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6

도타싫어! 2021. 4. 4. 22:41

 

캐롤 씨와 나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롤 브라이트: 부모님께서 저를 입양하셨을 때부터. 제겐 터치가 있었어요. 부모님은 미국인이셨죠. 사업 때문에 일본에 머무시는 사이 아이가 생기지 않아 저를 입양하셨다고 들었어요.

 

하긴… 일본에 브라이트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롤 브라이트: 이름과 국적만 외국의 것일 뿐. 저는 일본 태생이에요. '제인 캐롤 브라이트' 라는 이름은 부모님에게서 받았어요.

 

나시: 터치를 어릴 때부터 가지고 계셨다고요?

 

롤 브라이트: 당시에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죠. 손을 잡으면 서로의 생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정도로 그쳤어요. 저와 함께 터치도 성장한 거죠. 지금도 그렇고

 

나시: 지금은 완전히 초능력의 범주에 있으신데… 어떻게 숨기신 거예요?

 

캐롤 씨는 탑에 오기 전부터 내담자에게 터치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터치로밖에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때에 한해서지만

 

아무리 열심히 숨겼다고 해도. 손을 대는 것만으로 사람을 마비시킬 수 있고 심리와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터치가.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적어도 뉴스거리는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선 널리 알려졌는데 우리는 잘 모르는 걸까?

 

캐롤 씨는 내 의문에 대답했다.

 

롤 브라이트: 부모님은 다른 사람에게 터치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말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는 피부 질환이 있다고 말해 두었고요.

 

롤 브라이트: 사람과 맨살이 닿을 수 없는 건 조금 불편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거든요. 장갑을 끼고도 대부분의 사회생활은 할 수 있었고

 

롤 브라이트: 그리고 내담자 분들에게는… 터치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했죠.

 

나시: 부탁

 

롤 브라이트: 명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시죠?

 

나시: 아… 그게

 

롤 브라이트: 괜찮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는 뒤늦게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 거짓말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

 

롤 브라이트: 그래서 조금은 두려웠어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비밀을 지켜준 게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 사람들을 조종해. 말하고 싶어도 조종된 탓에 그러지 못했다면

 

롤 브라이트: 만약 부모님조차도. 제게 조종당해왔던 거라면…?

 

나시: 설마…! 그럴 리가요!

 

롤 브라이트: 그 가능성이 두려웠어요. 이 탑에서 그런 생각에 미치자 정말 소름이 끼쳤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탑에 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제게 조종받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 탑에 오기 전까지 터치는 이렇게 강력하지 않았거든요.

 

이 탑에 오기 전까지는…?

 

롤 브라이트: 말 그대로예요. 제가 살아온 이래. 터치가 이렇게 강력해진 적은 없었어요. 밖에서 터치를 통한 제압을 시도한 적은 없지만, 아마 시도했더라도 몸이 뻣뻣해지거나 느려지는 것으로 끝났을 거예요.

 

롤 브라이트: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면. 제 심장 안에서 무언가가 느껴져요. 빛으로 만들어진 뭉치 같은 것이… 쿵쿵 뛰고 있어요. 제 생각엔 이게 터치의 근원인 것 같아요. 이 존재를 느껴본 건 탑에 오고 나서가 처음이에요. 제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 건

 

나시: 탑의 환경이 터치를 강력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롤 브라이트: 초고교급과 관련이 있는 것이 유력한데… 아. 아니에요. 저도 확실하지 않으니까 잊어 주세요.

 

초고교급…? 터치와 초고교급이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걸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시: 혹시 이 탑에서 나간 뒤에 진찰을 받으신다면. 터치의 근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롤 브라이트: 아. 한 번 진찰을 받았을 때는 생체전기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어요.

 

생체전기라는 말에 나는 전기뱀장어를 떠올렸다가 실례라는 생각에 재빨리 다른 생각을 했다.

 

롤 브라이트: 지금 전기뱀장어 생각하셨죠?

 

나시: 아… 아뇨?!

 

롤 브라이트: 괜찮아요. 전기뱀장어 비슷한 게 맞으니까. 꼭 전기뱀장어가 아니라도 우리의 몸에는 항상 일정한 전류가 흘러요. 뇌세포의 뉴런 사이로 전기 신호가 오가죠. 그렇지만 그 신호들은 몸 밖으로 노출되지도 않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미약하죠.

 

롤 브라이트: 적어도 다른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한 전류는 내지 못해요. 전기뱀장어의 경우에는 몸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의 전기 생성 기관이 존재하지만. 검사 결과 제 몸에 그 만한 조직은 없다고 들었어요. 이상한 일이죠.

 

나시: 기묘하네요

 

롤 브라이트: 정말 그래요. 이게… 제가 터치에 대해서 아는 전부예요. 나나시 씨… 저도 터치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어째서 저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요. 언젠가 누가 저를 괴물이라고 부른다면. 반박의 말 정도는 생각해두고 싶거든요.

 

롤 브라이트: 하. 차라리 터치가 없었다면

 

캐롤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그녀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워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캐롤 씨는 줄곧 빛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진중하며, 차분하고, 강단이 있으며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모든 빛은 그림자를 동반했다. 사람이 모든 상황에 빛이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밝은 빛을 꾸며낼수록 그 그림자는 깊고 어두운 공허를 닮게 된다.

 

자신의 다리 위에 흰 장갑을 낀 손을 올려놓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캐롤 씨에게서. 나는 광원이 숨기고 있던 두려움과 나약함을 보았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캐롤 씨는 초고교급 상담사지만 그 이전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똑같이 혼란을 겪고. 상처를 받는다. 무언가를 불합리하게 요구당하면 당연히 화가 나고 반발감을 느낀다.

 

터치 이후에 그녀에게서 느껴진 위화감은, 우리가 캐롤 씨가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 멋대로 생각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캐롤 브라이트는 항상 차분하고, 선하며, 상냥하다는 생각에 나마저도 빠져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캐롤 씨의 그림자를 마주한 순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롤 브라이트: 정말이지. 분명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으신 분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축복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차라리 없기를 바란다니 웃음이 나와요. 전혀 웃기지 않아서 오히려 웃게 되네요. 손 뒤집듯 생각을 바꾼다니.

 

롤 브라이트: 절 위로하진 마세요. 달래주는 말도 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당신을 조종하고 있을까 봐 무서우니까.

 

나시: 그렇다고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말에 따르는 일이잖아요.

 

롤 브라이트: 그것도 그렇네요

 

나시: 저도 캐롤 씨의 터치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애초에 캐롤 씨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지 않아요. 그래서 알고 싶어요.

 

나시: 저는 상담사뿐만 아니라 캐롤 브라이트라는 사람도 알고 싶어요.

 

롤 브라이트: …상담사는 알아볼 만한 가치가 없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좋은 상담사가 되지 못할 테니까. 윤리 강령들을 어기는 상담사는 결코 좋은 상담사라고 할 수 없죠.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도요.

 

롤 브라이트: 아. 윤리 강령들은 상담사가 지켜야 할 규칙들이에요. 만약 상담사가 마음을 먹고 내담자의 심리를 장악한다면, 심리적 취약함을 가진 내담자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거든요.

 

나시: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롤 브라이트: 많은 분들이 제가 터치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여기셨지만, 터치가 없는 일반적인 카운슬러라도 적당한 조건만 갖춰지면 내담자를 지배할 수 있어요. 상담사가 내담자를 착취하고 위험에 빠트리는 일을 막기 위해 강령들이 존재하죠.

 

롤 브라이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담자와 상담실 밖에서 사적인 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던가.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의 애정관계는 자격증 박탈 등 엄격한 제재의 대상이라던가… 5년 안에 결혼을 해선 안 된다던가

 

나시: 네에에?!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롤 브라이트: 그 정도로 놀라우세요?

 

나시: 아… 네.

 

5년 이라니… 그래도 괜찮아. 난 기다릴 수 있

 

뭐라는 거야… 지금 그런 생각 할 때야?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상념을 떨쳐낸 뒤. 캐롤 씨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롤 브라이트: 이것 말고도 제가 지켜야 할 것들은 많지만 저는 이미 이상적인 상담사랑은 너무 많이 멀어진 것 같네요. 의지할 수 있고 믿음직스러운 상담사는커녕. 가장 주의해야 할 위험인물이니까요. 무엇보다 당신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잖아요.

 

나시: 어 정말요?

 

롤 브라이트: 왜 그렇게 놀라세요. 바보 같아. 그럼 상담사가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데 사적인 관계가 아니겠어요?

 

캐롤 씨가 내 이마를 장난스럽게 콕 찔렀다.

 

롤 브라이트: 어떻게 보면 당신과 있는 이 순간이 윤리 강령을 가장 심각하게 어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상담이 아니고서야 다른 분들과 말 한마디도 섞어선 안 될까요?

 

나시: 아뇨! 그런 건 옳지 않아요! 캐롤 씨도 저희와 똑같은 사람인데

 

롤 브라이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곳에서 상담사의 역할을 포기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상담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온다면. 저는 상담사를 포기하고서라도 여러분들을 도울 거예요.

 

나시: 다른 사람들보다 캐롤 씨 스스로를 도와야 할 때가 올지도 몰라요. 괜찮으시겠어요?

 

캐롤 씨는 싱긋 웃었다. 아까의 그림자를 머금은 쓴웃음과는 다르게.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는 웃음이었음에도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롤 브라이트: 날 도와준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몇 초 동안 호흡을 잊었다. 내가 그녀 몰래 숨을 몰아쉬는 동안 캐롤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롤 브라이트: 오늘. 저녁식사하실 거죠? 밖에서 봬요. 나나시 씨. 몸조심하세요.

 

나시: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캐롤 씨가 내 방을 나서자 나는 꿈을 꾼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 그녀와 나눈 대화가 전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덧없는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으로 저녁식사가 기다려졌다. 달뜨는 마음을 억눌러 보려고 노력하던 동안. 느닷없이 다이얼로그가 울렸다.

 

화면에 나타난 이름을 본 내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나시: 뭐야

 

얘가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왜 거는 거야…? 갑자기 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다이얼로그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미나미 나몬: 응답 바란다. 오버. 여기는 후루미나미. 여기는 후루미나미. 나나시 응답 바란다.

 

나시: 갑자기 왜 전화한 거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루미나미 나몬: 뭐야. 생각보다 까칠하네? 무슨 바람이 불었어? 비바람? 찬바람이야? 아닌가. 따뜻한 햇님이 네 마음을 비추고 네 외투를 벗겼니? 몸에서 땀이 흐르게 만들었어?

 

나시: 왜 전화를 건 거냐니까. 후루미나미.

 

루미나미 나몬: 너랑 캐롤이 한 편을 먹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나시: 네가 궁금해할 내용은 아니잖아.

 

루미나미 나몬: 참견할 일이 아니긴 하지만 단순한 흥미 때문에 그래. 내 그이를 당분간 보지 못할 생각에 심심해 미치겠거든. 야가미도 함께 떠나버렸고 탑에 남은 사람은 따분한 사람들밖에 없어.

 

나는 후루미나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그녀가 만들어내는 기행과 재앙에서 몸을 숨길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이상 섣불리 말할 수도 없었다. 이미 후루미나미가 무언가의 준비를 끝내놓았을 가능성이 무엇보다 불안했다. 이미 거미줄을 짜 놓고. 우리가 그 위에 올라가 춤을 추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루미나미 나몬: 너희 둘. 아직 한 편이 되지 않았어? 신기하네. 나는 지금쯤이라면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되게 빨라서 말이야.

 

루미나미 나몬: 이건 충고인데. 빨리 자신의 편을 만들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지금 계속 고결한 채로 머물고 싶어 했다가는. 죽을 거야. 치사하다고 누군가 욕할지라도 파벌을 만들지 않으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나시: 대체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루미나미 나몬: 내 말 흘려듣지 마. 너. 죽을 거야. 네 캐롤 씨도 죽을 거야. 어쩌면 토키와도 죽을지 모르지. 히무로 빼고 해변의 모두가 죽을지도 몰라. 농담 아니야. 진심 어린 충고야.

 

루미나미 나몬: 내가 장담할게. 내가 언젠가 너희들에게 말하는 때가 올 거야. 너랑 캐롤 씨 말고도. 다른 사람한테 속삭이는 때가 언젠가는 와. 바닥에 주저앉고 무릎을 꿇은 너희들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일 거야.

 

루미나미 나몬: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했지!" 라고. 이 전화가 끊어지면 언젠가 그런 일이 벌어져. 이걸 헛소리라고 치부해버린다면 결국 넌 반드시 후회하게

 

나시: 알겠어. 알겠어! 안 끊으면 될 거 아니야.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당당한 태도를 밀고 나가보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런 기분 나쁜 말을 서슴없이 하니 움츠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후루미나미의 대답을 기다리며 입 안이 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이얼로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시: 응? 아니 뭐야

 

나시: 자기가 끊었잖아

 

공허한 뚜- 뚜- 소리를 들으며 나나시는 후루미나미가 했던 말을 잊으려 애썼다. 그럴수록 그녀가 남긴 말은 나나시를 옥죄었다.

 

죽을 거야. 죽을 거야.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내려는 나나시의 문 뒤에서. 캐롤 브라이트는 죽인 숨을 일 초도 다시 살려내지 않았다.

 

롤 브라이트:

 

롤 브라이트: 후루미나미 나몬…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유즈미 나데시코: 소라 왕껍닥이다.

 

마유즈미가 해변에서 새하얀 색의 소라 껍데기를 찾아냈다.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귀에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소라 껍데기의 일정한 주름과 나선형 구조 탓에 그것은 주변의 소리를 증폭하고 울림을 만들어낸다. 바닷가의 소라 껍데기에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이미 바다가 앞에 있는데도 파도소리를 또 들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일종의 여가 활동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하기와라와 나이토도 곧 자신만의 소라 껍데기를 찾고 귀에 가져다 대었기 때문이었다.

 

기와라 우시오: 진짜 바닷소리가 들리네… 존나 신기하다!

 

이토 유즈루: 진짜 바닷소리가 들리잖아… 토 나와. 괜히 들었어.

 

무로 시라베: 이제 출발할 준비를 하자. 빨리 시련을 끝내고 탑으로 돌아가야 해.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도 한 번 들어볼래?

 

마유즈미가 웃으면서 내게 소라 껍데기를 건넸다.

 

리 레이코: 지금 갑각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희 셋 전부. 당장 움직일 준비를 해라.

 

유즈미 나데시코: 에이. 귀에 소라 댈 시간 정도는 있잖아!

 

무로 시라베: 그건 맞는 말이야.

 

나는 그녀에게서 소라 껍데기를 받았다. 귀에다 그것을 대고 청력에 집중한 나는 파도만이 이 곳에 있는 소리가 아님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재잘거리는 소리. 구슬픈 소리. 질문 소리들

 

"데드. 어. 체크? 덤. 어. 첨? 대드. 어. 챔?"

 

나는 마유즈미에게 소라 껍데기를 돌려주었다.

 

무로 시라베: …잘 들었어.

 

이토 유즈루: 야! 너도 이거 받아!

 

나이토가 모리에게 소라 껍데기를 던지자 모리가 공중에서 그것을 낚아챘다.

 

리 레이코: 이건 또 뭐 하자는 행동이지?

 

이토 유즈루: 다 한 번씩 들었는데 너만 안 들으면 따돌리는 것 같잖아. 내키면 야가미한테도 한 번 들려주고 그래.

 

리 레이코: 그럴 일은 없다.

 

모리는 소라 껍데기의 뾰족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더니 그것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기와라 우시오: 뭐야. 이걸 받네.

 

좋은 목적으로 받은 것은 아닌 것 같았으나 굳이 언급하지는 않기로 했다.

 

곧 모래 밑에서 가방과 침낭이 올라왔다. 가방 안에는 나침반. 밧줄. 손전등과 비닐봉지.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약. 수통. 에너지바 몇 개가 들어 있었다. 하나 더. 나는 페소레늄 막대를 받았다. 발화점이 낮은 세륨과 철의 합금으로, 거친 쇠로 한 번 긁는 것만으로 훌륭한 부싯돌 역할을 한다.

 

내 후원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런 상황에 필요한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페소레늄 파이어스틸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후원자들이 보낼 수 있는 물품에는 한정된 수량을 가진 것들이 있고, 파이어스틸이 그 한정된 수량의 상품임이 틀림없었다. 카이다의 손에도 이것이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대적하는 우리 쪽에서 쉽게 불을 피울 방법이 생겨 다행이었다.

 

우리의 어깨에 누군가의 목숨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뒤, 야가미는 우리에게 후원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카지노의 큰 문이 열린 뒤로 탑의 인원들은 둘로 나뉘었다. 해변과 탑으로. 탑의 모두는 모니터실을 통해 해변의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후원자' 로써 자신이 정한 '경주마' 에게 물품을 보내 생존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주마가 죽으면, 후원자도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경주마를 잘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물론 후원자 또한 경주마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의 경주마의 생존을 유도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경주마의 목숨이 곧 자신의 목숨이 되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의 최종 결정권은 경주마에게 있으나 후원자는 그전까지 경주마의 온갖 행동에 간섭할 수 있었다. 해변에서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이 후원 제도가 계속된다면. 다른 경주마를 죽이는 것만으로 후원자는 자신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으니

 

결국 누군가가 움직이기 전에 세 가지 시련을 전부 마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터였다.

 

가미 토가: 이상입니다. 그러니 안전을 가장 중요시하셔야 할 겁니다. 여러분이 죽었을 때 누가 길동무가 될지 모르니까요.

 

유즈미 나데시코: 그럼… 나한테 두 명이 후원하고 있으면. 내가 죽었을 때 그 두 명도 같이 죽는다는 거잖아?! 세 명이 한 번에

 

리 레이코: 살인에 의한 죽음이라면 처형당할 검정까지 더해 네 명이. 한 번에 죽을 수 있는 셈이다.

 

기와라 우시오: 못 잡으면 열네 명이 한 번에 가는 거고. 연쇄 폭발. 체인 라이트닝. 뱅뱅뱅.

 

무로 시라베: 우리 쪽에서 우리의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나?

가미 토가: 없습니다. 후원자의 정체를 추리할 수는 있어도 확신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후원자 쪽에서 내게 힌트를 줄지도 모르겠군.

 

기와라 우시오: 그러니까 쏘우 다음에는 헝거게임이다 이거구만. 하하! 아니다. 쏘우 안의 헝거게임인 건가? 다음은 뭐야? 쏘우 안의 헝거게임 안의 쏘우? 이러면 그냥 인셉션이지 좆같은 짬뽕탕이 다 있네!

 

하기와라가 툴툴댔다. 나 또한 마음만큼은 그러고 싶었다. 달라지는 일은 없기에 나는 발을 움직이는 일을 택했다. 우리는 그대로 몇 시간 정도를 내리 걸었다. 휴식을 하거나 불가피하게 멈춰야 할 때는 몇 분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순례하듯이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모래사장은 오래 걷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단단하지 않은 모래는 체중을 충분히 분산시키지 못했고 디디는 힘을 주기에도 부족했다. 모든 이들에게 그러했으며 마유즈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두 개의 굽이 있는 게다는 평평한 바닥에서 적절히 사용될 수 있는 신발이지, 디디는 곳마다 파이는 모래사장을 걷기에는 어색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에잇. 몰라! 맨발로 걸을래!

 

무로 시라베: 그럴 거라면 발 밑을 조심해. 이 곳에 모래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발 밑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유즈미 나데시코: 예쁘게 생겼네! 고마워.

 

무로 시라베: 관상용으로 준 게 아니라 조개껍데기의 날카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준 거야.

 

유즈미 나데시코: 아… 그러면 예쁘면서 날카롭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두 배로 고마워!

 

그녀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본받을 가치가 충분했다.

 

리 레이코: 걷기가 힘든 것이라면 서예가. 내통자에 올라탄 채 이동할 의향이 있나?

 

유즈미 나데시코: 아니이이?!!

 

리 레이코: 그 편이 체력을 아낄 수 있으니 효율적일 것 같다만.

 

유즈미 나데시코: 싫어! 안 돼! 무리야!

 

리 레이코: 다시 한번 생각해 봐. 그 신발로는 걷기 힘들지 않나? 내통자에겐 인권이 없으니 거부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이토 유즈루: 야. 싫다는데 왜 자꾸 못 살게 굴어!

 

기와라 우시오: 팝콘. 팝콘이 존나 간절하다

 

가미 토가: 여러분. 일단 제 쪽에서 그녀를 태워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야가미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로 시라베: 너에겐 선택권이 없어. 야가미.

 

유즈미 나데시코: 난 선택권 있지? 선택할게. 야가미 안 타!

 

가미 토가: 그러니까 안 태워드린다니까요.

 

이 논쟁은 다음 순간 마유즈미의 근처에서 운동화가 솟아오르며 끝났다.

 

그렇지만 운동화가 다른 문제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체력이었다. 그녀의 다리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나는 그녀가 운동화로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유즈미 나데시코: 하이고… 으으… 목말라… 힘들어

 

리 레이코: 바닷물을 마실 생각은 마라. 죽는다. 그리고 힘든 것은 너뿐만이 아니다. 입 닫아.

 

기와라 우시오: I'm about to lose my mind

 

모리와 하기와라 또한 일전에 카이다를 쫓아 밤을 새워가며 걸었던 피로가 남아 있는지. 체력이 부족해 보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난 모리 네가 미워

 

리 레이코: 그러시겠지.

 

기와라 우시오: 마님. 아니면 공주님. 마왕님…? 정말 일일이 마유즈미한테 욕하는 게 공리 증진에 도움이 돼? 이바라가 그랬잖아. 얘는 우리 탑의 마지막 양심 같은 거라고.

 

리 레이코: 그렇기에 엄하게 다뤄야 한다.

 

이토 유즈루: 미친 것들아. 입에 침도 안 마르냐?! 대체 언제까지 조잘거릴 거야! 공리 어쩌고 하면 나 당장 바다로 뛰어들어서 죽어버릴라!

 

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공리 말곤 할 말이 없다는 표현이었다.

 

이토 유즈루: 아악!!!

 

가미 토가: 정말이지… 여러분들 모두 제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화합이 되지 않으시는군요.

 

무로 시라베: 아직까지는 그렇겠지. 아직은 엮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카텟이 되지 못했으니.

 

가미 토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무로 시라베: …보인다. 저길 봐.

 

나는 티끌 같은 크기의 갈색 물체를 보고 말했다. 문이었다. 신경을 집중한 눈이 아파올 정도로 작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기와라 우시오: 우리 히무로맨. 드디어 헛것을 보는구나? 내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리 레이코: 뭐가 보인다는 거지?

 

가미 토가: 문이 보이시는 모양이군요. 저에게는 전혀 안 보이는데

 

기와라 우시오: 본인 피셜 한쪽 눈 병신은 발언권 없어. 시력이 2.0 2.0인 본인 하기와라께서 말씀하자면. 좆도 안 보여. 뭔가가 있었다면 나도 볼 수 있었을걸.

 

무로 시라베: 시련이 이루어진다는 문이 보여. 첫 번째 문은 그렇게 멀지 않아 다행이야. 다른 문도 간격이 유사하다면 며칠 안에 시련을 끝낼 수도 있을 거야. 조금만 더 간 뒤 야영을 하는 편이 좋겠어.

 

기와라 우시오: 아니 내 말 안 들려?! 안 보인다니까!

 

그리고 하기와라는 두 시간 뒤 이렇게 실토했다.

 

기와라 우시오: 이제 슬슬 보이네. 이게 왜 진짜임?

 

유즈미 나데시코: 저거 진짜 문 맞아? 무슨 기름띠처럼 일렁이는데

 

나도 그것이 신기루 거나 환각일 거라 의심했지만 문은 실존했다. 춤추듯이 일렁이는 문이. 갈색 문이. 흐릿하고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는 문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리 레이코: 탑의 현상들은 정말 비현실적이군.

 

기와라 우시오: 슈퍼맨 시력의 소유자도 있는데 저런 문도 있을법하지 않겠어?

 

무로 시라베: 슈퍼맨? 초인(superman)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기와라 우시오: 이 개 같은 문화지체 현상 어떻게든 해야 해

 

리 레이코: 우선 오늘은 이 근처에서 휴식하도록 한다.

 

우리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해변이 다가 아니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야자수와 나무들. 잡풀들. 물소리를 따라간 곳에는 개울이 있었다. 배낭과 도구가 떨어지는 와중에 식수가 떨어지지 않은 것에서 식수원이 있음을 알았다.

 

모니터실을 통해 우리를 보고 있는 탑의 생존자들이. 식수를 굳이 지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찾아낼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었다. 좋은 판단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보급품에 의존하지 않고도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개울물을 수통에 채운 뒤 알약을 수통 안에 넣었다. 몇 시간 안에 알약은 물을 정화해 최소한의 위험조차 배제할 터였다. 

 

무로 시라베: 어떻게든 식량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쪽에서 식사를 보내줄 가능성도 높겠지만

 

숲 안쪽에서 작은 살쾡이 같은 것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식동물의 고기는 대부분 먹을 것이 되지 않지만, 사람의 말을 하는 가재 괴물보다 모두의 식욕을 떨어뜨리지는 않을 성싶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거 아무리 봐도 해변보다 숲의 상황이 훨씬 나은데?

 

이토 유즈루: 존나 공감한다. 이거 그냥 숲을 통해서 가자!

 

리 레이코: 기각한다. 숲에는 장애물이 많고, 맹수의 위험도 있다. 가재 괴물들의 전진 속도는 느리기에 우리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해변을 통해 시련의 문으로 향하는 것이 타당하다.

 

무로 시라베: 모리의 말이 맞아. 개활지인 해변보다는 숲에 엄폐물이 많아. 카이다가 숨기 좋은 곳이지. 적어도 해변을 통해 행동한다면 접근해오는 카이다를 포착할 수 있어.

 

가미 토가: 나이토 씨는 물의 공포를 계속 가진 채 나아가야겠지만요.

 

무로 시라베: 나이토. 많이 힘들 거란 건 알지만 지금은

 

이토 유즈루: 알아. 알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거 안다고. 장작이나 챙기고 돌아가자!

 

나이토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유즈미 나데시코: 조금만 더 숲에 있다가 해변으로 가도 돼. 그치 얘들아?

 

이토 유즈루: 빨리 장작 패고 돌아가자고. 그냥

 

기와라 우시오: 저기요. 괜찮아스에? 아니. 괜찮으세요? 몸이 무슨 매미처럼 떨리시네요.

 

이토 유즈루: 주먹이 근질근질거려서 그래. 장작들 때문에이 장작들! 으아아악! 빠샤!

 

나이토는 늙은 나무를 발로 세게 걷어차 부러뜨렸다. 도끼 없이 그는 수도(手刀) 만으로도 장작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강인했다. 곧 그는 커다란 나무토막 두 개를 양손에 들었다.

 

리 레이코: 노고가 많다. 승부사. 덕분에 충분한 장작을 확보했군. 주기적으로 그렇게 분노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어.

 

이토 유즈루: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무로 시라베: 너 기분 나쁘라고 한 농담 같아. 마음 쓰지 말고 불을 피우자. 우린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해. 내일도 할 일이 많을 거야.

 

충분한 장작을 옮긴 뒤. 우리는 말라붙은 나뭇가지의 잎과 가지를 부숴 부싯깃을 만들었다. 파이어스틸에 붙어있는 작은 금속 조각에 그것을 마찰시키자 용접을 하는 듯한 불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유즈미 나데시코: 우와

 

기와라 우시오: 빛은 불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힘찬 기분이 든다!

 

부싯깃에 불이 엉겨 붙어 점점 커져갔다. 장작을 넣자 작은 불은 곧 커져. 모두의 몸을 덥힐 수 있을 만한 모닥불이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했다. 해가 떨어질 무렵에 포장된 도시락이 모래 속에서 솟아올랐다. 후원자들이 보내 준 식량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먹었다.

 

맛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야가미는 수갑이 묶인 손으로 식사를 해야 했기에 숟가락을 어설프게밖에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가 저지른 짓을 감안하면 그것조차도 과분한 처벌 같았다. 식사를 마쳤을 때 그의 입가에는 음식물이 덕지덕지 묻어있어. 하기와라의 비웃음을 자아내었다.

 

해는 순식간에 숲 너머로 사라졌고, 곧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빛은 모닥불이 전부가 되었다. 서늘한 기운이 모래를 천천히 적셔가는 와중에 우리는 몸을 녹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휴. 따뜻해애… 몸이 녹는다 녹아

 

마유즈미가 행복하게 중얼거렸다. 장작은 타닥타닥 타오르며 불꽃을 머금었고, 주변으로 열과 빛을 전달했다. 계속 보고 있다간 시야에 잔상이 생길 정도로 밝았다.

 

기와라 우시오: 모닥불 앞에 있으니까 마시멜로 먹고 싶다.

 

유즈미 나데시코: 마시멜로가 뭐야?

 

리 레이코: 젤라틴. 포도당. 계란의 흰자. 설탕으로 만들어낸 사탕의 일종이다.

 

유즈미 나데시코: 포도에 계란에 설탕? 맛없을 것 같은데… 하기와라 너 특이한 걸 좋아하네.

 

기와라 우시오: 그래. 말을 말자. 나도 이제 하무위키 노릇은 그만하련다!

 

무로 시라베: 야참을 먹고 싶은 거라면야

 

내가 말 끝을 흐리자 다른 이들이 내 시선을 뒤쫓았다.

 

"데드. 어. 체크? 덤. 어. 첨? 디드. 어. 치크?"

 

낮에는 파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가재 괴물들이. 밀물 때가 오자 파도와 함께 해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이토 유즈루: 저걸 먹겠다고?!

 

유즈미 나데시코: 좋아! 드디어!

 

리 레이코: 만약 시도한다면 내통자에게 먼저 섭취하게 만들어 독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미 토가: 그랬다간 학급재판이 열릴 텐데요.

 

리 레이코: 여의치 않다면 소모전의 양상을 띠는 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너흰 둘이고 남은 생존자는 열셋이다.

 

리 레이코: 카드 소모전을 치르면 먼저 패가 바닥나는 것은 모노로그 쪽이겠지.

 

기와라 우시오: 근데 흑막 입장에선 또 내통자를 만들면 되잖아. 패가 바닥나도 훔칠 수 있는데 무슨 소용이야!

 

무로 시라베: 모노로그에게서 카드를 빼앗을 수도 있겠지.

 

리 레이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들다간 이미 잡은 것도 놓치게 될 거다.

 

무로 시라베: 이미 잡아 놓은 토끼를 바로 죽일 필요 또한 없어.

 

몇 초간 대화가 끊겼다. 대화를 대신한 것은 서로 간의 눈빛이었다. 더 말을 나누어봤자 의견이 취합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자리의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즈미 나데시코: 토끼 고기 먹어본 사람 있어? 맛있어. 이 탑에서 나가면 내가 한 번 대접할게.

 

이토 유즈루: 말뿐이더라도 고맙다. 마유즈미

 

마유즈미와 나이토가 그렇게 말한 뒤에야 교착 상태는 해제되었다.

 

기와라 우시오: 마시멜로는 없지만 이거 무슨 캠프파이어 하는 것 같지 않아? 딱 기타 꺼내면 좋은 타이밍인데!

 

무로 시라베: 아. 캠프파이어. 그래. 하기와라 네 말이 맞아.

 

기와라 우시오: 아니 너 캠프파이어를 알아?! 존나 놀랍네! 웬일이야?!

 

무로 시라베: 예로부터 모닥불의 의식은 집단적인 고양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탁월했어. 불은 신성시되었고 인간에게 내려온 선물이라 여겨졌기에. 많은 종교에서 불을 사용한 의식이 치러졌지.

 

유즈미 나데시코: 따뜻한 건 좋은 거니까

 

리 레이코: 너무 가까이 가진 마라. 몸이 덴다.

 

기와라 우시오: 지금 나랑 씨발 장난하냐. 그런 건 캠프파이어가 아니잖아! 내가 말하는 건 보이스카우트에서나 나올 법한 캠프파이어 말하는 거야! 소규모에. 따뜻하고. 마시멜로 있는 거!

 

무로 시라베: 우리가 지금 피우고 있는 모닥불도. 소규모로 진행되는 캠프파이어도. 결국엔 모닥불의 의식과 연관이 있어. 한 뿌리를 두고 있기에 싫더라도 원본이 조금씩 반영될 수밖에 없지. 모든 모닥불이 그래.

 

가미 토가: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무로 시라베: 이 모닥불을 통해 여기에 모인 자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야.

 

친구 혹은 동료로.

 

어쩌면. 카텟으로.

 

기와라 우시오: 지랄을 해요. 됐고. 아무나 무서운 얘기 아는 사람 없어? BGM으로 가재 괴물 친구들 목소리도 들리고 분위기 한 번 끝내주잖아. 데드. 어. 췌에크!

 

유즈미 나데시코: 나 무서운 얘기 진짜 좋아하는데. 아무나 한 번 해 줘!

 

리 레이코: 지금 시답잖은 잡담을 할 때인가?

 

기와라 우시오: 그럼 다수결로 결정하자. 무서운 얘기 듣고 싶은 사람 손!

하기와라와 마유즈미가 손을 들었다.

 

리 레이코: 나는 반대한다.

 

무로 시라베: 기권할게.

 

이토 유즈루: 맘대로 해라

 

리 레이코: 찬성 둘. 반대 하나. 기권 둘. 내통자에겐 투표권이 없으니 다수결을 따르자면 너희가 우위다. 마음대로 하도록 해라.

 

무서운 이야기

 

무로 시라베: 무서운 이야기라면 내가 하나 알아.

 

기와라 우시오: 웬일이래?! 생각보다 놀 줄 아네. 히무로맨! 좋아. 첫 번째 이야기꾼은 히무로맨으로 결정! 땅땅!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힘내라! 기대할게!

 

무로 시라베: 그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두려운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파장이 크게 일었던 한 사건의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그 날에 벌어진 일들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다.

 

무로 시라베: 한 번 연쇄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서 한 지역으로 파견된 적이 있었어. 그 곳은 외진 시골이었고

 

무로 시라베: 난 그 판자를 뜯어 집의 토대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발을 옮겼어. 그러자 그 안에 완전히 부패한

 

무로 시라베: 그렇게 변형될 정도라면 분명 몇 년이 지났을 게 분명

 

무로 시라베: 냉장고에는 구겨져 있는 사람의

 

무로 시라베: 그 자가 그것들을 몸에 두르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악취와 오물이 들끓으며

 

무로 시라베: 굶주린 쥐떼가 몰려와선 마침내 낭자한 피와

 

이야기를 끝내자 그제야 다른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야기는 충분히 공포스러웠던 모양이었기에 나는 안도의 날숨을 작게 내쉬었다.

 

리 레이코: …다들 표정이 가관이군. 내가 잡담을 할 때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 않았나.

 

기와라 우시오: 아니아니아니아니. 귀신이나 괴물 얘기를 할 줄 알았지 누가 이런 얘기 하래? 진짜 소름 끼치잖아. 이 미친놈아!

유즈미 나데시코: 너. 너무 무서웠어… 엄마

 

무로 시라베: 귀신과 괴물 이야기도 아는 게 있어. 내가 이전에

 

이토 유즈루: 아니 무서운 얘기가 왜 죄다 네 시점에서 시작하냐고!

 

가미 토가: 하아

 

아직도 멍이 들어있는 야가미의 얼굴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기와라 우시오: 무서운 얘기는 이제 여기서 끝! 끝! 무서운 얘기 '멈춰' !

 

유즈미 나데시코: 아쉽다. 괴물 얘기는 듣고 싶었는데

 

무로 시라베: 기회가 생기면 나중에 더 들려줄게.

 

리 레이코: 다시는 없을 테니 괜한 기대 마라. 서예가.

 

기와라 우시오: 무서운 얘기는 관두고 비슷한 거로… 무서워하는 거 얘기를 하는 건 어때?

 

리 레이코: 내통자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텐데.

 

가미 토가: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제가 여러분들과 다시 같은 편이 될 수 있을지요.

 

리 레이코: 꿈도 꾸지 마라. 내통자. 엎질러진 우유를 주워 담을 방법은 없다.

 

가미 토가: 그럼 최대한 닦아내려고 해 보죠. 공포에 대해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제 공포는 제 야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와라 우시오: 미도리카와는 이미 죽였으면서 야망이 또 있어?

 

리 레이코: 생존이 곧 야망인 것이겠지. 그냥 죽는 것이 두렵다고 말해라. 애초에 저 말을 믿을 수도 없다. 거짓말일 게 분명해.

 

가미 토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요.

 

야가미는 눈썹을 으쓱 올리며 말했다.

 

기와라 우시오: 자 다음. 히무로맨! 네가 무서워하는 거 말해 봐.

 

무로 시라베: 이 탑에서 죽는 것.

 

유즈미 나데시코: 나도

 

이토 유즈루: 그게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기와라 우시오: 꽤 많아. 후루미나미. 카이다. 미도리카와. 모리… 히무로맨도 말만 저렇게 하지 죽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고.

 

무로 시라베: 사실이 아니야.

 

기와라 우시오: 아. 그래? 그것도 웃기네! 카이다랑 총을 든 후루미나미를 상대로 총싸움을 해도 안 죽을 자신이 있었다는 거잖아. 위험인물들에게 총기를 넘겨주는 게 죽음을 감수해서라도 막아야 할 일이라면. 넌 사명감이 뛰어난 거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한 거야? 아님 둘 다?

 

기와라 우시오: 널 보면 참 신기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다른 세상의 주민 같은지 말이야. 어떻게 자기가 의식하지도 않은 채 다른 사람을 깔보고 어떤 위기도 나라면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어?

 

기와라 우시오: 너랑 모리 둘 다 몰락한 귀족 보는 것 같아. 엄청난 명예를 가졌던 상류층 집안이 운명의 장난으로 무너지고 덕분에 비천한 신세까지 내몰린 귀족 영애. 겸손함을 꾸며내고 있지만 오만함이 슬쩍슬쩍 내비치는 그런 사람 같다고.

 

이토 유즈루: 야. 야. 좀 진정해. 갑자기 왜 그래?

 

리 레이코: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코미디언.

 

기와라 우시오: 몰라. 내가 안 웃는 사람을 싫어하는 건지. 무서워하는 건지. 그냥 궁금해서인지 알 게 뭐야. 난 그냥 듣고 싶어. 대체 왜 그리 되셨나 궁금해.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한 거 때문인가? 어떤 연구소였어? 공감이랑 인간성 절제당한 곳이.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하면 꿀밤 때릴 거야!

이토 유즈루: 둘 다 아니 셋 다 진정 좀 해 봐. 그러다가 주먹다툼이라도 하겠어.

 

무로 시라베: 난 격양되어있지 않은데.

 

가미 토가: 이제 된 것처럼 들리는군요.

 

무로 시라베: 하기와라 우시오. 그럼 네가 있었던 곳은 어떤 연구소였지?

 

하기와라 우시오는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기와라 우시오: 나는 쇼는 알아도 연구소는 모르는데.

 

무로 시라베: 네 고결함과 진정성이 절제당한 곳 말이다.

 

하기와라 우시오는 움찔 놀랐다.

 

무로 시라베: 이바라 쿠리스를 인질로 잡은 뒤 너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녀가 너와 화해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던 바로는 아니었어. 그녀가 관을 드는 것을 도와주었고 이바라 쿠리스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전부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그 일에 매듭을 지었어야 했다. 적어도 이바라 쿠리스를 뒤로 하고 도피하듯 탐사에 나서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야 했다.

 

기와라 우시오: ….

 

하기와라 우시오의 입가에서 비꼬는 듯한 미소가 사라졌다.

 

무로 시라베: 그러고도 그녀가 네 소중한 친구인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지레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떠나다시피 하는 것이. 친구에게 할 일인가? 

 

무로 시라베: 실로 신경을 안 쓰는 건 누구지. 하기와라 우시오?

 

기와라 우시오: 하. 쉽게 입에 올리시네…?

 

무로 시라베: 너야말로.

 

이토 유즈루: 야. 야. 야. 그만 싸워. 그만!

 

나이토 유즈루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와 하기와라 우시오의 옷을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이토 유즈루: 적당히 해. 적당히. 우리끼리 싸워봤자 좋을 게 뭐 있어. 없다고!

 

가미 토가: 카이다 씨가 어디서 여러분들을 노릴지 모릅니다. 갈등은 잠시 치워 두세요.

 

둘 다 대답 없음. 나이토 유즈루는 한숨을 쉬며 두 명을 내려놓았다.

 

이토 유즈루: 이 자식들 때문에 돌겠어요. 진짜… 말리는 것도 고역이라고. 토키와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싶다.

 

유즈미 나데시코: 어… 혹시 나이토 너는 무서워하는 거 있어?

 

리 레이코: 이미 알잖나. 승부사는 바다를 두려워한다.

 

유즈미 나데시코: 아. 맞아! 미안. 급해서

 

리 레이코: 물어봐야 할 것은 이것이다. 승부사. 어째서 바다를 두려워하지?

 

이토 유즈루: 말하기 싫다고 했잖아.

 

리 레이코: 말하기가 두려운 것인가. 두려운 것이 두 개로 늘었군. 그것이 공포에 직면하지 않을 경우 벌어지는 일이다. 공포가 다른 것으로 전이되고. 확산되지. 그렇기에 뿌리를 뽑아야만 한다.

 

이토 유즈루: 그만

 

이젠 나이토 유즈루 쪽에서 시작인가.

 

리 레이코: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널 따돌리는 것잖은가?

 

모리 레이코는 그렇게 말하며 트렌치코트의 주머니에서 소라 껍데기를 꺼냈다. 나이토 유즈루가 건넸던 그 물건이었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나이토 유즈루는 얼굴을 작게 찌푸렸다.

 

이토 유즈루: 말은 잘해요. 그냥 듣고 싶어서 구슬리는 거면서. 네 속셈 다 보여.

 

리 레이코: 그렇다고 숨기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안 그런가.

 

이토 유즈루: 알겠어! 알겠다고. 도무지 안 끝나겠네. 물에 빠져서 뒤질 뻔했다. 됐냐?

 

리 레이코: 전형적이군. 그것 말고 과거 얘기를 더 해 보는 건 어떤가.

 

이토 유즈루: 뭐야. 갑자기 왜? 느닷없이 불길하잖아.

 

리 레이코: 개인적인 흥미 때문이다. 승부사. 우리가 구면인가?

 

나이토는 모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토 유즈루: …뭔 소리야 진짜? 너 뭐 잘못 먹었냐? 우리 전부 이 탑에서 처음 만났잖아.

 

리 레이코: 기억하는 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프로파일러와 이름 없는 남자는 서로 구면이었음에도 서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책이 기억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리 레이코: 그 점에 의거해. 이 탑의 인원들은 이미 구면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을 뿐.

 

무로 시라베: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야.

 

리 레이코: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할 터인데

 

이토 유즈루: 그보다 왜 너는 말 안 해. 은근슬쩍 넘어가지 마라? 너도 무서워하는 건 있을 거 아니야.

리 레이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명을 지키지 못하는 일뿐이다.

 

기와라 우시오: 맙소사. 어련하시겠어!

 

리 레이코: 너희 또한 응당 두려워해야 한다. 공리를 증진시키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을. 무의미하게 죽는 일을 두려워해야 한다.

 

리 레이코: 목적 없이 공허한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비웃고 싶다면 네 공포의 근원 또한 말해줬으면 하는데. 코미디언.

 

기와라 우시오: 예스 마이 로드. 분부대로 합죠. 우리 모리 마왕님. 흠. 어디 보자. 지금은… 카이다나 야가미한테 잘못 걸려서 뒤지게 처맞는 거?

 

무로 시라베: 죽는 건 무섭지 않고?

 

기와라 우시오: 내가 죽을지 말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면 모를까. 거의 무조건 죽을 테니까 이젠 걍 아무런 생각이 없다.

 

유즈미 나데시코: 하기와라 네가 왜 죽어!

 

이토 유즈루: 너 진짜. 아까부터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하기와라는 놀란 마유즈미와 짜증을 내는 나이토를 보고선 집게손가락을 휘휘 내저었다.

 

기와라 우시오: 당연하지. 다 농담이야. 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농담이 돼. 나는 확률이 높은 가설을 잘 받아들여서 농담으로 삼은 거고.

 

리 레이코: 열중할 게 없어 허무주의에 빠졌나. 물어본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한심하군.

 

기와라 우시오: 우리 모두 현실을 보자고. 난 특별한 거 없이 머리 나쁜 한량인데 이 탑에는 자기만의 초고교급 재능을 가진 놈들이 넘쳐나잖아.

 

기와라 우시오: 칼을 그어도 생채기 하나 안 나는 첩자. 맨손으로 쇠파이프 구부리는 미친놈들. 공리의 망령. 히무로봇. 이 숨 막히는 라인업을 내가 어떻게 버텨? 심지어 난 카이다한테 미운 살도 박혔어. 난 이미 죽어있다!

 

유즈미 나데시코: 아무리 그래도 그냥 포기할 순 없잖아!

 

기와라 우시오: 너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야. 이 친구야.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왜냐하면 이딴 미친 게임에서 살아남으려면 재능이 필요하거든.

 

기와라 우시오: 그런데 나한텐 그게 없어요.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잘 살아남아보자! 이런 아이디어는 좋다 이거야. 잘 되기만 하면 완벽하겠지. 공산주의처럼.

 

리 레이코: 공산주의는 적절하지 않은 비유다. 공산주의는 구조 자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기와라 우시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둘 다 될 리가 없어. 지금 모닥불을 둘러싸고 오순도순 얘기나 나누고 있지만. 일주일도 안 가서 우린 서로를 잡아먹으려 안달일 걸. 우린 다 동물이야. 언젠가 서로 배신하게 될 거라고.

 

가미 토가: ….

 

기와라 우시오: 아무튼 적어도 난 히무로랑 한 편 먹기는 쫄려서 못 하겠다. 왜냐하면 히무로봇 이 친구는 우리한테 숨기고 있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우릴 가차 없이 버리고 떠날 위인이거든.

 

나이토 유즈루가 하기와라 우시오의 정수리를 세게 때렸다.

 

기와라 우시오: 누화아악!

 

이토 유즈루: 에라이 이 자식아. 분위기 다 잡쳐놓고 네가 코미디언이냐?

 

유즈미 나데시코: 잘 한다! 나이토!

 

리 레이코: 그대로 기절시켜라. 그런 식으로라도 재워 둬.

 

가미 토가: 이제야 조금 평온해지겠군요.

 

누구도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을 사실이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질 나쁜 농담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야가미 토가는 하기와라 우시오의 말에 집중하는 눈치였지만, 그의 의중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 나는 어떤 반박도 꺼내지 못했다.

 

사실에 거스를 수는 없었다.

 

 

 

 

 

 

23T가 모니터실에 남아있는 동안 우리는 탑의 인원들을 모아서 식사를 했다. 23T가 소외되는 기분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23T는 말했다.

 

23T5U130: 이 탑에는 더 이상 야가미도 카이다도 없으니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야. 그래도 가능한 분야에는 최선을 다할 테니 식사하고 와. 주의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부를 테니까.

 

바라 쿠리스: …걔는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 데려오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라. 너무 적적하잖아.

 

넓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넷 밖에 없었다. 캐롤 씨. 토키와. 이바라 그리고 나. 23T는 모니터실에 있었고 나머지 세 명은… 알 수 없었다.

 

칸나즈키는 대화를 나눠 봤기에 의중은 알 수 없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라고 묻자면 대답하기 어렵지만.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용 송출기의 최대 수량은 두 개. 이미 누군가가 구매했다.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세 명 중에 송출기를 구매한 두 명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시: 응… 그러게. 인공지능이라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더라도 

 

걱정이 커지자 입맛이 좀처럼 돌지 않았다. 

 

나시: 저기. 얘들아… 23T의 목적은 뭘까?

 

키와 아유키: 우리의 생존을 돕는 것 아니야?

 

나시: 그건 나도 알아. 내가 궁금한 건

 

롤 브라이트: 저희의 생존을 도우려는 목적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 쿠리스: 뭐… 사람 살리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나시: 그렇지만 카텟 기관에게도 목적이 있을 수 있어. 우리가 살아야만 이룰 수 있는 목적 말이야.

 

바라 쿠리스: 그럼 이룰 수 있게 도와줘야지! 그냥 죽을 순 없잖아.

 

나시: 카텟 기관이 좋은 일을 하는 기관이라고 듣긴 했지만, 정말 우리가 갇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3T가 투입된 걸까? 그리고 23T를 투입할 수 있다면 왜 더 탑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걸까?

 

키와 아유키: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혹은 이미 시도했을지도 몰라.

 

키와 아유키: 우리가 탑에 왔을 때 탑을 부쉈던 광선. 그것도 카텟 기관의 도움일 수도 있어. 정확히 카텟 기관이 무슨 조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시: 히무로에게 그걸 물어봤어야 했는데. 히무로가 해변에 있는 이상 많은 정보를 지금 당장 확보하긴 어려워. 23T는 말할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으니까.

 

나시: 카텟 기관에 있었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카텟 기관도 온전히 믿을 수 있을 만한 조직은 아닐지도 몰라.

 

롤 브라이트: 확실히 23T 씨가 저희를 해치기 시작하면 저희로썬 막을 방도가 없겠지만, 카텟 기관 말고도 저희가 알아내야 하는 목적이 있어요. 사람을 살리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할 테니까.

 

키와 아유키: 모노로그의 목적 말씀이시죠?

 

롤 브라이트: 네. 저희가 왜 이 곳에서 서로 죽고 죽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모노로그 씨는 이와 비슷한 살인 게임을 몇 번이고 진행하셨다고 말씀했어요.

 

롤 브라이트: 초고교급의 살인 게임이 몇 번이나 있었다면 그걸 어째서 저희가 몰랐는지는 둘째 치고. 왜 그렇게 많은 살육이 있어야만 했을까요?

 

바라 쿠리스: 아아악. 모르겠어! 모노로그 얘는 왜 얼굴도 안 내밀어? 보통 우리가 이렇게 막혀 있으면 쫄래쫄래 와서 떠벌떠벌 뭔가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키와 아유키: 카이다의 근처에서 할 일을 지시하고 있을 수도 있어. 우선 나나시가 카텟 기관에 대한 기억을 점점 떠올리고 있으니까. 우리는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하자.

 

나시: 그것에 대해서 말인데. 나는 내가 카텟 기관에 속해 있다는 걸 몰랐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탑에 왔어. 카텟 기관 소속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떠오른 거야.

 

나시: 그러니 혹시 우리 전부가. 카텟 기관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진 않을까?

 

 

 

 

 

 

 

 

유즈미 나데시코: 모두들 푹 쉬고. 좋은 꿈 꿔!

 

마유즈미가 이 말을 남기고 잠에 빠져든 이후 3시간 뒤. 나이토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자는 위치를 바꿔가며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무로 시라베: 잠이 안 와?

이토 유즈루: 윽…! 깜짝이야. 소리 지르는 거 겨우 참았네… 왜 아직 안 자고 있어?

 

무로 시라베: 주변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지. 어디에 카이다가 있을지 모르니까.

 

이토 유즈루: 그냥 자라. 어차피 잠도 안 오는 거 내가 깨 있을게.

 

무로 시라베: 혹시 바다에 떠내려갈까 봐 잠을 못 자는 거야?

 

나이토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적중한 모양이었다.

 

이토 유즈루: …왜 잠이 안 오나 했더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잠자다가 바다에 빠질까 봐 못 자는 거라면… 말이 돼.

 

리 레이코: 심리적 요인이라는 건가?

 

모리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그녀의 침낭 안에서 들려왔다. 모리는 침낭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이토 유즈루: …!

 

리 레이코: 비명을 참는 것은 아까보다 나아졌군.

 

무로 시라베: 나이토가 낸 그 작은 소리에 깬 거야?

리 레이코: 아니. 나 또한 잠에 들지 않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발 뻗고 잠에 든단 말인가. 대화는 전부 들었다.

 

이토 유즈루: 아 쪽팔려 진짜

 

나이토가 얼굴에 두 손을 얹고 위로 쓸어 올렸다.

 

리 레이코: 공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 수치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이라면 나에게 해결책이 있지. 아무 의미 없이 떨면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모리는 자신의 가방에서 밧줄을 꺼냈다. 

 

무로 시라베: 어디에 묶으려고?

 

리 레이코: 승부사와 지지대다. 뽑히지 않을 만한 무언가와 승부사를 밧줄로 묶어 놓으면, 잠결에 바다로 떠내려갈 걱정은 없지 않겠나.

 

이토 유즈루: 오. 똑똑한데…?

 

무로 시라베: 좋은 발상이지만. 나이토를 어디에 묶으려고? 나무에 묶겠다면야 숲이 우거진 곳까지 나이토를 보낼 순 있겠지만, 그동안 카이다가 우릴 습격하면 악수가 될 거야.

 

이토 유즈루: 너도 똑똑하네

 

리 레이코: 네 말이 맞다. 이 주변에는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만한 물체가 없지.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는 유사시에 몸을 움직여야 할 테니… 별 수 없군.

 

모리는 자신의 팔에 밧줄을 칭칭 감고 매듭을 묶었다.

 

이토 유즈루: 뭣…!

 

리 레이코: 나를 사람이 아니라 사람 한 명 무게의 추라고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나이토 성격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았지만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자고 있는 다른 사람한테 묶을 수도 없었으니.

 

이토 유즈루: 야. 이거 맞아? 히무로. 이거 맞냐고!

 

무로 시라베: 너만 괜찮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이토 유즈루: 돌겠네 진짜. 그래 좋아. 나도 도망 안 쳐! 묶어 놔!

 

리 레이코: 그렇게 하겠다.

 

곧 나이토의 팔에도 밧줄이 묶였다. 나이토는 이어진 밧줄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사람의 몸이 연결되어 있기에 밧줄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리 레이코: 어떤가. 마음이 보다 편한가? 공포가 옅어지고 있나?

 

이토 유즈루: 어… 그래.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진정이 되네. 떠내려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야. 이제 잘 수 있겠어!

 

리 레이코: 목소리를 낮춰라. 다른 이들이 자고 있다.

 

이토 유즈루: …고마워.

 

리 레이코: 고맙다면 나중에 공리에게 보답하라.

 

이토 유즈루: 공리라는 그 작자랑 일대일로 꼭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사 줄게.

 

리 레이코: 말장난을 할 정신머리가 있다면 체력을 보존하기나 해라. 잠에 들어. 빨리.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토 유즈루: 알겠어. 알겠다고

 

나이토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십 분 정도가 지난 뒤. 모리가 나이토에게 물었다.

 

리 레이코: 뒤척이지 좀 마라. 왜 아직도 잠에 들지 않지?

 

이토 유즈루: …미안타. 어색해서 잠이 안 와.

 

리 레이코: 이런 쓸모없는 것.

 

불침번 역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귀를 열어둔 채 잠에 들었다. 얕은 수면이지만 들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꿈은 익숙했지만 불길했다. 나는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엔지니어와 인공지능.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기에 이후 이 명칭을 유지함. 이 둘은 대몰락 이후 대부분의 기술이 쇠퇴했음에도 대몰락 이전보다 뛰어난 성능의 기계를 만들어냄. 그 족적에 주목한 카텟 기관의 한 지부장에 의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음.

 

특이사항: 엔지니어는 항상 다른 가명을 사용함. 신원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는 공작으로 생각됨. 널리 알려졌던 가명은 아브라함, 네임리스, 노네임 그리고 나나시.

 

엔지니어는 카텟 기관의 시초를 만든 이들 중 한 명. 당시에는 '노네임' 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함. 모종의 사건으로 그의 친우이자 카텟 기관의 시초였던 '노바디' 가 사고로 사망한 뒤 기관원들과의 마찰 끝에 기관을 떠남. 기관에 합류한 지금도 기관원들과 자주 마찰을 빚음.

 

"그가 너를 살인자라고 부르더군. 그와 인공지능의 정체는 무엇이지?"

 

"…그 일은 다 내 잘못이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네가 잘못한 일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네임은 어째서 카텟 기관을 탈퇴했지? 나는 이것을 묻고 있다.

하나 더. 너는 인공지능을 보며 노바디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바디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이는 사고로 사망했다. 노바디와 인공지능을 착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노네임은 노바디의 죽음을 못 받아들였어. 둘이 정말 친한 친구였거든. 내가 죽는다면 네가 어떤 꼴이 되겠어. 비슷한 거야…"

 

"가정법의 사용 양식이 불쾌하다. 그런 예시는 들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노바디와 인공지능을 착각하게 된 계기… 이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 얼굴이 닮아서 그랬어. 얼굴뿐만이 아니야. 키도. 머리카락 색도. 헤어스타일조차 생전의 것과 닮았어."

 

"…정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군."

 

"노네임은… 기계를 죽은 친구의 모습으로 꾸민 거야."

 

시큼한 냄새. 그리고 고기의 냄새.

 

그것을 인식한 순간 나는 침낭에서 내 몸을 일으켰다. 꿈을 꿀 때가 아니었다. 

 

무로 시라베: 나이토. 날 따라와!

 

이토 유즈루: 왁?! 무슨?!

 

리 레이코: 무슨 일이 있나. 프로파일러!

 

무로 시라베: 식량 지원이야. 이 근처에 있어!

 

나는 모닥불 안에서 전소되지 않은 장작 토막을 하나 꺼냈다. 횃불이 아니었기에 금방 꺼질 게 분명했지만 잠깐 시간을 버는 것으로 충분했다. 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는 고기 냄새가 풍겨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리 레이코: 내통자인가. 승부사. 일어나라! 지금 당장!

 

이토 유즈루: 알겠어. 알겠다고! 악! 팔 당기지 마! 히무로. 같이 가!

 

이 곳에서 잡을 수 있다. 교전이 이루어진다면 이길 수 있을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이것은 양쪽에 있어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였다. 적어도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다리를 빠르게 했다.

 

횃불 역할을 하고 있는 장작에 의지하기에. 새벽이 오기 시작하는 밤은 무척 어두웠다. 점차 암순응이 되며 나는 앞을 보려 했으나. 카이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래를 박차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을 뿐이었다.

 

고기 냄새는 점차 가까워졌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발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바닥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플라스틱 용기 안에 담겨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스테이크와 쌀밥. 그리고 아스파라거스가 있었다.

 

카이다가 지원받은 식량이었다. 누가 그녀를 후원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생각이 부족한 이가 틀림없었다. 덕분에 그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고맙고 다행인 일이었다.

 

곧이어 모리와 나이토가 도착했다.

 

이토 유즈루: 이게 뭐야. 카이다 밥?

 

리 레이코: 용케 이 냄새를 맡았군. 상당히 먼 거리인데도.

 

무로 시라베: 짠내와 모래 냄새가 가득한 곳이기에 신 향기가 두드러졌어. 이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리 레이코: 잠에 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득이 되었다.

 

무로 시라베: 이 스테이크는 우리가 먹자. 우릴 위한 식사는 아닌 것 같지만 본인이 먹기 싫다니 어쩔 수 없지.

 

이토 유즈루: 일단 빨리 돌아간 다음에 먹든 말든 하자! 또 어디서 튀어나올지 어떻게 알아.

 

무로 시라베: 아마 숲으로 갔을 테지.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많으니까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을 하며. 나는 두 명과 함께 모닥불로 돌아갔다.

 

 

 

 

 

 

카이다는 아마 지금 자신의 모습이 보일 거라 생각하면서 개구리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는 과시하듯이 이리저리 그것을 흔들거렸다. 개구리는 발버둥을 치며 개굴 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카이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음 순간 카이다는 손에 힘을 꽉 줘 개구리를 쥐어 터뜨렸다. 아마 개구리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느낄 채도 없는 즉사였을 것이다. 내장은 으깨진 채 곤죽이 되어 축축한 피와 함께 카이다의 손을 물들였으며. 눈은 압력 탓에 뽑혀 나왔고. 혀는 입 속에서 찌부러졌다. 개구리는 순식간에 너덜너덜한 팔다리가 달려 있는 풍선 찌꺼기 같은 것으로 변해 버렸다.

 

카이다는 그 잔해를 땅에 내던지고 짓밟은 뒤 자신의 목을 엄지로 쓱 긋는 시늉을 했다.

 

이다 쿠로하: 야. 이거. 들리냐? 모노로그한테서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볼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들을 수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제발 들을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이 모자란 새끼야.

 

이다 쿠로하: 몸을 숨기고 있는데 거기에 고기를 던져 놔? 너처럼 생각 없는 새끼는 처음이다. 너 때문에 내 생명줄이 줄어들잖아. 밤에 좋은 거 먹고 몸보신이라도 하라는 거냐?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이다 쿠로하: 네가 누군지는 몰라. 어떤 멍청한 새끼가 날 후원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중엔 알아낼 수 있겠지. 더 내 일을 망치면 절대 가만히 안 둘거다… 알겠어? 죽여버리겠다고.

 

나리 케이토: 히… 히익

 

카나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이다 쿠로하: 이 꼴이 나기 싫으면.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새끼야.

 

카나리는 바지에 오줌을 쌀 뻔했다.

 

 

캐롤의 초기 설정은 살인게임 장르에 한 명씩은 꼭 있는 '친절한 척하는 하라구로'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한 갓성캐였음

 

근데 단크 타워 설정이 좀 바뀌고 캐롤 비중이 커져가는데 터치라는 설정에 비해 캐릭터가 너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면서 점차 노선이 틀어진 케이스

 

그냥 착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캐릭터보다는 더 복잡한 캐릭터가 재미있지 않을까요?

 

원래 이번 화에서 첫 번째 시련 돌입까지 하려 했는데 흐름상 여기서 끊었음 단크 타워는 여전히 궁예를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