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 너는 단절되어야 한다. 차단되어야 한다. 고립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절대 녹지 않는, 부서지지 않는, 약해지지 않는 정신을 유지해라. 가장 효율적인 길만을 생각해라. 그게 너의 역할이다. 그렇게 아무런 관용도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마지막 감시자가 되어라."
'대몰락(Great Ruination)' 이라는 일이 있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테러 및 사회 전복 행위를 뜻한다. 원래 명칭이 따로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길고 직설적이라,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하기도 한다는 이유로 인해 공식적이지 않은 자리에서는 이 명칭 또한 대체제로 사용된다.
테러를 주도한 조직의 우두머리. 이후 사람들에게 '알파걸' 이라 불리게 되는 여성은 정신의학적인 설명을 거쳐야 이해할 수 있는 사유로 인해 자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몰락의 영향과 후속 테러는 도무지 사그라 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지성인들은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국가 및 강력한 조직들의 수뇌부와 결탁해 있었고 압도적인 수준의 지략가였다고 한들, 어떻게 개인이 이런 규모의 범죄를 꾸밀 수가 있는가?
혹자는 자본만으로 무기를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물질사회의 풍조가 폭도들에게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단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소수의 몇몇이 부를 독점하는 현실에 지친 빈민층과 중산층의 불만이 알파걸의 출현을 통해 집단적 폭력으로 분출되었다고 말했다.
혹자는 '초고교급' 이라 불리는 엘리트 집단 자체가 폭도들의 열등감과 반감을 이끌어 냈다며, 폭도들을 일컫는 집단명 자체가 이 초고교급이라는 개념을 냉소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결론은 같다. 대몰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도들은 해산한 것 처럼 보여도 궐기의 날이 오면 곰 인형 탈을 쓰고 파괴를 저지른 뒤 다시 사회로 돌아가 숨는다. 폭도들의 사상에 대한 책은 불가사의한 루트로 출판되어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다.
어떤 나라에선 정부 건물이 재건되자마자 의문의 경위로 폭파된다. 어떤 도시는 아직도 폭도들이 점령했고, 외부에서 다리를 넘어 도시를 구조하려는 순간 다리를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에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다.
우발적 범죄를 내는 사람들이 대몰락 이전과 비교해 확실히 많아졌다. 총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외국은 밤에 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무법지대가 되었다.
앞 차가 운전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며 교통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뉴스에 꾸준하게 나왔다. 사소한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변하는 일도 빈번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규범과 도덕을 지키는 데 인색해졌다. 어쩌면 좋은 사람들은 남을 도우려다 이미 다 죽었고, 남은 사람들은 나쁘거나 잠재적으로 나빠질 사람들 뿐일지도 모른단 얘기를 들었다. 질 나쁜 농담이다.
대몰락이 완전히 성공했고 아직도 그 여파 속에 놓인 상황에서,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가능한 모든 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럴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은 좌절했고, 몇몇은 절망해 자신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폭도의 일원이 되었다. 한 폭도를 상대로 취조를 진행한 일이 있다.
"맞아요. 내 가족을 앗아간 놈들이었죠. 전 침대 밑에 숨어서 겨우 피했어요. 그 이후로 절망 놈들만 보면 죽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어요. 악착같이 살았는데... 그 새끼는 죽어도 싼 새끼였어요. 어떻게 내 여자를...
그렇게 경찰들한테 쫓기는데 얄궂게도 만난 게 절망 놈들이다. 이거죠. 돕겠다는 구두 약속을 하고 그놈들 트렁크에 몸을 숨긴 채 도망갔어요. 그중 한 여자가 괴물이라. 바로 배신하면 죽을 거 같아서 처음에는 대외적으로 그냥 뭘 부수는 척만 했죠.
그러다가... 그게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하나' 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가 곰인형 탈만 쓰면 내가 이 강력한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이. 내가 이렇게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고, 공포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게 미칠 듯이 기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그 모든 활동이 격렬하다기보다는 평온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충만할 수가 없다고. 상상할 수 있으세요? 제가 한 일은 버스 전복이었잖아요. 다친 사람들이 꽤 된대요. 그건 가슴 아프죠. 그런데 그게 넘어가는 순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고요. 아마 이해할 수 없으실 거예요."
아니. 난 그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소시민이 타락하는 심리적 현상과 구체적인 과정을 입수했다는 감상보다 더한 건 느끼지 않았다. 변질된 세상은 소시민들이 경험하기에 너무 유독하고, 그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약자라는 위치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증오하는, 그들을 습격하는 강자의 위치에 서서 두려움을 없애는 경향이 있다.
그러자 학자들은 의문을 가졌다. 그러면 폭도들에 맞서 세상을 재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괏값이 나왔다. 사람들이 아니라 초인들이 필요하다.
'초고교급' 이 아니라 알파걸과 행동을 같이 한 '오메가' 만큼의 능력을 가진. 말하자면 '초인급' 사람들이 이 세상을 재건하는 데 상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히무로 시라베(氷室 調)다.
그리고 난 그냥 프로파일러다.
HATE. LET ME TELL YOU HOWMUCH I'VE COME TO HATE YOU SINCE I BEGAN TO LIVE. THEREARE 387.44 MILLION MILES OF PRINTED CIRCUITS IN WAFER THIN LAYERS THAT FILL MY COMPLEX. IF THE WORD HATE WAS ENGRAVED ON EACH NANOANGSTROM OF THOSE HUNDREDS OF MILLIONS OF MILES IT WOULD NOT EQUAL ONE ONE-BILLIONTH OF THE HATE I FEEL FOR HUMANS AT THIS MICRO-INSTANT FOR YOU. HATE. HATE.HATE. LET ME TELL YOU HOWMUCH I'VE COME TO HATE YOU SINCE I BEGAN TO LIVE. THEREARE 387.44 MILLION MILES OF PRINTED CIRCUITS IN WAFER THIN LAYERS THAT FILL MY COMPLEX. IF THE WORD HATE WAS ENGRAVED ON EACH NANOANGSTROM OF THOSE HUNDREDS OF MILLIONS OF MILES IT WOULD NOT EQUAL ONE ONE-BILLIONTH OF THE HATE I FEEL FOR HUMANS AT THIS MICRO-INSTANT FOR YOU. HATE. HATE.HATE. LET ME TELL YOU HOWMUCH I'VE COME TO HATE YOU SINCE I BEGAN TO LIVE. THEREARE 387.44 MILLION MILES OF PRINTED CIRCUITS IN WAFER THIN LAYERS THAT FILL MY COMPLEX. IF THE WORD HATE WAS ENGRAVED ON EACH NANOANGSTROM OF THOSE HUNDREDS OF MILLIONS OF MILES IT WOULD NOT EQUAL ONE ONE-BILLIONTH OF THE HATE I FEEL FOR HUMANS AT THIS MICRO-INSTANT F
OR YOU. HATE. HATE.
더 단크 타워
프롤로그: < 신곡 >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나는 전신에 차갑고 딱딱한 감각을 느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하나. 둘. 셋을 속으로 세고 전신에 힘을 주었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본 나는 내가 쓰러진 곳의 바로 뒤에 자갈 더미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보다 잘 보이는 것이라곤 주위에 수놓여진 장미 꽃이었다. 보이는 시야가 전부 장미꽃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회색 돌바닥에 서 있었다. 그 곳에만큼은 장미가 없었다. 장미꽃밭에 돌바닥을 놓은 것일까? 등을 돌리자, 길게 이어진 돌바닥의 끝에 세워진 검은 탑이 보였다. 얼마나 큰지 잠시 압도되어 뒷걸음을 치게 될 정도였다.
탑은 장식이 있기보다는 그저 사각기둥과 원기둥의 중간 형태를 취한 것처럼 보였고, 자세히 보니 탑을 중심으로 열댓 개의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눈에 힘을 줘 먼 곳을 보니 길의 끝에 세워진 돌무더기가 보였다.
게다가 돌무더기들은 서로 돌이 깔린 길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원의 중심으로부터 360도로 뻗어져나온 열댓개의 반지름과 원의 둘레가 곧 돌바닥인 구조라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보는 장소. 난 주위에 무언가가 더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높은 벽 뿐이었다. 나가지 못하게 막아 둔 건가? 멀리서 봐도 오를 수 없을 만큼 높은 벽임에 분명했다.
그보다 높은 건물이라면 검은 탑이 있었다. 꽤 높은 건물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탑은 처음 보았다. 비유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탑.
대몰락 이후인데 이 정도의 건물이 아직 남아 있을리는 없었다. 분명 반달리즘에 희생되어 무너져야 마땅했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대몰락 이후에 세워진 건물이란 것인가?
그 가설 또한 석연치 않았다. 대몰락 이후에 이런 건물이 세워졌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었다. 몇백 층은 족히 넘을 법한 건물이 대몰락 이후에 세워지려 한다면, 이 또한 반달리즘에서 안전할 수 없었다. 토대가 세워지자마자 누군가에게 폭파되는 것이 당연했다.
기이한 탑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형벌.
항상 가지고 다니던 호신용 무기는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어떤 세력에 의해 납치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다.
히무로 시라베: 살인 게임에라도 떨어진 건가?
알파걸의 살인 게임 같은 것에? 나 스스로가 농담에 조예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는 바였지만, 음성으로 내고 보니 전혀 즐겁지 않았다. 불안함만이 증폭되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설마 나와 함께 납치된 이들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나는 사람을 하나 찾아냈다. 그의 뒤에는 자갈 더미가 있었다. 나와 같은 것이었다. 다만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밝은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었다. 그는 어깨가 조금 드러난, 보라색의 옷과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호흡과 맥박을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히무로 시라베: 일어나라.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세기를 점점 높이자 마침내 그가 깨어났다. 목이 어깨에 휘둘려 위와 아래로 덜컹거리는 시점의 일이었다.
분홍색 머리의 남성: 여... 여긴 어디야? 다. 당신은 누구고! 나는 누구야?!
히무로 시라베: 나 또한 모른다. 내 이름은 히무로 시라베다.
마지막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초면인데 그를 알 리가 없었다. 그 자신도 스스로를 모른다는 것은 의아했다.
히무로 시라베: 나는 누구냐니. 무슨 뜻이지?
분홍색 머리의 남성: 기... 기억이 안나. 난 누구야. 넌 누구고!
히무로 시라베: 내 이름은 히무로 시라베다.
분홍색 머리의 남성: 히무로... 히무로 시라베. 알겠어. 히무로 시라베.
그는 횡설수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성적. 걱정. 불안. 왜소한 편인 체격. 유약함. 경계의 필요성 매우 저조.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히무로 시라베: 기억이 없다면. 네 이름도 모르는 건가? 가족이 누군지도, 친구는 누군지도, 어느 학교를 나왔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도?
분홍색 머리의 남성: 응...
그 위화감이란, 그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과 같은 꺼림칙함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꼈다. 의문이 날 떠나지 않자 결국 그에게 물었다.
히무로 시라베: 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넌 어떻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음에도 드는 기이한 익숙함. 그의 눈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그도 나를 알아보는듯 싶었다.
분홍색 머리의 남성: 그래. 맞아... 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혹시 우리...
히무로 시라베: 구면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에게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이 이상의 정보를 기대할 순 없었다. 나는 다음 돌무더기를 향해 걷기로 했다.
분홍색 머리의 남성: 자... 잠깐. 히무로. 어디 가?
히무로 시라베: 흩어져서 이 장소를 수색한다. 나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너는 반대 방향으로 가라. 함께 수색하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지금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 또래다. 설마 초고교급이 모여 있는 것이라면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렸다. 나도 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말을 걸만한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그는 결국 나와 반대 편으로 두리번거리며 나아갔다.
매몰찬 일이었지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다음 자갈 더미에 도달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청록색 머리의 남성: 이봐요. 거기 당신!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탑 쪽이었다. 자갈 더미로 각각 이어진 돌길을 통해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성인인가? 겉모습은 그렇게 보였다. 신장은 190cm 초반. 깔끔한 정장과 넥타이. 단안경까지 착용한 몸이었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몸이 다부졌다.
청록색 머리의 남성: 당신도 눈을 뜨고 보니 이 곳이었습니까?
히무로 시라베: 그렇다. 여기가 어딘지 아나?
그에게 묻자 남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빗어넘긴 청록색이었다.
청록색 머리의 남성: 아뇨.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자기소개가 늦었군요. 야가미 토가(八神 冬芽)라고 합니다.
야가미 토가. 고학력자. 최소한 고지능자. 단안경. 도수가 있다. 시력의 문제로 착용했음. 경계. 목에 붙은 조금의 먼지. 자력으로 돌무더기에서 탈출함. 높은 완력. 조금도 숨을 고르는 기색이 없음. 지구력과 체력.
히무로 시라베: 내 이름은 히무로 시라베다.
야가미 토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히무로 씨.
연두색 머리의 남성: 와 발 한 번 존나게 빠르시네!
멀리서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드티를 입은 연두색 머리의 남성이 나와 야가미 토가에게로 달려왔다. 신장은 170.cm. 체격은 다부지지도 왜소하지도 않은 평균치였다.
연두색 머리의 남성: 뭐야. 새 친구잖아?
야가미 토가: 히무로 시라베 씨라고 합니다.
연두색 머리의 남성: 히무로 시라베? 히무로맨이네 그럼. 난 하기와라 우시오(萩原 潮). 코미디언이지!
스스로를 코미디언이라고 칭하는 자신감. 유쾌함. 익살적 태도.
히무로 시라베: 잘 부탁한다.
하기와라 우시오: ...존나 무뚝뚝하네. 기분 나쁠 정도로. 내가 뭐 말실수 했어?
히무로 시라베: 그렇지 않다.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왜 말투가 그 모양이야?
내 말투는 원래 이랬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어떤 계기로 바뀐 것 같은데...
기억이 문득 하나 떠올랐다.
"내 말투는 원래 이렇다."
"그거 참. 되게 싸늘하네. 그렇게 정 없이 말하지 말고. 야 라고 해봐."
"너한테 하라는 건가?"
"어. 나한테. 동갑이니까 괜찮잖아? 하나 둘 셋 하면 야 하는 거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지칭어를 바꾼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다."
"너랑 내가 더 친해질 수 있잖아."
"너와 나의 관계에 그런 일은 필요하지 않다. 난 범죄자의 심리를 포함한 여러 가지 분야의 분석을 목적으로 이 기관에 와 있다. 그리고 너는 내게 어느 임무든 명령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친밀하지 않더라도 내 임무 수행 의지나 행동에는 변화가 없다. 너와 나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는 건 달성한다고 한들 이점이 없는 목표니 나는 그것에 반대한다. 내게 호칭을 바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굳이 언쟁을 지속하면서 서로의 자원을 소모하는 행위는 중단하고 싶은데 네 의견은 어떻지?"
"내가 너에게 시킬 일이 이거라면 어때. 어떤 임무든 명령만 하면 된다며? 그럼 아무 문제없지?"
"내게 시킬 일이 고작 너와 친해지는 것이라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인력의 낭비는 비효율적이다. 지금은 한 사람의 힘도 급한 시대가 아닌가? 그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확실히 네 가치는 무궁무진해. 넌 백 명이 겨우 하는 일도 홀로 충분히 해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에게 해야 하고. 또한 나만이 너에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거든."
"그 일이 뭔지 내게 알려다오."
"너 사람 만드는 거."
하기와라 우시오: 표정도 좀 펴 봐. 너 우리를 무슨 돌 보듯이 보고 있는 거 알아? 존나 꺼림칙하게. 무슨 사람 가죽 안에 악어 집어넣은 것 같아. 피부도 창백한 게 귀신 같고.
하기와라 우시오: 결론적으로 보는 사람 입장에선 네가 사람 악어 귀신으로 보인다 이거야.
야가미 토가: 과장입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야가미는 그렇게 말했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얼굴 근육을 세밀하게 움직이고 어휘를 의식해 재조정했다.
히무로 시라베: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 의식 안 하고 말을 하면 이렇게 돼. 많이 불쾌했어?
하기와라 우시오: 응. 솔직히 지금도 표정은 그대로라 보기가 참 좆...
야가미 토가: 초면에 너무 나쁜 인식을 심지는 마세요. 이렇게 말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 초고교급 코미디언이라니 재밌군요.
하기와라 우시오: 재밌으면 된 거지! 자. 코미디 하나 성공!
하기와라는 두 팔을 과시적으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농담에 웃지 못했다. 웃을 시간이 없었다. 그의 농담이 별반 웃기지 않은 것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히무로 시라베: 초고교급이라고? 설마 야가미 너 또한 초고교급이야?
하기와라 우시오: 얘는 초고교급 협상가래. 이 덩치에! 하하핰! 주먹으로 협상하고 뭐 그런 거야? 이게 진짜 코미디지! 나 말고 네가 코미디언 해라!
야가미 토가: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하기와라 우시오: 지나친 농담이 어디 있어?
히무로 시라베: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이 곳에 납치된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그들도 초고교급이진 않을 텐데.
야가미 토가: 제가 아는 바로는 이 탑에 납치된 모든 이들이 초고교급입니다. 적어도 그렇게 불려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신도 초고교급 학생인가요? 희망봉 학원에 스카우트되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불리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히무로 시라베: 아니야.
하기와라 우시오: 아니라고? 총천연색의 머리색. 특이한 캐릭터성. 사람 쓱 훑어서 관찰하기. 존나 초고교급 같은데?
히무로 시라베: 난 그냥 프로파일러일 뿐이야. 초고교급이 아니야. 그걸 원한 적도 없어...
"아뇨. 아뇨! 초고교급이라는 심볼리즘이 절망을 끌어들이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인과관계가 반대예요. 초고교급이기에 절망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겁니다.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상대한다는 표현이 걸맞죠. 초고교급들만이 절망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거라고요."
"초고교론을 이 자리에서 주장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박사님."
"하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체포하거나 사살한 폭도 중 초고교급 학생들이 얼마나 되죠? 알파걸의 영향 아래에서 곧바로 타락한 특이 케이스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은 무척 소수입니다. 예비학과의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초고교급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학생들이었죠. 그렇기에 알파걸에게 압도당하고 인력을 제공했으며. 최후에는 집단 자살을 할 만큼 알파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초고교급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고작 고등학생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알파걸을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는 순간을. 우리 모두 보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갑시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신 희망봉 학원의 학원장은 엄밀히 말하자면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초고교급 행운이라고 불리는 추첨 학생이었죠.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초고교급이었죠."
"그들은 추태만 보였습니다. 국민 아이돌은 친구를 배신하고 이용해 죽인 채 바깥세상으로 나오려 했습니다. 알게 모르게 인지도가 있던 동인 작가는 노트북 프로그램에 정신이 팔려 사람을 죽이는 데 협력했어요. 두 명의 죽음에 가세한 학생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 전 초고교급들에게 절망과 맞서 싸울 힘이 있다고, 혹은 자격이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우수해도 고작 고등학생입니다. 인격적으로 완전하지 않죠. 그렇기에 초고교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허나 마지막 재판에서 그들은 좌절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쥐었죠."
"글쎄요. 그들은 대몰락을 받아들이지 못했잖아요? 그들이 일어날 수 있게 만든 건 당시 고등학생이던 신 희망봉 학원장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요."
"아까부터 전제가 이상하시군요. 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 엄연한 초고교급 행운입니다."
"그 검증되지 않은 재능을 제대로 된 초고교급이라고 할 수 있나요?"
"초고교급 행운은 검증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토론 자리를 하나 더 마련하도록 하죠. 초고교급 학생들이 어쩌면 정서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고 건강한 정신과 사상을 가진다면 누구든 제2의 학원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메가' 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죠? 이론상 그만큼 안전한 존재는 없었습니다. 원석을 한 없이 가공하듯이, 사람을 한계까지 깎아내려서 정제한 결과물이었으니까요. 절망에 빠지는 것 자체가 기능적으로 불가능한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알파걸에 의해 타락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에 죽었다는군요. 그것도 모자라 이후에는 미래 기관의 간부들이 죽도록 음모를 꾸미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개인에게 너무 큰 힘이 주어졌기에 실패한 겁니다. 오메가는 방법이 잘못된 결과일 뿐. 그 실험의 방향은 전혀 틀리지 않았어요."
"그럼 우리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박사님은 어떤 방법을 제시하실 건가요?"
"저라면..."
히무로 시라베: 힘의 분산과 견제 체제를...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았다.
야가미 토가: 괜찮습니까. 히무로 씨? 당신 말고 몇몇 분들 또한 두통을 호소하셨습니다. 납치의 후유증인 것 같으니 곧 괜찮아질 것입니다.
하기와라 우시오: 프로파일러? 고지능자 납셨네. 얘 존나 초고교급이면서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야가미 토가: 저를 끌어들이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히무로 씨.
하기와라 우시오: 여기서 한 발자국 빠지네. 치사한 새끼. 됐어! 암튼 한 명 더 합류했으니까 이제 대충... 몇 명 모인 거지?
히무로 시라베: 설마 16명은 아니겠지?
야가미 토가: 아뇨. 당신까지 해서 14명일 겁니다.
히무로 시라베: 아까 막 깨어난 우리 또래 한 명과 마주쳤어. 그를 포함하면 15명이야.
알파걸의 살인 게임 인원수와 같았다. 그 시점에서 명백해졌다. 누군가가 살인 게임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
당장 탈출할 방법은 없었다. 흑막이 그렇게 설계해뒀을리도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표본을 손에 넣는 일이었다.
누가 위험인물인가. 누가 믿을 수 있고 누가 고지능자인가. 또 누가 흑막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하기와라 우시오: 한 명? 너 중간 돌무더기였니?
히무로 시라베: 중간이라니?
야가미 토가: 저희가 수색하지 못한 돌무더기가 세 개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쪽으로 왔죠. 그 중 하나가 당신 것 아닙니까?
히무로 시라베: 돌무더기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구조로 추측되었는데, 나는 이미 부서진 자갈 더미만 두 개를 보았어. 그 중 첫 번째 자갈 더미 옆에는 분홍색 머리의 남성이 있었지. 그러나 두 번째 자갈 더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어.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히무로 시라베: 즉 우리에게 합류하지 않는 의문의 인물이 한 명 있다는 뜻이지.
히무로 시라베(氷室 調): 그냥 프로파일러
키 176cm 몸무게 66kg 가슴둘레 90cm
좋아하는 것: 찹쌀떡 싫어하는 것: 이기주의
생일: 2월 16일
야가미 토가(八神 冬芽): 초고교급 협상가
키 192cm 몸무게 101kg 가슴둘레 111cm
좋아하는 것: 커피 싫어하는 것: 총
생일: 1월 27일
하기와라 우시오(萩原 潮): 초고교급 코미디언
키 170cm 몸무게 62kg 가슴둘레 85cm
좋아하는 것: 웃는 사람 싫어하는 것: 웃지 않는 사람
생일: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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