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크 타워 (The Dank Tower)/챕터 2

더 단크 타워 챕터 2 - 19

도타싫어! 2021. 10. 3. 02:43

 

키와 아유키: 기관총…?! 기관총은 안 돼! 지금 누군가가 총기를 소지했다간…!

 

토키와가 헐레벌떡 모니터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모니터실의 바닥에서 검은 실루엣이 하나 솟아올랐다.

 

검게 채우고 연보랏빛으로 칠한 23T의 몸이 위잉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던 23T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나나시와 그의 곁에 있는 캐롤을 보고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23T5U130: …나나시?

 

바라 쿠리스: 엑! 깼어?! 다행이다! 이제 살았어! 너 없을 때 진짜 위험했다고!네가 얼마나 우릴 위해 고생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더

 

이바라가 팔을 활짝 벌리며 23T를 끌어안으려는 것처럼 움직이자. 23T는 짧게 말했다.

 

23T5U130: 비켜.

 

바라 쿠리스: 에에… 알겠어.

 

이바라는 팔을 다시 오므리고 23T의 옆으로 스륵 빠졌다.

 

23T5U130: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이바라.

 

23T는 이바라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한 눈을 팔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무언가가 23T의 시선을 빼앗고 있을 뿐이었다.

 

23T5U130: 이름 없는 남자의 곁에서 비켜. 제인 캐롤 브라이트.

 

 

 

더 단크 타워

챕터 2: < 다른 세 개의 문이 있다 >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있는가?"

 

 

캐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롤 브라이트: …느닷없이 왜 그러세요. 23T 씨?

 

23T5U130: 그의 곁에서 비키라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내가 파악할 테니까.

 

롤 브라이트: 같이 하면 되잖아요. 도와드릴게요.

 

캐롤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23T를 경계하듯이 몸을 움츠렸지만, 나나시의 곁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23T는 기계 관절을 위잉거리며 나나시 쪽으로 한 발짜국씩 다가갔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토키와가 23T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절반은 정말 위급한 탑의 상황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23T를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키와 아유키: 23T.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지금 카나리와 칸나즈키가 후루미나미를 풀어주고 기관총을

 

23T5U130: 나중에 다 대응할 테니까 지금은 캐롤에게 대응해야겠어. 내가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혹시 이름 없… 나나시가 쓰러진 건. 물리적인 타격에 의한 거야? 칸나즈키가 나나시를 때릴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는데. 그럼 나나시가 이렇게 된 이유는 꽤 좁혀지지.

 

23T는 쓰러진 나나시와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캐롤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캐롤은 어째서인지 그 순간. 23T에게서 적의와 경계심을 느꼈다. 늘 아군이었고 다른 사람을 도왔던 23T. 심지어는 모리와 하기와라에게 붙들린 신세가 되고 카이다와 싸움을 하면서까지 탑의 질서를 지켜왔던 23T가 순간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른다고 느끼자. 캐롤은 자신의 뒷목이 찌릿찌릿하게 떨려올 정도의 위기감을 느꼈다.

 

당연히 자신들의 편일 거라고, 살인을 막는 편일 거라고 생각해왔고 어느새 익숙해진 23T의 존재. 나이토보다도 강한 카이다조차 꺾지 못하는 강철의 경비원이 느닷없이 왜 적대적으로 변한 것인지. 캐롤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단 두 개뿐이었다.

 

위험하다.

 

지켜야 한다.

 

롤 브라이트: 읏

 

캐롤은 나나시의 머리와 어깨를 잡고선 끌어안은 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캐롤은 왜인지 23T의 적개심이 더욱 더 거세졌다고 느꼈다.

 

23T5U130: 너 지금… 인질 잡은 거야?

 

어째서인지 23T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인질? 이바라는 23T가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급하게 23T에게 달려가 어깨에 손을 얹고 소리쳤다.

 

바라 쿠리스: 멈춰! 너 머리 위험하지 않아?! 맞아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나나시가 캐롤 머리카락을 들고선 칸나즈키 손을 만졌거든? 그랬더니 꽈다앙! 갑자기 몸의 중심을 잃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어! 초 깜짝 놀랐다니깐!

 

이바라 쪽을 흘끗 돌아본 23T는 다시금 캐롤과 나나시 쪽을 돌아보았다.

 

23T5U130: 샤이닝이 역류한 건가… 그럼 캐롤이 직접 나나시를 만진 건 아니란 말이지.

 

키와 아유키: 그래! 뭘 어떻게 오해했는지는 몰라도 진정해.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롤 브라이트: 잠깐. 뭐가 역류했다고요?

 

23T는 캐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캐롤은 분명 23T가 샤이닝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문제는 그녀가 부르는 '샤이닝' 이라는 명칭을 어떻게 23T 또한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23T 씨도 도청기를 가지고 있어서 나나시와 나 사이의 대화를 엿들은 게 아니라면… 23T 씨가 샤이닝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잖아.

나아가 나에 대해서도…'

 

23T5U130: 내가 멈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어?

 

키와 아유키: 일단 카나리와 칸나즈키가 후루미나미를 데려갔어. 나나시는 아까 이바라가 말했던 대로 정신을 잃었고. 모리는 카이다를 죽이려고 시도한 끝에 손가락과 발목을 잃었고, 그런 모리를 구출하려다가 나이토가 발의 절반을 잃었어. 카이다는 도망쳤고. 인플레이션은 부활했어.

 

23T5U130: 하. 이보다 최악이 있을까…?

 

키와 아유키: 그리고 해변에 미도리카와의 모습이 안 보이는 걸로 봐선… 다들 두 번째 시련에 실패한 것 같아.

 

23T는 토키와 쪽으로 몸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23T5U130: 더는 없겠지.

 

키와 아유키: 미안하지만 더 있어. 탑의 누군가가 기관총을 구매한 것 같아. 두 번째 시련이 실패하며 새 물건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 기관총이 있었어… 탑에 총기가 돌아왔다고.

 

23T5U130: 하아

 

23T는 한숨을 쉬는 듯한 음성을 냈다.

 

바라 쿠리스: 진짜로?! 거짓말이지! 또 총이라니 진짜 위험하지 않냐고!

 

키와 아유키: 진짜야. 게다가 새롭게 들어온 물품은 기관총이 전부가 아니야. 이걸 봐.

 

기관총 30,000,000 크레딧 0/1

항생제 25,000,000 크레딧 1/1

작은 열쇠 5000 크레딧 (구매 제한: 소지 크레딧이 20,000,000 크레딧 이하인 자에게만 허함) 0/1

 

롤 브라이트: 기관총. 항생제. 작은 열쇠…? 크레딧을 적게 보유하신 분들만이 살 수 있게 되어 있었네요?

 

키와 아유키: 네. 이것만큼은 다행이죠.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받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쪽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고요.

 

토키와는 '작은 열쇠' 를 꺼냈다. 울퉁불퉁한 열쇠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바라 쿠리스: 그… 그럼 우리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이바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키와 아유키: 일단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회의를 하고. 나나시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최선을 다해야겠지.

 

토키와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자신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23T5U130: 나나시는 어떻게 하지? 이렇게 모니터실의 찬 바닥에 둘 순 없는데.

 

키와 아유키: 아. 맞아. 나나시는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는 오늘 제 방으로 데려가겠어요.

 

캐롤이 누구보다도 먼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세 명을 차례대로 마주 바라보며 물었다.

 

롤 브라이트: 이의 있으신 분 계세요?

 

이바라는 눈을 크게 뜬 채 멋쩍게 대답했다.

 

바라 쿠리스: 어. 그… 네가 그러고 싶다면 우리가 간섭할 일은 아니긴 하지…?

 

롤 브라이트: 그럼 이의는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게요.

 

키와 아유키: ….

 

토키와가 23T의 의견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23T의 쪽을 돌아보았다. 23T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 기계였기에 토키와는 23T의 어떤 기색도 읽지 못했다.

 

23T5U130: 그렇게 해. 지금 네 방으로 옮겨 줄게.

 

23T는 나나시의 허벅지와 어깨 밑으로 손을 넣어 그를 들어 올렸다.

 

롤 브라이트: 고마워요. 23T 씨.

 

23T는 캐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로 시라베: 나나시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전파가 수신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우리가 결정한 내용에 대해 말해 줄게. 당분간 식량을 보내는 것은 삼가. 인플레이션의 영향 안에서 지속적으로 크레딧을 소비했다간 너희들의 크레딧이 먼저 바닥날 거야.

 

무로 시라베: 우리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으니까. 너희도 보고 있겠지만… 가재 괴물이 있어.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기와라 우시오: 사람 손가락이랑 발가락 먹어치운다고 생각하면 비위가 좀 상하긴 하지만 말이야.

 

유즈미 나데시코: 으엑. 하기와라. 왜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그래!

 

마유즈미가 혀를 내둘렀다.

 

리 레이코: 공리를 훼손시키는 발언이군… 식욕이 달아났다.

 

가미 토가: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 합니다. 부상을 입으신 채로 더 쇠약해지셨다간 회복만 느려질 뿐이에요.

 

야가미가 가재 괴물 구이의 살을 발라 예전에 지급받았던 도시락 뚜껑에 놓았다. 나이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신음했다.

 

이토 유즈루: 알아… 아. 썅. 머리가

 

나이토는 땅에 팔을 얹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무로 시라베: 왜 그래?

 

이토 유즈루: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이거 왜 이러지… 머리가 조금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리 레이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유즈미 나데시코: 뭐?!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었어! 멀미약. 멀미약 줄게!

 

모리는 조금씩 떨리는 검지 손가락을 마유즈미를 향해 가리키며 천천히 말했다.

 

리 레이코: 그래.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쓸데없는 참견. 공리의 훼손으로 직결되지. 그리고 멀미약으로 해결될 증상 같지도 않다. 열병에라도 걸린 기분이다너희들 중에서도 비슷한 증세를 느끼는 자가 있나…?

 

기와라 우시오: 얘 눈도 맛이 갔나 봐. 우린 다 멀쩡한데 자기만 모르잖아?

 

리 레이코: 아직 눈은 멀지 않았다. 코미디언… 아직은 말이야.

 

모리가 하기와라에게 말했다.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는 듯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머무르자 하기와라는 싱글싱글 웃음을 지었다.

 

기와라 우시오: 이빨도 아직 안 빠지신 것 같네요!

 

하기와라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지만, 아쉽게도 그의 농담에 활기를 되찾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로 시라베: 열병…? 잠깐 확인할 게 있어. 나이토. 잠시 상처 좀 보자.

 

나는 붕대에 감긴 나이토의 반쪽 발 근처를 유심히 보았다. 내 짐작대로였다. 붉은 선이 나이토의 상처 부위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발목 관절까지 올라와 있었다. 몇 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 흔적에 대해 알았다.

 

무로 시라베: 감염이야

 

나는 모리에게도 다가가 그녀의 손과 발목을 확인했다. 마찬가지였다. 모리의 손바닥 중간까지. 그리고 잘린 발목에서부터 몇 센티미터 위까지 붉은 선이 보였다. 그녀의 손바닥은 검붉은 색이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가미 토가: 특수한 종류의 감염입니까?

 

무로 시라베: 아니. 독에 가까운 것 같아. 가재 괴물이 어떤 독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증세에 대해선 알고 있어. 붉은 선이 혈관을 타고 서서히 심장을 향해서 올라오지. 심장에 천천히 독이 스며들어오고

 

기와라 우시오: 죽는 거야?

 

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의 하기와라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유즈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구급상자를 뒤적였다.

 

유즈미 나데시코: 약! 약이 필요해! 만병통치약 같은 거! 불로초 같은 거!

 

무로 시라베: 없어. 이 구급상자에는 항생제가 없어

 

구급상자에서 그럴듯한 무언가를 찾던 마유즈미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눈은 당장이라도 뽑혀 나올 것처럼 커졌다. 하기와라는 내 말이 농담이기를 바라는 듯이 내 눈치를 봤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결단코 아니었다.

 

가미 토가: …그럼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기와라 우시오: 이해했으면 그냥 닥치고 있지 왜 쐐기를 박아? 짜증 나게.

 

하기와라가 느닷없이 야가미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의 입가 구석에는 마치 신체의 일부분 같은 비웃음이 남아 있었다. 야가미는 늘 내통자의 입장에 있었기에 우리들에게 모욕을 당하더라도 개의치 않았지만, 목적을 알 수 없는 모욕을 긴박한 순간에 당하니 그 또한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가미 토가: 그럼 눈치라도 볼까요. 살인 게임에서 생사의 여부는 확실하게 짚어야만 합니다. 게다가 이 두 분 중 한 명이라도 죽으면 저흰 곧바로 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 번째 시련으로 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기와라 우시오: 세 번째 시련! 넌 그거만 신경 쓰는 거지? 진짜 웃기는 새끼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기억하냐? 나 말고 네가 코미디언 하라니까.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 신경쓰는 게 미도리카와뿐이다 이거잖아.

 

기와라 우시오: 대체 너 뭐 하는 사람이야? 내가 머리가 안 좋은 건 맞지만 이해가 안 가서 그런다! 대체 너와

 

무로 시라베: 미도리카와는 정확히 뭐냐고.

 

하기와라가 시작한 말을 내가 끝맺자 그가 날 돌아보았다.

 

무로 시라베: 네가 할 만한 말이 있다면 이미 내가 전부 했을 거야. 하기와라. 굳이 지금 물을 필요는 없어.

 

기와라 우시오: 두 번째 시련 안에서? 어째선지 늦게 나온다 했더니 고지능자 두 명이서 붙어먹었다 이거구만.

 

유즈미 나데시코: 붙어먹었다니. 하기와라!

 

기와라 우시오: 너도 느낌 오잖아! 저 두 사람이 우리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단 거야. 모종의 거래를 했든 뭘 했든!

 

가미 토가: 비약이 심하군요. 하기와라 씨.

 

야가미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덕분에 정말 내가 그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하기와라는 해변의 분위기를 풀어주는 귀중한 역할의 수행자였지만, 그것은 그가 원할 때뿐이었다. 사람을 웃기고 싶지 않을 때의 그는 기이한 통찰력을 가지고 반박하기 어려운 모욕을 던졌다. 나와 야가미 사이의 대화에 대한 의혹 또한 반박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는데. 아무리 그의 개인적인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들 그와 내가 남몰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익살적일지언정 결코 바보는 아니었다.

 

이토 유즈루: 난리 났구만… 야. 느닷없이 여기서 싸움 걸지 마

 

기와라 우시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억지로 트집 잡는 거 맞아. 그런데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내가 트집 잡는 게 그래도 이상해?

 

리 레이코: 프로파일러가 무엇을 했든 간에… 그의 행동은 공리를 훼손시키지 않을 것이다.

 

모리는 하기와라를 쏘아보며 말했다.

 

리 레이코: 지금은 내분에 휘말릴 때가 아니다. 우리는 극복해야 하는 공통의 위기가 있다

 

기와라 우시오: 또 나만 잘못했지. 다앙연하죠. 사실상 난 이 거지 같은 탑의 바트 심슨이니까. 칠판에 글씨라도 쓸까? 어이쿠 이런. 칠판이 없네. 왜냐면 여긴 바다니까! 이것도 내 잘못이겠지!

 

리 레이코: 아니. 이게 전부 나의 잘못이다. 미안하다

 

모리의 말을 들은 하기와라는 그녀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그녀에게 가재 괴물의 고기가 담긴 도시락 뚜껑을 내밀었다.

 

기와라 우시오: 지랄 말고 가재 괴물이나 먹어. 나이토 너도. 익히면 독이 없어지는 모양이야. 예전에 먹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먹고 보자고.

 

이토 유즈루: 알았어 이 자식아

 

나이토는 결코 건강하지 않아 보였다. 늘 그에게서 돌던 생기와 건강함은 빛이 바랬고, 그는 상처의 통증과 두 발로 걸을 수 없다는 심리적인 동요 속에서 갈피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이토라도 모리보다는 훨씬 상태가 나아 보였다. 모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단 중 죽음으로 서서히 치우치고 있었다.

 

발이 반쪽 잘리는 것은 중상이었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와 발목이 통째로 잘리는 것은 그보다 더한 중상이었다. 그런 중상을 나이토보다 약한 신체를 가진 모리가 겪자 그녀는 나이토보다 훨씬 빠르게 상태가 악화되었다. 심지어 손의 부상은 발의 부상보다 심장까지 다다르는 속도가 빠를 터였다.

 

어쩌면 그녀가 스스로의 철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 또한 그녀의 상태에 영향을 준 걸지도 몰랐다. 모리는 턱에도 힘이 없는 것처럼. 가재 괴물 고기를 씹는 데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

 

리 레이코: …맛이 나쁘지는 않군.

 

이토 유즈루: 그렇다니까.

 

유즈미 나데시코: 히무로 너도 안 먹어봤잖아. 이번 기회에 먹어 봐! 꿀맛이야.

 

무로 시라베: 그렇게 할게.

 

기와라 우시오: 가재 괴물 먹다가 안에서 손가락이나 발가락 나온 사람 있으면 그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

 

유즈미 나데시코: 좀 그만 하라니까! 하기와라아!

 

마유즈미와 하기와라가 침체된 공기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해변의 모두는 알고 있었다. 나이토와 모리는 죽어가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과연 두 사람의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도 없을까. 아니었다. 살인 게임이라면 감염 탓에 누군가가 죽는 것보다 죽고 죽이는 살인을 더 좋아할 게 분명했다. 살인 게임의 흑막이라면. 모노로그라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분명 수단은 있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 뿐 해변이 아니라 탑에서는 나이토와 모리의 감염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가정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모리의 감염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그녀가 죽고, 그녀를 후원하던 나나시와 누군가도 죽고, 상처만 남은 채 해변의 모두가 탑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세 번째 시련

 

나는 가재 괴물의 고기를 먹으며 과연 세 번째 시련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생각해 보았다.

 

카이다 쿠로하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 속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노로그: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이다 쿠로하: 닥쳐.

 

모노로그: 또 열등감이 도졌나? 너에겐 남이 아무리 우러러보더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강함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지 않았던가? 왜 너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지 못하는 거냐.

 

모노로그: 아. 그랬지. 그럼에도 네겐 아무리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지. 네 몸뚱이 말이다. 단단하고 질긴 만큼 무거운 몸. 나이토 유즈루는 너보다 약할지언정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 바다를 갈랐다. 너는? 불가능해.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다 쿠로하: 닥치라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모노로그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종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말했다.

 

모노로그: 세 번째 시련으로 향해라. 너도 알겠지만 해변의 인원들은 당분간 세 번째 시련으로 갈 수 없다.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문에 손을 대지 않아도 시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은, 우선 보류해도 좋을 것이다.

 

이다 쿠로하: 그래… 세 번째 시련도 똑같지? 그 년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딱하기도 해. 네 번이나 죽으면서 날 한 번도 죽이지 못한다니.

 

이다 쿠로하: 그런데 괜찮은 거냐? 넌 살인이 벌어지길 바라잖아. 내가 미도리카와를 죽이면 시련이 전부 끝나서 다들 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텐데. 아무도 감염으로 죽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고.

 

모노로그: 걱정 말고 시련 속의 미도리카와를 죽이는 데에나 집중해라. 어차피 감염으로 누군가가 죽기 전에 네가 미도리카와 아쿠토를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빨리는 어림도 없지.

 

카이다는 코웃음을 쳤다.

 

이다 쿠로하: 하! 왜? 세 번째 미도리카와는 다르기라도 해? 늘 똑같잖아! 자기 혼자 복수하려고 꿈에 가득 차선. 아무것도 못 한채 비참하게 죽는다고. 다 똑같아. 이번에도 그럴 거야.

 

모노로그: 현재의 미도리카와에게 두 번이나 죽을 뻔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

 

카이다의 목소리가 짜증으로 인해 조금 커졌다.

 

이다 쿠로하: 결과가 중요한 거야! 그 년은 죽었고 난 살았어. 내가 죽였다고. 나한테 맞선 두 놈은 병신이 됐지. 이제 나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이다 쿠로하: 그보다 현재의 미도리카와라니 무슨 소리냐? 그 년은 죽었잖아. 현재 자체가 없다고!

 

모노로그: 그녀는 항상 혼자 활동했지. 그게 그녀의 패착이었다. 카텟을 이루지 않았어. 오히려 자신의 카메이트로부터 멀어지길 원했다. 둘은 이미 여럿이서 하나를 이루었지만 한 명은 멀어지려 했고 한 명은 끝까지 쫓으려 했다. 둘은 영원히 닿지 못했고 영원히 벗어나지도 못했지. 자신의 꼬리를 무는 바다뱀 같은 행태였다.

 

모노로그: 그러나 세 번째 시련의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또한 너의 손에 죽을 만큼 미숙하지도 않다. 충고하자면, 네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적들 중에서도 세 번째 시련의 그녀가 가장 강할 것이다.

 

이다 쿠로하: 넌 내가 싸워본 적들에 대해 몰라.

 

모노로그: 네가 아는 것보다는 잘 알 것이다. 기억도 없는 주제에 잘난 척인가?

 

이다 쿠로하: 그래. 기억. 기억… 그게 문제였지.

 

카이다는 자신의 눈높이에 뜬 모노로그를 노려보더니 나무에 기대고 있던 등을 주르륵 미끄러뜨려 흙바닥에 몸을 뉘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들어 나머지 한쪽에 얹었다. 오만하게 보이는 몸짓이었고 실제로 거들먹거리기 위한 동작이었다.

 

이다 쿠로하: 기억. 그게 거래 조건이었어. 그런데 이제 내 쪽에서 주도적으로 딜을 할 때가 온 것 같단 말이야?

 

모노로그는 몸체를 살짝 기울여 바닥에 누운 카이다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녀가 느닷없이 이러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듯이. 그리고 카이다가 뒤틀린 미소와 함께 모노로그에게 윙크를 보내자. 모노로그는 카이다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계약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모노로그: 이 정도로 멍청하다니… 네가 지금 내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다 쿠로하: 그러엄. 당연하지. 내통자는 두 명. 그 년을 죽이려는 사람은 한 명. 내가 안 막으면 세 번째 시련에서 미도리카와 아쿠토가 부활한다. 왜인진 몰라도 넌 그걸 막아야 해. 반드시.

 

모노로그: ….

 

이다 쿠로하: 뭐 내 쪽에서도 그 년이 되살아나면 문제니 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아. 잠시 멈춰서 생각할 가치가 있지. 대체 왜. 미도리카와 아쿠토라는 초고교급 밀수업자가 되살아나선 안 되는 거지?

 

모노로그: 버릇을 못 버리고 욕심을 부리긴. 넌 그저 날 위한 비수일 뿐이다. 네가 죽여야 하는 이를 죽여. 그것으로 거래는 성립된다.

 

모노로그의 고도가 천천히 내려와 카이다 쿠로하의 머리 바로 위까지 도달했다. 검은색 반쪽의 붉은 눈이 카이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카이다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다 쿠로하: 거래! 좋지! 내가 거래 끊자고 하는 건 아니잖아. 난 그냥 아주 조금의 선금을 받고 싶단 말이지. 네가 정말 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일 다 끝냈는데 정보도 못 얻고 배신당하면 나만 억울하잖아?

 

이다 쿠로하: 그러니까 내가 찾는 작자들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뭐라도 좋으니까 말해. 마지막까지 개처럼 굴렀는데 아무것도 못 받으면 나만 억울하다고.

 

모노로그: 가만히 기다리면 모든 영광이 네게 돌아갔을 텐데. 제 무덤을 파는군.

 

이다 쿠로하: 내통자 둘 중 하나가 당하는 꼴을 봐. 자기보다 못한 것들이랑 부대끼면서 개새끼 취급을 당하면서 사는데. 안 그래도 심란한 마당에 옆에서 개지랄하는 너를 언제까지 믿을 수는 없다고.

 

모노로그: …네가 언젠가 내게 버림받게 된다면 오늘의 이 일 때문이라고 생각해라. 네가 자초한 것이다.

 

이다 쿠로하: 신경 안 써. 사냥개들은 결국 사냥감이 다 떨어지면 숙청당하는 게 운명이지. 사냥개들에게 필요한 건 죽기 전에 고기를 한 조각이라도 먹는 거야.

 

이다 쿠로하: 그러니 내가 원하는 걸 내놔… 내놓으라고!

 

가볍고 으스대는 듯한 카이다의 목소리가 서서히 잠기더니, 새되고 날카로운 외침이 되어 모노로그를 찔렀다.

 

모노로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모노로그: 네 부모는 너를 버렸다.

 

모노로그의 말을 듣자마자 카이다는 자신이 검은색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느꼈다. 그녀의 몸은 땅에 눕고 다리를 꼬던 자세 그대로였지만 주변은 크게 변했다. 숲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무(無) 속에서 모노로그와 카이다만이 남았다.

 

카이다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몸의 모든 신경을 순간 곤두세웠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다 쿠로하: 이게 뭐야?

 

모노로그: 기억을 보여주는 것이지. 지금 이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네가 일어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잃은 기억은 내가 작은 키워드만 말하더라도 다시 뇌리에 떠오를 수 있다. 이름 없는 남자처럼 말이야.

 

이다 쿠로하: 아. 무슨 꿈같은 거란 말이지. 알았어. 내 부모가 나를 버렸다. 그건 알아. 그다음엔…

 

모노로그: 아니. 너는 온전히 알지 못한다. 너를 버린 자들을 찾고 싶다고 했지? 그러려면 이야기를 처음부터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일곱 살을 넘긴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아이. 그리고 잠에 든 아이를 바닥에 놓고 내려다보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명은 여성. 한 명은 남성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카이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생생한 꿈에 나타난 자들이 그녀의 친모와 친부라는 것을. 혈연이란 그런 것이라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것이라고 카이다는 생각하며 자신의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증오와 복수심 그 자체에 압도되며 카이다 쿠로하는 자신의 부모의 얼굴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모노로그: 그들은 너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알고 싶나?

 

이다 쿠로하: 당연하지! 이 개새끼들이 왜 나를…!


모노로그: 자신의 자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라고만 말해주겠다. 그들은 겁이 많았다. 어차피 버려질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편하게 해 줄 배짱조차 없었다. 키울 순 없고 죽일 수도 없다. 너를 두고 고민하던 그들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지. 교회의 앞에 버리는 것.

 

모노로그: 신에게 맡기는 것이었을까? 허나 신마저 너를 거부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할 일을 한 셈이지만 말이야. 너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고아원으로 이송되었다. 자신이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인지. 너는 가면 갈수록 포악하게 변해갔다. 한 마리 들개처럼.

 

하얀색을 띠고 있던 아이는 다른 아이와 시비가 붙었다. 정확히는 아이들이었다. 대여섯명 정도가 패거리를 이루어 그녀를 따돌리고 압박을 가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다음 순간 하얀 색을 띠고 있던 아이가 시비 붙은 아이의 상체를 자신의 하체로 짓누르고 얼굴을 마구 할퀴는 장면이 드러났다. 상처가 깊었고 흉터가 조금 남았다. 아주 작은 흉터였지만, 그 흉터 때문에 그 아이는 이제 어디에도 입양되지 못할 터였다. 하얀 색을 띠고 있던 아이는 조금 미안한 기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격양되고 화가 난 듯한 기색이 더 컸다.

 

카이다는 하얀 아이가 서서히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다 쿠로하: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네.

 

본인은 만족스럽다는 투로 중얼거렸지만, 표정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모노로그그리고 어느 날. 잠에 들었던 날. 누군가가 네게 찾아왔지.

 

다른 아이가 검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아이의 얼굴에 칼을 댔다. 상처가 무척 깊었다. 피가 이불에 묻었다. 물들던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카이다는 자신의 얼굴 왼쪽에 깊게 난 흉터가 이상하게 아려온다고 느꼈다. 여전히 붉게 남아있는 흉터.

 

범인은 결국 찾지 못했다. 고아원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지자 원장은 그 사건을 덮어두는 데에만 급급했다. 노골적인 보복이었다. 흉터에는 흉터로. 입양되지 못할 처지에는 입양되지 못할 처지로.

 

검게 변해가던 아이는 완전히 검어졌다. 그러나 붉은색의 흉터는, 쭉 찢어진 그 흉터만큼은 낙인처럼 그녀에게 남아 있었다. 그것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낙인처럼.

 

모노로그: 네 증오는 아주 단순했다.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모든 이들에게 너는 증오를 품었다. 시기. 너의 삶은 이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겠지. 부모를 가진 아이. 재산을 가진 아이. 사랑을 가진 아이들… 너는 고아원 문 너머로 행복해 보이는 아이가 지나가면 그들에게 이유 없는 적대심을 보냈다. 내가 이렇게 불행한데 너희는 어째서 그렇게 행복한 거냐고.

 

고아원의 문을 교도소의 철창이라도 되는 듯이 움켜쥔 채로 검게 변한 아이는 밖을 응시했다. 언젠가 밖으로 나간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맹수처럼 보였다.

 

모노로그: 너희는 어째서 행복하냐고. 왜 나만큼 고통받고 있지 않냐고… 순수한 만큼 너는 확고했다. 그나마 너와 친한 이에게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너와 면식이 없으며 너보다 행복한 모든 이들은 네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뒤틀린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하지. 양부모가 될 사람을 증오하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데려가겠나?

 

모노로그: 너를 데려간 사람이야 있었지.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들은 너를 입양한 것이 아니다. 쓸 만한 후보를 확보한 것이지.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고아원 안으로 들어와 검은 아이를 유심히 보았다. 카이다 또한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입이 거의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모노로그: 마피아는 암살자를 키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 죽을 줄 모르는 게 히트맨이니까. 첫 임무를 보냈는데 미숙함 탓에 죽어버린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암살자를 교육하고 통제하는 데에 들어간 모든 비용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니 거의 모든 조직은 이미 출중한 히트맨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일을 맡기지.

 

모노로그: 그러나 만약 그들이 키운 암살자가 임무에 실패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할 기술을 제공할 자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그리고

 

모노로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모노로그의 말이 끝나자 넋 놓고 자신의 과거를 보던 카이다는, 다시금 숲 속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당혹감에 가득 차 모노로그에게 소리쳤다.

 

이다 쿠로하: 더 말하지 못해?!

 

모노로그: 옳지. 더 말해 주겠다. 그러나 네가 내 일을 성실히 이행한다면 그렇게 하지. 그러니 지금부터 당장 뛰어라. 세 번째 시련으로 가란 말이야!

 

카이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노로그의 대답에 대꾸하지도 않고 숲을 가로질렀다. 한 마리의 이리처럼.

 

키와 아유키: 히무로의 말을 따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23T의 호위 아래에서 재빠르게 저녁 식사를 마친 세 명은 곧바로 모니터실에서 회의를 계속했다. 토키와는 나나시의 수신기를 가지고 다녔기에 그들은 해변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키와 아유키: 뭣보다

 

토키와는 다이얼로그를 가리키며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다이얼로그에 추가된 새로운 물품 중 두 번째. 항생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모니터실을 조사한 결과 도청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미 후루미나미에게로 정보가 빠져나가는 경험을 해 본 그들은 중요한 정보들을 쉽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나이토와 모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생제가 필요했으나, 그들에게는 충분한 크레딧이 없었다. 인플레이션 탓에 물가가 점차 높아질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해제될 때를 대비하여. 그들은 크레딧의 소비를 억제하기로 의견을 정했다.

 

가장 나은 방법은 후루미나미. 카나리. 칸나즈키를 설득하거나 제압해 인플레이션을 멈추고 해변으로 항생제를 보내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23T를 무력화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기관총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모리가 죽어 나나시와 칸나즈키도 함께 죽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할 수도 없다. 재화의 양. 정보의 양. 모든 면에서 토키와의 패는 카나리, 후루미나미, 칸나즈키 연합에 밀리고 있었다.

 

키와 아유키: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지금 상황을 타파하기가 어려워 보일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내가 생각할 테니까… 오늘은 가서 쉬어. 캐롤 씨도 가세요. 나랑 23T가 계속 모니터실에 있을 테니까

 

바라 쿠리스: 너 또 밤새게? 모범생도 정도가 있지. 좀 무서운데? 대체 왜 그래? 너무 자기 몸을 혹사하는 거 아니야?

 

키와 아유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바라와 캐롤이 보기에. 토키와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고 서서히 어둠을 머금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러는 거야? 그래서 좋은 일이 있어. 노네임?"

 

노네임이라는 이름을 듣자, 노네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인공지능을 보았다. 형연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으며,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부를 거야. 네가 나를 노바디라고 불렀던 것처럼 나도 널 노네임이라고 부를 거야."

 

"그건 잘못 부른 거야… 널 그렇게 부를 생각은 없었어."

"어째서?"

 

암전. 그리고 조명이 돌아왔다.

 

나는 같은 건물의 다른 풍경을 보았다. 기둥. 문. 창문의 위치. 건물의 설계 자체는 똑같았다. 그러나 등장인물과 소품의 배치. 그리고 년도가 달랐다. 정체 모를 설계도와 기계. 그리고 서류가 가득하던 실험실은 책상과 상자 말곤 텅텅 빈, 이제 막 이사 온 사람들의 집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건물의 기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에 나도 모르게 휘말린 느낌이었다. 인공지능과 노네임 사이의 대화를 계속 듣고 싶었지만… 내 기억 속을 여행하는 마당에 누굴 탓할까?

 

나와 수호령 씨는 얼떨결에 시라유키 씨의 장광설을 노바디, 노네임 두 사람과 함께 감상하게 되었다.

 

"카텟 기관에 온 걸 환영해! 나와 카텟의 가능성을 믿고 따라와 준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시작하지. 고마워. 두 사람 모두. 그리고 거기에 더해 질문도 하나 할게. 누군가가 인간의 정신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노네임이 단적으로 말했다.

 

"네가 실패했잖아. 블레인. 그건 인간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없지."

 

노네임의 말에 시라유키 씨는 입을 샐쭉 내밀었다.

 

"블레인 얘기는 그만 하면 안 돼? 실패한 연구를 계속 언급하는 건 은밀한 곳에 있는 점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것과 같단 말이야."

 

"전혀 아니거든."

 

노바디가 노네임을 거들었다. 그러자 시라유키 씨는 고양이과 짐승이 캐릉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통통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한텐 그래! 그리고 어떤 철학적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내 연구는 얼마든지 성공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인조 인격이지만 미쳐버릴 만큼 인간과 유사했으니 성공이라고 쳐도 되잖아. 블레인이 광증에 걸린 건 오히려 인격의 구축이 얼마나 정교하고 진짜 인간다웠는지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노바디가 시라유키 씨의 말을 끊었다. 시라유키 씨는 한숨을 쉬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거지. 인간 수준의 자아와 지식을 부여하면 다들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버려. 그게 인간 같은 기계의 단점이야. 내가 어떻게 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결함이지. 그렇지만… 기계처럼 변한 인간은 어떨까?"

 

노바디와 노네임은 서로 불길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노네임은 점점 일이 잘못되는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또 실패할 것 같은데."

 

"아니. 그건 해보기 전까지 모르지."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 아니야?"

 

"어떻게 하는지는 이미 알아냈어. 인간 같은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해. 그리고 우리가 진행할 실험 또한 그것과 관련되어 있지."

 

시라유키 씨는 팔짱을 끼며 화이트보드에 유성매직을 찍찍 그어 글씨를 썼다.

 

 '승화 프로젝트' 

 

나시: 승화 실험… 여기서부터

 

나즈키 시노부: 너와 그 아이의 비극이 시작됐던 거구나.

 

"바로 사람의 정신 그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거야."

 

"미친 소리!"

경악하는 노바디를 보며 시라유키 씨는 자신의 엄지와 마주 보는 네 손가락으로 입 모양을 만들고, 그것이 떠드는 시늉에 맞춰 말을 늘어놓았다.

 

"라이트 형제한테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겠지. 오. 사람은 날 수 없어요! 사람은 새가 아니고 날개가 없으니 날 수 없다구요. 헛소리! 이 행성에 태어나 진화하고 생태계를 지배한 이상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의 약한 피와 살에만 머물러야 해? 언젠가 인류 전체가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지금 농담하는 거야?"

 

노네임은 눈치가 없어서 적절한 타이밍에 웃지 못한 사람처럼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그러나 시라유키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진지해."

 

"그게 얼마나 미친 소리인지 알아?! 사람을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니.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

 

"왜?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람이라 인식하고 사람의 정신에서 비롯된 존재라면. 단순히 몸을 옮겨 탔다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그럼 인류는 새로운 차원 앞에 서는 거야. 몸에 구애받지 않는 세상.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지."

 

"그걸 어떻게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어! 그럼 사람의 육체는? 그냥 버리는 거야? 내가 잘못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육체를 가진 사람은 사실상 죽는 거잖아. 프로그램이 원래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고! 끔찍해!"

 

"시라유키. 아무리 그래도 이런 프로젝트는 너무…"

 

시라유키 씨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콩콩 내리치며 한숨을 토했다.

 

"아아아. 얘들아 제발! 너흰 공학자잖아. 만들어내는 자라고! 그런데 너희가 기차를 잡아끌면 안 되지. 카텟의 기차를!"

 

기차? 시라유키 씨가 한 말이 워낙에 느닷없었던 나머지 나는 그게 어떤 비유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웬 기차?

 

"무슨 기차? 블레인?"

 

"블레인이 아니야. 봐… 이 세상은 하나의 기차야. 어떨 때는 덥고 어떨 때는 추운 세상을 가로지르지. 지금은 무척 춥고 어두운 시기고. 그렇지만 기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 안 그러면 바퀴에 녹이 슬고 기차 안의 모든 사람이 죽을 테니까. 어떨 때는 승객들을 몇 명 버리고 어떨 때는 트롤리 문제에 직면해 소수의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나아가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리고 기차를 이끄는 사람들은 엔진실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지를 계속 고민하지. 연료를 바꿀까요? 이게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이 부품을 교체하죠. 이러면 결점이 해결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개선과 발견을 거듭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끝없이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데… 꼭 기차를 세우려 드는 사람이 있어. 엔진을 만지는 능력이나 기술이 없어서 우두커니 기차 안에 앉아 있는 주제에 온갖 불평불만은 다 하지. 오. 그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신의 의지에 어긋나요. 자연을 지켜요. 너무 위험해요… 쓸모없는 히피족의 잔재들. 사랑과 평화에 대한 노래나 만들어서 딩가딩가 연주하는 일로 일생을 낭비하지. 실질적인 대책 하나 없이 그냥 자기가 좋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고 그렇게 한다고.

그리고 이 사람들은 기차를 더 빠르게 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잡아끌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단 말이야.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가둬 두려고 해! 그래서 기차가 말도 안 되게 느려진다고. 거의 움직이지를 않아! 이런 자들이 대몰락 이전에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지적 설계론이나 창조론 따위를 주장하면서 인간 종 자체를 음해하려 드는 반푼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어!"

 

노바디는 시라유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질린다는 듯한 얼굴을 하더니, 그녀의 마지막 문장에 와서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자칫 잘못했다간 네가 대몰락을 좋아하는 것처럼 비치겠어.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말이야."

"아. 제발. 또야. 이 얘기 꺼내면 꼭 이러더라. 아니 지금 대몰락이 일어나서 좋다고 하는 거냐고. 당연히 안 좋지! 나도 가족이 죽었다고! 그렇지만 나쁜 일 말고 좋은 측면도 보는 게 뭐가 나빠? 죽은 사람들에 대해선 정말 유감이지만. 그러니 이제 좀 내가 하려는 일에 닥쳐줄 수 있잖아. 내 발목 그만 잡고 인류를 지키기 위한 더 확실한 방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인류를 지킨단 말이야? 어떻게?"

 

"좋은 질문이야!"

 

시라유키 씨는 노네임의 물음에 박수를 치며 화이트보드에 계속 그림을 그렸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이건 진실이지. 그렇지만 누군가가 죽더라도 그 사람의 백업 데이터를 불러와 새로운 몸에 넣을 수 있게 된다면. 그래도 돌아오지 않을까? 나에기 마코토가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 세상. 그거야말로 폭도들의 입장에선 '절망' 스러운 일이겠지."

 

"그렇지만 진짜 나에기 마코토는 이미 죽은 채일 거야."

"그 시점에서 진짜와 가짜 따위야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걸."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 마련이니까.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트는 것뿐이야. 그리고 내가 장담하건대 우리는 성공할 거야. 기관에도 엔지니어가 많거든. 뭐. 나랑 블레인 만들던 사람들. 알잖아. 그 사람들 몇 명이 너흴 도와줄 거야. 그렇지만 너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 초고교급 기술자와 초고교급 엔지니어. 금속의 주인 두 명. 너희들이 인류를 새 지평으로 이끌 수 있어."

 

"상투적인 아부 그만 하고. 우리가 정확히 뭘 하면 되는데?"

 

시라유키 씨는 웃으면서 새하얀 연구실 가운 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노바디와 노네임에게 건넸다.

 

"기관에서는 우리 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이 구조대로 기계를 만들어 줘. 일손이 더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노바디와 노네임은 설계도를 몇 분 동안 읽고 눈빛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시라유키 씨에게 물었다.

 

"이 설계도. 네가 만들었어?"

"당연하지. 정신을 프로그램화하는 청사진을 내가 안 그리면 누가 그리겠어."

 

"그럼 너한테 말하면 되겠네. 미안한데 다시 그려야 할 거야. 이대로 만들면 이 장치의 내부에 들어간 자는 절대 무사하지 못해. 아니. 애초에 무사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 같아. 잔해를 장치 내부에서 내보내는 설비까지 갖춰져 있다니… 대체 뭐야?"

 

노바디가 고개를 저으며 시라유키 씨에게 종이를 다시 건네주자. 시라유키 씨는 종이를 받지 않고 손바닥으로 은근히 밀어내었다.

 

"어. 나도 알아. 일일이 빗자루로 잔해를 쓸어내기엔 이후의 실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어. 그러니 그런 설비를 갖출 수밖에."

 

그러자 노바디와 노네임의 얼굴은 상황을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변해갔다. 노바디는 검지를 시라유키 씨의 쪽으로 든 채 상대에게 자신의 시각을 이해시키려 했다. 우선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부터.

 

"너 지금까지 인류의 정신을 보존하겠다는 취지로 이 연구를 시작했다며."

 

"그렇지."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인류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 이… 이 모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

"나도 사람이 안 죽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어. 일단 만들고 난 뒤에 개선하면 돼."

 

"처음부터 설계를 개선한 뒤에 만들기 시작하면 되잖아!"

 

노네임은 상황을 파악했지만 시라유키 씨라는 사람은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 히무로와 만난 뒤의 시라유키 씨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위험한 발언도 서슴치 않는 눈 앞의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었다.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시라유키 씨는 검지 손가락을 내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노노. 그렇게는 못 해. 정신을 아무런 오차 없이 스캔하기 위해선 장치 내부에 강력한 전기장이 형성되어야 해.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내부의 생명체가 분해된다는 점이지. 이걸 개선하려면 기계의 기능 그 자체를 폐기해야 해."

 

"애초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설계로 정신을 스캔할 수 있다는 거야. 작동할 리가 없어…"

 

"그것 또한 좋은 질문이야! 그게 연구의 핵심이라고! 너희들에게 좋은 걸 하나 보여줄게. 이리 와! 너희니까 보여주는 거야!"

 

나시: 가죠… 수호령 씨.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건지 저도 알아야겠어요.

 

나즈키 시노부: 그래야 한다면.

 

나와 수호령 씨는 어디론가 뛰어가는 시라유키 씨의 뒤를 따랐다. 노네임과 노바디 또한 미묘한 눈빛을 서로에게 건네며 빠른 걸음으로 시라유키 씨를 쫓았다.

 

이윽고 우리는 벽을 열어 만든듯한 문에 도달했다. 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누군가가 구멍을 뚫은 듯한 모습이었다. 동굴 같이 깊은 벽의 구멍 안에서 시라유키 씨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밖으로 울렸다.

 

"들어와!"

 

"이건 또 뭐야"

 

"극비 연구라서 그래! 열어놨으니까 들어오라고! 보안 유지해야 하니까!"

 

나시: 대체 뭘 연구한 걸까요…?

 

수호령 씨가 뾰족한 대답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사실상 혼잣말이었다. 나. 수호령 씨. 노바디. 노네임. 네 사람이 함께 갔지만 실상 그 비밀 문의 계단을 내려간 것은 두 명뿐이었다.

 

나는 기억 속을 여행하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그 깊은 곳의 기분 나쁜 꺼림칙함은 느낄 수 있었다. 축축하고, 어둡고, 이상한 낌새… 들어와서는 안 될 곳에 들어온 느낌. 노바디와 노네임도 그것을 느끼는 듯이 서로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뭘 보여주겠다는 건데. 이 방은 또 뭐고!"

 

노바디가 소리치자 시라유키 씨가 대답했다.

 

"질문이 너무 많아! 아직도 이해 안 돼? 내 비밀 실험실이라고! 극비 연구들만 모아놓은 거야! 오늘 보여줄 건 단 하나뿐이지만 말이야. 짜잔!"

 

시라유키 씨는 원통 안에 갇힌 밝은 구슬 같은 것을 들고 노바디와 노네임을 반겼다. 구슬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암순응된 눈동자가 큰 자극을 받았다. 노바디와 노네임에 더불어 나까지 그 빛을 보고선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밝지? 밝지?"

 

"그게 뭔데?"

 

나시: 저게 무슨

 

그리고 나는 그 빛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영혼을 비추는 듯한 빛. 찬란한 빛.

 

밝은 구슬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샤이닝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나도 다는 몰라. 우리도 여전히 연구하고 있지. 이건 사리야."

 

"사리? 스님의 사리 말이야? 보통 광석의 형태라고 들었는데… 애초에 그걸 어떻게 구했어?"

 

"언젠가 불교의 '사리' 를 관측하려는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었거든. 고승 한 분이 노화로 인해 열반에 드셨어. 우리는 소위 사리라고 불리는 물질이 정확히 어떤 경위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었고, 나는 사리의 화학적 구조가 그저 뼛가루와 사리의 원본이 되는 물질이 결합되어 이뤄진 거라는 가설을 세웠지. 결과적으로는 내 생각이 옳았어. 생전에 고승 분께 허락을 받고-그보다 이 분 정말 대단하시지 않아? 자기 시체를 욕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우리는 실험을 진행했고. 어떻게든 채취하는 데에 성공했지. 저 안에 들어있는 게 진짜 사리야. 자체적으로 빛을 내지? 그래서 나는 광사리라고 부르고 있어."

 

"그게 뭔데…?"

 

"나도 다는 모른다니까. 저 물질은 빛처럼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해. 우리도 간신히 저 정도의 광사리를 채취한 거야. 부전도 젤로 감싸고 있는 상태라 뚜껑을 연 뒤에는 광사리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래서 광사리를 채취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연구는 진행하지 못했어. 다만 이 광사리 연구를 바탕으로 계속 인간의 신체를 탐구한 결과 우리는 광사리에도 원본이 되는 물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우리도 그것의 존재만을 알았을 뿐, 아직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채취하는 데에는 실패했어."

 

"저 광사리라는 물건의 용도도 모르면서 원본이 되는 물질에 왜 관심을 가져?"

 

"왜냐하면 저게 연구의 핵심이니까. 우린 원본 물질의 정체에 대해 모르지만 그 특성은 알아냈어. 바로 원본 물질이 '영혼' 이라고 불릴 법한 기능을 한다는 거지."

 

"아… 제발 누가 꿈이라고 말해 줄래…"

 

노바디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싸매자 시라유키 씨는 아무 말 없이 노바디의 볼을 꼬집었다.

 

"꿈 아니야."

"악몽이었으면 좋겠어. 시라유키 히메리. 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익히 들었지만…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영혼이라니.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넌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거부하고 있는 것뿐이야. 인류의 새 지평을 거부하는 것 또한 그 일부지. 그렇지만 새 시대가 열렸어. 맞아. 우린 영혼의 존재를 거의 규명해냈어. 광사리와 연관이 있지. 소위 영혼이라고 불릴 법한 의식의 정수가 우리들의 몸 안에 각자 들어있다고. 내 몸에도. 네 몸에도. 그리고 네 몸에도."

 

시라유키 씨는 자신의 몸과 노바디의 몸, 노네임의 몸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그냥 헛소리로 치부해도 돼. 그럼 내가 더 많은 증거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 사람의 영혼은 마법이라 불릴 법한 현상과 지극히 가까운, 그렇지만 결국 과학의 영역에 있는 무언가야."

 

"그 물질을 스캔하기 위해선 몸을 분해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노네임이 묻자 시라유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작용은 어쩔 수 없어. 지금 시점에서는 말이야. 만들지 않고서 개선점을 떠올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이런 사람을 믿고 요새 밖으로 나왔다니 제발 꿈이었으면…"

 

"꿈이 아니라니까."

 

"그럼 그 물질을 스캔해서 프로그램화한다면… 사실상 영혼을 스캔하는 거랑 다름이 없다는 거야?"

"그렇다니까."

 

노바디는 노네임에게 살짝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며 시라유키에게 다시 말했다.

 

"그래 봤자 사람이 분해되는 이상. 원본의 사람은 죽는 거랑 똑같아."

 

"나도 그 점은 서서히 개선해나갈 생각이야. 이런 기계에 사람을 던져 넣을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내가 왜 그렇게 하겠어? 아직 임상실험도 안 끝났는데 어떤 오차가 생길 줄 알고…"

 

"그게 다야?"

 

노바디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보자 시라유키 씨는 마지못해 말했다.

 

"…그리고 사람을 기계에 넣어서 분해시키는 일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 힘을 빌려줘. 이미 이론상 필요한 부품은 다 갖추었지만 너희가 필요한 부품이 있다면 아낌없이 조달해줄게."

 

"노바디. 하자."

 

노바디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차피 시라유키를 따라온 이상 우리에겐 선택권이 많지 않아, 할 수밖에 없어."

 

"그래. 발을 디딘 건 우리지… 어쩔 수 없을 거야. 좋아. 받아들일게."

 

"그래야지! 몇 달 정도 걸릴까?"

시라유키 씨의 물음을 들은 노바디와 노네임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 할 것도 없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몇 달 씩이나?"

노네임이 되물었다. 뽐내는 기색조차 없는. 왜 그런 것을 묻냐는 듯한 자신감이 그들의 얼굴에서 묻어 나왔다. 금속의 주인들에게서.

 

화면 전환.

 

"자… 보자… 찍히고 있나? 당연히 찍히고 있지. 확인만 몇 번이야?! 새삼스럽지만 자기소개부터 시작할까. 나는 시라유키 히메리. 소위 초고교급 연구가. 금단의 탐구자. 스노우화이트. 블레인 님의 제1순위 숙청 대상. 이름은 많지만 뭐든 좋아. 지금 녹화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새로운 경지가 될 '승화 프로젝트' 의 첫 번째 임상실험이다. 생물체의 정신을 프로그램으로 변환하는 실험이지. 곤충류의 본능적 사고방식은 기형적. 해양생물은 조달이 어려움.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첫 번째 임상실험 대상은 조류로 결정. 앵무새를 구하고 싶었지만 급한 대로 참둘기를 조달함.

그래. 맞아. 커피 마시다가 근처에서 봤어. 뭐 어때! 우연 속에서 진짜 영감이 탄생하고 세상이 바뀌는 거라고. 페니실린이 곰팡이에서 발견되었듯이 말이야. 승화 프로젝트의 첫 도약이 참둘기라는 게 웃기지 않아? 이 실험이 성공하면 이 참둘기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거라고. 이름을 뭐라고 정했더라.

토하쿠! 토하쿠였어. 내가 지었지! 아무튼 보다시피 이 장치는 커다란 전화 박스처럼 생겼다. 안에 있는 토하쿠가 보일 거야. 안녕 토하쿠. 이거 보고 있는 당신들도 인사해. 안녕 토하쿠. 그리고 잘 가."

 

"장치 내부의 진공 상태 해제. 전기장 발생 퍼센테이지 80%!"

 

노바디가 외쳤다.

 

"90%… 100%! 전기장 활성화!"

 

노네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 박스 내부는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한 빛으로 가득 찼다. 전화 박스 내부의 환기 시스템으로 인해 밖으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노바디와 노네임. 시라유키 씨를 포함한 모든 연구진의 옷이 바람에 흩날렸다. 시라유키 씨는 자신의 옷을 여미지도 않고.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전화 박스 내부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메라 또한 시선을 돌리지 않고 한 풍경에 머물렀다.

 

마침내 빛이 사그라들고 전화 박스의 문이 열리자 시라유키 씨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토하쿠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짜잔. 촬영… 종료!"

 

"이게 홈 비디오야. 실험 촬영이야?"

 

카메라를 끄는 시라유키 씨를 보고 노바디가 말했다.

"시라유키 씨는 항상 저렇게 하세요. 즉흥적이시고 의욕이 넘치시죠. 영감과 발상도 그만큼 넘치시고요."

 

나이가 사십은 될 법한 중년의 연구원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시라유키 씨와 노바디, 노네임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만큼 세 사람이 승화 프로젝트에 기여한 바가 많았다는 뜻일까.

 

"참둘기 하나를 그냥 태워 버렸는데… 너무 유쾌하다곤 생각하지 않으세요?"

 

"앞에 한 마디만 더 붙여도 돼? 고작 참둘기 하나."

 

시라유키는 노네임의 말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개너구리는 귀엽기라도 하지 참둘기는 여러모로 해가 되잖아. 박테리아를 옮기고 다니지. 우리가 실험에 쓴 참둘기는… 걔 이름이 뭐였지?"

 

"토하쿠요."

 

"토하쿠요! 그래. 이걸 내가 까먹으면 안 되는데 미안해!"

 

시라유키 씨는 자신의 이마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들은 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연구를 계속하죠? 저렇게 제멋대로인 사람이랑 같이"

 

"오히려 저렇기에 저희가 시라유키 씨와 연구를 계속하는 거예요."

 

"네?"

 

노네임은 연구원에게 반문했다.

 

"시라유키 씨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녀의 가장 뛰어난 점은 바로 저 멋진 사고방식이에요. 연구 앞에서는 사사로운 감정이나 윤리 따위를 저버릴 수 있는 힘이 시라유키 씨에겐 있거든요. 남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두고선 왜 그걸 가지고 고민하냐는 듯이 명쾌하게 해결해버리죠. 고르디우스의 매듭이에요."

 

"결국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을 풀지 못해서. 그의 왕국은 사후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어."

 

노바디가 연구원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 위대함은 사라지지 않아요."

 

"시라유키가 윤리를 무시하는 과감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는 딜레마를 해결하고, 너희들 사이의 동요를 억제한다 이거지?"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시: 그런 말도 안 되는

 

나시: 말도 안 되

 

캐롤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나시가 뒤척이며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캐롤은 그에게로 다가가 소리쳤다.

 

롤 브라이트: 나나시 씨?! 깨어나신 건가요?!

 

대답은 없었다. 

 

롤 브라이트: ….

 

캐롤은 나나시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간 자신을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뒷걸음질. 그것은 언제든지 다시 앞을 향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사람의 걸음이었다.

 

상담윤리강령 중 내담자와 5년 이내에 결혼을 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상담사가 내담자의 심리를 장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화술과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내담자로 하여금 무엇이든 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의 심리는 사실 생각보다 단순하고, 아주 작은 자극이라도 적절히 사용하면 남의 의도대로 쉽게 움직인다.

 

가령 캐롤 브라이트가 나나시에게 "왜 저를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세요?" 라고 묻는다면 나나시는 당황하며 '내가 캐롤 씨를 볼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얼굴이 새빨개지지는 않는가 신경이 쓰이게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캐롤을 보고 싶지 않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힐끔거리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언젠가 나나시는 캐롤을 볼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게 될 것이다. 그게 심리학의 무서운 점이었다. 정말 무서운 조종이란 조종당하는 장본인도 자신이 무엇을 당하는지 모르는 종류였다. 모리는 그녀의 터치를 경계하고 그녀가 터치를 가지고 있기에 고립되어야 한다며 캐롤을 몰아세웠지만, 캐롤이 보기에 모리의 관점에는 캐롤에 대한 몰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만약 그녀가 마음을 먹었다면 모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되었을 터였다. 그녀가 입과 머리를 조금만 썼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터치 없이도. 단지 그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터치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심리학에 대해 정통한 그녀였지만, 자기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를 수 있는 이발사는 세상에 없었다. 캐롤은 자신이 조종당하는지의 여부를 의심할 수 있을 뿐. 모든 심리학의 작용을 인지하고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캐롤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롤 브라이트: 최근 들어 내가 당신과 만나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건. 어디서 만나본 적이 있느냐는 당신의 말에 내가 휘말려든 걸까

 

캐롤은 나나시의 볼 위에 흰 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올렸다.

 

롤 브라이트: 그게 아니면 내가 정말 당신과 만나본 적이 있는 걸까…?

 

롤 브라이트: 그것도 아니라면, 날 조종할 의도조차 없는 당신의 말을 그저 내가 믿고 싶을 뿐인 걸까.

 

캐롤은 나나시의 얼굴에서 손을 치운 뒤.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다가간 자신의 발걸음과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녀는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을 상대하듯이 자신의 두 손에 깍지를 끼웠다.

 

롤 브라이트: 이건… 이건 터치 때문이야. 한 사람과 여러 번 정신이 연결되어 본 적은 없었잖아. 그것도 지속적으로. 폐쇄적인 환경에서. 의지할 대상 없이… 심지어 나나시 씨는 기억조차 없어. 그러니까 더더욱 나에게 의지하실 수밖에제인.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이건 나나시 씨가 처한 상황을 이용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

 

롤 브라이트: 그러니 나나시 씨도. 나도.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감정이 진짜라고 말이야. 이건 가족애라고 생각해야 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면서 생기는 가족애. 이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연상인 내가 확실하게 처신해야지. 나나시 씨는 나보다 어리니까 내가 선을 그어야만 해

 

그러자 양심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럼 그때 볼에 입을 맞춘 건 뭐였지?"

 

나시: 캐… 캐. 캐. 캐롤 씨…?!

롤 브라이트: 후후. 좋은 꿈 꾸세요.

 

롤 브라이트: 그건그냥 인사였잖아. 잘 자라는 인사.

 

"입맞춤을 받는 사람이 그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고 했는데. 인사라는 명목으로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아? 넌 그가 그 인사를 오해하기를 바라면서 한 거 아니야?"

롤 브라이트: 아니야. 난 그럴 생각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 봐. 네 마음은 어딜 향하고 있는 거야?"

 

롤 브라이트: 그렇지만 이런 관계는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고

 

캐롤은 머뭇거리며 두 손의 깍지를 폈다.

 

캐롤은 수업시간에 몰래 간식을 먹는 학생처럼. 나나시의 볼을 만졌던 손끝에 짧게 입술을 맞추었다.

 

롤 브라이트: …절대.

 

 

 

 

 

 

트위터 공식 계정에도 올렸지만… 요즘 몸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백신 맞기 전부터 소화력이 저하되고 목에 염증이 생겼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합니다 약도 꼬박꼬박 먹는데… 암튼 단크 타워가 잘 안 올라오는 건 요즘 글 쓰는 일에 주화입마가 온 것도 있지만 몸 상태가 메롱이여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칙칙한 얘기 그만 하고 단크 타워 얘기나 하자면 캐롤이야말로 초기 버전이랑 지금 버전이랑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캐릭터 중 하나일 겁니다

 

초기버전에서도 터치라는 설정은 있었지만 진짜 쎄한 면 하나도 없이 계~속 갓성인 캐릭터였다면 서사가 추가되고 연재를 계속하다보니 서서히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는 캐릭터로 바뀌어가네요

 

1달에 2편 올리기도 못 하는 마당에 더 주절 거리기도 뭐하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총총