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 케이토: 악몽 같아! 미친 자식들… 미친 자식들이야. 들이닥쳐 오다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카나리 케이토: 후루미나미까지 당하다니. 이건 악몽이야. 끔찍한 악몽이라고. 도망쳐야 해…
카나리 케이토: 그 미친 터치 컬트한테서 도망쳐야 해! 이 방법밖에 없어!
카나리 케이토: 모노로그. 괜찮은 거겠지?! 날 속이려 들지 마. 이걸 타더라도 내 몸이 다치지는 않는 거지?
모노로그: 걱정 마라. 네 몸은 전혀 다치지 않는다. 아주 잠깐 무서울지라도 고통 또한 없다. 너는 잠시 뒤 눈을 뜬 순간 해변에 있을 것이다.
카나리 케이토: 그럼 됐어! 좋아. 좋아… 후. 넌 할 수 있어. 카나리. 넌 할 수 있어.
카나리 케이토: 지금까지 혼자서 잘 해왔잖아. 아무리 혼자여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괜찮을 거야.
카나리 케이토: …후우. 후우. 후우.
카나리 케이토: 좋아. 가자. 지금 간다…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카나리 케이토: 좋았어. 이 안으로 몸을 던지는 거야…
카나리 케이토: 정신 차려.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그래. 해 보자!
카나리 케이토: 무서울 거 하나 없어. 자신감을 가지라고! 나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카나리 케이토: 흐흑… 으으… 젠장. 젠장… 가자…!
카나리 케이토: 으으으으으… 망할… 어둡잖아아… 어디로 가는 거야…? 대체 어디로…
카나리 케이토: 으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
카나리 케이토: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콜록. 콜록! 뭐. 뭐야. 아무것도 안 보여. 여긴 대체 어디…
카이다 쿠로하: 어. 하하! 이게 누구야?
카나리 케이토: 카… 카이다?!
카이다 쿠로하: 너 마침 잘 만났다.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우리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어요. 아쉬움에 쓴 맛을 곱씹을 뿐…"
칸나즈키 시노부: 그럼 손가락질 안 할 테니까 말해 줘. 너 근처로 카나리가 갔어?
카이다 쿠로하: 이걸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카이다는 뒷짐을 지고는 카나리 쪽을 물끄러미 보며 낄낄거렸다.
카나리 케이토: 말… 말하던가. 어차피 난 검정이 아니야! 살인 따윈 안 저질렀어. 그러니까 마음껏 말해! 어차피 난 상관없다고!
후루미나미 나몬: 표정에서 당황한 티가 팍팍 나네. 카나리.
흐뭇하게 카나리를 바라보는 후루미나미의 말마따나, 카나리는 두 눈을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나시: 당황했겠지. 자기가 벌인 일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은 몰랐겠지. 하지만 털어놔. 카나리. 검정을 잡기 위해선 너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이바라 쿠리스: 잠깐. 나나시!
이바라는 나나시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바라 쿠리스: 그게 무슨 말이야? 검정을 잡기 위해 카나리가 뭔가를 털어놓아야 한다니.
나나시: 그게 왜?
이바라 쿠리스: 왜냐니. 네 말은 마치… 카나리가 검정이 아니라는 것 같잖아.
나나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카나리 케이토: 그래! 난 검정이 아니라고!
카나리는 너무 안도한 나머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잽싸게 훔쳤다.
히무로 시라베: 그렇지만 살인과 큰 관련이 있겠지?
나나시: 그러니 빨리 말하라고 하는 거야.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하기와라 우시오: 쟤가 검정이 아니라고? 그만 재고 자세히 말해 봐 봐.
나나시: 일부러 해변에 있던 세 사람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와 캐롤 씨는 한 번 보급 특권을 손에 넣어서 나이토와 모리에게 항생제를 보내 뒀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뭐? 언제?
나나시: 12시쯤. 나이토가 죽기 2시간 전이지.
하기와라 우시오: 뭐야. 난 그런 거 몰랐는데.
모리 레이코: 나 또한 금시초문이다.
그것이 사건에 있어서 가장 불가사의한 점이었다.
분명 항생제가 보급되었는데, 누구보다 항생제에 대해 민감할 해변의 인원들이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나나시: 카이다는 정황상 살인이 벌어지기 전부터 숲 속에서 해변의 인원 중 누군가를 인질로 잡기 위해 매복해 있었어. 숲 속이든 해변의 바위 뒤든 아무래도 좋아.
모리 레이코: 첩자의 목적이 인질인지는 어떻게 알지?
나나시: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인질을 잡았으니까. 카이다의 목적은 미도리카와의 부활을 막는 거야. 시련을 족족 방해한 것으로 봐선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카이다는 내통자니까 모노로그의 지시일 테지.
나나시: 그런데 살인이 일어나면 경주마들은 곧바로 탑으로 돌아와야 해. 시련에 더 이상 도전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그걸 위해 카이다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적어도 항생제의 투여를 막아야 했어. 그리고 인질을 가지고 협박하면 항생제의 투여를 막던가, 적어도 해변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지.
후루미나미 나몬: 중요한 건. 나나시가 자신의 경주마인 모리에게로 간 것처럼 카나리도 자신의 경주마인, 카이다 근처에 떨어졌을 거란 거지!
나나시: 생각해 봐. 카이다의 눈앞에 카나리가 느닷없이 떨어졌으면, 그녀는 카나리를 가만히 두거나 지켜 줬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이용할 방법을 찾으려 했을까?
답은 명료했다. 카이다의 증언.
카이다 쿠로하: 그래. 딱하니까 내가 인정할게. 내가 보낸 사람이 있어.
토키와 아유키: 카이다가 카나리를 이용했다면…
23T5U130: 카이다라면 카나리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마유즈미가 카이다를 막으러 간 사이, 카나리가 잠든 누군가를 인질로 잡는 계획이었던 거지.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 그랬던 거야?! 내가 총을 가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안 거지? 누구한테 알려준 적도 없는데…
하기와라 우시오: 나도 깨어난 뒤에 겨우 알았어! 마유즈미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걸로 카이다랑 기싸움에서 이겼다니 안 믿겼다니까.
카이다 쿠로하: …….
카이다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히무로 시라베: 카이다는 마유즈미에게 총이 있는 줄 몰랐던 거야. 알고 있었다면 카이다도 쉽게 당해주지는 않았겠지.
카이다 쿠로하: 쉽게 안 당했어. 이 개자식아! 모르면 닥치고 있어!
마유즈미 나데시코: 맞아. 히무로…
이바라 쿠리스: 아니. 잠깐… 왜 이렇게 복잡해? 그러니까 카이다의 원래 계획이 인질 잡는 거였는데, 마유즈미가 총 있는 건 몰랐고, 카나리가 해변으로…
나나시: 카이다를 중심으로 사건을 다시 짚어보자. 카이다는 마유즈미가 총을 가진 지 모르고 모닥불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를 인질로 잡으려 했어. 그런데 그 와중에 카나리가 해변에 나타났지.
나나시: 아마 카이다는 카나리에게 단검을 주면서, 이걸 써서 사람을 죽이라고 종용했을 거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건 틀렸어! 빠방!
마유즈미가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든 채 호기롭게 외쳤다. 다른 손에 언총이 들려 있는데도.
나나시: 어디가 틀렸다는 거야?
마유즈미 나데시코: 카나리가 사람을 죽이면 카나리도 처형당하잖아. 카이다가 그걸 모르고 카나리에게 그런 짓을 시켰을 것 같진 않아.
나는 잠시 마유즈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카이다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알고서도 카나리에게 살인을 종용한 것일 텐데?
나나시: …그렇지만 그건 카이다와 상관이 없어. 자기 일이 아니니까. 살인을 일으켜서 해변의 모두를 탑으로 불러오기 위해. 카나리의 목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겠지.
나는 나나시의 말을 듣고 마유즈미의 생각을 이해했다. 마유즈미는 카이다가 카나리의 목숨을 신경 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카이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영혼을 팔 준비도 되어있는데도.
마유즈미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듯한 의아함과 허탈함이 떠올랐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럴 수가…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카이다가 받은 단검은 카나리한테 있는 거냐? 자기가 카이다한테 보급한 단검을 다시 돌려받은 거야?
모리 레이코: 아마 지금은 어딘가에 버렸을 테지. 그가 단검을 받는다고 사람을 죽일 수 있으리라곤 보이지 않는다.
나나시: 그 말이 맞아. 카나리는 카이다만큼이나 자기 목숨을 아껴. 살인을 일으키려 했던 동기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였어.
후루미나미 나몬: 적어도 난 내 목숨 보전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나나시: 네가 더 악질이니까 입 다물어. 아무튼. 카나리… 이제 얘기 좀 해 줄래?
카나리의 쪽을 바라보자.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눈물을 조금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카나리 케이토: …너희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난 어쩔 수 없었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23T5U130: 너에겐 늘 선택의 여지가 있었어. 카나리. 누군가가 해변에서 죽도록 유도하지 말고 우리와 손을 잡는 선택지가, 줄곧 너에게 있었지. 그걸 외면한 건 다름 아닌 너야.
카나리는 23T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칸나즈키 시노부: 그렇지만 그것도 이상하지 않아? 이미 카나리를 보내서 사람을 죽여 놨을 거라 생각했는데. 굳이 마유즈미를 인질로 잡기 위해 접근하다니?
나나시: 아마 카이다도 카나리가 사람을 죽이는 정도까진 바라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누가 자길 막으러 오면 모닥불로 가서 한 명을 인질로 잡으라는 지시 정도는 내렸겠지.
야가미 토가: 그리고 카이다 씨가 모닥불 근처로 향했을 때. 카나리 씨가 모닥불에 오지도 않았으니 혼잣말을 하신 거군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정황 증거와 추론이 이어졌는데도 카나리의 표정은 편해지지 않았다. 아직 켕기는 점이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켕기는 점이 있을 수밖에.
카나리 케이토: 나는 사람을 죽인 적 없어.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를 했다.
나나시: 말해. 카나리… 말해.
나나시는 두 팔을 자신의 재판 지정석 위에 올려놓고 카나리를 내려다보듯이 물끄러미 보았다.
카나리는 나나시의 시선을 피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카나리 케이토: 그렇지만… 도둑질은 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오호라. 내 라이벌인가?
토키와 아유키: 도둑질? 뭘 훔쳤다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할머니 연금이라도 훔친 게 아니면 숨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곧바로 말해.
하기와라가 짜증을 내는 기색으로 카나리에게 말했다. 그것이 과연 도움이 될지 카나리를 움츠리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지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 카나리에게 누군가가 한 마디를 덜 하거나 더 하더라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라고 종용해도, 말 안 해도 된다고 달래도 결국 카나리 본인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에.
나나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미 다 알아. 넌 절대 도망 못 쳐… 그러니 지금 당장 말해.
히무로 시라베: 카나리. 누군가를 위해서 말하는 게 아니야. 너 스스로를 위해서 말해야 하는 거야.
카나리 케이토: 난 항생제를 훔쳤어!
카나리는 마침내 소리쳤다.
나나시: …대체 왜 그런 거야?
카나리 케이토: 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카이다가 나한테 사람을 죽이라고 시켰단 말이야. 안 가면 내 쪽에서 자길 죽이겠다고! 내 손가락에 칼을 대면서 협박했어…
히무로 시라베: 카이다에 의해 억지로 갔지만 도무지 살인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고.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이토와 모리 근처에 있는 항생제로 눈이 간 거야.
모리 레이코: 네가 바로 모닥불에 찾아온 이였군. 게다가 항생제까지 훔쳐갔다니…
모리의 낮은 목소리를 들은 카나리는 차마 모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카나리 본인의 효과적인 증언을 위해서는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랐다. 모리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멸과 원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리 레이코: 그러지 않을 수는 없었던 건가…?
카나리 케이토: 그렇지만 나도 어쩔 도리가…
나나시: 계속 말해. 카나리.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카나리는 울상을 짓고 말했다.
카나리 케이토: 너희들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감 오잖아… 나도 죽는데 사람을 어떻게 죽여. 대신 항생제를 가져간 거야. 저것들이 보낸 항생제를 빼앗으면 언젠가 감염으로 죽긴 죽을 테니까. 내가 검정이 되진 않으면서…
후루미나미 나몬: 아니. 네가 검정이 됐겠지! 네가 항생제를 가져가서 모리와 나이토가 감염으로 죽으면, 네가 도둑질을 해서 사람을 죽인 셈인걸.
카나리가 후루미나미의 말을 듣고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의 회중시계가 놀라운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제 와서 두렵다는 건가.
모리 레이코: 정작 내가 항생제의 존재를 모른 이유가 그것인가?
히무로 시라베: 너희가 자는 사이에 카나리가 훔쳤으니까 모르더라도 무리는 아니지.
카나리 케이토: 그렇지만 난 정말 검정이 아니야… 내가 한 일은 이게 다라고!
나나시: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지 마. 카나리. 큰 문제를 만들었으니까.
토키와 아유키: 카나리. 그 다음엔 뭘 했어?
한 번 뚫린 카나리의 입은 생각보다 나풀거렸다.
카나리 케이토: 그 다음엔 한 거 없어. 카이다가 못 보게 바다 따라서 그냥 도망쳤단 말이야. 칼도 근처에 버렸어…
이바라 쿠리스: 또 거짓말이야?
카나리 케이토: 거짓말이 아니야. 믿어 줘!
토키와 아유키: 이제 와서 믿어달라고 해도 말이지…
온화한 성정이 대부분인 이들 사이에서 미움받는 일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나리는 의도적으로 모든 관계를 망쳐온 사람 같았다. 아마 그가 옳은 선택을 적재적소에 했더라면 지금쯤 그를 두둔하는 이들도 몇 명 있었겠지.
마유즈미조차 두둔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적절하지 않은 동정심마저 느꼈다.
나나시: 카나리를 믿지 말고 사실을 믿으면 돼. 범행의 증거는 카나리를 가리키고 있지 않잖아.
카나리 케이토: 그래. 얘 말이 맞다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럼 검정은 대체 누구야? 역시 카이다…?
카이다 쿠로하: 웃기는 소리 마!
나나시: 다들 카나리와 카이다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단정할 순 없어.
카이다 쿠로하: 옳지. 이 새끼는 그래도 생각 머리가 있네.
나나시는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카이다의 말을 무시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 저 새끼가 항생제 훔쳐갔는데도 검정은 아니라고?
나나시: 카나리가 어떻게 범행을 저지른 건지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나나시의 말에 하기와라는 할 말을 잃었다.
검정은 나이토를 찔러 죽였으며, 15m를 끌고 오는 동안 핏자국은 조금밖에 남기지 않았다. 카나리와 범행의 수법을 연결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던 것이다.
야가미 토가: 애초에 카나리 씨는 살인을 저지르는 대신 항생제를 가지고 도망친 것입니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던 카이다 씨와, 살인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카나리 씨는 검정의 유력 후보에서 제외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결국 모닥불 주위에서 자던 세 명 중에 범인이 있다는 거야…? 나. 마유즈미. 그리고 모리?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니 설마… 하기와라랑 나이토는 친구고, 모리는 다쳤잖아! 나도 아니고!
하기와라 우시오: 내가 하기엔 뭐한 말이지만 탑에선 아무것도 믿으면 안 돼. 마유즈미. 사실 너도 못 믿겠다. 왜냐면 난 계속 퍼잤거든? 네가 나 자는 사이에 뭘 했는지 모른다고.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럴 수가!
마유즈미는 항변하듯이 소리쳤으나 그녀 자신 또한 자신이 검정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었기에. 격렬하게 항변하지는 못 했다.
후루미나미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잽싸게 입을 열었다.
후루미나미 나몬: 마유즈미는 5시경에 눈을 뜨고 카이다와 대치했다지? 별다른 전조도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고.
후루미나미 나몬: 카이다의 기척에 마유즈미 속에서 움트는 총잡이가 반응했다기보다는 그냥 마유즈미가 살인을 저지른 뒤 깨어 있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아?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건 말도 안 돼!
후루미나미 나몬: 당연히 말이 돼지!
논리적으로 봤을 때. 후루미나미의 말에 틀린 점이 없다는 것이 애석했다. 마유즈미가 살인을 저질렀을 확률은 낮았다. 그것도 무척. 그러나 그것이 0은 아니었다.
결국 하기와라마저 본래의 명석함을 잃은 채 소리쳤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거 진짜 불가능 아니야?! 진짜 아무리 봐도 마유즈미는 아닌 것 같은데 난 확실하게 안 했다고. 모리는 애초에 불가능할 테고!
마유즈미 나데시코: 맞아. 우린 확실하게 아니야! 게다가 나이토의 몸을 자르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야.
야가미 토가: 그렇지만 살인자가 이 안에 있는 건 사실 아닙니까. 살인자가 하늘에서 떨어진 다음 땅으로 꺼졌을까요?
후루미나미 나몬: 오호라. 제3의 인물 등장 설인가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카이다 쿠로하: 하. 이 새끼들 좀 봐. 정신을 못 차리잖아! 하하!
토키와 아유키: 검정은 누구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 텐데.
이바라 쿠리스: 사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세 명 중에 살인자가 있다니…
모리 레이코: 지금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가 아닐 텐데. 실망스럽군.
나나시: …실망스럽다고?
저마다 해야 할 말을 쏟아내는 와중에. 모리 쪽을 바라보는 나나시의 중얼거림은 이상할 정도로 내게 잘 들렸다.
모리 레이코: 그렇다. 지금은 현실도피를 할 때가 아니다. 그저 누가 범행이 가능했는지를 차근차근 짚으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한다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모리 레이코: 이들에겐 지금 혼돈의 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주의를 돌릴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길.
모리는 두 손가락만이 남은 왼손으로 언총을 쏘려다 언총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오른손으로는 목발을 짚어야 했기에. 어느 쪽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나시는 물끄러미 모리를 보고 있다가 바닥에 떨어진 언총을 주워 그녀의 주머니 안에 꽂았다.
모리 레이코: 고맙다.
나나시는 대꾸하지 않은 채로 총구가 위를 보게끔. 천장을 겨누고서 말했다.
나나시: 지금 이걸 하려는 거지?
모리 레이코: 그렇다.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할 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해라. 지금이다.
나나시가 총구를 위로 겨눈 뒤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다. 이어진 언총의 격발음은 다른 이들의 말소리를 압도하고, 지금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집단적인 독백이 아니라 논의임을 다시 재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재판이 시작할 때 내가 비슷한 일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말소리가 일제히 사그라들고 이목이 나나시의 쪽으로 쏠렸다.
나는 재빠르게 재판의 방향을 재설정했다.
히무로 시라베: 고마워. 나나시. 일단 다들 진정해 봐. 범인이 어떻게 나이토를 죽인 건지 다 같이 풀이해 보자.
나나시: 그래. 아니면 조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증거를 조립해 그 정황을 맞추는 일이 될 테니…
나나시: 하기와라. 네가 그랬지? 이건 불가능 살인이라고.
하기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정정하자면, 일어났으니 가능 살인이겠지만 이해가 안 된다고 했어.
나나시: 그래. 어떤 면에서 불가능해 보인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오케이. 이건 내가 다이얼로그로 찍어 놓은 사진이야. 다들 이거 봐봐.
하기와라가 보여주는 사진은 나이토의 시체 쪽에서 몇 미터 부근 동안 묻어있는 핏자국. 나이토가 바닥에 끌린 것처럼 보이는 핏자국이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걸 보면 알겠지만 나이토의 시체는 바다에서 15m 이상 떨어져 있어. 핏자국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나이토의 물이 몸에 젖어 있고, 몸은 반으로 잘려 있고, 가슴에는 단검이 꽂힌 흔적이 있지.
하기와라 우시오: 우리가 물어봐야 할 건 이거야. 아니 씨발 대체 뭐지? 이걸 어떻게 한 거야? 자고 있는 나이토를 어떻게 꼬드겨서 바다까지 데려갔고, 몸은 어떻게 잘랐고, 자른 몸을 어떻게 해변 가까이로 가져왔고, 애초에 나이토를 어떻게 소리 없이 찔렀어?
히무로 시라베: 우선 가장 불가사의한 건 나이토의 다리가 어떻게 사라졌느냐겠지.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피해자의 사라진 하반신. 나이토의 다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그리고 애초에 다리를 잘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정신을 집중한 뒤 과녁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가재 괴물.
마유즈미 나데시코: 가재 괴물? 데드. 어. 첨?
하기와라 우시오: 데드. 어. 체크야. 정확히는.
토키와 아유키: 가재 괴물의 존재는 우리도 모니터실에서 봤어. 발목이나 손가락을 자를 정도로 강하다고 하던걸.
모리 레이코: 실제로 그만큼 강하다. 사람의 뼈도 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지.
가재 괴물에 의해 발목이 잘렸던 모리가 한 말이었기에. 재판장 안의 이들에게는 설득력이 무척 높았다.
모리 레이코: 그러나 가재 괴물이 승부사의 몸을 잘랐다기엔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가재 괴물의 집게는 확실히 강력하다. 그러나 두꺼운 허리를 반으로 절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모리 레이코: 그러니 가재 괴물이 승부사의 다리를 어떻게 사라지게 만들었는지 논하고자 한다면,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나나시: 애초에 절단한 게 아닌 거지.
나나시가 자신의 과녁에 방아쇠를 당겼다. 몸에 남은 단면.
이바라 쿠리스: 그렇지만 절단… 이었잖아.
나나시: 결과적으론 절단처럼 보였지만 절단된 게 아니었어.
카나리 케이토: 절단이 됐다는 거야. 안 됐다는 거야?
히무로 시라베: 레몬을 하나 강판에 간다고 가정할 때. 갈리고 남은 반쪽을 두고 절단되었다고 부르진 않잖아. 비슷한 거야. 반만 남았다고 해서 꼭 절단되었다고 부를 순 없어.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절단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나이토의 다리가 사라졌다는 거야?
히무로 시라베: 그래.
모두가 수사 도중 나이토의 시체를 보고 몸의 반쪽이 잘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남은 나이토의 몸이 크게 손상되어 있더라도 과격하게 잘랐다고 생각할 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체는 논리나 익숙함의 영역에 있지 않은 법이었다. 그러나 몸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몸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만한 가장 논리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그것은 절단이었다.
나나시: 가재 괴물이야. 하기와라.
나나시가 그렇게 말하자 하기와라의 눈에 의문이 아주 잠시 차올랐고, 다음 순간 의문은 확신으로 변했다.
하기와라 우시오: 아. 씨발 진짜 미친… 이거 진짜야? 진짜냐고. 흐흐…
하기와라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광증을 내비치듯이 얕게 웃었다.
이바라 쿠리스: 야. 너 왜 웃어…? 아니 잠깐. 너 지금…
마유즈미 나데시코: 가재 괴물이 왜…?
모리 레이코: 정말 애석하군.
토키와 아유키: 그렇지만… 그건 너무한데.
재판장 안의 인원들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잔혹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이토 같이 선한 이가 겪기에는 더욱 잔혹한 수모였다.
후루미나미 나몬: 나이토의 몸 절반은 가재 괴물한테 먹힌 거야!
후루미나미가 명쾌하게 말하자 무척이나 가능성이 높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의혹이. 진실로 변했다.
마유즈미 나데시코: 흐윽…!
칸나즈키 시노부: 정말 너무하는 것 같아.
하기와라 우시오: 이건 씨발. 좀… 그렇지 않나요.
이바라 쿠리스: 그. 그게 확실한 거야? 정말 나이토가 죽은 뒤에도 그런 식으로 능욕을 당했다고…?
히무로 시라베: 그럼 여러 의혹이 해결돼. 나이토의 사라진 하반신. 가재 괴물이 먹어치웠기에 사라졌고, 절단면이 훼손되어 있었던 건 가재 괴물이 살을 뜯어먹은 흔적이지. 사실 절단면도 아니야.
히무로 시라베: 또 나이토의 감염도 있어. 분명 발에서 시작된 감염이 몸에 잔뜩 퍼져 있었지? 부리와 집게에서 분비되는 가재 괴물의 독이 포식된 부위를 따라 퍼진 거야. 그래서 혈관 곳곳에 감염이 넓게 퍼진 것처럼 보였고.
야가미 토가: 아무리 믿기 어렵더라도, 또 믿고 싶지 않더라도 믿을 수밖에요. 진실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이미 수용에 있는 것이니까요.
이바라 쿠리스: 그렇지만 너무 잔혹해… 왜 그래야만 했던 거야?
후루미나미 나몬: 검정한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해해 주자.
이바라는 후루미나미의 능청스러운 말투를 듣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바라 쿠리스: 뭘 이해해. 어떻게! 나이토가 살아있는 채로 그런 걸 당해줄 리가 없어. 시체의 다리를 가재 괴물로 하여금 먹게 한 거겠지. 이미 죽은 나이토를 왜 가재 괴물한테 욕보이냐는 말이야. 대체 왜…!
이바라 쿠리스: 대체 검정이 누구야.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변에 있기는 해…?
마유즈미 나데시코: 맞아. 너무하잖아… 어떻게 나이토한테 이럴 수가 있어!
토키와 아유키: 나도 믿고 싶지 않아. 왜 그래야만 했던 거지?
야가미 토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겠죠.
해변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들에게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모닥불은 효과적이었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 서로의 약점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면 어쩔 수 없이 유대감이 싹트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다? 그것도 가재 괴물에게 나이토의 반신이 먹히게 만들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더러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움트기 시작할 때. 누군가가 그 새싹을 잘랐다.
모리 레이코: 정신 차려라.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재판장에 있는 것이다.
모리는 싸늘하게 말했다. 살인이 일어난 후 그녀에게서 감도는 처연한 기색 때문에 그녀의 말은 더욱 차갑고 쓸쓸하게 재판장 속에서 울렸다.
모리 레이코: 이 재판을 이기지 못하면 검정을 제외한 모두는 죽는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지금 받아들여라.
하기와라 우시오: 너는 그렇게 쉽게 털어낼 수 있겠지만 우린 아니야. 오스트랄로 사이코패스 씨.
모리 레이코: 누가 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는 거지?
모리의 어조가 아주 조금 높아졌다.
후루미나미 나몬: 어라라? 이건 의왼데…
나나시: 이제 와서 그러는 거야?
나나시는 무덤덤하게 물었다.
모리 레이코: 철혈일지라도 늘 차가우라는 법은 없다. 나 또한 승부사가 죽은 것에 애석함을 표하지.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을 말이야. 자신의 과오도, 잘못된 행동도.
모리는 안이 채워지지 않아 축 늘어진 장갑의 왼쪽 엄지, 검지, 중지 부분을 바라보더니 나머지 두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고 언총을 꺼냈다.
모리 레이코: 모르겠나? 지금 승부사가 원할 일은 생존자들이 이런 곳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다. 다시금 일어나는 것이지.
모리 레이코: 그러니 잔혹한 일을 누가 했느냐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라. 누가 했느냐는 결국 사고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경우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누가 했느냐를 밝혀내기 전, 어떻게 했느냐를 먼저 밝혀내야 한다.
모리의 말은 타당했다. 재판장의 모두가 사고를 더 확장시키지 못하는 것은 검정 후보 세 명이 전부 나이토의 몸을 가재 괴물에 먹이지는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검정의 범행 수법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을 지목하는 편이 효율적일지도 몰랐다. 결국 학급재판의 답은 재판장 안의 모두가 납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모든 단서를 알고 가장 유력한 후보를 지목한다고 한들 과정을 납득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용의자들로부터의 논파도 없었고 재판장 속에서 의견도 갈리지 않았기 때문에 학급취조도 없는 재판 속에서 빠른 길이나 더 효율적인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재판장 안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시밭길 같은 삶을 살아가듯이 논리의 한 발자국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내딛는 것뿐이었다.
23T5U130: 어떻게 했느냐… 어쩌면 이게 제일 큰 수수께끼일지도 몰라.
23T는 과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바다와 시체 사이의 거리.
23T5U130: 정황상 나이토의 반신이 가재 괴물에게 먹힌 건 확실해. 그렇지만 어떻게 나이토의 몸을 15m 넘게 끌고 간 거지?
히무로 시라베: 그것도 핏자국은 몇 미터밖에 남기지 않으면서 말이야.
바다로 향하는, 끊긴 핏자국.
후루미나미 나몬: 두 사람의 말이 맞네! 가재 괴물이 먹어치운 시체 단면은 자네들도 봤겠지만 무척 훼손되어 있었지. 피가 많이 흘러나왔을 텐데 정작 혈흔이 남은 건 몇 미터뿐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칸나즈키 시노부: 핏자국을 일일이 지웠던 거야!
토키와 아유키: 모래에 스며들었을 핏자국을 어떻게 쉽게 지울 수 있겠어?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애초에 처음부터 안 묻었다는 게 더 있을 법하겠다!
나나시: 네 말이 맞아. 하기와라. 처음부터 안 묻은 거야.
나나시가 그렇게 말하자 하기와라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하기와라 우시오: 이거 무슨 뜻?
야가미 토가: 시체를 바다에서부터 모닥불까지 옮겨오는 과정에서 피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하기와라 우시오: 모래사장에 뭘 깔아 두기라도 했나…? 아하!
자신의 말꼬리를 올리던 하기와라가 탄성을 내뱉었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거인가? 그거야. 그거!
이바라 쿠리스: 그거 같은 소리 말고 말을 좀 해…
23T5U130: 수레야. 수레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버려진 수레.
23T5U130: 바닷속을 수색해보자는 의견이 있어서 주변의 가재 괴물을 정리한 끝에. 우리는 수레를 하나 찾았어. 모리가 카이다를 담고 익사시키려 했던 물건이지.
모리 레이코: 그게 아직 바닷속에 있었군.
칸나즈키 시노부: 내가 보냈어!
카이다 쿠로하: 뭐? 네가 보냈던 거야?… 너 나중에 다시 보자. 그런데 그 수레가 왜? 너희들이 수레를 바다에서 꺼냈던가?
23T5U130: 내 생각은 이래. 검정은 상체만 남은 나이토의 시체를 수레에 실은 뒤에 수레를 끌고 모닥불까지 온 거지. 그러니 모래에 피가 묻지 않았던 거야, 다 쓴 수레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 거고.
히무로 시라베: 그건 틀렸어.
가재 괴물. 버려진 수레라는 글자를 노리고 쏘자 글자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 와중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검정은 왜 이런 식으로 논파를 하고 있지 않지? 이대로 논리가 사건의 해결까지 닿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작정인가?
23T5U130: 어? 어느 점에서?
히무로 시라베: 수레를 발견할 당시를 떠올려 봐. 네가 주변의 가재 괴물들을 다 처리한 다음에야 수레를 발견할 수 있었잖아. 23T의 강철 몸이 아닌 이상 바닷속으로 발을 내딛고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후루미나미 나몬: 그렇지만, 수레의 위치를 미리 알고 그걸 이용할 수 있었다면 어때? 우리가 발견한 수레는 사실상 한 번 사건에 쓰이고 다시 버려진 수레잖아.
모리 레이코: 그럴지라도 수레를 활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아무리 얕더라도 바다 속일 텐데. 가재 괴물에게 어떻게 될지 알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지?
모리의 말을 듣고 이바라는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이바라 쿠리스: 으. 머리 아파… 그럼 수레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거야…?
나나시: 맞아. 수레는 그냥 버려졌을 뿐이야. 이 사건에서는 쓰이지 않았어.
칸나즈키 시노부: 질문! 그럼 어떻게 바다에서부터 모닥불까지 나이토를 옮겼는데. 핏자국이 안 남은 거지?
나나시: 핏자국을 남기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남을 수가 없었어.
나나시는 반문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의문점을 없애겠다는 듯이 이어서 말했다.
나나시: 범행의 수수께끼들은 바다가 나이토의 시체에서 멀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검정이 나이토를 죽이고 하반신을 가재 괴물이 먹게 했다고 가정해도, 피가 철철 나오는 시체를 끌고 가면서 중간에 핏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이상해. 끝부분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야.
나나시: 하지만 바다가 나이토의 시체에서 멀지 않았다면?
마유즈미 나데시코: 어… 멀었잖아. 15m.
마유즈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나시: 아니. 15m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어. 기껏 해야 4m 정도였을 거야.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15m가 떨어진 거리처럼 보였지만, 사건 당시에는 바다와 시체 사이가 그렇게 멀지 않았던 거지.
만조. 높아진 바닷물들에 가재 괴물들의 질문 소리가 들렸다. 우리 모두는 이미 이 질문들에 익숙해져 그 시끄러운 소음 사이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대신에 아무 말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밀물과 썰물.
나나시: 밀물과 썰물 때문이야.
토키와 아유키: 밀물과 썰물…?
히무로 시라베: 너희는 해변의 상황을 어떻게 봤는지 모르지만 만조가 되면서 가재 괴물들은 파도를 타고 나와. 모닥불을 피워 놓은 뒤로부터 가재 괴물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바다가 가까이 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나나시: 핏자국이 지워진 게 아니야. 핏자국이 남지 않은 것도 아니야. 핏자국은 처음부터 저게 전부였어.
후루미나미는 나나시의 말을 듣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스케치북과 아프로 가발을 꺼냈다.
후루미나미 나몬: 사건 당시 현장을 예측해본 거랍니다. 어때요. 사람 죽이기. 참 쉽죠? 저 정도만 끌고 오면 되니까요.
마유즈미 나데시코: 아. 맞아. 그랬었지…! 왜 저걸 까먹고 있었을까?
이바라 쿠리스: 나는 지금 알았어. 뭐야? 해변은 그냥 세트장 비슷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파도가 구현돼 있는 거야?
하기와라 우시오: 그건 우리도 몰랐지. 탑은 초현실파 화가의 낙서 같은 곳이잖아. 왜 이제야 파도에 대해서 떠올렸을까…? 나 진짜 멍청하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래. 파도. 파도가 친다는 건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말과 똑같잖아. 이런 당연한 걸 이제 알았다니!
나나시: 주의를 하지 않으면 모니터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을 볼 수 없고, 반대로 해변에선 파도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뭣보다 시체 앞에서 우린 적잖이 당황했잖아.
히무로 시라베: 나도 밀물과 썰물 탓에 시체를 핏자국 없이 옮겼다는 착각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만, 3시간 만에 물이 그 정도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야.
후루미나미 나몬: 그건 제가 설명드리죠!
후루미나미가 안경을 쓰고선 스케치북에 작은 회초리를 가져다 대고는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말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간조와 만조 사이에는 약 6시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답니다. 가장 물이 깊게 들어오는 때와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때가 6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거죠. 3시간 차이라면 유의미한 바닷물이 빠져나가지 않았을까요?
카나리 케이토: 진짜 엄청나게 똑똑하네. 이것들…
카나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야가미 토가: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정말 큰 진전입니다. 이로써 나이토 씨를 모닥불까지 옮겨오는 불가능한 과정이 가능하게 바뀌었어요.
나나시: 그래. 이론상 누구라도 가능했겠지…
나나시는 그렇게 말하며 서서히 후루미나미의 스케치북 쪽에서 시선을 돌렸다.
히무로 시라베: 가장 큰 수수께끼가 풀린 이상 남은 증거와 사람을 대조하면 검정을 알 수 있어.
나나시: 너도 알아낸 거야. 히무로?
나나시가 날 보며 말했다.
히무로 시라베: 검정을 알아냈냐고 묻는 거야?
나나시: 그래. 마치 다른 사람더러 증거를 더 생각해보면 검정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자기도 그렇게 해서 검정을 추리했다는 것처럼.
후루미나미 나몬: 꺄악. 역시 내 원픽! 뇌섹남! 사랑해요!
칸나즈키 시노부: 어우. 얘 목소리 진짜 너무 커!
카나리 케이토: 맞는 말이야…
칸나즈키와 카나리가 후루미나미의 양옆에서 귀를 막고 신음했다.
후루미나미 나몬: Oh. sorry!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려면 성량이 커야 하거든.
야가미 토가: 제가 듣기로는 나나시 씨 당신 또한 마찬가지 같은데요? '너도' 알아낸 거냐뇨.
나나시: 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야. 그렇지만… 지금 모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검정 후보가 있는 것처럼. 나도 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어.
하기와라 우시오: 어? 야. 그게 누구야? 들어나 보자! 오늘 나나시 캐리력이 심상치가 않아. 사람이 달라졌어!
나나시는 하기와라의 말에 웃지 않았다.
나나시: 그럼 지금 내가 생각하는 후보를 지목하고 그 논거를 말해 볼까? 사실 너희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최대한 빨리 말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토키와 아유키: 좋아. 말해 봐. 나나시. 나름대로의 논거가 있다면 무엇도 허황된 답은 아닐 테니까.
마유즈미 나데시코: 그래. 나나시! 힘내라! 할 수 있다!
나나시: 알겠어.
나나시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나시: 범인은 모리 레이코야.
다시 한 번 2일 타워… 앞으로 두 편이면 2챕터도 대강 마무리되겠네요 휴
요즘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연재를 쉬어갈 수가 없음 계속 영차영차모드가 유지됨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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