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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프롤로그

더 단크 타워 프롤로그 - 4

by 도타싫어! 2019. 12. 29.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동료들로부터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지. 이 기관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나?"

"샤워실이 있어. 아. 맙소사... 히무로. 괜찮아?"

"앞으로 내가 토마토 냄새를 선호하지 않게 될 거란 점만 빼면."

"미안해... 이제 너도 우리 기관원인데. 이 짓을 한 사람이 누구든 말만 해. 내가 모든 권한을 동원해 다 잡아내서 아주 그냥..."

"괜찮다. 그들이 하는 말은 사실이니까."

"뭐가 괜찮아? 안 괜찮아! 이건 잘못된 거야... 그리고 내가 바로잡을 거야."

"네 실수니까?"

"응?"

"날 이 기관으로 데려온 것이 네 실수 같아서 개선하려는 것인가? 나를 다시 내보내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뭐? 아니. 아니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그래... 네가 더 상처입지 않도록 바로잡으려는 거야."

"나 한 명을 위해서 사건을 키우겠다고? 섣부른 판단이다. 네가 히무로 시라베를 편애한다는 논란이 생길지도 몰라. 논란은 가십이 되고, 걷잡을 수가 없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말이 되는 소문보다 잘 믿으니까. 너를 싫어하게 되면 말이 안 되는 소문도 믿고 싶어 지는 거다. 우수한 이들을 향한 경멸은 심리적으로 매우 빈번이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 기관의 얼굴이 너이니 그것을 차단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너 정도의 위치라면 더 현명하게 처신해야 해. 냉정하게."

"그렇지만 네가 상처를 입었잖아."

"나는 괜찮다. 아직 그들은 신체적 위협을 사용하지 않았고, 설령 그들이 신체적 위협을 사용한들 내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거다. 대몰락 이후 사람들의 성향이 크게 바뀐 것을 고려하면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한 거야... 세상이 변질되었고, 이제 사람들의 본성은 선보다는 악에 가까워졌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게 너에게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할 사유가 되지는 않아. 있잖아. 히무로? 난 널 책임져야 마땅해. 내가 널 이 기관으로 데리고 왔으니까. 그건 실수가 아니라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고 장담할 수 있어. 하지만 내 판단 때문에 네가 상처를 입었다면... 난 네게 상처를 주는 것들을 차단하려고 노력할 거야."

"정중히 네 도움을 거절하지. 내가 이 기관에 들어온 것이 싸구려 가십의 소재가 되는 일은 싫다. 그리고 이 기관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존속되어야 한다. 네가 히무로 시라베를 편애하고 특혜를 준다며 기관이 와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날 믿어라. 난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날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가 성취를 쌓아 기관의 일원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기다려라. 그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난 네 그런 점이 너무 이해가 안 가...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다. 기관원들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뭐라고 했는데?"

 

대화는 기억이 나나, 그 사람은 모른다.

 

단편적인 기억을 짜 맞춰 보려고 해도 한정된 정보밖에 얻지 못한다.

 

이 사람은 나와 같은 기관에 있었다. 여성이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고, 그녀가 나를 기관에 데려온 장본인이다.

 

사려 깊고, 참을성이 많으며, 책임감이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혹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괜찮은 척을 한다. 그녀에 대한 정보 조사와 프로파일링 결과, 대몰락으로 가족을 잃은 과거가 그녀의 자기희생적 태도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모두와 친해지려고 하며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가슴의 가장 깊은 곳은 누구도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이 그녀를 도저히 만족할 수 없게 만든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단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그렇게 그녀 스스로를 서서히 깎아간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녀' 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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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단크 타워

프롤로그: < 신곡 >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모노로그: 하...

 

모노로그는 한숨을 쉬며 우리들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바닥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모노로그는 재생성될 때 바닥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했다. 분명 어떤 눈속임일 터였다. 홀로그램일까, 그러나 아까 인공지능은 모노로그를 부쉈다. 모노로그에 실체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는 모노로그가 바닥을 뚫을 수 있다는 사실과 상충한다.

 

이 탑과 모노로그는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최소 720층인 건물이 공격을 당해 놓고 무너지지 않고 있다니... 물론 그보다 훨씬 작은 건물일지라도 그런 충격 속에서 토대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난 탑 안으로 도망치며 그 정체모를 흐름이 탑에 꽂히는 순간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마주하고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기와라 우시오: 앗. 리스폰됐다.

 

리 레이코: 역시 부숴봤자 의미는 없었나...

 

23T5U130: 이제 내가 왔으니 당신 뜻대로는 안 될 거야.

 

나즈키 시노부: 그래! 당장 꺼져!

 

23T5U130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공지능은 천천히 모노로그를 향해 이동했다. 나는 멍하니 23T5U130을 바라보았다. 그러며 내 기억을 되짚었다. 내가 지냈던 곳, 내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들을 한 번 되짚어보며 난 혼란을 느꼈다.

 

난 이 인공지능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었다. 나나시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위화감이 계속 들었으나, 확실한 건 어디에도 없다. 기억도,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도 전부 불확실했다.

 

확실한 것은 23T5U130과 모노로그가 대립한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만큼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다 쿠로하: 적은 아닌 것 같네. 휴... 쫄려 미치는 줄 알았어. 진짜.

 

이토 유즈루: 이거 믿어도 되는 거 맞나. 너 아까 그 레이저포는 왜 쏜 거야. 누구 하나 다칠 뻔했어!

 

가미 토가: 아니. 다칠 뻔한 게 아니라 저 다쳤는데요.

 

유즈미 나데시코: 야가미가 누굴 다 때리고 왔다고?

 

난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오간 대화의 내용을 되뇌었다. 그동안 23T5U130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23T5U130: 경계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적은 단 하나니까...

 

23T5U130: 모노로그. 저거 하나야.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를 알고 있네.

 

23T5U130: 난 너희들도 알아. 하기와라 우시오. 야가미 토가. 칸나즈키 시노부. 카나리 케이토. 토키와 아유키. 마유즈미 나데시코. 나이토 유즈루. 후루미나미 나몬. 모리 레이코. 미도리카와 아쿠토. 이바라 쿠리스. 캐롤 브라이트. 카이다 쿠로하. 히무로 시라베.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

 

나는 마지막 이름에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 없는 사람? 나나시의 본명이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 설마 저게 나나시의 본명은 아닐 터였다. 

 

기와라 우시오: '이름 없는' 이 성이고 '사람' 이 이름인 거야, '이름' 이 성이고 '없는 사람' 이 이름인 거야?

 

바라 쿠리스: 뭐라고?

 

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이름 없는 나나시의 이름 없는이 성이고 사람이 이름이냐고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이름 없는 나나시의 이름이 성이고 없는 사람이 이름이냐고.

 

바라 쿠리스: 뭐라고???

 

또 대화의 흐름을 놓쳐 버렸다. 농담은 아무리 배워도 너무나 어렵다... 애초에, 저게 농담이었나? 그저 서로 이해하지 못한 대화일 뿐이 아닌가? 저걸 농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농담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나나시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시: 나 진짜 이름 없어?! 아니. 내가 잊어버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말 그대로 이름이 없다고? 그보다 너...

 

23T5U130: 네가 뭘 물어보려는지 알아. 그러나 지금은...

 

모노로그: 지금은 내가 말한다.

 

모노로그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봐도 기계라기엔 움직임이 너무 사람 같다. 분명 사람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 대화를 진행하기 전의 다양한 행동과 표현을 상황에 맞게 완벽하게 구사하는 프로그램은 존재할 수가 없으니.

 

모노로그를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 안에 있을까? 가능성은 높다. 모노로그가 우리를 감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모노로그가 준비한 무대인 만큼 이 탑에는 감시 카메라와 녹음기가 설치돼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 중 누가 허튼짓을 하는지, 교칙을 위반하는지 감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감시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필담을 나눌 수도 있고, 비밀 신호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려면 우리들 안에 숨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량이 매우 적다. 분석할 수 없다. 더 지켜봐야 한다.

 

모노로그: 하려던 말을 계속하도록 하지. 규칙은 여기에 있는 다이얼로그(Dialo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노로그는 입을 벌리더니, 원반처럼 생긴 무언가를 입에서 내뱉기 시작했다. 모두는 경멸이 담긴 야유를 퍼부으며 영문도 모른 채 다이얼로그를 받았는데, 그것은 동그란 스크린 주변에 16개의 다이얼 버튼이 달려 있는 휴대용 기기 같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앗. 다이얼이다! 이거 우리 집에도 있는데.

 

기와라 우시오: 다이얼이 붙은 전자기기... 이건 귀하네요. 현대 기술인데 구식이네. 존나 이상하게.

 

무로 시라베: 이 다이얼은 무슨 용도지?

 

모노로그: 지금은 규칙 확인이 먼저다.

 

규칙 1: 탑에서 사는 기간은 영원합니다.

 

규칙 2: 시체가 3인 이상의 사람에게 발견될 경우 검정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학생들은 학급재판에 참여합니다. 참여하지 않을 경우 규칙 위반으로 간주해 처벌합니다.

 

무로 시라베: 이 3명에 범인도 들어가는 거야?

 

모노로그: 그 질문이 이렇게 빠르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범인이 포함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지.

 

모노로그: '3인에 검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라고 규칙을 정해 두었다고 가정한다. 먼저 하양 2명이 시체를 발견한 후 검정이 시체를 보았는데 시체 발견 방송이 울리지 않는 경우. 셋 중에 무조건 검정이 있다는 걸 알고 수사가 시작되겠지?

 

무로 시라베: 반대로 '3인에 검정이 포함된다' 라고 규칙을 정해 둬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겠지...

 

기와라 우시오: 그보다 이 학급재판은 결국 우리끼리 역전앞재판 찍는 거야? 검사는 누가 해?

 

모노로그: 학급재판에서 너희들은 찾아낸 증거들을 바탕으로 검정을 찾아내야 한다. 변호사도 검사도 없다. 다만 재판장만이 있지. 바로 나.

 

모노로그: 다만 나는 판결만을 내린다. 맞았는가. 틀렸는가. 내가 내리는 것은 그것뿐.

 

규칙 3: 올바른 검정을 지목할 경우 검정만이 처벌을 받습니다.

 

규칙 4: 올바른 검정을 지목하지 못할 경우 검정을 제외한 모든 하양은 처벌을 받습니다.

 

모노로그: 검정을 찾아내는 일은 오롯이 너희들의 일인 거다.

 

무로 시라베: 여기 나오는 처벌은 대체 뭐야?

 

모노로그: 처형이다.

 

바라 쿠리스: 처형?! 사람을 죽인다고?

 

모노로그: 그래. 너희들 모두 자신만의 처형이 있다. 기대해도 좋아. 교통사고. 생매장. 익사. 집단구타. 아주 화려하고 고통스럽게 보내줄 테니.

 

롤 브라이트: 정말 악취미네요...

 

기와라 우시오: 처음부터 처형이라고 써놓지. 왜 처벌이라고 써놨냐? 가시성 안 좋게.

 

규칙 5: 승리한 검정이나 최후의 1인에게는 탑을 오를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리 레이코: 고작 이건가.

 

이토 유즈루: 혹시 너 사람 죽이려는데 보상이 너무 작아서 그러냐?

 

리 레이코: 내가 미쳤다고 나까지 처형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람을 죽일까. 단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거다. 게다가 아까 모노로그는 720층이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지. 최소 720층이다. 그걸 올라서 무슨 의미가 있지?

 

모노로그: 일단 이 탑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으니 올라가는데 문제는 없어. 그리고 꼭대기에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헬기가 준비되어 있지.

 

가미 토가: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사람을 죽여라. 대신 누군가에게 들킬 경우 자신이 죽는다. 이런 거군요.

 

가미 토가: 학급재판은 다수결로 진행됩니까?

 

모노로그: 그래. 과반수의 투표를 얻은 사람이 검정일 경우 하양들의 승리, 검정이 아닐 경우 검정의 승리가 된다.

 

가미 토가: 정답과 오답의 비율이 반반이면요?

 

모노로그: 검정을 답으로 내지 못하면 전부 하양의 패배다. A가 범인인데 A,B,C의 개표 비율이 1:1:1이어도 하양의 패배야.

 

모노로그: 그런 점에선 검정이 조금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지. 굳이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몰지 않아도 그럴듯한 검정 후보만 세워두면 승리할 가능성이 생기니까.

 

규칙 6: 개방되지 않은 층에 침입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모노로그: 현재 너희들에게 개방된 공간은 2,3층 숙소와 전용실, 4층 식당과 양호실, 5층 창고와 도서관뿐이다. 숙소와 전용실은 한 사람 당 한 개씩 지급된다. 방의 열쇠는 나중에 지급하도록 하지.

 

나리 케이토: 더럽게 좁네. 참나. 내가 살던 펜트하우스만 방이 몇 개인데...

 

유즈미 나데시코: 사람이... 방 하나에서 살 수도 있어? 진짜? 나 처음 알았어! 그게 되는 거였구나!

 

저 둘은 내가 사는 세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모양이다.

 

모노로그: 너희의 행동에 따라 주어진 공간은 더 넓어질 수도 있다. 너희들이 학급재판에서 검정을 제대로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층이 개방되거든. 그러나... 결코 최상층까지 갈 수는 없지.

 

모노로그: 살인을 하지 않고 버틴다고 한들 여기서 나갈 수는 없는 거다. 그저 탑에서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질 뿐.

 

규칙 7: 규칙들은 살해를 존중합니다.

 

리 레이코: 이건 무슨 뜻이지?

 

모노로그: 말 그대로. 규칙들은 살해를 존중한다. 살해를 위해 부득이하게 규칙을 어기더라도 어느 정도는 용납해준다는 거지.

 

모노로그: 물론 너무 심하게 위반한다면, 처벌할 수밖에 없지만.

 

규칙 8: 과도하게 고의적인 기물 파손이나 상해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어길 시 교칙 위반으로 간주해 처벌합니다.

 

무로 시라베: 이 과도하게 고의적의 기준은 뭐야?

 

모노로그: 내 주관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뭐야... 다 자기 맘대로래.

 

루미나미 나몬: 원래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규칙의 모호함은, 빌런의 권력과 불합리성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돼.

 

루미나미 나몬: 자신의 기분에 거슬렸다면서 부하들을 숙청하는 잔혹한 악당. 등의 장면이 클리셰 적으로 나오곤 하지.

 

기와라 우시오: ㄴㄷㅆ.

 

규칙 9: 살인 게임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다 쿠로하: 두 명이 남으면 어떻게 해?

 

모노로그: 상대를 먼저 죽이는 쪽이 최종 승리한다.

 

바라 쿠리스: 으... 섬뜩해라.

 

규칙 10: 모노로그는 조사 현장을 훼손하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규칙 11: 모노로그를 공격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습니다.

 

기와라 우시오: 엥? 네 눈앞에 말 그대로 널 반갈죽 낸 장본인이 있는데 이 악물고 모른척하네?

 

모노로그: 저 인공지능은 예외다. 난 저걸 파괴할 수 없어. 생채기도 낼 수 없다. 그게 저 망할 것의 특권이다.

 

23T5U130: 맞아. 난 이 살인 게임 막으려고 특별히 온 거거든. 그래서 규칙도 몇 개는 안 통해.

 

가미 토가: ...왜죠?

 

23T5U130: 왜냐니?

 

가미 토가: 어떻게 모노로그 씨가 당신을 해칠 수 없는 겁니까?

 

23T5U130: 우리는 모노로그의 프로그램에 바이러스를 심어 놨어. 아까 확인했다시피, 모노로그는 기계거든.

 

23T5U130: 바이러스 때문에 모노로그는 특정 행동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어. 나를 파괴하는 것, 너희들의 수사를 방해하는 것 등. 여러 행동들을 금지했지. 그러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탑에서는 여러 행동이 불가능해.

 

23T5U130: 날 보낸 기관과 모노로그는 서로 체스를 두듯이, 서로의 권한과 활동 범위를 좁히고 없애온 거야.

 

가미 토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죠?

 

23T5U130: 모노로그의 정체, 너희들이 여기에 온 이유,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비밀... 을 알리는 것들.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 조차 불가능해. 모노로그는 그런 정보들을 최우선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했거든.

 

가미 토가: 저희들의 전원 생존을 위해 투입되셨으면서 탈출에 도움이 될 정보는 아무것도 말하실 수 없군요. 하나만 묻겠습니다.

 

가미 토가: 당신을 보낸 '기관' 이라는 곳과 광선을 탑에 쏜 세력은 동일합니까?

 

야가미는 탑을 가리켰다. 사실 가리킬 필요도 없었다. 우리의 발밑에 널린 파편이 무기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탑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의 충격. 운석을 방불케 하던 그 섬광을 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3T5U130: 그래.

 

가미 토가: 그런데 당신이 저희의 전원 생존을 위해 투입되었다고요? 저런 걸 탑에 쏜 세력이 저희들의 전원 생존을 바란다뇨.

 

가미 토가: 탑의 파편이 제 머리에 약간만 긁힌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겁니다. 그 무기가 우리에게 정면으로 꽂혔으면 전부 몰살이었어요. 또 제가 카나리 씨를 주워서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는 얼마나 다쳤을지 모릅니다.

 

나리 케이토: 야. 너 없어도 난 괜찮았다니까!

 

가미 토가: 지금은 당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려 노력하실 때가 아닙니다. 카나리 씨.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십니까?

 

가미 토가: 신장 길이만 짧으신 게 아니라 생각도 짧으시군요. 저희는 지금 이 인공지능을 믿어도 되느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단 말입니다.

 

카나리 케이토는 야가미 토가와 그 사이의 눈높이 차이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리 케이토: 이이익... 이게 지금 뚫린 입이라고 말을...

 

무로 시라베: 아무래도 23T5U130을 신뢰하기는 힘들어. 왜냐하면 탑을 둘러싼 돌무더기는 16개였으니까.

 

나시: 그래. 맞아. 누가 나왔는지 불명이던 마지막 돌무더기 한 개가 23T5U130 거였어.

 

유즈미 나데시코: 헐. 완죤 대박. 지금 알았어. 탑에서 떨어지며 나오길래 무슨 킴 파서블처럼 탑에 잠입한 줄 알았는데.

 

무로 시라베: 23T5U130도 돌무더기에서 나왔어. 돌무더기에서 나온 뒤 나와 나나시를 꺼내 주고 숨어있다가 나타난 거야.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지.

 

무로 시라베: 그런데, 돌무더기에 갇힌 사람들은 모노로그가 살인 게임을 위해 납치한 거야. 그렇지?

 

유즈미 나데시코: 그... 렇지? 그렇네. 

 

무로 시라베: 23T5U130도 돌무더기에서 나왔잖아? 모노로그가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23T5U130을 굳이 납치해 자신의 게임에 들여놓는다고?

 

무로 시라베: 물론 돌무더기의 한 개가 원래부터 사람 없이 비어있도록 설계되었고 23T5U130이 모종의 루트로 살인 게임에 난입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 상황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가능성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루미나미 나몬: 모노로그가 자기 자신만의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로 23T5U130을 준비했단 뜻이야?

 

무로 시라베: 난 안타고니스트 같은 거 몰라.

 

루미나미 나몬: 안타고니스트는 고대 그리스 연극의 대적자, 경쟁자를 가리키는 말이야, 반대로 주인공은 프로타고니스트...

 

기와라 우시오: ㄴㄷㅆ.

 

롤 브라이트: 하기와라 씨.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후루미나미 씨를 욕하는 말이라면 그만 쓰시는 게 어떤가요?

 

무로 시라베: 그래도 후루미나미의 비유가 맞긴 해. 모노로그는 자신만의 연극에서 대적자를 꾸며낸 거야. 우리를 방심시키고 기만하기 위해서.

 

루미나미 나몬: 모노로그를 부술 수 있는 유일한 구성원. 불합리한 모노로그의 규칙이 통하지 않고 모노로그의 행동을 제한한 이레귤러. 그것이 하는 말에 따라 희생자를 최소화해라... 그러나 사실 그는 흑막의 내통자...!

 

루미나미 나몬: 말이 되네. 솔직히 재미있어. 설정이 흥미진진한데?

 

가미 토가: 히무로 씨의 주장과 '기관' 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자면... 결국 그 광선은 모노로그 씨의 자작극인 게 되는군요.

 

가미 토가: 확실히 말이 됩니다. 저희는 그때 모노로그 씨의 지시에 불이행하고 있었죠. 그러나 광선이라는 위협에 노출되자 탑에 숨었습니다. 탑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저희들의 두뇌에 자리 잡게 되는 거죠.

 

가미 토가: 애초에 저희를 해칠 생각이 없고 겁을 줄 용도였다면, 그 광선도 진짜 무기가 아니라 영상과 진동을 적절하게 사용한 하나의 눈속임일 수도 있고요.

 

가미 토가: 모노로그가 우리의 비밀을 전부 알고 있다고 선언한 다음, 저희는 모노로그 씨에게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죠. 그러나 공포도 함께 느낍니다. 그 순간 23T5U130이라는 허수아비가 등장하고. 모노로그 씨를 향한 공포는 고스란히 23T5U130을 향한 신뢰와 의존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미 토가: 이제 적당히 잘못된 지시를 내리거나 여러 공작을 펼쳐 저희들이 서로 죽이도록 유도한다... 정말 잘 짜인 판이군요.

 

나시: 아니야. 그건 틀렸어!

 

나나시가 갑자기 소리쳤다. 모두의 궁금증 가득한 시선이 서서히 자신에게 쏠리자, 나나시는 주변을 조금 두리번거리다 당당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몸을 움츠렸다.

 

나시: 어... 큰 소리 내서 미안해. 그렇지만 그 말은 틀렸어. 쟤는 모노로그의 끄나풀 같은 게 아닐 거야.

 

리 레이코: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나시: 왜냐하면... 난 23T를 저번에 본 적이 있는 것 같거든. 23T라고 불러도 되지? 23T5U130은 솔직히 너무 길어.

 

23T5U130: 이름은 제 전부가 아니니 괜찮습니다.

 

...방금 존댓말 쓴 건가? 다른 이들은 집중하지 않았고 나도 놓칠 뻔했지만 분명 존댓말을 썼다.

 

나시: 그래? 23T. 내 말 맞지?

 

나시: 우리... 예전에 본 적이 있지 않아? 그렇지?

 

23T5U130: ...응.

 

무로 시라베: 사실 나 역시 그래. 난 나나시와 23T를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

 

나리 케이토: 뭐야. 그러면서 왜 저 깡통이 모노로그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해? 너와 나나시 둘 다 깡통이랑 면식이 있으면 그거로 된 거 아니야?

 

무로 시라베: 보장할만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의 직감은 신뢰할 가치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나시도 23T를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어.

 

무로 시라베: 문제는 나와 나나시 둘 다 23T를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야.

 

23T5U130: 그래. 너희들은 날 기억할 수 없겠지. 너희들은 전부 기억의 몇몇 부분들을 소거당했으니까. 특히 이름 없는 사람은 모든 기억이 사라졌지.

 

나시: 그래! 난 아무런 기억이 없어! 내 이름이 뭔지도 기억이 없어. 와. 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 와서 다행이야.

 

나시: 우리가 어디서 봤는지, 내 이름은 뭐였는지, 좀 알려 줘! 내가 지금 많이 절박해.

 

23T5U130: 아니. 말 못 해.

 

나시: 어...?

 

23T5U130: 히무로에게도. 나나시 너에게도. 말할 수 없어... 이건 기능적인 문제야. 말 그대로 난 '말할 수 없어'. 모노로그가 금지한 탈출에 대한 정보니까.

 

나나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시: 그런가... 역시 가망은 없는 걸까. 나 기억 찾는 거.

 

무로 시라베: 어쩌면 내가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지만,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관에 대한 얘기라면 나나시에게도 털어놓을 수 있다.

 

모노로그의 바이러스는 23T에게는 통했을지 몰라도 내겐 아니다. 난 기계가 아니니까.

 

나시: 어. 저... 정말?

 

무로 시라베: 그래. 내가 23T와 만난 적이 있다면 분명 기관 안일 테니까.

 

무로 시라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23T. 너 카텟 기관에서 파견된 거야?

 

23T5U130: 맞아. 난 카텟 기관의 명령 하에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 왔어.

 

가미 토가: '카텟 기관' 이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키와 아유키: 나도 마찬가지야.

 

유즈미 나데시코: 호흡기관은 아는데... 카텟 기관은 처음 들어봐.

 

카텟 기관을 모른다고?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모르는 눈치였다. 기억 소거 때문일 테다. 대몰락 이후 카텟 기관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무로 시라베: 기관이 이 곳의 상황을 알고 널 파견했다면 다행이네... 우린 곧 구출될 수 있을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정말?! 와. 다행이다! 집에 갇혀있을 때는 집이 너무너무 싫었는데. 나오고 보니 집으로 다시 가고 싶은 거 있지?

 

나리 케이토: 거짓말이면 가만 안 둬. 이런 거지 같은 곳에선 1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거든.

 

23T5U130: 히무로의 말대로라면 좋겠지만... 네가 기억하는 기관과 내가 기억하는 기관은 상당히 다를지도 몰라.

 

23T의 말을 듣자마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무로 시라베: ...그게 무슨 뜻이야.

 

23T5U130: 네가 납치된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생각해?

 

무로 시라베: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니... 신체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아. 머리카락은 자라지 않았고, 키도 자라지 않았어. 난 내가 납치되고 이 장소에 오자마자 네가 파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23T5U130: 그래... 너에겐 그 기억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무로 시라베: 기관에 문제가 생긴 거야?

 

23T5U130: 네 기억이 꽤 돌아온다면 더욱 괴로운 얘기가 될 거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이런 정보들을 너에게 알려줄 수 없어. 기능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이야.

 

23T5U130: 모르는 게 네게 있어서도 더 나을 거야.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모노로그: 알게 될 거다. 너희들 모두.

 

모노로그가 낮게 웃었다.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모노로그를 조용히 쏘아보았다.

 

알려준다면 내겐 잘 된 일이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가미 토가: 카텟 기관이 뭘 하는 곳인지 물어봐도 대답을 듣긴 힘들 것 같으니 포기하고...

 

가미 토가: 히무로 씨 덕분에 당신의 결백이 증명되기는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럼 왜 모노로그 씨는 당신을 탑에 데리고 온 겁니까?

 

23T5U130: 모노로그가 날 데리고 온 게 아니야. 내가 끼어든 거에 가까워.

 

23T5U130: 모노로그는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없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일단 탑에 도착만 하면 모노로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사람을 살인 게임에 참가시켜야 해.

 

가미 토가: 그러니까 대체 왜... 하. 대답을 받을 수 있는 질문이 아니겠죠. 모노로그 씨 때문에...

 

23T5U130: 광선은 카텟 기관이 쏜 게 맞아. 애초에 저건 너희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아. 이건 보장할게. 저건 오직 탑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23T5U130: 탑의 파편 때문에 야가미가 다치기는 했고 우리도 그런 상황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기관은 광선을 꼭 사용해야 했어. 탑에 손상을 줘야 했거든. 구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탑을 손상시켜야만 했어.

 

나리 케이토: 말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네.

 

카나리 케이토가 피식 웃었다. 비웃음의 좋은 예시로 쓰일 수 있을 만큼 듣는 사람의 기분을 망치는 비웃음이었다.

 

키와 아유키: 23T의 정보가 불만스럽더라도 우린 카텟 기관에게 감사해야 해. 그래도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가 생겼잖아.

 

나리 케이토: 실마리래. 하. 웃겨 진짜. 그놈의 카텟 기관이 뭔지. 우리가 어떻게 여기로 온 건지. 모노로그의 정체는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실마리가 생겼대.

 

키와 아유키: 카나리. 그래도 이 탑을 조사하다 보면...

 

카나리 케이토는 토키와 아유키에게 버럭 소리쳤다.

 

나리 케이토: 난 그런 모호한 건 필요 없어! 난 확실한 게 필요해. 거래처럼 확실한 게 필요하다고. 내가 돈을 주면 그쪽에서 내게 필요한 뭔가를 주듯이. 확실한 걸 원한단 말이야!

 

모노로그: 확실한 것? 카나리 케이토. 그 말 진심인가?

 

모노로그는 카나리 케이토의 눈높이에서 그를 중심으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카나리 케이토는 무던히 고개를 돌리면서 모노로그의 움직임을 쫓으려 했지만, 모노로그는 점점 가속했다.

 

모노로그: 아무리 괴롭더라도. 끔찍하더라도. 절망스럽더라도 진실을 끝까지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네가 그렇게도 원하던 그 진실을?

 

나리 케이토: 그래! 돈 받고 날 이 탑에서 꺼내 줄 수가 없다면 그거라도 보여 줘!

 

카나리 케이토가 짜증을 가득 내며 모노로그에게 삿대질하자, 모노로그는 아까보다 배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공중에 머물렀다.

 

모노로그: 좋아. 좋아. 네가 싫다고 애원해도 보여 줬겠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지.

 

모노로그: 너희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확실한 걸 원한다면 보여주겠다. 너희들의 다이얼로그를 조작해 봐라.

 

다이얼로그의 화면에 손을 대자 내 이름이 떠올랐다. 히무로 시라베(氷室 調). 프로파일러. 그 뒤 화면에는 몇 줄의 메뉴 같은 것이 떠올랐다. 첫 번째 줄이 규칙 확인. 두 번째 줄이 증거 저장, 세 번째 줄이 영상 시청 및 공지사항 전달, 마지막 줄이 정보 수집이었다.

 

세 번째 메뉴를 눌러보니 빈 폴더에 영상이 하나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히무로 시라베의 동기 비디오' 였다. 분명 살인의 동기일 것이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원천적 동기만으로는 살인의 죄책감과 죽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감수하기 어려울 테니까.

 

모노로그: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영상을 하나 찾을 수 있을 거다. 다이얼로그에 저장된 영상 말이야.

 

나시: ...뭐지?

 

무로 시라베: 나나시. 영상에서 뭐가 보이길래 그래?

 

나시: 아니. 영상을 본 건 아닌데. 내 다이얼로그에...

 

나시: 내 다이얼로그에... 이름이 '이름 없음' 이라고 나와.

 

기와라 우시오: 뭐야. 진짜 이름이 이름 없음이야? 어떤 또라이 작명사 짓이래?

 

나나시는 낭패감을 느낀 듯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댔다.

 

나시: 왜지...? 정말 나한테 아무런 이름이 없다 이거야?

 

무로 시라베: 이름이 없진 않을거야. 모노로그가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겠지.

 

모노로그: 내가 알려주지 않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없앤 것은 그의 선택이다. 나는 그걸 존중해주었을 뿐이지.

 

나시: 내 이름을 없앴다고...?

 

모노로그: 넌 모든 이들에게서 단절되길 원했다. 상처입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조금의 자신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관계의 시작이 되는. 이름조차도 다른 이에게 주지 않았다.

 

모노로그: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주지 않자. 네 이름은 서서히 사라져갔지.

 

나나시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나시: 내가 예전에 그랬다니...

 

모노로그: 믿기지 않는다면 영상이라도 보는 건 어때? 여러 궁금증을 해결해 줄 텐데. 혹시 모르지. 네 기억이 사라진 이유도 그 영상 안에 있을지.

 

모노로그: 여기서부터 재미가 시작되는 거다. 곧 너희는 나가고 싶어서 아주 안달을 하게 될 걸... 그 '확실한 정보' 때문에 말이야. 자. 한 번 봐봐.

 

분명 동기는 강력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헤집어 놓아서 살인을 시도할 정도로 지능을 저하시킬 만큼 강력할 것이다. 비이성은 대개 이성을 압도하고 모노로그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살인을 하기 전의 생각 한 번, 고려 한 번이라도 없애는 것.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 나는 주저 없이 영상을 틀었다. 어차피 정보가 부족한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오히려 이것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어차피 살인을 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유치한 발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살인을 저지를 리는 없으니까...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의자에 묶여 있는 사람이 화면에 떠올랐다. 영상의 배경이 어두워서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묶인 사람은 여자 같았고, 실험실 가운을 입고 있었으며 새하얀 머리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묶인 채 괴로워하거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 ???: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그런데,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나나시를 처음 봤을 때의 그 감각. 23T5U130을 처음 만날 때의 그 감각이었다. 정말 이상했다.

 

내가 아는 목소리 같았기 때문이다.

 

???? ???: 너희가... 어떻게 이런 짓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와 시라베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죽기 싫어... 제발... 그만...

 

확실하게.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탑에 온 뒤 안개에 낀 것 같은 단편적인 기억들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의자에 묶인 그 사람의 얼굴이 점점 드러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목소리로.

 

 

"시라베."

 

 

???? ???: 도와줘... 아무나... 배신자들이 우릴... 이렇게 끝날 수는... 아아. 싫어... 제발.

 

화면이 그녀의 얼굴을 비쳤다. 마침내 내가 그녀를 온전히 기억해냈을 때. 나는 지금껏 내가 그녀를 잊고 있었다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토할 정도의 오싹함을 느꼈다.

 

어떻게 그녀를 잊을 수가 있나. 히무로 시라베.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 그녀인데. 어떻게 네가 감히...

 

시라유키 히메리: 시라베....

 

무로 시라베: ...메리?

 

다음 순간,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다이얼로그를 떨어뜨렸나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모두의 시선이 내 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이얼로그를 떨어뜨렸다. 그것을 주우려는 내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안은 허상이다. 이런 탑을 세우고 불가사의하게 이동하는 모노로그라면, 이런 영상 하나 조작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다. 

 

나는 안다. 사람은 말이 되는 것보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속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영상은 다이얼로그의 화면에 내 커진 동공이 비칠 만큼 어두웠다. 그리고. 내가 떨어뜨린 탓에 약간 깨져 있었다. 내 얼굴이 깨진 채 비친다. 내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나시: 히무로... 너 얼굴이 창백해...!

 

이다 쿠로하: 뭘 보고 있길래 그렇게 목석같던 놈이 저렇게 눈을... 어우 씨. 야. 그러다 다이얼로그 부수겠네. 좀 진정해.

 

기와라 우시오: 엥. 내 영상에는 아무것도... 아니 이게 무슨...

 

도리카와 아쿠토: ......이런.

 

무로 시라베: 메리가... 어떻게 메리가...

 

믿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성은 비이성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이 비이성을 부추긴다. 비이성은 이성을 압도한다. 기관의 일원인 내가 납치당했으니 기관에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어쩌면 내가 납치된 이유 자체가 기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몇 년 치일지도 모른다고. 그 몇 년 동안 메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고.

 

23T는 말했다. 네가 아는 기관과 내가 아는 기관이 다를지도 모른다고. 내가 납치된 뒤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거라 생각하냐고. 모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23T의 말은 틀렸다. 모르는 것은 나쁘다. 그녀가 이렇게 됐다는 것조차 모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그것이었다. 그녀의 위기를 모른 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으나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가서 메리를 보자. 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23T와 협력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메리가 위험에 처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도와야 한다. 설마 메리 같은 인질을 의미 없이 소모하지는 않을 테니 저들은 메리를 살려 둘 것이다...

 

초조하게 생각하는 동안 메리의 신음과 울음소리가 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깨달았다. 밑의 밑에도 밑이 있다. 내가 지금 내려앉은 절망의 구렁텅이 밑에도, 밑이 있었다. 발 밑이 푹 하고 꺼지는 것 같은 느낌. 모래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메리의 머리에 무언가가 씌어져 있었다. 헬멧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한 그것에는 여러 전선들이 달려 있었다.

 

다음 순간, 어떤 스위치를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메리가 발작했다.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몸부림을 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팔이 의자의 팔걸이에 묶여 있었다.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리는 소리쳤다. 시라베. 시라베. 그 울부짖음이 너무 잔인하게 현실적이라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전기의자. 전기의자에 메리가 앉아 있었다. 전기의자 형벌이 집행되고 있었다. 메리한테. 메리가 저렇게 아파한다. 메리가...

 

그리고 메리가 축 늘어졌다. 마치 죽은 것처럼.

 

영상에서 모노로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히무로 시라베. 네가 지금 본 것은 시라유키 히메리 본인의 모습이 맞다. 초고교급 연구가. 너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인물이지. 너를 기관으로 이끈 인물이기도 하고.

 

그녀가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죽었을 것 같나? 살아남았을 것 같나? 너는 알고 싶겠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네가 알려면... 살인을 하고 들키지 말아야 한다. 검정이 되어 승리해야 한다.

 

그렇게 탑을 오를 권한을 얻는다면 알려 주겠다. 시라유키 히메리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시라유키 히메리를 저렇게 만든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지.

 

행운을 빈다.

 

그즈음, 모두들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내가 본 영상과 그들의 영상의 충격도가 비슷하다면 그들은 훨씬 더 공포에 떨어야 한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한다. 깨진 다이얼로그의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에 눈물이 고여야 한다.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져 눈이 빠질 것 같고 절망감에 심장이 서늘해질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모두들 소리를 지르거나 모노로그에게 화난 목소리로 무언가를 물어볼 뿐이다. 다들 자제력이 대단하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내 안에서 감정이 끓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그것을 토해내지 않고 삼켜버렸다. 난 분출로써 과열을 잠재우지 못했다. 모노로그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서로를 죽이게 만들려고 했을 거라고. 그렇기에 이런 유혹을 준비한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기 전, 난 이성적인 판단력과 정신을 되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매우 어리석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버렸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더라도 메리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내야겠다고.

 

더 단크 타워

프롤로그: < 신곡 >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이제 사람들의 본성은 선보다는 악에 가까워졌다."

END

 

 

 

 

시라유키 히메리(白雪 火芽里): 초고교급 연구가

기밀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