이 유지될 리가 없었다. 한 번 파도가 일 때마다 바닷물을 먹어 천근이 된 옷이 그를 밑으로 내끌었다.

 

초라한 몰골의 야가미의 옆으로. 작은 배가 엔진을 통통거리며 정박했다.

 

작은 배 위에선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와라 우시오: 오우야. 정장 입은 떡대 근육남이 흠뻑 젖어

 

유즈미 나데시코: 우웩.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하기와라! 빨리 건져 주기나 하자.

 

야가미가 고개를 들어 마침내 우리 쪽을 보았다. 나는 배의 뒤편에서 밧줄이 연결된 튜브를 꺼내 야가미에게 던졌다. 그가 튜브를 잡자 배의 모두는 밧줄을 당겨 그를 물에서 끌어냈다.

 

가미 토가: 으윽

 

배 위에 올라서자마자 야가미는 갑판 위에 몸을 뉘었다. 처참하게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의 몸 곳곳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체온이 낮아졌는지 얼굴은 창백했다. 아마 그대로 물에 몇 분만 더 있었어도 체력이 떨어지고 저체온증으로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죽게 두고 싶다는 잔혹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내겐 흑막의 거래에 응해 살인을 저지른 자를 이해할 만한 도량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둘 순 없었다. 살인자라도 노동을 할 수 있듯이 그에겐 아직 할 일이 있었다. 적어도 두 개는 족히 남아있었다.

 

마유즈미는 어디선가 담요를 가져와 못마땅한 얼굴로 그의 몸에 담요를 둘둘 감아 주었다. 뺨을 한 대 칠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는 말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예의상 물어보는 건데. 괜찮아?

 

가미 토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유즈미 씨. 그리고 여러분 모두요.

 

야가미는 파랗게 질린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가미 토가: 버리고 갈 수도 있었는데 와주셨군요. 당연히 가셨을 줄 알았습니다.

 

무로 시라베: 왜인지 시련이 붕괴하지 않았고, 아직은 너도 할 일이 남아 있어. 이제 돌아가는 것에는 이견이 없겠지?

 

가미 토가: 예… 이제 됐습니다. 돌아가도록 합시다. 이 배는 어디서 나셨죠?

 

무로 시라베: 잠시 빌렸어. 이제 부두로 돌아간다. 타륜을 돌려라. 허튼짓을 시도하면 배를 빼앗을 것이다.

 

내가 선장실에 대고 말하자 야가미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가미 토가: 빌리신 것치고는 태도가 거치신데요. 무례에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지금 경황이 없어서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야가미의 말허리를 하기와라가 끊었다.

 

기와라 우시오: 야!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우리 히무로봇이 명령을 하면 재깍재깍 대답하란 말이야! 총알 맛 좀 볼래?

 

하기와라가 과장되게 험악한 어투를 내자 곧 선장실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부두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배는 방향을 돌려 부두로 향하기 시작했다. 야가미는 사태를 파악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미 토가: 빌렸다고 하셨잖습니까.

 

무로 시라베: 돈을 주고 빌렸다고 한 적은 없지.

 

가미 토가: 당신 그러고도 프로파일러인가요?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와 마유즈미에게서 돈을 빼앗으려던 사람이었어. 이 정도 벌은 받아 마땅하지 않아?

 

기와라 우시오: 당근빳다죠 쉬바!

 

가미 토가: 그렇다면 됐군요. 사실 목숨을 빚진 입장에서 따질 게 아니죠. 오히려 저를 구해주기 위해 무리하신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너도 미도리카와를 구하려고 열심히 했어. 그거 하나는 부인 못 해.

 

마유즈미가 담요를 야가미의 몸에 하나 더 돌돌 말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너무 아쉽지만… 다들 고생 많았어. 일단 모두 목숨은 무사하니까 해변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하자. 아직 시련은 두 개 더 남아 있잖아 

 

가미 토가: 그럽시다. 돌아갑시다.

 

야가미는 담요에 싸인 몸을 일으키고 배의 후미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옷이 마르지 않아 바닷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도 버거운 듯한 다리를 조금 떨며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멀어져 가는 바다의 어떤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미 토가: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으니

 

야가미의 초라한 등을 보며 나는 그에게서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다.

 

과연 야가미가 그녀에게 가졌던 감정은. 복수심이 맞는가?

 

 

 

 

 

 

세 명을 먼저 해변으로 보낸 뒤 나도 뒤따랐다. 눈을 뜨자마자 총의 유무를 확인했고 총은 그 자리에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하기와라가 들고 있는 돈가방 또한 보였다. 이 두 개가 첫 번째 시련에서의 성과였다. 그것뿐.

 

무로 시라베: 보다시피 실패했어. 미안. 미도리카와를 데려오지 못했어.

 

리 레이코: 아쉽군. 다음 시련에 도전하도록 한다. 총과 재화를 얻었는데 누구도 해를 입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지.

 

가미 토가: 시련 안에서의 외상은 해변의 육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야가미는 아까까지 피와 소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모래만 조금 묻었을 뿐 멀쩡해진 자신의 몸을 살폈다.

 

무로 시라베: 바다뱀이 익사한 것처럼 보였는데 시련 안이 붕괴하지 않은 것도 놀라워. 덕분에 야가미를 버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왜 곧바로 시련이 무너지지 않았는지는 의아해.

 

모노로그: 시체도 일단은 데려올 수 있지 않겠나?

 

모노로그가 모래 밑에서 솟아올랐다. 이젠 익숙해졌다.

 

무로 시라베: 그럼 시련이 붕괴하는 기준은 무엇이지?

 

모노로그: 특정한 시간이 전부 지나면 세계가 붕괴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너희가 그곳에 계속 산다면 난처해지거든. 그것을 막기 위해서다.

 

가미 토가: 추억 속에 빠져 살 순 없다는 거겠죠. 이해했습니다. 그보다 카이다 씨는 어디에 계시죠?

 

모노로그는 답하지 않고 사라졌다.

 

기와라 우시오: 존나 치사한 새끼.

 

이토 유즈루: 시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외상? 너희 다쳤냐?

 

무로 시라베: 야가미가 많이 다쳤지. 그는 전신에 상처를 입었어. 과거의 카이다가 입혔지. 그녀의 방해 탓에 미도리카와를 구출하지 못했어.

 

이토 유즈루: 걘 진짜 시련 안에서도 방해를… 내가 갔어야 했나? 싸웠으면 내가 졌겠지만.

 

리 레이코: 그래. 완력이 규격 외다. 네 이상이다. 네가 협상가는 꺾을지 몰라도 첩자는 힘들 것이다.

 

무로 시라베: 탑에서 그녀가 살인을 하면. 그녀도 죽게 돼. 그 규칙 때문에 그녀는 섣불리 사람을 죽일 수 없어. 과거의 카이다는 그렇지 않았지. 누가 오더라도 미도리카와의 구출은 힘들었을 거야.

 

리 레이코: 그렇지만 수확이 있어서 다행이다.

 

무로 시라베: 맞아. 시련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물품을 손에 넣었어. 첫 번째. 총과 총알. 위력은 대단치 않지만 없는 것보다 나을 거야.

 

무로 시라베: 그리고 저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게 두 번째. 현찰이야. 마유즈미가 은행에서 인출했어.

 

이토 유즈루: 얼마나 가져왔는데?

 

유즈미 나데시코: 한 400만 엔 정도는 가져왔는데… 그 이상은 가방에 못 담았어.

 

기와라 우시오: 뭐야. 듣고 보니까 존나 많아! 너 청소년 아니야? 그렇게 많은 돈 한 번에 뽑는데 아무런 제재가 없어?

 

유즈미 나데시코: 괜찮아. 난 행정상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라서. 내 이름 들으니까 곧바로 인출해줬어. 가문 입김이 여기까지 닿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들어 마유즈미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성인이 된 것으로는 안 보이는 신장 162cm의 소녀를.

 

세상에 동안은 얼마든지 많았다… 이제 마유즈미 씨라고 불러야 하나?

 

리 레이코: 나이를 헛으로 먹었군.

 

유즈미 나데시코: 그런 거 아니야! 내가 태어나기 몇 년도 전에 부모님이 미리 호적에 올려 두셨대. 어차피 집 밖으로 내보내진 않을 거니까 성인 신분으로 빠르게 집안 사업을 도울 수 있도록. 미리 올리신 거야.

 

무로 시라베: 집안 사업?

 

유즈미 나데시코: 이거 말해도 되나 싶은데검은돈 세탁 같은 일이야.

 

가미 토가: 미술품 투기 말씀이십니까?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듣는 사람들 사이에 오갔다. 하기와라는 입이 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결국 첫 번째 타자를 자처했다.

 

기와라 우시오: …그거 아주 씹새끼들인데?

 

이토 유즈루: 야! 마유즈미 앞에서 그걸 말해버리면 어떡해?!

 

나이토가 마유즈미의 눈치를 보며 당황했다.

 

리 레이코: 자식을 도구로 여기는 부모는 부모 취급을 받을 자격이 없다.

 

이토 유즈루: 야!!!

 

유즈미 나데시코: 괜찮아! 괜찮아. 여기 계신 것도 아니잖아. 우리 앞에 안 계시면 다 욕해도 돼.

 

무로 시라베: 아버지의 낯을 잊은 것들 같으니.

 

이토 유즈루: 아니 히무로 너까지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야. 진짜 괜찮아! 어차피 우리 욕 못 들으시잖아.

 

유즈미 나데시코: 그리고 잘못인 건 맞으니까.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나를 무슨 도구로 쓰는 것 같아서 기쁘지는 않았어. 날 사랑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마유즈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눈빛은 처연했다.

 

이런 얘기를 사석에서 꺼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만큼 그녀가 우릴 신뢰하고 있다는 뜻인가.

 

현명하진 않은 일이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리 레이코: 서예가 너 또한 고충이 심했군.

 

무로 시라베: 유감이야. 마유즈미.

 

유즈미 나데시코: …둘 다 고마워. 아무튼 누나나 언니라고 부르진 마. 나 너희랑 나이 비슷해!

 

이토 유즈루: 누나가 안 돼? 그럼 누님.

 

마유즈미는 입을 벌리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유즈미 나데시코: 더 최악이야! 미워!

 

이토 유즈루: 으하하하하! 미안. 미안. 알겠어. 그렇게 안 부를게!

 

그는 호탕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의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존중을 보았다. 하기와라는 가슴이 떨린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마유즈미 눈나… 나 죽어어어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넌 진짜 밥맛없어. 그리고 죽지 마!

 

기와라 우시오: 극찬 고맙고!

 

무로 시라베: 현찰이 있다면 다음 시련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다들 네게 존경을 표하고 싶은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어. 정말?

 

무로 시라베: 아니.

 

마유즈미가 내 팔에 주먹을 날렸다.

 

무로 시라베: 우리가 없는 사이 카이다가 찾아오지는 않았어?

 

이토 유즈루: 말도 마. 얘 무슨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내가 다 정신 사납더라. 그런데도 안 보였어.

 

리 레이코: 아무래도 우리에게 총이 있다는 사실을 모노로그에게서 들은 것 같다. 총기를 경계한 것이지.

 

무로 시라베: 총기보단 죽음을 두려워했을 거야. 시련 안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는 큰 위기에 처했어. 그녀에게 충분한 물자만 있다면 우리를 몰살할 수도 있어.

 

무로 시라베: 그녀도 마음만 먹으면 우릴 죽일 수 있겠지. 다만 학급재판에서 죽을 게 분명하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거고.

 

기와라 우시오: 시련 안에 들어올 수도 없어. 왜냐? 나이토랑 또라이가 문 앞을 딱 틀어막고 있으니까. 하! 시련 안으로 들어오라 해. 그럼 모리가 사지를 절단 내놓을걸?

 

리 레이코: 첩자는 멍청하지 않다. 분명 다른 방법을 시도하겠지.

 

가미 토가: 그리고 저희는 언젠가 그녀의 방법이 성공하기 전에. 시련을 마치고 미도리카와 씨를 해변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나머지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가미 토가: 그 두 번의 기회에 성공하기 위해. 저희는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유즈미 나데시코: 동감이야. 이번에야말로… 해내기 위해 노력하자.

 

이토 유즈루: 좋으아아아아아아!

 

나이토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유즈미 나데시코: 와. 나이토! 이제 기운차네? 이제 바다 안 무서워?

 

이토 유즈루: …아니. 그건 아니야.

 

리 레이코: ….

 

우리는 내려온 식량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기와라 우시오: 내 생각인데 말이야. 이 식량들은 후원자들의 재량에 따라서 나오는 것 같아. 후원자가 아무것도 안 보내면 우린 굶게 되겠지?

 

가미 토가: 그럼 가재 괴물을 먹을 수밖에요.

 

무로 시라베: 선택지의 일부이긴 하지.

 

나는 내게 지급된 사과 하나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그러며 후원자와 경주마 사이의 소통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모래에 문자를 쓰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문제는 후원자들이 우리에게 특정한 뜻을 보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있긴 한가. 그들은 우리에게 식량이나 물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사과에도 메시지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과.

 

무로 시라베: 하아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많이 힘들어?

 

무로 시라베: 무엇이.

 

유즈미 나데시코: 한숨 쉬었잖아.

 

무로 시라베: 아무 일 없어.

 

유즈미 나데시코: 거짓말 같은데

 

무로 시라베: 거짓말이 아니야. 후루미나미가 내 후원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유즈미 나데시코: 아. 후루미나미… 별 일은 없을지 궁금하네. 탑은 괜찮을까?

 

무로 시라베: 괜찮길 바라야지. 빨리 시련을 끝내고 돌아가면 심각한 일이 생기기 전에 막을 수 있을 거야. 우리는 그 일에 집중해야만 해

 

무로 시라베: 그러니 가자. 누나.

 

유즈미 나데시코: 누나 아니래두!! 히무로 너까지!

 

팔과 옆구리에 꽂히는 마유즈미의 주먹질을 버티며. 나와 해변의 모두는 두 번째 시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탑은 평소와 그대로였다. 평소대로 이상했다.

 

나는 적재적소에 모리에게 식량을 보내며 탑 안의 일을 살펴보았다. 방 밖으로 나오는 일은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두려움이 무색해질 만큼 활동이 쉬워졌다.

 

칸나즈키와 카나리는 여전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칸나즈키는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곤 했지만 그 말의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다.

 

토키와는 여전히 23T와 모니터실에 있었다. 얼굴은 수척하고 눈가에는 어두운 다크서클이 있는 그의 모습은 탑에 처음 왔을 때의 자신감 넘치고 시원한 인상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토키와는 이미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어떤 사건이 생기거나 해변의 모두에게 식량을 보내야 할 때마다 꾸준히 우리에게 연락을 주었다.

 

교대를 제안했지만 토키와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사실 충분히 신뢰를 얻은 23T만으로 모니터실의 경비는 충분했지만. 왜인지 토키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캐롤 씨의 설득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키와 아유키: 저는 이거라도 해야 해요. 걱정은 고맙지만 어쩔 수 없어요. 캐롤 씨.

 

롤 브라이트: …무리하지 말라고 하시기엔 이미 무리를 하고 계시네요.

 

캐롤 씨가 슬픈 얼굴로 모니터실에서 나온 게 기억났다.

 

후루미나미는 종종 카지노에 들러 물품을 뽑는 모습이 포착되었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어디서 뭘 하는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녀를 미행해보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일부러 나에게만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괘씸한데 실제로 난 그녀를 잡을 수 없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이바라? 이바라는 좀처럼 쾌활함을 되찾지 못했다. 마유즈미나 하기와라. 나이토의 빈자리가 그녀에겐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해가 되었다. 나라도 캐롤 씨가 해변에 있다면 엄청나게 걱정이 되고, 많이 힘들 테니까.

 

하기와라와의 일은 잘 풀린 걸까? 탑은 이상하게 서서히 뒤틀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모리의 후원자라는 점이었다.

 

모리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그 실감이 좀처럼 되지 않았다. 정말 모리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건가? 어떻게 죽는 거지? 방법은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리어카를 보내 주긴 했지만 그들에게 흉기가 필요할까? 카이다에게 맞서기 위해서…?

 

그들에게 원하는 물품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다. 크레딧을 통한 후원 목록에는 아직 흉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늦은 밤. 나는 캐롤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내 방에 불렀다.

롤 브라이트: 안녕하세요.

 

캐롤 씨는 평소처럼 온화했지만, 그 내면까지도 평소와 같지는 않았다. 우울이나 혼란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있는 힘껏 괜찮은 척을 할 뿐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만 내가 뭘 해줄 수 있지? 하등 그녀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해변에서 살인이 벌어지면 누군가가 죽을 불합리한 상황에.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지?

 

내가 이 탑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나는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그저 치이고 짓눌리다가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무력감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탑의 수수께끼를 밝혀야 한다. 카텟 기관과 23T. 모노로그에 대해서도.

 

결국. 잃어버린 내 기억을 되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나시: 도청기는 후루미나미가 가져갔어요. 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긴 했지만… 일단 뭣보다 도청의 가능성은 없어요.

 

나시: 캐롤 씨가 후루미나미에게서 도청기의 정체를 알아내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하신 거에요?

 

롤 브라이트: 뭘 했다기보다… 곧바로 통화를 걸길래 문 뒤에 숨어서 조금 엿들었어요. 제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전화를 거는 게 수상했죠. 그래서 추궁했더니 생각보다 순순히 털어놓으셨어요.

 

나시: 생각보다 순순히… 맞아요. 캐롤 씨의 말이 맞아요. 덕분에 저희가 여기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나시: 정말 순순히

 

캐롤 씨에게서 정황을 들으면 들을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롤 브라이트: ….

 

캐롤 씨도 내 낌새를 느끼셨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쪽에 눈치를 주었다. 생각을 조금 더 하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시: 혹시 후루미나미의 도청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롤 브라이트: …아뇨. 도청기가 있다는 건 확인을 받았지만, 어떻게 생겼나까지는 몰라요. 수신기에서 당신의 음성을 듣긴 했지만 도청기의 생김새는

 

나시: 역시 그랬군요.

 

롤 브라이트: 역시 그랬다뇨?

 

나는 캐롤 씨를 바라보며 검지를 나의 입에 댔다. 캐롤 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나시: 사실 후루미나미가 했던 말 중에서 신경 쓰이는 게 있어요.

 

나는 발걸음 소리를 숨길 정도의 크기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목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후루미나미가 눈치챌까. 나는 일부러 침대와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결과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캐롤 씨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시: 후루미나미 말로는 크레딧이 지급되는 기준이 그 사람의 명성이나 인지도에 비례한대요.

 

아마 후루미나미가 이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면, 분명 듣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다. 내가 알아낸 정보를 캐롤 씨에게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녀를 속이려 드는 건가? 하고 흥미진진하다며 과자를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나시: 그래서 고급 시계를 만드는 카나리, 배우로 이름을 날리는 후루미나미는 많은 크레딧을 받았대요.

 

나는 계속 떠드며 매트리스를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그러자 침대의 틀과 매트리스 사이에 절묘하게 들어있는 검은색 구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잽싸게 구슬을 낚아챈 뒤 그것에 대고 소리쳤다.

 

나시: 아아아아아악!!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점짓 놀란 듯이 두 손을 모으는 캐롤 씨를 보자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즐겁다기보다는 긴장감이 해소되어 터져나오는 실소에 가까웠다.

 

나시: 하하하! 악. 악. 아아아악! 하하학!

 

롤 브라이트: 왜 그러세요. 나나시 씨? 괜찮으신 건가요?

 

나시: 하하 괜찮아요.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그렇지만 한 번 골탕을 먹여주고 싶었거든요. 지금쯤 연결이 끊어졌을 것 같네요.

 

롤 브라이트: 연결이 끊어졌다니… 아. 그럼 그게!

 

나는 캐롤 씨에게 검은색 구슬을 보여주었다.

 

나시: 네. 이게 진짜 도청기예요. 후루미나미는 그렇게 순순히 도청기를 회수할 인물이 아닐 것 같아서 도청기를 숨길 만한 곳을 찾아봤죠.

 

나는 세 개의 구멍이 뚤려 있는 구슬을 제자리에서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구슬에 불과하겠지만 나중에 분해해보면 기계라는 게 드러날 것 같았다.

 

나시: 저희는 도청기가 있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니까요. 그 상황에서 도청기라고 착각할만한 걸 제 눈앞에서 보여주고, 진짜 도청기는 회수하지 않는 것. 후루미나미가 할 법한 일이었어요.

 

롤 브라이트: 진짜 도청기는 그런 형태군요

 

나시: 또 어떤 형태의 도청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그 점이 석연치 않았다. 또 어디에 어떤 형태의 도청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 후루미나미는 탐정이자 괴도였다. 자신이 원한다면 사실 다채로운 능력을 뽐낼 수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잠긴 문도 뚫고 다닐 수 있는 상황에. 과연 도청기 하나를 찾아낸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롤 브라이트: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또 다른 도청기를 염두에 두고 계시죠?

 

나시: 그게 표정으로 다 드러나요?

 

롤 브라이트: 사실. 네.

 

캐롤 씨의 반응을 보아하니. 내 표정이 더 어두워진 게 틀림없었다.

 

나시: 이렇게 골탕을 한 번 먹이긴 했지만, 솔직히 또 어디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롤 브라이트: …그럼 잠깐 저와 시험 하나 하시겠어요?

 

나시: 실험이라뇨.

 

롤 브라이트: 사실 도청당하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방법을 하나 시험해보려 하거든요. 지금이 가장 적기일 것 같아요.

 

나시: 정말요?

 

롤 브라이트: 모노로그에게조차 도청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죠.

 

나는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라 검지를 입술 앞에 갖다 대었다. 나는 입모양으로 열심히 말했다.

 

나시: (그걸 모노로그가 알면 어떡해요!)

 

롤 브라이트: 괜찮아요. 모노로그도 제재하기 힘들 테니까. 아마 이 방법은 저와 터치를 나눠 보셨던 나나시 씨에게만 통할 거예요.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확실하지 않으니… 잠깐 시험해볼게요.

 

그렇게 말하며 캐롤 씨는 흰 스웨터의 소매 안쪽에서 서슬파란 가위를 꺼냈다.

 

나시: (캐롤 씨?! 흉기를…)

 

롤 브라이트: 23T 씨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비수 하나는 품고 있어도 되지 않겠어요? 몸을 지켜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 나도 무섭다고 내 방에 쇠파이프 가져다 놨으니. 놀랄 자격은 없을지도 몰랐다. 캐롤 씨는 엄지. 검지. 그리고 중지에 가위를 차시고 날이 잘 갈려 있는지 두어 번 찰캉이셨다.

 

나시: 그런데… 왜 가위를 지금 꺼내세요?

 

롤 브라이트: 잘라야 하는 게 있어서요. 좀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당황하지 마세요.

 

캐롤 씨는 네 단으로 묶은 그녀의 머리카락과 가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번에 네 단 중 하나를 싹둑 잘라버렸다.

 

나시: 엑?!

 

캐롤 씨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의 묶음을 줍고선 툭툭 털고. 그걸 조심스럽게 나에게 건넸다. 가위는 조용히 탁자 위에 놓으셨다.

 

롤 브라이트: 머리를 매일 감더라도 이런 건 정말 기분 나쁘시겠지만. 한 번 잡아 보시겠어요?

 

느닷없이 머리카락을…? 거절할 이유도 없긴 했지만 왜 이런 요구를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밧줄처럼 땋여있는 것에.

 

그러자마자

 

"들리세요?"

 

"으아아악?!"

나시: 으아아악?!

 

나는 캐롤 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목소리를 보내는 듯한 감각이었다. 귀가 아니라 뇌를 통해 정보를 받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

 

텔레파시라는 단어와 그렇게 닮은 현상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확신하지는 못했는데. 성공했네요."

 

"캐롤 씨. 이게 뭐에요? 이건 마치"

 

"터치가 원격으로 이어진 것 같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그녀의 잘린 머리카락을 잡고 있을 뿐. 캐롤 씨는 눈에 띄는 어떠한 행동도 하고 있지 않았다. 신체의 접촉도 없었다. 그런데도 터치가 이어져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머리카락으로도 되는군요. 예상대로"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터치가 머리카락을 매개로 삼아서 이어지는 거죠. 이미 잘라버린 머리카락이 얼마나 우리를 이어줄지는 모르지만요. 아직 온전한 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목소리만 이어지는 것 같네요"

 

롤 브라이트: 아마 머지않아 목소리가 끊어질 수도 있고 점차 약해질 수도 있겠지만, 한 단을 잘랐고 머리카락이 서로 묶여 있으니. 효과가 며칠 정도는 갈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체험을 하며 내가 느낀 감정은 놀라움. 그보다도 공포였다.

 

캐롤 씨의 힘이 어느 정도냐에 대한 공포심이 아니었다. 그녀의 힘을 감히 가늠할 수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두렵지는 않았다. 두려운 것은 이 탐구라는 행위 자체에 있었다. 나는 이 끝에 대체 뭐가 있는지 몰라 불안을 느꼈다.

 

과연 이 힘에 대해 알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알아서는 안 되고 비밀로 치부해야 하는 지식을 떠안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DMT라는 환각 물질을 복용한 사람들 중 80%가 '네가 이 기술을 찾아내 정말 기쁘다' 라고 말하고 자신을 진정시키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내가 이 지식을 언제 얻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일화를 들으며 내가 하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과연 우리의 인식 체계를 넘어선 거시적인 존재가 있을까? 신은? 유령은? 악마는 있을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것들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그것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무게를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와 터치를 연구한다면 그 끝에서.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나는 약간 두려워졌다.

 

롤 브라이트: 이번 실험으로 확실해졌어요. 나나시 씨. 당신은 터치의 소질을 가지고 계세요.

 

나시: 네? 터치의 소질이요?

 

롤 브라이트: 네. 사실 이 탑의 모두가 터치의 소질을 가지고 계세요. 히무로 씨와 칸나즈키 씨는 더욱 그렇고요. 그렇지만 특히 당신의 소질이 누구보다 탁월해요.

 

나시: 그 말은  저도 언젠가 터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인가요?

 

롤 브라이트: 터치가 발현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발현되더라도 저와는 분명 형태가 다를 거예요. 음. 설명으로 하기엔 어려운데

 

캐롤 씨는 문득 내 다리부터 머리까지를 찬찬히 훑어 보셨다. 무언가를 스캔하시는 것처럼.

 

나시: 왜 그러세요?

 

롤 브라이트: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캐롤 씨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손을 천천히 내 쪽으로 내미셨다. 양쪽의 흰 장갑은 벗어버리셨다.

 

롤 브라이트: 혹시… 괜찮을까요?

 

나시: 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롤 브라이트: 말로 하기에는 꽤 부끄러운데… 일단 침대 위에 앉아 주세요.

 

이상한 상상을 잠깐 하느라 1초 정도 사고가 정지한 나는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 풀썩 침대에 걸터앉았다.

 

롤 브라이트: 그렇게 앉지 마시고. 침대 위에 무릎을 꿀어서 앉아주시겠어요?

 

느닷없이 왜지…? 의문을 느끼면서 나는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섰다. 무릎을 꿇은 다음 무릎에 얌전히 두 손을 올리고 이제 어떻게 할지 물으려는 순간, 침대가 한 번 삐걱였다. 캐롤 씨도 신발을 벗고 내 앞에 마주앉은 것이다.

 

나보다 키가 큰 사람과 침대 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자니 묘한 긴장이 느껴짐과 동시에. 의문은 더욱 커져갔다. 조금의 위압감마저 느꼈다.

 

나시: 저기…?

 

롤 브라이트: 잠깐 실례할게요.

 

캐롤 씨의 몸이 다시 내게 가까워지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캐롤 씨는 내 옷과 몸 사이의 틈을 비집고 손을 그 사이에

 

나시: 캐. 캐롤 씨! 자… 잠깐만요!

 

롤 브라이트: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요.

 

솔직히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진정하는 게 평소의 나겠지만.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캐롤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옷 안에 손을 넣고 내 가슴께를 더듬으셨다. 그리고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위치를 찾아 그 곳에 손이 머무르게 두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나는 당장 후다닥 일어나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참았다. 느닷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다른 곳은 몰라도 상체는 만질 곳도 별로 없을 텐데

 

롤 브라이트: 자꾸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시고요.

 

아. 맞아. 터치를 하는 동안에는 다 들리지?! 안 돼애!

 

롤 브라이트: 네. 다 들려요. 재주껏 잘 피해서 들을 테니 제 말에 집중해 주세요. 제가 손가락을 대고 있는 부분이 느껴지시나요?

 

캐롤 씨가 손을 대고 계신 곳은 내 심장이었다. 미친듯이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이 그녀에게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자 내 얼굴에도 점차 새빨갛게 열이 올라왔다.

 

롤 브라이트: 걱정 마세요. 개의치 않으니까. 그보다 나나시 씨 스스로 당신의 심장이 뛰는 고동을 느껴 보셔야 해요.

 

고동

 

"두근. 두근. 그 리듬을 느껴보시면 돼요. 당신의 가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느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녀가 손을 대고 있는 내 가슴께 안. 그 안에 들어있는 것.

 

당연히 심장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지그시 감고 심장의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느끼자. 내게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빛이… 

 

처음에는 깜빡임일 뿐이었다. 암흑 안에 형광 모래가 한 알 떨어진 듯한 미약한 빛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자 그 빛은 점차 커져. 손안에 들어올 수 있는 눈덩이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그러자 눈이 부셔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감각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심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광휘에 눈이 부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눈덩이 크기의 광휘만이 보였다.

 

반대로 눈을 뜨거나 집중이 흐트러지면 그 빛도 함께 사라짐과 동시에 외부세계가 다시 나타났다. 그곳에는 모든 게 있었지만 정작 광휘는 보이지 않았다.

 

시각이 시각이 아니었고, 촉각은 촉각이 아니었다. 눈으로 볼 수 없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내 심장 안에 들어 있었다. 단지 내가 인식하지 못할 뿐 항상 나와 함께였으리라.

 

둘이 뒤섞인 특이점 안에서 내 심장 속 빛은 끝없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 심장이 들어있는 가슴에. 캐롤 씨의 손이 닿아 있었다.

 

내 뺨이 달아오르려는 것을 억누르며. 나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나시: 빛의 구체 같은 게 느껴져요.

 

롤 브라이트: 역시 당신도 그렇군요

 

나시: 캐롤 씨도 이런 걸 가지고 계세요?

 

롤 브라이트: 알려드릴게요. 그보다는… 보여드리죠.

 

캐롤 씨가 내 가슴에서 손을 빼냈다. 눈을 뜨자 캐롤 씨가 멜빵 치마의 어깨끈을 양 어깨 밑으로 내리는 게 보였다. 그녀의 치마가 밑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그녀의 흰색 터틀넥 스웨터가 드러났다.

 

캐롤 씨가 잠깐 멈칫하고 은근한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시: 아. 네. 죄송해요.

 

롤 브라이트: 음… 보여드리겠다는 게 그런 건 아니에요. 잠시 눈 좀 감고 계시겠어요?

 

나시: 눈이요…?

 

롤 브라이트: 아쉽다는 티 내지 마시고요.

 

그런 거 아니라고 항변해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쉽다는 투로 들릴 것 같아서 나는 얌전히 눈을 꼭 감았다.

 

롤 브라이트: 계속 눈 감고 계셔야 해요. 아시겠죠?

 

나시: 넵.

 

롤 브라이트: 착한 아이네요.

 

칭찬 받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정신 좀 차려라.

 

그 말을 끝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 섬유가 살과 맞닿는 듯한 소리. 무언가가 바닥에 풀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소리는 설마

 

정신 차려! 눈 뜨지 마. 지금 눈을 떠선 안 돼!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이 아파왔고 행주를 쥐어짜듯이 눈물이 찔끔 눈 옆으로 밀려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조금도 뜨지 않으려 애썼다.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나시: 네?!

 

롤 브라이트: 앗. 깜짝이야. 이제 잠깐 몸에 긴장 푸시고 팔 이쪽으로 뻗어 보세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천천히 팔을 뻗었다.

 

나시: 뻗었어요.

 

롤 브라이트: 방향이 살짝 안 맞는데… 잠깐만 이 쪽으로… 좀 더

 

내 팔 끝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자 나는 화들짝 놀라 팔을 뒤로 뺐다. 화로에 손을 넣은 사람이 할법한 반응이었다.

 

나시: 우왓!

 

롤 브라이트: 그건 제 어깨예요. 그렇게 놀라실 것까진 없잖아요? 내 몸이 용암인 것도 아닌데.

 

나시: 아니… 순간 살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요.

 

롤 브라이트: 살에 닿은 게 맞으니까 그렇죠. 눈 뜨지 마세요. 부끄러워지려고 하니까.

 

살에 닿았다니. 그게 무슨… 손이 어깨에 닿으려면 어깨가 드러나야

 

눈 뜨지 말자. 눈 뜨지 말자. 눈 뜨지 말자. 눈 뜨지 말자.

 

나는 그녀의 쪽으로 다시 한번 천천히 팔을 뻗었다.

 

롤 브라이트: 흑심 가지지 마시고… 한 번 해 보세요.

 

나시: 흑심이라뇨. 저는 그런 거

 

그 뒤의 말은 잇지 못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그렇게 계속 팔로 허공만 휘적거리고 있자 캐롤 씨가 보기에도 답답하신 모양이었다.

 

롤 브라이트: 아… 정말이지.

 

캐롤 씨의 손이 내 팔을 붙잡고는 자신에게로 확 끌어당겼다. 나는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그럴 새도 없이 내 손은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에 닿았다.

 

내가 무엇에 손을 대고 있는지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녀의 감정에서 조금의 부끄러움을 읽었다.

 

아니. 이거 설마

 

난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탑. 탑. 탑. 돌. 꽃. 탑. 과거. 기억. 모노로그. 카텟. 23T. 기계. 전화 상자. 빛. 기계. 총. 과거. 카텟.

 

롤 브라이트: 손 움직이시면 변태 취급할 거예요.

 

아. 세상에 내 생각이 맞잖아 이런 세상에 어떻게 하지

 

나시: 넵…!

 

롤 브라이트: 그대로 대고 계시돼 다른 건 하지 말아 주세요…?

 

나시: 넵!

 

만약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감사해야 하는 건지 미워해야 하는 건지 갈피가 잡지 못한 채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했다. 탑. 탑. 탑. 탑. 살인 게임. 탑. 카지노. 탑. 크레딧. 고통. 두통. 기계. 기계. 탑. 가슴. 악! 탑. 탑. 탑! 과거. 과거. 카텟. 부드러워. 아악! 변태!

 

롤 브라이트: 풋. 알겠어요. 노력하시는 거 아니까 다른 생각 하셔도 돼요. 숫기가 없으셨는데 이렇게 보니까 당신도 남자네요?

 

아. 세상에 이거 진짜 너무 부끄럽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다

 

내 고개가 밑으로 픽 떨어졌다.

 

나시: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어요

 

롤 브라이트: 아니에요. 저희 나이엔 그게 정상인 거죠. 그러니까 고개 드세요. 제 안에 뭐가 있는지 집중해 봐요

 

이런 상황에서 딴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사바세계에 대한 미련을 이미 버리고 열반에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물질세계 말고 그 내면에 있는 것에 정신을 기울였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기엔 뭐하지만, 초월적인 의지력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롤 브라이트: 그래요. 잘하고 계세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무던히 애쓴 끝에. 난 그녀 안의 구체를 보았다. 찬란한 광휘. 눈을 감은 뒤에야 보이는 광휘를. 그러나 나의 것과는 크기도, 그 밀도나 세기마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내 광휘가 눈덩이였다면 캐롤 씨의 광휘는 눈사람이었다. 내 허리에 올법한 크기의 완전한 구. 그녀의 광휘가 얼마나 큰지. 그녀의 몸보다도 큰 것 같았다. 아마 저 광휘가 캐롤 씨의 심장에 들어 있다면. 내가 그녀의 모습과 광휘를 동시에 볼 수 있다면 그녀의 등허리를 뚫고 나온 광휘를 볼 수도 있었을 터였다.

 

낮의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도 태양이 그 정도로 밝지는 않을 것이다. 또 태양이 아무리 밝더라도 눈을 감거나 손으로 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안(心眼)으로 보는 듯한 그녀의 광휘 앞에서 나는. 가장 찬란한 빛 그 자체와 눈싸움을 하는 형국에 놓였다.

 

빛 앞에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뒤에야 광휘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 눈이 부시다는 감각 자체가 내 착각이 아닐까? 눈을 감고 있는데 어떻게 눈이 부실 수 있지? 따위의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괴로움에 조금 신음하기 시작했다.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진정하세요.

 

내가 견딜 수 있는 밝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내 눈이 너무나도 부신 나머지. 나는 눈을 뜨고야 말았다.

 

눈을 뜬 직후에야 나는 그녀가 내게 신신당부한 내용을 떠올렸다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나시: 으아아! 죄송. 죄송해요!

 

탑. 탑. 탑. 봤다. 아아악!

 

이젠 숨길 수도 없게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나는 목을 휙 꺾어 그녀의 반대 방향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한 실수를 주워 담을 수 있길 바라며.

 

그럴 리는 없었다.

 

롤 브라이트: …솔직히 말해 보세요. 일부러 그러셨죠?

 

나시: 아니에요! 너무 밝으니 당황해서

 

차라리 말로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할 정도로 변명같이 들렸다. 내가 느낀 당황을 캐롤 씨도 느낀 것인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알았냐면, 손을 대고 있으니까

 

롤 브라이트: 알겠어요. 믿을게요. 실눈 떠서 보실 거면 차라리 지금 눈 뜨고 보세요.

 

나시: 아니에요! 안 그럴게요!

 

나는 숨을 후 후 내쉬며 다시 캐롤 씨 쪽을 보았다. 눈을 이번에는 견고하게 감았다. 그러다 한 번 그녀가 다시 내 옷 안에 손을 집어넣어. 나는 눈을 뜰 뻔했다. 당황을 간신히 잠재운 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심장에 손을 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롤 브라이트: 자이제 우리 둘의 빛을 함께 보세요. 당신의 빛에도 집중해 봐요. 어렵지 않을 거예요.

 

나시: 으윽

 

롤 브라이트: 그래요. 나나시 씨. 잘하고 계세요

 

캐롤 씨의 말대로 처음보다는 쉬웠다. 나는 내 심장과 그 안에 든 빛을 느꼈고, 그녀의 심장과 그 안에 든 빛을 느꼈다. 그 뒤 나는 느꼈다. 서로 다른 박자로 뛰던 두 박동의 리듬이 조금씩 빨라지고 어느 쪽은 조금씩 느려졌다. 이윽고 두 심장은 동일한 템포로 뛰기 시작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심장 안의 빛도 함께 뛰고 있었다. 똑같은 박자였다. 그러나 단지 함께 뛰는 걸 넘어 그녀와 나의 광휘는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그녀의 빛은 동시에 빛을 발산했다.

 

마치 두 광원이 서로 파동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파동만이 오갔다. 그녀가 주고, 나는 받는다. 내가 주고, 그녀는 받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의 빛은 더욱더 밝아져만 갔다. 눈이 멀 것 같은 착각마저 느꼈다.

 

롤 브라이트: 여기까지 할까요?

 

나는 고개를 세 번 끄덕였다. 나는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저어 최대한 정신을 누그러뜨렸다.

 

정신에 너무 날이 서 피곤할 정도였다. 누가 날 놀라게 한다면 곧바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 자신의 의식이 확장되고 팽창된 것처럼. 모든 감각이 지독히 민감해졌다.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어 기이한 파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나시: 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캐롤 씨?

 

롤 브라이트: 이게 답이 될지도 몰라요. 어째서 제 터치가 점점 강해지는지에 대한 답이요.

 

나시: 터치의 소질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게 가능한 건가요?

 

롤 브라이트: 네. 빛과의 접촉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당신과의 터치가 저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것 같지만, 저는 마유즈미 씨. 토키와 씨. 심지어는 미도리카와 씨와 터치를 나누었을 때도 조금씩 성장했어요. 왜일까요?

 

나시: 그건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는 이 탑에 모이신 분들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히무로나  23T 같은 예외의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단번에 그 답을 떠올렸다.

 

나시: 초고교급. 이 탑에 모인 대부분의 인원은 초고교급이에요.

 

롤 브라이트: 맞아요.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분과도 터치를 나눠 본다면 그분들에게서도 강한 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터치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겠죠. 별로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시: 모든 초고교급들에게 저희 같은 빛이 있다는 건가요?

 

롤 브라이트: 적어도 탑에 계신 분들은. 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이 빛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개인차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죠. 저도 존재하는지 반신반의하고, 증명할 수 없는 힘이니까요.

 

롤 브라이트: 하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의 안에 존재해요. 스스로의 빛을 끌어내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적지만, 그래도 없지는 않죠. 그리고 이 탑에는 그런 분들이 모여 계세요.

 

롤 브라이트: 저는 이 빛 같은 힘의 근원을. 샤이닝(Shining)이라고 불러요.

 

 

 

캐롤의 호감도: 28

-50=원수 / -30=앙숙 / -15=상극 / 0=무관계 / +15=친구 / +30=연인 / +50=배필

 

 

롤 브라이트

 

탑에 온 뒤로부터 계속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다.

 

터치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사용한다. 신체적 접촉을 통한 일종의 정신 감응 현상으로. 공포와 당황으로 가득 차 눈물 흘리던 나도 뚝 그치게 만들만큼 강력하다. 내 감각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캐롤 씨는 초능력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차이를 알 수 없다.

 

이걸 받은 사람들(나, 마유즈미, 토키와)는 전부 캐롤 씨에게 존댓말을 쓰는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미도리카와는 썼는지 궁금한데 이젠 알 길이 없다

 

미도리카와에게 강제적인 터치를 사용하신 뒤로는 묘하게 성격이 달라지신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캐롤 씨는 내게 있어 계속 캐롤 씨일 것이다. 상담사와 내담자 관계. 상담사와 내담자가 5년동안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충격적일 이유가 없다. 그럼. 당연하지.

 

캐롤 씨와 나누었던 교감에 의하면, 터치는 샤이닝이라는 일종의 빛 같은 힘의 근원에서 기인한다. 샤이닝을 가진 사람과 터치를 나눌 경우 그녀의 터치가 더욱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초고교급들은 샤이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터치는 점점 강력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다. 입양된 적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그녀의 힘이 되고 싶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뿐이다.

 

 

 

 

 

 

 

 

수위가 이게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전개상 필요할 것 같아서 갑자기 분위기가 핫해졌습니다 서로 반말도 아직 안 텄는데 가슴부터 만지는 친구들이 있다??

 

터치가 이상하게 분량 잡아먹는 누물보 TMI가 아니라 내가 의도했던 스토리랑 연관 있는 요소로 부각할수록 뭔가 이상하게 분량 잡아먹는 누물보 TMI 쪽으로 기우는 느낌 가불기 씨2발

 

이미 떡밥 설정 과다인데 또 새 설정이 나와?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프롤로그를 조만간 한 번 갈아엎게 될 것 같습니다 본편 연재 안 하고 무슨 개짓거리야?? 싶을 수도 있는데 다시 읽어보니 영 오글거림

 

유입 다 버린 외딴섬 무인도 동인소설이지만 그래도 유입을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잘 고쳐지면 노벨피아에도 한 번 올려볼까 간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캐롤 브라이트 커미션이 도착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습니다 개쩔지 않나요??? 저 양털 같은 머리 디테일까지 챙겨 주셔서 정말 너무 행복합니다 이게 하루 만의 작업본이래요 정말 엄청납니다

 

캐롤한텐 히로인 복지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아서 첫 번째 일러스트의 타자는 캐롤이 차지했습니다 ㅊㅊㅊㅊㅊ

 

요구사항 너무 많이 보냈는데 이걸 다 받아주셔서 너무 감동적이었삼 이게 진짜 합리적인 소비 아닐까요?

 

원래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저번 주에 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빠르게 못 올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